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오산 엄마집에 가서 아버지 70세 생일밥 먹고 왔다. 왕복 350km 자가운전 당일치기. 힘들다.

아버지는 1952년 음력 11월 4일에 태어났다. 2021년 양력 12월 7일이 아버지 만 69세 생일이다. 환갑은 만 60세 생일에 하고 칠순은 우리나이로 70세인 해의 생일에 기념하는가. 어른들 생일은 늦춰서 하면 안되고 당겨셔 해야 된다는 속설이 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나이가 됐으니 죽기 전에 잔치라도 한 번 하라는 옛 사람들의 생각인듯하다.

아침에 아버지랑 통화했을 때, 아버지는 들뜬 목소리로 버스를 타고 개봉역에 가고 있다고 했다. ‘아버지 개봉역으로 가면 인천가는 지하철만 와요’ 가리봉역(가산디지털단지역)으로 가는 버스를 탔을거라고 짐작하면서도 그렇게 얘기했다. 아버지는 한참을 당황했고, 가리봉이란 단어를 떠올리지 못했다. 아버지는 내년 2월 15일에 치매약 타러 가야 하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만이 현재 아버지에게 확정된 이벤트인 것이다. 슬프기도 하고 그냥 그렇기도 한 일이다. 그 중간 중간 제사, 명절, 혈압약 타러갈 일, 의사 소견서 받으러 갈 일 등이 있을 것이다. 아무런 이벤트가 없는 삶에서 오늘처럼 엄마가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오라고 하면 아버지는 마냥 좋다. 나보고 작은 일 때문에 서울에 올 것 없다고 하지만 나를 만나는 일이 좋다. 현재 그런 상황이다.

나는 처음 간 엄마 단골 갈비집에서 이모들이랑 고기를 먹었다. 이모들 테이블에서 ‘무병장수’란 얘기가 나왔다. 내가 그 말은 ‘일확천금’과 같은 맥의 말이라 했더니 정말 오랜만에 만난 사촌동생이 그런것 같다고 했다. 아직은 좀 이르지만 나도 실제적인 죽음에 대해서 점점 깊게 생각하는 나이로 가고 있다. 죽음에 대해서 어려서부터 많은 생각을 했지만 내 몸이 실제로 느끼는 죽음과는 다르다. - 요절한 시인은 죽음을 다루지 않는다. - 윗줄에 사촌동생이 뭔 식구들이 외식만 하면 밥을 두 시간씩 먹는다며 프렌치스타일이란 얘기를 해서 한참 웃었다.

‘항상 생각은 하고 있는데 마음처럼 되지는 않아서’ - 내가 했던 멘트 그대로임 - 둘째(식당) 이모, 셋째(병점) 이모, 막내 이모한테 아버지 생일 기념으로 용돈 조금씩 드렸다. 이모들이 좋아해서 좋았다. 이모들을 생각하면 돈 많이 벌어야 하는데, 그것도 마음처럼 되지는 않아서….. 먼저 막내이모 만났을 때 오늘이랑 비슷한 얘기를 했는데, 이모가 ‘다 안다고’해서 짠했더랬다.

모든 인간은 관계속에 살아가지만 이모들 없었으면 우리 가족도 지금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을 거다. 엄마가 무너져 버렸을 수도 있고, 뭐 이런저런 배드 엔딩이 의심된다. 오늘처럼 여럿이 모인날 이모들이 나는 여러번 들어 다 알고 있는 옛날 얘기를 하고 그 얘기를 듣고 아내가 웃는 일이 좋다.

아버지, 연락은 매일 하지만
가끔은 좀 더 구체적인 얘기를 하자구요.
항상 하는 얘기지만 지금 잘 하고 있어요.
생일 축하하고 더 나빠지진 말자구요.

-> 최근 찍은 겨울 이미지 중에 아내가 좋다고 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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