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만나고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어둡다,고 기차에서 적어뒀다. 동지는 지났지만 해 길어지려면 한참이고 오후 7시 22분 기차를 타서 더 그렇다.

     아버지 장기요양보험 때문에 의사 소견서 받으러 다녀왔다. 원래는 1월 4일에 갔어야 하는데, 담당의사 개인 사정으로 일주일 밀렸다. 아버지 치매를 인지한 게 햇수로 3년이고 알츠하이머 진단서 받은 것도 6개월은 넘었는데, 이제 장기요양등급 심사받는 절차를 밟고 있으니 일주일 밀린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일처리를 조금 더 급하고 빠르게 했어야 하나, 생각도 해보지만 너무 늦지만 않으면 크게 달라질 것도 없다.

     3시 45분 예약이었고 3시 30분 정도에 병원에 도착했다. 진료가 끝난 건 4시 50분이었다. 긴 기다림의 시간동안 아버지랑 나는 똑같은 대화를 나누고 나누고 나누고, 병원 안 편의점에서 망고 주스를 사 먹고 똑같은 대화를 또 나누고 나누고 나눴다. 코로나만 봐도 그렇지만 병의 가짓수가 사람 숫자를 따라잡을 수 없어서 세상에는 같은 병에 걸린 사람들이 너무 많다. 한참 끝에 만난 담당 의사의 새해복많이받으세요, 인사가 기계처럼 느껴졌다. 의사를 욕하는 건 아니다. 직업이란 기계적이고 오래 기다린 내 마음이 의사의 진심을 부정적으로 느낀 걸 수도 있다.

     같이 저녁을 먹으면 강릉 돌아오는 시간이 너무 늦기도 하고 일부러 아버지와 저녁밥을 같이 먹고 싶진 않은 내 마음에 끌려서 병원 나와서 아버지랑 헤어졌다. 나는 건강보험공단에 소견서 제출하고 지하철로 청량리 이동, 아버지는 동네에 종점이 있는 버스를 타고 이동이다. 아버지는 당연히 어디서 버스 타야 하고 몇 번 타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 목동이 일방통행이라 익숙하지 않으면 어른들도 어려움 - 아버지 버스타는 곳에 바래다줬다. 길 건너편에서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걷는데, 아버지가 작아보였다. - 차선 네 개 건너에 있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 뒤쪽을 보니 아버지가 타야하는 버스가 보였고 아버지랑 눈이 마주쳤다. ‘아버지 지금 이 차 타시면 돼요’ 소리를 지르고 아버지가 버스에 타서 버스 요금 결재하는 걸 한참 지켜봤다. 아버지의 버스가 20미터도 못 가서 신호에 걸렸고 우리 아버지 어디 앉았나 버스 안을 들여다보다가 아버지랑 눈이 마주쳤다. 서로 반갑게 손을 흔들고 헤어졌다. 30분 후에, 방금 집에 도착했고 오늘 수고했다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가 차비하라고 5만원 주길래 몰래 지갑안에 다시 넣어줄까 하다가 그냥 받았다. 살면서 아버지한테 용돈 받은적이 별로 없는데 - 아버지가 돈이 있었던 적이 별로 없어서 - 아버지의 무의식에는 아들 용돈과 관련된 무언가가 있는지도 모른다. 수고했다는 말을 들을 정도는 아닌데, 아버지도 엄마도 항상 수고했다는 말을 하는 것도 조금 마음에 걸린다.

     아침의 강릉역에서 지난 세기의 99년에 나온 에이치오티4집을 틀어놓고 나보다 어린 게 분명한 사장이 활기차게 영업준비를 하는 토스트 집에서 커피를 한 잔 사 먹었다. 아버지 동네 시장에서는 활짝 핀 배춧잎이 너무 예뻐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아버지는 반복해서 들어도 계속 잊어버리는 사람이 됐고 나도 사진 속의 배춧잎 같은 시기는 지났다. 살면서 어떤 성취감을 느끼지 않는다. 뭔가 쓸쓸하네.

     아버지 만나고 돌아오는 길은 항상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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