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아버지 만나러 갔다가 일요일에 돌아왔다.

 2주 전과 비교해보면 아버지는 변한게 없다. 더 나빠질 거리가 얼마든지 있는데, 변한 게 없다는 건 좋은 거다. 강릉에 사는 아버지 사촌 누나가 - 나한테는 오촌 고모 - 치매에 걸렸단 소식을 들었다. 고모는 무서워서 집에서 못자고 옆집에 가서 재워달라 하고 - 옆집에서 몇 번 재워줬다 함 - 손가방에 들어있는 물건들을 꺼냈다 넣었다하길 반복한다고 한다. 아버지는 갑자기 길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한겨울에 반바지를 입고 외출을 하는 사람이 될 수도, 먼저처럼 집 안 아무데나 오줌을 누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치매가 무섭다.

 토요일 저녁에 전복죽을 맛있게 드시길래 기분이 좋았다. 일요일 오전에 혼자서 계속 횡설수설 얘기해서 들어드렸다. 무슨말을 하려는지 알 때도 있고 전혀 모르겠는 때도 있다. 외로운 우리 아버지 계속 떠드시라고 계속 추임새를 넣어드렸다. 점심에 무한리필 고깃집에 갔다. 일반 삼겹살 집에 갔어도 괜찮지만 어쩐지 아버지랑 무한리필 고깃집에 한 번은 가고 싶었다. 내 욕심이다. 아버지 접시 위에 올려 놓은 갈비를 맛있다고 하면서 잘 드셨다. 위암 수술 끝나고 6개월 지난 이후로는 먹는 양이 조금 늘어난 거 같기도 하다. 
 
 점심 먹고 서서울호수공원을 걸었다. 아버지가 기분이 좋은지 뭐라뭐라 계속 얘기하길래 계속 추임새 넣어드렸다. 왼손, 오른손 바꿔가며 아버지 손을 잡고 걸었다. 공원에는 연인들, 가족들, 강아지랑 나온 사람, 텐트 안에서 쉬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랑 아버지도 가족들 범주에 포함된다. 아버지가 치매에 걸리는 바람에 뒤늦게 아버지랑 일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 또는 일반적인 -  공원 산책 같은 걸 해본다. 밥을 같이 먹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 와중에 엄마는 약간 소외되고 - 엄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 사는게 쉽지가 않다.
 
 12월 초에 아버지 인지검사가 있다. 인지검사 전에 장기요양등급 4등급 받는 건으로 데이케어센터 선생님들과 상담을 하고 4등급을 받게 된다면 '재가'  등급을 ' 요양' 등급으로 변경 신청해서 아버지를 요양원으로 보내는 게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다. 가장 좋은 선택은 아버지가 나랑 같이 살면서 주간보호시설에 나가는 일이고 그 다음 좋은 선택은 내가 매주 토요일마다 아버지를 만나러 가서 일요일에 돌아오는 것이다. 강릉과 서울은 가깝고도 먼 거리다. 아버지는 혼자서는 지내기 어려운 사람이 됐지만 누군가 옆에 있기만 하다면 요양원에 갈 정도는 아닌 상태다.
 
 최후 또는 최종 선택으로 아버지가 요양원에 간다면 나는 아버지를 자주 찾아가진 않을거다. 내 역할은 거기까지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버지를 요양원으로 보내는 선택이 꺼려지는 건 누군가 옆에 있으면 괜찮을 거 같은 아버지를 바라보는 자식의 정이다. 아직까진 아버지가 나랑 엄마는 알아보니까 젓가락질도 잘 하니까 맛있는 걸 먹으면 맛있다고 하니까. 공원 산책 중에 나무 사진을 찍는 나에게 나도 그거 해달라고 하니까. 거의 모든 명사와 이름을 잊었고 며느리를 사모님이라고 하지만 어떤날은 정신이 맑은 것 같기도 하니까. 답을 알지만 아직 시간이 남아 있으니까.  2번째 정답인 강릉이사를 추진할까? 답에 체크를 하지 않고 이리저리 머리만 굴리고 있다.

나도 그거 해달라해서 찍은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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