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다

꼭 갔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한 달에 한 번은 아버지를 만나야 할 거 같고 데이케어센터에서 보낸 가정통신문에 회신도 해야해서 서울 나들이를 했다. 서울가는 기차에서는 비구름이 불러가려는 날씨가 예쁘단 생각을 했다. 고여있는 물에도 생기가 돌았고 농산 준비를 마친 논밭이 선명했다. 어느밭 한 귀퉁이에 어린 나무가 어린 잎을 피웠다. 아직은 나보다 적게 살았지만 나보다 천년을 더 살지도 모르는 나무. 서울에 오니가 비가 그친 날씨가 예쁘지 않았다. 그러니까 날씨가 이뻤던 건 연두 때문이었다. 양평 지나서 아파트가 많이 보이기 시작하니까 순식간에 마음이 삭막해졌지만 청량리 역 앞 화단에 봄이 온 걸 보고 안심했다.

아버지를 만났다. 문자랑 카톡, 통장잔고를 확인했다. 약통에 약을 확인하고 전파사에서 사온 티비 리모콘 세팅하고 변기에 앉으면 눈앞에 보이는 벽에 ‘변기 물 내릴 것’ 써 붙이고 늘 그렇듯 잘 하고 있다고 얘기하고 밥 먹었다. 별다른 옵션이 없어서 또 순댓국 먹었다. 난 보통, 아버지는 특. 먼저 나랑 먹고 또 드신적 있냐고 물으니 그때 먹고 처음이라고 한다. 배부르면 억지로 다 안 드셔도 된다고 했는데, 꽤 많은 양을 천천히 다 드셨다. 아버지는 원래 천천히 드시는 편이다. 최근에 뭐든 조금 급하게 먹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천천히 드시는 모습에 안심했다. 밥 먹으면서 많은 얘기를 했다. 아버지가 데이케어센터에 대해서 꽤 자세히 설명을 했는데, 나는 뭔 말인지 대충 알아들었지만 명사를 하나도 떠올리지 못하니 설명이 잘 안됐다. 뭐든 촉촉할 때가 맛있다는데 아버지랑 먹는 순댓국 안에 고기를 항상 먹먹하다.

아버지가 데이케어센터를 좋아해서 다행이다. 뭔 일 있으면 나한테 알려줄 수 있으면 좋을텐데. 좋을텐데,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구나. 아버지 얼구링 먼저보다 좋아보였다. 그것도 좋은 일이다. 날 만나서 아버지가 많이 좋아했다. 그게 제일 좋은 일이다. 날 만나는 아버지 마음에는 미암함과 좋은이 뒤섞여 있다. 혈연인가. 사랑인가. 조만간 낮에 통화할 때, 오늘먹은 집에서 순댓국 2인분 포장 주문 – 아버지는 포장이란 단어를 떠올리지 못함. 순댓국이란 단어도 – 하도록 유도해 봐야겠다.

1호선 타고 청량이 오는 길에 멀리 남산타워가 보이고 남산 중턱에 벚꽃이 아직 환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왔다. 언제가지 봄이 차자오려나. 일단 올해는 봄이 찾아왔다. 아버지도 괜찮다. 그러니 됐다.

당일치기 서울 왔다갔다 피곤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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