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시 옥천연립 104호에 영화 ‘그랜 토리노’에 나왔던 클린트이스트우드랑 비슷한 이미지의 아저씨가 산다. 우리집 바로 아래아래 집이다. 2019년 3월에 이사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가 클린트이스트우드 아저씨란 별명을 지었고 아내도 어느정도 공감했다. 마르고 다부진 몸, 앙다문 입술, 거친풍파를 헤쳐온 듯한 강인한 얼굴, 청바지와 티셔츠, 딱딱하게 받아주는 인사, 항상 연립 입구 가장 구석에 비스듬히 세워두는 쌍용에서 나온 오래된 4륜 구동 자동차의 이미지들을 종합해서 지은 별명이다. 이 집에 거의 4년을 살며서 말은 섞은 적은 없고 내가 인사를 하면 아저씨가 인사를 받아주는 정도다. 내 나이가 마흔다섯이니까 아저씨라고 하는거지, 평범하게는 - 딱딱하고 강해 보이지만 남을 헤칠것 같지는 않은 이미지의 - 할아버지다.
  아저씨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는 아들이 둘 정도 있어서 명절 같은 때 타지에서 온 아들 차를 타고 외출을 한다는 것과 차 트렁크에 노가다 장비가 - 기술이 있는 일을 했던 것 같음 - 실려있다는 것 정도다. 올 봄에 우리 연립으로 들어오는 좁은 골목에서 - 차로 갈 수 있는 도로 끝에 옥천 연립이 있고 그 도로 끝에 사람이 둘 정도 지날 수 있는 좁은 길이 있음 - 술에 많이 취한 클린트이스트우드 아저씨가 옛동료로 생각되는 어떤 아저씨랑 어깨동무를 하고 비틀비틀 걸어와서 한 귀퉁이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내 모습은 보지도 못한 채 환한 웃음으로 아저씨 친구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집으로 들어가던 뒷모습이 내 머릿속에 남았다. 지난 여름 어느날 아저씨의 자동차가 사라졌다. 얼마후 나는 아저씨의 자동차랑 비슷한 모양의 검정색 4륜 구동 자동차를 샀고 아저씨가 주차하던 자리는 240만원 짜리 내 자동차가 차지했다.
  갑자기 이 아저씨 얘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엊그제 집에 올라오다가 아저씨 집 앞에 뜨거운 물 부어먹는 칼국수 한 상자와 20kg짜리 쌀이 놓여있는 걸 봤기 때문이다. 서울에 혼자사는 우리 아버지도 동사무소를 통해서 종종 받는 그것이다. 그걸 보자마자 아저씨 어디 아프신가,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아저씨 차 자리가 내 자리가 된 직후에는 종종 얼굴을 봤지만 최근에는 동네 다른주민들과 양지달임을 하러 나온 - 한 연립에 오래 살았고 연배가 비슷해서 그런지 우리집 빼고는 주민들끼리 친하다. - 클린트이스트우드 아저씨를 못 봤다. 약간 걱정이다.

  아저씨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고 아들들이 자주 찾아왔으면 좋겠고 옥천연립 104호가 이 아저씨가 돈 벌어서 산 아저씨 집이었으면 좋겠다.

  클린트이스트우드 아저씨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우리 아버지 주변에도 내가 이 아저씨를 보듯이 아버지를 지켜봐 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그런 건 세상에 없는 일이니까, 역시나 아버지를 강릉으로 모셔와야겠다.

  지난 토요일에 동생이 아버지를 만나서 같이 갈비를 먹었다. 나는 아버지랑 맛있는 거 먹으라고 동생에게 10만원 보냈다. 아버지가 그거라고 하지 않고 갈비 먹었다고 해서 기뻤다. 나는 다음주에 아버지 혈압약 타러 간다. 아내가 너도 갈비 먹어, 라고 했지만 그럴건 없다. 아버지 기억에는 안 남아도 내 기억에 남는 걸 먹어야겠다. 방금 데이케어 센터에서 ‘어르신 집에 모셔다드렸습니다.’ 문자가 왔다. 아버지한테 바로 전화했는데, 전화를 안 받으신다. - 좀 있다가 하면 받을 거다. - 축구를 참 좋아했던 아버지는 지금 월드컵이 뭔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국가대항전 축구를 본다. 나라를 위해선지 나를 위해선지 젊은이들이 정말 사력을 다해서 공을 찬다. 나는 인생에 전력을 다한적이 있나? 월드컵에 나온 선수들이 열심히 뛰는 것이 공을 차는게 본인들 직업이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 뭘까? 전력을 다하면 뭔가가 바뀔 수도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아는 나이인데도 그러지 않게 된다. 예를들면 가끔 노래는 만들지만 기타 연습을 열정적으로 하진 않는다거나 굶으면 체중 감량이 될 것을 알지만 굶지 않는다. 이게 나이 먹음인가? 그렇다고 인생에서 큰 요행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얼마전에 노무사 2차 시험에서 떨어진 10살 어린 친구에게 ㅇㅇ씨는 희망이 있다는 얘기를 진심으로 해줬다. 나이 먹는 일은 슬프다.

  글 쓰는 중에 세르비아랑 카메룬이 3대 3으로 비기는 중이다. 나는 세르비아가 유고에서 분리됐다는 걸 안다. 클린트이스트우드 아저씨는 냉전의 시대를 냉전 이후의 시대보다 오래 살았다. 나는 냉전 이후의 시대를 오래 살았지만 냉전이 뭔지는 안다. 클린트이스트우드 아저씨는 내가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모르고 나도 요즘 젊은이들이 무슨 생각인지 모른다. 그건 애들을 키워도 모른다. - 친구 아이들이 대체로 중학생이다. - 계절 바뀌듯 휙휙 세대가 바뀐다.

  아버지, 오늘 별일 없었죠? 곧 봐요. 마지막 문장 적고 바로 전화할게요. 생일 축하해요.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