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0일이네. 올해가 점점, 다 갔다.

 지난 금요일에 회사 하루 쉬었다. 너무 피곤해서. 주말에 산불근무 한 걸로 평일에 쉴 수 있는, 당연하지만 누구나 다 누리지는 못하는 좋은 시스템이고 괜찮은 회사다. 오랜만에 노래를 하나 만들었고 운동을 했고 은행에 다녀왔다. 단골 커피숍 사장님이 코로나 때보다 더 어렵다는 얘기를 했고 나는 어려울 때일수록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 이게 진심이란 게 현재 내 문제다. - 그런 때일수록 버티라는 위로의 말을 들었다. 고맙습니다. 이때까지 순조로웠다. 오후 늦게 친구 만나러 태백에 올라가다가 교통사고가 났다. 아버지 압박에서 벗어나서 일상으로 돌아온 첫 주 금요일에. 일상이 다시 깨졌고 울화가 치밀었다. 사고란 게 항상 그렇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허리에 약간의 충격이 있지만 나는 괜찮다. 상대 운전자도 멀쩡하게 돌아다녔기 때문에 크게 다친게 아니면 좋겠다. 내가 뒤에서 받았기 때문에 상대 운전자에게 괜찮냐고, 진심으로 물어봤고 이후에는 보험회사에서 알아서 처리했다. 편리한 시스템이다. 다만 차는 엉망이 됐다. 내 마음처럼.

 사고 나고 앞차가 길 옆에 차 세우고 운전자 멀쩡하게 내리는 거 보자마자 폐차와 차를 새로 구하는 일과 그 비용을 생각했다. 이게 현실이다. 감당할 수는 있지만 귀찮은 현실, 보편적인 욕망을 사는 사람의 마음. 다친 사람 없으니 괜찮다는 평범한 위로의 말을 듣고 마음이 풀리는 일.

 최근에 아내에게 보편적인 욕망이란 얘기를 했다. 어느 취한날 밤의 메모에는 신랑 마음도 모르고…라고 적었길래 바로 지웠다. 말을 해도 모르는데, 말도 안하는 남의 마음을 어떻게 알겠나. 내 집을 갖고 싶고 기왕이면 그 집이 좋은 집이면 좋겠고 새차 사고 싶고 비싸고 맛있는 것 먹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 복권에 당첨됐으면 좋겠는 마음. 그게 내가 생각하는 보편적인 욕망이다. - 20대 초반에 동생이 아파트에 살아보는 게 꿈이라고 한 적도 있다. - 돈을 많이 벌거나 부자가 되기 위한 노력은 나에게도 없지만 아내는 애초에 그런 욕망이 부족하다. 이렇게 살아선 강릉에선 집을 사기도 편안한 마음으로 살기도 어려울 것 같아서 아내에게 동료들이나 친구들에게 전남(순천, 목포, 여수)에 가서 살고 싶다는 얘기를 많이 하고 다닌다. 이건 보편에서 시작한 나의 개별적인 욕망이고 이쪽이 복권 당첨보다는 실현성이 높다. 사고 나고 레카차랑 보험회사 직원 오는 거 기다리는 동안 강원도에서의 운을 다 썼나,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것 자체가 삶이 들떠 어지럽기 때문이다. 차분하지 못한 이유에 아버지 비중이 크지만 그게 다 아버지 때문은 아니다

 그랬더라면, 하는 마음은 일이 잘못됐을 때만 든다. 주유소에 들르지 않았더라면 태백에 가기로 하지 않았더라면 미용실 예약에 빈 자리가 있었더라면 엄마한테 보낼 택배 보내러 다녀왔더라면, 휴가를 쓰지 않았더라면 하면서 후회가 시간 역순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내가 살아있다는 게 좋기 때문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까지는 가지 않는다. 보통은 다 그렇지 않을까?

 친구한테 몸 구석구석 짜증이 박혀있다고 했더니 이 나이 땐 짜증이 베이스로 깔려있다고 답장이 왔다. 다들 그렇구나, 이런 말과 생각으로 위로 받는다.

 뭔가 들뜬 마음을 가라 앉히라고 사고 났다 생각해야지. 다친 사람 없으니 됐다. 뭐 어떻게 되는건 없고 내가 알아서 해야한다. 그게 어른이다. 진단서 미첨부 병가를 쓸 수 있는 회사를 당분간은 그만두지 말아야겠다.

 보통의 마음 같은 걸 생각해보면서 어지럽게 봄이온다.

 금요일에 만든 노래 가사. 제목은 ‘봄’

마당엔 꽃잎이 듬성듬성
마음엔 그리움이 드문드문
문득문득 당신생각 피어오른 그리움을
오늘일까 내일일까 사라질까 겁이나서
두손 모아 빌었지만 그대 마음 알 수 없네

마당엔 꽃잎이 듬성듬성
마음엔 그리움이 드문드문
담장 너머 뛰어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살랑살랑 봄바람에 그대 마음 어딜가나
아지랑이 어지러워 내 마음도 알 수 없네

봄_초안.mp3
1.08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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