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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24 20240224 - 어깨 통증과 뉴스의 주인공이 된 엄마 생각
- 2024.02.13 20240213 - 연초부터 아픈 생각 2
- 2024.02.05 20240205 - 어깨 통증, 위기의 중년, 아버지 생각
- 2024.01.30 20240130 - 어쩌다 하나씩
- 2024.01.28 20240128 - 잘 지내고 있는 아버지 생각
- 2024.01.20 20240120 - 어쩌다 하나씩
- 2024.01.19 20240119 - 잘 지내야 될텐데, 아버지 생각
- 2024.01.17 20240117 - 어쩌다 하나씩
- 2024.01.16 낙엽
- 2024.01.15 20240115 - 요양원과 아버지 생각
- 2024.01.08 20240108 - 어쩌다 하나씩
- 2024.01.08 20240108 - 신년, 나이 먹음, 아버지 생각
- 2024.01.03 20240103 - 신년, 아버지 생각
- 2023.12.30 20231230 - 어쩌다 하나씩
- 2023.12.27 20231227까지 사랑 모음
- 2023.12.26 20231226 - 크리스마스와 아버지 생각
- 2023.12.20 20231220 - 어쩌다 하나씩
- 2023.12.20 20231220 - 어쩌다 하나씩 1
- 2023.12.18 20231218 - 주말에 만나고 온 아버지 생각
- 2023.12.12 20231212 - 어쩌다 하나씩
- 2023.12.12 20231212 - 사흘만에 만난 아버지 생각
- 2023.12.11 20231211 - 어쩌다 하나씩
- 2023.12.09 20231209 - 삼 주 만에 만난 아버지 생각
- 2023.11.21 원청 - 위화
- 2023.11.20 20231120 - 보고 싶다고 하는 아버지 생각
- 2023.11.16 20231116 - 어쩌다 하나씩
- 2023.11.13 20231113 - 어쩌다 하나씩
- 2023.11.07 섬에 있는 서점 - 개브리엘제빈
- 2023.11.05 20231105 - 두서 없이 적어보는 아버지 생각
서울 대림동에 있는 ‘이상철 통증의학과’에 오늘까지 두 번 다녀왔다. 지난주까지는 팔을 잘라내고 싶을 정도로 아팠는데 - 의술이 지금처럼 발전하기 전에는 대상포진 걸리면 너무 아파서 자살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함. - 지금은 아픔이 많이 가셨기에 이렇게 일기도 쓴다. 아버지가 강릉으로 왔기 때문에 당분간 서울 갈 일 없을줄 알았는데, 다음주까지 3주말 연속으로 서울 가게 됐네. 병원이 지하철역에서 멀리 있어서 다니기가 피곤하다. 그래도 아픈것 보다는 낫다. 어깨 통증이라고 생각했던건 실제로는 팔 통증이었고 명절 전에 우연히 만난 아저씨에게 이 병원 얘기 못 들었으면 강릉에서 병원만 계속 옮겨다닐 뻔 했다. 서울로 가기 전에 강릉에서 한의원 두 곳 포함해서 병원 네 군데를 들렀는데, 어느곳에서도 나의 팔 통증을 경감시키지 못했다. 강릉에 있는 의사 선생님들을 무시하는 건 아니고 유명한 병원이 괜히 유명한 건 아니구나, 지방에 사는 어르신들이 많이 아프면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부터 찾는 게 괜히 그런건 아니구나, 를 이번에 몸으로 깨달았다. 8시 예약이고 7시 30분에 병원 도착했는데, 내가 네 번째였다. 내 앞에 오신 아주머니는 허리가 너무 아파서 부산에서 비행기를 타고 왔다고 한다.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지난주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부산에 실업자가 너무 많고 경기가 안 좋다는 소식을 치료실 칸막이 너머로 들려주신 그 아주머니 쾌차하시길.
너무 아플때는 아무 생각도 못하다가 조금씩 괜찮아지기 시작하니까 몇 가지 생각을 했다.
- 건강은 술값보다 중요하다.
- 감옥 독방이나 보호자 하나 없는 병실에서 본인이 죽을 것을 알고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일을 생각해봤다. 가장 최근에는 러시아에서 푸틴의 정적이라는 나발니란 사람이 그렇게 죽었다. 일정 때 감옥에서 쓸쓸히 죽었을 독립 투사들도 생각해본다. 독립 투사들이야 말로 못 먹고 얻어 맞고 고문당하다가 기력 떨어져서 죽는 괴로움의 결정체다. 진심으로 존경한다.
- 내 인생에 행복했던 일이 막 떠오르진 않지만 소소한 순간들에 즐거움이 있었고 불행이 생을 휩쓸고 가진 않았다. 어깨 통증도 지나갈 일일 뿐이다.
- 샤워실에 꼭 있었으면 하고 소망하는 해바라기 샤워기 같이 단순하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한 사소하고 간절한 열망이 오늘을 살아가게 한다. 나의 해바라기 샤워기는 무엇일까?
- 봄이 온다고 말해주는 아내가 있으니 나는 외롭지 않구나. 너는 나의 신선한 이마다.
강릉에는 눈이 많이 왔다. 눈 때문에 이틀동안 출근을 못했다. 정확하게는 수요일에는 출근 못하고 목요일에는 일 때문에 억지로 출근했다가 - 차가 눈에 미끄러져서 1시간 30분 걸림 - 급한일만 처리하고 미끄러지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해발 700미터에 있는 우리 사무실은 눈이 1미터 20센티미터 쌓여있다. 팔은 쉬지 않고 아픈데, 눈도 쉬지 않고 내리고 덕분에 강제로 휴가를 쓰게 되니까 많이 우울했다. 그 와중에 수요일 아침에는 눈길을 운전해서 산림기사 1차 시험을 보러갔다. - 합격했다. - 그렇다는 것은 내 마음속에는 내 인생에서 아직 포기하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다. 자동차 보험, 아버지 일, 어깨 치료, 출근같이 귀찮은 일들 다 내팽개치고 매일 술이나 마시면서 망가진 중년으로 살고 싶은 마음과 그래도 무너지지 말고 살아야지 하는 마음이 내 안에서 팔 통증과 함께 싸우고 있다.
오늘 진료 마치고 오산에 엄마한테 들렀다. 엄마는 지난해 연말부터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홍콩 h지수 연계 ELS에 노후자금이라 생각한 전재산을 투자했다가 쫄딱 망했다. 뉴스에 나오는 불행이 바로 내 것이거나 내 옆에 있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엄마가 차려준 김치찌개를 맛있게 먹었다. 엄마 앞에서는 맛 없어도 맛있게 먹는게 내 철칙이다. 김치찌개는 맛이 있었다. 미스 트롯 재방송 보면서 엄마랑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대출 받아서 투자한 사람들이나 전세사기 당한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무너지지 말고 너무 우울하지도 말라고 했다. 그게 실제로는 나한테 하는 얘기다. 엄마가 오산터미널까지 태워줬다. 차에서 내려서 손을 흔들면서 ‘안녕 내 사랑’ 두 번 말했다. 들으라고 말했으니까 엄마가 들었을거다. 엄마도 나도 서로를 봐서 힘이 됐다.
내가 얼마나 아픈지는 나만 알고 나 아픈거 걱정해주는 사람은 아내랑 엄마 뿐이다. 빨리 낫고 싶네.
요새 글이 잘 안된다. 독서 부족인가?
어깨가 아프다. 지난주 월요일에 정형외과에 들렀다. 엑스레이상 문제가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어깨나 너무 아프다. 화요일엔 작년에 허리 아플 때 들렀던 한의원에 갔다. 목 디스크가 급하게 온 것 같다면서 당장 치료가 불가능하니 통증의학과로 가라고 했다. 한의사 선생님의 친구가 하는 통증의학과에 갔다.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았다. 그런데 어깨가 점점 더 아프다. 수요일 목요일에 물리치료 받았다.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병원에 가는데, 어깨를 부여잡고 10번 이상 쉬어야 했다. 간호사 선생님들도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아주머니도 신호대기 중이던 택시 기사 선생님도 괜찮은지 안타깝게 물어봤다. 팔을 감싸쥐고 숙인 고개를 들 수가 없어서 병원 간호사 선생님들 얼굴을 오늘에서야 제대로 봤다. 어깨부터 팔뚝까지 끊어질 듯 아프다. 어떤 자세를 취해도 아프다. 명절 내내 아프다가 어제 약간 괜찮아졌지만 진짜 약간 괜찮아졌을 뿐이다. 어깨를 주무르면 괜찮을까 싶어서 세라잼 안마기 체험장에 가서 안마기에 누웠는데 안마기가 주물럭 거릴때마다 너무 아팠다. 오늘 2차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았다. 사무실까지 30분 운전해서 오는 일이 무척 힘들었다. 사무실 동료가 강력한 진통제를 줘서 한 알 먹었다. 지금은 키보드를 두드릴 수 있을 정도는 되는데, 이 호전됨이 진통제 때문인지, 주사 때문인지, 단순히 시간이 흘렀기 때문인지 알 수가 없다. 토요일 아침 여덟시에 서울에 있는 통증의학과 예약했다. 강릉에서 1년간 병원을 다녀도 계속 아프던 어깨가 그 병원에 한 번 다녀오고 다 나았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이렇게 아픈데, 왜 아픈지 원인은 알고 싶기 때문이다.
명절 지났으니까 이제 정월이다. 양력으로 2월 13일이니까 아직 연초라고 할 수 있다. 연초부터 아픈게 정초까지 아프네. 정초라고 하면 음력이 되고 연초라고 하면 양력이 되는 세계에 살고 있다.
어제 살짝 덜 아픈김에 요양원 들러서 아버지 보고 왔다. 아버지의 횡설수설은 점점 심해지고 내가 먼저 이름 얘기 안하면 내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것 같지만 내가 본인 아들인 건 안다. 그리고 1주일 전에 봤을 때보다 요양원 생활에 더 적응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연휴 끝에 근무 중이던 영양사 선생님이 식사 잘 하시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해서 안심이 됐다. 생의 마감만이 존재하는 공간인 노인 요양원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아버지, 별일 없으면 주말마다 만나러 갈게요.
연휴 내내 나 때문에 신경 써 주고 아버지 만날 때도 같이 가준 아내에게 고맙다. 연휴 동안 둘이 밥 잘 챙겨 먹었다.
나 아프다니까 엄마가 매일 전화해서 괜찮은지 물어본다. 고맙고 사랑한다. - 며칠 전에 전화 끝에 '안녕, 내 사랑' 이라고 했는데, 엄마가 그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네.
장모님 장인어른도 딸의 신랑이 아프다고 하니 신경쓰는 전화를 주셨다. 고맙습니다. 사위를 직접적으로 걱정하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걱정해주시는 정말 고맙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걱정과 관심으로 산다. 나도 우리 아버지도 세상에 많은 사람들도. 그렇지만 내가 얼마나 아픈지는 나만 안다.
두서 없이 적어 본다.
토요일에 아내 운전 연습을 겸해서 봉화에 있는 국립백두대간 수목원에 갔다. 정말 잘 생긴 암컷 호랑이를 봤다. 기분이 좋아졌다. 겨울 나무도 종류별로 많이 봤다. 춘양면에 방 잡고 읍내에 있는 분식집에서 라면 둘, 김밥 한 줄, 김치전 한 장(5,000원)까지 도합 16,000원 어치를 저녁을 먹었다. 너무나 맛있었다. 호랑이를 본 일까지 좋은 일이 연속으로 있었다. 로또는 이번주에도 꽝이었다. 오는길 가는길에 조수석에 앉아서 오른쪽 사이드미러 들여다보느라 많이 피곤했지만 아내의 운전이 많이 늘었다.
어제 아버지 만나고 왔다. 1시간 가까이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직원분이 면회는 30분 정도만 하면 좋겠다고 했다. 야속하단 마음과 다행이란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아버지는 요양원에서 계속 지내야 한다는 사실에 적응중이다. 명절에 아버지를 데리고 엄마한테 같이 갈지 말지 계속 고민중이었는데, 아버지는 가고 싶은 눈치라 내가 힘들어도 같이 가는 쪽으로 마음이 굳어진다.
그리고 나는 한 달 째 어깨가 아프다. 어제는 한 잔 하고 술 취해서 잠들었는데도 어깨가 아파서 자다 깼다. 아내가 나를 안타깝게 지켜봐줬다. 사랑이다. 내가 아버지 얼굴 보러 간 걸 포함해서 아픈 사람 지켜봐 주는 게 사랑이다.
오늘 아침에 폭설 때문에 출근하다가 차를 돌려서 집으로 왔다. 돌아온 김에 병원에 들렀다. 의사 선생님이 엑스레이 상으로는 어깨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 다행이다. 진통제와 근육이완제(+위장약)를 처방 받았다. 서서히 재활 하면 좋아지겠지. 긍정적으로 생각해본다. 사무실에 처리할 일이 있어서 2시에 출근하긴 했는데, 어떻게 돌아갈지 막막하다. 35번 국도 타고 삽당령 정상을 오르는데, 내려오는 제설차 4대를 마주쳤고 미처 눈을 다 치우지 못하고 있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눈을 뚫고 출근을 했나, 후회막심이다.
몸이 아프니까 자연스럽게 <위기의 중년> 이 떠올랐다. 자포자기 하듯 어깨 치료도 게을리하고 매일 적당히 지내면서 저녁엔 술 마시고 운동도 안 하다보면 <위기의 중년>이 아니라 만성적으로 우울을 끼고 있는 <체념한 중년> <망가진 중년>이 되겠구나 생각했다. 그렇게 되는 일이 너무도 쉽겠구나 생각했다. 나를 생각해서도 지금 상태로 무너지면 안되겠지만 아내를 생각하면 더욱더 <건강한 중년>이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최소한 노력하려는 시늉이라도 해야 무너지지 않을 것 같다.
어제 오랜만에 친구 만나서 한 잔 했다. 친구는 아버지 가업을 이어서 농업으로 새출발을 하려고 한다. 세상은 홀로 살아가는 곳이지만 기댈 곳이 있고 그 기댈 곳이 가족이라면 기대는 것이 좋다, 는 게 내 평소 생각이다. 친구한테 그 얘기를 해줬다. 친구는 중년은 다 위기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친구가 아버지한테 농사 잘 배워서 돈도 적당히 많이 벌고 나한테 맛있는 것 많이 사주면 좋겠다.
이 기록을 남기는 동안 계속 어깨가 아프다. 저녁에 약 한 봉지 더 먹어야겠다. 근데 이 폭설속에 오늘 집에 내려갈 수 있을까?
이래라 저래라
이래라 저래라가 많은 날이 있다
여기 주차하지 말라해서 다른데 차를 세웠더니
거기도 주차하지 마라
방금 담배를 한대 피우고 또 피우려고 했더니
여기서 담배 피우지 마라
여기 들어가지 마라
고기 뒤집지 마라
이거하지 마라 저거하지 마라
운전 똑바로 해라
담배 끊어라
골고루 먹어라
내 돈 내고 타는 택신데 뒷자리를 강요 받고
이래라 저래라
세상에 나와 50년을 살았는데
나이 먹을수록 남의 말 듣기가 싫은데
남들도 악의로 한 말이 아닌걸 아는데
이래라 저래라 이래라 저래라
듣기 싫은 나는
나는 어찌해야 하나
어제 엄마가 아버지 보고 갔다. 혼자 살때보다 말끔해진 아버지가 ‘여기가 서울 학교보다 좋다.’ 고 했다고 한다. 엄마는 아버지에게 그 얘기를 듣고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서울 데이케어센터보다 지금 요양원이 더 좋다는 얘기다. 또 아버지 행색이 - 혈색과 차림새 - 좋아서 당연히 펑펑 울 줄 알았던 엄마가 울지도 않았다니 좋은 일이다.
수요일에 요양원 간호 선생님한테 전화를 받았다. 요양원에서 6일간 관찰한 아버지에 대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해주면서 <불결행위> 란 말을 꺼내서 그 단어 때문에 충격 받았다. 아내 얘기로는 불결행위가 공식 용어라고 한다. 암튼 그 내용은 오줌을 아무데나 눈다는 것이었다. 이미 혼자 살때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한동안은 그러지 않았기에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 때문에 그런가, 생각했다. 자는 곳도 바뀌고 전화기도 없어지고 주위 사람들도 익숙하지 않을테니 당연한가, 생각했다. 그리고 걱정하고 걱정하고 걱정했다.
어제는 엄마랑 작은 아버지 두 명이 아버지 얼굴을 봤다. 나는 그들을 요양원까지 안내만 해주고 아버지에게 얼굴을 보이진 않았다. 오늘은 나랑 아내가 아버지 만나러 갔다. 엄마에게 들은대로 아버지는 괜찮아 보였다. 혈색이 좋았고 옷도 말끔하게 입고 있었고 면도도 깔끔했다. 앞으로는 팬티에 똥을 묻히고 있을 일도 없으리라. 원체 까다롭지 않은 양반이라 요양원 생활에 금방 적응을 한 것 같다. 아버지는 강원도가 좋고 강원도 사람들이 착하다는 얘기를 반복했다. 횡설수설은 숙명이지만 본인이 고향에 와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치매가 끝까지 가진 않은 것이다. 평범하게 생각하면 아버지는 끝난 사람이 됐지만 요양원에는 요양원에서의 삶이 있다. 그렇게 삶은 계속되고 그 삶은 아버지가 ’그래도 살아야지‘란 말을 자주 한 것과 이어진다.
오늘 아버지랑 30분 정도 같이 있었다. 앞으로도 시간 날 때마다 아버지 보러 가야겠다. 앞으로도 같이 가주겠다는 아내의 마음이 참 고맙다. 아버지를 만나는 횟수가 만나는 시간보다 중요하단 생각이다. 그렇게 아버지의 계속되는 삶에 내가 있어야겠다. 집에서 요양원까지 걸어서 5분거리다. 직장도 요양원도 가까운 게 좋다.
걱정했는데 아버지 잘 지내서 정말 다행이다.
냉면을 먹다
마지막 서울
마지막 백화점
마지막 기차역
마지막 냉면
마지막에 근접한 아버지와
냉면을 먹었다
마지막은 처음으로 이어지고
아버지에게 내 이름을 말할때마다
하얀 도화지에 새로 쓰여지는
나는 아버지의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
아버지는 그저 나의 아버지
계산을 하며 마음속으로만 마지막이네요, 인사를 남기는
사장은 내 얼굴을 모르지만
나는 사장 얼굴을 아는
단골에 근접한 가게에서
물냉면 곱빼기를 먹으면서
아버지를 부를 때
아버지, 아버지 두 번씩 부르고
두 배로 배가 부르고
두 배로 마음 아팠다
오늘 아버지를 요양원으로 보냈다. 아버지는 2020년 여름에 이미 머릿속이 까마귀 고기를 먹은 상태였고 2021년 초에 정식으로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 오늘이 오기까지 엄마랑 나에게 긴 여정이었다.
수요일에 퇴근하고 강릉발 청량리행 기차를 탔다. 목요일에 청량리발 강릉행 기차를 아버지랑 같이 탔다. 힘들단 말이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 힘들다. 아버지는 기차에서 조금도 눈을 감제 않았고 양평 조금 지나서 도시 이미지가 사라지자마자 강릉 냄새가 나는 것 같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 냄새 타령을 했다. - 만종역 근처에서도 평창역 근처에서도 같은 말을 했다. 아버지 나이 73세, 23년을 고향인 강릉에서 보내고 나머지 50년을 서울에서 살았어도 고향이 좋은건가? 생각했다. 오늘 오전에 아버지 태어난 동네까지 드라이브를 했다. 아버지는 본인이 거기서 태어나서 어린시절을 보냈다는 것도 모른다. 그래도 <강릉> 이라는 단어 한 마디가 주는 포근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어린시절을 보낸 곳은 몰랐지만 본인이 다녔던 초등학교는 알아봤다. 아직 치매가 끝까지 가진 않았다.
먼저 서울 왔을 때 미처 정리하지 못한 일들을 했다. 통장 하나랑 신용카드를 없앴다. 아버지 명의의 휴대전화를 해지했다. 요양원에서 휴대전화 사용을 반대하기에 내 이름으로 번호 하나 새로 만들어서 아버지에게 주는 계획은 보류했다. 요양원에 44명의 노인이 있는데, 그들이 다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보니 요양보호사 선생님들 입장에선 끔(깜)찍하긴 하다. 어제 저녁에 작은 고모를 만났고 오늘 점심은 작은 아버지 내외랑 함께 먹었다. 고모도 삼촌도 숙모도 치매였던 할머니의 경험치가 있기에 - 할머니는 요양원에서 거의 10년을 살았다. - 아버지의 치매 상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않았다. 좋은 일이다. 아내도 나를 걱정하는 아버지의 멘트 - 일우가 고생이 많다. - 를 옮겨주면서, 정신줄을 완전히 놓치는 않은 것만해도 어디냐고 했다. 아내는 며칠 전에 그 말을 하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아버지는 나 결혼하고 우리집에 처음 와봤다. - 엄마도 2012년에 한 번 와 본게 전부고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한 번도 딸 집에 못 와봤다. - 아버지는 출가한 큰 아들 집에 처음 온 날 그 집에서 자고 다음날 아들 집 앞에 있는 요양원에 갔다. 뭔가 운명적으로 느껴진다.
양말을 신으라고 했더니 장갑을 발에 끼우고 있던 아버지, 며느리를 사모님이라 부르는 아버지, 찬물에 믹스커피를 휘젓고 있던 아버지, 끓이지도 못할 라면을 사 놓던 아버지, 맨 얼굴에 면도 하느라고 일회용 면도기를 잔뜩 사 놓던 아버지, 치매 걸리고도 가끔은 막걸리를 사 마신 아버지, 바지 후크랑 모든 옷의 지퍼를 다 망가뜨린 아버지, 빤쓰를 안 입고 있을때가 많던 아버지, 나에게 ‘니가 고생이 많다’는 말을 많이 한 아버지, 나랑 있으면서 ‘엄마는?’ 이라면서 전처를 많이 찾았던 아버지, 나랑 같이 순댓국도 먹고 해장국도 먹고 치킨도 먹고 커피도 먹고 서울에서의 마지막 밥으로 백화점 식당가에서 냉면을 먹은 아버지, 먹는 모양새가 많이 어설프지만 젓가락질은 여전히 잘 하는 아버지
우리 아버지 잘 지내야 될텐데… 이 말이 절로 나온다. 사랑이겠지. 사랑이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 사랑이겠지.
노인
빛 바랜 운동화를 꺽어 신고 장바구니를 든 노인
식빵 두 봉지 새우깡 두부 소주를 사는 노인
바지 주머니에서 꾸깃한 돈을 꺼내 계산을 하는 노인
느릿한 말투로 포인트 적립 번호를 알려주는 노인
말보다 느리게 준비해 온 검은 봉다리에 물건을 담는 노인
약간 구부정하고 얼굴엔 주름이 패인 노인
노인이란 말을 대체할 말이 없는 노인
신발은 한 켤레 뿐인지
식빵 두 봉지를 며칠동안 먹는지
외출용 바지는 단벌인지 지갑은 없는지
포인트는 얼마나 쌓였는지
아픈덴 없는지 같이 사는 사람는 없는지
궁금증을 자극하는
먼데 혼자 사는 내 아버지를 닮은 것 같은
23년 가을에 만듦, 이 코드 진행으로 곡을 하나 만들고 싶었음.
아버지는 지난주에 또 길을 잃었다. 아버지 집에서 걸어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신정동 파출소에서 전화 왔다. - 까치산역까지 걸어갔다가 방향을 잃고 신정동까지 갔을거라 추측해본다. - 아버지를 발견하고 아침 7시 30분에 전화해 주고 집에까지 데려다 준 친절한 경찰이 아니었다면 우리 아버지 얼어 죽었을지도 모른다.
요양등급 내용변경한 건 3일에 처리가 됐고, 이버지가 길을 자꾸 잃으니 요양원 진행을 서둘렀다. 아주 다행히 집 바로 근처에 있는 요양원에 빈 자리가 하나 있어서 입소(이용?)를 결정했다. 서류 준비 때문에 목요일 오후부터 바빴다.
아버지 신분증을 엄마가 갖고 있어서 금요일 7시 차를 타고 경기도 오산에 갔다. 시속 110킬로 미터로 달리는 버스 안에서 눈을 감고 잠들면서 '기사와 나 뿐인 고속버스에서 운전자가 졸면 둘이 같이 죽겠구나' 단순 명료한 죽음을 생각했다.
엄마는 제사 준비 중이었다. 제주(祭主)가 치매에 걸렸어도 본인 형님과 이혼한 전 형수님 집에서 지내는 제사가 중요한 삼촌들 꼴 보기 싫다. 점쟁이가 제사는 계속 지내는 게 좋겠다고 하니까 그 말 듣고 본인 몸이 엉망인데도 혼자서 제사 준비하는 엄마도 문제다.
데이케어센터에서 아버지 데리고 나와서 은행 세 곳 들르고 요양원 입소용 건강검진 받고 고지혈증 약 문제로 의사랑 상담했다. 우체국에서 어떤 할머니가 우리 아버지 어디 아프냐고 해서 치매라고 했더니 본인은 치매 안 걸릴라고 뭣두하고 뭣두하고 하면서 계속 말을 걸길래, '할머니도 치매 걸리고 싶어요?' 말할까 하다가 속으로 이 할머니도 치매 걸리길.... 하고 저주를 퍼붓고 말았다. 은행에서는 이름을 본인이 써야 한다고 하고 보험료 자동이체 때문에 전화한 콜센터에서는 치매라도 본인이 직접 전화해야 한다고 하고, 정신없이 다니다가 농협 체크카드 잃어버려서 농협 다시 들르고 자꾸 짜증이 치미는데, 아버지는 계속 멍하고, 중간중간 내가 목소리를 높일때마다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은 아버지를 보니까 더 화가 나고 기분이 너무 안 좋았다.
아버지랑 밥 먹다가 순댓국에 소면 사리를 두 번 넣어 줬는데, 너무 맛있게 먹길래 잘 드시니까 좋네, 진짜 좋네, 라고 했는데 말이 끝나자마자 '진짜 좋다'는 내 말이 진심이라 눈물이 났다.
고모(아버지 누나)가 전화해서 요양원에 가면 학대도 많이 하고 죽으러 가는거라던데 어떻하니, 하길래 엄청 짜증이 났지만 좋게 좋게 얘기했다. 전국에 장기요양인정자(아버지처럼 요양 등급 받은 사람)가 100만명 정도 된다. 고모 생각대로라면 나는 백 만명이 요양보호사한테 학대받는 나라에 살고 있네. 무지(無知)가 무섭고 본인 위주로만 생각하는 무지는 더 무섭다. 그리고 요양원에 가면 요양원에서 죽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죽으러 가는 거 맞다.
아버지는 자꾸 엄마를 찾았다. 엄마는 경기도 오산에 있고 엄마도 많이 아프고 앞으로 자주 못 볼거라고 말해줬다. 강릉으로 간단 얘기를 들은 아버지는 <강릉>이란 단어에 몰두했다. 치매에 걸렸어도 고향은 고향인가?
회사에 일이 있어서 더 빨리 진행은 못하고 19일에 입소할 계획이다. 여기저기 전화하고 여기저기 왔다갔다하는 일이 너무 힘들다. 아버지 요양원 입소 과정을 빨리 끝내고 싶다. 서울 가는 것도 이번주면 끝이다. 아버지가 요양원에 가고 나면 나는 어떤 기분이 들까?
아버지 요양원 가고나면, 엄마가 괜찮은 사람 만나서 홀가분한 상태로 재혼해서 편하게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몇 번 했다.
겨울나기
35번 국도 강릉방향
굽이진 고갯길
얼었다가 녹아 흐르다가
다시 얼고
자동차 한 대가 미끄러지고
사람은 다치지 않고
흙먼지에 섞여
조금 더 녹아 흐르하다
다시 얼고
자동차 한 대가 미끄러지고
고라니 한 마리가 치여 죽고
피와 찢어진 가죽에 섞여
조금 더 더 녹아 흐르다가
다시 얼려다가
얼지 못하고 흘러 내리다가
첫 잎의 향기를 맡고
다시는 얼지 못하고
계속 흘러 내리다가
초등학교 앞
노란 가방을 맨 아이 발자국에
무심히 밟혀 사라지는
1월 10일이다. 지난주 금요일에 '1월 5일이구나, 벌써 새해가 5일이나 지났네, 5일씩 몇 번만 더 지나면 올해가 끝이네, 올해도 다 갔구나' 생각했다. 올해가 다 갔다고 생각하는 날짜가 나이 먹을수록 점점 빨라진다.
토요일에 서울 갔다가 일요일에 돌아왔다. 아내랑 함께 했다. 아내 부모님, 아내 오빠 가족과 점심을 먹었다. 1월 13일 생일이 지나야 17살이 되는 조카 아이가 고등학교 조기 졸업하고 카이스트에 합격했다. 지나간 아버님 생일과 조카 아이 축하 식자다. 만 17세면 앞으로 10년 동안 놀고나서 앞으로 어떻게 살까 생각해도 좋겠단 생각이다. 종로 한 복판에 있는 중국집에서 이것저것 먹었는데, 크림 새우가 맛있었고, 아버님과 조카 아이가 짜장면을 많이 남겼다. 풍족함이 흘러 넘치는 시대지만 여전히 음식을 남기는 일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아버님, 앞으론 그러지 말자구요. 생애 처음 가본 블루보틀에서 커피까지 마시고 어머님이 싸주신 월병이랑 찹쌀떡 챙겨서 - 어머님 사랑 - 아내랑 신월동으로 왔다.
아내는 오랜만에 시아버지를 만났다. 1박 2일 동안 아버지를 지켜본 아내는 아버지가 그럭저럭 심각하진 않은 것 같다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다만 혼자서 못 지내는 사람이 됐을 뿐이다. 아버지랑 순댓국집 두 곳에서 순댓국을 먹었다. 두 곳 모두 주인이 나랑 아버지를 알아보는 집이다. 우리 아버지가 온전치 못하다는 것도 알고 있는 집이다. 장사하는 사람들이야 별 생각 없겠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그들의 시선이 부담 되기도 한다. 아내까지 셋이라서 이번 주말은 그 부담감이 강하지 않았다. 아버지를 만나면 아버지랑 뭔가를 먹어야 하고 아버지가 순댓국을 가장 무난하게 잘 드시기에 순댓국 집엘 간다. 다음 주말에도 어쩌면 그 다음 주말에도, 내가 아버지를 만나는 모든 날에. 순댓국은 실제로 우리 집안의 소울 푸드이기도 하고 - 엄마가 나 임신중에 순댓국과 코카콜라를 많이 먹음, 네 다섯 살 때부터 가족 외식으로 시장에 순댓국 먹으러 갔던 기억이 있음. - 뚝배기에 담긴 국밥 이미지 자체가 소울 푸드란 말과 어울린다. 일요일 점심 먹고 나서는 아버지랑 둘이 호수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먼저 아버지랑 호수 공원 돌았던 게 언젠지 모르겠는데, 아버지는 확실히 그때보다 훨씬 멍한 사람이 됐다. 호수공원을 돌고 공원 옆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씩 마셨다. 예전에 스타벅스 돌체 라떼 같이 마셨던 게 기억났다. 아버지는 나에게 순댓국과 스타벅스로 기억되겠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에게 잊혀질 것이다.
뇌동맥류 수술을 했고 올해 또 칼을 댈 일이 있을 거라고 점쟁이가 말했다는 엄마, 위암 수술을 했고 치매에 걸린 아버지, 유방암 수술을 한 어머님, 심장이 뛰게 하는 보조기구 시술을 받고 담낭 제거를 기다리는 둘째 이모, 담당을 제거한 친구 어머니, 다리에 심각한 수술을 한 친구 아버지, 왼쪽 어깨를 올리지 못하는 친구, 아킬레스건이 끊어진 친구, 다리에 큰 수술을 한 친구, 수시로 오줌을 누러가야 하는 또래 친구들, 갑작스럽게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저렸던 나, 새해 들어 왼쪽 어깨가 아프더니 팔까지 저리기 시작하는 나, 40세 무렵에 노안이 시작된 아내, 암 수술을 받은 내 또래 사람들, 갑자기 죽은 40대 사람들, 점점 늘어난다는 2, 30대 치매 환자들. 늙고 병드는 일을 생각한다. 어디까지가 삶이고 어디까지가 삶이 아닌가, 언제부터 죽음이고 언제까지가 죽음이 아닌가.
45세, 어느날 갑자기 쓰러져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다. 혼란한 국제 정세와 내가 살고 있는 곳이라 그런지 더 혼란하게 느껴지는 국내 정세를 생각하면서 짜장면을 많이 남긴 가족들과 끝까지 배가 고팠을 안네 프랑크 누나, 서대문 형무소에 갇혔던 독립투사들을 생각하면서 언제든 이상하지 않을 나의 죽음 같은 걸 생각한다.
가족 모임도 좋았고 아버지를 만난 것도 좋았다. 아내랑 함께 해서 더 좋았다. 불편을 감수하면서 시아버지랑 함께 있어준 아내에게 고맙다, 고 생각하면서도 급작스런 나의 죽음 같은 걸 생각하는 1월이다.
30일부터 2일까지 아버지랑 함께 있었다. 오늘 첫 출근 했다. 아버지랑 3박 4일은 진짜 힘드네. 신년 카운트다운 할 때, 나는 연기대상 프로그램 틀어놓고 웹툰 보고 있었고 아버지는 잠들어 있었다.
아버지랑 순댓국, 치킨, 갈비, 삼겹살을 먹었다.
31일 낮에는 동생이 아버지 집에 다녀갔다. 살아가는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1일에는 목욕탕에 갔다.
1일 밤에는 뭔가 견디기 힘들어서 밤 11시에 잠든 아버지를 두고 집을 나와서 모텔에 가서 잤다. 2일 아침에 아버지는 내가 어제 같이 누웠었단 사실도 잊었다.
엄마는 2일 낮에 막내 이모 - 내 사랑 명옥이 이모 - 랑 같이 다녀갔다. 막내 이모랑 살아가는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아버지 보러 온게 아니라 많이 아픈 언니 보러 온 거였다. 아버지는 데이케어 센터에 있었다. 엄마는 아버지 드시라고 고구마를 삶았다.
새해 첫 진료라 그런지 병원에 사람이 많았다. 두 시간 기다려서 아버지 뇌가 점점 위축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약간 바뀐 처방전을 받았다. 의사가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내가 의사 선생님 만난게 17시였는데, 아버지 뒤로 16명이 대기중이었다.
아버지는 매운 양념 치킨을 잘 먹었고 얼큰 순댓국을 제일 맛있게 먹었다. - 처음에 잘 못 먹길래 매운 건 시키지 말자, 생각했는데 뜨거워서 그랬던 거였다. - 목욕탕을 좋아했고, 목욕탕에 가서 보니 빤스를 안 입고 있었다. 엄마 언제 오는지 자꾸 물었지만 엄마를 만나지는 못했다. 내 동생의 존재를 잊은 줄 알았는데, 잊지 않았다. - 센터 선생님들 빼면 엄마, 나, 내 동생 이렇게만 확실하게 아는 것 같다. -
아버지는 증상을 늘어놓는 게 무의미한 완숙한 치매 환자가 됐다, 어느새. 아버지에게 섬망과 환청이 없어서 다행이다, 그나마.
12월 18일에 접수됐다고 연락온 요양등급내용변경에 대한 답변이 오지 않는다. 기다린다. 설이 2월 10일 경이니까 1월 중순까지는 공단에 연락하지 않고 기다려보기로 한다. 아버지가 갈 요양(병)원 알아보는 중이다. 엄마 마음이 편한 곳으로 하기로 한다. 아버지에게 요양원 얘기를 하면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알아서 하라고 한다. 아버지랑 오래 같이 있었더니 아버지한테 니가 고생이 많다, 고맙단 말을 많이 들었다. 알아서 하란 말에도 고맙단 말에도 맴이 찢어진다.
천사와 악마
검은 날개의 천사가 라흐마니노프 2번을 친다
흰 건반이 날뛰는 동안 검은 날개가 펄럭인다
붉은 입술의 악마와 푸른 이빨의 천사가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입을 맞춘다
입술이 닿았던 자리에서 내가 태어나고
내 날개 한 쌍은 각각 다른 색이다
협주곡 2번이 3번으로 바뀌고 음악은 멈추지 않는다
이곳이 악몽은 아니다
이곳은 현실도 아니다
왼쪽 날개를 펼치자 지옥의 방청객들이 고통을 노래한다
오른쪽 날개를 펄럭이자 천사들이 울부짖는다
다들 뭔가를 애원하고 바라지만
무엇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음악은 끝나지 않는다
나는 끝까지 날아 오른다
소리가 멀어진다
나는 천사인가 악마인가
사랑 - 퇴근
퇴근 후 네가 없는 걸 알면서도 네 이름을 부르면서 집에 들어온다
사랑
내가 취해서 비틀거리며 돌아간 그 곳에 당신이 있있으면
사랑
40년 넘게 사는 동안
내 손이 예쁘다고 얘기한 유일한 사람이 당신
사랑
북극은 바다 남극은 대륙
내가 녹아 너에게 닿는 것
사랑
당신이 내 인생 최고의 환대
사랑
네가 내 복이고 내가 네 복이지
사랑
네가 뭐라고 날마다 이렇게 애틋하냐
사랑 - 이분법 -
세상의 이분법을 다 곱하면 은하계 끝에 닿고도 넘칠텐데
그 중에 나는 당신의 애인
사랑
혼자서 폭식을 할 때도 너를 생각한다
사랑 - 걱정
날 걱정해 주는게 너라서 좋다
사랑 - 연결
영원히 답이 오지 않아도 모든 순간에 연결돼 있다. 너와 나.
사랑 - 별 -
너라는 별의 이름을 알면
내가 그 이름이 될텐데
사랑 - 사진사 -
너를 카메라에 담는 게 내 일이다
사랑
누군가 나를 안아 줄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그게 너였으면
사랑
내 엄지 발가락의 궂은살로 너를 긇어 줄까?
내 짓궂은 삶이 떨어져 나가도록
사랑
너는 나의 마지막 이름
사랑 - 물거품 -
너를 사랑하는 것 말고도 내 머릿속엔 몇 가지 생각이 있는데
너를 너무 사랑해서 다 물거품이다
사랑
너는 나의 프랙탈 반복되는 너를 설명할 수 없다
사랑
영업시간 이후에도 너랑 한 잔 더 마시고 싶다
사랑
나비 두 마리가 꽃 위에서 춤을 추다
사랑
영업시간 이후에도 너랑 한 잔 더 마시고 싶다
사랑
내 손으로 네 발을 감싸줄게
사랑
너는 나의 존재증명
사랑
너는 나의 생활
사랑
연애란 게 끝나는 순간이 있는데 우리에겐 그게 없다
사랑
구름이 있어야 파란 하늘이 더 푸르게 반짝이듯이 당신에게 내가 그런 사람이었으면 한다
사랑
기억할 수 있을 때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를 하다
사랑
전화는 먼저 하는 사람에게 용건이 있으니
나는 당신에게 무슨 용건이 있을까?
사랑
두 개의 담배를 연달아 피우면서 너를 생각하다
사랑
사랑인가 늘 생각하지만
당신이 곤히 잠든 모습을 들여다보고
안심해서 잠드는 일이 사랑이다
사랑
나도 날 걱정하지 않는 이 세상에
날 걱정하는 사람이 너 뿐인 것
사랑
모든것을 기억할 수 없으니
당신의 한 때라도 기억하려고 한다
사랑 -조건
세상 어딘가엔 있다
나를 조건없이 좋아해 줄 사람이
사랑 - 이유 -
새출발이 필요하다고 하면 마누라라도 놓아주는 것
사랑
전세계에서 우리 둘만 아는거
신년
누군가에게 어떤 마음을 먹은채 한해가 가고
그 마음 그대로 새해가 온다
사랑
삶에서 사랑을 빼면 앎이 되는지도 모른다
사랑
바이칼호 1642미터 밑바닥에 앉아서 물 위에 숨쉬고 있을 너를 생각하다가 죽고 싶다
사랑
잠든 당신 배 위에 살며시 손등을 얹으면
온 세상이 그저 우리로만 통하는 일
사랑
나도 내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너에게 돌아오긴 할거다
사랑
세상 일이 다 바보 같을 때
거기에 한 마디 더 덧붙혀도 되지만
네 생각을 하는 일
사랑
나이 40줄에 아내에게 잠투정하다
사랑
아무데도 기록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어딘가에 작은 흔적이라도 남아 있는 것
사랑
99렙을 찍고도 끝나지 않는 모험의 세계
사랑?
항상 사랑하고
너는 내 마음을 모르는 게 좋다
사랑
우연을 인연이라 하고 인연에 의지를 더해 불가피(不可避)가 되는 것
베스트
네가 세상 베스트
사랑
아내가 기운 내라고 했다
고마워서 기운이났다
사랑?
너에게 매몰되었다
사랑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영역이다
사랑
당신이 내 생에 유일한 낙관이다
사랑
내 믿음이 어딘가로 방향을 바꾼다면 당신을 향했으면 좋겠다
사랑
당신과 함께 무언가를 하는 게 내 생활이다
사랑
해무가 바다를 애무하듯
당신 발바닥에 담배 연기를 내뿜고 싶어
사랑
사랑은 다른 말로도 사랑
몹쓸 이율배반
사랑
결정적인 순간에 뒤로 물러서지 않는 일
사랑
스물 네 시간 일 초라도
더 보고 싶다
사랑
너에게만 병적으로 파고드는 일
사랑
사랑이란 두 글자를 더 이상 적지 않는다고 멈추지 않는다
사랑
나이 오십에도 투정이 느는 일
사랑
당신이 살아있어 줘서 고마운 거
사랑
물음표가 없는 두 글자
사랑
니 안에서 내 손이 불타고 있어
사랑
언제나 지금이 더 좋다
사랑
어떤 말로 표현하든
아니, 말로 표현 못하더라도
너랑 같이 있는 게 제일 좋다
사랑
사랑해. 문자를 보내자
사랑해! ^^ 답장이 오고
하루종일 그 메세지만 들여다보는 일
사랑
분명, 네가 나는 아닌데
그렇다고, 네가 너도 아닌 것
우리가 남이 아닌 일
사랑
이상하게도
만취해서 잠들기 전 같이
제정신이 아닌 순간엔
항상 네가 떠오르는 일
사랑
감기에 걸린 전화기 너머의 네 목소리도 하루의 위로가 되는 일
이기심
감기에 걸린 전화기 너머의 네 목소리에 그저 내 삶의 위로만 받는 일
사랑 - 생각
나한텐 너 밖에 없다는 생각의 반복으로 산다
서울에서 2박 3일 보내고 어젯밤에 강릉으로 돌아왔다. 새벽에 다섯 번 깨고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했다. 피곤하다.
23일 저녁에 아버지랑 치킨 먹었다. 올들어 세 번째인데 아버지가 먼저 두 번보다 맛있게 먹었다. 아버지 먹는 모양새가 어설퍼서 순살 치킨을 시켰다는 점은 섭섭하지만 24일 아침에 아버지 집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가 반쯤 먹고 남았던 치킨도 다 먹었고 맛있다고 했기에 만족했다. 앞으로 아버지랑 치킨은 페리카나 순살 반반으로 고정하기로 한다.
여러가지 정황상 아버지는 23일 오전에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못 찾았다. 나는 23일 밤에 친구랑 술을 먹고 친구네서 잤는데, 택시에서 내리고서 휴대전화 잃어버린 걸 알았다. 다음날 아침에 전화기 어떻게 찾을지 약간 막막했는데, 택시에 뒀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카카오T 사용 기록을 ARS로 조회해서 택시 기사분과 통화를 했고 친절한 택시 기사분 집이 마침 신월 1동(아버지 사는 동네)이라서 파출소에서 전화기를 찾았다. 휴대전화 잃어버리기는 치매에 걸리나 안 걸리나 마찬가지네, 생각했다.
23일에 나를 재워준 친구네 집은 역곡역 부근이다. 고등학교 때 이 친구네 집에 많이 갔다. 그때 친구는 온수동에 살았다. 서울에서 벗어났지만 삶의 터전이 많이 바뀌진 않았다. - 돈 없는 집들은 다들 조금씩 서울 바깥으로 밀려난다. - 술이 꽤 취해서 들어갔는데도 어렸을 때 느꼈던 특유의 친구네 집 냄새가 났다. 같은 사람이 살고 있어서 그렇다. 나이 먹고는 부모님과 함께 사는 친구네 집에 갈 일이 거의 없기에 집안의 냄새가 바뀌지 않은 점이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친구한테 얘기했더니 그런가, 하고 말았다. 본인 집 냄새를 본인은 모르는 법이다. 나는 남의 집에 갔을 때, 그 집 특유의 냄새(atmosphere)에 대해서 얘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막상 우리집 냄새에 대해서는 들은 기억이 없다. 지금 엄마집에 가면 나는 냄새가 어릴적 우리집 냄새일까? 궁금하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아버지랑 목욕탕에 갔다. 아버지가 정말 오랜만이라고 하면서 좋아했다. 아버지와 나는 59.5kg 노인과 82kg 중년이다. 아버지 체중은 위암 수술 후에 5kg 정도 줄었다. 벗은 아버지 몸은 보기에 많이 야위었다. 아버지는 내 몸이 보기 좋다는 맥락의 말을 했다. 아버지랑 열탕에 몸을 담그고 매주 일요일마다 목욕탕에 가던 어린날을 떠올렸다. '응답하라 1988' 같은 것. 그때는 어지간한 집은 다들 일요일에 목욕탕에 갔기에 목욕탕에서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다. 아버지는 비누칠도 어설펐다. 45세의 크리스마스 이브에 71세 아버지 몸에 비누칠 해준 걸 기억해둔다.
아버지랑 순댓국도 먹고 만두도 먹고 한우소머리곰탕도 먹었다. 아버지는 머핀도 먹고 두유도 먹었다. 아버지에게 내년에는 요양원에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무슨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거기도 사람들이 많은지, 같은 걸 물어보고는 니 알아서 하라고 했다. 아버지는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내일 학교(데이케어센터)에 가는지 계속 물었다. 나는 그냥 기계적으로 같은 대답을 하고 아버지는 같은 말을 또 묻고의 반복이다. 아버지는 니가 고생이 많다는 얘기도 반복해서 했다. 아버지랑 이런 얘기를 나눌때 마음이 찢어지는 정도는 아닌데, 충분히 상처받는다.
아버지 집에서 잉글랜드 프로축구 하이라이트랑 영화 러브 액츄얼리를 봤다. 잉글랜드 축구는 빡세고, 러브 액츄얼리는 늘 사랑스럽다. 삶은 빡세고 사랑스럽다. 아버지랑 같이 있을 때, 대학 후배한테 전화가 왔다. 명절이라 전화했다고 했다. 고마운 일이다. 내 말투의 기계같은 면 때문에 후배가 '형, AI에요?' 물었지만 정말 고맙다. 날 생각해서 먼저 전화를 해준거니까. 내가 좋아하는 형 중에 한 명(ys형)은 가끔 내가 전화하면 항상 '일우야 고맙다'고 한다. 나도 후배에게 '고맙다'고 했다. 이런 게 삶의 사랑스러운 면이다. 꼭 먼저 연락줘서 고맙다고 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전화를 귀찮게 느끼지 않는 것도 - 때로는 귀찮게 느끼더라도 - 삶의 사랑스러운 면이다. 20대 중반에 친구들 전화 잘 안 받은 적 있는데, 그때 아버지가 니 생각해서 전화하는데 널 생각한다는 게 고마운 일이니 친구들 전화오면 전화 잘 받으라고 나한테 한 마디 한 적 있다. 아버지가 내게 남긴 유일한 삶의 교훈이다. 아버지는 그런 마음으로 살았고 나도 그런 마음으로 산다. 내 전화 잘 받아주는 친구들이 항상 고맙다.
12월 30일부터 1월 2일까지 아버지랑 함께 한다. 아버지 다시 만날 때까지 아버지한테 별일 없어야 할텐데. 아버지 만나면 목욕탕도 가고 치킨도 순댓국도 먹고 병원도 가고 휴대전화도 내 이름으로 새로 장만하려고 한다.
엇나가지 말고 체념하지 말고 물의를 일으키지 말고 살아야지. 세 개가 같은 말이다.
가을은 무슨
무심히 찾아온 가을이 속도를 붙인다
외로움에 가속도가 붙는다
춥다. 점점 더,
느티나무 이파리 떨어지는 모습을 보다가
누군가 나를 봐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가을은 무슨 색입니까, 묻던 당신에게 이제는 답할 수 있다
가을은 당신이 나를 봐주길 바라는 색이다
노란색도 붉은색도 아니고
당신 생각에 잠기는 색이다
가을은
겨울로 가는 색깔
당신이 더 그리워지는 색깔
사랑을 묻지 않으면 떠올리지 않는 색깔
끝난 사랑을 되돌릴 수 없는 색깔
연태 고량주
혼자서 연태 고량주를 먹는 밤
가게엔 양꼬치 집 사장님과 나 뿐
대화는
오늘은 왜 혼자왔어요, 와
양갈비 두 개 주세요, 뿐
혼자와서 두 사람 치를 먹는 게 서럽진 않다
이 집에서는 후식으로 물만두도 먹어야 한다
파인애플 향이 식도를 파고든다
사탕수수를 먹어보진 못했지만 사탕수수 향인지도 모른다
사실 이 술은 수수로 만든다
사실 자세히 모른다
모든 일의 유래를 몰라도 그냥 사는 게 삶이다
인간이 돌도끼를 던질때부터 그랬을거라고 위안 삼는다
유래도 모르지만 투명한 술병이 예뻐서 그냥 먹는다
소 중 대 중에 중자 병이 예쁘다
예쁜걸 좋아하는 것도 원래 그런 일이다
연태땅이 어디 붙어있는지도 모른다
간도, 연해주가 어딘지 모르는 것과 같다
혼자 마셔도 술병이 빈다
술의 순리가 살아가는 순리
갈비를 뜯을 때 물만두를 시키고
이것도 살아가는 순리
그냥 마시자
한 병 더 마시자
아무말 없이
아무말 없이
지난 금요일에 의료보험공단에서 전화가 왔다. 공단직원이 치매는 장기요양 5급이라도 시설급여가 가능하다는 얘기를 해줬다. 몰랐다고 알려줘서 고맙다고 금방 신청하겠다고 답했고 오늘 내용변경 신청했다. 팩스 보내고 나서 얼마후에 신청완료 카톡이 왔다. 공단 직원이 장기요양 내용변경신청 어떻게 하라고 했을 때, 나는 되묻지 않고 한 번에 알아들었다. 모든 보호자가 나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건강보험공단에서 장기요양 등급 담당하는 일은 극한직업이구나, 생각했다.
아버지는 12일에 봤을 때보다 더 멍해졌다. 만날 때마다 더 멍해진다. 그저 멍한 상태다. 14일에는 데이케어센터에서 돌아온 후에 길을 잃었다. 이번에도 친절한 이웃 덕분에(이번엔 엄마가 사례를 했다고 함) 집에 돌아왔다. 어떤 경로로 길을 잃었는지 모르겠다. 아버지를 보고 아버지 생각을 할 때마다 왜 이렇게 갑자기....란 소용 없는 질문이 반사적으로 튀어 나온다.
어제 12시에 엄마가 오산 집으로 돌아가고 내가 아버지 집을 나올때까지 4시간 30분 정도 아버지랑 단 둘이 같이 있었다. 아버지 좀 누우세요, 하니 아버지는 누웠고 바로 잠들었다. 잠에서 깬 아버지는 티셔츠 위에 티셔츠를 겹쳐 입으려는 시도를 했다. 왼쪽 팔을 먼저 넣고 티셔츠를 뒤로 돌려서 반대쪽 팔을 넣으려고 시도했다. 재킷이 아니라 티셔츠를. 그 모습을 아버지 뒤에서 10분 정도 지켜보다가 그렇게 입는 옷 아니라고 알려줬다. 화를 내는 말투는 아니었다. 체념하는 말투긴 했다. 체념은 무정함이다. 아버지 치매 확정되고 나서 나와 아버지의 거리는 처음부터 그랬다. 아버지는 내 말을 정확히 못 알아들었지만 옷 입는 시도는 멈췄다. 내가 말 안했으면 한 시간도 그러고 있었을거라 생각한다.
텔레비젼 켜는데 십 분, 바지 입는데 십 분, 티셔츠 (거꾸로) 입는데 십 분, 두유에 빨대 꽂는 일에 십 분. 아버지의 시간은 이렇게 흐른다.
엄마는 배 안고프다고 해서 아버지랑 둘이 순댓국을 먹었다. 아버지는 먹는 모습도 만날 때마다 어설퍼진다. 그걸 보는 일이 힘들다. 힘들다.
아버지가 요양원 가는게 맞는건지 모르겠다. 그러자고 결정을 했는데도 모르겠다. 모르겠다.
가난한 사랑
출퇴근 길 지하철 신길역 연결 통로 꽃집을 지나면 꽃이 예뻐서 사고 싶고
너에게 꽃을 건네주는 상상을 해보는데
돈이 없어서 못 사고 고개 숙인 채 꽃다발과 눈만 마주친다
어제 인터넷으로 장기요양등급 변경 신청했고 오늘은 아버지 인지검사 날이다. 1년에 한 번 하는 인지검사를 두 달 전에 받았어야 했는데, 스텝에 꼬여서 1년 2개월 만인 오늘 받았다. 강릉에서 8시 30분 기차를 탔고 이대목동병원에 도착했을 때, 검사실 앞에 엄마가 혼자 앉아 있었다. 엄마를 꽤 오랜만에 보는데 포옹도 안 하고 서로 손만 잡았다. 나도 엄마도 아버지 때문에 마음이 지친 영향이다. 사실 아버지 때문에 지치기론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이다. 현재 심장 문제로 이대목동병원에 입원해있는 둘째 이모는 수시로 아버지 오산으로 데려가서 같이 살라는 얘기를 한다. 이모같은 외부 스트레스 요인이 아니더라도 엄마 스스로 갖고 있는 이혼한 전남편에 대한 책임감이 크다. 알지 모르겠지만 아버지 걱정 많이 한다고 나한테 따로 얘기한 적 있었고, 오늘도 아버지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고 비슷한 맥락의 얘기를 했다. - 엄마, 알아요.
아버지는 지난 일요일에 길을 잃었다. 한밤중에 어떤 이유로 신정동까지 걸어 갔는지 모르겠다. 오늘 엄마 얘기를 들어보니 엄마랑 아버지가 통화할 때 아버지 주변에 있던 친절한 이웃이 신월1동 파출소를 - 동네에서는 길을 잃어 버리지 않으니까. 혹은 엄마랑 통화 안했으면 어떻게든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을지도 모른다. - 목적지로 택시 태워줬다고 한다. 지금은 시도조차 못할 일이지만 예전에 경기도 오산에 혼자 가다가 지하철인지 버스인지 잘못타서 길을 잃은 적이 한 번 있다. 아버지가 치매 걸리고 길을 잃은 게 엊그제 케이스까지 공식적으로 두 번이다. 기록해둔다. 걱정된다.
인지검사 선생님이랑 상담하고 - 인지검사 선생님이 갑자기 보호자가 바뀐일로 당황하길래, 저 아주머니는 이혼한 전처라고 말해줬다. - 셋이 병원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셋이 밥 먹을 때마다 아버지랑 엄마 이혼하던 날 생각이 난다. 셋이 밥 먹는 거 오랜만인데 별 감흥이 없었다. 나랑 엄마랑 둘 다 아버지에게 지친 탓이다. 엄마가 맛없다 해서 그런지 맛있게 먹은 내 결론도 맛 없는 한 끼였던 게 됐다. - 엄마의 말 한마디, 그 영향력을 생각한다. - 나는 아버지에게 배부르면 그만 드시라고 했고 엄마는 그 반대였다. 아버지는 처음엔 배 부르다고 밥을 남겼다가 엄마 얘기에 꾹꾹 눌러담은 밥 한 공기를 다 먹었다. 이게 더 깊은 애착의 힘인가?
밥 먹고 아버지 담당 선생님 만났다. 의사는 아버지의 인지능력이 급격히 나빠진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면서 머리 mri를 찍고 결과를 본 후 약을 바꿔보자고 했다. 1년에 3점 정도 떨어지면 보통이라고 하는 30점 만점짜리 인지검사에서 오늘 아버지는 9점을 받았다. 2년 전에는 19점. 1년 전에는 17점이었다. 의사 선생님이 아버지의 치매 치료(?)에도 건강보험 산정특례를 적용해줬다. 우리 아버지, 나도 엄마도 모르는 사이에 작년 이맘때보다 훨씬 이름없는 식물같은 사람이 됐네. mri는 오늘 못 찍고 촬영 동의서만 썼다. 19일 아침 7시 30분에 촬영인데, 동생이 시간 된다고 해서 동생에게 맡겼다. 다행이다. 오늘은 피검사 소변검사 심전도 검사를 순서대로 했다.
검사실 옮겨 다니다가 아버지 가방이랑 목도리를 엠알아이 촬영 동의서 쓴 곳에 두고 왔다. 그 사이에 아버지 약 사러 갔던 엄마는 신용카드를 약국에 두고 왔다. 두 건 다 빨리 알아채고 찾아오긴 했지만 누가 누굴 돌보는건지, 심각하다.
병원 나와서 오목교역 근처에 신한투자증권에 갔다. 엄마가 갖고 있는 증권계좌 정리가 목적이다. 엄마가 창구 직원에게 증권계좌가 있는 유래에 대해서 구구절절 설명하려고 하길래, 내가 이 사람(엄마) 명의로 증권계좌가 있는지 있다면 정리하고 싶다고 말했고, 그 다음 진행은 일사천리였다. 오늘 한 일 중에 꽤 잘한일이다. 오래전에 집에 돈이 하나도 없을 때, 동생 등록금 마련한다고 80년대부터 갖고 있던 포항제철 주식 팔기 위해서 증권회사에 엄마랑 같이 온 적 있다. 그때 생각이 났다. 그때 포철주식 판 돈이 딱 동생 등록금이 었다고 엄마가 말해줬다. 그때 엄마 나이가 지금 내 나이보다 어리다.
엄마는 이모가 입원해있는 병원으로 돌아가고 나는 아버지를 데이케어센터에 데려다줬다. 기차 시간이 남아서 친구한테 들렀다. 이 친구 엄마가 우리 엄마랑 동갑인데, 폐에 종양이 두 개 있고 두 달 후에 그 종양이 얼마나 커지는지 봐야 암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고 한다. 나이 먹고 손상되는 내장을 생각한다. 손상되지 않는 삶이란 무엇인가? 나도 가끔 위축성 위염이 찾아오면 소화가 안되는 기분과 함께 가슴이 답답한 증상이 온다.
낮에 만난 친구한테만 얘기하고 말까하다가 여기 적는다. 아버지 소변검사 하는데, 오래 걸렸다. 좌변기가 있는 화장실 한 칸에 들어가서 내가 시범을 보여주고 나서도 한참 후에야 아버지가 소변검사를 이해했다. 아버지랑 나랑 음경 모양이 닮았다. 씨발 핏줄. 이런 생각을 했다. 친구 아버지는 돌아가신지가 10년이 넘었는데, 친구도 어느날 아버지랑 본인 음경이 닮은 걸 알았다고 한다. 씨발 핏줄. 한 번 더 생각했다.
청량리역에 앉아서 쓰다가 집에 돌아와서 마저 쓴다.
겨울, 별
35번 국도, 강릉에서 부산까지
삽당령, 해발 680미터
동지, 오후 네 시에 찾아온 어둠
물은 아랫 마을로 별은 하늘 너머로
고개를 들어 별을 본다
겨울엔 별이 많다
겨울 별은 시리도록 밝다
나란히 박힌 세 개의 별과
그 마지막 별 아래 두 개의 별
그 다섯별을 둘러싼 다섯 개의 별
그 주위에 무수히 많은 별별별
그 사이에 보에지 않는 별별별
이미 이름이 있겠지만 나의 이름은 아니므로
당신의 무언가를 따와서 이름을 새로 붙여주고 싶은
별들, 혹은 별자리
그렇게 내 이름도
우리가 언젠가 함께 보았던 별의 이름으로
당신 마음에 남기를
모든 이름이 별의 이름으로 기억되기를
어제 서울 와서 데이케어센터에 내년도 센터 이용 계약서랑 아버지 투약 의뢰서 등 서류 몇 가지 전달하고 센터 선생님 한 분과 면담 시간을 가졌다. 이 선생님은 아버지에게 굉장히 호감을 갖고 계신 선생님이고 센터에서 간호부장이다. 요즘은 아버지 면도도 직접 해주신다. 아버지도 키 큰 선생님이라고 하면서 자주 언급했더랬다. 센터에서는 당연하게도 최근 몇 달 사이에 아버지의 인지능력이 급격히 나빠진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장기요양등급을 4등급으로 받고 요양원으로 모셔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아버지의 신체는 여전히 요양원에서 살기에는 너무 건강하지만 내 결정 혹은 결심은 세상에 흔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저녁엔 친구 만나서 한 잔 했다. 처음 들어갔던 술집에 가방을 두고 와서 그 가방을 찾아둔 친구를 오늘 아침에 다시 한 번 만났다. 아침부터 버스랑 지하철을 갈아타고 한참 걸어서 경기도 부천에 있는 친구네 집까지 찾아가는 일이 번거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른이 되서 여유가 생긴건가? 어젯밤이랑 오늘 아침엔 모텔 욕실에 있는 욕조에 몸을 담갔다. 오랜만에 포근함. 하룻밤 4만원 짜리 방에 욕조가 있는 게 맞나? 잠깐 생각했다. 물론 오래된 모텔이고 방도 후지긴 하다.
오늘 오후엔 센터에서 아버지 모시고 와서 아버지랑 순살 닭 튀김도 먹고 축구도 봤다. 오늘은 달콤한 양념이 묻은 치킨을 시키는 실수를 하진 않았다. 다만 맛이 별로 없었기에 다음번엔 브랜드 치킨을 한 번 시켜 드려야지, 생각했다. 아버지는 닭을 맛있게 먹었다. - 물론 먹는 모습이 점점 어색해지고 있다. - 콜라는 나 한 모금 아버지 한 모금 먹고 싱크대에 버렸다. 잘한 일이다. 아버지는 축구를 집중해서 못 봤고 내가 뭔가를 얘기하면 다른 얘기만 했다. 내일 엄마가 온다는 얘기를 50번 정도 해줬다. 얼마전엔 본인 전화번호를 묻길래 100번 넘게 얘기해줬다. 집에 들어오는 도어락 비번을 순간 잊어서 센터에서 돌아와서 집에 늦게 들어오게 됐고 그것 때문에 번호를 물었으리라 추론해 볼 뿐이다. 우리 아버지는 무얼로 사는거지? 어떤 의미로는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 어제 '계산된 삶' 을 읽었고 지금은 '수확자들'을 읽고 있어서 이런 생각을 한 거겠지. 살아 있으면 살아야 해서 사람이다.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자.
다음주엔 서울에 두 번 와야되고 그 다음주에도 그 다음주에도 서울에 온다. 약간 힘든데, 번거롭게 느껴지진 않는다. 나이 먹어서 그런게 아니고 아버지를 제외한 나머지 내 삶이 매우 심플하기 때문에 그리고 수시로 서울에 올라오는 일이 머잖아 끝날 것을 알기에 그렇다는 걸 안다.
아버지가 나랑 엄마랑 센터 선생님들 빼고는 다 잊어가는 것 같기에 동생에게 아버지가 너를 잊는 것 같으니 수시로 전화 하라한 게 삼 주 전이다. 아버지 전화기 통화 목록을 쭉 들여다 봤는데, 아버지 친구 한 명은 며칠전의 통화기록에 이름이 있는데 동생 이름은 쭉 없었다. 동생은 나보다 번잡한 삶을 사니까, 아이 두 명 키우는 게 힘들겠지, 생각했다. 그래도 섭섭한 마음이 있다. 아버지랑 친했던 건 내가 아니라 동생인데.
아버지는 삼 주 전보다 더 멍해졌지만 아직? 나를 잊지는 않았다. 본인 아이를 잊는다는 건 본인 아이를 잃는 일만큼이나 심각하구나 생각해본다. 아버지 저를 오래 기억해 주세요. 엄마는 저보다는 더 오래 기억해 주시고.
청량리에서 강릉 가는 표를 끊았다고 생각했는데, 강릉발 기차표를 끊었기에 환불 후 강릉가는 기차표 예매하고 잠깐 비는 시간에 쓴다.
린샹푸의 혼례는 곯아떨어진 술고개 여섯명의 코 고는 소리와 아귀들의 게걸스럽게 쩝쩝대는 소리 속에서 치러졌다. 샤오메이는 혼자 조용히 한쪽에 앉아 안방 구들에 누운 린샹푸를 바라보았다. 머리통의 머리카락이 잡초더미 같았다. 본채에도 사람이 가득하고 마당에도 적지 않았다. 배고픔을 참고 있던 사람들이 뺨이 불룩해지도록 음식을 입안에 쑤셔넣고 고개를 숙인 채 쩝쩝거리며 먹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샤오메이는 멀리 남쪽에서 어느 여름날 황혼 무렵 누가 벼 한 줌을 땅에 뿌리자 닭과 오리 떼가 날개를 펼치며 달려들던 광경이 떠올랐다. 지금 한데 모여 먹는 사람들이 그 모습과 비슷했다.
린샹푸는 한숨을 내쉬며 사람이 죽을 때는 자손이 옆을 지켜야 하는 법이라고, 누구든 빠지면 달도 그만큼 조각나 망자는 눈을 감지 못한다고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옆에 아무도 없었으니 달이 먹구름에 가려진 형상이었다고 슬퍼했다.
매파는 생월생시와 띠를 알아야만 상생인지, 상극인지 알 수 있고 길흉화복을 점칠 수 있다고 했다. "말띠는 소띠와 어울릴 수 없고 양띠는 절대로 쥐띠와 사귀면 안 돼요. 백마는 푸른 소를 두려워하고 양과 쥐는 만나면 싸운다는 말이 있지요. 뱀과 호랑이의 결혼은 칼부림과 같고, 토끼가 용을 만나면 눈물을 흘리며, 닭과 개는 재난을 피하기 어렵고, 돼지와 원숭이는 끝가지 함께할 수 없답니다. 개 두 마리는 한 구유를 쓸수 없고, 용 두 마리는 한 연못에 있을 수 없으며, 양은 호랑이 입에 떨어지고요....... 도련님은 양띠니까 두 사람은 양과 쥐였거나 양과 호랑이였을 거예요." ~ "세상에 이렇게 기이한 일이 있을 수가. 속담에 찢어진 부채도 부치면 바람이 일고 망가진 가마라도 타면 당당해진다고 했어요. 당당함은 일단 제쳐놓고 가마에 태워 오지 않았으면 여자 발은 도련님 게 아니라 여자 것이지요. 언제든 갈 수 있다고요. 샤오메이는 틀림없이 돌아오지 않을 거예요."
그들은 숯이라도 담았던 양 꾀죄죄한 쌀 포대를 가지고 다니며 돈을 받을 때마다 거기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면 쌀 포대 속 엽전부터 대바구니에 쏟았다. 리메이롄이 대바구니를 집 앞 복숭아나무 아래로 옮겨놓았기 때문에 엽전이 쌓일 때 신선한 꽃잎도 떨어져 들어가곤 했다. 복사꽃과 엽전이 한데 섞이는 걸 보고 리메이롄은 돈에 기쁨이 깃든다고 말했다.
남편이 사람들에게 들려서 돌아왔는데 입은 물론 콧구멍까지 진흙으로 가득 찼더라고 말했다. 그녀 남편을 데려온 사람들은 치료하기 위해 진흙을 썼다면서, 생아편을 먹은 사람이 진흙과 만나면 흙이 흙을 봐서 살아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때는 워낙 정신이 없어서 아무 대꾸도 못 했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흙이 흙을 본다는 게 무슨 뜻인가, 남편은 진흙 때문에 질식사한 게 분명했다.
린샹푸는 다시 한번, 이번에는 단호한 어투로 찬밥과 짠지를 먹자고 말했다. 추이핑이 잠시 망설인 뒤 절충안을 냈다.
"그럼 간장볶음밥을 만들게요."
추이핑은 창턱 화분에서 기르는 파를 조금 뜯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린샹푸는 문밖 계단 아파에 서서 추이핑이 아래층 부뚜막에서 파를 쫑쫑 썰고 아궁이에 불을 붙이는 걸 지켜 보았다. 솥이 달궈지자 그녀는 돼지기름과 파를 넣고 잠시 볶다가 찬밥을 넣어 고슬고슬 볶은 뒤 간장을 넣고 뒤섞었다.
돼지기름과 파, 간장, 쌀밥을 한데 볶는 냄새가 솔솔 풍겨오자 계단 앞에 서 있던 린샹푸는 자기도 모르게 침이 고이는 걸 느꼈다. 간장볶음밥을 들고 올라오던 추이핑도 린샹푸가 손으로 입가를 훔치는 걸 보았다.
린샹푸와 추이핑은 마주 앉아 간장볶음밥과 짠지를 먹었다. 청융량 일가가 치자촌으로 떠나고 린바이자가 상하이에 간 뒤 린샹푸는 그때 처음으로 누군가와 밥을 먹었다.
-> 재미있게 읽었다. 중국 사람들 아편 하던 시절 얘기다. 사람들이 정신없이 죽어 나간다. 린샹푸와 추이핑의 간장볶음밥 장면이 너무 좋았다. 린샹푸와 샤오메이의 딸 린바이자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1박 2일로 서울 다녀왔다. 2박 3일로 갈랬는데, 데이케어센터 선생님과의 면담을 금요일에 전화로 하는 바람에 서울 나들이 일정이 하루 줄었다. 하루만큼 덜 피곤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먼저 만났을 때 아버지가 맨 얼굴에 일회용 면도기를 갖다 대길래 아버지 집에 있던 일회용 면도기는 다 내 짐가방에 넣고 싸구려 도루코 면도기랑 면도날 4개를 검정 봉지에 담아서 데이케어센터 들어가는 문에 묶어뒀다.
아버지가 빨대 꽂아 먹는 두유를 잘 못 먹길래, 쉽게 먹을 수 있는 다른 음료를 찾아보려 했는데 마땅치 않아서 빨대가 딸려있는 베지밀b를 사놓고 아버지한테 빨대 꽂아서 하나 드렸다. 두유를 먹던 아버지는 빨대가 두유팩에서 절반정도 빠져나오니까 먹기를 멈췄고 나는 빨대 끝이 두유팩 바닥에 닿도록 조치한 다음 아버지가 다 먹도록 유도했다. 아버지가 단 걸 좋아하는 거 같아서 베지밀 a가 아니라 b를 골랐다.
토요일에 아버지 집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가 믹스커피 두 봉지를 찬물에 타고 있길래 물 끓여서 한 잔 타드리고 다음날도 한 잔 타줬다. 단 음식이 당기는 건가, 생각했다.
자주 가는 순댓국 집에서 밥을 먹었다. 남자 사장님이 전부터 지켜봤는데 아드님이 아버지한테 참 잘한다고 하면서, 본인은 저녁에 아들이랑 한 진 해야겠다며 말을 걸었다. 이버지가 치매고 요즘 많이 안 좋다고 간략하게 대꾸해줬다. 내가 아버지한테 하는 차분한 말투가 이 아저씨에게 좋게 느껴졌으리라. 우리한테 말 안 걸었으면 좋았을텐데. 다음번에 또 이 집에 갈 수 있을까? 원래 가려고 했던 청국장 집이 휴무였을 때부터 스텝이 꼬였다.
아버지가 치킨을 먹고 싶어한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기에 배달앱에 이버지집 주소 저장하고 치킨 시켜먹었다. 일반 순살 후라이드를 시켰다고 생각햤는데 했는데, 치킨에서 단맛이 났다. 실수다. 아버지는 오랜만에 먹는다면서 맛있게 먹었다. 어설프게 먹는 아버지 모습을 보면서 순살을 시키길 잘했단 생각을 했다. 아버지, 다음엔 짭짤한 걸로 먹자구요. 아버지는 오랜만이라거 하면서 콜라도 맛있게 먹았다.
나는 누워서 웹툰을 보고 아버지는 쉴 새 없이 떠들었다. 나는 중간중간 그러냐고 대꾸를 했다. 아버지가 무슨 얘기하려는 건지 잘 모르니 대답이 더 건성이 된다. 아버지는 내 대답이 건성인 걸 모르니 계속 얘기했다. - 돈 들고 튄 계주가 제주도에서 붙잡힌 스토리 같았다 - 다음엔 집중해서 들어봐야겠다.
아버지가 잠깐 자는 동안 나는 침대 아래 누워서 웹툰을 봤고 내가 잠깐 자는 동안 아버지는 집안을 끝없이 돌아다니면서 뭔가 정리를 했다.
이틀동안 아버지는 딱 한 번 나한테 큰 소리를 냈다. 집에 들어와서 현관문을 잠그지 않으니 바람에 자꾸 문이 열린다고 도어락에 달린 동그란 버튼 눌러서 문 잠그라고 했더니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딨냐면서 나한테 화를냈다. 먼저 방에 오줌 눴을 때도 그랬었지. 말 조심해야겠다.
아버지는 옷 갈아 입는다는 개념을 잊었다. 먹고 싶어서 라면과 커피믹스를 샀지만 물 끓이는 걸 모른다. 물 끓일줄 몰라서 차라리 다행이다. 순댓국이 충분히 짰는데, 밥 한 숟갈 먹고 아버지의 젓가락은 자꾸 양파 찍어 먹으라고 준 된장을 향했다. 여전히 집애서 신발을 신고 있으려고 한다. 짧은 미국 생활의 영향이다. 옷을 타이트하게 입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 이유는 모르겠다. 동생이 연락을 자주하지 않아서 그런지 어떤 때는 본인 작은 아이의 존재를 잊은듯 보였다. 아버지가 요양원에 가면 나보다 동생쪽이 상심이 클테니 연락 자주 하라고 해야겠다. 이런 생각도 나만의 착각이려나?
나랑 있을 때 뭐라도 자꾸 떠드는 아버지는 안심이다. 평소에 얼마나 외롭겠나. 통화할 때 자꾸 언제 오냐고 보고 싶다고 한다. 치매가 오고 나서야 발현된 아버지의 진심이 두렵기도 하지만 나를 보고 싶어힌다는 건 날 잊지 않은거라 안심 쪽이 두려움보다 크다.
이번 주말이랑 다음 주말엔 엄마가 아버지한테 간다고 하는데, 내가 힘들까봐 아버지한테 가는 엄마가 치매 아버지보다 더 걱정이다.
운동과 술로 스트레스를 푼다. 8시에 퇴근하고 운동왔다.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는 아버지처럼 끝없이 반복되는 계단 위에서 계단 구르는 속도를 올렸다 늦췄다 하면서 쓴다.
쿠키
쌔빨간 쨈이 올라 앉은 쿠키
외국 과자
당신이 좋아하는
외국 과자
외국 물건을 편의점에서
편의란 말보다 편하게 사는 세상
그 쿠키, 빨갛단 말보다 더 쉬운
담배 이름, 말보로 레드
외국 담배
내가 좋아하는
외국 담배
따르뗄레떼스 스트로베리
불어든 스페인어든 어쨋든 결과는스트로베리
딸기맛 쿠기
쌔빨간 쨈이 올라 앉은
그 쿠키
당신 입술 같은
혹은 내 입술 같은
싸구려 담배 맛이 나는
쌔빨간 딸기쨈 맛이 나는
그 쿠키
그리고 키스
평범
유튜브로 베토벤 교향곡을 번호 순서대로 들으며
아내와 나란히 앉아서 주말을 보내고
어떤날은 퇴근 후 친구와 술을 마시고
기분이 좋아져서 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하고
좋은 기분을 이어서 노래방에 가거나 길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가끔은 아내의 부모님과 전화 통화를 하고
더 가끔은 아내의 가족들과 밥을 먹고
엄마 생일에는 가족들이 모이고
그 중에 아픈 사람이 없고
조카들은 점점 커가고
아내가 자격증 시험에 합격하고
월요일엔 출근하기 싫지만 회사를 그만두진 않고
회사에선 아무일도 없고
자동차 사고가 나도 사람은 다치지 않고
울적한 날은 바다에 가기도 하고
토요일 아침엔 단골 커피숍에서 커피 두 잔을
일요일 오후엔 또 다른 단골 커피숍에서 커피 두 잔을 마시고
화가 날 때도 있지만 세상에 욕 한 번 하고나면 괜찮아지고
집은 없지만 빚도 없고
아이가 없지만 좋은점도 있고
더우면 에어컨을 추우면 보일러를 켤 수 있고
언젠가 복권에 당첨되리란 막연한 기대감이 있고
주식에서 돈이 까였지만 누구처럼 50%씩 손해를 보지는 않고
모든 것을 잊은 아버지는 아직 내 얼굴과 내 이름을 기억하고
나를 기억하는 아버지가 나에게 먼저 전화를 하고
가끔은 고맙다고 하고 또 가끔은 미안하다고 하고
주말에 만날거라고 방금 말했는데
언제 오냐고 또 묻고 또 묻고 또 묻고
종종 보고 싶다는 진심을 말하는
혼자서는 살 수 없는데 혼자서 살고 있는 아버지 생각에
날 만날때마다 살아야지라고 말하는 아버지 생각에
매일매일 마음이 무거운,
평범
인생의 시기마다 그에 딱 맞는 이야기를 접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말해주는구나. 명심해라, 마야. 우리가 스무 살 때 감동했던 것들이 마흔 살이 되어도 똑같이 감독적인 건 아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야. 책에서나 인생에서나 이건 진리다.
예의 차원에서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엥이제이는 행위의 무작위성을 믿지 않았다. 그는 책 읽는 사람이었고, 그가 믿는 것은 서사구조였다. 일막에서 총이 나왔으면 삼막쯤 가서 그 총을 쏘는 게 낫다.
여자애가 뜀틀을 넘느냐 못 넘느냐 하는 문제에 얼마나 그애와 함께 노심초사하게 되는지, 너 자신도 놀랄걸. 바우슈는 외견상 이렇게 소소한 에피소드에서 강렬한 긴장감을 짜낼 수 있고(하지만 확실히 이게 포인트지), 바로 그 점을 통찰해야 한다. 뜀틀 행사도 항공기 사고 못잖은 엄청난 드라마가 될 수 있다는 것.
마야는 자신의 손을 에이제이의 손 위에 얹어 아직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게 막는다. 아이는 눈으로 그림과 글 사이를 왔다 갔다 훑는다. 돌연 '빨강'이 빨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자기 이름이 마야라는 것을 알게 되듯,
사람들은 정치와 신, 사랑에 대해 지루한 거짓말을 늘어놓지. 어떤 사람에 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은 한 가지만 물어보면 알 수있어. '가장 좋아하는 책은 무엇입니까?'
이 세상 최고의 것들은 죄다 고기에 붙은 비계처럼 야금야금 깎여나가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일 먼저 레코드 가게가 그랬고, 그다음엔 비디오 가게가, 신문과 잡지에 이어 이제는 사방에 보이던 대형 체인 서점마저 사라지는 중이다. 그의 관점에서 보자면 대형 체인 서점이 있는 세상보다 더 나쁜 유일한 세상은, 대형 체인 서점'조차' 없는 세상이었다.
-> 재미있게 읽었다. 글을 모르는 어린이가 책을 읽다가 빨강이 빨강이라는 걸 알게되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리처드 바우슈의 '이 세상같은 기분'이란 단편을 찾아봐야겠다.
1박 2일로 서울 다녀왔다.
아버지는
전복죽을 잘 먹었다. 매운 순댓국을 반 정도만 먹었다. 추어탕을 아주 맛있다고 하면서 먹었다. 한 개에 천 원하는 시장 빵집 머핀을 단 거라 하면서 맛있게 먹었다. 두유를 먹는데, 빨대를 꽂을 줄 몰랐다. 혼자 있을 때는 이리저리 해보다가 결국 빨대를 꽂아 먹긴 하는 것 같다. 청바지가 입고 싶다고 하면서 츄리닝 위에 청바지를 입었다. 바지를 벗으라는 말을 못 알아들었다. 자크 올리라 했는데, 자크가 뭔지 몰랐다. 청바지 단추를 못 채워서 내가 도와줬다. 먼저 입던 바지에 있던 허리띠를 갈아입은 바지로 옮기지 못했다. 이건 혼자 있을 때 이리저리 해봐도 못했을 것 같다. 틀니 끼우는데, 1분이상 걸렸다. 반팔 입고 밖에 나가려고 했다. 물론 날이 춥진 않았다. 살아야지,란 말을 또 했다. 요양원에서 사는 것도 사는 건가 생각했다. 머리빗을 구두주걱으로 쓰려고 했다. 친구에게 전화 해본다고 하면서 티비 리모콘을 집어 들었다. 일회용 면도기를 맨 얼굴에 들이댔다. 비눗물을 얼굴에 묻히고 면도하라고 했는데, 비눗물이 뭔지 잘 못 알아 듣는 것 같았다. 며느리를 사모님이라 했다. 이름을 잊어서 그런가보다. 오늘 아침에 본인 피를 빨아 먹고 퉁퉁해진 모기를 10마리 이상 잡았다. 모기가 피 빨아 먹은 것에 대해서 뭐 어떠냐고 했다. 아침엔 8시에 일어났고 낮잠을 자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는 언제 오는지 자꾸 물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있다. 아직 내 이름을 잊지 않았다.
나는
많이 피곤하다. 내일 출근하기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