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행


강릉역 아침 8시, 얼마전 위생 문제가 뉴스에 나온 도넛 체인점에서 커피를 사 먹고 출발. 뚜껑은 빼고 주세요. 뉴스 덕분에 도넛이 덜 팔려서 알바들은 몸은 편하고 마음이 불편해졌을까?

청량리역 1번 출구 계단에서 사람들 지나칠 때마다 연신 고개를 숙이고 구걸하는 사람을 지나칠 때는 나도 옆 사람도 계단을 내려가는 걸음이 빨라지고 그 속도 그대로 계단 끝까지 내려옴.

누가 사 먹는지 모르는 아홉 개 이천 원짜리 호두과자는 지하철 역 가판대에 냄새도 없이 자리잡고 있고 오늘도 사 먹지 못했다. 호주머니에 잔돈이 있었어도 사 먹지 않았을 거란 생각.

끼치산역에서 내려 백구사 언덕 넘어 신월동으로 향하는 고갯길엔 기울어진 언덕에 가지런히 자리잡은 빌라라 부르는 집에서 수평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사람들 사람들.

아버지 아픈 이후로 종종 발발하는 엄마, 아버지, 나 이렇게 세 사람의 점심식사. 어린시절로 돌아간듯 편안하면서도 왠지 어색한 식사. 오늘은 고등어조림과 임연수 구이. 셋 중 어색한 건 나 뿐인가?

혈압약을 타러간 동네 병원의 익숙함. 병원에 들어가자 마자 커피랑 빵 냄새 맡으며 곧바로 2층으로 54×××× 아버지 주민번호를 대고 의사와 잠깐의 대화. 약 3개월치 드릴게요.

치매약을 타러간 대학병원의 익숙함. 환자와 보호자 출입증을 출력하고 - 내가 아버지의 보호자구나 - 예약 종이에 찍힌 바코드를 수납 기계에 갖다대고 긴 복도를 기역자로 돌아 그 끝에 신경과. 담당 의사의 나긋한 말투도 귀에 익는다. 6개월 전 첫 검사랑 큰 차이는 없네요. 약 4개월치 드릴게요.

처음 떼 본 아버지 진단서. 최종진단 병명은 '상세불명의 알츠하이머병에서의 치매'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계속 진단서를 들여다보며 머릿속엔 장기요양등급에 관한 생각. 어떤 드라마를 본다는데 채널도 제목도 주인공도 모르고 줄거리도 설명 못하는 우리 아버지. 계속 혼자 살아도 되는걸까?

아버지 집 나와 시장통에서 만난 엎드려 기는 걸인을 노점상 좌판 반대편으로 비켜 지나쳤다. 얼마나 많은 일들을 무심한듯 지나쳐야 생이 맨 끝으로, 끝으로 향하는 생의 끝으로 향할까.

본인 때문에 자꾸 서울에 오는 내게 미안해 하면서도 날 만나면 좋아하는 아버지, 병원 가기 며칠 전부터 전화기 넘어 목소리가 들떠있는 아버지, 내가 태어났을 때 본인이 몇 살이었는지 내게 묻는 아버지, 40대의 내가 아버지의 그때를 닮아버린 70살의 아버지.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술 취한 아저씨의 전화를 받았다. 일감이 있다는 소개로 전화핬다기에 어디 사시냐 물었더니 안산이라 했다. 아저씨는 술이 많이 취했지만 내게 미안하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먹고 사는 일은 술에 취해서도 짠내가 난다.


- > 아버지 만나고 돌아오는 기차에서는 강박적으로 뭔가를 적는다. 그래도 끝나는 건 없지만 그래야 뭔가는 끝나는 것 같기에 그렇다.

아버지가 나빠지지 않고 있는 건 정말 다행스랍고 좋은 일이다. 이제 문제는 돈이다. 아버지한테는는 엄마에게 생활비를 줘야 한다는 깊은 강박이 있다. 실업급야 수급이 끝나고 아버지 수입은 연금 등 월 75만 원. 기초연금 30만 원 아버지가 쓰고 국민연금 45만 원 엄마가 쓴다. 엄마는 수입 제로인 상태에서 보험료 등으로 월 100만원이 기본으로 나간다.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보면 이게 큰 액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수입 없이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오늘 아버지 검사비랑 약값이 30만원 나왔다. 네 달치 약값이니까 큰 액수는 아니다. 일단 체크카드만 쓰는 내 통장에 돈이 없어서 아버지 신용카드로 계산했다. 이제 아버지 수입이 없으니까 담달 카드결제일 전에 아버지 통장에 돈 채워 놔야지. 가까운 사람이 아프다면 빚을 내서라도 낫게하고 싶은게 인간이고 사랑이다(인지상정). 엄마에겐 어떤, 계획이 있을까?

가난한 사람들에게 아픔은 돈이고 돈은 걱정이다.

-> 이버지한테 주 5회, 아침마다 배달되기 시작한 도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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