아버지 만나고 돌아오는 길인데, 오늘은 강릉행 기차 안에서가 아니라 엄마한테 가는 길에 쓴다. 가리봉에서 오산 가는 국철. 예전에 많이 다녔던 길 위헤서 지금의 내가 쓴다.

아침에 KTX 청량리역에 내려서 국철로 갈아타면서 바깥의 온도, 습기, 햇살, 냄새 같은 것 다 잊을 수 있어서 지하철이 좋구나, 생각했는데, 국철을 바깥이 보이는 구간이 많다. 그러니까 그 생각은 아버지 만나러 오는 내 어두운 마음을 반영한 거였다.

아버지는, 정체 상태라고 해야하나?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않은 가운데 약간은 물러서는 형국이다. 지난달에 엄마가 아버지를 호출했는데, 가리봉에서 헷갈린 건지 개봉역에서 헷갈린 건지 결국 엄마 집에 못 찾아오고 집으로 돌아갔다. 엄만 많이 속상해했고 나는 아버지 조금 나빠졌나, 생각했다. 둘째 이모 얘기로는 최근에는 정리한다고 그릇을 다 꺼내놓고는 그 상태로 정리했다고 한다고 한다. 아머지는. 오늘도 나를 아침부터 기다렸고 병원에 한 시까지 가야하고 나는 열 두시에 집에 도착하니 식사를 하시라 했는데, 뭔가를 먹었다 했지만 그게 뭔지는 모르고, 그러니 아무것도 안 드셨을지도 모른다. 병원에서 혈압을 재보니 여전히 맥박이 느리고 – 맥박이 점점 느려지다가 죽는 일을 떠올려본다. - 혈압약을 끊었지만 120대의 최고 혈압을 유지하고 있다. 아1버지 육체는 엄마보다는 많이 건강하다. 좋은건가? 좋은거다.

아버지는 오늘 나랑 같이 뭔가 먹지 못한 게 많이 아쉬웠다. 아버지랑 다채롭게 먹고 싶다는 내 마음속의 약속을 나도 못 지키고 있다. 내 의지의 문제다.

아버지 약통 새로 채우고 핸드폰 선택약정(할인) 신청하고 믹스커피랑 두유사서 데이케어센터 들렀다.복지사 선생님과 잠깐 얘기를 나누고 현장에서 6월 가정통신문에 회신했다. 커피 고맙다고 문자가 와서 형편이 이 정도로 죄송하다 했는데, 진심이다. 작은 엄마가 할머니 보러 요양우언에 갈 때 항상 뭐든 사갔다. 나도 몇 번 같이 갔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배운일이다. 현금을 잘 갖고 다니진 않는데, 주머니에 돈이 있고 대리운전을 이용하며 운전해 주신 분에게 대리비랑 별도로 만 원짜리 한 장 드리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어른들에게 좋은 영향을 받은건가. 나도 그정도의 호의는 받으며 살아왔다. 안 그랬으면 벌써 죽었겠지.

센터 나와서 편의점에서 맥주랑 담배를 샀다. 친구 가게에 들었다. 몸에 안 좋은 걸 한 가지 더 샀어야 뭔가 딸 들어맞는데. 소주가 아니라 다행인건가. 친구랑 짧고 빠르게 얘기 마치고 엄마한테 가는 길이다. 급행을 타서 곧 수원역이다. 굿. 내 인생은 이런 흔한 행운과 그렇지 않은 일, 로또 복권에 당첨되지 않는 일이 전부다.

엄마는 내일 입원에서 혈관조영술 한다. 어제 저녁에 전화했을 때, 돼지고기 사러 마트에 왔다고 고기 볶아줄테니 꼭 집에 와서 밥 먹으라 했다. 방금도 문자가 와서 수원역 근처라 했더니 밥솥 전기 꼽는다고 답이 왔다. 직계존속의 존속력이랄까. 끊어지지 않는 어떤 마음들.

언제부턴가 가만이 있어도 화가난다. 국내외 정세, 집안 정세, 지금의 내 모습 때문이다. 아내에게 화를 많이 보이는데 너무 친하니까 과할때가 많다. 정말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온순해진다,고 결론 지으려는데, 내게 그런 대상은 엄마뿐이고 엄마앞에서 온순해지는 건 사랑보다는 애틋함 때문이다. - 막내 이모는 엄마 머릿속의 꽈리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 언니 젊은날 술만 먹다가 늙어서 좋은날도 못보고 죽으면 어떡하냐면서 울었다. - 정말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이런모습 저런모습 다 보이게 되는건가?

아버지가 옛날에 말하길, 먼저 전화 온다는 건 누군가 나를 찾는거니까 좋은일이라 했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건 좋은거고 아버지도 엄마도 나를 기다린다. 좋은거다. 나는 부모님을 기다리지 않는다. 나는 누굴 기다리지? 곧 엄마집에 도착하는데 살짝 어지럽네. 친구 가게에서 마신 맥주 때문은 아니다.

-> 이대목동병원근처 열병합발전소 굴뚝. 인생은 일방통행이 아니고 오늘도 아버지는 사진찍는 나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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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다

꼭 갔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한 달에 한 번은 아버지를 만나야 할 거 같고 데이케어센터에서 보낸 가정통신문에 회신도 해야해서 서울 나들이를 했다. 서울가는 기차에서는 비구름이 불러가려는 날씨가 예쁘단 생각을 했다. 고여있는 물에도 생기가 돌았고 농산 준비를 마친 논밭이 선명했다. 어느밭 한 귀퉁이에 어린 나무가 어린 잎을 피웠다. 아직은 나보다 적게 살았지만 나보다 천년을 더 살지도 모르는 나무. 서울에 오니가 비가 그친 날씨가 예쁘지 않았다. 그러니까 날씨가 이뻤던 건 연두 때문이었다. 양평 지나서 아파트가 많이 보이기 시작하니까 순식간에 마음이 삭막해졌지만 청량리 역 앞 화단에 봄이 온 걸 보고 안심했다.

아버지를 만났다. 문자랑 카톡, 통장잔고를 확인했다. 약통에 약을 확인하고 전파사에서 사온 티비 리모콘 세팅하고 변기에 앉으면 눈앞에 보이는 벽에 ‘변기 물 내릴 것’ 써 붙이고 늘 그렇듯 잘 하고 있다고 얘기하고 밥 먹었다. 별다른 옵션이 없어서 또 순댓국 먹었다. 난 보통, 아버지는 특. 먼저 나랑 먹고 또 드신적 있냐고 물으니 그때 먹고 처음이라고 한다. 배부르면 억지로 다 안 드셔도 된다고 했는데, 꽤 많은 양을 천천히 다 드셨다. 아버지는 원래 천천히 드시는 편이다. 최근에 뭐든 조금 급하게 먹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천천히 드시는 모습에 안심했다. 밥 먹으면서 많은 얘기를 했다. 아버지가 데이케어센터에 대해서 꽤 자세히 설명을 했는데, 나는 뭔 말인지 대충 알아들었지만 명사를 하나도 떠올리지 못하니 설명이 잘 안됐다. 뭐든 촉촉할 때가 맛있다는데 아버지랑 먹는 순댓국 안에 고기를 항상 먹먹하다.

아버지가 데이케어센터를 좋아해서 다행이다. 뭔 일 있으면 나한테 알려줄 수 있으면 좋을텐데. 좋을텐데,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구나. 아버지 얼구링 먼저보다 좋아보였다. 그것도 좋은 일이다. 날 만나서 아버지가 많이 좋아했다. 그게 제일 좋은 일이다. 날 만나는 아버지 마음에는 미암함과 좋은이 뒤섞여 있다. 혈연인가. 사랑인가. 조만간 낮에 통화할 때, 오늘먹은 집에서 순댓국 2인분 포장 주문 – 아버지는 포장이란 단어를 떠올리지 못함. 순댓국이란 단어도 – 하도록 유도해 봐야겠다.

1호선 타고 청량이 오는 길에 멀리 남산타워가 보이고 남산 중턱에 벚꽃이 아직 환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왔다. 언제가지 봄이 차자오려나. 일단 올해는 봄이 찾아왔다. 아버지도 괜찮다. 그러니 됐다.

당일치기 서울 왔다갔다 피곤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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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엔 삽당령에 눈이 20센티미터 이상 왔고 - 사무실 바로 앞에 기상청 관측 장비가 있고 사무실 모니터로 그 내용을 볼 수 있다. - 토요일엔 강릉 시내에도 눈이 왔다. 세차게 떨어지는 눈을 뚫고 점점 무거워지는 우산의 무게를 느끼면서 아내랑 강릉역에 도착했고 청량리역 근처도 하늘이 무거웠다. 아내는 기다리던 이승윤 단콘 보러 잠실에 가고 나는 아버지 만나러 신월동에 갔다. 아버지는 최근 두 달 사이에 이 두 개를 뽑고 틀니를 했다.

- 아버지, 치과에서 또 오래요?
- …..
- 아버지, 치과에서 틀니를 어떻게 하래요?
- …..
- 아버지,
- …..
- 잘 하고 있어요.
- 어, 그래.

데이케어센터에서 준 가정통신문(?)에 회신할 사항이 있어서 내용 작성했다. - 아버지, 월요일에 잊지 말고 갖다주세요. - 아버지가 약을 잘 드시고 있는지 남은 약을 확인했다. 약이 모자라거나 남지 않아서 안심했다. - 아버지, 잘 하고 있어요. - 혈압약은 4월초, 치매약은 6월 중순에 받으면 된다. 아버지 핸드폰에 온 문자랑 카톡을 확인했다. 언제부터였을까? 글자를 잊지는 않았지만 아버지는 문자나 카톡을 전혀 확인하지 못한다. 아버지 친구 엄마가 돌아가셨고 통장에 돈이 없어서 지난달 카드요금이 1,040원만 인출됐고, 이달에는 카드 누적사용이 130만원을 넘었다. 지난달에는 치매약값 때문에 이달에는 틀니 때문에 카드 사용량이 많다.

- 아버지, 돈 떨어지면 얘기하세요.
- 알았어.
라고 했지만 아버지 머릿속에 돈에 관한 것은 생활비를 아껴서 살아야한다는 것과 매달 공과금을 빼 먹지 말고 내야한다는 것 두 가지 뿐이다. 두 가지라도 유지하니까 다행이다. 나머지는 내가 챙기면 된다, 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속이 착찹하다.

나이 먹는 건 무너지는 일이다. 정신이 무너지고 이가 무너지고, 그렇게 하나하나 무너지다가 마지막엔 사람이 통째로 무너진다.

아버지랑 같이 저녁 먹을까 하다가 왠지 내키질 않아서 그냥 잠실에 왔다. 몽촌토성역 앞에 버거킹이 있어서 오랜만에 와퍼를 먹었다. 서울이라 그런지 (씨팔) 송파구라 그런지 강릉에서 보다 맛있었다. 버거는 맛있는데, 아버지랑 같이 밥 안 먹은 거 후회했다. 아버지에 대한 마음에 눈 쌓이듯 후회가 쌓인다. 눈녹듯 녹을날이 있겠나? 4월초엔 꼭 순댓국 아닌걸로 같이 먹어야겠다. 꼭.

일요일엔 이승윤 공연을 봤다. 잘 하더라.

스스로 정치적으로 극좌파라고 하면서 3년안에 내 집을 갖고 싶어서 부동산 학원에서 부동산을 배우고 있는 친구를 만났다. 먼저 우리집에 왔을 때, 얼마 안되는 돈을 어디에 투자해야 하나 포트폴리오 짜고 있던 게 기억났다. 봉쇄수녀원과 명리학과 투자 포트폴리오와 부동산 학원과 부모님과 함께 사는 21억 짜리 아파트와 대선에서 3번을 찍는 행위를 생각한다. 언젠간 네가 싫어하는 네 아버지가 네 집을 사줄 것이다.

인생이란 그런것이지, 란 말을 많이 하는데. 체념에 가깝다.

오늘은 3월 21일, 춘분, 사무실 뒤쪽 소각장에 고양이 공간을 마련했는데 주말 사이에 눈밭을 뚫고 고양이가 밥 먹으러 다녀가서 기분 좋았다. 눈이 많이 왔기에 가뭄이 약간은 해소된거 같아서 안심이다. 눈의 낭만보다는 해갈이란 현실이 중요한 40대 중반이다. 기후 파괴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많지만 오늘은 춘분이니까, 봄은 살아야 하니까, 오늘만큼은 부정을 나열하지 않기로 한다. - 이미 위에 해버렸나?

체념하더라도 살아야지.

-> 지난주 금요일 사무실 창고 위쪽, 딱 이 정도의 낭만만 있는 40대 중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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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에 아침부터 늦게까지 아버지랑 함께했다. 아버지는 장기요양보험에서 인지지원등급을 받았다. 등급서류를 실수로 버린 줄 알았는데, 옷장 안 깊이 둔 것이었고 그러는 바람에 찾느라 애 먹었다. 치매약은 네 달치를 받아왔고 주간보호시설(데이케어센터) 입소 계약서를 썼다. 입소를 위한 건강검진을 받았고 나와 아버지의 관계를 증명하는 가족관계 증명서를 뗐다. 이리갔가 저리갔다 하는 바람에 많이 지쳤다.

나도 지쳤는데, 아버지도 지쳤을 것이다. 어김없이 함께 순댓국을 먹고 아버지 약통 28칸에 약 일곱 알씩 넣으면서 ‘잘하고 있다’는 얘기를 반복했다. 나는 그 반복이 약간 지겹기도 한데, 아버지는 외로운 삶에 아들과 함께 하루를 보내는 일이 좋다. 병원에 갈 일이 없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아버지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순댓국 말고 다른것들을 아버지랑 함께 먹고 싶다.

2014년 12월, 섬 생활 정리하고 강릉으로 이사오기 전에 아버지 집에 한 달 정도 머물렀었는데, 아버지 생일에 고추잡채 만들어서 아내, 나, 아버지 이렇게 셋이 먹었다. 나는 술 안 먹고 아버지 소주 한 병 따라드렸다. 그날이 아버지 온전하던 시절에 함께 밥 먹은 마지막 날이고 아버지한테 처음이지 마지막으로 술 따라드린 날이고 내가 먹을거 만들어 드린 유일한 날이다. 그때로부터 6년이 넘게 지났다. 허망하다.

아버지는 다음주부터 일주일에 세 번, 한달에 열두번 데이케어센터에 갈 것이고 센터에 가는 날은 우리 아버지 오늘은 뭘 드시나 걱정 안해도 된다. 장기요양보험에서 월 597,600원을 지원받고 본인 부담금 40% 감경대상자로 센터이용에 대한 본인부담율을 9%다. 밥값 10,000원 지원대상이 아니지만 하루에 14,000원 정도로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숫자로 계량되는 세계, 숫자는 질서, 어떤 질서가 있는 세계, 숫자가 주는 편안함이 있다. 지금은 이것만으로도 좋지만 앞으로는 복지시스템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될 것 같다.

15일에 검사받은 건강검진 증명서랑 코로나 음성확인서 원격으로 떼느라 애 먹었다. 나는 수화기 너머로 애먹었지만 당사자인 아버지는 나보다 훨씬 답답했을 것이다. 아버지 수고했어요.

지쳤다와 지겹다와 지루하다
지쳐서 지겹고 지겨우니 지루하다
몸이 지쳤지 아버지한테 지쳤던 건 아니다. 미치도록 지겨운 건 아직 없다. 다행이라 생각하자.

아버지랑 별개로 요즘 전반적으로 지겹고 지루하다. 지루할 틈도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겐 배부른 소린가? 오래 살았다,는 느낌은 아니고 충분히 많이 살았다는 느낌이다.

치매약 받아서 집에 가는 길, 약국 근처에 먼저까진 안 보이던 커피집이 생겨서 아버지랑 2,800원짜리 라떼를 한 잔씩 마시면서 버스 정류장까지 걸었다. 열영합발전소 굴뚝을 보면서 추운날은 연기가 더 하얗다는 얘기를 했다. 나는 잠깐 멈춰서 굴뚝 사진을 찍고 아버지는 그런 나를 기다렸다가 함께 좌측으로 코너를 돌아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 장면이 그림처럼 기억에 남았다. 커피가 맛있었기 때문이라고 하자.

아버지, 잘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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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만나고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어둡다,고 기차에서 적어뒀다. 동지는 지났지만 해 길어지려면 한참이고 오후 7시 22분 기차를 타서 더 그렇다.

     아버지 장기요양보험 때문에 의사 소견서 받으러 다녀왔다. 원래는 1월 4일에 갔어야 하는데, 담당의사 개인 사정으로 일주일 밀렸다. 아버지 치매를 인지한 게 햇수로 3년이고 알츠하이머 진단서 받은 것도 6개월은 넘었는데, 이제 장기요양등급 심사받는 절차를 밟고 있으니 일주일 밀린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일처리를 조금 더 급하고 빠르게 했어야 하나, 생각도 해보지만 너무 늦지만 않으면 크게 달라질 것도 없다.

     3시 45분 예약이었고 3시 30분 정도에 병원에 도착했다. 진료가 끝난 건 4시 50분이었다. 긴 기다림의 시간동안 아버지랑 나는 똑같은 대화를 나누고 나누고 나누고, 병원 안 편의점에서 망고 주스를 사 먹고 똑같은 대화를 또 나누고 나누고 나눴다. 코로나만 봐도 그렇지만 병의 가짓수가 사람 숫자를 따라잡을 수 없어서 세상에는 같은 병에 걸린 사람들이 너무 많다. 한참 끝에 만난 담당 의사의 새해복많이받으세요, 인사가 기계처럼 느껴졌다. 의사를 욕하는 건 아니다. 직업이란 기계적이고 오래 기다린 내 마음이 의사의 진심을 부정적으로 느낀 걸 수도 있다.

     같이 저녁을 먹으면 강릉 돌아오는 시간이 너무 늦기도 하고 일부러 아버지와 저녁밥을 같이 먹고 싶진 않은 내 마음에 끌려서 병원 나와서 아버지랑 헤어졌다. 나는 건강보험공단에 소견서 제출하고 지하철로 청량리 이동, 아버지는 동네에 종점이 있는 버스를 타고 이동이다. 아버지는 당연히 어디서 버스 타야 하고 몇 번 타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 목동이 일방통행이라 익숙하지 않으면 어른들도 어려움 - 아버지 버스타는 곳에 바래다줬다. 길 건너편에서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걷는데, 아버지가 작아보였다. - 차선 네 개 건너에 있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 뒤쪽을 보니 아버지가 타야하는 버스가 보였고 아버지랑 눈이 마주쳤다. ‘아버지 지금 이 차 타시면 돼요’ 소리를 지르고 아버지가 버스에 타서 버스 요금 결재하는 걸 한참 지켜봤다. 아버지의 버스가 20미터도 못 가서 신호에 걸렸고 우리 아버지 어디 앉았나 버스 안을 들여다보다가 아버지랑 눈이 마주쳤다. 서로 반갑게 손을 흔들고 헤어졌다. 30분 후에, 방금 집에 도착했고 오늘 수고했다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가 차비하라고 5만원 주길래 몰래 지갑안에 다시 넣어줄까 하다가 그냥 받았다. 살면서 아버지한테 용돈 받은적이 별로 없는데 - 아버지가 돈이 있었던 적이 별로 없어서 - 아버지의 무의식에는 아들 용돈과 관련된 무언가가 있는지도 모른다. 수고했다는 말을 들을 정도는 아닌데, 아버지도 엄마도 항상 수고했다는 말을 하는 것도 조금 마음에 걸린다.

     아침의 강릉역에서 지난 세기의 99년에 나온 에이치오티4집을 틀어놓고 나보다 어린 게 분명한 사장이 활기차게 영업준비를 하는 토스트 집에서 커피를 한 잔 사 먹었다. 아버지 동네 시장에서는 활짝 핀 배춧잎이 너무 예뻐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아버지는 반복해서 들어도 계속 잊어버리는 사람이 됐고 나도 사진 속의 배춧잎 같은 시기는 지났다. 살면서 어떤 성취감을 느끼지 않는다. 뭔가 쓸쓸하네.

     아버지 만나고 돌아오는 길은 항상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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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만나고 강릉 돌아오는 길이다. 오늘도 기차 안에서 글을 끝내야지.

노인장기요양 인정 때문에 건강보험공단 직원이 아버지 집에 방문했다. 몇 가지 묻고 절차 얘기해 주고 돌아갔다. 우리 아버지의 담당자로 지정된 사람. 장기요양인정 신청서를 접수해 줄 사람. 직업 때문에 수시로 치매환자를 만나는 사람. 고된 일이다. 의사소견서 받는 병원 예약이 올해 안에 어려워서 소견서 제출일자를 조금 미뤄 달라고 공단에 전화를 했다. 전화 끊으면서 진심으로 고생 많으십니다, 했는데 상대도 진심으로 선생님이 더 힘드시죠, 해서 위로가 됐다.

지금의 아버지는 가볍게 생각하면 20년 먼저 90살이 된 사람이다. 아버지가 무거운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무겁게 생각하지는 않을란다.

오늘 아버지는 누룽지를 꼬들꼬들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했다. 공단 직원이 말한 세 개의 단어를 방금 따라 읽고도 10초 만에 다 잊었다.

오늘 내가 아버지한테 한 얘기는 아버지 지금 잘하고 있어요. - 항상 가장 많이 하는 말- 요새 잘 못 드시는 거 같애 얼굴을 보니까 좀 야위었어. 많이 주무시는 게 좋아요. 억지로 일찍 일어나실 필요 없어요. 아버지 허리 펴고 천천히 걸으세요. 등이다.

공단 직원이 돌아가고 시장에 가서 아버지랑 순댓국을 먹었다. 왠지 허기가 져서 둘 다 특으로 시켰다. 아버지가 나에게 특별하던 시절을 지나 내가 아버지에게 특별한 사람이 됐다. 아니면 부모 자식 관계는 항상 특별한 것이리라. - 이놈의 가족주의 - 내가 그릇을 비우자 아버지는 그거 처음에 돈 더내고 먹는 그거 먹을 걸 그랬다고 한다. 아버지 지금 먹는게 특이예요. 했다. 그랬어? 그러면서 이버지가 웃었다.

순댓국이 먹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못 먹었다는 뉘앙스의 얘기가 나왔다. 한 달에 편히 쓸 수 있는 돈이 15만원이니 그럴 수 있다. 아버지 드시고 싶은거 있면 사 드시고 돈 떨어지면 얘기하세요, 했다. 아버지는 돈이 없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상태다. 돈이 없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는 건 긍정 요인인가?

노인일자리 신청한다고 해서 그러시라고 했다. 잘 되면 좋은 거다. 수입도 생기고 외로움도 덜할 것이다. 오늘 나를 만나는 일 때문에 들뜬 아버지는 전화기도 챙기지 않고 시장통에서 나를 기다렸다. 집에 갔는데 아버지가 없어서 아버지 찾으러 나갔다가 터덜터덜 집쪽으로 돌아오는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가 아직은 길을 잃어버리진(잊어버리지) 않는 사람이라 다행이다.

1월 4일에 또 만날 거라고 했더니 얼마남지 않았다며 좋아했다. 아버지가.

아버지, 저랑 1월 4일에도 만나고 15일에도 만나고 2월 15일에도 만날거에요. 드시고 싶은거 있으면 사 드시고 돈 떨어지면 저한테 전화하세요.

-> 신월동 이미지. 김포공항 없앤단 얘기가 있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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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오산 엄마집에 가서 아버지 70세 생일밥 먹고 왔다. 왕복 350km 자가운전 당일치기. 힘들다.

아버지는 1952년 음력 11월 4일에 태어났다. 2021년 양력 12월 7일이 아버지 만 69세 생일이다. 환갑은 만 60세 생일에 하고 칠순은 우리나이로 70세인 해의 생일에 기념하는가. 어른들 생일은 늦춰서 하면 안되고 당겨셔 해야 된다는 속설이 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나이가 됐으니 죽기 전에 잔치라도 한 번 하라는 옛 사람들의 생각인듯하다.

아침에 아버지랑 통화했을 때, 아버지는 들뜬 목소리로 버스를 타고 개봉역에 가고 있다고 했다. ‘아버지 개봉역으로 가면 인천가는 지하철만 와요’ 가리봉역(가산디지털단지역)으로 가는 버스를 탔을거라고 짐작하면서도 그렇게 얘기했다. 아버지는 한참을 당황했고, 가리봉이란 단어를 떠올리지 못했다. 아버지는 내년 2월 15일에 치매약 타러 가야 하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만이 현재 아버지에게 확정된 이벤트인 것이다. 슬프기도 하고 그냥 그렇기도 한 일이다. 그 중간 중간 제사, 명절, 혈압약 타러갈 일, 의사 소견서 받으러 갈 일 등이 있을 것이다. 아무런 이벤트가 없는 삶에서 오늘처럼 엄마가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오라고 하면 아버지는 마냥 좋다. 나보고 작은 일 때문에 서울에 올 것 없다고 하지만 나를 만나는 일이 좋다. 현재 그런 상황이다.

나는 처음 간 엄마 단골 갈비집에서 이모들이랑 고기를 먹었다. 이모들 테이블에서 ‘무병장수’란 얘기가 나왔다. 내가 그 말은 ‘일확천금’과 같은 맥의 말이라 했더니 정말 오랜만에 만난 사촌동생이 그런것 같다고 했다. 아직은 좀 이르지만 나도 실제적인 죽음에 대해서 점점 깊게 생각하는 나이로 가고 있다. 죽음에 대해서 어려서부터 많은 생각을 했지만 내 몸이 실제로 느끼는 죽음과는 다르다. - 요절한 시인은 죽음을 다루지 않는다. - 윗줄에 사촌동생이 뭔 식구들이 외식만 하면 밥을 두 시간씩 먹는다며 프렌치스타일이란 얘기를 해서 한참 웃었다.

‘항상 생각은 하고 있는데 마음처럼 되지는 않아서’ - 내가 했던 멘트 그대로임 - 둘째(식당) 이모, 셋째(병점) 이모, 막내 이모한테 아버지 생일 기념으로 용돈 조금씩 드렸다. 이모들이 좋아해서 좋았다. 이모들을 생각하면 돈 많이 벌어야 하는데, 그것도 마음처럼 되지는 않아서….. 먼저 막내이모 만났을 때 오늘이랑 비슷한 얘기를 했는데, 이모가 ‘다 안다고’해서 짠했더랬다.

모든 인간은 관계속에 살아가지만 이모들 없었으면 우리 가족도 지금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을 거다. 엄마가 무너져 버렸을 수도 있고, 뭐 이런저런 배드 엔딩이 의심된다. 오늘처럼 여럿이 모인날 이모들이 나는 여러번 들어 다 알고 있는 옛날 얘기를 하고 그 얘기를 듣고 아내가 웃는 일이 좋다.

아버지, 연락은 매일 하지만
가끔은 좀 더 구체적인 얘기를 하자구요.
항상 하는 얘기지만 지금 잘 하고 있어요.
생일 축하하고 더 나빠지진 말자구요.

-> 최근 찍은 겨울 이미지 중에 아내가 좋다고 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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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행


강릉역 아침 8시, 얼마전 위생 문제가 뉴스에 나온 도넛 체인점에서 커피를 사 먹고 출발. 뚜껑은 빼고 주세요. 뉴스 덕분에 도넛이 덜 팔려서 알바들은 몸은 편하고 마음이 불편해졌을까?

청량리역 1번 출구 계단에서 사람들 지나칠 때마다 연신 고개를 숙이고 구걸하는 사람을 지나칠 때는 나도 옆 사람도 계단을 내려가는 걸음이 빨라지고 그 속도 그대로 계단 끝까지 내려옴.

누가 사 먹는지 모르는 아홉 개 이천 원짜리 호두과자는 지하철 역 가판대에 냄새도 없이 자리잡고 있고 오늘도 사 먹지 못했다. 호주머니에 잔돈이 있었어도 사 먹지 않았을 거란 생각.

끼치산역에서 내려 백구사 언덕 넘어 신월동으로 향하는 고갯길엔 기울어진 언덕에 가지런히 자리잡은 빌라라 부르는 집에서 수평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사람들 사람들.

아버지 아픈 이후로 종종 발발하는 엄마, 아버지, 나 이렇게 세 사람의 점심식사. 어린시절로 돌아간듯 편안하면서도 왠지 어색한 식사. 오늘은 고등어조림과 임연수 구이. 셋 중 어색한 건 나 뿐인가?

혈압약을 타러간 동네 병원의 익숙함. 병원에 들어가자 마자 커피랑 빵 냄새 맡으며 곧바로 2층으로 54×××× 아버지 주민번호를 대고 의사와 잠깐의 대화. 약 3개월치 드릴게요.

치매약을 타러간 대학병원의 익숙함. 환자와 보호자 출입증을 출력하고 - 내가 아버지의 보호자구나 - 예약 종이에 찍힌 바코드를 수납 기계에 갖다대고 긴 복도를 기역자로 돌아 그 끝에 신경과. 담당 의사의 나긋한 말투도 귀에 익는다. 6개월 전 첫 검사랑 큰 차이는 없네요. 약 4개월치 드릴게요.

처음 떼 본 아버지 진단서. 최종진단 병명은 '상세불명의 알츠하이머병에서의 치매'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계속 진단서를 들여다보며 머릿속엔 장기요양등급에 관한 생각. 어떤 드라마를 본다는데 채널도 제목도 주인공도 모르고 줄거리도 설명 못하는 우리 아버지. 계속 혼자 살아도 되는걸까?

아버지 집 나와 시장통에서 만난 엎드려 기는 걸인을 노점상 좌판 반대편으로 비켜 지나쳤다. 얼마나 많은 일들을 무심한듯 지나쳐야 생이 맨 끝으로, 끝으로 향하는 생의 끝으로 향할까.

본인 때문에 자꾸 서울에 오는 내게 미안해 하면서도 날 만나면 좋아하는 아버지, 병원 가기 며칠 전부터 전화기 넘어 목소리가 들떠있는 아버지, 내가 태어났을 때 본인이 몇 살이었는지 내게 묻는 아버지, 40대의 내가 아버지의 그때를 닮아버린 70살의 아버지.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술 취한 아저씨의 전화를 받았다. 일감이 있다는 소개로 전화핬다기에 어디 사시냐 물었더니 안산이라 했다. 아저씨는 술이 많이 취했지만 내게 미안하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먹고 사는 일은 술에 취해서도 짠내가 난다.


- > 아버지 만나고 돌아오는 기차에서는 강박적으로 뭔가를 적는다. 그래도 끝나는 건 없지만 그래야 뭔가는 끝나는 것 같기에 그렇다.

아버지가 나빠지지 않고 있는 건 정말 다행스랍고 좋은 일이다. 이제 문제는 돈이다. 아버지한테는는 엄마에게 생활비를 줘야 한다는 깊은 강박이 있다. 실업급야 수급이 끝나고 아버지 수입은 연금 등 월 75만 원. 기초연금 30만 원 아버지가 쓰고 국민연금 45만 원 엄마가 쓴다. 엄마는 수입 제로인 상태에서 보험료 등으로 월 100만원이 기본으로 나간다.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보면 이게 큰 액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수입 없이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오늘 아버지 검사비랑 약값이 30만원 나왔다. 네 달치 약값이니까 큰 액수는 아니다. 일단 체크카드만 쓰는 내 통장에 돈이 없어서 아버지 신용카드로 계산했다. 이제 아버지 수입이 없으니까 담달 카드결제일 전에 아버지 통장에 돈 채워 놔야지. 가까운 사람이 아프다면 빚을 내서라도 낫게하고 싶은게 인간이고 사랑이다(인지상정). 엄마에겐 어떤, 계획이 있을까?

가난한 사람들에게 아픔은 돈이고 돈은 걱정이다.

-> 이버지한테 주 5회, 아침마다 배달되기 시작한 도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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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회사 별로 안 바쁘다고 떠들고 다닌 죄로 한 달 넘게 매우 바쁘다. 출근해서 사진 몇 장 찍을 여유는 있으니 상관없다. 요즘 아버지 생각을 많이 한다. 먼저 서울 다녀오고 두 달간 얼굴을 못 봤다. 전화 통화는 매일 하지만 두 달이란 시간은 꽤 멀게 느껴진다. 작년 이맘때를 생각하면 상황이 나쁘진 않다.

아버지는 혼자서 약통에 7개의 알약을 채워 넣는다. 계절을 잊지는 않는다. 날짜 개념을 가지려고 한다. - 평일에는 어떤 알람이 울리는지 정확히 아침 7시 20분에 내게 전화를 하는데, 토요일 일요일은 나 쉬는 날이라고 먼저 전화하지 않아서 아침에 내가 먼저 전화한다. - 요 며칠 정해진 시간에 전화가 오지 않았다. 새벽에 일어나서 앞산에 운동을 간다기에 어제 퇴근길에 전화해서 저 일찍 일어나니까 아무 때나 전화해도 된다고 했더니 오늘은 7시 10분에 산에 가려고 한다면서 영상통화로 전화를 하셨다. - 영상통화 하려고 한 게 아닌데 그렇게 된 것이다.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 아버지에게 코로나 재난지원금에 대해서 두 번에 걸쳐서 한참을 설명했고 생년 끝자리 대상 요일이 아닌데도 은행에서 친절하게 ‘그거’ 해줬다고 한다.

걱정되는 점은 약을 잘 먹고 있다는데, 정말 잘 먹고 있는지, 잘 씻고 다니시는 건지, 먹는 것도 걱정하지 말라는데, 엄마가 두 달 전에 해 준 그거가 – 명칭은 앞으로도 떠올리지 못할 것이다. - 아직도 냉장고에 있다는데, 뭐 드시고 사시는지 등이다. 막상 만나보면 <초기치매 독거노인>의 삶을 잘 꾸려가고 있구나, 할 수도 있다.

요즘 피곤하다거나 바쁘다고 하면 아버지가 괜한 걱정을 하시니 그런 말은 안 하려고 한다. 내 목소리에 침울하거나 부정적인 기운이 들어있을 때도 금방 알아채기 때문에 가능하면 밝은 목소리로 통화하려고 한다. 부정(父情)이다. 엄마랑 가끔 통화하면 항상 아내 잘 있는지 물어본다. 장인어른도 아내랑 통화할 때 내 얘기를 묻는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부모가 돌보지 않으면 아이는 죽으니 거기에서 시작된 정의 고리는 끊기 어려운 것이다.

명절에 경기도 오산 엄마 집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23일에는 고용센터에 가야 해서 서울 아버지 집에서 아버지를 만난다.- 23일은 내 생일인데, 아버지가 내 생일을 기억할까? 내가 먼저 얘기할까? 71살 아저씨가 44살 먹은 큰아이 생일이 언제인지 기억하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다. - 다음달 19일에는 병원 두 군데 들러서 약 타고 인지검사를 한다. 추석 한 달 후에는 할머니 제사가 있고 음력 11월 초가 아버지 칠순이다. 아버지 자주 보겠구나, 생각하니 안심이 된다. 사랑인가?

아내에게 사랑이야? 묻거나 사랑이네. 확정하는 말을 많이 하는데, 사랑인지 생각하거나 묻는 순간 사랑이다. 어제는 마루에서 운동 시작할 때 반지 좀 받아달라고 아내에게 건넸다.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주는 모습에서 사랑이네,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짜증을 낸다고 사랑이 없는 건 아니다. 짜증과 화는 같은 말인가? 짜증은 사랑과 같은 말인가? 엄마는 아버지에게 화를 내는가 짜증을 내는가? 답을 아는 질문들로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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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약 타는 날이라 서울에 왔다. 강릉역 여덟 시 삼십 분 차, 집에서 역까지 걷는 길에 하늘이 쾌청했다. 지금 강릉으로 휴가 온 사람들 좋겠군. 코로나 시작되고 2년도 안됐는데 전염병과 여름휴가가 공존하는 세상이 됐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러하듯이.

12시에 아버지 집에 도착해서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었다. 엄마는 내가 아버지 보러 오는 날은 꼭 서울에 온다. 아버지를 보러 오는 건지 나를 보러 오는 건지 모르겠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러하듯이 둘 다 조금씩 있는거겠지. 엄마는 오산에서 아버지 먹을 걸 잔뜩 만들어왔다. 너무 끓여서 양파가 다 녹아버린 카레 한 솥, 양념한 고기, 고춧가루가 없어서 청양 고춧가루만 넣고 만들었다는 겉절이 등이다. 겉절이는 맵고 미원맛이 났다. 맛있었다. 막국수 집을 차려도 될거 같다고 했더니, 미원을 안 넣으면 안된다고 하며 웃는다. 나는 이미 오래전에 어려서 세상 제일 맛있다 생각했던 엄마의 김치맛이 미원맛이었단 걸 안 사람이 됐다. 엄마가 아버지에게 올 때 싸오는 음식은 책임감인가 죄책감인가 사랑인가 세상의 많은 일들 중에 하나인가.

이버지랑 병원을 두 군데 옮겨 다니며 많은 얘기를 했다. 역시 나랑 둘이 있을 때는 당신 어렸을 때 얘기를 많이 한다. 할아버지에 대해서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되는 건 흥미롭다. - 일 년에 꼭 두 번 바닷가로 물놀이를 갔고 음식 준비해야 하는 할머니는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라 그 나들이를 그리 좋아하진 않았다. - 치매병원에서 혈압약 타는 병원으로 가려는데 스콜이 쏟아졌다. 카카오 택시를 불렀는데 뒷자석에 탄 아버지가 본인 카드를 내게 건넸다. 이미 선결재된 거라고 설명할 방법이 없을 것 같아서 그냥 받았다. 집에 돌아와서 잠깐 설명해 봤는데, 내 생각대로 아버지는 전혀 이해를 못한다. 치매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냥 옛날 사람인 것이다. 그냥. 그냥. 아버지는 그냥 있는 사람이 됐다. 시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됐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지난달에 아버지랑 엄마가 강릉에 왔었다. 그때 일을 잘 기억하는지 약간은 집요하게 질문을 던졌는데 잘 기억하고 있었다. 오늘 오전에만 둘째 이모가 두 번 다녀갔다는데 어제 다녀갔다고 했고 동생과 엊그제 통화했다는데 열흘은 됐다 했다. 강릉 다녀온 건 큰 이벤트였기 때문에 잘 기억하는 건가? 아버지 머릿속을 알 수 없다. 스콜이 일상화된 세상에서 아버지 머릿속에 낀 단백질도 잠깐 스쳐가는 강한비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진부한 비유다. 진부함도 희망이라면. 택시가 길 건너편으로 오는 바람에 아버지랑 빗속을 뛰었던 일을 기억해 둔다.

집에서 아버지 약(매일 일곱 알)을 매일 약통에 담으면서 이모들과 얘길 나눴다. 병점 사는 셋째 이모를 오랜만에 봐서 많이 반가웠다. - 살을 빼는 걸 보면 의지가 대단하다. 아버지 술 끊은 걸 보니 유전인 것 같아요. 의지는 닮아도 되지만 밤새 술먹는 건 닮으면 안된다. 아버지 앞으로 일은 못할 것 같아요. 무슨 소리냐 하는데까지는 해봐야지 나한테 다 계획이 있다. 이모가 제일 자주 보시니까 이모 의견이 가장 정확한 거 같은데 어떤거 같아요. 예전에 비해서 많이 좋아졌다. 근데 똑같은 말을 반복해도 너무 말을 안듣는다. 움직임이 많이 둔해진 것 같진 않나요. 니 아버지가 원래도 기민한 사람은 아니잖니 - 이모들 용돈 좀 많이 드려야지. 추석 때는 꼭 추진해야겠다. 이건 미안함이나 책임감이 아니라 사랑과 고마움이다. 이모들 없었으면 지금의 나도 엄마도 아버지도 없었다. 돌아가신 큰이모 보고 싶다. 언젠가 엄마 집에 갔다가 막내이모 만나서 얘기할 때 자주 연락은 못하지만 항상 생각하고 있다고 했는데. 이모가 다 안다고 본인도 그렇다고 그러면 된다고 고맙다고 했다. 그 말이 참 고마웠다.

돌아가는 기차에서 쓸랬는데 청량리 오는 지하철에서 다 써버렸네.

추가. 위스키에 취미가 붙은 친구 부탁으로 글을 하나 써줬는데 3등 했다고 연락왔다. 아버지도 괜찮고 이래저래 기분 좋다.

아침 강릉역과 저녁 청량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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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꿈

제삿날. 기억에 없는 대궐 같은 시골집. 친척들이 다 모였다. 돌아가신 할머니도 보이고 친척들과 이런저런 대화. 엄마도 기분 좋아보이고. 나쁘지 않았다. 나는 창가에 편안하게 걸터 앉아 있고 갑자기 소 냄새가 났다. 아버지랑 jd 작은 아버지가 긴 복도를 지나 전 부친 기름 냄새가 남은 마루로 들어왔고 나는 농담처럼 아버지가 오시니까 소냄새가 나네, 라고 했다. 할머니까지 모든 사람들이 즐겁게 웃었다. 아버지랑 포옹을 했는데, 아버지 넥타이를 보고 문득 우리 아버지 치매지, 떠올랐다. 아버지를 안은채 아버지 귀에 대고 아버지 오늘이 몇월 몇일이죠, 묻는데. 울음이 터졌고 그 장면에서 깼다. 사랑인가?

2021년 6월 8일 아침 3시 30분.

-> 낮에는 예쁜걸 보고 밤에는 격정과 걱정이 묻은 꿈을 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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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때문은 아니고 뇌에 찌꺼기가 있음.
경증치매고 PET상 알츠하이머로 보임. 젊으면 진행이 빠른 경우가 많음.
기억력약은 한알반 두 달 먹고 최종적으로는 두 알고 늘릴것임 - 현재 쓸 수 있는 약은 이것뿐
맥박이 느리다 - 계속 느리다면 약을 바꿀수도 있음
집에서 혈압 재볼 것 - 혈압약 받는 병원에서 혈압약 줄일 수 있는지 확인>

오늘 아버지 약타러 병원가서 의사에게 들은 내용이다. 동생은 충격을 받았고 나는 그러려니 하고 엄마는 여전히 보험료가 걱정이고 아버지에게 치매란 말이 나쁜 것이 아니고 아버지는 치매라고 하니 아버지는 그러려니 한다. 아버지가 그러려니 하는 사람이라 좋다. 나는 아버지의 그러려니 하는 점을 닮았다. 술을 정말 잘 끊었고 약만 잘 드시면 된다는 얘기는 만날 때마다 열 두 번도 넘게 하고 있다.

아버지는 뭔가 깔끔하게 하지 못해서 그렇지 혼자서 씻고 혼자서 밥 먹고 혼자서 청소하고 혼자서 은행에도 간다. 오렌지를 사 드시기도 한다고 한다. 의사가 하루에 두 번 맥박을 재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혈압계를 사와서 혼자 해보시도록 했는데, 어설프게나마 혈압을 쟀다. 아침 저녁으로 체크라하니까 매일 저녁에 전화해서 혈압 체크했는지 확인하면 된다. 그 핑계로 하루에 두 번 전화하게 됐다. 잘된것도 잘못된것도 없다. 아버지 머릿속에 찌꺼기는 물건의 명칭을 관장하는 부분에 쌓인것인지 물건, 운동 갔다온 장소, 매일보는 드라마 제목 같은 건 전혀 떠올리지 못한다. 기억하지 못하는게 아니라 머릿속엔 있는데 말로 안나오는 건가? 그게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

이틀에 한 번은 아버지를 만나는 둘째 이모는 아버지 만나면 많이 답답하다고 하는데, 나는 자주 보지 않으니까 그리고 나는 그러려니 하는 사람이니까 아버지는 원래도 약간 어설펐으니까 아버지가 많이 답답하진 않다. 엄마는 아버지 만나러 서울 온 날은 잔소리를 많이 해서 저녁때가 되면 목이 쉰다고 한다. 사랑인가? 기대인가? 욕심인가? 암튼 엄마도 그런 마음을 조금은 놓아야 한다.

어제 고교동창들 만났다. 대충 27년 된 사이다. 5인방 중에 넷이 만났는데, 먼저 강릉에서 NH만났을 때도 말했던 거지만 특별히 생활고에 시달리지도 않고 감옥에 가거나 크게 다치거나 죽은 일도 없이 만날 수 있다는 게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다들 이 세상에 잘 안착했다고 해야 하나? 이 얘기를 했더니 KH가 맞다면서 그렇지만 그러니까 더욱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아버지는 구치소도 갔다오고 일리걸로 미국에도 갔다오고 빚에도 시달리고 생의 말년에는 치매에도 걸렸지만 결과적으로는 크게 잘못하거나 잘못된 일 없이 살았다는 생각이다. 예외도 있겠지만 살아있으면 온전하게 산 것이다. 언제부턴가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큰 포션을 차지하고 있다.

아버지 파이팅!!

-> 목이대병원근처 열영합발전소 굴뚝. 서울 살때 많이 좋아핬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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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검사 흉부엑스레이 심전도 뇌mri 뇌파검사 인지검사

아버지가 여섯 가지 검사를 했다. 아홉 시 반에 시작해서 세 시 반에 마쳤다. 아버지는 병원 일 있을 때마다 내가 서울로 오는 것에 대해서 미안한 마음이 있는 것 같다. 그럴 필요 없다. 엄마도 나한테 그런 마음이 있는데, 엄마도 그럴 필요 없다.

4월 14일이 의사 얘기 듣는 날이다. 아버지가 치매인 건 명확한 사실이지만 그때는 좀 더 명확해진다. 무언가를 전문가의 입을 통해서 정확하게 듣는 일은 안도감을 준다. 바뀌는 건 아버지가 제대로 된 치매약을 먹을 거라는 것뿐이다.

오전 검사 마치고 점심으로 무교동 낚지를 먹었다. 아버지랑 같이 먹은 가짓수가 점점 늘어난다. 기억할만한 식사는 아니었다.

mri검사까지 시간이 비어서 스타벅스에서 돌체라떼를 마셨다. 아버지 덕분에 오랜만에 스타벅스에 갔다. 아버지는 내일이면 오늘 나랑 커피 마신 일을 기억 못하겠지만 처음이자 마지막 스타벅스일 것이다. 아버지랑 기억할만한 곳에 가고 싶었다. 내 욕심이다.

돌체라떼 같이 마시면서 아버지 인생이 달콤했던 시절도 있었겠지 생각했다. 아버지는 날 만나면 어렸을 적 얘기를 많이 한다. 오늘은 시골에서 면서기 할 뻔했던 일이랑 내가 영등포구 도림동에서 태어난 얘기, 직장인 문래동에서 집인 도림동이 가까워서 가끔 집에 와서 점심을 먹기도 했다는 얘기를 했다. 아버지가 28살까지의 일이다. 아버지랑 매일 통화하고 자주 만나니까 아버지가 무슨 얘기를 하다가 그거그거 하면서 머뭇거릴 때, 무슨 말을 하려는지 거의 안다. 어차피 하시려는 얘기가 거기서 거기라 누구라도 알 수 있지만 아버지를 조금은 아는 것 같아서 좋다.

돌체 라떼 먹은 걸 기억해 둔다.

아버지, 다음엔 기억할만한 걸로 먹어요.

p.s.
이대목동병원 신경과 프론트에 간호사 중 한 명이 모두에게 친절했던 것을 기억해 둔다. 나라면 매일 퇴근후에 독주를 마셔야 스트레스가 풀릴 것 같은 일을 하는데, 치매환자들이 많고 노인들 뿐인 병동에서 너무 밝고 친절해서 임팩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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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일에 병원 때문에 아버지한테 다녀왔고 29일에 병원 때문에 다시 만난다. 최근 10년간 아버지 만난 횟수보다 지난 6개월간 만난 횟수가 더 많다. 연을 끊지 않은 부모가 아프다는 건 그런건가?

아침에 약드시라고 전화를 한다. 오늘 뭐하실 건지, 날씨가 어떤지, 몇 시에 주무셨고 몇 시에 일어나셨는지 같은 걸 묻는다. 통화는 길어봐야 2분이다. 요즘은 저녁약을 안 드시니까 여러번 통화 안 해도 되는데 정오쯤 또 전화를 하게 된다. 밥은 뭘 드셨는지 운동은 다녀오셨는지 지금 뭐하시는지 같은 걸 묻는다. 통화는 길어봐야 2분이다. 저녁에도 생각나면 전화를 하게 된다. 오늘 잘 보내셨는지, 저녁은 뭐해서 드셨는지, 지금 TV에서 뭐가 나오는지 같은 걸 묻는다. 통화는 길어봐야 2분이다. 내 질문에 답하는 것 말고 아버지가 많이 하는 얘기는 '운동을 많이 하는까 몸 상태가 좋다.' '난 괜찮은 거 같다.' '잘 지내' 같은 말이다. 오늘 아침 출근길 중간에 커피 마시다가 전화했는데, 아버지가 '지금 그.... 출근... 그래 출근하는 중이야?'라고 물었다. 아버지는 출근이란 단어가 생각나서 기분 좋은 거 같았다. 낮에 전화한다고 하고 전화 끊었다.

아버지한테는 그저 잘하고 있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다. 요즘은 10시에 자서 7시에 일어난다고 하는데, 아버지는 시간 개념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지난 7년간 24시간 경비일 하느라 많이 못 잔 것을 지금 푹 주무시는 걸로 아버지 기억력이 조금이라도 돌아오면 좋겠다. 당신 눈 앞에 지금 먹고 있는 반찬이 있는데 아들이 전화로 뭐 드시고 있냐고 물어보면 그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서 그거 먹고 있다고 대답하는 아버지 본인이 제일 답답할 수도 있다.​

​ 아버지랑 자주 통화하니까 내 목소리에 힘이 없으면 아버지가 바로 알고 뭔 일 있냐고 한다. 별일 없다고 하지만 뜨끔하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내 목소리를 듣고 내 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핏줄끼리 할 수 있는 찐 걱정인가? 피는 뜨겁고 진한 이미지인데, 줄이라는 말로 두 사람의 피를 잇는다고 생각하면 울컥 솓아오르거나 왈칵 무너지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혈연이란 말도 그렇고 그다지 아름다운 이미지는 아니다. 핏줄에 대해서 쓰니가 꼰대가 된 거 같다. ​

​ 뭔 일 있냐는 질문에 (회사에서 짜증나는 일로 상태가 안 좋지만) '별일 없고 다 잘되고 있다. 아버지도 잘하고 있다'고 하고 만다.

​ 요즘 다시 무슨 말을 할 때마다 말의 앞이나 끝에 욕이 붙는다. 아내 얘기로는 <C8 망할 놈의 새끼들>이 한 세트로 쓰인다고 한다. 그렇다는 건 말을 꺼내기 전 머릿속의 생각에도 욕이 붙는다는 얘기다.

​ 아버지 생각을 많이 한다. 'C8, 아버지 29일에 만나요' 아버지를 욕하는 건 아니다.

​ 내 욕 들어주는 아내한테 미안하다. 망할 놈의 새끼들을 욕하는 거지 아내를 욕하는 건 아니다. 그래도 미안하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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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금요일이랑 어제 서울 다녀왔다. 어제는 아내도 같이 다녀왔다. 그리고 아버지는 치매 판정을 받았다. 코로나로 한동안 멈췄던 업무를 다시 시작했기 때문인지 양천구치매안심센터는 환자와 보호자로 붐볐다. 작년 11월에 받은 검사와 보호자 작성 서류를 바탕으로 의사랑 면담을 했다. 나랑 의사 나랑 아버지 또 나랑 의사의 순서다. 목동이대병원 교수가 센터장인데 그 사람이랑 면담을 해서 안심했다. - 대단히 세속적인 이유다. 그런 삶을 살지 않았는데, 그런 상황에 처하는 것은 없으니 내가 어떤 부분에서는 매우 세속적이란 걸 인정하고 넘어가자. 세속은 세속적인 단어니까 보편적이라고 할까 -

면담 내용
- 아버지는 혼자 산지 오래됐다. 가족들은 작년 여름에서야 아버지가 안 좋다는 걸 눈치챘고 그러고 나서야 아버지에 대해서 신경쓰기 시작했다. 현재 아버지는 숫자, 문자 등 많은 것을 상실한 상태고 언제 길을 잃어버리거나 한밤 중에 집 밖을 배회할지 모른다. 나이가 어리고(우리나라 70세) 알츠하이머 초기 증상이 보이기 때문에 피검사, MRI 검사를 받고 그 결과에 따라 PET란 것도 받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성격이 너무 온순하다는 것은 현재로써는 아주 긍정적인 요소지만 급작스럽게 성격이 바뀔 수도 있다.
-> 40년 넘게 살면서 최근에서야 아버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있다는 걸 실토하는 면담이었다. 약간의 죄책감과 그것에 대한 부정이 계속 왔다갔다 한다. 동생은 본인이 결혼하고(2015년) 아버지가 완전히 혼자가 되면서 치매가 왔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핏줄이란 그런 것이다.

결론
- 우리 아버지는 치매다. 혼자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등급이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지만(안 나올 수도 있겠지) 요양급여를 신청해야 한다.
-> 예상은 했지만 의사가 치매라고 말했기 때문에 가슴속에 아주 작은 희망은 이제 없다.

엄마는 본인이 아버지와 함께 할 수 없음을 다시 한번 말했다. - 엄마, 알고 있으니까 자꾸 얘기하지 않아도 돼요. - 잘 안 되겠지만 아버지에게 책임감을 느끼지 않으려 노력하는 게 엄마의 할 일인 거 같다. 그리고 오늘 엄마는 몸살이 났다.

나는 전체 진행을 총괄하고 아버지의 거주지 이전이나 요양급여 신청, 실업급여 계속 수급 등 중요한 결정에서 엄마와 동생의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한다. 어제 엄마가 말하길 본인은 나처럼 차분할 수가 없다고 했는데, 내가 차분할 수 있는 건 - 회사 동료들도 아버지랑 나랑 통화하는 걸 들으면 어떻게 아버지한테 그렇게 차분하게 말을 잘할까,라고 함 - 아마 아버지에게 깊게 베인 것 같은 애정은 없기 때문이다. 병원 예약 날짜 통지가 올 때까지 아버지 약 드시라고 전화하면서 기다릴 뿐이다. 치매로 확정이 됐기 때문에 더 이상 기다리는 초조함은 없다.

마음이 답답하기도 하고 내가 모르던 정보를 들을 수 있을까 싶어서 아버지 치매인 얘기를 여기저기 하고 다닌다. 며칠 전에 정선에서 일할 때 알던 아저씨를 우연히 만나서 아버지 얘기를 했더니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다는 답을 들었다. 집에 틀어박힌 13살 아이를 걱정하는 친구도 그렇고 이혼 준비 중이라고 톡을 보낸 친구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돈 걱정하는 엄마도 그렇고 사돈이 신경 쓰이는 아버님도 그렇고 다들 걱정 속에 산다. 걱정이 격정까지 가지 않더라도 거기에 삶이 있다.

진단에서 병원 예약까지 양천구치매안심센터의 시스템은 효율적으로 보였고 담당 의사는 매우 친절했다. 는 것을 기록해 둔다. - 그 뒤에 LH공사 직원들이 시흥에 땅을 산 것 같은 꼼수가 숨어있지는 않을 것이다. 적고 보니 생각이 너무 나갔다. -​

최근 며칠 아버지랑 같이 지낸 엄마가 파악한 아버지 증상
- 핸드폰이든 지갑이든 그게 뭐든 한 번 쓰기만 하면 어디에 뒀는지 몰라서 자꾸 찾는다
- 돌아가신 외삼촌 잘 지내는지 물어봄
- 본인 나이 모름, 계산도 못함

아버지.............

AND

산길을 걷다가 길을 잘못 들었다. 잘 아는 길인데, 엄마랑 통화하면서 아버지 얘기하는 중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전화 끊고 나서도 아버지 생각하면서 무심히 걷다가 한참 후에야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의 반대편으로 온 것을 알았다. 내 갈 길을 아는데도 이런저런 이유로 다른 길 위에 서 있기도 하는 것이 인생이다.

명절 연휴에 아버지랑 같이 지낸 엄마에게 들은 아버지 부정적 요인
- 한계가 없이 먹는다
- 지갑이나 핸드폰을 찾는다며 자꾸 가방을 뒤진다
- 하루에 돈 50만 원을 찾았는데, 어디에 썼는지 모름

긍정요인
- 동생이 아버지 은행 공동 인증서 만듦(Thanks, Bro)
- 카톡으로 영상통화를 시도해봤는데, 전화를 잘 받으심

약을 못 챙겨 먹는다. 잘 안 씻는 것 같다 외에도 새로운 증상들이 추가된다. 가방을 뒤진다는 얘기를 듣고 자꾸 짐가방을 싸던 할머니 생각도 나면서 '우리 아버지 이제 되돌아올 수는 없겠구나' 했다.

아버지는 길을 모르는 사람이 됐다. 나아갈 수도 되돌아 갈수도 없다. 그래도 어딘가에 서 있으니 인생인가? 잘 모르겠다.

치매안심센터에서 받은 검사는 코로나로 결과도 알지 못한 채 멈춰있고 - 전화를 한 번 더 해봐야겠다. - 치매든 경도인지장애든 정확한 의사 소견이 있어야 지금 먹는 비타민 같은 약이 아니라 치매약을 먹을 텐데. 엄마는 다른 병원 알아보지 말고 자꾸 좀 더 미루자고 한다.(치매 보험금 때문인가) 요양원 하는 선배랑도 통화해보고 여기저기 이것저것 알아보고 있다. 아버지 본인은 답답하지 않아서 다행인데, 엄마랑 나는 답답함을 느낀다.

엄마랑 아버지는 같이 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 같이 산다면 엄마가 먼저 병에 걸릴 거 같다고 함 - 결국은 아버지에 대한 여러 가지 일들을 내가 결정해야 한다. 어떡할까.

하루에 두 번에서 세 번 아버지 목소리를 듣는다. 아버지 목소리는 매번 밝다. 그게 좋다.

AND

 아버지 만나고 돌아가는 길이다. 청량리에서 출발한 기차가 양평에 닿기 전에 글을 끝내야지, 생각한다.

 어젯밤 11시 반에 신월동에 도착해서 여전히 내 삶에서 가장 긴 세월의 지분을 갖고 있는 588 종점 근처 여관에서 잤다. 잠든 아버지 깨워서 그 옆에서 자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아버지 실업급여 1차 수급일이다. 사람들이 많이 너무 많이 몰려서 교육은 일찍 끝났다. 아버지 서류를 대신 작성하면서 둘러보니 고용센터 직원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몰라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이 두 명 있았다. 내가 없었으면 아버지도 그 그룹에 포함됐겠지. 실업급여 교육을 담당한 직원은 일과 사람에 찌들어 지쳐있고 실업급여 타러 온 사람들 사이로는 나라에서 주는 돈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과 의구심이 흘렀다. 2015년 겨울에 실업급여를 타 봤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고용센터에는 항상 어떤 절박함이 흐르고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피로감을 두르고 있게 된다. - 현재 정식 명칭은 <고용플러스센터> -

 고용센터를 나와서는 인터넷뱅킹을 신청했다. 은행을 나와서는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았다. 오늘 만난 의사는 차트를 쭉 훑어보더니 치매인지 아닌지 빨리 확정이 되어야 지금 먹는 혈액순환 비타민약(글리아타민)이 아니라 정식 치매약을 먹을 약을 먹을 수 있다고 알려줬다. 그렇게 되지 않길 바란다.

 병원을 나와서는 밥을 먹었다. 내가 밖에서 먹자고 했더니 아버지가 오리집에 가자고 했다. 오리집주인이 오랜만에 오셨네요, 했다. 조기축구 동료들이랑 자주 가던 집인가 보다. 로스가 뭔 뜻인지 모르지만 오리로스를 먹었다. 아버지는 세상 일의 많은 뜻을 잊거나 잃어버렸으니까 로스의 뜻이 중요하진 않다.

 식당을 나와서는 아버지 집에 갔다. 약을 챙겨드리고 매일 하는 얘기를 또 반복했다.
- 아버지, 약은 제가 전화했을 때만 드시고요.
- 티비를 보더라도 무슨 얘기를 하는지 집중해서 보시고요.
- 남들이 무슨 얘기를 하면 뭔 말을 하는지 잘 들으시고요.
- 아버지는 지금 잘하고 있어요.

 아버지는 원래도 욕망이 드러나지 않던 사람인데 지금은 욕망이 아예 없어진 거 같다. 단 하나 의무감으로 생각하는 건 엄마한테 매달 돈을 보내고 싶다는 것인데, 실업급여 다 받고 나면 그것도 끝이다.

 남은 생을 멍하게 보내지 않기 위해선 뭔가 집중할만한 재미있는 걸 찾아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아버지랑 티비를 보면서 낱말 맞추기 게임 같은 걸 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봤는데, 그렇게 하려면 아버지가 강릉 와서 살아야 하고 막상 강릉 와서 살면 지금보다 아버지에 대한 신경을 덜 쓸지도 모른다. 그러니 엄마 말대로 아직은 아버지가 서울에 있는 게 나을지 모른다.

 친구 가게에 와서 아버지 공인인증서를 만들다가 실패했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랑 통화하면서 목소리가 커졌다. 아버지한테 화가 난 건 아니다. 목소리를 높이고 나면 수화기 너머 아버지가 괜히 주눅 드는 거 같아서 기분도 안 좋고 반성하게 된다. 공인인증서 만들기는 월요일에 다시 시도하면 된다.

 아버지랑 그냥 같이 있으면 괜찮은데, 뭔가를 하려고 시도하면 진이 빠진다. 진이 빠지고 기분이 안 좋은 상태로 적는다. 

 청량리에서 강릉으로 가는 ktx산천 859열차는 아직 양평역에 닿지 않았다. 굿.

 오늘자 아버지 부정 요인
 - 밥 먹기 전에 엄마랑 통화했는데, 밥 먹던 중에 통화한 거 잊어버리고 또 전화하려고 함

 긍정요인
 - 계절을 헷갈리면 끝이라고 하니, 알았다고 함(그리고 지금이 겨울이라 대답함)

AND

어제가 할아버지 제사였다. 최소인원이 모였다. 삼촌 둘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엄마, 아버지, 나 셋이 엄마집에서 잤다.

남은 제사음식으로 셋이 앉아서 아침을 먹었다.
- 탕국이 시원하네
- 아들, 시금치 더 먹어라
- 당신, 조기 한 마리 더 먹어

밥을 다 먹고 이렇게 밥 먹을 일이 별로 없다는 얘기를 했다. 나랑 엄마가 제 수명을 살아도 앞으로 얼굴 보는 건 40번 정도겠다. 아버지까지 셋이 앉아서 밥을 먹는 건 이번이 마지막 인지도 모른다.

아침 먹고 아버지랑 서울에 왔다. 고용센터(고용보험 관련), 신한은행(퇴직금 관련), 신한카드(소득공제 관련) 등의 일처리를 했다. 아버지 집에 와서는 요일 약통을 다시 채워드렸다. 아버지 워크넷이랑 고용보험 회원 가입하고 구직등록까지 마치니 오후 여섯 시였다.

오늘 확인한 우리 아버지 부정적인 모습
- 자동차 안전벨트를 잘 못 채움
- 지하철 타고 내릴 때 교통카드가 핸드폰 지갑에 있는지 돈지갑에 있는지 헷갈림
- 고용센터에서 교육 듣는데 집중을 못해서 체크만 하면 되는 걸 못함(나는 밖에서 지켜보고 고용센타 직원이 해줌)

긍정적인 부분
- 낙관적이다(항상)
- 본인 인지능력이 정상이 아닌 걸 알고 있다

앞으로 구직활동할 일이 걱정이다

아버지랑 둘이 있을 때 아버지가 한 얘기
- 내가 미국 가기 전에 돈 아낄려고 담배 끊었잖아
- 내가 미국에 한 이 년 있었나?(일리걸로 가있었음) 올림픽 때 왔잖아(아버지 월드컵이요). 미국에 있을 때 엄마한테 한 번인가 돈도 보냈어.
- 너희도(나랑 동생) 그렇지만 엄마가 고생을 많이 했어. 그래서 뭐라고 해도 가만히 있잖아
- 엄마가 고생을 많이 했어. 그래도 지금 정도면 성공한 거지(집이 있는 상황을 말하는 듯)

아버지는 빚에 쫓길 때 많이 힘들었고 그 문제가 해결됐을 때 많이 기뻤다. 그리고 아버지는 엄마에게 미안함이 많다.

아버지 일처리를 다 마치고 엄마랑 카톡이 오갔다
- 아들 수고했어. 조심해서 내려가.
- 수고는 뭘 알았어요. 이모들이랑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오늘 셋이 같이 아침 먹은 게 자꾸 기억에 남네
- 그래, 엄마도 너무 좋았어

'엄마도' '너무' '좋았어'
이 대화에 울컥했다.

AND

 어제 아내가 장인어른이랑 통화하다가 통화 말미에 우리 아버지의 치매 증상에 대해서 알렸다. 언젠가는 말씀드려야지, 통화가 한 시간 넘게 이어지는 바람에 예기치 않게 얘기가 진행됐다. - 아버님이 먼저 시댁 어른들 괜찮은지 물어봤을 것이다. - 아버님이 나 바꾸라고 해서 잠깐 통화했다. 며칠전에 나랑 통화했을 때, 내가 아무말도 안 한 것에 조금 섭섭함을 느낀 말투였다. - 아내가 본인 부모는 본인이 알아서 하는거지, 라고 말한 것에도 약간 충격 받으셨을지도 모른다. - 상황이 심각하지 않으니 너무 걱정하시지 말라고 태연하게 얘기했다.

 통상적으로는 시집간 본인 딸이 힘들어질 수 있으니 걱정하는 것이 정상이고, 아버님은 통상적인 사람이다. 어머님이 암투병도 하셨고, 평소에도 건강에 관심이 많으시니 걱정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 진작에 알려드리지 않은 것이 죄송했다. 헌데,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사돈이 아프든 말든 아무소식 없으니 그저 잘 지내겠구나 생각하면서 사는 게 아버님, 어머님한테는 더 좋을 것이다. 암튼 그렇게 아버지 소식이 사돈댁에 알려졌다. 어서방 자네 어깨가 무겁게구만 열심히 살어, 란 말을 들으니 진짜 어깨가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열심히 살어'는 아버님이 자주하는 말인데, 당신 성에 차지 않을 뿐인지 나도 아내도 열심히 살고있다. 

 요즘 내 관심분야는 아버지다. 아버지는 지난달 30일로 일을 그만뒀다. 지금 상태라면 먼저했던 경비일이 마지막 직장이다. 앞으로 아버지는 마지막인 것만 많아지는 삶 속에 있을 것이다. 월급은 잘 들어왔고, 퇴직금은 아직인데, 조금 알아보니까 퇴직금은 따로 통장이 있어야 하는 것 같아서 먼저 통화했던 사무실 직원과 다시 한 번 통화해야 할 거 같다. 15일에는 나랑 같이 고용센터에 갈 계획이다. 실업급여를 신청하는 건 좋은데, 현재 아버지 상태로 구직활동이 가능할까? - 구직활동을 증빙해야 실업급여가 나옴 - 뭐 어떻게든 되겠지. 양천구치매안심센터 간호사랑 한참을 통화했다. 의사 선생님이 진단검사 결과를 알려줘야 하는데, 코로나로 치매안신센터의 많은 활동이 멈춰있는 상황이라 언제 연락할지 모르겠고, 본인들도 환자 가족들의 답답한 상황을 알고 있으나 어쩔수가 없다는 내용이다. - 지금이라도 대학병원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하나? 엄마랑 상의 좀 해봐야겠군 - 통화하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새겨진다. 아버님이 말한 '어깨가 무겁다'는 이런 걸 내가 챙기는 상황을 말하는 건가? 그런거라면 아직 어깨가 무겁지는 않다. ​

 우리 아버지 현재 긍정 요인
 - 밥을 혼자서 잘 끓여 드심
 - 규칙적으로 매일밤에 잠을 자게 됨
 - 엊그제 혼자 은행에 가서 ATM으로 마지막 월급 들어왔는지 확인함
 - 라디오를 듣기 시작했다고 함
- 아침에는 약 네 알, 저녁에는 약 한 알이란 걸 알 때가 있음
- 계절을 헷갈리진 않음(내 생각엔 이게 제일 중요)

 우리 아버지 현재 부정 요인
- 외롭다, 여전히, 아마 앞으로도 

​ 아버지 힘내세요. 어깨가 무거워져도 열심히 도울게요.

AND


2020년 12월 31일에 아버지 병원 때문에 엄마가 아버지한테 다녀갔다. 내가 갔어도 되지만 12월의 마지막 날 아버지랑 같이 있고 싶지 않았고 12월 초에 내가 다녀왔기 때문에 마지막 날은 엄마가 아버지를 만나기로 했다.

엄마가 속상하다고 전화했는데, 엄마가 얼마전에 새로 사다준 겨울 점퍼의 단추를 아버지가 다 뜯어놨고 옷도 많이 찢어져 있다고 했다. 아버지 본인이 잘못한 일에 대해서 뭐라고 하면 입을 꾹 다물고 있다고 했다. 듣기만 해도 속상한데, 옆에서 본 엄마는 오죽했을까? 입을 꾹 다물고 있다는 얘기에 할머니가 떠올랐다. 할머니 치매 초창기에 당신 듣기 싫은 얘기를 하면 입을 꾹 다물었댔다. 나한테 잔소리하지 말라는 표정으로 눈만 껌뻑거리면서 유난히 다부진 모양으로 입을 굳게 닫고 있던 할머니 얼굴이 생각난다. 아버지는 할머니와 피가 섞인 사이는 아니니까 입을 다물고 있는 일이 유전은 아니겠고 치매 환자의 일반적인 모습 중에 하나겠지. ​

'치매' '단추' 키워드로 검색을 해봤다. 정답은 나오지 않았다. 검색 결과로 추측하건대, 아버지는 단추를 푸는 일에 어려움을 겪다가 급기야 화가 나서 단추를 다 뜯어버렸다는 결론에 닿았다.

- 엄마, 아버지한테 화내지 마시고 다 잘하고 있다고 하세요.
- 화난 건 아닌데 자꾸 목소리가 커지니 어떡하냐?​

병원에 다녀온 결과 아버지 약 목록에 고지혈증 약이 추가됐다. 올해 칠십이다. 혈압, 아스피린, 고지혈증 약은 평균적인 진행이다. 약 드시라고 그때그때 알려드려야 하는 건 보통의 진행은 아니다. 대답을 못할걸 알면서도 오늘 몇 시에 일어났는지 밥때셨는지 자꾸 묻게 된다.

- 어.... 몇시?..... 어두울 때 일어났어.
- 어.... 그 뭐냐.............
- 국수! 그게 먹고 싶어서 어........ 그 뭐냐.....
- 고추장이랑 양념해서..........
- 아버지, 비빔국수요.
- 어, 그래. ​

기록을 보니 아버지가 치매 증상을 보인 이후에는 한 달에 한 번은 아버지를 만나고 있다. 아버지가 아프지 않았다면 명절이랑 제사 때, 1년에 세 번 정도 만났을 테니까 아버지가 80살까지 산다고 해도 횟수로는 서른 번 정도 얼굴을 볼 예정이었다. 엄마 얼굴 보는 일도 그 정도였을텐데, 아버지 때문에 엄마 얼굴을 좀 더 자주 보게 돼서 다행인 건가?

이번 주에,

아버지는 기초연금 문제로 동사무소에 가야 되고 실업급여 문제로 고용센터에 가야 된다. 고용센터는 다음주나 다다음주에 나랑 같이 가는 게 나을 거 같다.

14일이 할아버지 제사다. 둘째 삼촌이 식구들을 모으고 싶어 한다는 얘기를 엄마에게 전해듣고 헛웃음이 나왔다. 코로나보다 무서운 게 조상인가? 아무튼 그때 맞춰서 아버지 관련 일처리를 몇 가지 하기로 한다. - 약, 고용보험, 퇴직금 - 엄마는 할아버지 제사 전후로 아버지랑 열흘 정도 오산에서 같이 지낼까 고민 중이라고 한다. 같이 있으면 자꾸 목소리가 커진다고 하면서도 잠깐 같이 지낼까 고민하는 마음이 사랑일까?

모르겠다.

AND

해가 넘어간다. 2000년 이후로 해가 바뀔때마다 그 숫자를 받아들임에 현실감이 떨어진다. 2020년이 됐을때, 그 느낌이 특별히 더 강했는데, 2021은 좀 더 현실감이 없게 느껴진다. 어렸을 때 좋아했던 미래 소설과 SF 영화들보다 미래를 살고 있다.

​24일에 아버지가 해고통지를 받았다. 10시 쯤 약 드시라고 전화했는데, 황급한 목소리로 좀 있다가 전화할게,라고 해서 해고통지 중인 거라고 짐작했다. 아버지랑 관련된 부분은 계획 또는 예상에서 어긋남 없이 진행중이다. 어긋남이 좀 있어야 하는데, 걱정이다.

​같은날 오전에 자동차 검사를 받았고 오후에 헌혈 하고 돌아오다가 잠깐 정신줄 놓은 사이에 가벼운 사고가 났다. 90프로 이상 내 책임이다.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준비하는 좋은 날에 안좋은 일이 겹쳤다. 가벼운 접촉이라 다행이다. 운전하던 두 사람은 서로 괜찮은지만 묻고 각자의 보험회사에서 온 두 사람이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한다. 횟집에서 인간이 양식한 활어회를 먹는것처럼 세계가 나를 양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액땜이라 했다. 뭔 액땜이냐고 했더니 2021년 액땜이라 한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주변에서 다들 좋게 얘기해주니까 좋게 생각하기로 한다. 앞 차에 타고 있던 두 사람이 대인처리를 했다고 하는데, 자동차 번호판이 약간 구겨지는 가벼운 접촉사고였으니 실제로는 아프지 않길 바란다. - 교통사고 냈(났)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나도 죄짓고 살기는 틀린 사람이라 다행인건가 - 

​연휴 내내 누웠다가 엎드렸다를 반복하며 게임과 유튜브를 왔다갔다 했다. 나이 마흔 셋에 이럴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게 다행스런 일이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불행한 일이기도 하다. 만들던 노래는 멈춰 있고, 매일 강박적으로 붙잡고 있던 기타연습도 손에서 떠났다. 책이라도 읽어볼까 하면, 그게 다 뭔 의민가 싶다. 찝찝한 기분이 가시질 않는다.

​오늘이 아버지 마지막 출근날이다. 현재 아버지 상태라면 아버지가 월급을 받는 직장에는 마지막으로 출근하는 날이다. 지금 건물에서 경비일을 7년 반동안 했다. 24시간 근무서고(중간에 두 시간 정도 잠) 다음날 쉬고 또 24시간 근무서는 일의 반복. 아버지는 지겹지 않았을까? 언젠가 '너무 외로운 고슴도치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가시를 다 뽑고 너구리랑 친구가 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겨움과 외로움은 같은 말이다. 아버지는 외로웠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버지가 소속된 경비 용역회사 사무실 직원과 통화했다. 아버지가 아픈건 술로 문제가 있었던 6월에 이미 알았고, 아프지 않았으면 계속 가고 싶었지만 계약기간이 끝나서 재계약을 안하는걸로 했다고 한다. 퇴직금도 매년 정산했던 것이 아니라서 7년치를 한꺼번에 준다고 하고 만 65세 이전 취업했기 때문에 실업급여 수급 대상자라고 한다. 잠깐 통화했을 뿐인데, 차분하고 조심스러운 말투에서 우리 아버지 참 괜찮은 회사에 다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정상이 아니란 걸 알았을 때, 바로 퇴사 조치할 수도 있었을텐데 6개월을 봐줬다. 고마운 일이다. 내가 아버지 아들인 것도 아버지한테 다행인 일이길 바란다.  

​아버지는 돈을 모아두는 인생을 살지 않았고 엄마는 당장 고정 수입이 없어져 매달 나가는 보험료가 큰 걱정이다. 엄마는 꽤 심란하겠지만 아버지는 회사 그만두게 된 것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듯 보인다. - 물론 속으론 안 그럴수도 있다. - 희망적으로 생각하면, 일이야 다시 구하게 될 수도 있고 당장은 매일매일 규칙적으로 주무실 수 있게 되서 좋다고 생각한다. 

​올해 나는 운이 좋아서 전세계 인구로 따지면 100명 중에 한 명꼴로 걸리는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다. 살아 있는다는 건 복권보다 확률이 높은 행운일 뿐이다. 그저 운이 좋아서 올해도 살아 남았다. 살았으니 살아야 한다. 무력해도 살아야 한다. 어쨋든 살아야 한다. 

​몇 가지 결심들로 올해를 넘어 내년으로 가본다. 일단 담배는 사 놓은 한 갑만 마저 피우기로 하자. 체중감량해서 약간은 건강해지도록 해야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력해지지 말아야지.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엔 내가 어제 술자리에서 누군가에게 무례하게 굴지는 않았는지 생각하게 된다. 실제로 그런 경우는 거의 없지만 - 가끔은 있음 - 자꾸만 이런 의심이 드는 것은 평소에 내가 무례하거나 무례한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심해야지. 운이 좋아서 살고 있으니 겸손하게 살자. 이것도 새해 결심에 추가한다.

AND

어제 아버지한테 다녀왔다.

아버지가 아픈 이후로 아버지 만나고 돌아오면 늘 기분이 안 좋다.

아버지랑 같이 있을 때 기분이 안 좋은 건 아니다.

어제는 혈압약 복용과 관련해서 간단한 피검사를 받았다. 아버지 담당의사를 처음 만났다. 전화상으로는 아버지가 깜빡거리는 건에 대해서 잠깐 얘기했었고 아스피린도 처방해 달라고 했었댔다. 의사는 치매 진단검사 결과를 봐야 알겠지만 혼자서 생활이 가능하니 나쁜 상태는 아니고 술을 끊었기 때문에 점차 좋아질수도 있으며 '글리아타민'이란 뇌 영양제는 본인도 처방해 줄 수 있으니 약 떨어졌을 때마다 신경과에 방문할 필요는 없다고 시원시원하게 얘기했다. 의사가 아버지에게 달력을 가리키며 오늘이 몇일이냐고 물었을 때, 아버지는 잠깐 머뭇거렸지만 21일이라고 정확하게 답했다. 때려 맞춘걸 수도 있지만 - 병원 가기전에 오늘이 21일이라고 세 번 정도 얘기했다. - 대답 잘하셔서 좋다고 생각했다. 

병원에 다녀와서 전날 저녁에 사온 소불고기를 데워서 아침밥을 먹었다. 18일이 아버지 생일이었다. 아버지 생일은 엄마가 꼭 챙겼고 보통 이모들이랑 모여서 밥을 먹었다. 올해는 코로나도 있고 부러진 엄마 팔이 붙지 않은 관계로 패스하기로 했다. 내년이 칠순이다. 내년에는 아버지 상태랑 상관없이 친척들 여럿이 모여서 밥을 먹겠지. 어쩌면 그게 아버지 생전에 마지막으로 여럿이 모인 즐거운 날일지도 모른다. 그날은 술을 한 잔 드셔도 괜찮지 않을까?

밥 먹은 그릇 씻고, 저녁 때 드실 곰탕 국물 끓여 놓고, 요일 약통에 약 세 알씩 잘 담아서 아버지 가방에 넣고 주무시는 거 보고 아버지 집을 나왔다.

아버지랑 병원에 있을때부터 내 담당이 아닌 일로 업무 전화가 자꾸 와서 짜증이 났다. 사무실 동료는 우리 아버지도 아닌데 내가 지것까지 챙겨줘야 되나, 생각하니 화가 더 올랐다.

청량리에서 강릉 오는 한 시간 반 동안 슬픈 노래를 들으면서 화를 삭였다. 집에 와서 보니 휴대전화 충전기가 안 보였다. 서울에 두고 온 줄 알고 바로 마트에 가서 새걸 샀다. 알고보니 서울갈 때 가져갔던 옷 아래 깔려 있았다. 내 부주의함에 또 화가 났다. 

요즘은 약 먹을 때가되면 아버지가 먼저 전화하기도 한다. 긍정적인 변화다. 저녁에 엎어져서 게임하고 있는데, 아버지한테 전화가 왔다. 자신있는 목소리로 약 먹었다고 해서 확인해보니 아침에 드셔야 되는 약을 드셨다. 내가 먼저 전화해서 오늘 저녁은 약 드시지 마세요,라고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게 화가 났다.

- 아버지 저녁은 뭐 드셨어요?
- ..........
- 아버지 저녁은 뭐 드셨어요?
- 뭘 먹긴 뭘 먹어 그냥 먹었어.

곰탕 국물이 있길래 그거랑 먹었다고 하시면 되는데, 그 말씀을 못하시니 화가 나서 약간 언성이 높아졌다. 아내가 옆에서 듣고 있다가 나를 진정시켰다. 방금 뭘 먹었는지는 아는데, 그 단어가 기억 안나는 아버지가 나보다 더 답답하겠지. 그래도 자꾸 뭘 드셨는지 묻게 된다. 아버지는 출근한 날 점심에는 '제육볶음'을 자주 드시는 거 같고 저녁은 거의 '김밥'을 드시는데, 내가 먼저 얘기하지 않으면 그 말을 못 떠올린다. 잘 모르실걸 알면서도 계절도 날짜도 요일도 자꾸 묻게 된다. 

아버지 얼굴 보면서 얘기해보면 괜찮은거 같다가도 약은 언제 어떤 걸 먹어야 하는지, 방금 뭘 드셨는지, 오늘인 무슨 요일인지 모르는 아버지 목소리를 들으면 안 괜찮다는 걸 알게된다. 우리 아버지 아프구나. 아버지한테 언성 높인게 미안해서 베란다에서 담배 피우러 나가서 바로 전화했다.

- 아버지, 약도 잘 드시고, 술도 잘 끊었고 지금 잘하고 있어요.
- 어, 그래. 칭찬을 받으니 좋다. 
- 예, 아버지. 푹 주무시고, 내일 출근 잘 하시고 아침 약 드실 때 또 전화할게요. 그리고 아버지, 약은 제가 약 드시라고 전화했을때만 드세요.
- 어, 그래. 알았어. 잘 지내.

​'잘 지내'란 말이 가슴을 때리고 또 하루가 갔다. '잘 지내'란 말은 평소에 자주 연락 안했던 나에게 내려진 벌이다. 자꾸 화가 나는 나에게 내려진 벌이다.

아버지가 아픈걸 알고 아버지 얘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기록을 남기는 자식이 있어서 다행인가, 생각한 적 있는데. 다행이란 말조차도 그저 내 만족이다. 기록이 내게 위로가 된다.

어제는 화가 났다. 그러지 말아야지. 아버지한텐 화내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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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컴퓨터로 쓰는 거 참 오랜만이다. - 찾아보니 일 년 만이다. -

 하루에 두 번 이상 아버지랑 통화하고 있다. 아침 저녁 약은 꼭 먹어야 하기 때문에 두 번이 기본이다. 중간중간 별일 없는지 전화하기도 한다. 일단 전화를 받아야 안심이 되는데, 전화를 안 받는 일은 거의 없다. 다행이다. 

 건강은 누구도 자신 못한다고 그렇게나 건강하던 아버지가 4번이랑 5번 디스크 사이가 터진 것도 모르고 그저 다리가 많이 저린 줄 아는 사람이 됐다. 허리수술은 잘 됐다. 다행이다.

 술을 안드신지는 세 달 이상 됐다. 스스로 어떤 결심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잘 하고 있다. 

 양천구치매안심센터에서 선별검사랑 진단검사를 했다. 선별 검사 결과지를 보고 아버지 머릿속에 어떤 부분들이 사라진 걸 알았다. 진단검사 결과는 의사랑 얘기해야 한다고 하는데, 코로나로 일이 밀려서 올해 안에는 의사가 판단하는 아버지 병세가 어떤지 알 수 없다. 최초에 선별검사를 마치고 급한 마음에 동네 병원 신경과에서 뇌 MRI를 찍었는데, 치매 전문이 아닌 뇌신경 전문 의사라 '치매'입니다, 라고 하지 않았다. 애초에 대학병원은 예약이 많이 밀려있긴 했지만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될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대형 종합병원으로 갈 걸 그랬나, 싶기도 하다. 다만 아버지의 현재 상태는 '치매'로 확정되건 안되건 '좋지 않음'이다. 어찌보면 괜찮고 어찌보면 괜찮지 않다. 나는 그만하길 다행이다, 생각하는 쪽이라 다행이다.

 긍정적인 부분 - 지하철 타고 여의도로 출퇴근, 혼자 밥 끓여 드심, 전화를 잘 받음, 갑자기 성격이 변하지 않았음, 계절을 헷갈리지는 않음(어제 처음 물었을 때는 가을이라고 했다.), 카드나 현금으로 상거래 가능, 집 비밀번호를 잊어버리진 않음, 사람 이름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음

 부정적인 부분 - 사람이름을 제외한 많은 명사가 머릿속에서 사라짐(진단 검사 받을 때, 밖에서 들어보니까 첫 음절을 불러주면 단어를 곧잘 기억해 냄), 날짜랑 요일 개념 상실(직장 다니는데 지장 없음), 1분 전에 나눴던 얘기 잊어버림(자꾸 말해주면 됨), 정상적인 은행업무 불가(서울 가서 은행계좌 한 번 더 정리해야 함), 약을 전혀 못 챙겨 먹음(전화해서 구체적으로 뭘 드시라 알려주면 됨), 샤워를 자주 안 하는 것 같음(전화해서 지금 씻으시라 하면 됨), 화장실에 들렀다가 욕실 슬리퍼 신고 나와서 집안을 배회함

 적으면서 보니까 부정적인 부분도 그렇게 부정적이지 않다.

 방금 저녁 약 드시라고 전화하려고 했는데, 먼저 전화가 왔다. 아버지한테 먼저 전화가 오는 건 긍정 요인이다. - 무슨일 있거나 뭐가 잘 안되면 무조건 나한테 전화하라고 반복해서 말하고 있음 - 요일 약통에서 아무 색깔이나 뽑아서 네 칸이 맞는지 확인하고 세 알짜리랑 한 알짜리 중에 한 알짜리 드시면 된다고 했다. 알았단 소리를 듣고도 마음이 안 놓여서 바로 드셔야 하니까 손에 알약 한 알을 올려 놓으라고 했더니 살짝 화난 말투로 "걱정 마라, 소리 안들려?" 하면서 플라스틱 약통에서 알약 흔들리는 소리를 들려줘서 안심했다.

 참으로 안심했다. 

 

 아버지는,

 동생이 결혼한 2015년부터 완전히 혼자 살기 시작했다. 경비 업무 특성상 매일밤 규칙적으로 잠을 자지 않았다. 아침에 퇴근해서 저녁까지 술을 마시고 다음날 출근한 일이 많았다. 혼자서라도 자꾸 술을 마셨다. 같이 술 먹던 사람들 사이에서 병원에 가봐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직장에서 짤릴뻔했다. - 근무일지를 항상 다른 사람이 썼다고 하는데, 근본 이유는 술인 거 같다. - 그러다가 식구들이 아버지 증상을 알게 됐다. 평소에도 남의 말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이 아니었고, 어딘가 덜렁대는 성향이 있었기 때문에 바로 알아채지 못하고 조금은 늦게 알게됐다.

 

 아버지는,

 많이 외로웠다.

 

 나는, 

 무심했다. 지난 10년 동안 아버지랑은 일년에 한 두 번 통화하고 명절이랑 제사 때 얼굴보는 게 다였는데, 요즘은 하루에 몇 번씩 통화를 한다. 병원 때문이긴 하지만 서울에 가서 얼굴도 자주 보는 편이다. 

 

 아버지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자기 삶을 살았을 뿐이다. 무관심이 후회되지는 않는다. 다만 아버지, 동생, 나 이렇게 셋이 소지섭이랑 임수정이 나왔던 '미안하다 사랑한다' 드라마 보던 생각이 난다. 아버지랑 동생은 드라마에서 감정을 고조시키는 장면이 나올때마다 '너무 감동적이야' 같은 말을 했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 우리 아버지는 스포츠 신문을 통해서 읽은 연예계 소식에 밝았고 젊은애들이나 좋아할 드라마를 참 좋아했다. 아버지는 그때도 많이 외로웠지만 그때까지는 아버지의 시대였다.

 

 "아버지,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분이랑 얘기할 때, 이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잘 들으시고, TV 뉴스를 보더라도 무슨 얘기를 하는지 잘 들으면서 보시고, 뭐가 잘 안되면 그게 뭐든 어떻게 하라고요?" " 어일우한테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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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꿈을 꾸었다.


신월동에서 목동 오목교쪽으로 차를 몰고 가고 있었다. 뭘 하러 가는지는 모르겠다. 오목교 사거리에 다 도착했을 때, 왼쪽 뒷타이어가 펑크나는 소리가 났고 자동차의 왼쪽 뒤가 푹 꺼졌다. 가까운 주차장을 찾아서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려서 보험에 긴급 출동 전화를 하려고 했다. 분명 야외 주차장에 차를 세웠는데, 내린곳은 아버지 방이었다. 아버지는 없고 내 자동차는 작은 방을 가득 채우고 서 있었다. 깊은 한숨을 쉬고 잠에서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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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이다. 하루만에 겨울이 찾아와도 이상하지 않은 때다. 가을이 그랬던것처럼 오늘 하루만에 겨울이 왔다. 가을과 겨울사이, 계절은 네 개지만 시간은 항상 두 개의 계절 사이에만 있다.

오늘도 아버지 생각을 많이 했다. 하지만 오늘은 아버지 목소리를 못 들었다. 아버지 쉬는 날마다 한 두번씩 통화하면서 확인해 본 결과 일단 술은 끊으신 거 같다. - 이것도 알 수 없지만 - 그렇다고 아버지의 인지능력이 좋아지진 않는다. 몇년 몇월 몇일 무슨 요일을 잘 모른다. 그나마 엊그제 계절을 물어봤을 때, 한 번에 가을이라 하셔서 약간 안심했다. 약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다. - 동생에게 요일별 약통을 구입하라 했다. - 엄마는 오늘 오랜만에 서울에 가서 자동으로 꺼지는 가스렌지와 자동 잠금 밸브를 설치했고 고장난 전기장판을 새 것으로 바꿨다. - 아버지가 전기장판을 안 틀어봐서 고장난 걸 몰랐던 거면 좋겠지만 고장난 걸 잊었을 가능성이 높다.

아버지 상황을 처음 알았을때도 그렇고 지금까지도 많이 당황스럽지는 않다. h누나가 돌봄의 영역에 들어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듯 말했는데, 나도 그런가보다 받아들였다. 부모가 아이를 돌보고 커버린 아이는 늙은 부모를 돌본다. 부모님과 근처에 산다면 핸드폰 가입부터 병원 다니는 일까지 이것저것 신경 써드릴 것이 많고, 다들 어느시점부터는 부모님을 돌보고 산다. - 엄마가 우리 동네에 살았다면 무심결에 속아서 잘못 가입한 인터넷 티비 결합상품 해지하느라 몇날며칠을 속상해하다가 아들에게 하소연하고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큰소리 낼 일은 없었을 거다. -

엄마한테는 당신이 아버지를 보살필 의무는 없다고 말했다. 엄마도 전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둘이 같이 살고 싶진 않은 거 같다. - 같이 산 게 20년 떨어져 산 게 24년 이혼한지는 10년이다. -

아내가 아버지가 강릉에서 살고 우리 부부가 자주 들여다보는 게 좋을 거 같다고 먼저 말했다. 앞에선 안 울었는데, 그 마음이 고마워서 다음날 혼자 울었다. 

걱정이 되서 얼른 아버지 이사 준비하고 싶은데, 엄마 마음은 그렇진 않다. 일단 지금 하는 경비일을 할 수 있을때까진 하는 걸로 하자고 한다. 환자건 보호자건 현실은 비용이 문제다. 엄마는 정신없는 아버지를 불러다 치매 보험을 들었다. 처음이는 화가 나서 당장 해약하라고 했지만 이달 19일에 확실히 치매로 판정 받은 후에 해약해도 늦지 않다.

아버지가 강릉으로 옮기려면 이것저것 처리할 일이 많을텐데, 지금 내 걱정은 하루만에 바뀌는 계절처럼 아버지가 하루 아침에 나빠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매일 전화하나 보다. 

지금 아버지는 가을과 겨울 두 계절 사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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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것

강릉시 대신 전해드립니다 페이지엔 잃어버린 것들이 많다. 신분증, 카드, 지갑을 많이 잃어버리고 주인과 집을 잃은 강아지랑 고양이도 많다. 아주 가끔은 사람을 잃어버리고 찾았다는 소식도 있다.

우리 아버지는 기억을 잃어버리고 있는 중인데, 차라리 지갑이나 신분증을 잃어버렸으면 좋겠다.

오늘 아버지는 또 뭘 잊으셨을까. 전화 달라는 문자랑 카톡을 매일 보내는데 이버지에게선 전화가 오지 않는다.

지난 몇 년 동안 혼자 사는 아버지에겐 무슨일이 있었던 걸까? 안 그래도 순한 양같은 사람인데 술을 안 드시니까 더 순한 양이 됐다. 원래 남의 말을 귀기울여 듣지 않는 분인데, 엄마 말로는 내 말은 잘 듣는다고 한다. 장남이 뭐라고. 술 먹으면 안된다는 결심도 매일 잊으시는건 아닌지.

10월 5일 밤, 아버지 집에 갔다. 집을 쭉 둘러봤다. 오래된 물건들과 또 오래된 물건들. 70세 독신남의 집. 씨발, 우리 아버지 사는 게 안됐네. 마음속에 '아버지 사는 게 안됐다'는 문장이 계속 돌고 결국 울어버렸다.

머리가 마음보다 늦고 마음은 몸보다 늦다. 우리 아버지는 머릿속이 몸과 마음의 속도를 못 따라오는 상태다.

10월 6일에 병원에 다녀왔다. mri촬영결과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는 아니지만 인지력은 술로 인해서 심각한 손상이 있다고 한다. 치매약을 처방받았고 하루에 두 번씩 약 드셨는지 별일 없는지 확인하고 술 드시면 안되고 가계부 꼭 쓰시라고 통화하고 있다. 매번 전화를 끊을때마다 잘 지내라고 하신다. 그동안 연락을 너무 안했고 나랑 매일 통화하는 걸 기억 못하셔서 하는 말 같다. 마음이 너무 안좋다.

올해가 몇년인지도 모르는 울 아버지가 술을 끊고 지금 상황을 이겨내길 바란다. 못 이겨내도 할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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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워크맨

아버지와 추억이 별로 없다.

첫 번째 기억이 대중 목욕탕에서 동생편 들어준다고 대들었다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회초리 맞았던 것이다. 그 다음은 동생이 초딩 2학년때, 시험 잘 봤다고 피아노 사주신 거. 그 피아노는 내가 잘 쳤고, 20세기 후반에 집에 정말 돈이 없을 때 팔았다. 나랑 직접 연결된건 91년, 내가 중1때 워크맨을 사주신 일이다. 나는 물건에 대해서 조르는 법이 없는 편인데, 게임기도 컴퓨터도 없는 집에서 워크맨만은 갖고 싶다고 졸랐다. 나는 당연히 소니나 아이와 제품을 기대했는데, 아버지는 어느날 술에 잔뜩 취해서 빨간색 산요 워크맨을 내게 건냈다. 외부스피커도 있고 티비 주파수도 잡히고(아날로그 방식) 녹음 기능도 있는 만능 워크맨이었는데 나는 처음 보는 브랜드가 싫었고 아버지가 술 취해서 문래동 어느 노점상에서 바가지 써서 사온 것 같은 그 물건이 싫었다. 그 워크맨으로 배캠 초창기 방송을 들었고 서태지를 들었다. 그렇게 애송이 시절을 보냈다. 나중에는 그런 워크만을 가져 본 게 나 뿐이라는 자부심도 있었다. 80번대 후반 주파수에 당시 서울방송 tv 소리가 라디오로 잡히던 시절 얘기다. 엄마가 물장사 하기 전까지.우리집에 유일하게 돈이 돌던 시절 얘기다.

요즘 아버지 때문에 걱정이 많은데, 퇴근길 운전 중에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났다.

시절의 흐름대로 생을 산 우리 아버지는 이제 어느 시절로 가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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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 엄마, 장인어른 순서로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물었다. 아버지랑은 엊그제 짧게 통화했기에 전화하지 않았다. 동생은 휴가 중이라고 했고 아버지 무슨일 있는지 물으니 아버지 문제에 대해서 아는대로 얘기해줬다. 엄마는 부러진 팔이 빨리 붙지 않는 것만 빼면 계속 잘 지내는 중인데, 동생네 회사가 이달 말에 폐업을 할거란 사실과 아버지 문제를 아는대로 얘기해줬다. 아버님(장인어른)은 여전히 두꺼운 책을 많이 읽으시고 - 최근에 국부론을 읽으셨다고 함 - 형님(아내 오빠)네도 잘 지낸다는 소식을 전해주셨다.

 아버지랑 통화할 때 회사에는 별일 없는지 무심히 물었다. 아버지 대답은 뭔 일이 있었는데, 지금은 괜찮다는 것이었다. 뭔 일이 있었단 한 마디가 마음에 걸려서 오늘의 전화 릴레이가 시작됐다. 결론은 술 문제다. 거기에 더해서 자꾸 깜빡깜빡 한다고 한다. 그게 술과 관련됐을 수도 있다. 아버지가 혼자 살기 때문에 깜빡하는 정도가 어느 정돈지 알려 줄 사람이 없다. 엊그제 통화할 때, 며느리 잘 지내는지 묻고 싶은데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서 빠르게 알려주고 말았다. 약간 마음에 걸린다.

 안부(安否)란게 편안한지 아닌지를 묻는 것이라 편안하지 않다면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이고 문제가 있으면 신경이 쓰이고 걱정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동생은 내가 신경쓸까봐 회사 얘기를 안 했고 엄마도 본인 팔이 부러진 것을 팔이 부러진 날 바로 알려주지 않았다. - 근데 아버지 얘기는 왜 자세히 알려주는 거지? 이건 신뢰와 관련있는 것 같다. - 걱정하기 위해서 안부를 묻는 것은 아닌데, 말이 길어지다 보면 가족 중에 왕후장상이 있어도 걱정할 일은 있게 마련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걱정거리가 있는 것이 걱정 없음보다 우선 순위다. 그래서 '네 걱정이나 해'란 말도 있다. 아버지가 걱정이다.

 엄마, 아버지가 서류상 이혼한 지 10년 됐다. 같이 살지 않은 건 20년이 넘었다. 따져보면 결혼하고 둘이 같이 산 기간보다 그렇지 않은 기간이 더 길다. 이번 추석때도 엄마 집에 아버지 형제들이 모이겠지. 엄마 팔은 그때도 금이 간 상태겠지. 엄마 입장에서는 이게 사랑인가? 아버지 걱정과 별도로 맘에 안든다.

 며칠 내로 아버지한테 전화해서 술 적당히 드시라고 정중하게 한 소리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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