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203 - 12월


12월이다.

붕어 잡아서 초지 주인집 아저씨 드리려고 했다. 저수지로 흐르는 개울에서 뜰채를 휘둘렀다. 이형들 저형들이 많이 잡아 갔다더니 붕어가 안 잡혔다. 저수지로 이어지는 다리밑에서 뜰채를 휘둘렀더니 새우가 많이 잡혔다. 실컷 잡았다. p형, 완이형이랑 라면 끓여 먹었다. 완전 새우탕이다. 맛있었다. daniel 놀러오면 라면 끓여 줘야겠다. 민물새우는 김치찌개에도 라면에도 무우국에도 어울린다고 한다. 내일도 새우 잡아야겠다. 우리섬애는 다양한 자원들이 넘친다고 생각했다. 잘 보존해야지.

12월에 할 일
- 이번주에는 붕어랑 새우 잡기
- 자르지 않은 볏짚 수거, 하루면 된다
- 난로 구입? 한다면 나무 하기.
- 시간 날 때마다 굴 채집
- 벼 도정, 농민회에 톤백 네 개가 있는데 몇 개를 도정하는 게 좋을지 모르겠다.



20131211 - 도지


아내랑 문자를 주고 받았다. 파란색이 아내. 아. 웃겨.(도지 입금하고 거지됐다는 문자 짤...)

문제는 1800평에 대한 도지가 아직 남았다는 것. 그날에도 웃을 수 있어야 할텐데.



20131215 - 슬럼프?


주중에 서울에 다녀 오고서 오늘 오후까지 쓸쓸했다. 아내도 없고 너무 많이 마신 탓에 몸도 안 좋고 자기 분야에서 어떤 결과들을 만들어낸 형들이랑 마신탓에 나는 뭐 하는거지. 생각한 탓도 있다. 그러다가 안녕들 하십니까.가 등장했다. 난 뭐 하는 거지?

결론이야 잘 알고 있다. 하루하루 즐겁게 , 남들이 보는 기준이 아니라 내 마음에 들게.

근데 그게 어렵다. 나를 지탱하는 무엇이 너무 약해서 쉽게 끊어진다는 느낌이다.

마음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났을 때 하는 게 중요하다. 아내는 춤 쎄라피를 같이 하자고 했다 그것도 좋다.

작목반 쌀 포장지도 말 나왔을 때 만들어야 하는데 한 번 모이기가 어려우니 시작도 하기 전에 부정적인 생각만 든다. 그래도 한 번 해 보자. 의견들을 모으고 절차와 순서에 맞춰서 서로 감정들도 상해가면서 한 번 해 보자.

우리 동네가 교회 점심밥 당번이라 예배 끝나고 할머니들이랑 함께 뒷정리를 했다.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내일은 망고 캣타워 재료로 쓸 나무 잘라야겠다. 기분이 오늘보다 나아지겠지.



20131219 - 마을총회


마을 총회를 했다. 노인회, 부녀회가 올해의 수입과 지출을 알려주고 몇몇 사람이 이장에게 불만 사항을 얘기하니 총회가 끝났다. 매년 총회마다 오늘 같았겠구나 내년에도 같겠구나 생각하니 (나도 사람들도 동네도 싫어졌다.) 답답해졌다.

뭐, 됐고

그래서, 그래 나만 잘 살면 되는거야. 생각했다.

그랬는데 저녁에 y이장님이 집에 오셔서 나랑 관계없는 동네 상조회원들 연락처를 만들었고 단체 문자도 보냈다. - 무료문자 다 썼다.

그래,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열심히 하면서 같이 살아보자. 생각했다.

휴우



20131220 - 윷놀이


회관에서 윷놀이를 했다. 어제 총회를 했으니 단합대회도 한 번 하자는 취지다. 참가자 리스트를 작성해보니 볼음 2리 주민은 23명이다. 나는 참 작은 동네에 살고 있구나. 새삼스럽다. 토너먼트를 진행하는데 있어 딱 맞아 떨어지는 수가 아니었다. 중간중간 적당히 부전승을 끼워 넣으면 될 것인데, 그걸 정하는데 삼십분 걸렸다. 나는 참 작은 동네에 살고 있구나. 동네 어른들은 이렇게, 몇 십년을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쌓아오며 살아오셨구나. 아내 말대로 고개를 끄덕여본다.

ks할머니네 뽁뽁이 붙이러 갔더랬다. 심야전기 보일러가 고장났다고 하셨다. 이런때 단순 오작동인 경우를 많이 봤더랬다. 그래서 강화 본도에 있는 보일러 아저씨한테 전화해서 상황을 설명하고 몇 가지 조치를 취했는다. 오늘밤에 지켜봐야 확실히 고장인지 알 수 있다. 할머니는 얼마나 애가 타실까? 할머니가 혼자 살기에 힘든 동네다. 뭐 당장 나만해도 오토바이 뒷바퀴 때문에 뭍에 한 번 나갔다 와야한다. 어디 그것 뿐이겠는가? 안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은 이곳 하늘의 별만큼 - 우리동네에선 가끔 은하수도 보인다. - 많다.

동네 이벤트가 끝났으니 이제 일해야겠다. 올해 안에 볏짚 수거를 마치고 망고 캣타워 만들어야지.


엄마는 아침에 전화해서 춥게 지내지 말라고 한 걱정을 했다. 장모님은 이런저런 것들을 택배로 보내셨다. 역시 믿을 건 가족 뿐인가. 잠깐 생각했다. 어디 믿을 것이 가족 뿐이겠는가. 누가 됐건 뭐가 됐건 내가 믿으면 그만이다.



20131223 - 달력


달력이 세 개 생겼다. 농협, 수협, 교회 달력이다. 우리 동네는 물 때가 나와 있지 않은 달력은 달력으로 치지 않는다. 조수표도 가급적 외포리 기준으로 나와 있는 것이 좋다. 농업, 어업, 교회는 볼음도를 상징하는 주요 키워드이기도 하다.

올 2월에 이사 오는 바람에 물 때 달력이 없어서 조개 주우러 갈 때 여러가지로 섭섭했더랬다.

달력이 생긴것만으로도 우리 동네에 좀 더 다가간 느낌이다. - 마음속에 아직 확실히 이곳이 우리 동네란 느낌이 없기 때문일까? - 우리 동네는 우리 동넨데 좀 더 친숙해져야 하는 우리 동네다.

AND

20131104 - 우리집, 의심, 배


어제 오훗배로 집에 들어왔다. 집에 오니 포비랑 망고가 나랑 아내를 반긴다. 돌아왔다는 느낌이 든다. 안심이다. 집 = 안심 이다.

강원도 모임에서 형들한테 혼나기도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들었다. 역시 강릉에 있었어야 했나.하는 생각을 했다. 아는 사람들이 있는 곳, 나를 지지해 줄 사람들이 있는 곳, 마음이 편한 곳이 강릉이다. 뭐, 내가 지금 볼음도에 살고 있으니 그건 중요하지 않다. 형들한테 혼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내가 내 일에 너무 무심한 것 같다. 좀 더 공부하고 연구하고 실천해야 하는 게 아닐까? 나는 어떤 생각으로 귀농한걸까? 귀농의 꿈을 한 번 이루었으니 다른일을 해야하는 걸까? 자신의 삶에 대한 의심은 인생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것이다. 그런데도 의심은 끊이질 않는다.

그런 의심의 한 가운데서 오늘 꽃게 잡이 배를 탔다. ks형이랑은 처음 함께 일했다. 배도 처음 타봤다. 그물을 묶어서 바다에 넣고 꽃게를 따는 일은 재미있었다. 그렇다면 이것이 내 직업적 결론일까? 여전히 의심이 끊이질 않는다. 내일도 배를 탄다. 11월엔 의심속에 꽃게를 잡을 것이다.  

나는 부코우스키가 될지도 몰라. 의심 속에 잠든다.



20131107 - 도반소농공동체 추수잔치


에 다녀왔다. 각자 음식들을 준비해서 푸짐하게 차려 먹고 술도 한 잔씩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다가 올해 수확한 쌀을 가져가는 자리다.

즐거웠다.

내 마음속에는 우리집에서 작목반 형들, 가족들과 이런 자리를 마련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경제적으로 빡빡하다보니 그런 마음의 여유가 사라졌다. 이런때야말로 한해를 돌아보며 무탈하게 농사지은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자리를 마련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다음에 형들이랑 술 마실때는 수확제를 대신해서 감사의 마음도 전하고 평소에 안 하던 얘기도 - 불만사항 - 해야겠다. 물론 나도 불만사항을 청취해야겠지.

도반소농공동체에는 나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몇 분 있다. 홍 선생님이 나를 보면 자신의 젊은 시절이 생각난다고 하셨다. 감사합니다. 우리 고구마를 많이 팔아주신 정 선생님도 오셨댔는데, 얼굴을 몰라서 미처 인사를 못 드렸다. 내색이라도 하셨으면 좋았을텐데, 아무튼 감사합니다.

다들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20131110 - 쌀판매


교회에 오면 습관적으로 핸드폰에 뭔가를 쓰고 있다. 오늘도 그렇다.

이번주에는 배에서 꽃게를 잡았고 맛있는 걸 많이 먹었고 도반소농공동체 추수잔치에 다냐왔고 맛있는 걸 많이 먹었고 쌀을 가져왔고 어제는 비가 왔다. 그러더니 오늘은 춥다. 많이 춥다.  

2013년 11월 현재 제일 중요한 일은 쌀 판매다.

750kg 톤백 두 자루를 옥림리 정미소에서 도정했다. 현미랑 백미 합해서 10kg 포장지 118개가 나왔다. 도정료(용공)로 7개를 내고 111개가 남았다. 수매한 것 말고 개인 판매용으로 남길 때는 톤백 더 개 정도는 팔 수 있겠지. 생각했는데, 집에 쌓여있는 쌀 포대를 보니 막막하다. 농민회에서 도정한 것이 아니라서 포장지에 유기농 인증 마크가 안 붙어있는데, 그것도 신경 쓰인다. 택배비도 쌀값도 신경 쓰인다. 엊그제 우리 쌀로 밥을 해 먹었다. 맛있었다. 내가 농사 지은 쌀을 먹는 기쁨은 없고 그냥 맛있다는 생각만 했다. 건조한 계절을 따라 나도 건조해져 간다.

내년에는 양이 많이 나오게 농사를 잘 지어서 좋은 쌀이지만 싸게 팔아야겠다. 좋은 건 비싸기 때문에 없는 사람들은 사 먹을 수 없는 것이 지금의 세상이다. 아내가 항상 강조하는 내용이고 나도 동의한다. 없는 사람들도 부담없이 사 먹을수 있도록 작물들을 키워야겠다.



20131111 - 남은 일들


오늘부터 쌀 팔기 시작했다. 잘 팔려서 농민회 수매한 것도 조금이라도 팔 수 있으면 좋겠다.

집 안이랑 주변이랑 바깥에 할일들이 널려 있다. 들기름 짜기, 고추 마지막으로 따고 고추밭 정리, 고구마 밭 비닐 미저 제거, 팥 꼬투리 마저 까고 고르기, 메주콩 바람에 한 번 더 날리고 고르기, ㅇ형네 못자리에서 볏짚 묶어 가져오기, 서리태 타작과 갈무리, 동네 김장 일손 돕기 등이다. 적어 보니 그리 많이 널려 있진 않네.

천천히 해야겠다.

춥다. 아까부터 두꺼운 이불 안에 누웠다. 몸에 열이 난다. 몸살이 오려나. 오늘은 이대로 씻지도 않고 잠들겠네. 뭐 그것도 좋지.



20131112 - 아내


팥도 고르고, 콩도 고르고, 웹자보도 만들고, 택배 상자에 들어갈 문건도 만들고, 포장지도 주문하고, 동네 아주머니들이 부르면 다녀와야 하고 다른 집 김장도 돕고, 반찬도 만들고, 추수감사절 예배 때 피아노 반주도 해야한다.

처음이고 경험삼아 하는 이 모든 일들이 끝나고 누군가 불러서 나가는 일도, 집안일도 짜증나고 지겨운 것이 되면 아내는 어떻하지? 내가 여자라면 절대 살고 싶지 않을것 같은 낙도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묵묵히 해내는 아내가 참으로 대단하다.

그런 지후가 지금 내 옆에서 잔다. 내일은 같이 서리태 꼬투리 까야지.



20131113 - 야외점심


완이형, 지후랑 조갯골 해수욕장에서 점심 먹었다. 완이형은 고기랑 라면, 우리는 술이랑 밥이랑 반찬을 준비했다. 백사장에 널브러진 나무들을 주워와서 불을 피우고 그 불에 고기랑 감자, 고구마를 구워 먹었다. 컵라면도 먹었다. 맛있었다.

친구들이 왔을 때, 함께 놀 옵션이 하나 추가됐다.

완이형, 감사합니다.

형은 오늘처럼 따뜻한 날이 아니라 추운날 오돌오돌 떨면서 먹는 게 더 맛있다고 했다.

형, 그건 악취미에요.

낙도에 사니까 이런건 참 좋다. 사실 난 볼음도가 낙도라고 생각하진 않는데, ks형이 자꾸 낙도라고 하니까 나도 따라서 낙도라고 하게 된다. 낙도라고 하면 안 좋은 느낌이지만 나는 그래서 더 좋다고 생각한다. - 어제 우체부가 앞으로는 월요일에만 택배를 보냈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ㅠ.ㅠ - 낙도면 어떻고 아니면 어떠리.

다만 오늘처럼 야외에서 고기 구워 먹으려면 고깃값은 벌어야 한다는 것이 어렵다. 뭐, 돈이 없으면 생선 잡아서 구워 먹으면 된다.



20131117 - 기타레슨


성준이랑 성빈이 기타 레슨 시작했다. 둘 다 중 2다. 나보다 20살 어리다. 왠지 세월이 야속하다.

여자한테 잘 보이고 싶다는 목표만 확실하면 기타 실력은 금방 좋아진다.고 알려줬다.

s형 기타 레슨도 해드려야 하는데, 엊그제 소방대 근무 나갔다가 만취한 상태로 잠드는 바람에 기회를 놓쳤다. 형, 다음 근무때는 꼭 레슨해요.

남들한테 뭘 가르쳐 줄 수 있다는 건 참 좋은일이다. 애들이 잘 따라와서 금방 나를 능가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나도 레슨 받아야 하는데.



20131121 - 서리태


이번주에는 서리태 털고 있다. 털어도 털어도 아직 남았다. 오늘은 키질 연습을 했다. 키질 마스터가 되는 것은 몇 년 후로 미루고 바람에 날려서 꼬투리랑 알맹이를 분리하는 게 빠르겠단 결론을 냈다.

동네 사투리로 알맹이는 알쾡이라고 한다. 할머니들이 처음 농사 짓는데, 콩도 들깨도 팥도 수확한 우리더러 대단(대견)하다고 했다. - 감사합니다. - 오늘은 시영네 아주머니가 키질 시범을 보여주셨다. wow crazy!는 이런 때 쓰라고 있는 말임이 틀림없다.

우리는 내일도 모레도 콩을 털고 고른다. 아마 다음주에도 콩 고르고 있을 것 같다. 콩 고르면서 "내 콩들"하고 말하면 기분이 좋다. ㅋㅋㅋ



20131122 - 서리태 2


오늘도 서리태 털고 골랐다.

분주하게 콩 꼬투리 날리고 까고 날리고 까고를 반복했다. 해도해도 끝도 없다. 끝도 없다고 하는 걸 잘못 이해하면 콩이 몇 가마는 되는 줄 생각할 수도 있지만 판매할 수 있는 서리태는 40kg 정도 될 것 같다. 뭐 이것도 골라봐야 안다. 

일요일 오후에 비가 온다고 하니 그때까지 콩 꼬투리는 다 까야 한다. 바람에 날려서 깨끗하게 골라내고 상품과 우리 먹을 것을 고르는 것은 그 다음이다.

메주콩에 섞인 돌들 골라내고 서리태를 다 골라야 겨울 맞이 준비가 끝난다.

아내는 오늘 휴가를 썼다. 나도 휴가 쓰고 싶다.

내일은 c이장님네 하우스 짓는 거 돕기로 했다. 잘 봐뒀다가 내년 3월에 집 뒤에 10평짜리 작은 하우스를 지어야지. 그래서 그 하우스에 여러가지 모종도 하고 후추도 키워야지.  



20131126 - 메주콩


느즈막히 일어나서 지후랑 메주콩 골랐다. 정확히는 돌과 메주콩을 분리하는 일을 했다. 상 위에 접시를 올려 놓고 접시가 기울어지게 한 쪽 끝에 책을 받친 다음 조금씩 조금씩 골라냈다. 콩을 고르는 사이에 완이형, 김성진 소장, 우체부가 다녀갔다. 덕분에 지루한 줄 모르고 일을 마쳤다.

김성진 소장이 해준 함민복 시인 얘기는 참 재미있었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전업 시인이란 거지다. 백미러 값 삼만원 물어내는 것이 억울하고 아까워서 친구에게 전화해서 울었다는 얘기는 김수영 시인이 술 취해서 종로 바닥에서 애인 이름을 부르며 - 부인도 있는 양반이 - 울부짖었다는 얘기에 필적한다.

올해 우리 동네 메주콩은 대체로 알이 작다고 한다. 우리것도 그렇다. 콩이 수정할 시기에 계속 비가 많이 온 탓인듯 하다. 내년엔 대원 말고 다른 종자를 심을까? 올해 얻은 보급종 종자 5kg이 그래도 남았으니 그건 무리겠지. 

판매할 메주콩은 총 22.5킬로다. 동네 누나한테 넘기기로 했다. 약간 협의가 필요하겠지만 14만원은 받고 싶다.

이제 서리태만 남았다.



20131127 - 엉엉


서리태 골랐다. 동네 할머니들이 도와주셨다.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이제 안심이다. 할머니들은 우리 콩이 잘 됐다는 말로 나를 북돋아 주셨다. - 감사합니다. - 아내는 중간에 전화해서 왜 집에 있는 콩 다 갖다놨냐고 하면서 나를 혼냈다. - 나한테 그러지 말아요 -

점심 먹고 할머니들이랑 콩 고르다가 내년도 비료 신청하고 출장소에서 한 잔 했다. 기세를 이어서 m아저씨네서 열띤 대화를 나눴다.

울고 싶어졌다.

마침 완이형이 소방대 근무 나오라고 했다. 완이형만 있으면 붙잡고 엉엉 울랬는데 사람들이 많다.

소방대 사무실에 앉았는데, 민재형한테 쌀 구입 연락이 왔다. - 형! 도맙습니다. -

그래도 울고 싶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걸까?
지후야 !



20131130 - 들기름


내일이 아버지 생일이라 서울에 왔다. 서울 온 김에 대학로에 계신 장모님께 들러서 콩이랑 들기름을 전해드리려고 했다. 강화 터미널에 있는 기름집이 기름 잘 짜준다고 해서 터미널 기름집에 갔다. 오전 9시 40분에 이미 8명 정도가 깻자루를 앞에 두고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일단 서울로 왔다. 장모님께 서리태만 전달하고 신월동 집에 와서 시장에 있는 기름집에 갔다. 들깨를 제대로 못 골랐다고 말하는 아저씨가 불친절하게 느껴졌고, 가공비도 강화도는 10,000원인데, 서울은 18,000원이다. 기분이 별로였지만 할 수 없이 처음 들어간 그 집에 들깨를 맡겼다.

6kg의 들깨가 기름병으로 6병 플러스 5분의 1병으로 변했다. 깻묵도 챙겼다. 아저씨가 기름을 담아주는 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친절한 아저씨였다. 병 값도 받지 않았고 기름병도 신문지로 단단하게 싸줬다. -  내가 알기론 보통 병 값을 따로 받는다. - 들기름 냄새에 기분이 좋아졌다.

장모님, 우리집, 영일이네, 식당 이모네 한 병씩 드리고 우리 두 병 먹으면 내 생각대로 딱 떨어진다. 자연농으로 들깨 키우는 동영상도 봤으니까 내년에는 깨농사를 정말 잘 지어서 여기저기 많이 드리고 팔 수도 있도록 해야겠다.

AND

20131001 - 나들이


인천 난지도에 동네분들과 꽃구경 다녀왔다. 할머니들이 제일 좋아했던 건 즉석에서 사진 찍은 걸 인화해서 액자에 넣어주는 서비스였다. 내 생각엔 아무도 하지 않을 것 같은 일들이 누군가에갠 무척 즐거운 일이다.

나는 기수네 아저씨랑 사진 인화를 기다리는 할머니들을 기다렸다. 그늘진 잔디밭에 앉았는데, 꽤 오래 기다리느라 지루했다. 그런데 기수네 아저씨는 별로 지루해 보이지 않았다. 나이를 먹으면 움직임이 느려지는 만큼 시간도 축약 되는 건가. 생각했다. 자전거 페달을 느릿느릿 밟는 할아버지들이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힘이 없어서 그런거란 걸 안다.

청춘에 비할바 아니겠지만 나이를 먹는 건 또 그대로 매력이 있는듯하다.

아저씨는 요즘 혼자 밥을 끓여 드신다. 아저씨는 들깨 갈무리도 해야 하는데, 늘 아주머니가 했던 일이라 걱정이라고 하셨다. 기수네 아저씨의 반쪽인 반 아주머니가 얼른 건강하게 퇴원하시면 좋겠다.



20131003 - 정신줄


어제 깻대를 꺾었다. 내가 갈았지만 낫을 참 잘 갈았다. 깻대는 천막위에 가지런히 늘어뒀다. 그러고는 텃밭에 토마토를 정리했다. 낫을 든 상태로 지줏대를 뽑아서 정리했다. 밭이 깨끗해졌다.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방금전까지 손에 들고 있던 낫이 사라졌다. 그 낫을 오늘도 못찼았다. 내년봄에야 찾을지도 모른다.

어젯밤에 도반소농공동체 아저씨들과 술을 마셨다. 고구마 많이 팔아줄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 새벽에 집에 들어왔는데, 핸드폰이 없어졌다. 술자리에 두고 왔겠거니 생각하고 그냥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못 찾았다. 이 작은 섬에서 핸드폰을 잃어버리기도 쉬운 일이 아닌데, 술이 문제다. 뭘 이렇게 자꾸 잃어버리냐. 이름을 마그리에서 원더 매직으로 바꿔야겠다. 집 앞에 떨어져있던 핸드폰을 아내가 찾아줬다. - 고마워요. -

정신줄 바짝 잡고 살아야지.



20131004 - 체육대회


푸른 가을 하늘 아래 만국기 휘날리고 너도나도 흥청망청 줄겁게 먹고 마시는 것이 내 마음속의 체육대회다. 오늘은 강화군 체육대회날이다. P형네 차를 갖고 나왔다. 화물 취급소에서 기계 싣고, 조개 배달하고, 여기저기 전화하고 - 농활대 친구들아 미안해. - 이런저런 심부름을 처리하다보니 정작 운동장에서는 개막식 참석하고 밥 먹은 것이전부다 . 뭐 그것도 나쁘진 않다. 체육대회의 꽃인 편육을 먹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이 있을 때마다 생각하는데, 지역 사회의 많은 행사들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모두가 고민해 볼 필요는 있겠다. 부녀회는 고생해서 밥을 하고 아저씨들은 먹고 마시고 그게 끝이다. 나부터라도 차려주는 밥 먹고나 보자는 생각으로 살지 말아야지.

아내도 나도 많이 지쳤다. 일단 오늘은 푹 쉬자.



20131004 - 체육대회 후


돌아오는 배에서 남은 떡과 편육, 포도를 실컷 먹었다. 체육대회란 역시 맛있는 걸 먹기 위한 행사임이 분명하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p형네 건조장으로 갔다. 콩 탈곡기를 내리고 js형, 아내랑 넷이서 소주를 마셨다. 농활이 취소된 얘기, 올해 벼 수매에 대한 얘기를 했다. 함께 고민해야할 문제에 대해서 형들에게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진다. k누나네 식당에 가서 저녁 먹으면서 마저 마셨다. 농활이야 어쩔 수 없다해도 올해 수확한 벼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나를 포함해서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다. 형들, 잘 팔아봐요. 저도 열심히 할게요.

어떤 공동체적인 유대감은 갖고 있지만 실체적인 결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이 현재 작목반의 상황이다. 작목반이 어떤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내 역할도 중요하다.

저녁을 먹는 동안 춘천에 있는 동생한테 전화가 왔다. 형님 소리를 들어도 어색하지 않은 동생 중에 한명이다. 먼저 전화해 준 것이 고마웠다. ds랑도 통화했다. 고구마 캐는 것 도와 준다고 한다. - merci~~

아내가 있고 동생들이 있고 친구들과 형들이 있다. 기분이 괜찮다. 내일부터 이것저것 본격적으로 수확한다. 기분 좋게 일하자.



20131007 - 이런저런


고구미에게 엽서가 왔다. 포카라에서 왔다. 이등병이 처음 집에 쓴 편지같은 서투다.

kk할머니네 들깨를 털었다. 혼자서 가누지 못할만큼 뭔가를 심는 마음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o형은 큰 목소리와 일 할 때의 세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을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았음이 분명하다. 단 kk할머니는 전화를 잘 받으신다. 들깨 터느라 아내가 지쳤다.

다정한 농부 스티커를 받아야 한다. 어제 오후에 받으러 갔더랬는데, 배에서 못 찾았다. 오늘은 배가 바껴서 못 받았다. 이게 다 아내가 어제 아침에 택배 아저씨의 전화를 받지 않고 확인 전화를 하지 않은 때문이다. - 와이파이만 쓸거면 전화 없애라.

주말에 성대 농활대가 오면 고구마를 캐기로 했다. 그 전에 순 지르고 비닐도 걷어야 한다. 내일은비가 온다고 한다. 괜히 마음이 급하다.

난생 처음 생산물 주문을 받았다. 선금을 받은만큼 부담도 크다.

고구마 사준 분들, 감사합니다



20131009 - 한글날


한글날이다. 아저씨들이랑 술 먹고 집에 들어왔다. 안주는 갓 잡은 숭어랑 농어새끼 회였다. 섬에 사니까 회를 무척 자주 먹는다. 좋다. js형이 울분을 토했다. 대화의 부재가 낳은 결과다. 나조차도 쿨하게 뱃속에 있는 얘기을 털어놓는 스타일은 아니다. 이 일을 어째야할까?

지후랑 고구마 순 질렀다. 관리기를 쓰려고 휘발유도 빌렸는데, 기계는 나의 것이 아니었다. 애초부터 생각대로 낫으로 순을 질렀어야했다. 결국, 기계보다는 몸을 써서 하는 것이 나도, 아내도 모두가 편한 방법이다.

내일까지 열심히 하면 순 다 지르고 비닐도 벗긴다. 그러고 나면 또 기계가 필요한데, 지금 생각에는 농활 학생들이랑 호미로 고구마를 캐는 것도 괜찮을 것같다.

고구미랑 통화했다. 만나자 마자 이별이라더니 돌아오자 마자 결혼이다. 축하한다. ^^



20131024 - 포비가 고라니를 잡다


10월 24일 현재 올해 농사는 서리태 수확만 남겨둔 상태다. 밤마다 고라니 울음 소리 들리고 동네 어른들 말씀이 이때쯤이면 고라니가 콩잎이 아니라 콩을 먹는다고 해서 어제 자기 전에 포비 목줄을 풀어줬다. 농담으로 '고라니 잡아야돼.'라고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정말 잡았다. 집을 지나서 밭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고라니 한 마리가 쓰러져 있고 포비는 목에 마른 피를 묻힌채 나를 보고 꼬리쳤다.

포비야 잘했어. 오늘도 밤에는 풀어줄게. 고라니는 괜찮지만 옆 집 닭들 물어 죽이면 안된다.



20131028 - 콩 고르기


지후가 며칠째 메주콩을 고르고 있다. 다른집들은 콩 꺾어와서 이틀 정도면 끝낼일을 우리는 둘이 들러 붙어서도 며칠씩 어리버리한다. 뭐 상관없다. 경험이 붙으면서 우리만의 방법도 생기고 속도도 빨라지겠지.

아직도 다 못 골라낸 깨도 메주콩과 마찬가지 신세다. 두 가지 다 바람부는 날만 기다리는 상태까지는 골랐다. 바람아 불어라. 사랑도 미움도 콩 꼬투리도 훨훨 날려보자.

kj 아주머니가 콩 고르라고 키를 주셨다. - 감사합니다. 키질은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다. 시작이 반이라고 일단 해보는거다.
y 이장님이 지금 정도면 서리태 꺾어야 할 것 같다고 집까지 와서 알려주셨다. - 감사합니다.

항상 도움만 받으며 사는것 같다. 뭐 그것도 좋다.

내일은 밭에 볏짚 덮고 양파랑 마늘이랑 청보리랑 심어야지.



20131029 - 장어 먹었다


사진이 없어서 섭섭한데, 낮에 엄청나게 큰 장어를 먹었다. js형이 저수지 물 빼는 곳에서 잡아왔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맛있다. 많이 맛있다. 숯불에 구워 먹었다.

오전에는 양파랑 쪽파를 심고 오후에는 장어 먹은 힘으로 서리태 꺾었다. 잘 안 꺾여서 다 뽑았다. 일단 한 곳에 쌓아 뒀다. 양이 많다. 골라낼 걸 생각하면 아득하지만 수확량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다. 비닐도 다 벗겼다. 내년에는 밭에 비닐 씌우지 말아야지. 아내는 수수랑 들깨 심었던 자리에 청보리를 뿌렸다. 내일 볏짚 덮어야지.

이렇게 하루가 갔다. 나쁘지 않구만



20131031 - 작목반 회의


마늘을 심었다. 위에 볏짚을 덮었다. 잘 자라다오.

서리태를 말리기 시작했다. 많이 나와다오.

P형네 개를 잡았다. 나도 형들도, 동네 어른들도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작목반 회의를 했다. 회의 주제는 서울 금호동에 있는 어느 학교에서 하는 일일장터 행사 참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그 행사에 이미 나가겠다고 대답했다는 O형은 그 학교가 초등학교인지 중학교인지 고등학교인지도 모르고 그 행사가 정확하게 어떤 행사인지도 모른다. 그 형이 모르니까 당연히 나를 포함한 작목반원들도 모른다. 그런데도 일단은 가기로 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12월 5일인 줄 알았던 날짜도 11월 15일이었다. 답답하다. 아내가 나한테 느끼는 답답함도 이와 비슷한 것일거라고 생각한다. 결국 나도 답답한 사람이다.

대충 결론이 난 것 같으면 한 사람, 두 사람 사라지는 분위기지만 회의는 잘 마쳤다.

결국 문제는 이번 행사가 아니라 유기농 쌀의 판매 방법이다. 포장지도 있어야 하고 조금씩이라도 인터넷으로 꾸준히 팔아봐야 하고 쌀도 맛있어야 한다. 지금 내 계획은 2kg, 4kg 포장지를 만들어서 가정용 정미기로 도정해서 일주일에 다섯개 정도만 꾸준히 팔아보는 것이다. 형들이 많이 협조해줘야 가능한 일이다. 갈길이 멀다. 멀다. 멀다. 사라진다. 사라진다. 사라진다.

AND

20130902 - 동물 식구들


우리집에는 태어난지 7개월 지난 강아지 포비랑 태어난지 7주 정도 지난 것으로 생각되는 고양이 망고가 산다. 나는 볼음도에 살기 전까지 동물이라고는 키워본 적이 없는데, 어린 동물들이랑 함께 살아보니 참으로 좋다.

포비는 목줄을 풀어주면 온 밭을 다 헤집고 다니면서 콩이며, 배추를 못 살게 만들어 놓는다. 아직 어려서 그렇다. 화를 낼 수도 없고 미치겠다. 묶어 놓으면 풀어 달라고 낑낑댄다. 가까이 다가가면 좋아서 미친듯이 달려든다. 나는 괜찮지만 아내가 감당할 수 있는 덩치는 넘어선지 오래다. 배추가 안정적으로 클 때까지 당분간 묶어두기로 했다. 포비야 미안해. 겨울엔 쭉 풀어줄게.

어미에게서 훔쳐온 것이나 다름없는 고양이 망고는 잘 먹고, 잘 놀고, 잘 싼다. 요즘은 성장 속도가 눈에 보인다. 하루하루 동작이 빨라지고 물렸을 때 아픈 정도도 점점 강해진다. 지금도 누워있는 내 발을 할퀴고 물고있다. 고양이는 아내가 꼭 키워보고 싶어했기 때문에 주워왔는데, 정말이지 위로가 되는 동물이다.

식성 좋은 포비랑 입맛 까다로운 망고를 먹여 살리려면 열심히 조개를 캐야겠다. 내일부터 본격 상합잡이 시작이다. 잘해보자. 고구마는 도반소농공동체 분들이 팔아주시겠다고 하신다. - 말씀만으로도 안심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20130903 - 불


우리집은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이 사시던 집이다. 구옥 옆에 신옥이 붙어 있고 구옥의 다른쪽 옆에는 할아버지가 잘라놓은 나무들이 쌓여있는 창고가 있다. 우리는 신옥에 살고 구옥은 폐허다. 나무 창고에 바투 붙어서 쓰레기를 태우는 드럼통이 있다. 오후에 집 뒤에 풀 나지 말라고 깔아뒀던 널판질들을 드럼통에 넣고 태웠다. 볼일이 있어서 1리에 나가 있었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창고에 불났으니까 빨리와! 아내 목소리가 긴박하지 않아서 물호스 연결에서 끄면 되겠거니 생각했는데, 불이 크게 나서 나무 창고가 전소됐다. 불끄랴, 불구경하랴 동네분들이 엄청 많이 보이셨다. 목사님 부부도 오셨다. 불을 가장 먼저 발견한 Y이장님이 경운기 끌고 오셔서 우물물을 퍼서 고성능 호스로 불끄는 걸 도와주신게 큰 도움이 됐다. - 감사합니다. 의용소방대 형들도 다들 오셔서 열심히 도와주셨다. 그 와중에 나는 구경오신 분들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렇지만 불 다꺼질 무렵 한 장 찍은 것이 전부다. - 다들 정말 감사합니다. 가을에 추수하고 나면 동네랑 교회에 떡을 해서 돌릴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꼭 그렇게 해야겠다.

강릉에 살 때, 아궁이에 불씨를 제대로 안 끄고 밖에 내놔서 산불 낼 뻔 한 적 있다. 강화에 이사와서 초지집에서도 아궁이 불씨를 밖에 꺼내놨다가 집 다 태워먹을 뻔 했다. 올 봄에도 산불 한 번 낼 뻔 했다. 그랬다가 오늘은 기어이 불이났다. 나는 불에 대한 경각심이 없다.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에 하나가 '금각사'이기 때문인가? - 술 취하면 금각사 얘기를 자주 한다. - 그랬는데, 아까 불난 것을 보고 가슴이 계속 콩닥콩닥거렸다. 고성에 사는 형님네 집이 최근에 전소됐고 인명 피해도 있었다. 정말이지 불조심 해야겠다.

오늘 아침에 YS형이랑 상합 잡으러 나갔더랬다. 12kg을 잡아서 바로 팔았다. 자세한 얘기는 여기. 먼저 소주 한 짝 팔았던 것은 가외 수입이라고 치고, 실질적인 첫 수입을 오늘 올렸다. 앞으로 돈이 많이 들어올라고 불이 났나보다. 하고 쿨하게 생각하자. 오늘 탄 자리는 원래도 올겨울에 허물려고 했던 자리다. 개똥쑥 씨 밭아서 개똥쑥 밭으로 만들어야겠다.



20130906 - 제비, 고라니, 상합, 그리고


처서 지나고 계속 하늘이 좋다가 어제랑 오늘 흐렸다. 그러던 중에 제비 수백마리기 섬을 찾았다. 남쪽으로 박씨 물러 떠나는 중에 잠깐 들렀던 모양이다. 어떤분은 해마다 이렇다고 하시고 다른분은 살다살다 이렇게 많은 제비는 처음 본다고 하신다. 해마다 봤다는 쪽이 맞겠거니 생각했다.

그런 그렇고 비가 한 번 와야 한적골 논에 물을 댈텐데,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물달개비에 휩싸였던 은행나무 논도 그럭저럭 도지를 낼 정도는 되는듯하고 한적골 벼는 무척 잘됐다. 오리떼가 휩쓸고 지나가지만 않으면 수확의 기쁨을 누리겠구나. 벼라는 작물은 정말 대단하다.

그제부터 팥을 수확하기 시작했다. 교번에 의하면 심고 80일부터면 수확이 가능하다고 하니 지금이 그 시기다. 팥 심은 자리는 물이 잘 안 빠져서 팥이 크게 자라지 못했다. 고추 사이사이에 심은 팥들은 아직도 한창 자라는 걸로 볼 때, 열악한 환경 때문에 팥들이 일찍 꽃을 피웠는지도 모른다. 자손을 퍼트리는 식물들의 본능은 무지막지하다. 찢어진 울타리로 고라니가 들어왔더랬다. 포비를 풀어줬만 잡지 못했다. 이랑 두개 정도의 콩잎이 고라니님께 제물로 바쳐졌다. '다정한 농부는 고라니를 미워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는데 고라니가 무척 얄밉다. 고라니에게 당한 고구미 줄기랑 콩 줄기를 보고 있으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방비를 더 철저히 하는 수 밖에 없을까? 내가 철통 방어하면 다른이의 밭이 그들에게 당할터이다. 이래도 문제 저래도 문제다.

9월 목표가 상합 잡아서 오십만원 벌기다. 오늘까지 나흘동안 잡으러 다녔다. 오늘이랑 내일은 일년에 한 번 북쪽 갯벌을 개방하는 날이다. 개방 횟수가 적으니 상합이 굵고 양도 많다. 오늘은 29kg을 잡았다. 잡을 때는 힘이 들어도 재미있는데, - 아내는 일차 산업의 즐거움에 대해서 예기하기도 했다. - 파는 것이 문제다. 장사치한테 팔면 너무 싸게 쳐주고 알음알음 팔자니 여기저기 연락해야 하고 신경도 많이 쓰인다. 다음달이면 쏟아져 나올 고구마랑, 쌀도 마찬가지겠지. 휴우. ~~ 한 동네 사는 hs형이 - ys형인 줄 았았는데, hs였음. - 자기 잡는 동안은 매일 같이 가도 좋다고 하셔서 형이랑 같이 다닌다. 형이 경운기, 그레, 양파망, 손질 등 이것저것 신경 많이 써주신다. - 정말 감사합니다. -

어제는 몸도 피곤한데, 컴퓨터 고장에 고라니 습격에 할 일도 많아서 짜증이 났었는데, 오늘은 몸은 여전히 피곤하지만 조개도 다 팔기로 했고, 다른일들이 없어서 기록을 남길 여유가 생겼다. 이래서 여유가 중요하다.



20130907 - NLL 대개방


지도 한 가운데가 내가 사는 볼음도다. 북한이랑 5.5km 떨어져있다. 꽤 가깝다. 우리집은 섬 북쪽끝에 있다. 하늘이 맑은날은 집에서 북한땅이 선명하게 보인다. 북한이랑 가까운 위치 때문에 군인들이 북쪽 갯벌로 주민들을 나가지 못하게 한다. 최근에는 북한에서 물살을 타고 교동으로 귀순한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동네사람들은 그물도 남쪽 갯벌에 묶고 상합도 남쪽 뻘에서 캔다. 

일년에 한 번 이틀이나 사흘동안 북쪽 갯벌을 개방하는 날이 있는데, 그날이 어제랑 오늘이었다. 갯벌은 완전 축제 분위기다. 일년동안 사람 손을 타지 않은 뻘에서 대형 상합이 쏟아져 나온다. 평소에 조개 잡으러 나오지 않는 동네분들까지 총출동이다. 육지와 조개가 잡히는 뻘 사이에 바늘 지옥을 현실에 옮겨 놓은듯한 갯고랑이 - 갯벌 중간중간에 있는 골짜기, 물이 들어올 때 갯고랑을 타고 빠르게 들어오기 때문에 사망 사고가 종종 생긴다. - 있어서 나이 많고 몸이 약한 분들은 나오지 않으신다. 이 갯고랑은 일단 발이 푹푹 빠지고 그 빠지는 바닥에 날카로운 돌과 석화가 잔뜩있다. 기본으로 20kg씩 잡은 조개를 어깨에 지고 이 갯고랑을 건너는 일이 쉽지 않다. 지금 내 발바닥은 상처투성이다.

발바닥은 다 찢어졌어도 이틀동안 상합 46kg잡아서 다 팔았다. 초지집 주인아저씨가 알음알음 팔아주셨다. - 길수 아저씨, 감사합니다. 다음에 소라 많이 잡으면 한 번 보낼께요. ^^; - 잡는 것도 어렵지만 파는 것이 문제인데, 많이 잡힐 때는 장사치에게 팔면 kg당 천원씩 덜쳐준다고 한다. 도매시장에서 kg당 12,000원 하는 A급 조개를 4천원, 5천원에 중간 도매상에 넘겨야만 하는 것이 주민들의 현실이다. JK아저씨 말마따나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잡은 상합이다. 그래서 동네사람들도 왠만하면 관광객들에게 4kg에 30,000원에 파는 쪽을 선호한다.

내일은 무조건 쉬고 월요일이나 화요일부터 추석 전까지 다시 조개잡이 시작이다. 에고 힘들다. 어제랑 오늘은 모처럼 힘들다는 소리가 입 밖으로 나왔다. ㅋ 



20130911 - 와우, 워어


볼음도에 살기 시작한지 200일이 지났다. 와우!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나를 부르는 대표 호칭은 '어서방'으로 정해졌다. 할머니 중에 어떤분은 어일우를 부른다는 것이 급하게 불러서 '워리'라고 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지후는 '워리 색시'가 된다.

상합 잡아서 50만원 버는 게 9월 목표였는데, 현재까지 495,000원 벌었다. 어제 잡아둔 것까지 팔면 목표는 달성이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이라기 보다는 추석전에 다른 큰일이 없기 때문에 계속 갯벌에 나가기로 했다. 와우!

팥 수확을 80%정도 마쳤다. 팥 꼬투리 깐다고 지후가 고생이 많았다. 고생했어요. 수확물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와우!

8월말에 1차로 수수를 수확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먼저 익은 친구들이 바람에 다 쓰러진 것을 뒤늦게 발견하고 그저께 저녁에 쓰러진 수숫대를 뒤적여서 1차 수확을 했다. 워어~~

빵꾸난 자전거 앞바퀴를 땜빵했는데, 또 빵꾸났다. 워어~~

친구가 보내준 그래픽 카드를 끼웠는데도 데스크탑이 계속 먹통이다. 추석때 갖고 나가야 한다. 워어~~

올해만 물에 네 번 빠진 아이폰을 고쳐왔다. 고쳐왔는데도 신통치 않다. 워어~~

잠깐 비가 그친것을 완전히 그친줄 알고 밤 12시 넘어서 고구마밭에 가서 호랑이 소리 틀어놓고 왔다. 그랬더니 비가 막 쏟아진다. 워어~~

와우!도 많고 워어~도 많다. 중요한 건 나도 아내도 새로운 생활에 많이 익숙해졌다는 것! 와우!  



20130912 - 근성


어제 상합을 못캤다. 비가 왔기 때문이기도 하고 오랜만에 게임을 하느라 정신줄 놨기 때문이기도 하다. 게임은 겨울에 하자!

엊그제 잡아 둔 상합이 12kg 있기 때문에 30kg을 채워서 도매상에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20kg을 잡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근성으로 다섯 시간 넘게 그레를 끌었다. 중량을 달아보니 22kg이다. 사소한 목표지만 목표를 달성했다. 완이형이 경운기 태워줬다. - 형, 감사합니다. 조만간 또 저희집에서 저녁 먹어요. ^^; -

집에 오니까 지후가 팥 꼬투리를 거의 다 까놨다. 근성으로 깐 것이 분명하다. 나는 게임 때문에 지후는 게임하는 나 때문에 기분이 다운됐었는데, 근성으로 일하고 나니까 기분이 좋아졌다. 아내는 팥 꼬투리 까는 일에 근성이 있어서 뭣에 쓰냐고 한다. 그지만 내 보기엔 부부가 둘 다 근성이 있어서 어딜가도 굶어 죽진 않을 것같다.

내일은 비가 와도 조개 캐러 나가야지.

근성의 팥 꼬투리 까기. - 동네분들은 예전 노인네들처럼 왜 그걸 까고 있냐고 한다. - 농민신문 읽으면서 커피도 마시면서 팟캐스트도 들으면서 까고 까고 또 깐다.  



20130913 - 상합 꿈나무


오늘까지 포함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 상합 캐러 나간 횟수가 열 번을 넘지 않는다. 짧은 기간 동안 꿈나무 답게 꽤 늘었다. 이제 대표 상비군 정도 된다. 상합을 많이 캐기 위해서는 시간 투자와 끈기가 자리보다 중요하다. 물론 자리도 아주아주 중요하다. 오늘만 해도 잘 안 나오는 자리에서 100평 넘게 그레질을 하느라 힘들었는데, 완이형이 자기쪽이 잘 나온다고 불러줘서 25kg정도 잡았다. - 형, 감사합니다. - 10kg을 목표로 갯벌에 나가는데, 점점 잡는 양이 늘어난다. 그래도 목표를 높이진 말자. 경운기 타고 갯벌을 나오는 길에 하늘이 참 예뻤는데, 흔들려서 못 찍었다. 그래서 발 사진을 올린다. 참 못났다. 통뼈인 건 좋지만 발목이 두꺼운 건 맘에 안든다. 발목이 두꺼운 사람들은 대체로 달리기에 약하다. 



20130921 - 부상, 친구들


어제 친구들이 왔다. 레밍, DS, 람이 이렇게 남자 셋이다. 칙칙하다. 칙칙해. 마침 집 냉장고에 먼저 잡아둔 상합이 있어서 끓여 먹었다. 친구들이 무척 좋아했다. 오늘은 그 상합을 직접 잡으러 나갔다. 그레 두 개로 남자 넷이 두 시간 캔 것이 8kg이다. 먹을만큼은 잡아서 다행이다.

원래 내 계획은 대여섯시간 동안 많이 많이 잡는 것이었는데, 아침에 사고가 났다. o형한테 빌려줬던 그레 찾아 오던길에 앞에 오던 차를 피하려다 오토바이가 미끄러져 넘어졌다. 왼쪽으로 넘어졌다. 왼쪽이 이곳저곳 까졌고 뻐근하다.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내려서 괜찮냐고 물었다. 그 중에 한 명은 우리 차에 치인것 아니잖아.라고 했다. - 콱!! - 다행이 많이 다치진 않았다. 이스터 섬에서 거의 비슷한 사고가 났었는데, - 그때는 모래 위에서 혼자 넘어졌더랬지 - 지후가 나를 보살펴줬었다. 오늘도 지후가 걱정해주고 보살펴줬다. 사랑해요.

상합잡기의 수입에 대해서 전해들은 영일이도 그렇고 오늘 상합을 잡아본 람이도 그렇고 볼음도에서는 상합 잡는 것이 답인것 같다고 한다. 자본금이 전혀 없는 나에게는 그게 정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경운기 한 대와 좋은 그레만 있으면 남들 크게 신경 안 쓰고 할 수 있는 일이어서 그렇다. 한 번 생각 좀 해보자.

다치고 나니까 역시 일단은 몸이 건강한 것이 제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건강 다음으로는 빚이 없는 것이 중요하다. 명절에 엄마랑 이런 얘기를 했었다. 오토바이는 조심해서 타야겠다.



20130926 - 9월 26일


새벽에 일어나서 어제 잡은 상합을 아침배로 보냈다. 선창에 나온 동네 아저씨들과 이런저런 애기를 나눴다. 동네의 동정을 듣는 시간이기도 하고 농사나 조개캐기에 대해서 정보를 얻기도 한다. 나는 이 시간이 좋다. 그리고 이 시간이 무슨 큰일을 치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동네분들과의 대화야 말로 시골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선창에 나가는 길에 KS할머니랑 잠깐 얘기했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KS할머니를 만났다. 새벽부터 호박 따시더니 바로 교회청소하러 가신다고 했다. 할머니들은 대체로 부지런하고 바지런하시다.

아내 손님들이 촬영 장소 헌팅차 방문했다. 동네를 잠깐 구경하고 집에서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나는 다시 조개 잡으러 갔다. 어제는 걸어나갔다 걸어 들어오느라 무척 힘들었다. 오늘은 YS형이랑 함께 나갔다. - 형, 항상 감사합니다. - 힘만 빼고 많이 못잡았는데, 출장소에서 오늘 잡은 걸 다 사줬다. - 감사합니다. - 일당 벌이를 했다. 

집에 와서 대충 씻고는 작목반 형, 아저씨들이 모여있는 P형네 건조장 앞으로 갔다. 내가 조개 캐는 동안 형들은 콤바인을 정비하고 곡물 건조기를 손보셨다. 수확이 머지 않았다. 아내 손님들이 선물한 마카롱을 하나씩 나눠 먹었다. 형들이랑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나는 이 대화의 시간이 좋다. - 일은 싫고 대화는 좋다? -

오늘 내가 좋아하는 시간을 두 번이나 가졌다. 조개도 팔았다. 꽤 괜찮았던 하루다.

그리고 드디어 새 핸드폰이 왔다. 잠깐 만져보니 아이폰만 못하다. 6개월만 쓰자.

잘 시간이다.



20130927 - 9월 27일


아침에 민방위 갔다가 한적골 논에 들렀다. 내일은 논 세 자리 다 물꼬 트고 비를 기다려야겠다.

오후에는 상합 잡았다. 오늘은 20킬로 넘게 잡았다. 힘들다.

그리고 벼 예쁘다.



20130930 - 9월 30일


어제 하루는 푹 쉬었다. 그래도 피곤했는지 열시에 잠에서 깼다. C 이장님네 컴퓨터 손보고-네트워크 복원 오류- 고구마 박스 샘플 구해오고 일 시작했다. 오늘은 수수랑 팥 수확의 날이다. 나는 수수를 아내는 팥을 맡았다. '나의 하류를 지나'를 무한 반복으로 들으면서 수숫대를 가위로 잘라서 자루에 담았다. 수수를 수확하고 남은 수수밭에 들어가서 수숫대를 낫으로 쳐냈다. 그냥 두면 겨울까지 그대로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시간 날 때 눈에 보이는 일은 다 해두는 것이 좋다.

팥은 다 수확하지 못했다. 10월엔 할 일이 많다. 1일은 동네에서 나들이, 4일은 체육대회, 다음주말엔 농활, 벼베기, 고구마 수확, 들깨 수확, 콩 수확 등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일단 내일 나가서 맛있는 거 먹고 바지런히 움직이자.

오늘 지후는 팥 수확 마무리에는 실패했지만 체육대회 줄넘기 연습을 했고 고구마 상자랑 우리 스티커를 주문했다. 수고했어요.

AND

20130803 - 歸Home


학교 선배 결혼식이 있어서 서울에 다녀오는 중이다. 집을 나선후로 쭉 기분에 별로였다. 잠을 많이 못 잔 탓도 있고 서울에 오니 너무 번화해서 울컥헸던 탓도 있고, 짜증의 이유는 복합적이었다. 내가 짜증이 나면 아내가 내 눈치를 보고 아내가 짜증이 나면 내가 아내 눈치를 본다. 부부란 그런것인가? 서로에게 짜증난 것이 아니니 눈치는 안 보고 살면 좋겠다.

어제는 설국열차를 봤다. 한줄로 평하자면 평범한 헐리우드 재난 블록버스터였다. 그래도 지후가 좋아했고 어랜만에 영화관에 갔다는 사실은 나에게도 어떤 만족감을 줬다.

결혼식장에서 고기 위주로 실컷 먹고 집으로 돌아오기 시작하면서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강화터미널에 도착하니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고 외포리에 와서는 그 안도감이 안정감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배 안인데 동네사는 d가 캔맥주를 사줘서 개운하게 마셨다. 그것도 만족스럽다. 집에 돌아간다는 것이 이유를 알 수 없는 안도감을 준다. 앞으로도 쭉 그래야 할텐데....

밭에 돼지나 고라니가 다녀가지 않았어야 하는데. 별일 없겠지. 휴우

짤방은 외포리 이발소 앞 강아지와 지후, 아내가 강아지 보고 기분 좋아졌다.



20130805 - 화장실에 박넝쿨


우리집에는 내 개인 화장실이 있다. 박넝쿨이 지붕으로 올라가면 너무 무거워서 지붕이 무너질까봐 지붕 밑으로 밀어 넣었더랬다. 걔네들이 화장실 안으로 파고 들어와서 이렇게나 자랐다. 화장실에서 조롱박 따게 생겼다. 이 넝쿨들이 내 엉덩이를 찌를 수도 있겠다. 사진 좌하단이 똥무덤 우하단의 통들은 모아둔 오줌.



20130807 - 망둥이 낚시


p형, 완이형이랑 망둥이 낚시 갔다. 작년에 잠깐 낚싯대를 잡아 보긴 했지만 실제로 해보기는 처음이다. 세 마리 잡았다. p형은 서른마리 넘게 잡았다. 많이 배웠다. 갯벌에 널려있는 민챙이를 낚싯줄이 보이지 않게 걸고서 찌가 바닥에 닿도록 툭툭 낚싯대를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다 보면 망둥이가 걸린다. 낚싯줄을 끄는 느낌이 들면 좌우나 위쪽으로 '획'하고 낚싯대를 채서 망둥이가 확실히 걸리도록 한다. 그 다음엔 잡아서 망에 담는다. 다음에는 많이 잡을 수 있겠지.

형들이 작은 것들을 다듬어 줘서 - 다듬는 것도 배웠다. - 집에와서 조려 먹었다. 양념장에 설탕이 조금 많이 들어가서 약간 달았다. 고추도 매운 녀석을 넣었으면 더 맛있었겠다. 망둥이 조림도 다음에는 나아지겠지.



20130808 - 고양이


고양이가 생겼다. 아내가 무척 좋아한다. 어제 m아저씨네 창고에서 어린것을 주워왔다. 부엌 뒤꼍에 뒀더니 아내 주먹만한 녀석이 쌩 하고 달아났다. 녀석도 울고 m아저씨네서는 어미도 울었다. 밤새 울음소리가 들려서 저러다 죽는 게 아닌가 걱정했다.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뒤꼍을 뒤져서 녀석을 찾아냈다.

플라스틱 박스에 넣고 동네 아줌마들이 알려준대로 밥을 줬다. 고양이는 마른밥을 먹는다. 비린것이 없으면 참치캔을 구입하라. 냥이가 망둥이 살 으깨서 밥에 섞은 것을 먹는다. 잘됐다. 너무 어려서 상자에 둔 채로 집에 둘까 했는데, 그냥 뒤꼍에 두고 밥만 주기로 했다.

고양이는 귀엽다. 아니, 모든 어린것들은 귀엽다.



20130810 - 손님


마을회관에 손님이 왔다. 먼저 작목반 회의 했을 때, 손님들이 오면 숙박료는 부녀회에 주고 망둥이 낚시, 후릿그물, 상합 캐기를 통해서 얻은 수익은 작목반에서 사용하기로 했더랬다.

어떤 단체에서 오건간에 손님들은 놀러 오는 것이기 때문에 나처럼 가만히 쉬는 것을 좋아하는 경우는 없다. 뭔가 액티비티가 있어야 한다. 그것들이 다 바다에서 이루어 지는 일인데, 나는 바다에 대해서 잘 모른다. 2월에 이사왔으니 당연한 일이다. 작목반에는 바다활동을 도와주실 분이 네 분있다. 손님이 오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그 중에 세 분이 섬을 비우셨다. 덕분에 M아저씨랑 완이형이 망둥이 낚시, 후릿그물, 상합캐는 걸 도와주느라 고생하셨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일을 진행할 것 같으면 내년부터는 손님 받지 말자고 해야겠다. - 이게 내 지금 심정인데 -  이렇게 강하게 얘기하기 보다는 우회적으로 돌려서 이러실거면 손님을 왜 받나요?라고 하는게 낫겠지. 그것보다도 좀더 확실한 체계를 가지고 얘기하는 것이 좋겠다. 물론 확실한 체계는 내가 생각해둬야 한다. 내일모레 마흔 세명 오는데, 걱정이다.

여튼 이번에 온 손님들도 백합 잡을 때 좋아했다. 백합 잡는 일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는데, 여기에 쓰지는 않는다. 조개 캐는일은 남녀노소 할 것없이 다 좋아한다.



20130812 - 망고


고양이 이름 지었다. 누래서 누렁이가 아니라 망고라고 부른다. 밖에 뒀다가 하루만에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생선도 잘 먹고 물도 할짝거리고, 아무튼 귀엽다. 무엇보다 지후가 무척 좋아한다. 지난주의 베스트 컷을 올린다.



20130814 - 진드기, 모기


잘 준비 한다고 아내랑 모기 때려잡고 있었다. 엊그제 칠팔십 마리 잡았더랬다. 덕분인지 어제는 모기 없이 잤는데, 오늘도 그제만큼 잡았다. 여튼 모기 때려잡고 있다가 정수리를 긁었다. 아직 덜말라서 축축한 머리 안쪽에서 포비를 만질때의 느낌이 났다. - 아침마다 포비 몸에 붙은 진드기를 떼어주는 것이 눈뜨고 담배 물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이다. - 사밀리미터 정도 크기의 진드기 한 마리가 손톱에 딸려나왔다. 한 시간 전에 머리 감았는데, 수건에 붙어 있었을까? 충격받았다. 지후가 증언하길, 세탁기 다 돌았는데 그 빨래에서 진드기가 나왔다고 한다.

현재 모기는 거의 다 잡은듯한데 자꾸만 심정적으로 머리가 가렵다. 모기도 진드기도 사랑도 미움도 다 잊고 고양이 망고가 돼서 자야겠다.



20130817 - 일진


눈병이 났다. 속눈썹이 눈을 찌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니 그때부터 오른쪽 눈이 붉그죽죽하다.

뒷머리에 빵꾸가 났다. 엊그제 아내가 머리를 잘라줬다.

데스크탑도 병이났다. 며칠전에 전기가 갑자기 나갔었는데, 그때 온보드 vga가 명을 다하셨다.

어제 오후에 농수로에 물 돌린다는 문자를 확인하고는 황급히 물꼬 막아놓고 배에 올라탔다. 안과는 문을 닫았다. 컴퓨터 가게에 갔더니 그래픽 카드 꼽아주는 값 칠만원을 부르더니 모델명도 알려주지 않는다. 불친절하다. 그냥 나왔다. 컴퓨터 괜히 들고 나왔다. 온수리에서 밥을 먹을랬는데, 문을 닫은 곳이 많았고 우리가 들어간 식당은 밥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보쌈 만원 적힌 좌판에서 만원어치 달라고 했더니 자꾸 이만원어치 사가라고 했다.

아침에 변기가 막혔다. 잠깐의 판단 착오로 물이 살짝 넘쳤다. 라면을 끓여 먹을랬는데, 물이 끓다가 가스가 다 됐다. 전기 플레이트를 찾느라 시간을 소비했다. 지금 이걸 쓰고 있는 버스 안에서는 어떤놈이 바닥에 뱉은 껌 밟았다.

눈병, 뒷통수, 컴퓨터 이 세 가지 중에 하나도 제대로 처리한 것이 없다. 왠지 꾸역꾸역 살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빠졌다.

얼른 집에 가서 포비, 망고랑 놀고 김장밭 만들어야지.



20130820 - 이번주에는


고구마 밭에 EM을 줬다. 콩이랑 팥에도 EM을 줬다. 꼭 줘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사둔 것과 얻어온 것이 있어서 그냥 줬다. 고구마 밭에서 멧돼지의 흔적을 발견했다. 우리밭에는 다시 안 오는 줄 알았는데, EM 덕분에 알았다. 직파한 흰콩에 최근에 고라니가 다녀간 것도 직파한 서리태 잎에는 벌레 먹은 구멍들이 많다는 것도 EM 덕분에 알았다. 비닐 씌우고 육묘해서 키운 녀석들은 큰 문제 없어보인다.

한적골 윗논에 물이 말랐다. 드렁허리가 구멍을 낸 것은 아닌듯한데, 이유를 모르겠다. 원래 잘 마르는 논이라 물을 많이 잡으라는 조언을 올초에 듣긴 했었다. 논 세 배미 중에 가장 잘 된 자리기 때문에 물관리를 잘 하고 싶다. 내일 낫들고 가서 논두렁 풀 깎으면서 어디 구멍난 곳은 없는지 자세히 봐야겠다.

논이든 밭이든 꾸준히 다니면서 지켜봐야 잘되고 있는 것도 잘못되고 있는 것도 보인다.

작물을 심어 키우는 데 있어서 내년에는 이렇게는 하고 이렇게는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오늘은 마을에서 개국을 먹었다. 맛있었다. 회관 뒤에서 기르던 외로운 강아지 두 마리가 나와 동네 어른들의 여름나기 희생양이 됐다. 개국 먹고는 망둥이 낚시 갔었다. 먼저 세 마리 잡았었는데, 오늘은 다섯 마리 잡았다. 다음에는 20마리 잡아야지.

어디에 어떻게 파느냐도 문제지만 일단은 별탈 없이 잘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매일매일 논밭으로 다니면서 고구마에 돼지가 들어오지 않기를, 들깨에 나방이 들러붙지 않기를, 콩과 팥과 수수가 건강하게 자라기를, 도지는 낼 수 있는 양의 쌀을 수확하기를 바라야겠다.



20130822 - 남자들이란


아침에 한적골 윗논 논둑 풀 베고 물 댔다. 논에 물을 대고 나니 안심이 된다. 어제까지만 해도 모든일이 다 안될 것 같은 기분에 사로 잡혔더랬다.

점심 먹고 쉬고 있었는데, m아저씨랑 js형이 우리집에 보관중이던 보행이앙기를 손 보러 오셨다. 상업적으로 상합을 잡기 위해서 기계를 개조했다. 우리집에서 약간 만지다가 은행나무 아래로 자리를 옮겨서 일을 마무리했다. 나까지 넷이 붙어서 기계를 뜯었다. 아저씨들이 무척 즐거워했다. 남자들이란...

나도 남자긴한데, 기계 뜯는일이 즐겁진 않다. 그래도 보조정도는 잘 하는것을 보면 나도 남자들이란에 포함되나보다.

해 저물 때, 다 마치고 m아저씨네서 저녁 먹었다. 아내는 별로라고 생각하지만 이래야 오늘이 마무리된다.는 것이 우리 동네의 정서다.

상합 많이 캐서 생활비 좀 벌면 좋겠다. 작년 11월부터 수입 없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나도 아내도 약간 괴롭다.



20130827 - 수입


9개월만에 수입이 생겼다. 동네 할머니들께서 먼저 왔던 손님들이 선물로 두고 간 소주 한 짝을 손님 치르느라 고생한다고 나 먹으라고 줬는데, 그것을 그제 온 손님들한테 팔았다. 그리고 방금 전에 농협에 가서 장을 봤다. 모기향이랑 샴푸랑 고양이 줄 참치캔이랑 나한테 줄 콜라까지 이런저런 것들을 샀다. 2만 5천원 벌어서 2만 6천원 썼다. 이번달에는 적자 폭이 줄겠다. 기분이 좋았다가 나빴다가 한다.

광년이 널뛰는 거 같은 이 기분을 어이할꼬?

아침에 순무 심었다. 씨는 KS할머니가 주셨다. - 감사합니다. - 배추랑 무는 아주 조금 심었지만 순무는 조금 많이 심었다. 잘 키워서 친척들한테 돌려야지.



20130829 - 땅벌, 상합


엊그제 집뒤에 풀 자르다가 벌집을 건드렸다. 땅벌 20여마리가 낫질 하느라 몸을 굽히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내 머리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칼 루이스보다 빠른 속도로 도망갔지만 네 군데 물렸다. 물린 자리는 가렵고, 붓고, 뜨겁다. 이래서, 어른들이 벌초할 때 땅벌 조심하라는 말을 항상 하시나보다.

어제랑 오늘은 상합 잡았다. 업으로 하시는 분들은 영뜰 해변에 경운기 타고 나가시는데, 우리는 부업으로 하는 것이기도 하고 많은 분들과 만나기 싫어서 우리 사는 앞멀(앞마을)에서 가까운 죽바위(뚜꺼비 바위)쪽으로 나갔다. 초심자치고는 꽤 잡았다. 상합 캐기는 특별한 요령보다는 끈기와 체력이 중요하다.

상합을 잡기 위해서는 그레질을 해야한다. 그레는 레오나드로 다빈치가 만들었을 법한 조개캐는 도구다. 그레로 갯벌위를 질질 끌면서 걸어가면 딸깍하고 조개가 걸린다. 그러면 호미로 뻘을 긁어본다. 조개를 확인하고 꺼낸다. 바닷일이 다 힘들지만 그레질도 염전일이나 뱃일만큼 극한직업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극한직업이 됐든 뭐가 됐든 올겨울에 밖에 나가서 일자리 구하거나 내년에 P형네 배를 타는 직업을 선택하지 않으려면 상합을 열심히 캐야한다. 아내 말대로 9월, 10월에는 시간 날때마다 나가서 열심히 잡아보자.



20130831 - 이웃


새벽에 일어나서 js형한테 차를 빌렸다. 어제 회관에서 주무신 손님 네 분을 선창에 태워드렸다. 차 빌리면서 형한테 이따가 모터 좀 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저께부터 말 하고 싶었는데 말 한 번 꺼내기가 참 어렵다. 어제랑 그제 캔 상합을 우물에 담가뒀다고 했더니 시영네 할머니랑 기수네 할머니가 단물에 담그면 안된다고 알려주셨다. 우물에 담가 놓고도 긴가민가 했더랬는데 확실히 알았다. 할머니들은 회관 손님들 치르느라 고생이 많다면서 상합 열심히 잡아서 돈벌이 하라고 했다. - 감사합니다. - kk할머니한테 오랜만에 들렀다. 바꾼 핸드폰 번호 적어 드리고 참외 두 개 얻어먹고 선영 아범에 대한 푸념도 좀 들었다. 오늘 kk할머니 말씀의 주제는 인사치레두 내가 먼저 살고 해야 하는 거지, 내 곶간 비어 가는 것 모르고 살면 세금 내기도 빡빡하고 내 삶이 괴롭다는 것이었다. - 잘 알겠습니다. 이틀 잡은 상합을 삼등분해서 kk할머니, ks할머니, js형네 드렸다. 어젯밤에 지후랑 얘기했다. 판매는 9월부터 하기로 했으니 잡아 든 것은 동네에 나눔하자. 방금 인사치레에 대해서 말씀하셨던 kk할머니를 포함해서 다들 좋아하셨다. 기분 좋다. js형이 모터를 봐줬다. 뭐가 잘 안되서 형네 집에 있던 모터로 교체했다. 형은 논에도 두 번이나 같이 가주셨다. 논관리에 대해서 이것저것 배우고 판매에 대한 얘기도 나눴다. - 형, 항상 감사합니다. 논에 다녀와서는 기수네 할머니네 고장난 전기 스위치 손 봐드리고 냉면 얻어 먹었다. 오후에는 뒷밭에서 일했다. 완이형, p형을 집에 초대해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이런저런 얘기들이 오고갔고, 이런저런 조언들을 들었다. 이웃이란 이런거겠지? 이웃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많이 하고 있다. 내가 항상 옳다는 생각을 버리는것으로부터 이웃과의 좋은 관계가 시작된다.

요즘 하늘이 맑다. 북한땅이 잘 보인다. 별도 평소보다 많이 보인다. 여러가지로 안심이다.

AND

20130703 - 논김매기 시작, 농활 끝


한적골 아랫논에 가서 논김을 맸다. 혼자 두 시간 반 정도 풀들을 뽑았다. 이어폰에서 The very thought of you가 흘러 나왔다.

밭에서도 마찬가진데, 김을 매다보면 무아지경에 이를때가 있다. 나와 잡초만이 존재하는 시간에서 나만이 존재하는 시간으로 넘어가는 그 순간이 좋다. 그래서 내가 논김매는 일을 좋아하나? 

논 세 자리 중에 가장 크기도 작고 김도 없는 논을 시작으로 논김을 매기 시작했다. 아침, 저녁으로 부지런히 다니면 열흘이면 마치겠지. 그러고 나면 물을 뗀다.

오늘로 농활이 끝났다. 학생들! 수고했어요. 마지막 날이라고 학생들이 작은 잔치를 준비했다. 부녀회에서 많이 도와주셨다.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같이 행복한 것과 나를 기준으로 남을 판단한다는 것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본 시간이었다.



20130706 - 서울나들이


간만에 서울에 다녀오는 중이다.

사람도 많고 차도 많고 위험요소가 많다고 생각했다.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는 마네킹 로봇을 보고 블레이드 러너를 떠올렸다. 어딘가에 인공지능이 부착된 초기 불량 모델들이 돌아다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여전히 미래에 살고 있다.

목이 말라서 파워에이드를 먹었는데, 통을 읽어보니 그 안에 작물 재배에 필요한 미량원소들이 많이 들어 있었다. 수용성 비료는 효과가 즉시 나타나는 법인데.라면서 아내랑 히죽히죽 웃었다.  



20130707 - 텃밭근황, 바다


고추 두 판을 한판씩 다른 곳에다 심었다. 집 옆에 심은 것들은 잘 자라고 있다. 고춧가루를 낼 만큼 따지는 못하겠지만 둘이서 이런저런 반찬해 먹기에는 그것만으로도 부족함이 없다. 집 뒤에 심은 것들은 고라니 침략 후에 관리를 안했고, 볕이 잘 들지 않아서 내 마음처럼 자라지 않고 있다. 현재는 완전한 자연농 고추밭이 됐다. 나쁘지 않다.

오이는 집 뒤쪽에 두 자리에 나눠서 심었는데, 집 바로 뒤에 심은 친구들은 내일 모레면 몇 개 따 먹을 수 있는 지경이다. 다만 자연농 고추밭 바로 옆에 있는 녀석들은 아직 오이 열매가 달리지 않았다. 자리가 안 좋은 건가?

토마토는 7월 중순이 지나면 큼직하고 빨간 녀석을 따 먹을 수 있을것 같다. 크게 신경쓰지 않고 키운것치고는 대단한 성과다.(아내의 얘기로는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밤에 P형이랑 바다에 다녀왔다. 저녁에 바다에서 회나 먹자고 해서 아내도 함께 나갔다. 병어를 썰어 먹었다. 병어는 고소하다. 바다에서 바로 잡아 먹는 것들은 다 맛있다. 형이 반찬해 먹으라고 병어, 밴댕이, 새우, 꼴뚜기, 전어를 많이 줬다. 감사합니다. 종종 이렇게 얻어 먹기만 해도 되는 것인가 생각한다.

이렇게 하루가 갔다.



20130708 - 먹고 놀기


오늘은 비를 핑계로 먹고 놀았다. 점심엔 아내랑 만찬을 차려먹었다. 저녁 먹고 조금 있다가는 꼴뚜기 썰어 넣고 김치 부침개 해 먹었다. 맛있었다. 먹고 노는 일은 참 좋다.

다만,
한적골 논에 안 갔다. - 날은 궂고, 이동수단은 두 다리 뿐이고 타이밍도 안 맞았다. 내일은 꼭 가자.

고구마 밭에 안 갔다. - 위와 같은 이유 + 어제와 같은 폭우에 돼지가 다녀가지는 않았을거라는 생각에서 안 갔다. 내일은 꼭 가자.

그래도,
뒷밭에 도랑 치고 쓰러진 고추도 곧추 세웠다.

어제 심은 들깨는 다들 살았다.



20130710 - 논김을 매야하는데


엊그제 비가 많이 왔을 때, 당연히 한적골 윗논, 아랫논에 모두 물이 빵빵하게 찼을거라고 생각했더랬다. 아랫논은 그 아랫논으로 이어지는 파이프가 뻥 하고 뚫려서 물이 시원하게 새고 있었고 윗논은 어디로 샜는지 모르게 물이 말라있었다. 비 오는날 놀고 먹는 것도 좋고 교통수단이 없다는 핑계도 있었지만 걸어서라도 논에 갔었어야 했다. 윗논에 물 샌 곳을 못 찾고 체념하고 있었는데, JS형한테 전화가 왔다. 표시를 해 두었으니 막으라는 것이었다. - 이것이 경륜이다. - 감사합니다. 드렁허리가 두 곳에 구멍을 내 놨다. 이제 배웠으니까 앞으로는 스스로 해결하자.

이렇게 구멍이 있으면
구멍을 막는 것이 아니고 이렇게 막는다. 구멍을 막으면 드렁허리가 또 구멍을 내 놓는다고 한다.

논김을 매야 하는데, 이런저런 일로 계속 미뤄진다. 아직 늦은 것은 아니다. 장마가 끝나기 전에 마치자. 천천히.

급하게 먹은 똥이 거칠다.고 들깨 심는 것 도와드리는 중에 KK할머니가 말했다.



20130711 - 고라니, 호랑이 소리


어젯밤에 개구리가 집에 들어왔다. 이러다 뱀도 들어오는거 아니야.하고 농담을 하고 넘어갔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다섯시에 뒷밭에 갔더니 고라니님이 강림하셨다. 나를 보고는 도망가다가 그물을 넘지 못했다. 얼른 포비를 풀어줬다. 포비가 쫒아가니까 놈은 그물을 넘어서 달아났다. 뒷밭에는 수수, 흰콩, 검은콩, 팥, 들깨가 자라고 있는데, 고라니님께서는 검은콩만 100여대 잘라 먹었다. 맛있었겠다.

그래서

먼저 다운 받아뒀던 호랑이 울음소리를 밭에 틀어놓는 플레이어 재생목록 중간중간에 집어 넣었다.

오늘부터 포비를 풀어놓고 자기로 마음먹었다. - 우리개는 짖지 않는다.

사흘에 한 번은 3~4시 사이에 일어나서 밭에 가보기로 했다.

다행으로

고구마밭에 돼지는 들어오지 않았다.

동물들이랑 같이 먹고 살아야지 어쩌겠나.라고 생각하면서도 무척 신경 쓰인다. 내 밭이 당하고 있는 것을 직접 목격한 탓이 크다. 작년에 서리태 심었다가 전혀 수확하지 못해서 올해부터는 콩 사 먹기로 했다는 동네 누나 얘기가 자꾸만 머릿속을 지나다닌다. 강원도 고성에 사는 형이 전화해서는 자기네 옥수수를 고라니들이 다 먹었다는 얘기를 무척 쿨하게 했다. 그럴수도 있다는 듯이 - 고라니가 옥수수도 먹는구나. -  나도 지나간 일은 쿨하게 잊고 앞으로 잘 하자.



20130713 - 장마, 상합(백합조개)


장마다. 이번주에만 일륜차가 두 번 넘쳤다.

비가 많이 왔지만 논도 밭도 무탈하다.  

그저께는 '타인의 삶'이란 영화를 봤다. 남의 삶을 훔쳐보는 이야기는 늘 재미있다.

어제는 하루종일 기타 연습했다. 나이 먹으면서 유일하게 느는것이 기타실력일까? 

오늘은 P형을 따라 갯벌에 나갔다. 마침 비가 그쳐서 하늘이랑 바다랑 갯벌이 아주 멋졌다. 그레질을 했다. 생애 처음으로 상합을 잡았다. 많이는 못 잡았지만 지후랑 실컷 먹을 만큼은 된다. P형이 상합이랑 꽃게를 추가로 더 주셨다. 너무 얻어 먹는다. 여튼 감사합니다. 기회 있을때마다 상합 잡으러 나가야겠다. 팔면 돈이 될 것이고 못 팔아도 지후랑 실컷 먹으니 좋다.



20130716 - 면회


인천구치소에 M아저씨 면회를 갔다. 5명이 갔더랬는데, 면회는 3명까지여서 나는 순번에서 밀렸다. 구치소 대기 창구에 마련된 종이에다(서신이라는 표현을 쓰더군) 편지를 써서 서신함에 넣었다.

서도면 농업인 상담소장인 김성진 형도 함께 갔다. 개발과 발전에 대해서 얘기하다가 그 형이 이런 얘기를 했다. 어머니께서 처음 전철을 탔을 때, 차표를 손에 꼭 들고 계시길래 왜 그래세요?라고 했더니 차장에게 차표 주려고 한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어머니께서 커피 자판기를 처음 봤을 때, 안에 있는 사람이 참 덥겠다.고 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인간이 어떤 새로운 상황과 조건에 적응한다는 것이 나이 먹을수록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나도 점점 그렇게 되겠지.

48년생인 M아저씨는 D할머니의 큰 아들이고 두 분이 함께 사시며 농사를 짓는다. 모내기랑 고구마 심는 일이야 동네 사람들이랑 이렇게 저렇게 마쳤다지만 M아저씨가 얼른 나오셔야 다른 일들도 돌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D할머니가 너무나 외롭다. 지나가다 들러봐야지 생각하면서도 마음처럼 되질 않는다. - 그래도 어제 선창에서 들어오는 길에 D할머니랑 오토바이 함께 타고 오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내일 들어갈 때, 떡을 사가야겠다. - 내 생각에 볼음도는 외로움을 대표하는 섬인데, M아저씨의 부재로 인해서 D할머니, JS형이 무척 외롭고 늘 티격태격하던 O형도 무척 심심해 하는 눈치다. 나는 지후랑 함께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지후가 없었다면 볼음도에 들어오지도 못했겠다.

수인복을 입은 아저씨는 수척해진 얼굴로 동생들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평소의 강직하고 고집있는 모습을 생각했을 때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갇혀 있다는 것은 그런것이다.

다행으로, 아저씨께서 이달 말에는 보석으로 나올 거라고 했다고 한다. 얼른 나오세요.

구치소 접견 대기 창구는 마치 은행이나 터미널 대합실같은 분위기다. 표를 뽑아서 볼일을 보고 상담창구로 들어가거나 표를 사서 개찰구로 들어가는 느낌이랄까. 구치소 정문에서 출입하는 이들의 신분증만 확인하는 경찰관이나 접견 신청서를 접수하는 경찰들을 보면서 지하철 표를 팔거나 고속도로 톨비를 받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주고 정리하는 분들과 같다는 생각도 했다. (내 기준으로 볼 때) 좋은 직업이다. 병원에 가면 아픈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니.하고 생각하는 것처럼, 구치소에 가면 갇혀 있는 사람(범죄자?)이 이렇게나 많다니.하고 생각하게 된다. 안에 있는 사람도 밖에 있는 가족도 모두 고생이다.

예전에 영등포 구치소에 아버지 보러 갔던 일이 생각났다. 20살의 나는 아버지를 탐탁치 않게 여기는 아주 무뚝뚝한 아들이었다. 지금은 그냥 무뚝뚝한 아들이다. 

오훗배가 풍랑으로 결항됐고 서울에 와서 아버지를 만났다. 요즘 아버지는 어떤 사정으로 인해서 내 이름을 달고 일했던 시절의 퇴직금을 받기 위해서 무척 애쓰는 중이다. 힘내세요.



20130718 - 해무


저녁마다 안개가 자욱하다. 섬이 작으니까 섬 전체가 안개로 가득하다. 이 안개 때문에 볼음도 쌀이 맛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다.

파노라마 어플 테스트. 장맛비에 바다 쓰레기들이 백사장에 밀려왔다. 주민들이 힘을 모아 치우면 좋겠다.



20130720 - 파리


이 집에 사시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쓰시던 항아리에다 매실청을 담갔다. 지후가 두 항아리 담갔다. 항아리 하나가 새는지 아래쪽에는 개미가 득실거리고 주변으로는 파리가 많다. fly down - 후리 다운 - 을 설치했더니 금세 잔뜩 붙었다. 징그럽다. 새는 항아리는 위치를 옮겨야겠다.



20130723 - 답장


구치소에 계신 M아저씨한테 답장이 왔다. 먼저 JS형한테 온 편지를 읽었을 때도 느낀거지만 M아저씨는 글을 참 잘 쓰신다. 60대가 되면 저절로 그렇게 되는 걸까?

함께 일하면서 좋은 햇빛 받으며 웃을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얘기랑 시골일은 시작과 끝이 없다. 항상 시작이고 끝이니 무리하지 말고 놀면서 천천히 일하라는 얘기가 계속 마음속에 빙빙 돈다. 나도 40대가 되면 좋은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12시까지 비가 왔다. 어제 중경제초기에 이상이 생겼는데, 용접을 해야해서 오늘은 논김을 못맸다. 대신 고구마 밭이랑 콩밭에 풀 뽑았다. 지후가 논에 김을 꼭 다 매야 하냐고 물어서 그렇지는 않다고 답했다. 그렇지는 않지만 하면 나도 좋고 벼도 기분 좋은 것이다. 고구마 밭도 현 상태에서는 그냥 둬도 큰 문제는 없겠지만 풀을 뽑고 나면 나도 좋고 고구마 줄기도 기분 좋은 것이다. 그 뿐이다. 지금 정도로 일하는 게 M아저씨가 편지에 언급한 무리하지 않고 쉬면서 하는 정도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나저나 이제 햇빛 좀 봤으면 좋겠다. M아저씨가 나오셔야 해가 뜨려나?

물론, 이런 날씨가 일하기는 좋지만 몇몇 고춧잎이 누렇게 변하기 시작했다. 팥잎이 누렇게 된 것도 날씨탓이 아닌가 짐작해본다.



20130725 - 포비


포비는 태어난 지 5개월 조금 넘었다. 사람 나이로는 7살이다. 도사견 잡종 답게 크기도 엄청 크고 먹기도 엄청 먹는다. 진드기가 너무 많아서 내가 미친듯이 잡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볼 때마다 몸을 샅샅히 살핀다. 진드기는 엄청 징그럽지만 그래도 떼준다. 엊그제는 50마리 잡았다. 어떤 진드기는 피를 많이 빨아먹어서 콩알 만하다. 우리가 너무 못해줘서 진드기가 생기는 것 같기도 하고, 주사를 못 맞춰서 그런것 같기도 하다. 여튼, 진드기가 재발한 후에 목줄을 풀어줬다. 그랬더니 이놈이 무척 신났다. 

포비는 겁이 많다. 내가 목욕 대신 우물에 두 번 빠뜨렸더니 트라우마가 생겨서 내가 우물에서 물 먹고 올라오는 모습만 봐도 비칠비칠 뒷걸음 질을 친다. 진드기 잡는다고 에프킬러를 몇 번 뿌렸더니 내가 에프킬러 통 들고 '포비야'하고 부르면 나를 외면한다. 그렇지만 우리 개식구 포비는 귀엽다. 

밤에 고라니 보이면 잘 쫓고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내일 나가면 진드기 약 사올게. 에프킬러 뿌린건 미안해. 현재로선 최선의 선택이었단다.



20130727 - 안개


일주일에 네 번 이상 저녁마다 안개가 낀다. 5시가 넘으면 슬금슬금 눈앞을 가리기 시작했다가 밤 열시 정도가 되면 20미터 전방도 뚜렷하지 않다. 이 안개는 다음날 오전까지 이어진다. 먼저도 적었었는데, 이 안개 때문에 볼음도 쌀이 맛있다는 얘기가 있다. 여전히 믿거나 말거나다.

우리 옆집은 빈집이다. 집 근처 가로등이 이 집을 비춘다. 밤에 호랑이 소리 틀으러 나가서 안개 구경을 했다.  



20130730 - 참외


참외 모종을 세 개 사와서 심었더랬다. 초반에 순을 잘못질렀더랬다. 참외는 못 먹는 것인가. 생각했는데 용케 참외가 열렸다. 얼른 장마가 끝나고 누렇게 익은 참외를 먹게 되길 바란다. 내년엔 수박에도 도전해 봐야지. 히히

 

20130731 - 장갑 2


오늘은 비가 안 와서 콩밭에 풀 뽑았다. 적당히만 했다. 내일도 비가 안 온다길래 집 밖에 장갑을 널었다.

포비가 점프해서 하나 물고 가길래 장갑 한짝 들고 쫓아가서 등허리를 때렸다. 포비는 얼른 물고 있던 장갑을 내뱉었다. 밤사이에 장갑들이 무사해야할텐데.

AND

20130603 - 해당화


동네에는 이런저런 추잡스럽고 후진일들이 있고 길가에는 찔레꽃이 논둑에는 해당화가 피었다. 해당화한테는 미안한 소리지만 해당화는 추잡하게 생겼다.



20130605 - 한련화


아내가 하루 집을 비운 사이에 아내가 씨앗부터 공을 들인 한련화가 피었다.가 아내가 돌아오니까 졌다.

인생이란 그런것이다.



20130607 - 달팽이, 애벌레


모내기 마쳤다.

새벽에 텃밭에 나갔다가 달팽이랑 애벌레를 봤다.

달팽이 귀여워.



20130611 - 이런저런


57분 교통정보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제 시간을 지킨다. 시보는 00으로 끝나기 때문에 제 시간을 지키는 것이 당연하단 생각이 드는데, 항상 정확하게 57분을 지키는 일은 놀랍게 느껴진다. 나는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을 좋아하는가?

o형이 일하는 방식은 이렇다. a부터 z까지 해야할 일이 있다. a를 마치고 b로 b를 마치고 c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a를 마치고 b를 하러 가다가 k가 생각나면 k를 m이 생각나면 m을 한다. a를 하러 가다가도 갑자기 다른일이 떠오르면 다른일을 한다. 이런식으로 먼저 할 일들이 뒷전으로 밀려난다.

o형이 일하는 방식은 또 이렇다. 어떤일을 꼭 해보고 싶다고 하면 다른 사람들이 반대해도 반대하는 말만 귀로 듣고 그냥 자기 하자는 대로 하고 얼마후에 그 일에 대해서 잊는다.

그러니까 o형은 그때그때 자기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일을 한다. 아이들이 그렇다고 한다. 한마디로 같이 일하기 힘든 스타일이다. 그래서 내가 좀 힘들다.

이 형이 아침 여섯시에 일 하자고 와서는 왜 아침에 논에 가보지 않냐고 얘기하거나 - 제가 다섯시에 논에 다녀와서 형을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게 아니잖아요? - 고구마 모종값을 비싼데 왜 지불했느냐고 얘기할 때는 - 그럼 고구마 모종 사서 다 심고 돈을 주지 말란 말입니까? - 정말 빡친다.

신경 써줘서 고마운 건 고마운거고 빡치는 건 빡치는거다.

세대차이와 지역정서, 개인의 성향까지 세 가지를 맞춰가면서 일 하려니까 힘들다. 이렇게 부닥치면서 접점을 찾고 적응을 하고 삶은 계속되는 것이겠지.

결과적으로 일은 크리티컬 데미지 없이 흘러가고 있다. 개인적으로 농사일은 크리티컬만 맞지 않으면 좋다.고 생각한다.

어젯밤에는 p형네 그물에 다녀왔다. 물이 빠진 바다 한 가운데서 손님들이랑 밴댕이, 병어를 썰어 먹었다. 지후도 함께 갔다. 집에 오니 12시가 넘었다. 어제는 계획대로 콩도 pot에 넣었다. 결혼 1주년 기념일이 그렇게 흘러갔다.

아내랑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우리는 이 섬이 좋고 수입이 없는것을 제외하면 생활도 그럭저럭 만족스럽다.


지나고 나면 다 아무것도 아니다. 삶도 죽음도 다 부직없다랑 비슷한 맥락이다.

짤방은 흰색 조뱅이. 흰색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게 다리는 잘라도 다시 돋아 나온다는 사실도 어제 처음 알았다.



20130615 - 여러가지, 개국


고구마밭에 가서 풀쟁기로 고랑을 밀었다. 풀이 짧을 때, 사용하면 효과가 좋겠다. 긴풀도 힘으로 밀면 다 잘려나가긴 한다. 콩, 팥, 수수 심었고 중간에 논에 물댔다. 논에 물대는 것은 JS형이 알려주셨다. 앞으론 제가 잘 할게요.

시영네 아줌마가 아내가 일하는 걸 보더니 나한테 친정엄마한테 연락해서 데려가라고 해야겠다고 말했다. 지후야 일단 월요일 오전까지만 고생하자. 일단!!

점심에는 개국을 먹었다. 우리 동네분들은 보신탕을 개국이라고 한다. 우리엄마가 닭백숙을 닭국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개국 맛있었다. 수박도 먹었다. 수박도 맛있었다.

저녁에는 숭어찌게랑 숭어구이를 먹었다. 지후가 요리하는 걸 즐기지 않았으면 우리는 주로 라면만 먹거나 간장에 밥 비벼 먹었을지도 모른다. 혼자 산다면 그것도 좋겠지만 부부가 함께 사니까 맛있는 걸 같이 먹는쪽이 좋다. 얼른 회 써는 기술을 향상시켜서 둘이 숭어회 썰어 먹어야겠다. - 아직은 다듬기도 버거운 상태. 



20130617 - 비, 기다린다


오늘부터 비가 온다는 정보를 지난 수요일에 입수하고 며칠동안 바빴다. 콩, 팥, 수수 심고 콩 포트에 넣고 다섯 구역으로 나뉜 뒷밭의 가장 넓은 자리에 비닐 씌웠다. 적어 놓으니 별로 바쁠것도 없었을까? 아니면 지나고 나니 그런걸까?

집 앞엔 양귀비가 피었고 점심엔 꽃반찬을 먹었고 지금은 비를 기다린다.



20130621 - 하지(감자)


5시에 일어날랬는데, 6시에 일어났다. 한적골 논에 가서 아랫논에서 윗논으로 물을 퍼주던 모터를 껐다. 아랫논이 많이 말랐다. 당분간 비소식은 없다. 심란하다. 고구마 밭에 갔다. 멧돼지는 안 들어오고 고라니는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 풀쟁기로 두 고랑 풀을 밀었다. 집에 와서 가볍게 아침을 먹고 동네 할머니가 주신 들깨모를 뽑아서 뒷밭에 심었다. 귀찮아서 물은 주지 않고 뿌리에 물만 적셨다. 지후가 남의 집 일한 덕분에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메인 메뉴는 농어회랑 지리였다.

오후에 한 숨 자고 들깨 마저 심으려고 했는데, 여러가지 일들이 있어서 그러지 못했다.

7시 30분 정도에 한적골 논에 들렀다. 동네 논들에 다 물이 돌길래 혹시나 해서 한 번 들러봤다. 역시나 물을 푸고 있었다. 논에 물을 대고 집에 돌아와서 오전에 심은 들깨에 물을 줬다. 오늘 낮이 뜨거워서였을까, 내가 물을 주지 않고 심어서였을까. 축축한 땅에 심은 녀석들만 쌩쌩하고 나머지들은 흐물흐물했다. 미안해서 얼른 물을 줬다. 물뿌리개를 들고 꽤나 먼 거리를 몇 번 왔다갔다했다.

아침에 텃밭을 보니 잎이 누래진 감자들이 보였다. 오늘이 하지니까 날은 어둡지만 기념으로 캐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후가 캐고 좋아했다. 감자 농사는 반성할 부분이 많다. 올해 잘못한 것들이 많아서 내년엔 무조건 올해보단 잘 할 거다. 

여러가지 일들은 제외하곤 무난했던 하루다.

하지만 항상 문제는 이 여러가지 일들이라는 거. ㅋ 



20130625 - 625고라니


새벽에 뒷밭에 갔다. 콩 심어 놓고는 매일 논에 가기전에 뒷밭부터 확인한다. 새 피해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오디가 익어가는 때라 그런가보다. 하고 짐작만 하고 있다. 포비 똥 누이려고 목줄을 잡고 밭에 올랐다. 고라니 한 마리가 놀라서 그물 안 쪽에서 못 튀어나갔다. 개 목줄을 놓았다. 포비가 고라니 쪽으로 튀었다. 고라니가 160cm 높이의 그물을 도움닫기도 없이 우습게 뛰어 넘었다.

고라니는 오이랑 고추를 잘라 먹었다. 콩은 건드리면 안되는데. 한 번 들어 왔으니 또 들어올터인데 나는 아무런 방비도 없이 읍내에 가는 배를 탔다.

아침의 선창은 항상 흥성흥성하다. 물에 걸린 병어, 밴댕이를 배에 실어 보내려고 가져온 아저씨들과 백합 조개, 소라를 갖고 나온 할머니, 아주머니들에 오늘은 볼음도의 유일한 선장님인 ks형네 배까지 더해졌다. 아저씨들은 논에 김이 많네 적네, 요즘 밴댕이가 잘 걸리네 안걸리네 하는 얘기를 한다. 나도 아저씨들과 스스럼 없이 대화를 주고 받는다. 그들과 아무런 이해관계에도 얽혀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정도의 거리감이 좋다. 이 거리가 유지되어야 모든일이 나 할탓이고 내탓이 되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이 고라니들을 어쩐다? 내가 오늘 저걸 먹어야겠다고 마음 먹으면 울타리는 얼마든지 뛰어 넘을 수 있단 사실을 알았다. 내가 어떻게 그네들을 말릴 수 있단 말인가?



201300628 - 농활


성대 학생들이 농활을 왔다. 정식명칭은 강화도생태평화농활이다.

어쩌다보니 내가 학생들 일정관리를 맡았다. 마을일이니까 내가 맡아도 좋다.고 생각한다. 다만 어제는 50대 형들 때문에 빡치는 일이 있었다. 이러다 50대 혐오증이 생기는거 아닌가 모르겠다. 후우!

20살, 21살 학생들은 참 밝고 명랑하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을까? 나의 스무살때를 생각하면서 최대한 학생들이 불편하지 않게 해주고 싶다고 결심한다.

젊은이들이 몰려다니는 것만으로도 마을에 활기가 돈다. 좋다.



20130630 - 농활 2


올해가 막 가네. 농활도 막 지나가는 중이다. 오늘은 한 타임 쉬어가는 날이라 농활대는 오전일 하고 바다에 다녀왔다. 동네분들이 트랙터랑 경운기 여러대에 나눠서 태워주셨다. 이렇게 주민들이 조금만 협조하기만 한다면 농활은 좋은 것이다. 학생들이 먼저 밝게 방긋방긋 웃으면서 다닌다면 농활은 좋은 것이다.

사고없이 마무리하자.

그리고 칠월엔 고양이를 키워야겠다. 바로 이놈으로. 

AND

20130501 - 오리알


오월이네. js형네 못자리에서 오리알을 봤다. 신기했다. 참으로 먹은 국수에 달걀대신 풀려 나왔다. 덤덤했다.

오늘까지로 유박을 다 뿌렸다. 지게차랑 트랙터가 없어도 되는 벼농사를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일부터 논을 간다.



20130504 - 장갑


꽃이 그러하듯이 장갑도 모여 있으면 예쁘다.



20130505 - 마을사업


현재 섬에 마을 사업이 하나 들어와 있다. 25억 예산으로 작년에 시작해서 내후년에 끝난다. 이름하여 볼음도 저어새 생태마을 사업이다. - 추진 위원장님은 생태계 마을 사업이라고 부른다. -

사업이 진행되는 모양을 가만히 살펴보면 볼음 1리와 2리 주민들간의 갈등, 교회 다니는 주민들과 아닌 주민들 간의 갈등, 직접적인 경제적 이익이 없는 일에 대한 사람들의 무관심, 자기 할 말만 하고 집으로 가는 회의 문화, 절차를 무시하는 일 진행이 마음에 걸린다. 볼음도에 살지 않는 사람들이 사업에 대해서 이렇게 해야한다 저렇게 해야한다고 하는 것도 짜증나는 일이다. 생태마을 사업을 하면서도 마을에 광산 개발을 하겠다는 업자에게 돈 얼마씩에 주민들 동의서를 받아주는 일도 짜증나는 일이다. 1억원의 용역비를 받고 건축 사무소에서 만든 사업 설계는 그럴듯하다. 그런데 그 건축 사무소 직원이 이곳에 왔다가 갔는지 왔으면 얼마나 있다가 갔는지에 대해서는 마을사람들 누구도 모른다.

암튼 진행하는 모양새가 빡치는 부분이 많다. 개인적으로는 이 사업을 통해서 섬 곳곳의 쓰레기나 좀 치웠으면 좋겠다. 쓰레기 분리수거도 확실하게 할 수 있도록 분리수거장을 만들어 주면 좋겠다. 명색이 저어새 생태마을인데, 섬에 쓰레기가 너무 많다. 어떤 분들은 쓰레기를 산에 갖다 버리기도 한다고 한다. 비닐이며 플라스틱까지 다 드럼통에 넣어서 태우는 것 만큼이나 부끄러운 일이다.

볼음도는 60만평의 논이 모두 유기농 인증을 받았고, 밭 주위나 길가에 쓰레기가 없는 섬이라고 소문나는 쪽이 저어새가 오는 섬 볼음도라고 소문나는 것보다 더 쉽고 섬 홍보에도 좋지 않을까? 아까 낮에 외부에서 새 사진 찍으러 오신 어떤 분이 마을 사업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길래 살짝 짜증이 났더랬다. 그런김에 썼다. 

2리 저수지 옆(나들길 바로 옆)에 있는 2리 쓰레기장, 1리 쓰레기장은 따로 있다. 작년까지는 적당히 쓰레기를 버리면 업자가 와서 가져가서 분리수거 했다고하는데, 분리수거 했는지는 모를일이다. 올해는 쓰레기 치워갈 업자도 아직 결정 안됐다고 한다. - 올해를 넘길 가능성도 있는 것 같다. - 뭔가 조치가 필요하다. 2리 주민은 맥시멈으로 잡아도 30명정도인데, 1리 주민은 미니멈으로 잡아도 180명이다. 쓰레기 저어새 생태마을이 되지 않기 위해서 뭔가 확실한 조치가 필요하다.



20130508 - 어버이날, 불놀이


어제, 오늘은 논둑에 불놨다. 모내기 때, 논둑에 모판 내려놓는 등의 일을 함에 걸리적 거리지 않도록 논둑에 불을 놓는다. 불은 활활 잘도 탔다. 불도 타고 속도 탔다. 불이 지나간 논둑도 타고난 속도 후련해진다.

한적골 논 두 배미 중에 윗논에 물이 차다 말아서 막힌 곳을 뚤어줬다. 이제부터 매일 다녀야 한다.

어버이날이다. 마을 회관에서 점심을 먹었다. 젊은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들 밥을 해 드린다는 취지다. 내년에는 작목반 차원에서 카네이션이라도 준비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버이 날인데, 엄마랑 통화는 못하고 불장난만 했다. 자다가 엄마 찾게 생겼다.



20130510 - 인삼


오전까지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js형, mj누나랑 산에 갔다. 왜 가는 줄도 모르고 가자니까 갔다. 난 조금 그런 스타일이다.

삼을 캤다. 산에서 삼을 본 것이 처음이라 신기했다. 2구짜리는 그냥 두고 3구, 4구 짜리만 캤다. 예전에 인삼을 키웠던 집들이 많았는데, 그 씨가 산으로 번진 것 같다는 것이 js형의 결론이다.

덕분에 삼을 먹었다. 힘내서 일해야겠지?



20130513 - 가재장


작목반 차원에서 볼음도에서 생산되는 수산물을 가공하는 프로젝트를 하기로 했다. 그 첫 번째로 가재장을 만들었다. 식품허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맛을 잘 내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일단 시작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일을 벌였다. 아는 사람들에게 맛이나 보여주자는 취지여서 부담 없이 만들었다. 지후, 나, JS형 이렇게 셋이서 만들었다. 만드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JS형은 간장을 손가락으로 휘휘 저으면서 손맛이 들어가야 더 맛이 있다는 등의 얘기를 했다. 생협에서 간장, 멸치, 다시마, 양파를 구입했다. 하여 원가가 비싸다. 하루 지나서 먹어봤는데, 맛있었다. O형이 강화에 가지고 나가서 20통을 다 풀었(팔았)다. 이제 문제는 수금이다.



20130518 - 인삼 2


js형이랑 산에 다녀왔다. 또 삼 캐 먹었다. 뇌두는 떼어내고 줄기랑 잎으로 삼을 둘둘 말아서 한입에 꿀꺽했다. 맛있다.

돌아와서 잠깐 삽질을 했다.

이렇게 밭 모양 만들어서 뭐든 심어 먹으면 되지. 농사가 뭐 별건가? 생각했다.

인삼을 먹어서 그런가 보다.

내일 비 그치면 남은 고추 한 판 마저 심어야겠다.



20130521 - 90일


이사 온지 세 달 지났다. 기분에는 한 십년 산 것 같다.

아내가 외출하는 날이라 아침에 선창에 나갔다. 쏟아지는 하늘을 봤다.

집에 와서 여러가지 일을 하려고 했는데, 오후 세 시까지 O형이랑 같이 있었다. O형은 우리 일을 본인 일처럼 해주신다. 그래서일까, 일 하는데 있어서 내가 할 말을 다 못하는 느낌이 있다. 오늘도 일을 했다기 보다는 끌려다니는 느낌이었달까? 둘이 함께 할 일이 아닌데, 자꾸 같이 있게 되는 경우가 많다. 겨우 헤어져서 내 할일을 했다. 땀을 좀 흘리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올해는 배우고 지켜보는 한 해니까 너무 조급해 하지 말아야지.하면서도 그게 잘 안된다.   



20130523 - 바느질


봄, 여름, 가을에 걸쳐 입을 수 있는 작업복 바지가 하나다. 꿰맨다는 것이 왠지 귀찮아서 가랑이가 많이 터지고도 한 달을 그냥 입고 다녔는데, 오늘 단단히 꿰맸다. 국민학교 6학년 실과 시간에 바느질 했던일이 생각났다.

바느질 하는 도중에 문자왔다. 어제부터 kt전화도 먹통이었다. 섬에 산다는 실감이 났다.



20130526 - 구속


오늘 오전에는 o형네 고구마 심었다. 3일 연속으로 새벽부터 고구마를 심었고 어제랑 오늘은 네시 사십분에 일어나서 다섯시에 일 시작했다. 피곤하다. 피곤한데,

m아저씨가 구속됐다. 작년에 동네 사람들 차에 태우고 가다가 사고가 나서 한 분이 돌아가셨다. 그 때문에 계속 재판을 받았더랬는데, 결국 구속됐다.

작은 섬에서 발생한 큰 사건이다. 돌아가신 분의 자녀들이 합의를 해주지 않은 자세한 내막이야 알 수 없지만 60이 훌쩍넘은 큰 아들을 "아 젠장 육실하게 아는것도 많지." 라고 구박하시던 80대의 노모는 혼자 남겨졌다.

논과 밭은 작목반 차원에서 공동으로 짓는 것으로 결정났다. 그나마 다행이다.



20130527 - 비가 온다


아침에 아내랑 다퉜다.

"우리 별로 사이가 안 좋은거 같아. 뭐 하러 같이 사는지 몰라?" 란 소리를 들었다.

열무 다듬다가 잠깐 기분이 나빴던 그 순간에 사이가 안 좋았던 것 뿐이지. 우리 사이는 좋다.고 생각한다.

함께 예능을 보면서 기분을 풀고 점심 먹고는 오랫동안 잤다. 몸도 마음도 회복이 필요한 시점에 마침 비가 왔다.

자고 일어나서는 텃밭 배수로를 수선했다. 나름대로 대공사였다. 비에 흠뻑 젖었다. 남들이 보면 왜 이렇게 하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들이 공사를 대신해 주지는 않는다. 열무 다듬는 일도 마찬가지다. 할머니들은 왜 그렇게 하느냐고 얘기하겠지만 그 양반들이 대신 다듬어 주지는 않는다. 뭐든 남의 얘기는 참고만 하고 직접 해보고 점점 잘 하게 되는 것이 답이다.

저녁으로 지후가 만들어준 칼국수 먹었다. 완전 맛있어.

아내랑 자꾸 다투는 것은 답이 아니다.   

AND

20130401 - 바다


P형이랑 바다에 다녀왔다. 말장(작대기)은 다 박았고, 오늘은 말장에 그물을 묶었다. 말장의 위 아래로 그물을 묶는것이 오늘 일이다. 샛멀 할아버지들 세 명과 김정택 목사님, 아주머니 한 분까지 해서 여럿이 갔다. 처음하는 일이라 걱정 했는데, P형이 알려준대로 하니까 잘 됐다. 나는 매듭에는 자신이 없는데, 한 번 해보니까 됐다. 그러니까 그렇게 기술적인 일은 아니다. 다만 바닷일은 힘이 든다. 여럿이 일한 덕분에 일을 다 마쳤다. 이제 잡는 일만 남았다.

바다는 물이 살짝 차 있을 때, 그러니까 반영이 확실할 때 무척 아름답다. 다음에는 꼭 사진으로 남겨야겠다.

일을 마치고 P형네서 밥 먹으면서 그물에 걸렸던 웅어회, 생새우를 먹었다.

오전에는 씨감자 자르고 나뭇재 묻혔다. 나뭇재를 묻히는 것은 밭에 살충제를 뿌리는 대신이다. 처음 씨감자를 받자마자 자르고 싹을 틔웠어야 했는데.....

내년에는 그렇게 하자.

일단 올해는 감자 무병을 기원한다. 



20130403 - 냉이, 달래


간밤에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 믹스를 먹는 꿈을 꿨다. 브랜드는 네스카페였다. 커피 믹스 중독이구나. 집에 있는 것 다 마시면 커피 믹스는 집 밖에서만 마시기로 한다.

오전에는 뒷밭에 냉이 캐고 비닐 치웠다. - 이제 진짜 밭만 갈면 된다. - 아침에 혼자 일할 때, 냉이라고 생각해서 잔뜩 채집했던 것이 냉이가 아니었다. 지후한테 지적당했다. 나는 아주 강한 냄새가 아니면 냄새를 잘 못 맡는데, 그래서인지 냉이 냄새도 잘 모른다. 하여튼 잎모양으로 냉이를 구분할 수 있게 됐다. 

오후에는 산책을 갔다. 볼음도에 와서 처음 가보는 길 - 군부대가 보이는 길 - 을 걷는데, 달래가 눈에 띄었다. 집 근처에 달래가 없어서 달래 반찬을 한 번도 못 먹었다. 군락을 이뤘길래 지후랑 둘이 손으로 막 캤다. 우연한 발견이라 재미있었다. 아무도 건드린 흔적이 없었던 것으로 봐서 동네에서 우리가 처음으로 발견한 것이 분명하다. 저녁 때, 먹은 달래 무침이 무척 맛있었다. 내일 또 가야지. 



20130404 - 바빴다


오전 - c이장님네 컴퓨터 잠깐 봐드리고 p형이 버섯 종균 나무에 넣는 거 구경하고 막걸리 마시며 사는 얘기 했다. 집에 와서 텃밭에 감자랑 시금치 심었다. 올해 첫 파종이다. 감동은 없었다.

오후 - 전기요금 문제로 한전 콜센터 직원 두 사람과 한참 통화했다. 도서 지역이라 두달에 한 번 검침한다는 사실과 요금도 두달 요금을 균일하게 나눠서 낸다는 것을 알았다. 아내랑 고구마 심을 밭에 비닐 걷었다. 비닐 안 걷고 고구마 캔 자리라 비닐 위로 흙이 두텁게 덮여있다. 집에 와서 채집활동을 했다. js형이 밖에서 나무를 사다 주셔서 - 감사합니다 - 집 뒤꼍에 대추나무 두 그루, 옻나무 아홉 그루 심었다.

하루가 휙 갔다. 바쁜 건 별론데. ^^*



20130407 - 아침부터


마셨다. 아내를 찾는곳이 많았는데, 모두 무시했다.

숭어 새끼를 안주로 먹었다. 꼬리쪽을 잡고 머리쪽을 양념에 찍으면 물고기가 막 튄다.

숭어새끼 - 모치라고 부른다. ^^*



20130409 - 우리집에서 마셨다


표고버섯 종균 넣을 나무들 옮겼다. 나무가 많았는데, JS형이 도와줘서 금방 끝났다. 오늘 작업하는 표고목은 나랑 O형이 함께 하는 것인데, JS형은 그냥 두와주셨다. 감사합니다. 어제 볍씨 소독이 강화에서 오셨던 분들 때문에 일찍 끝났던 것처럼 오늘 일도 JS형이 트랙터 빌려줘서 일찍 끝났다. 그래서 우리집에서 다 함께 저녁 먹었다. 다들 많이 마셨는데, 혼자 한 모금도 안 마신 아내가 자기 할 얘기를 다 해서 좋았다. 지후야 잘했어요.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할 말은 하고 삽시다.



20130412 - 버라이어티


요즘 내가 몇 시에 잠이 드는지 잘 모르고 잔다. 그러니까 그냥 누워있다가 잠든다.

m아저씨네 하우스에 가서 d할머니랑 열무 심었다. d할머니는 m아저씨의 엄마다. m아저씨는 우리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고 이들이 나보다 한살 어리다. 그러니까 할머니랑 손주가 사이좋게 열무를 심었다. 풀 뽑고 땅 좀 일러서 골타고 물 흠뻑 주고 씨 뿌리고 흙 덮었다.

그러고는 작목반 형, 아저씨들과 논 흙 뜨러 다녔다. 볼음도는 친환경 벼농사 지역이라 대부분의 논이 유기농 인증을 받았다. 논흙은 인증 재심사에 사용한다.

점심 먹고는 m아저씨네 감자 심을 밭 갈고 비닐 씌웠다. 내일 심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는 집 뒷산에 칡 캐러 갔다. - 이런 여유가 있다. - 진달래가 25% 정도 개화했다 예뻤다. 곧 만발하면 많이 예쁠것 같았다.

이것 말고도 여러가지 액티비티가 있었다. 하루 일과가 참으로 버라이어티 하다. 내일까지 바쁘게 보내고 일요일엔 좀 쉬어야겠다.



20130413 - 버라이어티 2


표고종균작업
감자심기
밭에 비닐 걷기
모아둔 쓰레기 자루들 버리기
점심밥 - 아내는 휴식
휴식(거의 기절상태) - 아내는 허브파종, 부엽토 채취
강낭콩 심기 - 순녀 할머니 고맙습니다.
p형네 볍씨소독 - 아내는 ys 형한테 숭어 다섯 마리랑 바닷가재 40마리 얻었음.
저녁밥 - 아내는 쌀가루 만들고 쑥 버무리 제조
어제 캔 칡 씻기 - 내일 잘라서 말리자.
아내랑 기타 치고 노래 부르기 30곡

밤 열시 사십분에 세수도 안 하고 누워서 오늘 한 일 기록 중임.

바빴던 중간에 벼랑에 매달린 제비꽃을 찍을 여유가 있었다.



20130414 - 호박구덩이


호박 심었다. 삽으로 작은 구덩이를 팠다. 퇴비를 넣었다. 흙을 덮었다. 그 위에 심을까 하다가 혹시나 퇴비 독에 호박이 안 나올까 싶어서 구덩이 옆쪽으로 심었다. 구덩이도 괜히 깊이 파면 안 좋을것 같아서 한삽 정도 깊이만 팠다. 호박은 심은 사람 마음이 고와야 잘 자란다고 하는데, 씨앗은 아내가 놓았으니 잘 자라겠지.

오후에는 아내, 포비랑 뒷산에 올라갔다. 우리 강아지 완전 귀엽고 돼지다. 진달래 꽃이랑 생강나무 꽃을 채집했다. 아내가 진달래 화전을 해줬다. 완전 맛있다. 칡 자르다가 손에 톱이 살짝 닿았다. - 휴우~~ - Y이장님이랑 토양검정할 흙 말려둔 것 내일 센터에 보낼 수 있게 준비했다. 이장님이 휘발유 한 말 주셨다. - 감사합니다. -  KJ아주머니가 부추랑 쪽파를 많이 주셨다. - 감사합니다. -

그러니까,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다.



20130419 - 친구


친구가 놀러왔다. 좋다.

볼음도에 놀러온 첫번째 손님이다. Thanks, DS.

DS는 내 술친구가 돼줬고, 선반과 미니 하우스를 만들어줬다. 우리는 일도 같이 하고 불장난도 하고 가재찜도 먹었다.

어제는 내가 만취했다. 오늘은 오이랑 사과를 주전자에 썰어넣고 소주를 부은 술로 해장을 했다. 안주는 삼겹살, 군고구마, 가재찜이었다. 나는 고구마를 안주로 먹는 소주가 좋다.



20130427 - 돼지 잡았다


어제 1차 못자리를 했다. 내일 모레 2차 못자리를 한다. 못자리 하고 모내기 하려면 고생해야 한다고 마을을 떠난 누군가가 돼지 한 마리를 배에 실어 보냈다. 그래서 돼지를 잡았다. 우리들은 돼지를 묶고 내리치고 찔렀다. 피가 튀고 돼지는 몸부림을 치며 울었다.

잡은 자리에서 내장도 삶아 먹고 갈비도 구워 먹었다. 저녁에는 오리지널리티가 살아있는 순댓국을 먹었다. 손에는 아직 돼지 냄새가 남았다.



20130428 - 바쁘네


o형네 못자리 할 논이다. 아침에 모터 코드 뽑으러 나갔다가 저어새 봤다. 물이 잠긴 논을 보면 기분이 좋다.

규산 걸름망 만들었다. 교회 다녀왔다. 집주인 아저씨가 와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집정리를 했다. 유박 뿌리는 일 도왔다. ds가 놀러왔다. 저녁 먹고 작목반의 향후 논농사 일정을 잡는 회의를 했다. 중간중간(?) 소주를 마셨다.

농사 시즌이다. 형들, 아저씨들이 다들 지쳐있다. 일이 많아서 그렇다. 애초에 생각했던 마음을 잊지 말고 마음의 여유를 갖고 하루하루 지내야겠다. 올해는 어쩔 수 없이 끌려다니는 느낌이 있는데, 내 할일은 확실하게 해야겠다.

내일은 무슨일이 있어도 눈개승마 파종을 해야겠다.

AND

20130303 - 쓰레기, 오토바이, K형


볼음도 분들 중에 갯벌에 그물을 치는 분들은 많지만 배를 가지고 조업을 하시는 분은 한 사람 뿐인데, 그게 K형이다. 엊그제 K형네 가서 마을의 문제점, 삶의 자세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일단 내 가정(테두리)의 안정이 먼저다. 그리고 그 안정의 99%는 경제적인 부분이다. 나도 머릿속으로는 항상 생각하고 있는 내용인데, 실천이 되겠나? 노력하자.

언제든 배에 태워주신다고 해서 무척 고마웠다. 내가 배고프다고 남이 밥 먹여 주는 거 아니다. 그러니 밭 빨리 만들어 놓고 농사일 중간중간 시간 날 때 마다 배에 타면 일당도 벌고 반찬거리도 생기고 좋지 않냐고 하셨다. 내 생각에도 K형 말대로 하는 게 가을이 왔는데 소득이 없으면 불법으로 개구리를 잡겠다는 생각보다는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

K형이 안 쓴다고 버려둔 드럼통을 하나 주워와서 집 주변의 쓰레기를 태웠다. 우리집도 그렇지만 옆집도 비어있은지 오래돼서 집 주변으로 쓰레기들이 많다. 플라스틱을 골라낸다고 골라냈지만 어찌어찌 일부는 그냥 태웠다. 그랬더니 기분 나쁜 냄새가 났다. 냄새는 집안으로도 들어왔다. 조금 귀찮아도 마음속의 원칙대로 생활하는 게 그렇지 않은 쪽보다 항상 낫다. 집 주변에 풀이 무성해서 동네 사람들에게 욕을 먹어도 제초제는 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는 쪽이 낫다.는 말이다. 물론 몸을 부지런히 놀려서 풀이 무성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먼저다. 그 정도의 부지런함은 미덕으로 갖고 살고 싶다.

지난 주에 어찌어찌해서 1년 간 방치된 오토바이를 어찌어찌해서 덜컥 사버렸다.

시동이 걸리지 않았더랬다. 어쩔까 고민했는데, 배터리만 충전하면 문제 없을거란 영일군의 얘기를 들었다. 트럭이랑 고무바로 연결해서 일단 p형네까지 끌고 오기로 했다. 끌고 오는 중에 시동이 걸렸다. 그리고 지금은 배터리 충전중이다. 굴러가지도 않는 것을 어영부영하다가 사는 바람에 걱정이 많았는데, 잘 됐다. K형도 싸게 잘 샀다고 했다. 일단 생겼으니 후회없이 타는 수 밖에 없다. 지후가 나 태워주면 좋겠다. 

여러 사람들이 도와줘서 발이 생겼다. 감사합니다.



20130307 - 개발없자


c 이장님네 갔다가 김포에서 사업을 하는데, 볼음도에 밭을 2,000평 샀다는 사람을 만났다. K장로님도 함께 있었다. K장로님은 김포 한강 신도시랑 인천의 아파트들이 미분양돼서 국가적인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면서 자기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나는 이 양반이 돼도 않는 소리를 왜 하실까 생각했다. 볼음도의 본인 땅 팔아서 미분양 단지에 아파트 비싸게 사셨나보다. 

김포에서 사업 한다는 사람은 아파트 값은 더 내려도 상관 없다고 했다. 그리고는 자기가 건물도 짓고 사업 좀 해보려고 하는데, 볼음도에 규제가 너무 많다는 불평을 했다. 이 양반은 아파트로 투기를 하는 사람은 아니구나. 생각했다. 사람들은 자기 입장 속에서 산다. K장로님은 자기네 산이 높은 건물을 올리기에 좋으니 구입할 생각 있으면 얘기하라고 했다. 개발업자는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시골에서 흔히 있는 개발업자와 땅 주인간의 대화였을까?

볼음도에는 아무런 사업도 들어오지 않고 관광객도 지금만큼만 있는 것이 더 좋은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많은 관광객을 원하고 있다.   

C 이장님이 시금치 씨를 주셨다. - 감사합니다. 내일 뿌릴게요. -

마을회관에서 저녁을 먹었다. K형이 간재미를 사오셔서 간재미 회를 먹었다. 맛있었다. - 잘 먹었습니다. -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본 하루였다.



20130308 - 정리


집 주변을 정리했다. 드디어 쓰레기 드럼통 안의 쓰레기가 다 탔다. 못이랑 쇳덩이, 은박지는 건져내고 재는 집 잎 묵은 논 자리에 - 오래 묵어서 미나리 꽝이 됐단다. - 버렸다. 집 안도 정리할 것이 많은데, 집 주변을 정리해야 뭐라도 심을테니, 집안 정리는 비 오는 날 해야겠다.

아내가 오이랑 꽃 심을 자리를 만들어 놓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완전 깔끔해. 지후는 깔끔하다.

p형네 갔다. 작부 계획이 확실하지 않은 것에 대한 지후의 걱정을 얘기했더니, 할머니들이 뭐 안 심어? 하고 물어보면 그때 그거 심으면 된다고 쿨하게 알려주셨다. 그런것도 좋지만 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힐링 캠프를 봤다. 한석규가 어머니와 낚시했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하면서 직업적 성취감이 주는 행복은 그렇게 크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왠지 기억에 남는다.

푸른 풀이 올라오기 전에 겨울을 품은 풀들을 긁어모아 태운다. 내일도 모레도 태운다.



20130309 - 불조심


집 뒤에 밭이 있다. 한 삼 년 묵었다. 사람이 오래 안 살다보니 고라니들이 집 근처까지 내려와서 활동을 했다. 집 뒤에 풀을 치우는데, 고라니 똥들이 여기저기 널렸다. 갈퀴로 긁어낼 건 긁어내고 손으로 뽑아야 되는 건 뽑아낸다. 그리고 그것들을 그러모아 태웠다. 저녁 먹고 한 번 나가봐야지 했는데, 저녁 먹자마자 손님이 찾아왔다. 의용소방대 아저씨다. 연기가 나서 신고가 들어왔다고 했다. 아마 그 신고가 들어오지 않았으면 나는 한 번 나가 봐야지 했던 생각을 잊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불이 날 뻔 했다.

강릉에서는 화목 보일러 재를 퇴비장에 버렸는데, 불이 100% 꺼지지 않은 것을 버려서 불이 날 뻔 했고, 작년에는 화목 보일러에 있던 큰 나무를 다시 화구에 넣는 것을 잊어서 집 다 태워 먹을 뻔 했다.

나는 불조심을 하지 않는다. 이래선 안된다. 아내 말을 잘 듣고 항상 안전에 유의하자. 포항에서 산불이 났다는 뉴스를 봤다. 그리고 이런 일로 동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지 않도록 하자.

그리고 열심히 일했다. 지후가 일을 한다. 꼼꼼하게 잘 한다. 어제도 놀랐지만 오늘도 놀랐다. 나는 듬성듬성 한다. 히힛


20130311 - 정리


집 안팎으로 정리할 것이 많다. 마음에도 안팎이 있는 것 같은 요즘이다.

지후가 아침배로 서울에 갔다. 월요일 아침의 선착장은 사람들로 넘실거렸다. 그래봐야 20명도 안 됐으려나? 오토바이 뒤에 탄 지후가 장갑을 낀 손으로 내 귀를 감싸줬다. 심정적으로 따뜻한 이런 순간들이 나를 기쁘게 한다.

혼자 돌아오는 길은 엄청 추웠다. 몸을 녹이려 잠깐 눈을 붙이면서 오늘은 뭘 할까. 생각했다.

눈 뜨자마자 화장실에 갔다. 그 동안 포기하고 있었던 화장실 변기에 수도연결을 했다. 왠일인지 성공했다. 오늘 탄력 받는 날이구나 싶어서 부엌에 3구짜리 콘센트를 갈았다. 그리곤 이사오던 날부터 눈엣가시였던 큰방에 있는 2구짜리 콘센트를 교체하기 시작했다. 덜렁거리는 통에 전기선을 마음 놓고 빼지도 못하고 있었다. 차단기를 내리고 전선을 끊을까 하다가 그냥 끊었는데, 전기가 나갔다. 차단기는 안 내려갔다. 

이런 상황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병상에 누워있는 영일군이다. 카톡으로 물어봤다. 차단기 내리고 전선 끊어야 한다는 점을 알려주면서, 퓨즈가 나갔을거라고 했다. 지난 가을에 고향인 볼음도로 이사온 M형한테 물어봤더니 상세하게 퓨즈 위치까지 알려주셨다. 감사합니다.

그러던 중간에 자동차 검사 때문에 선창 앞에 다녀왔다. 괴산에 가 있는 O형이 2.5t 덤프 검사를 내게 맡겼다. 운전석 쪽 문짝이 떨어져나간 차다. 내가 차를 끌고 가니 미리 나와 있던 동네 형들이 30년 전에 타던 차다. 그게 굴러 가느냐.며 말을 걸었다. 선창에 동네 차들이 잔뜩 모여서 검사를 받는 모습은 섬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급하게 나오느라 검사비를 안 가져왔는데, P형이 빌려줬다.    

다음은 오토바이다. 이번주에 꼭 해야할 두 가지가 오토바이를 제대로 손보는 것과 현관문 고리 새로 다는 것이다. 엔진 오일을 사러 농협에 갔다가 C이장님을 만났다.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봐주신다고 했다. 이장님 댁에 가는 길에 K형도 합류했다. 일단 오일을 교체했다. 앞바퀴에 바람이 슬슬 빠진다고 했더니 물에 담가서 빵꾸난 곳을 찾고 지렁이 - tire seal(USA) - 로 때워주셨다. 자 이제 오토바이는 배터리만 새걸로 바꾸면 된다.  

이런일들을 다 내가 혼자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오늘 잠자코 집중해서 잘 봤으니까 이제 혼자도 할 수 있겠지.

영일군, M형, 이장님, K형, P형 아무튼 감사합니다. 여기저기에 고마운 일들이 많다. 그런 삶을 살고 있다.  



20130315 - 바다, 그릇


P형이랑 바다에 나갔다. 형수가 주문도에 갈 일이 있어서 내가 형수 대신 갔다. 갯벌에 말장(긴 작대기)을 박는 첫날이었다. 미리 잘 깎아놓은 참나무 12개를 트랙터에 싣고 15분 정도 갯벌을 달려서 목적지에 닿으면 동력 분무기에서 물을 뿜어서 뻘에 구멍을 내고 거기에 말장을 박는다. 뭐 대충 이런식이다. 바다에서 돌아와서는 내일 작업할 45개를 트랙터에 실어 놓고 일을 마쳤다. 형수가 나랑 일하러 가서는 겨우 12개만 작업하고 내일 자기랑 일 할때는 자기를 죽일 셈이냐고 농담을 해서 웃었다. P형이랑 형수는 유머가 있다. 좋다. 

바다에는 일요일에 또 나가기로 했다.

엊그제 부엌살림을 정리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쓰시던 그릇을 정리해서 안 쓰는 냉장고에 넣었다. 하나 가득이다. 살아간다는 건 그릇이 쌓여가는 것과 같은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20130317 - 바다


바다에 나가서 (말)장 박았다. P형이랑 형수도 함께였다. 형수가 내가 도움이 많이 됐다고 해서 고마웠다. 내가 어딘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란 게 참 좋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여기 분들은 그렇게 생각하기 보다는 일을 꽁으로 해 줘서 고맙다는 느낌이 더 큰 것같다. 어떻든 나한테는 좋은 일이다.

P형네서 저녁을 먹고 당나귀 아줌마네서 한 잔 마셨다. P형네서 밥 먹고 있는데, M형이 숭어를 가져다 줬다. 그 숭어를 회 떠서 당나귀 아줌마네서 마셨다. JS형이랑 HH형도 함께였다. 이런게 섬에서의 생활이겠지?

마음먹고 사진을 찍어볼랬는데, 마음처럼 잘 나오진 않았다. 다음번엔 잘 찍어보자.



20130319 - 바다


p형네 내외랑 말장 박았다. 세 번째라 일이 몸에 많이 익었다.

한참 일하는 중에 형수가 물 들어온다고 했다. p형은 괜찮다고 마무리 하고 나가자고 했다. 나는 그런가보다 했다.

엊그제 형수가 말하길 내가 있는 자리만 물이 안 들어오는 것이지 실제로는 U자로 들어오다가 합쳐지기 때문에 바다에서는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잠깐 일 하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정말로 내가 있는 자리만 빼고 물이 다 들어와 있는 것이었다. 사태를 파악한 p형이 얼른 정리하고 나가자고 했다. 트랙터가 물이 들어온 바다를 한참 달려서 안전지대에 도착했다.
 p형이 시동을 끄더니 한 잔 먹고 나가자고 했다. - 이런 여유라니 - 한 잔 먹고 있자니 물이 우리 바로 뒤까지 들어왔고 우리는 얼른 자릴 떴다. 형수가 오늘이 조금이라 망정이지 사릿날이었으면 다 죽었을거라고 했다.

그물일 하시는 아주머니들은 바닷물이 자신을 쫓아오는 경험을 몇 번이고 하셨겠지? 바다가 무섭다고 했던 몇몇 아주머니들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바다는 넓은만큼 예쁘고 그만큼 무섭기도 하다.



20130323 - 흙살림, 우울증


괴산 흙살림 토종연구소에서 퇴비 교육을 받았다. O형네서 밥 두끼랑 하룻밤을 제공받았다. 감사합니다. 보통이라면 이렇게 신세지는 상황에 짜증을 냈을 지후가 (돈도 없고 차도 없으니) 어쩔 수 없잖아.하고 받아줘서 고마웠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내 각시가 우울증 걸릴까 봐 걱정한다. 다들 그런 경험이 있거나 많이 봤기 때문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아내가 시키는대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괴산 흙살림 매장에서 구입한 통밀가루 2kg랑 엿기름 한 봉지를 내 가방에 넣고 볼음도까지 돌아가는 중이다. 우리가 도선료를 내더라도 강화도에 하나 뿐인 생협에서 상품을 보내주면 좋겠다.

나는 교회 가면 멍하니 성경을 읽거나 찬송가를 들여다 보거나 하기 때문에 - 아~멘은 보통 4도나 5도에서 1도로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았다. - 또 믿음 보다는 동네 분들과의 교류 때문에 교회에 가기 때문에 덜 하지만 아내는 교회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부분이 많다.

아내는 말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이 믿음을 가져보려고 교회에 가 보는 것인데, 교회에서 만날 듣는 얘기가 믿지 않는 사람은 인간도 아니라는 것이고, 부흥회니 속회니 심방이니 하는 행사에 자꾸 나를 끌어드리려고 하니까 교회 가기가 더 싫다. 교회는 교회가 왜 욕을 먹는지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지후는 참 생각도 깊고 말도 잘한다. 난 죽었다 깨어나도 이렇게 논리정연하고 사리분별하지 못한다.

그렇고

흙살림 교육은 도움이 많이 됐다. 우리 섬에는 조개랑 굴 껍질을 구하기가 쉬우니까 식초랑 섞어서 칼슘제를 만드는 것은 당장도 시도해 볼 수 있겠다. 그것 말고 다른것들도 시도해 볼 것이 많다.

집에 돌아가면 바빠지겠다. 계획을 세우고 가다듬고 실천하고 가다듬고 해야겠다.



20130525 - 비닐


텃밭에 심을 씨감자 묻었다. 싹이 조금 나왔고 목요일엔 최저기온도 영상이니 목요일까지 묻어뒀다 심어야겠다. 양이 얼마 안되기 때문에 플라스틱 소쿠리에 담은 채로 땅에 묻었다. 내일 최저기온이 영하 4도라는데, 괜찮겠지? 혹시나 잘못될 수도 있으니 5kg 중에 1kg 정도는 그냥 실내에 뒀다. 감자가 국가관리 5대 작물에서 제외되면서 씨감자 생산이 지자체랑 민간으로 넘어갔다. 결국 씨감자 생산하고 유통하는 사람들만 돈을 버는 구조가 됐다.

뒷밭에 비닐 제거했다. 두둑에 남아 있는 비닐도 있고, 밭 주변 구석구석에 잘 묻혀있는 것들도 있다. 마대에 담고 담고 또 담았다. 소출이 적더라도 비닐은 무조건 안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전분으로 만든 썪는 비닐도 있다는데, 그래도 제일 좋은 건 비닐 안 씌우고 농사 잘 짓는 것이겠지. 평생 남이 버린 비닐만 제거하다가 내 농사는 제대로 지어보도 못할 수도 있겠다.는 우울한 생각을 잠깐 했다.



20130326 - 일하고 술마셨다


오전에는 화단 만들 돌 줍고, 퇴비에 쓸 가지들 태웠다. 일륜차에 돌 싣고 몇 번 왔다갔다 했다고 힘들었다.

점심 먹고는 잠깐 잤다.

일어나서는 감자 심을 두둑 만들었다. 한 줄은 두둑에 심고 한 줄을 고랑에 심어서 덮으려고 한다. 돌이랑 쑥 뿌리가 많이 나왔다. 쑥한테는 미안하지만 감자를 심어야겠다. 100% 맘에 들진 않았지만 75%정도는 된다. 텃밭에 괜히 오기를 부릴 필요는 없다. 애초에 내 성격이 줄을 딱딱 맞추는 스타일이 아니다. ^^;

그리고는

뒷밭에 쓰레기를 주웠다. 어제 비닐 줍던 것에 이어서 마저 주웠다. 이제 집 뒤에 밭은 마른 풀 좀 뽑아 내고 밭 갈고 고라니 망만 치면 된다. 한 일보다 할 일이 더 많은데, 쓰레기 줍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에 꽤 일을 많이 한 것 같다. ㅋ

그리고는

저녁에 M아저씨네 가서 JS형이랑 셋이 닭발 볶음이랑 술 마셨다. 이렇게 하루가 갔다. 내일은 옻닭 먹는날이다. 아침에 JS형이랑 옻나무 자르러 가기로 했다. 내일 할 일이 있는 하루하루가 즐겁다.기 보다는 나쁘지 않다. 

 

20130327 - 일도 안하고 먹었다


m아저씨네 하우스에 가서 잠깐 일했다. 고구마 묻어둔 자리에 활대 치고 그 위에 비닐 덮고 부직포 씌웠다. 대나무 활대가 인상적이었다.

아침은 js형네서 얻어 먹고 점심은 회관에서 개국 먹고 하우스 갔다 와서는 m아저씨네서 옻오리 먹었다. 술도 꽤 먹었다. 이렇게 먹어도 되나? 싶은 걸 보니 이렇게 먹으면 안될 것 같다.



20130330 - 강아지


생겼다. 샛말 어느 아저씨가 바닷가에서 키우던 팔 남매 중에 튼튼하게 생긴 암놈 한 마리를 데려왔다. 그게 어제다. 어제는 고구마 쪄주고, 된장찌개에 밥 말아주고, 설탕물 줬다. 처음부터 집 안에 들이면 나중에 밖에서 못 키운다고 해서 부엌 뒤꼍에 거처를 마련했다. 그리고 강아지 이름 지었다. 아내는 포비라고 부르고 나는 뽀비라고 부른다. 가족과 떨어져 나온 뽀비는 밤새 울었다. 서럽게도 울었다. 나랑 아내는 얼른 적응하라고 나가보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다. 사람 아이가 그렇게 울었으면 옆에 앉고 잤을텐데, 강아지한테 못할짓 하는 것 같았다.

오늘이 왔다. 강아지 값을 치렀다. 강아지는 그냥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를 어제 들었더랬다.

뽀비는 오늘도 사람이 안 보이면 낑낑대지만 어제보단 덜 낑낑댄다. 튼튼하고 강하게 자라다오. 밥은 굶기지 않을게. 그리고 추우니까 찬 바닥에서 울다가 졸지 말고 바닥에 옷 깔아 놓은 집에 들어가서 자라.



20130331 - 3월 정리


맛있었다. - 병어 튀김, 숭어회, 숭어껍데기 샤브샤브, 간재미 회, 망둥어 튀김, 옻오리

4월엔 좀 더 다채롭게 먹을 수 있겠다.

3월엔 - 많은 일이 있었다.

4월엔 - 생활비를 줄인다. 조개를 캐러 나가본다. 고구마 밭 비닐 걷고, 울타리를 친다. 집 뒷밭에 울타리를 친다. 표고버섯 종균 주입한다. 콩/팥/수수 종자를 확보한다. 눈개승마 씨를 발아시킨다.

모토 - 양적 농업보다는 질적 농업을 한다. 기록을 잘 한다. 너무 무리하게 일하지 않는다.  

걱정 - 금전적으로, 지금으로 괜찮을까?

AND

20130222 - 이사


이사했다.

어젯밤에 잠깐 짐을 쌌고 오늘 아침에 잠깐 차에 실었다.

외포리에서 순댓국을 먹었다. 먼저는 무척 맛있었는데, 오늘은 돼지 비린내가 났다. 순댓국을 사먹는 것은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먹었다. 이런 각오를 빈번하게 한다.

이삿배를 탔다. 갈매기들이 많이 울었다. 갈매기는 끼룩끼룩 날고 끼룩끼룩 운다. 내게도 한결같은 뭔가가 있다면 좋겠다.

새주소는 강화군 서도면 볼음도리 385번길이다. 옆집과 우리집 사이에 우물이 있는데, 옆집이 빈집이라 우물은 우리꺼다. 마을분들 얘기로는 그 물이 무척 좋단다. 지금은 이끼가 많이 꼈다. 틈날 때마다 물을 퍼주고 언제 날 잡아서 대대적으로 청소도 해야겠다. 그러고나면 우물물을 먹고 살 수 있다. - 어느 아저씨는 개구리가 오줌을 많이 싸서 좋은 물이라고 했다. -

우리집은 심야전기 보일러로 난방을 하는데, 겨울동안 아무도 쓰지 않았기 때문에 물을 채워야 한다. 그런데 수도가 얼어서 보일러에 물이 안 돌았다. 아저씨들 몇 분이 농협의 젊은 직원을 강제로 설득해서 대형 석유 난로를 우리집에 틀어주셨다. 하루만 틀어 놓으면 다 녹을거라고 하셨다. 처음엔 반신반의했는데, 수도가 하나씩 녹기 시작했다. 안마당의 수도, 부엌, 화장실 샤워기, 세탁기 더운물, 세탁기 찬물 순서대로 물이 나왔다. 와 신기하다. 그런데 화장실 물은 아직 안 내려간다. 화장실은 물이 아니라 다른 문제일 수도 있으니 내일 확인해 봐야겠다.

초지리 집은 나무 보일러가 나무를 너무 많이 먹었다. - 그 집의 화목보일러는 아무도 살지 않는 옆 방과 이어져 있다. - 그리고 천정이 너무 높아서 바닥은 따뜻해도 공기는 찼다. 볼음도에 이사온 첫날 우리 부부는 작은 전기장판을 깔고 딱 붙어서 자야한다. 바닥은 따뜻한데, 공기는 차다. 강화도에 와서 너무 춥게만 산다. 따뜻하게 자고 싶다. 역시 겨울보단 여름이다. 난방비 걱정을 안한다.

점심은 교회에서 저녁은 1리 이장님 - 이사용 트럭도 빌려주셨다. 감사합니다. - 댁에서 얻어먹었다. 호의는 그저 호의로 받으며 살아야지. 왜 우리에게 잘 해줄까?를 생각하는 건 좋지 않다. 내일 아침에 교회에 간다. 이장님 내외가 오라고 하셨다. 척사대회(擲柶大會 - 숟가락을 던진다.는 뜻으로 윷놀이 대회를 뜻한다.)를 한다. 왜 우리에게 잘 해줄까?를 생각하는 건 좋지 않다. 호의는 그저 호의로 받아야지.

인터넷을 설치했다. 이런 도서지역에 인터넷이 설치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너무 좋아.

지후에게 너무 고맙다. - 지금 추워서 잠바 입고 쪼그린 채 인터넷 하고 있다. -



20130223 - 어, 어, 어


내 이름은 어일운데, 어제랑 오늘이 어, 어, 어 하다가 갔다. 내일도 그럴까? 농사철이 아닌데도 하루종일 밭에서 일한것 마냥 피곤하다. 지금 엎드렸는데, 뒤돌아 누우면 바로 잠들겠다.

척사대회는 재미있었다. 상품을 걸고 남자대회 여자대회를 했다. 일등은 무려 전기밥솥이다. 마을 규모에 비해서 대회 규모가 크다. 대회가 벌어진 회관 앞에서는 돼지고기를 구워 먹고, 점심은 마을회관에서 먹고 중간중간 술도 먹었다. 전형적인 마을 잔치랄까? 전형적인 마을잔치 좋다.

대회가 끝나고 목사님이 기도를 마치고 사람들이 사라지고 우리도 집에 왔다.

어제 이사와서 집에서 한끼도 안 먹었다. 이 시간들이 얼른 지나가야 안정을 찾을텐데. 시간은 시간만이 해결해 주니까. 기다린다.

오늘들은 얘기 중에 '남의 인생이 우습게 보이면 자기 인생도 우습다는 거야'란 말을 새겨둔다.



20130224  - 교회


교회엘 갔다. 와 완전 적응 안돼. 교회 나간단 소리를 괜히했나 싶었다. 나는 괜찮아도 아내까지 말려들게 한것 같아 미안했다.
목사님은 세상을 살아가는 복을 바라느냐, 주님의 영광 바라느냐는 문제에 대해 한참을 얘기했다. 나는 세상을 살아가는 복을 바라기 때문에 오늘 교회에 간 것일텐데, 딱히 그런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을  정확히 말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휘둘린 결과다. 내 업보다. 

예배 시간엔 주님, 하나님이란 단어가 무척 많이 들린다 그리고 목사님이 뭐라 할 때마다 사람들이 아멘을 쏟아낸다. 그 아멘이 아, 네! 로 글려서 지후가 듣게 아네 라고 했더니 지후가 웃었다 기분이 좋았다. 아내가 웃으면 기분이 좋다. ^^*

봄은 아직인데 아직 보일러가 안돈다. 집안 화장실에 호스 연결이 안돼 있는데 집 바깥에 화장실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오늘 이사 후 첫 똥을 눴다. ^^*



20130225  - 명언


j 아저씨네 갔었다. 아침부터 소주를 한 잔 얻어 먹었다. 돈이 복이 되어 쏟아지라고 사진의 글씨를 적어서 붙여 놓으셨다. 아이디어 쩐다. 커피에 설탕을 넣지 않겠다는 p형에게 "당뇨도 아닌데 왜 설탕을 안 넣고 그냥 마시냐."는 명언을 남기셨다.



20130226  - 보일러 돈다


새벽에 깨서 이불 밖으로 발을 내밀었다. 내민 발을 바닥에 살포시 갖다댔다. 미지근하다. 어제는 똑같은 상황에서 얼음같이 차가운 장판에 발바닥이 놀랐더랬다. 아, 보일러 돈다. 이제 살았다. 머리도 감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다 잠들었다. 동네 분들이 보일러에 대해서 이런저런 조언들을 해주셨지만 본인이 사는 집도 아니고 보일러 전문가도 아닌 관계로 100% 해결이 되지 않았다. 보일러 AS센터에 전화했더니 강화도 대리점의 아저씨와 연결해줬다. 아저씨의 원격지시에 따랐더니 결국 밤사이에 보일러가 돌았다. 이런것이 직업이다.

오늘은 표고버섯 키울 참나무를 잘랐다. 표고목은 겨울이 올 때, 잘라놓고 잘 말려두는 것이 가장 좋지만 봄이 와서 나무에 물이 오르기 전에 자르는 것도 대세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고 한다. 표고버섯은 내가 꼭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품목은 아니지만 일단 시작은 한 것이니 내일부터 공부해야겠다. 아내가 버섯을 좋아하니까 상업적으로 재배하지 않더라도 배워두면 좋겠다. 강화산림조합에 전화해서 버섯종균도 주문했다. 한 상자(20판)에 7만원이다. 1판으로 1미터 크기의 표고목 10개 정도를 커버한다고 한다. 나무 자르는 일에 꼬박 하루를 더 투입해야 원하는 만큼의 표고목을 준비할 수 있겠다.

비가 왔다. 오후엔 안갯속에 비가 흩날렸다. 동네가 예뻤다. 



20130228  - 부정적인 마음


오늘도 참나무 잘랐다. o형님이 자르면 내가 정리하는 식이다. 200개가 필요한데 거의 다 했다. 나는 내일 오전에 강화에 가야해서 내일은 o형님 혼자 일하게 됐다. - 죄송합니다.

저녁엔 교회에 갔다. 삼박사일짜리 부흥회의 마지막 밤이었다. 낮에 동네에서 마주친 동네분들이 부흥회에 왜 안오냐고 했다. 애초에 오늘은 가려고 했었다. 근데 막상 갔더니 괜히 갔단 생각이 들었다. 옆에 앉은 아내에게 무척 미안했다. 외부 교회에서 온 목사님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전도하라고 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 부정적인 얘기들도 했다. 여튼 영 이질적이고 맘에 안 들었다. 앞으론 교회에 가지 않기로 했다. 동네분들과의 화합도 중요하지만 귀농해서까지 마음 생기지 않는 일을 할 필요가 없다.

밤에는 지후가 여기서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넌 여기 평생 살려고 왔어? 라며 부정적인 얘기를 해서 살짝 빡쳤다. 왜 그런 얘길 하는지 이해는 가지만 이사온 지 일주일도 안 됐다.

아직은 모든것이 어설프다. 그래서 걱정도 많겠지. 나도 걱정이 많은데, 아내는 더 하겠지. 에효.


AND



너를 닮은 새를 봤다
작년에도 이맘때 같은 새를 봤다
너는 내 곁에 없다
작년에도 너는 내 곁에 없었다
작은 새는 총총거리며 콘크리트 마당을 노닌다
작은 새는 꼬리를 위 아래로 흔들며 나와 눈이 마주치기도 한다
너는 내 곁에 없다
너는 내 곁에 없을 것이다
작은 새는 벌레를 잡아서 어딘가로 날아간다
집으로 가나보다
나는 집이 없고
너는 내 곁에 없다
작은 새는 돌아오지 않았다
죽은 새는 말이 없다
너는 영원히 내 곁에 없고
나는 그 시간만큼 아무말이 없다

 

AND

 12일에 엄마 생일 축하 겸 오산에 간 걸 시작으로 어제 저녁 친구 결혼식까지 2박 3일 수도권 일정을 마쳤다. 피곤하네.

 13일에 아버지랑 뼈해장국 먹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아버지는 뼈에서 살을 발라내는 일이 서툴다. 먹는 일에 절차가 포함되는 건 - 아내 말로는 복잡한 건 - 가급적 안 먹던가 내가 많이 도와드리거나 해야겠다. 14일에는 짬뽕 먹었다. 섭이라고 하나? 통칭 홍합이라 부르는 것이 한 그릇에 네 개 뿐이라 아버지가 뼈해장국 보다는 수월하게 먹었다. 오랜만에 먹으니 맛있다고 해서 기분 좋았다. 아버지는 혼자 식당에서 밥을 먹지 않는다.(못한다.) 13일 저녁에 동네 친구들하고 술 먹고 14일 오전에는 아버지 침대에 누워서 쉬었다. 침대에 누워서 아버지 뭐 하시나 좀 살펴보니 중간중간 어떤 메모들을 하고 그걸 제외하면 그냥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아버지의 시간을 생각해본다. 시간 개념이 사라져 가는 사람의 시간. 달력과 시계 보는 법이 헷갈리는 사람의 시간. TV리모콘을 잘 못 다루시길래 볼륨과 채널 컨트롤을 한 참 알려줬지만 아버지는 계속 이게 뭔지를 물었다. 어떤 때는 본능적으로 채널을 돌리고 그게 안될 때는 그냥 틀어져 있는 채널을 틀어놓는 듯하다. TV가 틀어져 있어도 TV를 보는 것은 아니고 실수로 셋톱박스라도 끄면 티비를 못 보는 실정이다. 지갑에 돈이 있었으면 하시길래 13일에 돈 10만원 찾아서 넣어드렸다. 14일에 몇 번이고 돈이 없다고 말하길래 나도 몇 번이고 어제 돈 찾았기 때문에 지갑에 돈이 있다고 말해줬다. 위암 수술 영향인지 63~65kg정도 나가던 체중이 60kg으로 줄었다. 데이케어 센터에서 먹는 것 말고 따로 뭘 챙겨 드시는 것 같진 않다. 많이 먹어서 좋을 건 없다. 12일에 엄마집에 갔다가 동생 아이들을 오랜만에 봤는데, 8살 먹은 큰 조카 아이랑 아버지는 어설프게 몸 쓰는게 비슷하다. 다만 조카 아이는 점점 제 몸을 잘 컨트롤 하게 되겠지. 엄마, 이모, 내가 자꾸 반복해서 아침에 샤워하라는 얘기를 하니까 아침에 샤워를 하게 됐다. 그 동안은 샤워 꼭지로 물이 나오게 하는 법을 몰라서 샤워를 못한것 같다. 해서 물을 틀면 샤워 꼭지로만 물이 나오게 조치했다. 뼈해장국의 뼈를 잘 못 발라드시는 거, 티비 리모콘을 잘 못 다루는 거랑 같은 맥락이다. 아버지는 앞으로 점점 더 많은 일들에 도움이 필요하다.

 내일 아버지 병원 가는 날이다. 엄마가 간다고 한다. 데이케어센터에 약을 전달하는 일도 엄마가 해주기로 했다. 전처가 치매약을 데이케어센터에 전달해주는 모양새가 내가 보기에는 좋지 않다. 막상 엄마는 그런일이 아무렇지 않을수도 있다. 가급적 아버지 치매 진행을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은 엄마가 힘들면 안된다는 내 마음이다. 엄마는 내가 힘들면 안되고 나는 엄마가 힘들면 안된다. 사랑이다. 1957년 음력 3월 25일이 엄마 생일이다. 12일에 내가 만든 생일축하 노래 불러줬는데, 엄마가 좋아했다. 아버지 거처를 강릉으로 옮기는 문제가 계속 머릿속에 있는데, 이번에도 내 뜻을 관철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언젠간 아버지는 내가 사는 지역으로 오긴 해야한다. 아직까지 길을 잃어버리진 않으니까 느긋하게 생각하기로 한다.

 어제 친구 결혼식에서 축가 불렀다. 사랑도 건강해야 한다. 건강하게 사랑하라고 방명록에 적었다. 대학 동기들 선후배들 잔뜩 만났다. 살아있으니 다시 만나게 되서 반가웠다. 다들 군데군데 아프고 많이 늙었다. 74년생 동기 Y형 딸아이가 너무 예뻤는데, 그 아이가 결혼식 후에 노래 아저씨랑 사진 찍는다고 해서 최근 들어 가장 기뻤다. 내 폰으로도 한장 찍고 아이 엄마 폰으로도 한장 찍었다. 박제해 둬야겠다. 이쁜 애들은 기쁨을 준다. 동생 가족도 엄마집의 작은방에 이불 깔아놓고 자기들끼리 꽁냥꽁냥 잘 놀더라. 그런게 동생이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겠지. 

 살아있으니 만나게 되고 살아있으면 다들 살아간다. 이건 체념의 일종은 아니다. 나는 살아 있다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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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시 30분에 아버지랑 통화, 7시에 아버지랑 통화, 9시 10분에 아버지랑 통화했다. 아내가 엄마한테 용돈 보내고 메세지도 보냈다고 하길래 11시에 엄마랑 통화했다. 점심 먹고 아내에게 어머니랑 통화했나 물었더니 통화했다고 하길래 13시에 어머님과 통화하고 바로 아버님과 통화했다. 아버지랑은 매일 통화하고, 엄마 목소리는 일주일에 세 번 이상 듣는다. 아버님과도 가끔 통화하는데 이상하게 어머님께는 선뜻 먼저 전화하게 되지 않는다. 어머님은 어떤 쿨함을 갖고 있는데, 이를테면 오늘 오랜만에 목소리 듣는 사위에게 '사는게 쉽질 않네.' '너네들 잘 살고만 있으면 연락 자주 안해도 돼.' 같은 멘트를 던지셨다. 일년에 한 두 번 가족 외식을 하게 되는데, 그때 내가 잘 먹는 사람이란 걸 아시고 '어서방 많이 먹어.' 하실 때도 좋다. 어머님은 아내 오빠가 아파서 병간호차 광양에 내려가 계시는데, 나는 아내 오빠보다 어머님 무릎이 더 걱정이다. 아버님께 어머님과 통화했다 했더니 '안 그렇다고 말은 해도 자식들이 먼저 전화하고 그러는 걸 어른들이 좋아한다' 며 무척 좋아하셨다. 장모님이 내 목소리 듣고 '우리딸 잘 사는구만' 생각하셨길. 

 다음주에 엄마 생일이고 다음달 초에 어머님 생일이다. 어머님 생일은 70세 생일이다. 예전에는 60세만 되도 60갑자가 돌아왔다고 회갑이라 하며 축하했다. 우리 엄마도 어머님도 한 바퀴를 살았다. 엄마들의 삶은 다 살고 추가로 살고 있는 느낌은 아닌데, 치매에 걸린 아버지는 치매 걸린 이후로는 추가로 살고 있다는 느낌이다. 주변에 갑자기 죽는 사람도 많고 부모님이 치매인 사람도 많다. 이런 시대를 신문물 받아들이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AI도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나보다 더 내가 만든 것 같은 노래를 만드는 AI를 나보다 더 나처럼 글을 쓰는 AI를 나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AI가 창작영역을 다 씹어먹게 되지 않을까 요즘 가끔 생각해본다. 그렇게 되기 전에 뭘 많이 쓰고 노래를 많이 만들어 놔야겠다. 이세돌이 알파고랑 바둑 두고나서 바둑계를 은퇴한 일도 자꾸 생각난다. 이세돌은 정점에 도달해보기라도 했다. 나는? 

 지난주에 똑같은 돼지꿈을 연달에 꾸었기에 복권을 두 장 샀는데 당첨 안됐다. 지난 주에 술 두 번 마셨는데, 두 번 다 내가 술값을 안냈다. 어제랑 오늘은 출근이 급한데 배터리 문제로 긴급출동 불러서 차 시동 걸었다. 오늘 출근길에는 쓰레기 수거하는 차 옆을 지나는데, 뭔가 튀어서 조수석 빽미러가 깨졌다. 마침 카센타 사장님은 서울에 가 있다고 했다. 짜증이 차올랐지만 별일 아니란 생각에 금방 사라졌다. 깨진 것은 길조인가? 복권을 사던가 술 한 잔 얻어 먹어야겠네.

 물욕이 거의 없는 편인데, 요즘은 자꾸 돈이 갖고 싶고. 돈 생기면 친구 빚 갚아주고 집이랑 차 사고 싶다. 그래서 복권을 산다. 나이 40이 넘어서야 보편적인 욕망을 생각하게 됐다. 뻔히 들여다보이게 본인 잇속만 챙기는 사람은 여전히 싫다. 오직 나를 중심으로 내 이익만을 생각하며 앞으로 어떻게 어떻게 할 거라고 술 취해서 떠들고 있는 내 모습을 가끔 본다. 실제로 그렇게 하지 않겠지만 세속에 쩌든 얘기를 알심히 떠드는 내 모습이 한심할 때가 있다.

 물욕이 없는 점은 아버지를 닮았다. 아버지는 지난주에 평소보다 더 많이 횡설수설했고 오늘아침에도 세 번 통화 중에 두 번은 횡설수설했다. 횡설수설하는 걸 닮으면 안되는데. 할아버지 돌아가시기 6개월 전에 봤을 때 아랫목 이부자리에 누워서 병치레 하시면서 무어라무어라 중얼거리시던 게 생각난다. 오늘은 어버이 날이고 부모 자식은 발가락과 콧구멍이 닮는 것 뿐 아니라 늙어 횡설수설하게 되는 일로도 대를 잇는다. 그나마 아버지 치매는 최선으로 둔화되고 있다. 

 부모님 네 분과 통화하고 뭔가 효도한 거 같은 날에 이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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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

물에 잠긴 징검다리에서 아이가 실종되고
사람들은 빗속에서 아이 이름을 불렀다
새들은 다리 아래 숨어서 울었고
어떤 물고기들은 다리 위에서 살고자 펄떡 거렸다
아이는 집에 있었고
머리 위 창문을 흐르는 비를 바라보며
밤새 혼자 엄마를 기다렸다
아이는 울지 않았다
엄마는 아이를 모질게 때렸다
사람들은 안도했고 아이는 울지 않았다
엄마는 아이에게 라면을 끓여줬고
집에는 쌀이 없었다
다음 태풍에 동네는 비에 잠겼다
엄마는 울었고 아이는 울지 않았다
올림픽도 시위대도 없었던 잊혀진 그 여름의 끝에
물이 빠져 갈비뼈처럼 앙상하게 드러난 징검다리 주변에서
아이들은 개구리를 죽이며 놀았고
나는 끝내 울지 않았다

AND




봄에 파묻혔다
솟아 오르고 피어 오르는
어린 잎과 꽃 향기에

멀리서 불어온 바람이 머리 위를 지난다
그 소리만 들어도 신나고 좋다
신나게 놀고 싶은데
봄에 파묻혀서 빠져나갈 수가 없다

함께 신난 사람이 옆에 없다
이런 내가 가엽진 않다

봄의 바깥으로 머리를 들이밀며
다음 계절을 기다린다

나도 불쑥 솟아 오르기를
언젠가 피어 오를 당신을 기다린다

AND

오늘은 반짝반짝 날이야
햇살이 반짝
나뭇잎이 반짝
민들레가 반짝
개미들도 반짝
너도 반짝
나도 반짝
반짝반짝
살아있는 날이야
달이 반짝
별이 반짝
발걸음이 반짝
밤공기도 반짝
너도 반짝
나도 반짝
그리고
넌 나의 반쪽

AND

 지난 토요일 저녁에 아버지랑 순댓국 먹었다. 보통은 아버지만 특을 시켜드렸는데, 나도 특 시켜 먹었다. '특' 이란 말에 자꾸 의미를 부여하는 게 웃기지만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라 그런걸로 치기로 했다. 배부르면 다 먹지 않아도 된다고 했더니 아버지가 남겼다. 아버지가 순댓국 남긴 거 처음 봤다. 아직까지 위암 수술의 여파가 남아 있다고 봐야겠지. 혼자서는 순댓국을 못 사 먹게 된 아버지. 앞으로는 아버지 만나면 메뉴 고민하지 않고 무조건 순댓국 먹는 걸로 정했다. 아버지가 페브리즈를 손에 분사해서 화장품 처럼 얼굴에 바르길래 그러면 안된다고 몇 번이고 말했다. 아버지가 본인 몇 살이지 나한테 물어봤다. 아버지가 나한테 고맙다고 했다. - 살짝 눈물이 났다. - 아버지랑 같이 있으면 아버지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건지 많이 들으려고 한다. 아버지랑 프로축구 울산vs포항 후반전을 TV 중계로 봤다. 게임은 명승부였는데, 아버지는 TV화면에 전혀 집중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세탁기를 못 돌리는 사람이 됐다. 예전에 동생 와이셔츠 다려주던 아버지 모습이 생각난다. 일요일에 드시라고 전복죽을 사 놓고 갔는데,  아버지는 먹지 않았다. - 못했다. -  
 
 아버지랑 헤어지고 엄마집에 왔다. 다 커버린 아기새가 늙은 어미새와 아비새 둥지를 번갈아 방문하는 모양새다. 엄마는 본인은 잘 살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진짜 잘 사는 거 맞나? 엄마에게는 오산에서 살면서 형성한 엄마만의 세계가 있긴 하다. 엄마가 딸기 갈아줬다. 엄마가 끓여놓은 김치찌개랑 밥을 먹었다. 엄마가 김치를 싸줬다. 김치 싸주면서 김이랑 깡통햄도 같이 줬다. 나는 아버지를 챙기는데, 엄마는 여전히 자식들을 챙기고 있네. 어미새는 늙어서도 아기새를 돌본다. 아버지도 아버지지만 엄마를 잊으면 안된다. 우리집에서 엄마집까지 210km, 별 것 아닌 거리다. 엄마를 자주 봐야겠다. 엄마랑 둘이 여행가는 프로젝트는 마음속에 항상 살아 있다. 
 
 곧 장모님 70세 생일이다. 장모님의 아기새는 요즘 울적하다. 나도 울적한지 오래됐다. 다 잘 될거라고 하니까 나의 작은새가 웃었다. 그래서 나도 웃었다. 그 웃음으로 내가 산다. 장인어른이 나한테 전화 안한지 좀 됐다. 굿. 각자 본인 부모님 챙기면서 사는게 결혼생활이겠거니 한다.
 
 3월에 좀 덥더니 어느덧 날씨가 제자리를 찾았다. 출퇴근길과 현장에서 봄을 맞아 요동치는 산과 나무를 본다. 예쁘다. 4월에게 자리를 내주는 중이지만 여전히 계절의 여왕은 5월이다. 그러니까 아직까지는 괜찮다. 자꾸 괜찮다고 하는 글을 쓰고 있는 나를 안다. 다 잘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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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밤

강 건너
시작하는 연둣빛 버드나무 이파리 뒤로
붉은 꼬치구이 술집 간판 보인다
징검 다릴 건너 그곳에 가서
오래된 주인 아주머닐 만날까
바다쪽으로 내리 걸으면 그리운 집인데
정작 내 발걸음은 강물을 역행하고
무심코 들여다본 강물엔 흔한 내가 흔들린다
미풍에 실려 바람의 끝에 닿고
그곳에서 또 다른 바람에 실려 가기를 반복하면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모든게 거짓이었던 것처럼
꿈이었던 것처럼
마치 아무일도 없았던 것처럼
운동화 위에 작은 나뭇잎 하나 떨어지고
빌걸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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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끈한 토요일 오후, 친구 가게에 앉아서 아버지 데이케어센터에서 돌아오는 거 기다리면서 쓴다.

 어제 서울 왔다. 어제 친구한테 차 보여주고 - 좋은 가격에 잘 샀다고 함 - 오늘 저녁에 아버지랑 순댓국 먹고 - 이버지 얼굴 본지가 좀 됐고 토요일 저녁부터 일요일까지가 아버지가 혼자 있는 시간이라 일요일에 혼자 먹을 죽과 빵을 사 놓으려고 한다. - 밤에는 엄마한테 가서 이런저런 얘기 좀 하다가 내일 아침에 강릉으로 출발하는 작전이다. 아직까진 순조롭다.

 어제는 동네 친구들이랑 저녁 먹었다. 집에서 아내와 별 대화가 없는게 40대 중후반 기혼 남자의 보통인가, 생각했다. 건스짱은 현장을 강릉으로 옮기려고 한다고 하면서 '그래야 너라도 보지' 라고 했다. 그 말이 마음속에 울린다. 만날 친구도 별로 없는게 40대 중후반 기혼 남자의 보통인가. 나도 너라도 보고 너도 나라도 보고 그런게 친구 사이겠지. 강릉에 대학 동창이 한 명 있어서 가끔 얼굴 보는게 나한테 위로가 된다. 그 친구도 그럴거다. 애들이라도 자주 보게 다시 서울 살면 어떨까 생각도 해봤지만 부질없는 생각인 걸 안다.

 내가 간다고 했더니 아버지가 들뜬 목소리로 추임새까지 넣어가면서 오랜만에 본다고 말한게 좋았다. 아버지는 아직 나를 잊지 않았고 나를 반겨주는 사람이다.

 오늘 강릉에선 6촌 형(얼굴본지 오래됨) 큰 아이 - 7촌 조카(애기때 얼굴보고 못 봄) - 결혼식이 있고 화성시에선 이종사촌 동생 결혼식이 있다. 5월 14일엔 친구가 결혼한다. 이런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모르겠지만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이런 세상에서 다들 사랑도 하고 결혼도 하는 게 신기하다. 내가 결혼해서 사는 것도 마찬가지고. 어떤 세상에 살더라도 사랑이 있는 한은 희망이 있고 전성기라 부를 수 있는 것 같다.

 아침에 일찍 깨서 서서울 호수공원을 한바퀴 돌았다. 공원안에 식물들이 다 이뻤고 미루나무가 특히 이뻤다. 나에게는 아내를 포함한 직계 가족과 식물에 대한 사랑이 있구나 생각했다. 그러니까 다 텅 비어버린 것 같고 다 잘못되거는 것 같아도 핏속 어딘가에는 뭔지 모를 희망이 있다.

 아버지 전기요금 계좌이체하고 핸드폰 충전기 잘 되는 거 확인했다. 이제 순댓국 잘 먹는것만 확인하면 되겠네. 이렇게 쓰고 나니까 한결 가벼워졌다.

서서울 호수공원 미루나무. 포지션의 동명 노래를 흥얼거림. 노래가 나왔던 드라마에서 엄정화가 연기를 참 잘했던 게 기억남.

 

AND

 어제 강릉에 불 났다. 산에서 시작했으니 산불이라고 하나보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국유림관리소 산불 담당자였다. 정선은 산불이 자주 나지 않지만 소소하게 산불이 발생하고 동해안 쪽 대형산불 지원을 포함해서 현장에 많이 갔다. - 담당자니까 당연하겠지. - 처음 산불 현장에 갔을 때, 말로만 듣던 산불을 직접 보는 것에 대한 신기함이 있었는데 그때 한 번 뿐이었다. 직업인 입장에서는 산불현장에 가면 울화가 치민다. 힘든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무들 타는 걸 보면 속이 상하다. 잿더미인 산을 보면 윗줄과 다른 종류의 울화가 치민다. 세상이 끝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뭐 여튼 그렇다. 어제 산불은 건물을 많이 태웠다. 터전이 타버린 사람들은 이루고자 했거나 이루었던 모든 것이 한 번에 무너진 느낌이겠지. 전쟁의 결과가 그러할 것이다. 아직 살면서 그런 느낌을 받아본 적은 없으니 다행인걸까? 언젠가 내게도 모든 게 무너지는 날이 올까? 다들 그러지 않으려고 사는 것이다. 

 아버지는 본인이 무너진 걸 모르는 채 무너져버렸다. 그건 불행 중 다행인건가? 어제 아버지 친구가 대전에서 아버지를 찾아왔다. 핸드폰 충전하는 법을 잊어서 수시로 전화기가 꺼져있는 아버지 핸드폰 통화목록이나 카톡 대화창에 그 친구분 이름을 많이 봤다. 엄마한테 물어보니 예전에는 한 동네 살아서 자주 만났던 친한 사이라고 했다. 아버지 친구는 아버지가 요양병원 같은 곳에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면회라는 단어를 썼고 내가 그런게 아니라고 알려줬다. 아버지의 얘기에 따르면 데이케어센터에서 아버지를 데리고 나와서 같이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한 걸로 추정된다. 아버지는 친구랑 저녁도 잘 먹고 호수공원에서 산책했다는 얘기를 어제 네 번 오늘 아침에 두 번 했다. 그만큼 좋았단 얘기겠지. 아버지를 찾아 주셔서 고맙다고 했더니 니가 더 고맙다고 했다. 고맙단 말 오랜만에 들었다. 그 말이 말이 위로가 됐다. 고맙단 말을 위로의 말로 등록해둔다. 출근길에 데이케어센터에서 전화가 와서 아버지 전화기가 꺼진걸 알았다. 다행히 센터 직원이 출근하다가 시장통에 있는 아버지를 발견해서 같이 센터에 왔다고 한다. 그러지 않았더라도 아버지 혼자 센터에 찾아갔을 것이다. - 집에서 센터까지 100미터 안됨. - 길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만해도 정말 다행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조금은 맘 편하게 강릉에서 아버지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전세 계약기간 종료되는 10월에는 강릉으로 옮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 엄마가 반대하더라도. - 

 비가 내리지 않았으면 강릉 전체가 쑥대밭이 됐을수도 있다. 자연 앞에 선 인간의 나약함을 항상 생각하면서 살려고는 하는데,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들 때문에 그 사실을 자주 잊는다. 오늘 원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은 저녁식사 자리에 희생양으로 가게 되서 기분이 안 좋은 찰나에 가지 끝에서 새로 시작하는 층층나무 잎을 봐서 고맙다는 말 만큼이나 위로가 됐다.

20220412 시작하는 층층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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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얘기 빼고 써보려고 한다. - 동생한테 토요일에 아버지 만나서 순댓국 먹으라 했고 미션 수행이 잘 됐다. - 
 
 지난 금요일에 태백에 다녀왔다. 친구를 만났다. 인생에 공유한 것은 별로 없지만 대화의 합이 잘 맞는 친구다. 내 일기를 좋아해 주는 친구다. 내가 더 많은 말을 하게 되고 그 친구는 대꾸를 잘 해주는 것 뿐인지도 모른다. 뭐가 됐든 태백에 친구가 있다는 게 좋다.
 
 수도권 제외하고 많은 곳이 그렇지만 태백은 쇠락을 대표하는 도시다. 폐광 후에 급감해버린 인구수가 원인이다. 10년 전만해도 쇠락했거나 쇠락해가는 도시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충남 서천 장항읍, 태백 황지동이 우선으로 떠오른다. 한 때 전성기를 구가했으나 지금은 황량한 거리 위 빈 건물들 사이로 무심한 바람이 지나는 그런 동네들. 사멸하는 것은 아름답다는 인식 때문에 그런 마음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마모되어 사멸 또는 소멸하는 것은 여전히 아름답지만 지금 마음은 그 동네에 살고 싶지는 않다.  
 
 마이클잭슨(또는 마이클 조던)처럼 예외적인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어느 분야든 전성기는 짧다고 생각한다. 가수들은 음반 3장 연속으로 히트하기가 어렵고, 시인이나 소설가도 마찬가지다. 지속적으로 작품이 히트를 하더라도 그 작품이 그 사람의 정점에 있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다. 정점 이후에는 익숙함과 완숙함이 있다. 아이유의 노랫말도 - 아이유 가사를 너무 잘 씀 - 최전성기에서 내려오는 날이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영리한 사람들은 적절한 시점에 은퇴를 택하기도 한다. 이건 유명세를 한 번이라도 떨친 사람들 얘기고, 세상에는 원히트원더 가수가 꿈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 전성기는 언제 오나? 어느 분야에서? 이미 지났나? 애초에 올 일이 없나? 헛된 바람인가? 나는 왜 이름을 떨치려고 하나? 나는 왜 사람들을 만나면 정점에서 내려오는 얘기를 하나? 
 
 벚꽃지고 나면 튤립 핀다는 걸 알기에 어제 아내랑 수목원에 갔다. 절정을 보기 위해서. 햇빛을 받은 튤립은 쳐다보기 힘들 정도로 반짝거리고 벚나무에는 곧 열매가 달리겠지만 바람불면 열매든 꽃이든 다 떨어지는 게 인생이다. 나무나 꽃이나 사람이나 한 번 왔다 간다는 건 똑같다.
 
 영화판에 미련을 두고 있지만 확실한 크레딧이 없는 친구들을 본다. 그 친구들에게는 지금은 세상이 많이 변해서 40대 중반이 되어도 이름을 떨칠 희망이 있다는 얘기를 해준다. 그 얘기가 나한테 하는 얘기란 걸 이 글을 쓰면서 깨닫는다. 
 
 AI가 글을 쓰는 세상에 내가 쓰는 글이 기록 말고 다른 의미가 있을까?
 
 그래도 내 일기를 좋아하는 확실한 한 명이 있다. 사실은 그거면 족하다.
 
 올해도 강릉은 봄바람이 거세다. 내년에도 삶과 마음이 꺽이지 않아서 봄바람이 거세다고 쓸 수 있었으면 한다.
솔향 수목원 튤립 20230409
AND

그는​

그는 대학 졸업 후에 바로 공기업에 입사했고
게임, 영화, 사진 같은 취미가 유행따라 있었고 
중산층 소리를 듣고 살았다
스스로 이 정도면 잘 사는 거라고 생각했으나 
46살이 되던 해에 심정지로 죽었다
장례식장엔 직장 동료와 친구들이 많았다
갑자기 그럴 수 있는 나이라고 얘기하며 국밥을 먹은 친구들 중에 둘이 같은 해에 죽었다
아내와 두 딸, 약간의 재산 혹은 대출과 사망 보험금이 남았다
그의 이름이 들어간 통장과 주식잔고는 정리됐지만
이메일과 SNS 계정은 여전히 살아 있다
그가 없이도 세상은 실체로 굴러가고 
그의 이름은 실체도 없이 세상에 뒤섞여 있다
잊혀진 후에도
 

 

> 갑자기 죽는 일을 자주 생각한다. 2023년 4월.

AND

전원

전원이 꺼져있는
아버지의 전화기
아버지의 머릿속
아직은 꺼지지 않은
아버지에 대한 마음

AND

얼룩말과 치킨

얼룩말을 봤다
주택가 골목에서
치킨 배달을 마치고
오토바이에 앉아서
눈이 마주쳤다
얼룩말이 울었다
얼룩말은 유유히 사라졌다
흰색과 검은색
내 삶에 두 줄을 새기고
결국 붙잡혀서 동물원으로 돌아갔다
나는 태연히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와 치킨을 먹었다
후라이드와 양념
닭은 두 줄을 남기고 죽었다
사람들이 얼룩말을 응원한다는 뉴스를 보면서
죽은 닭을 생각했다
나도 얼룩말도 SNS를 안한다
나도 얼룩말도 외롭다
나도 얼룩말도 살아있다

AND

춘분 무렵

정이드니 꽃이 피네 술집이 가게 이름처럼 활발히 영업중이다
초등학교 교문 너머 오래된 히말라야시다 나무 아래 아이들 웃음소리 맴돈다 
저수지 둘레 산책로에선 올해도 개구리 울음 소리 들리고
바다와 이어진 강 끝에선 어부가 익숙한 태로 그물을 던진다
볕 좋은 골목 끝에 나란히 앉은 노인들의 표정이 온화하다
그 노인들에게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는 내 마음도 푸근하다
작년 봄 담장 너머에서 나를 반기던 그 개가 살아 있어서 기쁜 날이다
다들 살아있으니 좋은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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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에 브루스 윌리스가 알츠하이머란 뉴스를 접했고 디즈니플러스에서 다이하드 1편을 봤다. 다이하드는 1편이 제일 재미있다. 브루스윌리스의 첫 장편영화 주연작이고 감독은 존 맥티어넌이다. 시트콤 프렌즈에서 조이가 좋아했던 영화다. 이런 정보들이 아직은 내 머릿속에 있다. 언젠간 사라지겠지만. 

 오늘 아침에는 부르스 윌리스 생일 파티 뉴스를 봤다. 69세라고 한다. 미국나이는 만 나이고 우리 아버지는 만으로 70세다. 아버지 치매 시작이 2년 전이라 치면 둘 다 이른 나이에 치매가 왔다. 치매는 사람을 가려서 오지 않는다. 브루스 윌리스 기사에는 '초점 잃은 눈' 이라고 하면서 몇 장의 사진이 붙었다. 우리 아버지 눈빛도 그러하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아버지 삶인가, 생각한다. 요즘들어 더 자주. 부쩍 자주.

 아버지 목소리 듣고 나면 항상 울적해짐. 하루에 세 번 통화하니까 하루에 세 번 기본으로 울적해짐. 본인이 다 괜찮다고 먼저 말하기도 하고 내가 잘되고 있냐 물으면 그렇다고 해도 나는 안 괜찮다. 왜 내가 안 괜찮은지 모르겠다. 아내는 힘들면 얘기하라고 하는데, 뭐가 힘든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괜찮다고 한다. 아버지가 나에게 다 괜찮다고 하는 것과 비슷한 경우다. 이런 경향도 유전자 때문이라 생각한다. 엄마 빼고 아내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이 물어보면 힘들다고 해야겠다.

 아버지 혈압이 너무 낮다고 데이케어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어제 아침 통화할 때 아버지가 코피가 났다고 했다. 아버지는 코피가 자주 난다. '노인 저혈압과 코피' 같은 걸 검색해보지만 소용없다. 금요일에 서울가서 아버지 혈압약 처방해주는 의사 선생님 만나볼까 싶다. 

 고혈압이라 혈압약을 먹는데, 최고 혈압이 너무 낮고 위암 수술을 받은 이후로 체중이 빠지고 있는 치매 3년차 노인. 이게 현재 우리 아버지다.

 뭔가 쓸쓸하네. 답답해서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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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20일이네. 올해가 점점, 다 갔다.

 지난 금요일에 회사 하루 쉬었다. 너무 피곤해서. 주말에 산불근무 한 걸로 평일에 쉴 수 있는, 당연하지만 누구나 다 누리지는 못하는 좋은 시스템이고 괜찮은 회사다. 오랜만에 노래를 하나 만들었고 운동을 했고 은행에 다녀왔다. 단골 커피숍 사장님이 코로나 때보다 더 어렵다는 얘기를 했고 나는 어려울 때일수록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 이게 진심이란 게 현재 내 문제다. - 그런 때일수록 버티라는 위로의 말을 들었다. 고맙습니다. 이때까지 순조로웠다. 오후 늦게 친구 만나러 태백에 올라가다가 교통사고가 났다. 아버지 압박에서 벗어나서 일상으로 돌아온 첫 주 금요일에. 일상이 다시 깨졌고 울화가 치밀었다. 사고란 게 항상 그렇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허리에 약간의 충격이 있지만 나는 괜찮다. 상대 운전자도 멀쩡하게 돌아다녔기 때문에 크게 다친게 아니면 좋겠다. 내가 뒤에서 받았기 때문에 상대 운전자에게 괜찮냐고, 진심으로 물어봤고 이후에는 보험회사에서 알아서 처리했다. 편리한 시스템이다. 다만 차는 엉망이 됐다. 내 마음처럼.

 사고 나고 앞차가 길 옆에 차 세우고 운전자 멀쩡하게 내리는 거 보자마자 폐차와 차를 새로 구하는 일과 그 비용을 생각했다. 이게 현실이다. 감당할 수는 있지만 귀찮은 현실, 보편적인 욕망을 사는 사람의 마음. 다친 사람 없으니 괜찮다는 평범한 위로의 말을 듣고 마음이 풀리는 일.

 최근에 아내에게 보편적인 욕망이란 얘기를 했다. 어느 취한날 밤의 메모에는 신랑 마음도 모르고…라고 적었길래 바로 지웠다. 말을 해도 모르는데, 말도 안하는 남의 마음을 어떻게 알겠나. 내 집을 갖고 싶고 기왕이면 그 집이 좋은 집이면 좋겠고 새차 사고 싶고 비싸고 맛있는 것 먹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 복권에 당첨됐으면 좋겠는 마음. 그게 내가 생각하는 보편적인 욕망이다. - 20대 초반에 동생이 아파트에 살아보는 게 꿈이라고 한 적도 있다. - 돈을 많이 벌거나 부자가 되기 위한 노력은 나에게도 없지만 아내는 애초에 그런 욕망이 부족하다. 이렇게 살아선 강릉에선 집을 사기도 편안한 마음으로 살기도 어려울 것 같아서 아내에게 동료들이나 친구들에게 전남(순천, 목포, 여수)에 가서 살고 싶다는 얘기를 많이 하고 다닌다. 이건 보편에서 시작한 나의 개별적인 욕망이고 이쪽이 복권 당첨보다는 실현성이 높다. 사고 나고 레카차랑 보험회사 직원 오는 거 기다리는 동안 강원도에서의 운을 다 썼나,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것 자체가 삶이 들떠 어지럽기 때문이다. 차분하지 못한 이유에 아버지 비중이 크지만 그게 다 아버지 때문은 아니다

 그랬더라면, 하는 마음은 일이 잘못됐을 때만 든다. 주유소에 들르지 않았더라면 태백에 가기로 하지 않았더라면 미용실 예약에 빈 자리가 있었더라면 엄마한테 보낼 택배 보내러 다녀왔더라면, 휴가를 쓰지 않았더라면 하면서 후회가 시간 역순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내가 살아있다는 게 좋기 때문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까지는 가지 않는다. 보통은 다 그렇지 않을까?

 친구한테 몸 구석구석 짜증이 박혀있다고 했더니 이 나이 땐 짜증이 베이스로 깔려있다고 답장이 왔다. 다들 그렇구나, 이런 말과 생각으로 위로 받는다.

 뭔가 들뜬 마음을 가라 앉히라고 사고 났다 생각해야지. 다친 사람 없으니 됐다. 뭐 어떻게 되는건 없고 내가 알아서 해야한다. 그게 어른이다. 진단서 미첨부 병가를 쓸 수 있는 회사를 당분간은 그만두지 말아야겠다.

 보통의 마음 같은 걸 생각해보면서 어지럽게 봄이온다.

 금요일에 만든 노래 가사. 제목은 ‘봄’

마당엔 꽃잎이 듬성듬성
마음엔 그리움이 드문드문
문득문득 당신생각 피어오른 그리움을
오늘일까 내일일까 사라질까 겁이나서
두손 모아 빌었지만 그대 마음 알 수 없네

마당엔 꽃잎이 듬성듬성
마음엔 그리움이 드문드문
담장 너머 뛰어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살랑살랑 봄바람에 그대 마음 어딜가나
아지랑이 어지러워 내 마음도 알 수 없네

봄_초안.mp3
1.08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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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고 있지만 썩 잘 되고 있는 건 아니다
다들 그렇겠지만 내가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다
누군가를 생각하면 마음이 썩 좋지 않거나 썩 안좋다
그게 사랑이 아닌 건 아니다
사랑엔 썩을 붙이기가 애매하다
그렇다고 내가 극단주의자는 아니다
썩 잘되고 있는 것 같지 않지만
살았으니까
썩지 않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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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엄마, 나 셋이 오랜만에 같이 다녔다. 같이 다닌건 이혼할 때 후로 처음인가? 처음에 의미를 두는 인간이란 존재가 참 무의미하다.

아버지는 건강하고, 의무 기록도 다 발급받아서 우체국 보험 신청도 했다. 아버지는 데이케어센터에 돌아가서야 마음이 편해보였다. 현재 아버지의 모든것은 아버지가 학교라 부르는 그곳에 있다. 좋다. 아버지 평생에 여기처럼 본인을 챙겨준 곳도 없을 것이다.

엄만 많이 야위었고 아버지도 체중이 줄었다. 멀쩡한 건 나 뿐인가? 나도 피로가 가시질 않는다. 힘들다. 친한 사람들 만나면 힘들단 말부터 한다. 그만큼 힘들다.

서울 강릉 왕복 기차표가 52000원인데 먼저 일요일에 아버지랑 은행 두 군데 돌면서 잔고 확인하고 아버지 현금 찾아주니까 아버지가 차비하라고 만 원 줬다. 돈이란 건 치매에 걸려도 아끼고 싶은 것이다.

그런 세상을 아버지도 나도 산다. 여전히. 많이 함드네. 강릉 가는 기차 기다리면서 잠깐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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