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집에 오랜만에 왔다. 내가 담배 사러 나갔다 온 사이에 잠든 아버지 침대 옆에 누워서 쓴다.

어젯밤에 아시안 게임 야구랑 축구에서 한국이 금메달을 땄고 밤 사이에 중동에선 전쟁이 났다. 전 세계에 큰 전쟁이 두 개인 어지러운 세상이다. 나를 제외한 전 인류가 치매에 걸린 세상을 생각해본다. 아버지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그렇다.

추석 연휴에 집에서 혼자 쉬었다. 아내는 영국에 갔고 엄마도 아버지도 연휴 다음주에 만나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이다. 가족이라는 책임감에서 잠시 떨어져있고 싶었다.

어제 엄마 집에 갔다. 오산 터미널에 내려서 엄마집까지 1.2킬로미터 정도를 걸었다. 오산은 중국 사람들의 도시다. 돈 벌어서 건물을 산 사람도 많다고 한다. 수 많은 양꼬치집과 젊은 외국인 여자가 그려진 다방과 술집, 미용실 간판을 보면서 오산은 한동안 인구가 줄어드는 문제는 없겠구나 생각했다. 중국도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으니 그것도 길진 않겠다. 그리고 대로변에 데이케어센터가 많이 보였다. 치매 문재는 전국 공통이다. 오랜만에 엄마 만나서 엄마가 차려준 저녁밥을 먹었다. 엄마 앞에서는 더 잘 먹어야 된다는 생각이 있다. 엄마는 65살 치곤 많이 늙었다. 젊어서 고생한 결과다. 그 결과물을 투자 실패로 절반 가까이 날리게 생겼다. 그 마음 고생으로 최근에 더 늙었다. 아이고 우리 엄마.

아침에 아버지한테 왔다. 어제 아침엔 통화를 했는데, 오후엔 전화가 안됐다. 단순히 전화기가 꺼진 거였으면 좋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버지는 전화기에서 유심을 빼버렸다. 온 집안을 샅샅이 뒤지면서 10리터 쓰레기 봉투 다섯 개를 소비하고 쓰레기통까지 뒤졌지만 못 찾았다. 티월드에 가서 유심 다시 받으려 했는데 신분증이 없어서 안된다. - 티월드 네 군데를 돌았는데 연휴라 문을 안 열었고 마지막엔 전화 해보고서 영업중인 곳에 방문했다. - 다행인 건,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아버지 신분증을 엄마가 갖고 있다는 것이다. 10일이 아버지 병원 가는 날이다. 유심 문제는 그날 엄마가 진행하면 된다. 나는 조만간 평일 휴가 쓰고 서울 와서 아버지 핸드폰 해지하고 내 명의로 알뜰폰 개통해서 아버지한테 주기로 마음 먹었다. 치매에 걸린다는 건 본인 명의가 점점 없어지는 일이다.

아버지는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사람이 됐다. 내가 주말마다 올라오거나 일요일에도 운영하는 데이케어센터로 옮겨야 한다. 당분간 내가 주말마다 올라오면서 새로운 센터를 알아봐야 한다. 강릉에 일요일에도 운영하는 센터가 있다면  아버지 이사를 추진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사람이 된 아버지는,
뭐가 뭔지 모른다. 머리빗을 구두주걱으로 쓴다. 남의 말을 더 안 듣게 됐다. 한 음절씩 인지시켜도 문장을 이해할까 말까다.일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한 사람이 됐다. 점심 먹다가 이마가 왜 까졌냐 물으니 자동으로라고 대답했다. 티비로 프로 축구를 보는데 공이 어디 있는지는 모르고 유니폼 색깔만 하얀거 파란거 하면서 말했다. 아버지가 하얀거라 한 유니폼 색깔은 빨강이었다.
긍정적인 건, 많은 이름을 잊었지만 내 이름은 잊지 않았고 사람들 얼굴은 잊지 않았다는 것과 지금 사는 신월동에선 길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축구 보다가 '축구는 전쟁이다' 라고 쓴 플래카드가 화면에 잡히니까 따라 읽었다. 그러니까 한글 읽는 법을 잊지 않았다.

오늘 저녁까지 같이 먹고 강릉으로 돌아오려 했는데, 내일 점심까지 같이 먹기로 했다. 오늘 기차표를 취소하고 내일 기차표를 끊었다. 아내에게 아버지의 9월 전기요금 고지서를 찍어 보냈다. 요금 계좌이체 때문이다. 이런 별것 아닌 일들이 다 스트레스다. 어제 신었던 양말 오늘도 신길 다행이라 했더니 아내가 웃었다. 그걸로 오늘 최고의 위로를 받았다.

아버지 만날 때마다 너무 힘드네.

순댓국집 아버지. 뭔가를 먹는 동작도 많이 어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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