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 40분 강릉역에서 쓴다.

 아버지한테 가려고 10시 30분 기차 기다리기 시작했다. 의사 만나서 건강검진 결과 확인하고 데이케어센터 가정통신문 회신해 주는 간단한 일정이다.

 어제 저녁에 아버지랑 통화 마치고 아내가 한 마디 했다. 때때로 내가 아버지를 구박하거나 핀잔을 주는 말씨를 쓴다고 한다. 기분은 안 좋았지만 바로 안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옆에서 지켜보는 아내 말이 맞겠지. 막바로 담배 한 대 피우면서 '아버지한테 부드럽게만 말해야지' 생각했다. 세상 모두가 아버지한테 화내고 막 대해도 나만은 그러면 안된다. 현재 아버지에겐 내가 최고의 의지니까.

 어제 억양이 올라간 이유가 바로 윗 문장인 게 아이러니다. 평소처럼 학교(센터)에 가 계시면 오후에 모시러 간다고 했는데, 아버지는 내 말을 듣지 않고 그럼 학교는 안 가도 되겠네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러니까 어젯밤 아버지 머릿속에는 내일 큰아들 - 요즘 아버지는 내 이름을 잘 말 안(못) 함 - 만난다.로 가득차 있는 것이다. 그저 그 뿐인데, 나는 그게 싫고 부담되고 남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아버지가, 나만 기다리는 아버지가, 엄마에게 계속 부담인 아버지가 얄밉다.

 치매는 세계라는 시스템에서 동떨어지는 일이고 내가 보기에 아버지 인생이 시스템에서 멀어진 건 30년도 넘었으니, 자연인이 되지 않은 아버지가 치매에 걸린 건 당연한지도 모른다. 치매가 치맥같이 가볍고 얼렁뚱땅한 일이면 내 마음도 지금보단 편할텐데.



 아버지랑 헤어지고 신월동 모텔방 욕조에서 쓴다.

 아버지랑 오리로스 먹었다. 감자탕과 오리로스 중에 아버지가 골랐다. 나는 감자탕이 먹고 싶었다. 아버지랑 같이 돼지등뼈를 뜯는 이미지를 떠올려서 그렇다. 아버지는 위암이다. 대학병원 가라고 의사가 써준 소견서에 stomatch cancer라고 적혀있다. 의사가 별의별 병에 다 걸리시네요,라고 쿨하게 말했다. 내가 이 의사 선생님을 좋아한 이유다. 진료실 뒤쪽에는 꽤나 운동을 본격적으로 하는 운동기구가 놓여있었다. 여태까지 이걸 몰랐다니. 무심했다. 병원 입구에서 별일 았으면 큰일이라고 했는대, 진짜 별일이 있었네. 위암이란 걸 알고 나서 오리 로스를 먹었다. 아직은 일상이 유지되도 괜찮으니까. 아버지는 분명 12시에 센터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4시에도 많이 잘 드셨다. 지갑에 돈 갖고 있고 싶다고 해서 은행에 들러서 돈 10만원 찾아드렸다. 아버지 지금 상태론 ATM 이용 못한다. 카드 비번을 몇 십 번 알려줬다. 나는 말하고 아버지는 흘린다. 목동이대병원 금요일로 예약했다가 무리인 것 같아서 내일로 바꿨다. 당일치기 강릉 서울 왕복은 자동차로도 힘들고 기차로도 힘들다. 아버지가 또 나만 기다리는 게 싫어서 내일 또 만날거라고 얘기 안했다. 회사를 포함해서 여기저기 연락을 돌렸다.

 엄마는 머릿속이 까맣다고 했다. 아내에게 엄마가 까맣다는 얘기를 전했더니, 가슴이? 라고 했다. 머릿속이든 가슴이든 까만 건 까만거지. 엄마는 집안에 우않(우환)이 겹친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정정해 줄까 하다가 별일 아니니 걱정 말라고 답장했다. 그리고 엄마는 머릿속이 까매서 자꾸 울었다.

 땀난다. 내일 잘 마치고 집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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