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운동 끝내고 샤워하다가 <집>을 생각했다. 이유도 없이 머리에 뜨거운 물 맞다가 갑자기. 집에 대한 욕망은 단순한 것이다. 주인에게 쫓겨날 걱정없는 내 집을 갖고 싶다. 빚 없이 내 집을 갖고 싶다. 한 번도 내 집을 가져본 적이 없으니 내 집을 갖고 싶다. 변기 수압이 세고, 부엌도 넓고, 거실엔 커다란 텔레비젼이 있고, 퇴근하고 돌아올 때 주차할 곳 없을까봐 걱정할 일 없는 내 집을 갖고 싶다. 이 정도의 보편적인 욕망이 나에게는 있다.

 아버지는 어제 입원했고 오늘 수술이다. 다음주 초 퇴원할 때까지 엄마가 아버지를 돌보기로 했다. 아버지 일로 내가 서울 오갈 때, 왜 엄마가 자꾸 눈물이 난다고 했는지 알 것 같다. 엄마 생각을 하니까 나도 눈물이 난다. 엄마는 나를 대신하고 나는 엄마를 대신한다. 그 대신하는 마음에서 나온 눈물이다. 그 안에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한 움큼 섞여있다. 엄마는 나를 걱정하고 나는 엄마를 걱정한다. 사랑이다. 걱정이 많은 사랑. 아버지랑 엄마는 병실에서 무슨 얘기를 할까? 살아가는 얘기를 나눌 수 없는 사이란 건 슬프다. 아버지에 대한 마음도 사랑일까? 난 아닌데, 엄마 마음은 모르겠다.

 수술은 별 걱정 안한다. 수술 후에는 문제가 있다. 한 달 정도 밥을 아주 천천히 먹어야 한다고 하는데, 아버지는 치매 걸린 이후에 먹는 속도가 매우 빨라졌다. 데이케어센터를 이용하지 않는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에 아버지 밥 먹는 걸 어떻게 컨트롤 하는냐가 문제다. 한 두달 정도라면 나랑 동생이랑 번갈아 가면서 아버지를 만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동생은 동생대로 아버지가 암 수술을 하는데, 본인이 병원에 가지 못하는 일로 마음이 어둡다. 아버지 사업 실패 - 사업이라고 할 수도 없었지만 - 때문에 산산조각 났던 가족이 아버지 치매랑 위암 때문에 대동단결하게 됐네. 씁쓸하다.

 아버지는 스스로를 잘 컨트롤하지 못하는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나에게 인생은 어떤것이다, 라고 한 적이 없다. 아버지에게는 인생이 어떤 것이라는 인식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 스스로는 삶에 자신감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뚜렷한 목표라던가 계획이 없었다. 그저 80년대 중후반을 관통한 경제 호황이라는 시대 분위기에 따라서 막연히 다 잘될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도 아버지와 비슷한 종류의 자신감을 피로 이어 받았다. 그게 너무 싫을때가 있다. 모든 자신감에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나는 그렇지 않을때가 많네. 그래서 아직도 내 집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지도 모른다. 엄마에게도 인생을 관통하는 얘기를 들은 적은 없다. 엄마는 그저 열심히 살라고 했다. - 아, 옛날사람 - 아쉬움을 갖고 이런 얘기를 적지만 밥을 굶거나 맞고 자라지 않은 것만해도 천만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냥 산다. 너로 산다. 사랑으로 산다. 술로 산다. 그냥 사는 걸 포함해서 뭘로든 살기만 하면 되는건가? 그냥 사는 거랑 되는대로 사는 건 많이 다른 느낌이네. 그냥 사는 것에는 의지가 들어있다. 되도록이면 그냥 살자. 아버지 걱정은 퇴원 후로 미루자.

 아버지 입원한 날 <집>에 대해서 생각한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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