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아버지 만나고 왔다. 먼저 만났을 때보다 더 수척해졌다. 위암 수술 영향일 뿐 몸에 어떤 문제가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밥을 먹는데, 억지로 다 드실 필요 없다는 말을 자꾸하게 되고 아버지도 알았다고 하면서 억지로 다 먹지는 않는다. 이렇게 대화가 통하는 일은 좋다. '아버지, 조기 축구 사람들 중에 아버지 좋아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일요일에 심심해도 거기 가지 마세요.' 본인도 그 사실을 알고 알았다고는 하지만 다음주 일요일에 아버지는 거기 또 가겠지. 이것도 대화는 통화는 일인가? 아버지가 밥을 많이 남기기 때문인지 나도 억지로 다 먹지 않는다. 나도 올해들어 먹는 양이 좀 줄었다. 여전히 술 마실 때는 많이 먹게 되지만 어렸을 때 많이 먹던 것 생각하면서 배가 터지도록 먹지 않아도 금방 배가 부르다. 나이 먹어서 그렇다. 곧 마흔 다섯이 된다. 아버지가 마흔 다섯이었던 건 1997년 정도인가.

 우리집은 90년대 초반엔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망했고 97년 말에 IMF 사태가 났고 나는 98년 1월에 군대를 갔다. 아버지는 대충 마흔 살 즈음부터 수입이 없었네. 지금 마흔 살은 굉장히 팔팔한 이미지지만 - 40대 초반에 첫 결혼을 하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 아버지 세대의 마흔 살은 뭔가를 새롭게 시도하지 않을 나이였을 것 같다. 아버지 나름대로는 어떤 노력이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식당을 나가려고 일어서는데, 아버지랑 같이 사는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 서울로 직장을 옮긴다는 내 계획이 실현된다면 신월동에서 대중교통으로 왕복 3시간 20분 출퇴근을 하고 퇴근길에 운동하고 집에 돌아와서 아버지랑 잠깐 대화를 나누고 아버지 간식 챙겨주고 같은 방에서 자고 아침에 씻고 출근하면서 아버지에게 데이케어센터 잘 다녀오시라고 하고 토요일 저녁이랑 일요일에는 아버지랑 호수공원을 산책하기도 하고 맛있는 거 사 먹는 반복. 그 모습이 그려지지 않은 게 아니라 내가 그렇게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게 맞다. 아버지를 매일 보는 삶을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공포 또는 확신.

 그래서 슬퍼졌다. 아내에게 카톡을 보내고 나니 또 슬퍼졌다. 9월 시작하고 달력 넘기자 마자 탁상 달력 9월 22일 칸에 '어일우 연가 쉬고 싶다' 라고 적어 뒀는데, 마흔 다섯의 나는  진짜로 좀 쉬고 싶다.

아버지는 치매 걸리기 전에도 아기 같이 해맑은 구석이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직접 보고 왔지만 사진으로 봐도 건강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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