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만나고 돌아오는 길인데, 오늘은 강릉행 기차 안에서가 아니라 엄마한테 가는 길에 쓴다. 가리봉에서 오산 가는 국철. 예전에 많이 다녔던 길 위헤서 지금의 내가 쓴다.

아침에 KTX 청량리역에 내려서 국철로 갈아타면서 바깥의 온도, 습기, 햇살, 냄새 같은 것 다 잊을 수 있어서 지하철이 좋구나, 생각했는데, 국철을 바깥이 보이는 구간이 많다. 그러니까 그 생각은 아버지 만나러 오는 내 어두운 마음을 반영한 거였다.

아버지는, 정체 상태라고 해야하나?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않은 가운데 약간은 물러서는 형국이다. 지난달에 엄마가 아버지를 호출했는데, 가리봉에서 헷갈린 건지 개봉역에서 헷갈린 건지 결국 엄마 집에 못 찾아오고 집으로 돌아갔다. 엄만 많이 속상해했고 나는 아버지 조금 나빠졌나, 생각했다. 둘째 이모 얘기로는 최근에는 정리한다고 그릇을 다 꺼내놓고는 그 상태로 정리했다고 한다고 한다. 아머지는. 오늘도 나를 아침부터 기다렸고 병원에 한 시까지 가야하고 나는 열 두시에 집에 도착하니 식사를 하시라 했는데, 뭔가를 먹었다 했지만 그게 뭔지는 모르고, 그러니 아무것도 안 드셨을지도 모른다. 병원에서 혈압을 재보니 여전히 맥박이 느리고 – 맥박이 점점 느려지다가 죽는 일을 떠올려본다. - 혈압약을 끊었지만 120대의 최고 혈압을 유지하고 있다. 아1버지 육체는 엄마보다는 많이 건강하다. 좋은건가? 좋은거다.

아버지는 오늘 나랑 같이 뭔가 먹지 못한 게 많이 아쉬웠다. 아버지랑 다채롭게 먹고 싶다는 내 마음속의 약속을 나도 못 지키고 있다. 내 의지의 문제다.

아버지 약통 새로 채우고 핸드폰 선택약정(할인) 신청하고 믹스커피랑 두유사서 데이케어센터 들렀다.복지사 선생님과 잠깐 얘기를 나누고 현장에서 6월 가정통신문에 회신했다. 커피 고맙다고 문자가 와서 형편이 이 정도로 죄송하다 했는데, 진심이다. 작은 엄마가 할머니 보러 요양우언에 갈 때 항상 뭐든 사갔다. 나도 몇 번 같이 갔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배운일이다. 현금을 잘 갖고 다니진 않는데, 주머니에 돈이 있고 대리운전을 이용하며 운전해 주신 분에게 대리비랑 별도로 만 원짜리 한 장 드리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어른들에게 좋은 영향을 받은건가. 나도 그정도의 호의는 받으며 살아왔다. 안 그랬으면 벌써 죽었겠지.

센터 나와서 편의점에서 맥주랑 담배를 샀다. 친구 가게에 들었다. 몸에 안 좋은 걸 한 가지 더 샀어야 뭔가 딸 들어맞는데. 소주가 아니라 다행인건가. 친구랑 짧고 빠르게 얘기 마치고 엄마한테 가는 길이다. 급행을 타서 곧 수원역이다. 굿. 내 인생은 이런 흔한 행운과 그렇지 않은 일, 로또 복권에 당첨되지 않는 일이 전부다.

엄마는 내일 입원에서 혈관조영술 한다. 어제 저녁에 전화했을 때, 돼지고기 사러 마트에 왔다고 고기 볶아줄테니 꼭 집에 와서 밥 먹으라 했다. 방금도 문자가 와서 수원역 근처라 했더니 밥솥 전기 꼽는다고 답이 왔다. 직계존속의 존속력이랄까. 끊어지지 않는 어떤 마음들.

언제부턴가 가만이 있어도 화가난다. 국내외 정세, 집안 정세, 지금의 내 모습 때문이다. 아내에게 화를 많이 보이는데 너무 친하니까 과할때가 많다. 정말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온순해진다,고 결론 지으려는데, 내게 그런 대상은 엄마뿐이고 엄마앞에서 온순해지는 건 사랑보다는 애틋함 때문이다. - 막내 이모는 엄마 머릿속의 꽈리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 언니 젊은날 술만 먹다가 늙어서 좋은날도 못보고 죽으면 어떡하냐면서 울었다. - 정말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이런모습 저런모습 다 보이게 되는건가?

아버지가 옛날에 말하길, 먼저 전화 온다는 건 누군가 나를 찾는거니까 좋은일이라 했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건 좋은거고 아버지도 엄마도 나를 기다린다. 좋은거다. 나는 부모님을 기다리지 않는다. 나는 누굴 기다리지? 곧 엄마집에 도착하는데 살짝 어지럽네. 친구 가게에서 마신 맥주 때문은 아니다.

-> 이대목동병원근처 열병합발전소 굴뚝. 인생은 일방통행이 아니고 오늘도 아버지는 사진찍는 나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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