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얘기 빼고 써보려고 한다. - 동생한테 토요일에 아버지 만나서 순대국 먹으라 했고 미션 수행이 잘 됐다. - 
 
 지난 금요일에 태백에 다녀왔다. 친구를 만났다. 인생에 공유한 것은 별로 없지만 대화의 합이 잘 맞는 친구다. 내 일기를 좋아해 주는 친구다. 내가 더 많은 말을 하게 되고 그 친구는 대꾸를 잘 해주는 것 뿐인지도 모른다. 뭐가 됐든 태백에 친구가 있다는 게 좋다.
 
 수도권 제외하고 많은 곳이 그렇지만 태백은 쇠락을 대표하는 도시다. 폐광 후에 급감해버린 인구수가 원인이다. 10년 전만해도 쇠락했거나 쇠락해가는 도시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충남 서천 장항읍, 태백 황지동이 우선으로 떠오른다. 한 때 전성기를 구가했으나 지금은 황량한 거리 위 빈 건물들 사이로 무심한 바람이 지나는 그런 동네들. 사멸하는 것은 아름답다는 인식 때문에 그런 마음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마모되어 사멸 또는 소멸하는 것은 여전히 아름답지만 지금 마음은 그 동네에 살고 싶지는 않다.  
 
 마이클잭슨(또는 마이클 조던)처럼 예외적인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어느 분야든 전성기는 짧다고 생각한다. 가수들은 음반 3장 연속으로 히트하기가 어렵고, 시인이나 소설가도 마찬가지다. 지속적으로 작품이 히트를 하더라도 그 작품이 그 사람의 정점에 있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다. 정점 이후에는 익숙함과 완숙함이 있다. 아이유의 노랫말도 - 아이유 가사를 너무 잘 씀 - 최전성기에서 내려오는 날이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영리한 사람들은 적절한 시점에 은퇴를 택하기도 한다. 이건 유명세를 한 번이라도 떨친 사람들 얘기고, 세상에는 원히트원더 가수가 꿈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 전성기는 언제 오나? 어느 분야에서? 이미 지났나? 애초에 올 일이 없나? 헛된 바람인가? 나는 왜 이름을 떨치려고 하나? 나는 왜 사람들을 만나면 정점에서 내려오는 얘기를 하나? 
 
 벚꽃지고 나면 튤립 핀다는 걸 알기에 어제 아내랑 수목원에 갔다. 절정을 보기 위해서. 햇빛을 받은 튤립은 쳐다보기 힘들 정도로 반짝거리고 벚나무에는 곧 열매가 달리겠지만 바람불면 열매든 꽃이든 다 떨어지는 게 인생이다. 나무나 꽃이나 사람이나 한 번 왔다 간다는 건 똑같다.
 
 영화판에 미련을 두고 있지만 확실한 크레딧이 없는 친구들을 본다. 그 친구들에게는 지금은 세상이 많이 변해서 40대 중반이 되어도 이름을 떨칠 희망이 있다는 얘기를 해준다. 그 얘기가 나한테 하는 얘기란 걸 이 글을 쓰면서 깨닫는다. 
 
 AI가 글을 쓰는 세상에 내가 쓰는 글이 기록 말고 다른 의미가 있을까?
 
 그래도 내 일기를 좋아하는 확실한 한 명이 있다. 사실은 그거면 족하다.
 
 올해도 강릉은 봄바람이 거세다. 내년에도 삶과 마음이 꺽이지 않아서 봄바람이 거세다고 쓸 수 있었으면 한다.
솔향 수목원 튤립 2023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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