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만나고 강릉 돌아오는 길이다. 오늘도 기차 안에서 글을 끝내야지.

노인장기요양 인정 때문에 건강보험공단 직원이 아버지 집에 방문했다. 몇 가지 묻고 절차 얘기해 주고 돌아갔다. 우리 아버지의 담당자로 지정된 사람. 장기요양인정 신청서를 접수해 줄 사람. 직업 때문에 수시로 치매환자를 만나는 사람. 고된 일이다. 의사소견서 받는 병원 예약이 올해 안에 어려워서 소견서 제출일자를 조금 미뤄 달라고 공단에 전화를 했다. 전화 끊으면서 진심으로 고생 많으십니다, 했는데 상대도 진심으로 선생님이 더 힘드시죠, 해서 위로가 됐다.

지금의 아버지는 가볍게 생각하면 20년 먼저 90살이 된 사람이다. 아버지가 무거운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무겁게 생각하지는 않을란다.

오늘 아버지는 누룽지를 꼬들꼬들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했다. 공단 직원이 말한 세 개의 단어를 방금 따라 읽고도 10초 만에 다 잊었다.

오늘 내가 아버지한테 한 얘기는 아버지 지금 잘하고 있어요. - 항상 가장 많이 하는 말- 요새 잘 못 드시는 거 같애 얼굴을 보니까 좀 야위었어. 많이 주무시는 게 좋아요. 억지로 일찍 일어나실 필요 없어요. 아버지 허리 펴고 천천히 걸으세요. 등이다.

공단 직원이 돌아가고 시장에 가서 아버지랑 순댓국을 먹었다. 왠지 허기가 져서 둘 다 특으로 시켰다. 아버지가 나에게 특별하던 시절을 지나 내가 아버지에게 특별한 사람이 됐다. 아니면 부모 자식 관계는 항상 특별한 것이리라. - 이놈의 가족주의 - 내가 그릇을 비우자 아버지는 그거 처음에 돈 더내고 먹는 그거 먹을 걸 그랬다고 한다. 아버지 지금 먹는게 특이예요. 했다. 그랬어? 그러면서 이버지가 웃었다.

순댓국이 먹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못 먹었다는 뉘앙스의 얘기가 나왔다. 한 달에 편히 쓸 수 있는 돈이 15만원이니 그럴 수 있다. 아버지 드시고 싶은거 있면 사 드시고 돈 떨어지면 얘기하세요, 했다. 아버지는 돈이 없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상태다. 돈이 없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는 건 긍정 요인인가?

노인일자리 신청한다고 해서 그러시라고 했다. 잘 되면 좋은 거다. 수입도 생기고 외로움도 덜할 것이다. 오늘 나를 만나는 일 때문에 들뜬 아버지는 전화기도 챙기지 않고 시장통에서 나를 기다렸다. 집에 갔는데 아버지가 없어서 아버지 찾으러 나갔다가 터덜터덜 집쪽으로 돌아오는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가 아직은 길을 잃어버리진(잊어버리지) 않는 사람이라 다행이다.

1월 4일에 또 만날 거라고 했더니 얼마남지 않았다며 좋아했다. 아버지가.

아버지, 저랑 1월 4일에도 만나고 15일에도 만나고 2월 15일에도 만날거에요. 드시고 싶은거 있으면 사 드시고 돈 떨어지면 저한테 전화하세요.

-> 신월동 이미지. 김포공항 없앤단 얘기가 있던데.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