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
바람 불면 떨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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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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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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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끝에 한 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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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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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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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불면 흩날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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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날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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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날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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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만 남은 나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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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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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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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ARTICLE 분류 전체보기 | 1820 ARTICLE FOUND
- 2023.11.01 20231101 - 어쩌다 하나씩
- 2023.10.30 20231030 - 내가 옆에 있으면 좋겠는 아버지 생각
- 2023.10.20 20231020 - 어쩌다 하나씩
- 2023.10.15 20231015 - 치매가 무르익어가는 아버지 생각
- 2023.10.11 20231010까지 사진 모음(B컷)
- 2023.10.10 20231010까지 사진 모음
- 2023.10.08 20231008 -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아버지 생각
- 2023.10.05 20231005 - 어쩌다 하나씩
- 2023.09.24 20230924 - 어쩌다 하나씩
- 2023.09.17 20230917 - 추석 벌초 생각 2
- 2023.09.11 20230911 - 아버지랑 같이 사는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 생각
- 2023.09.03 20230903 - 친구 만나고 와서 생각
- 2023.09.03 20230903 - 어쩌다 하나씩
- 2023.08.31 20230831 - 어쩌다 하나씩
- 2023.08.30 20230830 - 8월이 다 간 아버지 생각과 짜증
- 2023.08.27 20230827 - 서울 다녀온 생각
- 2023.08.22 20230822 - 어쩌다 하나씩
- 2023.08.17 20230817 - 어쩌다 하나씩
- 2023.08.15 20230815 - 광복절에 무기력한 생각
- 2023.08.12 20230812 - 어쩌다 하나씩
- 2023.08.10 Double Dragon(1987, TECHNOS JAPAN CORP.) 원코인 기록
- 2023.08.09 Pocket Gal(1987, DATA EAST) 원코인 기록
- 2023.08.08 Power Spikes 한국판(1991, Video System Co., Ltd.) 원코인 기록
- 2023.08.08 Super Slams(1995, Banpresto) 원코인 기록
- 2023.08.07 20230807 - 어쩌다 하나씩
- 2023.07.31 20230731- 여름과 에어컨과 아버지 생각
- 2023.07.31 20230731 - 어쩌다 하나씩
- 2023.07.26 20230726 - 멀리서 생각만 해보는 아버지 생각
- 2023.07.25 나는 나무
- 2023.07.25 물고기송
토요일에 아버지 만나러 갔다가 일요일에 돌아왔다.
2주 전과 비교해보면 아버지는 변한게 없다. 더 나빠질 거리가 얼마든지 있는데, 변한 게 없다는 건 좋은 거다. 강릉에 사는 아버지 사촌 누나가 - 나한테는 오촌 고모 - 치매에 걸렸단 소식을 들었다. 고모는 무서워서 집에서 못자고 옆집에 가서 재워달라 하고 - 옆집에서 몇 번 재워줬다 함 - 손가방에 들어있는 물건들을 꺼냈다 넣었다하길 반복한다고 한다. 아버지는 갑자기 길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한겨울에 반바지를 입고 외출을 하는 사람이 될 수도, 먼저처럼 집 안 아무데나 오줌을 누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치매가 무섭다.
토요일 저녁에 전복죽을 맛있게 드시길래 기분이 좋았다. 일요일 오전에 혼자서 계속 횡설수설 얘기해서 들어드렸다. 무슨말을 하려는지 알 때도 있고 전혀 모르겠는 때도 있다. 외로운 우리 아버지 계속 떠드시라고 계속 추임새를 넣어드렸다. 점심에 무한리필 고깃집에 갔다. 일반 삼겹살 집에 갔어도 괜찮지만 어쩐지 아버지랑 무한리필 고깃집에 한 번은 가고 싶었다. 내 욕심이다. 아버지 접시 위에 올려 놓은 갈비를 맛있다고 하면서 잘 드셨다. 위암 수술 끝나고 6개월 지난 이후로는 먹는 양이 조금 늘어난 거 같기도 하다.
점심 먹고 서서울호수공원을 걸었다. 아버지가 기분이 좋은지 뭐라뭐라 계속 얘기하길래 계속 추임새 넣어드렸다. 왼손, 오른손 바꿔가며 아버지 손을 잡고 걸었다. 공원에는 연인들, 가족들, 강아지랑 나온 사람, 텐트 안에서 쉬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랑 아버지도 가족들 범주에 포함된다. 아버지가 치매에 걸리는 바람에 뒤늦게 아버지랑 일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 또는 일반적인 - 공원 산책 같은 걸 해본다. 밥을 같이 먹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 와중에 엄마는 약간 소외되고 - 엄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 사는게 쉽지가 않다.
12월 초에 아버지 인지검사가 있다. 인지검사 전에 장기요양등급 4등급 받는 건으로 데이케어센터 선생님들과 상담을 하고 4등급을 받게 된다면 '재가' 등급을 ' 요양' 등급으로 변경 신청해서 아버지를 요양원으로 보내는 게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다. 가장 좋은 선택은 아버지가 나랑 같이 살면서 주간보호시설에 나가는 일이고 그 다음 좋은 선택은 내가 매주 토요일마다 아버지를 만나러 가서 일요일에 돌아오는 것이다. 강릉과 서울은 가깝고도 먼 거리다. 아버지는 혼자서는 지내기 어려운 사람이 됐지만 누군가 옆에 있기만 하다면 요양원에 갈 정도는 아닌 상태다.
최후 또는 최종 선택으로 아버지가 요양원에 간다면 나는 아버지를 자주 찾아가진 않을거다. 내 역할은 거기까지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버지를 요양원으로 보내는 선택이 꺼려지는 건 누군가 옆에 있으면 괜찮을 거 같은 아버지를 바라보는 자식의 정이다. 아직까진 아버지가 나랑 엄마는 알아보니까 젓가락질도 잘 하니까 맛있는 걸 먹으면 맛있다고 하니까. 공원 산책 중에 나무 사진을 찍는 나에게 나도 그거 해달라고 하니까. 거의 모든 명사와 이름을 잊었고 며느리를 사모님이라고 하지만 어떤날은 정신이 맑은 것 같기도 하니까. 답을 알지만 아직 시간이 남아 있으니까. 2번째 정답인 강릉이사를 추진할까? 답에 체크를 하지 않고 이리저리 머리만 굴리고 있다.
가을엔 벤치
가을엔 벤치다
볕이 잘 드는 공원 벤치에 앉았다
애인이나 친구를 기다린다고 해도 좋고
산책이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일도 좋다
걷는 사람도 뛰는 사람도 자전거를 탄 사람도 있다
아장아장 손녀가 할아버지 손을 잡고 있다
손녀가 할아버지 손을 놓고 조금 뛰어간다
이내 뒤돌아 할아버지에게 달려와 안긴다
할아버지 얼굴 주름 사이사이로 풍만한 만족감이 넘친다
내 얼굴에도 기분좋은 미소가 흐른다
누가 봐주지 않아도 그 정도는 알 수 있다
누군가 봤다면 얼굴 좋다고 했을거란 걸 안다
벤치에 앉아서 내게 오지 않을 미래를 본다
기다리는 사람이 오지 않아도
가을 벤치에 앉아서
저녁이 오는 걸 무심히 바라본다
1박 2일 아버지랑 같이 있다가 헤어지고 인생 첫서브웨이 샌드위치를 먹은 날, - 짰다. 앞으로 안 먹을 듯 - 청량리역에서 강릉가는 ktx 기다리면서 쓴다.
어제 아버지가 냉장고 좌측 구석 커피 믹스 상자에 오줌 눈 걸 발견했다. 위쪽을 벗겨놓은 커피 믹스 상자를 요강으로 착각한걸까? 엄마도 같은 자리에서 한 번 목격 했다고 했으니 아버지가 화장실이 아닌 곳에 오줌 눈 게 확인된 것만 두 번째다. 오줌 닦아내고 세제로 장판 닦고 커피믹스 80개 정도를 수돗물에 헹구면서 '아버지, 화 내는 게 아니에요, 오줌을 화장실에 눠야지 여기다 누면 어떡해요.' 계속 떠들었다. 아버지는 본인이 그럴일이 없다면서 바락바락 우기다가 아버지 혼자 사는 집에 아버지가 아니면 누가 그러냐는 내 얘기를 듣고 우기기를 멈췄다. - 나랑 아버지랑 같이 멈췄다고 봐야겠지. - 아버지가 오줌 싼 자리에 식탁을 집어 넣었다. 엎으려 들어가지 않으면 그 자리에 갈수 없으니 앞으로 그 자리엔 오줌 누지 않길 바란다. 내 바람대로 됐으면 좋겠다. 락스+ 페브리즈, 엊저녁부터 창문을 열어뒀음에도 오늘 오후에 아버지 집을 나올 때까지 아버지 집에서는 찌린내가 났다.
어제 저녁엔 육개장을 먹고 오늘 점심엔 장어를 먹었다. 아버지는 지난주보다 먹는 모습이 더 어설퍼 보였다. 순댓국만큼 익숙하지 않아서인가? 아버지는 본인이 뭘 먹는줄도 모르는데, 장어를 먹을 때보다 기본으로 나온 된장국에 밥 말아서 먹는 게 더 편해 보이는데, 장어집에 간 건 아버지랑 같이 먹은 가짓수를 늘리기 위한 내 욕심일 뿐인가, 생각했다. 장어 구워주던 아주머니가 아버지랑 내 대화를 듣고 이버지가 치매인 걸 알았고 나랑 눈 마주쳤을 때 서로 얼굴로만 웃었다. 앞으로 아버지랑은 순댓국만 먹기로 한다. 아버지는 치매 걸린 이후로 밥 먹을 때 냅킨을 콧구멍에 자꾸 갖다댄다. 콧물이 흐른다고 느끼기 때문인데, 실제로 콧물이 나진 않는다. 예전엔 그런가보다 했는데 요즘은 그 모습을 보면 속으로 화가 나기도 한다. 내가 화 날 이유가 있나? 아버지가 알츠하이머성 치매란 게 짜증나서?
지난 수요일에 술 먹고 아버지랑 통화하다가 아버지한테 짜증을 냈다. 아버지도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많이 취했기 때문에 언성 높이며 통화했던 이미지만 남았다. 다음날 통화 시간을 확인해 보니 6분이었다. 내가 만취 했을 때의 애증 시간. 아버지와 나의 거리. 고작 6분. 다음날 아침에 아버지가 어제 본인이 화를 낸 것 같다고 하길래. 그런 일 없고 다 괜찮고 잘 하고 있다고 했다. 아버지에게도 본인이 언성을 높인 이미지는 남아 있었나보다. 아버지는 그 통화를 영영 잊었지만 나는 여기에 기록으로 남겨 놓으니 영영 잊지 못할지도 모른다.
아버지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기 때문에 일요일에도 돌봄 서비스를 하는 데이케어센터를 알아봤는데 좀 더 적극적으로 알아봐야겠다. 요양병원은 아직 너무 이르다. 엄마랑은 계속 얘기 중이고 동생에게도 이런 상황을 전달했다. 근데 어쩌면 요양병원이 이르지 않은건지도 모른다. 이것저것 많이 알아봐야겠다.
장어 먹고 아버지랑 한참 걸었다. 아버지가 이런저런 얘기를 혼자서 떠들다가 '이렇게 살아 뭐하나 생각이 들지만 살아야지.' 라고 했다. 왜 살아야 되는데요? 물으니 대답을 못하길래. 살았으니까 살아야지요. 했다. 아버지가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게 약간 놀라웠다. 내가 살아야 한다는 글을 많이 쓰는 게 아버지 유전인가? c8 유전자.
아버지랑 한 동네 사는 아버지 친구가 한 명 있는다. - 아버지한테 잘해주는 정말 고마운 아저씨다. - 아버지가 그 아저씨 얘기를 자꾸 하면서 전화도 안 한다면서 짜증을 냈다. 그러면서 지갑이랑 텔레비젼 리모콘을 번갈아 들면서 여기서 찾으면 된다고 했다. 휴대폰이 어떻게 생긴건지도 모르는 사람이 된 아버지 전화기로 그 아저씨한테 전화했다. 잠깐 통화하더니 친구한테 간다고 해서 나도 아버지 집을 나왔다. 그게 오후 세시다. 아버지 친구도 아버지한테 많이 지쳤을텐데. 그래도 가끔 아보지를 들여다 봐주시니 고맙다.
우리 아버지는 정신이 나갔고 외롭고 살고 싶다.
어제 집을 나와서 강릉역 가는 길에 비가 시작됐다. 서울가면 비 안오겠지 싶어서 비 맞고 15분을 빠르게 걸었다. 청량리역에 내렸을 때 비가 오지 않았다. 굿. 아버지는 이런 판단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됐지. 오래전에.
오늘 아침에 서서울호수공원을 계통없이 돌았다. 공원 사이즈랑 조경을 보면서 돈이 좋구나 서울이 좋구나 같은 걸 생각했다. 미루나무를 잊고 싶지 않아서 바닥에 떨어진 미루나무 잎을 찍었다. 한 친구에게 가을이 무슨색인지 물으니 낙엽색이라 했다. 나도 이미 낙엽의 나이다. 그럼 우리 아버지는 부서진 낙엽인가? 공원을 나와서 스벅에서 라떼를 마셨다. 스벅 회장이 극렬한 시오니스트라는데, 내가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살아야지, 정신에 따라서 그냥 먹었다.
일요일 아침. 한적한 찻집에서 커피를 마시며 전쟁도 인생도 사랑도 세상 모든 것이 끝이 언제일진 모르지만 끝이 있다는 건 안다는 일에 대해서 생각했다.
아버지 집에 오랜만에 왔다. 내가 담배 사러 나갔다 온 사이에 잠든 아버지 침대 옆에 누워서 쓴다.
어젯밤에 아시안 게임 야구랑 축구에서 한국이 금메달을 땄고 밤 사이에 중동에선 전쟁이 났다. 전 세계에 큰 전쟁이 두 개인 어지러운 세상이다. 나를 제외한 전 인류가 치매에 걸린 세상을 생각해본다. 아버지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그렇다.
추석 연휴에 집에서 혼자 쉬었다. 아내는 영국에 갔고 엄마도 아버지도 연휴 다음주에 만나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이다. 가족이라는 책임감에서 잠시 떨어져있고 싶었다.
어제 엄마 집에 갔다. 오산 터미널에 내려서 엄마집까지 1.2킬로미터 정도를 걸었다. 오산은 중국 사람들의 도시다. 돈 벌어서 건물을 산 사람도 많다고 한다. 수 많은 양꼬치집과 젊은 외국인 여자가 그려진 다방과 술집, 미용실 간판을 보면서 오산은 한동안 인구가 줄어드는 문제는 없겠구나 생각했다. 중국도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으니 그것도 길진 않겠다. 그리고 대로변에 데이케어센터가 많이 보였다. 치매 문재는 전국 공통이다. 오랜만에 엄마 만나서 엄마가 차려준 저녁밥을 먹었다. 엄마 앞에서는 더 잘 먹어야 된다는 생각이 있다. 엄마는 65살 치곤 많이 늙었다. 젊어서 고생한 결과다. 그 결과물을 투자 실패로 절반 가까이 날리게 생겼다. 그 마음 고생으로 최근에 더 늙었다. 아이고 우리 엄마.
아침에 아버지한테 왔다. 어제 아침엔 통화를 했는데, 오후엔 전화가 안됐다. 단순히 전화기가 꺼진 거였으면 좋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버지는 전화기에서 유심을 빼버렸다. 온 집안을 샅샅이 뒤지면서 10리터 쓰레기 봉투 다섯 개를 소비하고 쓰레기통까지 뒤졌지만 못 찾았다. 티월드에 가서 유심 다시 받으려 했는데 신분증이 없어서 안된다. - 티월드 네 군데를 돌았는데 연휴라 문을 안 열었고 마지막엔 전화 해보고서 영업중인 곳에 방문했다. - 다행인 건,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아버지 신분증을 엄마가 갖고 있다는 것이다. 10일이 아버지 병원 가는 날이다. 유심 문제는 그날 엄마가 진행하면 된다. 나는 조만간 평일 휴가 쓰고 서울 와서 아버지 핸드폰 해지하고 내 명의로 알뜰폰 개통해서 아버지한테 주기로 마음 먹었다. 치매에 걸린다는 건 본인 명의가 점점 없어지는 일이다.
아버지는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사람이 됐다. 내가 주말마다 올라오거나 일요일에도 운영하는 데이케어센터로 옮겨야 한다. 당분간 내가 주말마다 올라오면서 새로운 센터를 알아봐야 한다. 강릉에 일요일에도 운영하는 센터가 있다면 아버지 이사를 추진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사람이 된 아버지는,
뭐가 뭔지 모른다. 머리빗을 구두주걱으로 쓴다. 남의 말을 더 안 듣게 됐다. 한 음절씩 인지시켜도 문장을 이해할까 말까다.일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한 사람이 됐다. 점심 먹다가 이마가 왜 까졌냐 물으니 자동으로라고 대답했다. 티비로 프로 축구를 보는데 공이 어디 있는지는 모르고 유니폼 색깔만 하얀거 파란거 하면서 말했다. 아버지가 하얀거라 한 유니폼 색깔은 빨강이었다.
긍정적인 건, 많은 이름을 잊었지만 내 이름은 잊지 않았고 사람들 얼굴은 잊지 않았다는 것과 지금 사는 신월동에선 길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축구 보다가 '축구는 전쟁이다' 라고 쓴 플래카드가 화면에 잡히니까 따라 읽었다. 그러니까 한글 읽는 법을 잊지 않았다.
오늘 저녁까지 같이 먹고 강릉으로 돌아오려 했는데, 내일 점심까지 같이 먹기로 했다. 오늘 기차표를 취소하고 내일 기차표를 끊었다. 아내에게 아버지의 9월 전기요금 고지서를 찍어 보냈다. 요금 계좌이체 때문이다. 이런 별것 아닌 일들이 다 스트레스다. 어제 신었던 양말 오늘도 신길 다행이라 했더니 아내가 웃었다. 그걸로 오늘 최고의 위로를 받았다.
아버지 만날 때마다 너무 힘드네.
그 사람
바닷가에서 실종된 공군 부사관
낚시를 하러 나갔는데 연락이 없어 신고한 그의 아내
방파제 주변으로 드론이 날아 다니고
경찰옷을 입은 사람과 군인옷을 입은 사람들이 회의를 한다
실종 이틀 째, 6일짜리 연휴의 마지막 날
테트라포트 사이에서 죽은 몸뚱이를 건져 올리고
앰뷸런스와 소방관들이 다녀가고
경찰옷과 군인옷의 회의에 사복을 입은 사람들도 더해졌다
웅성거리는 곳의 반대편, 방파제 끝에서 한 사람이 낚시를 한다
소란은 점점 커지는데, 짜장면 배달 오토바이가 방파제 끝에 다녀온다
남들 다 쉴 때 쉬지 못해서 연휴 마지막 날에라도 마음 편하게 쉬고 싶었던 그 사람
방파제 끝에서 낚시가 하고 싶었던 그 사람
퉁퉁 불은 짜장면을 먹으며 행복했을 그 사람
짜장면 한 그릇은 시켜 먹을 여유는 있지만
실종자 소식을 알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없는 삶을 사는 그 사람
사건 현장 주변의 사람들이 다 욕을 했지만
욕먹을 만큼 나쁜 삶을 살지는 않은 그 사람
테트라포트 위에서 실족 후 추락해도 신고해 줄 사람 하나 없는 그 사람
추분
흰 구름에 하늘에서 빌린 가을 빛이 묻어 있다
한낮의 천변엔 사람들이 물빛처럼 반짝거린다
세월이 잔뜩 묻은 담벼락 너머로 탱자가 누렇게 익었다
점프,
굳이 하나 따내려다 가시에 찔렸다
아야, 피
흔들린 가지에서 열매 몇 개가 후두둑 떨어진다
손 끝에 피를 빨아 먹고 탱자를 줍는다
몹쓸 쓸모에도 기분은 화사한
머릿속이 파란 하늘로 가득찬 가을날
9월 16일, 분주했던 하루였다.
10시에 머리 잘랐다. 아내는 나랑 다른 미용실에서 10시에 머리 잘랐다. 둘 다 네이버 예약하고 갔고 둘 다 미용실에 열 시에 연다는 걸 알았다. 이발소에선 아침 6시에 머리 자른적도 있지만 미용실은 보통 열 시에 오픈하는구나 생각했다.
벌초 다녀왔다. 할아버지 한 분 할머니 두 분 무덤이 - 무덤을 산소라 하는 건 왜인가? 한국에서는 직계 조상의 묘를 산소라 한다는데..... - 강릉에 있고 나는 할아버지의 장손인데 강릉에 산다. 명절 가까워지면 벌초하러 가서 작은 아버지 도와야 한단 생각은 하지만 먼저 전화하게 되진 않는다. 손가락이 움직이질 않는달까. 작은아버지 쪽에서도 어떤 부담이 - 본인 부모님 무덤이니까... - 있어서 나에게 흔쾌히 연락하진 않는다.
벌초 날짜도 아버지가 강릉에 온다는 것도 전날 알았다. 엄마를 통해서 그 사실을 알고 나니 jj작은 아버지, 강릉 작은어머니에게 연이어 전화가 왔다. 다른 건으로 둘째 이모랑도 두 번 통화했다. 어른들과 통화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되고 마음은 탈수 직전이 된다.
구미 사시는 큰 고모가 강릉에 왔다. 아버지 쪽 오 남매가 다 모이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려나? 이번 벌초에 그 정도의 의미는 있었다. 근데 아버지는 누나도 동생들도 못 알아보는 것 같았는데...
이번 벌초 행사를 통해 얻은 정보 등(무작위)
- 막내 삼촌 올 초에 회사 그만둠. 회사 스트레스로 11년간 신경정신과 다닌 얘기를 이제 와서니까 얘기할 수 있다고 함.(71년 생인데 옛날 사람인건지, 그런 자존감 때문에 대기업에서 높은 자리까지 간 건지)
- 벼 이삭이 맺힐 때 즈음 날이 너무 더워서 강릉 일부 지역의 벼농사 결과물에 검은 벼가 많다고 함.(쌀값이 만만치 않겠네요, 삼촌에게 물으니 정부 비축분도 많지 않다고 함. 이렇게 위기는 서서히 현실이 되고 나 또한 물 끓는 양은 냄비 안의 개구리)
- 아내가 가족 행사에 참석했다. 쏘리 앤 땡큐(쏘리가 먼저 나오네)
- 엄마가 바닷가에 발 담그고 놀았음 사진도 찍었다.(나도 기분 안 좋지만 피눈물을 흘려서 번 돈이라도 투자 실패는 엄마 본인 책임임)
- 아버지랑 경포 바닷가에서 셀카 찍음.(엄마랑도 찍을 걸)
- 추석 때 차례 지내러 안 가기로 함.(그 다음 주말에 오직 엄마만 보러 갈게요)
- 아버지랑 통화할 때 강릉 오고 싶어하기에 한 번 모셔와서 태어난 동네 보여드릴까 싶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됐다.(아버지는 본인이 현재 서 있는 곳이 어딘지 모르는 사람이 됐다.)
무덤 앞에 음식 차려놓고 절 하기 전에 엄마가 내년 벌초 때도 또 오겠다고 무덤에 대고 말했다. - 엄마 안 그래도 되는데...- 엄마는 본인의 투자 실패가 조상에게 못한 탓이라 생각할 수도 있는 사람이니까 그냥 두자.
아버지는 멍했다. 산소에서도 바닷가에서도 작은집에서 밥 먹을때도 멍했다. 누나 이름도 동생들 이름도 며느리 이름도 모른다. 고모들은 약간 속이 상했던 것 같다. 그래도 누나랑 동생인 건 아는 것 같았다. - 모르는 것도 같았다. - 멀리 있는 내 아내를 가리키며 '와이프' 라고 했다. 우리 아버지 와이프란 단어는 잊지 않았네. 많이 썼던 말이기 때문이겠지.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에 대한 아내의 소감은 '평범한 치매 노인' 이었다.
가족 모임 끝나고 아내랑 잠깐 시간 보내고 남현이랑 남현이 여친 - 남현이 본인이 애인이란 말대신 여친이란 말을 씀 - 잠깐 만났다. 친구가 차 끌고 당일치기로 강릉에 오고 추석 연휴에는 여수에 놀러 가는 것 나랑 카톡할 때 톡 안에 어떤 애정이 있는 것이 사랑의 힘이라 생각한다. 연애의 힘인가? 사랑이라 생각하는 착각의 힘? 아무튼 힘이다. 연애하는 친구가 살짝 부럽기도 하네.
2023년 무력한 내 삶의 가장 큰 원동력은 아내인가 턱걸이인가? ㅋㅋㅋ
사랑인가? 물으니 사랑이지만 사랑인가? 묻는 순간 사랑이 아니기도 하다.
답이 정해졌지민 정해지지 않은 질문
말이 없는 건 죽은 자 뿐인가? 아버지를 보면서 이 질문을 떠올린 날이다.
아내가 제발 복권 좀 사라는 내 소원을 들어준 날이었다는 걸 기억해 둔다. - 결과는 낙첨 -
주말에 아버지 만나고 왔다. 먼저 만났을 때보다 더 수척해졌다. 위암 수술 영향일 뿐 몸에 어떤 문제가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밥을 먹는데, 억지로 다 드실 필요 없다는 말을 자꾸하게 되고 아버지도 알았다고 하면서 억지로 다 먹지는 않는다. 이렇게 대화가 통하는 일은 좋다. '아버지, 조기 축구 사람들 중에 아버지 좋아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일요일에 심심해도 거기 가지 마세요.' 본인도 그 사실을 알고 알았다고는 하지만 다음주 일요일에 아버지는 거기 또 가겠지. 이것도 대화는 통화는 일인가? 아버지가 밥을 많이 남기기 때문인지 나도 억지로 다 먹지 않는다. 나도 올해들어 먹는 양이 좀 줄었다. 여전히 술 마실 때는 많이 먹게 되지만 어렸을 때 많이 먹던 것 생각하면서 배가 터지도록 먹지 않아도 금방 배가 부르다. 나이 먹어서 그렇다. 곧 마흔 다섯이 된다. 아버지가 마흔 다섯이었던 건 1997년 정도인가.
우리집은 90년대 초반엔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망했고 97년 말에 IMF 사태가 났고 나는 98년 1월에 군대를 갔다. 아버지는 대충 마흔 살 즈음부터 수입이 없었네. 지금 마흔 살은 굉장히 팔팔한 이미지지만 - 40대 초반에 첫 결혼을 하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 아버지 세대의 마흔 살은 뭔가를 새롭게 시도하지 않을 나이였을 것 같다. 아버지 나름대로는 어떤 노력이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식당을 나가려고 일어서는데, 아버지랑 같이 사는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 서울로 직장을 옮긴다는 내 계획이 실현된다면 신월동에서 대중교통으로 왕복 3시간 20분 출퇴근을 하고 퇴근길에 운동하고 집에 돌아와서 아버지랑 잠깐 대화를 나누고 아버지 간식 챙겨주고 같은 방에서 자고 아침에 씻고 출근하면서 아버지에게 데이케어센터 잘 다녀오시라고 하고 토요일 저녁이랑 일요일에는 아버지랑 호수공원을 산책하기도 하고 맛있는 거 사 먹는 반복. 그 모습이 그려지지 않은 게 아니라 내가 그렇게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게 맞다. 아버지를 매일 보는 삶을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공포 또는 확신.
그래서 슬퍼졌다. 아내에게 카톡을 보내고 나니 또 슬퍼졌다. 9월 시작하고 달력 넘기자 마자 탁상 달력 9월 22일 칸에 '어일우 연가 쉬고 싶다' 라고 적어 뒀는데, 마흔 다섯의 나는 진짜로 좀 쉬고 싶다.
어제는 토요일, 즐거운 토요일, 출근 안하는 날은 항상 좋은 날이다.
춘천 가서 친구랑 점심 먹고 왔다. 단지 점심을 먹으려고 스마트폰 음악을 블루투스로 들을 수 있는 자동차를 타고 강릉에서 춘천까지 당일치기로 왔다갔다 할 수 있는, 바로 지금이 나의 호시절이다.
친구는 나보다 두 달 늦게 입사 했고 정선에서 같이 직장 생활의 초년 시절을 보냈다. 정선에서는 질 떨어지는 팀장 새끼들을 만나서 개고생을 했지만 태백에서는 좋은 팀장들을 만났고 가족이 있는 춘천으로 옮긴지 4년째인데, 춘천 근무도 행복하다고 한다. 행복해서 다행이다. 세상 많은 일이 어떤놈과 함께 하느냐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빛과 어둠으로 갈린다. 팀장 복 없기는 나도 매 한 가지긴 했지만 그 친구 정도는 아니다. 나도 현 직장으로 옮기고서는 행복한 편이다.
친구는 교육환경이 좋은 동네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다. 친구는 내년에 학교에 가는 7살 - 70개월 밖에 안 살긴 했지만, 윤석열 나이로는 5살이네 - 딸이 있다. 아내와 맞벌이를 하고 직장에선 칼퇴근을 한다. 아내 직장이 12시 출근 21시 퇴근이라 5시 퇴근하고 나서 21시까지 아이와 함께 한다. 아이와 함께 있는 게 즐겁기도 한데, 지겹기도 하고 아이가 학교에 가면 지금보다는 본인만의 자유가 생길 것 같다고 했다. 아이는 아빠 엄마를 적절히 닮았고 귀여운 편이었다. 나한테도 말을 잘 걸어줬다. ‘최애의 아이’ - 애니를 보지 않았다고 한다. - 오프닝 곡을 틀어줬더니 한글도 이제 알기 시작했다는 아이가 일본어 노래를 중간중간 따라 불렀다.
친구랑 먹은 숯불 닭갈비는 아주 맛있었고 - 친구는 항상 춘천 놀러오면 숯불 닭갈비 사준다고 했더랬다. - 커피를 마시러 간 카페는 야외 공간을 포함해서 엄청난 규모였다. 춘천은 수도권이 가까워서 그런가? 생각했다. 드립 커피를 두 잔 마셨는데 플라스틱컵은 에러였지만 커피는 맛있었다. 나를 포함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토요일 오후 도심 외곽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정도로는 호시절을 보내고 있다.
친구랑은 옛날에 같이 일하던 시절 얘기랑 현재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했다. 같은 업종에 있다는 건 그런 거다. 일로만 따지면 내 직장은 아주 행복한 편이다. 일 얘기 중간중간에 가족들의 안부를 묻고 앞으로의 계획들을 얘기했다. 친구란 그런 것이다. 친구네 집 앞에서 담배 한 대 피우고 헤어졌다. 친구는 나를 무척 반겨줬다. 아이 돌보느라 또래 친구들을 따로 만나는 일이 오랜만이라 그런가보다 생각했다. 나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참 반가웠다. 위로가 됐다. 춘천까지 갔다는 것과 술을 안마셨다는 걸 빼면, 평범하게 친구를 만난 하루였다. 강릉에서 친구랑 술 마셨으면 진짜 평범한 하루였나? 보편적인 거, 평균적인 거, 평범한 걸 생각해 본다. 이런 생각한지 오래됐다.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서 보헤미안 경포점에서 모닝세트에 커피 추가해서 마셨다. 올 여름 이후로만 모닝세트 먹으러 다섯 번은 간 것 같네. - 아내는 자고 있다. - 강문해변에 생겼다는 머슬비치에 가봤다. 주차할 곳이 호텔 주차장 밖에 없어서 내가 일부러 찾아가는 건 오늘이 마지막일 것 같고 지역주민들이 산책하다가 운동하기는 좋을 것 같았다. 턱걸이 몇 개 하고 집 근처까지 와서 오랜만에 농구를 했다. 오랜만에 해서 그런가? 자유투도 삼점슛도 잘들어 가서 기분이 좋았다. 마지막 삼점슛을 클린으로 넣고 집에 와서 씻고 세탁기 돌리고 아내가 집을 나가자마자 라면 끓여 먹고 지금까지 대충 10시간 누워 있었다. 배캠 듣다가 잠들었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와서 나에게 어떤 부탁을 했다. - 나한테 또 부탁을 했네. - 잠이 안 깼으면 저녁 안 먹고 그냥 잘까도 싶었는데, 잠이 깨는 바람에 피자 시켜 먹었다. 나는 피자를 좋아한다. 치즈의 짠 맛이 좋다. 보통은 동네에서 가장 싼 피자집에서 시켜 먹는데, 얼마전에 이제는 그러지 않기로 마음먹었기에 피자헛 피자를 시켰다. 맛이 없다. 다음엔 할인도 거의 없고 세트메뉴 같은 거 없는 파파존스에서 시키자. 배달 시키면서 싸거나 할인 많이 해주는 곳을 찾는 게 보편적이긴 하다. - 이러면서 보편적인 걸 또 생각해 본다. - 최근 네 달 사이에는 아내가 좋아하는 페리카나 양념치킨도 할인 적용으로 포장 2만원 이하일 때만 두 번 사 먹었다. 이렇게 하루가 갔네. 내일 출근하면 또 바로 퇴사하고 싶을까? 궁금하네.
친구의 삶은 그 나름대로 보편적인 삶이고 내 삶도 내 나름대로 보편적인 삶이다. 그 뿐이다. 그러니 세상에 화내지 말자 사람에게 화내지 말자.
아버지랑 두 번 통화했는데, 아버지는 오늘 무탈한 하루를 보낸 것 같다. 굿.
아침에 커피 마실 때, 교회가기 전에 모닝세트 먹으러 온 네 명의 아주머니가 돌아가면서 며느리 욕을 하길래, 엄마 생각이 나서 전화를 해봤다. 엄마한테 아주머니들 얘기를 했더니 엄마가 웃었다. 일단 엄마는 며느리 욕할 친구가 없고 - 이모들이 있나? - 며느리 욕을 할 만큼 며느리에 대해서 아는 게 없다. 암튼 엄마가 웃어서 좋았다. 엄마가 웃었던 그 순간을 기억해 둔다.
아끼는 마음
바깥은 더우니까 지하철에서 시간을 끈다는 노인들 마음이
어릴적 오락실에서 동전 넣은 거 아까워서 조금이라도 더 오래 게임기 앞에 있으려던 내 마음과 닮았다
느니타무 무료급식소에서 서로 먼저 먹겠다고 시비가 붙어 한쪽이 피를 보고야 마는 일이
무한리필 고깃집에서 이미 배가 부른데도 고기한 접시 더 가져와 구워먹는 일과 닮았다
잔칫집 뷔페에서 미리 준비해 간 비닐에 떡을 싸오는 일
사무실 믹스커피를 집에 가져와서 먹는 일
술 먹고 밤늦게 회사로 돌아와서 초과근무를 찍는 일
아내가 양념 치킨이 먹고 싶다고 해도 할인을 할 때만 포장해서 사다주는 일
문 닫을 시간에 마트에 가서 49프로 할인하는 족발을 살 때도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일
단골 분식집 사장님이 김말이 튀김 하나 더 주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일
내가 술값 내려 했는데 친구가 술값 내주면 두고두고 고마운 일
가엾고 안타깝고 화가 날 때도 있지만
아끼는 마음이야말로,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다
사장님
대리운전 기사분들은 처음 보는 나한테 왜 사장님이라고 하나
나 기분 좋으라 그러나
사장 소리 들어도 기분이 좋진 않다
집주인은 세들어 사는 나한테 왜 사장님이라고 하나
본인이 사장님 소리 듣고 싶어서 그러나
주인님이라 불러주면 좋이할까
누구나 다 사장님이 되는 곳
fucking 사장님, 소리 듣고 싶은 우리나라
아버지 집 벽에 5월까지는 커다란 달력이 걸려 있었다. 날짜, 요일 개념은 없지만 아버지가 그 달력에 동그라미도 치고 '병원' 같은 단어를 적어 두기도 했고 내가 손가락으로 날짜를 가리키면서 오늘은 무슨 요일이라고 하면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6월에 아버지한테 갔을 때, 달력이 없어졌다. 날짜 가는 줄 모르고 한 장씩 찢다가 끝까지 넘어가 버린 것이리라. 새 달력 구해 드려야지 생각은 몇 번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없어도 그만인 물건이니 간절하게 생각하지 않는건가? 내 일 아니니까, 란 생각인가?
일요일 오후에 아버지랑 1시간 통화했다. 이렇게 길게 통화한 경우는 처음이다. 날짜랑 요일, 학교 가는 날, 지금은 밤인지 낮잊지 계속 헷갈려 하길래 계속 알려주면서 얘기 들어줬다. 마지막엔 내 목소리가 살짝 높아지기도 했지만 통화는 온화하게 잘 끝났다. 아버지 얘기를 잘 들어보니까 점심 때 즈음 조기축구 멤버들이 밥 먹는 식당에 혼자 찾아가서 그들과 함께 밥을 먹었고 밥을 먹으면서 그들이 따라주는 술을 마셨고 집에 돌아와서 술기운에 낮잠을 잤는데, 긴 낮잠을 자는 바람에 머릿속에 깊은 혼란이 온 것 같다. 외로워서 그런거다.
지금 다니는 데이케어센터가 참 좋긴한데, 일요일에도 문을 여는 곳으로 옮겨야 하나, 생각했다.
내일이 아버지 병원 가는 날이다. 위암 수술 경과를 보게 된다. 벌써 수술하고 6개월이 흘렀다. 올해 초에 정말 힘들었지. 아버지 건강 상태로 봐서 결과는 좋을 것 같다. 오늘 내일 바빠서 동생에게 부탁했는데, 동생이 알겠다고 한 것을 엄마가 본인이 맡겠다고 했고, 동생도 엄마한테는 회사일이 바쁘다고 한 모양이다. 뭔가 기분이 안 좋다. 지난주 토요일에 아버지가 정확한 말로 '준석이 본지 오래됐어.' 했다. 동생은 애도 둘이고 삶이란 건 누구나 다 바쁘지. 그래도 기분이 안 좋다. 서울로 직장 옮기는 걸 계속 추진해야겠다.
월요일에 출근하자 마자 회사 그만둘까 생각했는데, 순식간에 수요일이다. 다들 그러고 사는거겠지. 근데, 진짜 그만두고 싶다. 다 때려치우고 싶다. 산에 들어가고 싶다는 게 아니라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로 가만히 있고 싶다. 그게 직장인들의 주말인건가? 곧 마흔 다섯살이 되는데, 이제야 나도 보통 직장인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건가? 모르겠다.
어제를 포함해서 최근에 아내한테 두 번 화냈다. 아내가 부탁이란 말로 자꾸 본인 일 심부름을 나한테 시킨다. 어제는 울화가 치밀어서 밤 10시에 와퍼 두 개 시켜 먹었다. 체할뻔했다. 울화가 치미는 사랑이란 말을 가끔 하지만. 나를 폭식으로 몰고가지 마라. 그러지 마라. 그러지 마라. 날 그냥 내버려둬라. 복권 사라는 얘기 말고 내가 너에게 하는 유일한 부탁이다.
금요일에 기차 타고 서울 갔다가 새차 뽑은 거 찾아서 토요일 밤에 내려왔다. 친구들도 만나고 아버지도 만나고 엄마도 잠깐 만나는 일정이었다.
데이케어 센터 선생님들 만나서 아버지 관련 얘기를 주고 받았다. 아버지는 일단 건강하다. 내가 보기에도 센터 선생님들이 보기에도 현재 아버지의 치매는 정체기다. 이 정체기가 쭉 오래 갔으면 좋겠다고 간호부장 선생님이 말했다. 내 마음은 잘 모르겠다. 센터의 간호부장 선생님이 아버지가 처음 센터에 갔을 때부터 아버지에게 많은 신경을 써 준다. 어떤 결이 맞는거겠지. 항상 고맙습니다.
아버지랑 순댓국 먹는데, 아버지가 연신 깍두기를 집어 먹으면서 이런거 먹은지가 언젠지 모르겠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데이케어센터 식단표를 보니 배추김치가 80프로 열무김치가 20프로다. 깍두기를 오랜만에 먹은 게 맞다. 아버지가 영 정신줄을 놓은 건 아니라 안심인가? 잘 모르겠다.
사물의 이름을 잊은 것을 시작으로 시작된 아버지의 치매 증상은 최근에 사람 이름도 잊는 것으로 번졌다. 밥 먹으면서 아버지한테 몇 가지 이름을 확인했다. 내 이름, 동생 이름, 엄마 이름은 잊지 않았다. 그리고 나머지 이름은 다 잊었다. 혹시나 싶어서 동생 큰 아이 이름을 물어봤는데, 어호연이란 이름을 잊지 않았다. 아버지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외웠을 이름이다. 아버지 인생에서 손주가 태어난 것이 굉장히 큰 사건이었구나, 싶었다. Fucking blood. 혈육…..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엄마한테 잠깐 들렀다. 막내 이모 생일이라 함께 밥 먹고 돌아온 둘째 이모랑 이종사촌 동생, 셋째 이모랑 이모부를 만났다. 잠깐 만났으니까 잠깐 대화했고 그 대화가 무탈하게 흘러갔고 약간의 농담과 걱정과 인간에 대한 존중이 섞여 있었다. 운전해서 강릉 돌아오는 차 안에서 어떤 만족감이 있었다. 인간은 서로에 대한 존중 같은 것에서 만족감을 얻는다. 그 존중의 방법이 커뮤니케이션이다.
금요일 밤에 남현이 만났을 때, 예전에 남현이에 대해서 쓴 일기를 보여줬다. - 나도 그런 걸 쓴 줄 몰랐다가 최근에 알게 됐다. - 투박하게 쓴 글인데, 남현이가 좋아했다. 내가 친구에 대한 글을 쓴 게 나에게는 우정의 증명 같은 거고 친구가 그 글을 잃고 좋아한 게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만족감 같은 거다. 남현이가 지금 만나는 애인 잘 만난거 같다고 얘기했다. 남현이는 내가 빈말 잘 안 하는 걸 아니까, 본인의 연애가 존중받는 걸 느꼈을거라고 생각한다. 선비처럼 살 수는 없지만 욕보다는 좋은 말을 많이 해야지 생각했다.
영일군이 새차 사는 거 전적으로 도와줬다. 영일군은 직업상 자동차랑 관련된 일로 친구들 도와주는 거 좋아하긴 하지만 일정 때문에 술 한잔 못 사주고 내려와서 미안하네. 강릉으로 출발하기 전에 고맙다고 문자 보냈는데, 별 말씀을 답장이 왔고 담에 내가 한 잔 사기로 했다. 영일이가 운동 얘기 자동차 얘기 어린이 얘기하면 나는 맞장구 쳐주면서 들어주는데, 이런 것도 존중의 방법이다. 일단은 워낙 친구니까 뭔 얘기든 다 들어주겠지만.
31일이 아버지 위암 수술 6개월 경과 건강 검진이다. 월말에 회사에 좀 바쁜일이 있긴한데, 방법을 찾아서 30일 밤에는 올라가 봐야겠지. Fucking blood. 아버지, 금방 또 봐요.
사랑
다른 누군가를 만났어도
적당히 사랑이라 부르며 살았겠지만
그게 누구든 어떤 사랑이든
당신 만큼은 아니었을거야
-> 오랜만에 사랑
소똥 냄새
여름이 끝나가는 퇴근길
묵지근한 공기에 섞여
차 안으로 들어오는 소똥 냄새
길 양쪽으로 우사라고 부르는 소 사육장
소똥과 메탄가스를 생각하고
명절에는 한 번씩 먹게 되는 소고기를 생각하고
8월이 끝나도록 불같이 뜨거운 날씨와
9월 추석에 먹을 소고기 중에
어느쪽이 내 삶에 더 깊은 관계가 있나
결론이 없는 자주 하는 생각
소똥 냄새가 사라지기 전에
- 유기견 울부짖는 소리 못 살겠다 -
- 개보다 사람이 먼저다. -
- 유기견장 확대 결사반대 -
동물사랑센터 확대 반대 현수막을 지나고
소는 되고 개는 안되나
소는 똥을 싸도 청정지역이고
개가 짖기만 해도 물이 더러워지나
머리 끝까지 차오른 욕을 소똥 냄새 가득찬 차안에 내뱉는다
소는 고기가 되기 전까지 똥을 싸고
주인이 버린 개는 안락사 당하기 전까지 짖고
인간만은 뭘 해도 되는 세상에
나는 내일 출근길에도 이곳을 지난다
광복절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떠도는 짤 중에 10대에 독립운동하다가 붙잡힌 조상님들 흑백 사진이 있다. 일본애들이 촬영한 범죄자 머그샷 모음이다. 다들 눈빛이 총명하고 조선 독립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하고 있다. 나라 잃은 빡침을 겪는 사람들만 할 수 있는 눈빛이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오늘 제가 삽니다.
집, 회사, 운동 또는 술의 반복으로 무력하게 보내고 있다. 앞으로도 쭉 이럴까봐 두렵다. 원인은 미상인데, 미상이 아니다.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 주변일들 때문이다. 채워지지 않는 욕망 때문이다.
올들어 k리그 하이라이트를 유튜브에서 보기 시작했다. 박지성이 맨유에서 뛰던 시절 이후로 참 오랜만에 - 참 오래도 살았다. - 축구에 관심이 생겨서 후반기 들어 강릉종합운동장을 홈구장으로 쓰는 FC강원 홈경기를 세 게임 봤다. 아는 형이랑 한 번, 아내랑 한 번, - 수원 삼성 응원단 짱 - 친구랑 한 번 봤다. 이번 주말 경기도 표는 사 놨는데, 누구랑 보게될지 모르겠다.
FC 강원은 재작년에 2부로 떨어질 뻔 했는데, 최용수가 감독으로 와서 극적으로 팀을 1부에 잔류 시켰고, 작년에는 안정적으로 1부리그에 남았다. 올해는 남은 게임 잘 치러도 1부 12팀 중에 10위다. 2부로 갈 가능성도 있는 10위까지는 무조건 확정인 만큼 못했다. 10위나 11위를 해야 1부리그 잔류를 두고 벌이는 데쓰매치라도 할 수 있다. 대표이사가 김병지로 바뀌고 시즌 중에 감독이 윤정환으로 바뀌면서 어떤 팬들에게는 스포츠에 정치가 개입하면 어떻게 팀이 맛탱이가 가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는 말을 듣기도 하는데, 그 내막은 알기가 어렵다. - 정치란 비밀스러운 부분이 90프로니까 - 감독도 코치도 선수도 직업이 축구인 사람들인데, 얼마나 이기고 싶겠나. 그렇지만 상대방도 이기고 싶다는 것이 인간 세계의 생리와 닮았다. 직업의 영역에 즐기면서 같은 건 없다. 그래서 영화 머니볼이 명작이다. 윤정환 감독은 어느날의 인터뷰에서 선수들의 절박함이 없다는 얘기를 했고 강원은 그 후에도 몇 게임을 비기거나 지기만 하다가 지난 주말에 현재 1위 팀을 상대로 이겼다.
포메이션, 선수 교체 등 감독의 작전이 잘 맞아 떨어졌고 상대팀은 요즘 잘 안풀리는 중이었고 선수들의 승리에 대한 절박함도 있었다.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주말 경기는 운전에 자신있는 사람이 대형면허 따듯 순조로웠다. 강원 골수팬은 아니지만 지금 강원도에 살고 있고 상대팀보다 약팀이니까 강원이 이기기를 바랐다. 첫 골, 두 번째 골이 들어갈 때 소리를 질렀다. 쌓여있던 어떤 것이 약간은 해소되는 느낌을 받았다. 감독도 선수들도 팬들도 다 기뻤다. 이긴다는 건 그런 것이다.
나는 누구와 경쟁하나? 나는 어떤 목표를 향하고 있나? 내게는 원하는 목표를 위해 성실함을 발휘해서 성취한 경험이 있나? 지금 기분엔 없는 것 같다.
사람이 늙는 시기가 있다고 하는데, 요즘 내가 그런것 같다. 거울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기후 파괴가 덮치지 않는 곳이 없고 일단 피해는 가난한 사람들부터 받는다. 아내가 경차 타고 싶다고 해서 경차 새차로 계약했다. 집 주인이 터무니 없는 가격에 내 놓은 집은 아무도 보러 오는 사람이 없다. 회사에선 직원들과도 기간제 선생님들과도 별로 말을 섞고 싶지 않다. 나랑 같은 직종에 있던 형님들 둘이 최근에 죽었다. 안면도에서 근무하는 형은 근무기간 20년을 채우자 마자 명퇴를 결정했다. 아내 동료는 우리보다 10살 어린데, 암진단을 받았다. 아버지는 한결같이 엉망이고 나는 그런 아버지에게 마음쓰는 일에 점점 지쳐간다.
아내는 책이라도 읽으라고 하지만 술을 먹는게 낫다. 그런데 최근에 술을 좀 줄였다. 그래서 무력한가? 그건 아니다. 퇴근하고 운동할 때는 기분이 좋은데, 운동 마치면 곧바로 기분이 다시 다운된다. 축구 경기도 경기가 끝난 날에는 흥분이 남아 있는데, 다음날이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술도 마실 때만 기분 좋은 거랑 비슷하다.
무력감이야 평생을 따라다니고 있는 것이고 이러다가 괜찮아지곤 하는데, 이번에는 괜찮아 질 것 같지가 않네. 잼버리 케이팝콘서트가 끝난 상암 월드컵 경기장 잔디 같은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괜찮아지면 괜찮아지는데로 아니면 아닌대로 살아보기로 한다. 욕망을 관철시키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게 되는 것을 생각한다. 그래도 삶은 계속 된다는 것도. - 운동화를 사야하고 머리를 잘라야 하고 차에 기름을 넣어야 하고 밥도 먹고 살아야 해서 너무 오랜만에 라면을 끓여 먹었다. -
주말에 아버지한테 갈까하다가 오늘 축구표를 예매했다. 아버지한테 별로 미안하지가 않네. 다음주에 보면 되니까 그런가?
내 마음 고요하고 어지럽다.
태풍후에
불어난 강물
흐린 하늘
포크레인과 백로
운동기구에 매달린 아주머니들
강아지를 데리고 징검다리 앞에 놀러나온 소년과 소녀
개도 깡총 사람도 깡총
반대 방향으로 엇갈리는 노인의 자전거와 아이의 자전거
다시 비가 내리고
돌다리 위로 빠르게 흐르는 강물
물살의 반대쪽으로 부는 바람
몸도 마음도 다리를 건너지 못하는 나
많은 기종으로 리메이크가 됐고 - 89년이나 90년에 친구 컴퓨터(당시 XT)로 디스켓 넣고도 해봤다. - 오락실에도 3편까지 나왔다. 횡스크롤 액션 게임의 시조새 정도는 된다. 채찍, 야구방망이, 칼, 상자, 돌, 다이너마이트 등을 휘두르거나 던질 수 있고 적을 나락으로 떨어뜨려서 죽이는 꼼수(어쩌면 정공법)가 존재하며 같은 편끼리도 때릴 수 있다. 보스에게 납치된 애인, 나와 같은 기술을 쓰는 적이 나온 게임의 효시가 아닌가 싶다. 악마의 기술 팔꿈치(주먹+점프)만 잘 쓰면 나처럼 게임에 큰 소질 없는 애들도 끝판을 쉽게 깼더랬다. 꼼수 쓰면 더 잼있지만 적 떨구려다가 내가 죽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팔꿈치로만 깼다. 원코인 하고 나서 리셋하고 다시 시작한 게임에서 적들 떨궈 죽이면서 진행 하다가 끝판 초반에 가시에 떨어져 게임오버. ㅋ
당구 클럽을 돌면서 일정 점수를 넘겨서 챔피온이 되는 게임인데, 챔피온이 되면 머리크기랑 몸 크기가 같은 해당 당구 클럽 사장(?)이 옷을 벗고 축하해준다. 8000점 마다 큰 공 한개, 성공하면 큰 공 하나씩 주는 보너스 스테이지 - 보너스 스테이지에서 유리컵이 깨지면 내 마음이 깨지는 것 같았다. - , 공넣고 공먹기인 BET 시스템이 있어서 동전 하나 넣고 시간 끌기 좋은 게임.
7100점을 넘어야 끝판을 깰 수가 있는데, 6구 짜리 스테이지에서 1~6번까지 쉬지 않고 넣는게 가장 보편적인 클리어 방법이다. 어렸을 때 끝판 깨는 형들을 못 봤다. 나는 고등학생 때 딱 한 번 깨봤는데, 나이 먹고는 수시로 클리어하게 됐다. - 나 당구 못친다. - 가끔 점프볼(마세이3)을 치게 될 때가 있는데, 들어가면 기분이 좋다.
같은 회사에서 89년엔가 배구 게임을 만들었었다.(그 게임도 마구 서브가 있었던 것 같음) 그 후속으로 91년에 나온 게임. 국제판은 나라부터 고르는데, 한국판은 남녀부만 골라서 플레이. 한국 남자 선수는 장윤창, 마낙길, 노진수, 한장석, 정의탁, 세터 이경석 - 김호철 선수가 은퇴한 후에 만든 게임이라 그런 듯. - 이렇게 6명이다.
원버튼으로 만든 훌륭한 게임이다. - 개인시간차, 2단 페스 페인팅, 3단 시간차 공격도 됨 - 어렸을 때는 3단 시간차 공격을 어떻게 하는지 몰랐지만. - 리시브할 때 방향키 위로 하면 됨 - 소련 깨는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음. 기본적으로는 토스할 때, 방향키 하단으로 하고 타이밍 맞춰 네트쪽으로 스파이크 때리면 컴퓨터가 블로킹 타이밍도 못 맞추고 수비가 공을 받는 경우도 많지 않음.
스타팅 스코어를 10-12로 세팅해 놓으면 소련하고 할 때는 8-11이 아니라 6-11에서 시작하는데, 오랜만에 해보니까 이러면 클리어가 좀 어려움. 어차피 오락실 주인들은 스타팅 스코어 12-12로 세팅함. 그래야 조금이라도 게임이 일찍 끝나니까. ㅋㅋ
블로킹 타이밍을 알고 나면 난이도가 대폭 내려가고 공격 표시가 안 나오는 소련하고 할 때는 수비수가 중앙 보다 살짝 앞에 서 있으면 좋다. 컴퓨터가 네트쪽으로 붙여 넣는 언더서브에는 리시브만 하고 토스를 안 하는 경우가 있는데 - 정확한 서브 타이밍은 모르겠다. - 이걸 써 먹으면 소련과의 대전이 쉬워진다. 게임상 시간이 있는데, 시간이 끝나도 게임이 끝나는 건 아니라서 일부러 듀스 만들고 17대 16까지 갔던 기억이 나네. 그러다가 재수 없으면 지고 끝남.
원작 만화를 잘 구현해서 만든 게임 - 성현준의 페이드 어웨이, 이정환의 미친 피지컬(레이업), 강백호의 훅훅 디펜스, 송태섭의 빠른발(레이업), 해남 빼고는 팀마다 한 명씩 사용할 수 있는 더블클러치(서태웅, 윤대협, 장권역) - 고2 고3 때 친구들이랑 많이 했다. 친구랑 붙어서 지면 3분 만에 백원 날리는 거다. 대부분의 오락실에서 컴퓨터랑 시합은 2분, 2인 대전은 3분으로 설정돼 있었던 거 같다. ^^ 오랜만에 해봤는데, 옛 생각도 나고 재미있었다.
기본 공략 - 2점 점퍼는 타이밍만 맞으면 100프로 들어가기 때문에 공격은 장신 선수로 단신 선수 공략하거나 컴퓨터가 헛손질하고 생기는 빈 타이밍에 점프슛, 수비는 생각하는 타이밍보다 한 타이밍 먼저 손질(A버튼), 장신 수비수로 단신 공격수 블로킹, 타이밍 맞춰 덩크 블로킹.
재미 공략 - 원맨 클리어(윤대협, 서태웅, 이정환의 3점슛 + 특수기. 윤대협은 특수기 두 개), 더블클러치로만 득점하기, 앨리훕으로만 득점하기. 삼점슛만 넣기. 그다지 어렵지 않아서 고인물들이 많았던 게임이다.
비슷한 시기에 나왔던 세일러문 횡스크롤 액션도 - 망겜임 - 같은 회사(반프레스토)에서 만들었던 것 같다.
메꽃
메꽃이 피던 자리에 메꽃이 피었네
사랑이 있던 자리엔 사랑이 없네
녹아 흘러가는 여름에 당신 자리도 녹아 내렸네
비 내리고 그 흔적마저 사라졌네
바로 그 자리에 메꽃이 피었네
메꽃이 피던 자리에 메꽃이 피었네
그대가 없어도
나비가 날고 벌이 날고
그 꽃이 사랑이려니 하네
토요일에 서울 가서 아버지 집에 들렀다가 에어컨 틀어놓고(7시간 후 꺼짐) 나와서 친구 만났다. 친구 만나던 중에 데이케어센터에서 돌아온 아버지에게 전화와서 '에어컨 건드리지 마시고 내일 아침에 만날거다' 라고 했다. 아버지가 아이처럼 좋아했다. 아버지가 날 만나는 일에 아이처럼 좋아하는 반응을 보일 때, 내 마음에는 커다란 부담과 그와 같은 크기의 안심이 함께 자리한다. 둘 다 무겁다. 일요일 아침에 아버지를 만났다. 에어컨 리모콘에 건전지가 사라졌다. AAA건전지가 들어가는 리모콘인데, AA건전지가 방에 나뒹굴고 있었다. 아버지 옷장을 찾아보니 아버지가 리모콘에서 빼 놓은 AAA건전지가 있었다. 토요일 오후에 아버지는 혼자 에어컨 리모콘을 만지작 거리다가 뭔가 잘 안되서 건전지를 빼고 새 건전지를 사서 끼워보려는 시도까지는 했다, 는 걸 알 수 있다.
아버지가 배고프다 해서 오전 10시에 순댓국 먹었다. 아버지가 맛있다고 했다. 아버지는 이번에도 한 그릇 다 먹지는 못했다. 위암 수술의 영향인데, 많이 먹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아버지 뚝배기에서 고기 꺼내서 간장 소스에 찍어드렸더니 맛있다고 하면서 잘 드셨다. 아버지는 소스에서 약간 단맛이 나는 것도 얘기했다. 아버지랑 밥 먹는 건 이 정도면 만족한다. 은행에 가서 돈 찾아서 지갑에 채워드렸다. 지갑에 돈이 없으면 불안한 어떤 사람들의 심리를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버지는 카드 쓰는 것보다 현금 쓰는게 익숙하고 카드 쓰다가 카드 잃어버리는 것 보다 현금 쓰는게 나은 것 같다. 슈퍼에 가서 카스타드 케잌이랑 과자 두 가지 골랐다. 과자 중에 '사브레'는 '단거...'라고 하면서 아버지가 골랐다.
에어컨 9시간 후에 꺼지도록 설정하고 아버지 집을 나왔다. 3시 기차를 탔다. 기차 타기전에 아버지한테 전화해서 에어컨 건드리지 말라고 했다. 아버지는 알았다고 했다. 리모콘을 옷장에 넣어뒀지만 아버지는 금방 찾아낼거다. 아버지가 집에 도착했냐고 하길래, 거의 다 왔다고 했다. 앞으로 두 시간을 더 가야하지만 청량리역까지 왔으니 거의 다 온거다. 어제 저녁이랑 오늘 아침에 아버지랑 통화했다. 아버지는 어제 서울에 갑자기 폭우가 쏟아진 걸 알고 있었다. 에어컨은 건드리지 않았다고 했는데, 진짜 안 건드렸는지는 알 수가 없다. 내가 에어컨에 관해서 물어보니까 자꾸 핸드폰이 주머니에 있다는 얘기를 했다. - 손에 들고 나랑 통화하고 있는데. -
아버지는 에어컨을 정말 좋아하던 사람이다. 그런데, 전기 콘센트에 플러그 꼽는 법도 잊고 리모콘을 다룰 줄도 몰라서 혼자서는 에어컨을 틀지 못한다. 누군가는 딱하다고 할 것이다. 우리 아버지 딱한가? 우리 아버지 딱하네. 사상 최고의 더위에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더워서 죽는 일을 생각한다. 그게 우리 아버지다. 데이케어센터 선생님들이랑 한 때는 같이 살았던 가족들이 있어서 지독하게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아버지 혼자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8월 말에는 병원도 한 번 가야하니 8월에는 아버지를 두 번은 만나야겠다. 그런다고 달라질 건 없지만 그래야겠다.
그 여름
남극에 겨울비가 내렸다
능소화가 하늘 앞에 당당히지 못하고
칡넝쿨은 꽃을 피우다 더워 죽었다
껍질을 까고 나온 매미가 말라 죽고
은행나무 잎은 급하게 누레졌다
모든 땀구멍에서 땀이 비오듯 흐르고
손톱 발톱 머리카락에 빨리 자랐다
노인도 아이도 젊은이도
더워 죽고 폭우에 휩쓸려 죽었다
사람들은 적도에 눈이 내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우리는 알고 있었다
끝보다 더한 끝도 있다는 것을
그러나 우리는 말 못할 이유로
서로에게 그 사실을 말하진 않았다
이달엔 타이밍이 잘 안 맞아서 아버지를 못 만났다. 이번주 토요일에 올라갔다가 일요일에 내려오는 기차표를 끊어놨다. 아버지 치매 컨디션이 안정적인 것 같아서 하루 세 번 이상 하던 전화통화를 두 번으로 줄였다. 내가 먼저 전화할 때랑 아버지가 먼저 전화할 때가 있는데, 아버지가 먼저 전화할 때가 아버지 컨디션이 더 좋다고 봐야겠지. 최근에는 내가 먼저 전화할 때가 많은데, 그냥 그런가보다 한다.
엄마는 2주 전에 아버지한테 다녀왔다. 당신도 아버지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는 얘기를 나에게 했다. 걱정 좀 덜 했으면 좋겠다고 내가 답했다. 엄마가 아버지에게 신경 쓰는 건 같이 살았던 정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이모가 자꾸 엄마에게 아버지 돌보란 얘기를 하다고 한다. 내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 한 엄마가 아버지를 돌볼 일은 없을 거니 엄마가 그런 얘기 좀 안 들었으면 좋겠다. 또 언젠가는, 동생이 엄마가.... 어쩌구 저쩌구 하길래 아버지 일에 엄마를 자꾸 연루시키려고 하지 말라고 - 문자로 보냈으니 동생이 내 짜증을 알았을 것 같진 않다. - 했더니 알았다고 했다. 동생은 나에게 섭섭했을까? 아닐거라고 생각한다.
어젯밤에 아버지한테 전화가 안 오길래 내가 먼저 전화했더니 통화중이었다. 엄마랑 통화중인가 싶어 5분 후에 다시 전화했다. 둘째 이모가 전화를 받았다. 둘째 이모가 종종 아버지 집을 둘러본다. 아버지 먹을 것을 챙겨준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이모가 보일러 전원을 꺼놔서 뜨거운 물이 안나온 관계로 그게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아버지가 몸을 씻지 않았다는 것과 데이케어센터에서 돌아오는 길에 막걸리를 한 병 사왔다고 알려줬다. 엄마한테 그 얘기를 했더니 너무 속상해 했다고 했다. 나는 '이미 끝났는데, 어쩌겠어요.' 라고 했고 이모도 놔둬야지 어쩌겠냐고 했다. 이모랑 전화 끊고 엄마한테 전화할까 하다가 같이 울 것 같아서 전화하지 않았다. 엄마가 엄청 잔소리를 했을테니 아버지가 막거리를 먹진 않았을거다.
오늘 아침에 아버지한테 전화해서 막걸리 얘기랑 샤워 얘기를 했다. 아버지는 약간 역정을 내면서 잘 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아버지 말이 끝나자 마자 '저는 아버지 걱정 안해요. 엄마가 걱정하지.' 했다. 아버지가 이모랑 엄마를 싸잡아서 '여자들이.....' 어쩌구 저쩌구 계속 횡설수설하길래 정확하게 알아들을 때까지 '저는 아버지 걱정 안해요'라고 했다. 엄마는 아버지에게 이거해라 저거해라 잔소리를 한다. 나는 아버지에게 잔소리는 안하고 잘하고 있다고만 한다. 엄마는 아버지를 걱정하고 나는 아버지를 걱정하진 않는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나는 아버지를 사랑하지는 않는 것 같다.
무심결에 나온말에 본심이 있다. 나에게 아버지는 이미 끝난 사람이다. 그런데 나는 왜 아버지에게 전화를 하고 아버지를 만나러 가나? 인류애도 정도 아니다. 연민도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나를 위해선가? 나의 무엇을 위해서? 생각 좀 해봐야겠다.
우기 끝나고 이제 여름 시작이지만 아버지의 여름도 나의 여름도 이미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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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만들기 시작하고 얼마 안돼서 때 만듦. 마음이 착할 때 만들었나 봄. c k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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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대한 비관. g chord 진행(1 6 4 5) 연습하다가 만듦. 강릉시 영상미디어센터 녹음. g k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