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서

역사상 최고를 갱신하는 더위를 생각한다
지날 달에도
지지난 달에도
이번 달에도
다음 달에도
다다음 달에도
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겨울에도
더워서 못살겠다는 사람들도
아직까지는 살고 싶다
복날이면 삼계탕 같은 걸 먹기도 하면서
나도 그러하다

AND

중년 - 생일

오늘로 16791일째를 살고 있습니다
자는 일로 5500일 정도를
먹는 일로 700일 정도를 보냈습니다
기억하기에
기분좋았던 시간은 100일 정도
슬퍼서 울었던 시간은 단 하루 정도입니다
눈물이 너무 짠가 싶기도 하지만
대체로 웃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AND

 - 지난주 토요일에 손윗 처남이 본인 자동차를 나에게 줬다.
 
 - 지난주 일요일에 먼저 타던 자동차 키를 잃어버렸다.
 
 - 어제(7월 9일) 아내가 첫 번째 교통 사고를 냈다.
 
 
 처남이 준 자동차는 맘에 든다. 쉐보레에서 나온 아베오란 차다. 명의이전을 하는 문제가 있는데, 내 이름으로 보험을 들면 할증이 많이 붙는 문제가 있어서 일단은 처남 이름으로 타는 게 현실적이다. 더구나 아내가 교통사고를 냈는데, 아내차도 명의랑 보험이 내 이름이다. 처남과 대화를 나눠봐야 하는데, 선뜻 전화기에 손이 가질 않는 현실이다.
 
 140만원 주고 사서 올 초에 보험료만 130만원 내고 잘 타던 내 자동차는 잃어버린 키를 찾지 못해서 뒷유리 부수고 - 이웃들이 도와줌 - 짐 빼고 오늘 아침에 보험 불러 견인 후 카센타로 보냈다. 나에게 본인 차를 팔았던 카센타 사장님이 알아서 폐차해주기로 했다. 이 건 처리하느라 오늘 두 시간 지각처리했다. 전륜차에 전자식 사이드브레이크가 잡혀 있어서 바퀴 안굴러 갈까봐 걱정했지만 다행히 앞바퀴가 굴렀다. 무사히 잘 끝났다.
 
 아내는 차를 빼려고 후진하다가 D인줄 알았는데 R에서 엑셀레이터 밟아서 사고를 냈다. 아내 말로는 큰 소리가 났다고 하는데, 내가 사무실에 있어서 현장에 갈 수 없으니 일단 상대차 번호 받아서 연락을 시도했다. 근데 전화를 안 받네. 오후엔 전화를 두 번 받았는데, 받자마자 '여보세요' 한 마디 없이 전화를 끊었다. 뭐 어쩌자는 거지? 아내차는 좀 크게 다쳤지만(견적 80이상 나올 것 같음) 아내가 찍은 사진으로 확인한 상대방 차는 그냥 타자면 탈 수도 있는 수준이다. 그런데 그 자동차가 어제 5시까지는 집 앞에 있었다는데, 6시 40분에 내가 퇴근했을 때는 사라졌다. 그래놓고 전화를 받자마자 끊어버린다. 어지럽다. 어지러워. 일단 우리 연립이나 동네 차는 아닌 것 같다. 기다려봐야지 어쩌겠나. 찝찝함이 계속 남아 있다. 
 

 세 가지 자동차 이슈로 여기저기 연락하고 머리 굴리느라 마음이 반파됐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세 건이 다 연결돼있네. 아내는 첫번째 사고로 충격을 받아서 마음이 반파됐다. 반파된 사람들끼리 맛있는 거 사 먹어야겠다. 처남한테는 언젠가 전화를 하면 되는데. - 처남이 은근히 쿨함 - 아내의 사고 건은 언제가지 기다려야 하나. 첫 번째 교통 사고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법인데 - 나는 2000년대 초반에 60킬로 미터 정도로 지나가다가 거리감을 잘 몰라서 서 있는 대형트럭을 지나치면서 백미러 하나 해 먹었던 게 첫 사고였다. -  아내가 침착하게 잘 대처했다.
 
 
 아내에게 내가 반파상태라 하니 본인은 완파상태라고 한다. 반파된 마음으로 어지럽게 살아간다. 저녁에 소주 마실까?

AND

 금요일에 회사 휴가 냈다. 6시에 운동 갔다오고 김밥 한 줄 사 먹고 지난번에 혈압 문제로 못했던 헌혈하고 - 혈장 부족하대서 혈장 헌혈함, 헌혈하면 연가를 공가로 바꿀 수 있음. very good - 머리 자르고 집에 잠깐 앉았다가 13시 30분 차로 엄마 보러 오산에 갔다. 차에서 한 시간 잤는데 낮잠이 정말 오랜만이라 무척 개운했다. 오산으로 오던 중에 손윗 처남이 자동차 한 대 나한테 주는 걸로 결정 됐다.

 토요일 아침에 자동차 받으러 봉천동엘 갔다. 쉐보레 자동차가 생겼다. 처남은 직장내 스트레스 문제로 세 달 휴직 중이다. 중년의 직장생활 위기와 3천 세대가 넘는 아파트에 사는 건 어떤 기분일지 생각해 봤다. 봉천동에서 신월동으로 차 끌고 갔다. 서울 운전 오랜만이네. 영일군한테 차 보여주니 관리 잘한 차라고 했다. 처남한테 고맙다고 문자 보내고 아내에게 오빠가 차에 관심이 많고 관리를 잘 하는 것 같다고 얘기했더니 자기 오빠가 그럴리가 없다고 한다  흩어져 살면 자기 오빠 관심사가 뭔지 성격이 어릴 때랑 어떻게 달라졌지도 모르는 실정이다. 나도 내 동생이 애 둘 키우는 거 말고는 뭐하고 사는지 잘 모르겠다. 저녁엔 친구들이랑 한 잔 했다. 신월동 화곡동 전통적인 멤버 넷이 - 아내한테 사총사라 하니 웃겨 죽음 - 모일라고 했는데, 한 친구가 정신이 아픈 동생을 혼자 둘 수 없어서 못나오는 바람에 셋이 만났다. 술을 많이 안 마셨고 리쌍 노래를 부를 땐 즐거웠지만 그 순간 뿐이었다.

 일요일 아침 여섯시에 일어났고 일곱시에 모텔을 나와서 엄마한테 갔다. 신월동에서 강릉 가는 길에 약간만 돌아가면 오산 지나서 갈 수도 있고 그저 엄마가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엄마한테 물건이나 돈으로는 효도 하기가 힘드니 자주 오겠다고 하니 엄마가 알았다고 했다. 엄마가 싸준 조미김 차에 싣고 강릉으로 쌩하니 왔다. 좀 쉬다가 아버지 만나고 왔다. - 아버지 인지능력이 점점 안 좋아진다. 치맨데 좋아지는 게 있겠나. - 중간중간 여자들 공 치는 걸 봤고 - 18언더 3인 연장전 잼있었다. - 지금은 축구보러 와서 경기 시작 기다리면서 쓰는 중이다.

 엄마 집에서 세 끼를 먹었다. 금요일 저녁엔 삼계탕과 수박 - 삼계탕에 통마늘이 너무 많았지만 그냥 맛있게 먹었다. - 토요일 아침엔 김치찌개, 오늘 아침엔 제육볶음과 김치찌개를 먹었다. 엄마밥을 세 끼나 먹은 게 인상적이다. 엄마도 너무 좋아했다. 엄마가 호박을 볶아놔서 옛 추억을 생각하면서 맛있게 먹었다. 내가 기억도 못하는 시절에 제일 좋아하던 엄마 반찬이다. 엄마한테 새 자동차 보여주고 미용실에 마늘 가지러 가는 엄마차에 손 흔들고 차창 너머의 이별을 했다. 회사 형 증에 하누명애 어머니 돌아가시고 정신을 멋차리고 있다. 함께 산 세월이 길어서 어머니랑 각별하다. 나는 엄마랑 같에 산 시간보다 떨어져 산 시간이 더 길긴한데, 각별하긴 한 가지다. 모든 부모 자식이 그러하다. 엄마에 대해서 나열하자면 끝이 없고 엄마한테 잘해야지. 엄마한테 더 잘해야지. 다짐해본다.

 주말에 많은 일들이 다 잘됐는데, 원래 타던 차키를 잃어버린 걸 방금 알았네. 이런… 어디다 흘렸지? 아버지한테 갔다가 흘렸나? 갑자기 또 머리 아플라고 하네.

엄마집 앞 수변 공원 버드나무


AND

 소서
 
 장맛비가 내리는 소서
 시작도 하지 못한 더위
 마음속에 방울방울 빗방울
 시작도 하지 못한 사랑사랑
 살아 있으니 시작은 했나?
 죽어도 시작하지 못할 사랑
 마음속에 살랑살랑 외사랑외사랑
 장맛비가 멈추지 않는 날들
 내 마음이 멈추지 않는 날들

AND

아버지 만나고 나서 올해 안에 영업종료 할 것 같은 강한 예감이 드는 단골 커피숍에 와서 쓴다.

쓸쓸한 일 두 가지가 붙었네. 쓸쓸한 노래를 만들어야겠다. 언젠가 기분이 좋았던 일요일에는 일요일 아침같은 노래를 만들거라고 메모장에 적어뒀다. 그 노래는 아직인데, 쓸쓸한 곡은 금방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제목 - 0.1

오늘은 일요일
지금은 아침
계절은 5월
계절은 봄이 맞고
반짝반짝 하늘

0.1도 기분좋지 않다
0.1도 네 생각이 안난다
0.1도 0.1도
하나도 하나도


이렇게 가사 초안을 적어 본다


우울증은 좀 괜찮나? 회사 가기 싫은 건 여전하지만 이전만큼은 아니고 자다 깨는 횟수도 두 번 정도로 많이 즐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질 일이었을 수도 있지만 계속 우울한 거 보다 약의 힘으로 빨리 나아지는 게 마냥 기다리는 것 보다 낫다.

오늘은 아버지 컨디션이 괜찮았고 어쩔 수 없다는 얘기를 했다. 요양원에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본인이 일등이고 잘하고 있다는 얘기도 했다. 본인이 요양원 어르신들 중에 제일 건강하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했다.

아버지는 어쩔 수 없고 잘 하고 있다.

아버지한테 내일 또 온다고 했다. 면회가 너무 잦으면 요양원에서 별로 안 좋아할 거 같단 생각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게 아닌 걸 알기에 그렇다. 요양원 남자 직원 한 분이 아버지를 데리고 4층으로 올라가기 전에 '아버지가 선생님을 너무 좋아하시는데요. 항상 감사드립니다.' 라고 했다. 그 직원분이 얼마전에 감자전도 같이 먹으러 다녀왔단 사실을 알려줬다. 정말정말 고맙습니다.

커피숍 사장 형이랑 담배 피우면서 잠깐 얘기 나눴다. - 소중한 시간이다 - 영업종료 없을거란 얘길 듣고 안심했다. - 그게 뭐라고 - 하지만 사람일은 어찌될 지 모든다. 내가 회사를 못 그만두는 걸 포함해서 - 잘 하고 있는 거다 - 어쩔 수 없는 상황은 늘 있는 것이다. '봉봉방앗간'이 어쩔 수 없이 계속 영업 했으면 좋겠다.

어쩔 수 없이 뭔가를 하는데 그게 잘 하고 있는 케이스들을 생각해 본다. 아버지 걱정을 안하는데 걱정이 되는 것괴 비슷한 건가?

두 잔 째의 커피를 마시는 중에 글을 마친다.

AND

시간
들여다보면 느리게 간다

위로
엄마가 점 보고 와서 내년에 좋다고 하니 기분이 좋다

집착 
내 혀로 네 몸에 내 이름을 쓰겠다

배출
똥 싸면서 코를 풀다

허기
황사에서 카레 냄새가 난다

인과응보
태어나서 죽는일이 인과응보다

어긋난 사랑
나는 너를 향해 눕는데, 너는 벽을 향해 눕는다

취향
같은 보리를 먹어도 나는 맥주를 마시고 너는 보리차를 마신다

행운
지금 살아있다면 인생의 운을 이미 다 쓴 것이다

떠벌이
그 사람은 안 아픈데가 없어, 주댕이만 빼고 다 아파

무기력
먹기 전엔 배가 고파서 기력이 없고 먹은 후엔 소화시키느라 기력이 없다

동질감
담배 한대 같이 피우면 그때부터 친구다

미국 자본주의
셀프주유소에서 기계가 팁을 요구한다

끝나는 사랑
새끼 손가락 끝 마디만큼 네가 보고싶다

미끼상품
나이 마흔 다섯이 되어서야 겨우 투 플러스 원 상품을 하나만 살 줄 아는 사람이 됐다

로또 복권
이번주에도 안됐다
내가 안됐다


학교를 파하고 교문 앞 문방구에서 제 몸뚱아리보다 큰 가방을 등에 메고 재잘거리는 아이들과 함께 봄은 온다

공범
일요일, 느지막이 일어나 즉석밥과 구운 스팸을 먹고 행복하다
나이 50이 가까운 지금, 그렇고 그런 세상에 공범이 되었다

요통
인생의 전성기보다 먼저 찾아온다

생강나무
쳐다보면 자꾸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서 생강나무

욕쟁이
예쁜 걸 보면 시팔소리가 먼저 나온다

운전면허
인생살이가 운전면허 시험처럼 순조로우면 얼마나 좋아


내 복은 내가 삶는다는데 복을 어디다 어떻게 삶나?

비관
지구 곳곳에서 전쟁이 나고
전세계 곡물값은 오르기만 하는데
여기 인간들은 왜 이렇게 많이 먹어대고 또 왜 이렇게 밝어?

마흔살
나이 사십이면 세상의 사십프로는 아는 줄 알았더니
그저 마흔살 빈털털이네

암보험 
암에 걸려 죽을래도 90일을 기다려야 한다

아파트
빈 성냥갑을 쌓다

제임스본드 
콘돔은 갖고 다니나

까마귀
까마귀에서 까를 빼면 마귀

자본주의 
빚더미 위에 쌓아올린 신화

입사지원서
지원동기 : 의식주 해결

허리 디스크
침을 맞으러 가면 착한 사람이 된다

냉장고
있으면 열어보게 된다

겨울
찬공기가 방충방에 걸려있다

인생
광 팔았을 때 말고는 쉬지 않는 것

중년
죽을병에만 안 걸렸어도 성공한 인생이다


졸려죽겠는 꿈을 꿨다
삶과 죽음
인생엔 이 두 가지만 있을까
그런거 같다

출근
아, 하기 싫다

살의
난 별로 더 마시고 싶지 않는데
술도 약한 놈들이 왜 자꾸 더 먹자 하지?


일하고 돌아와서 웃을 수 있는 곳

회개
죄짓고 나한테 고백하지 마라
나도 죄가 많은 인간이다

엄마
엄마만큼 애틋한 것도 없다


삶이 싱그럽지 않은데
봄을 알면 아저씨다

전화
결혼한 친구가 전화를 안 받으면 불화가 있나 생각한다

알콜중독
존재증명을 위해 술을 먹다

직장생활
누가 날 부르는 게 싫다

절정
꽃잎 떨어지기 시작해야
비로서 절정이 온다


막막함을 하소연할 곳을 찾다

대선
누가 대통령이 되건 봄이오기만 한다면 살아갈 뿐이지

신앙
십자가를 안주로 소주를 먹다

목욕
욕조에 따끈한 물을 받아서 미끄러지듯 몸을 담그고 기분좋게 눈 감고 잠들었다가 어느새 식어버린 물 속에서 나도 차갑게 식고 싶다

종이접기
A4 용지를 여덟번 접기 위한 생을 살고 있다

본능
잘 먹고
잘 자고 일어나서
잘 싸면 기분이 좋다

모기
모기한테 피를 나눠준 게 억울한 게 아니라 물린 자리가 가려운 게 싫다


점쟁이 말 한 마디에 인생이 왔다갔다 한다

시간
쪼개면 있고 자고 일어나면 없어지는 것

예전
모든 게 예전같지 않다고 하지만 예전에 어땠는지 모르고 하는 말이다

해빙기
얼었던 강물이 녹아 흐르자 오리들이 신났다

불놀이
다 재가 됐으면 좋겠어


과거에 대한 후회,
현재에 대한 불만,
미래에 대한 불안

노력
물거품이 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

기대
저버리려고 있는것

기원
바다를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걸 보면 우리가 물에서 오긴 왔나보다

지랄
반이거나 풍년이다

식탐
치킨을 먹는데 족발 배달이 왔다
얼마나 더 먹어야 이 생이 끝을 향할까

가족
같이 먹진 않더라도 같은 걸 먹는다

로또복권
샀을 때도 안 샀을 때도 안 맞는것

영수증
건물 바닥을 닦는 바닥 인생을 살아도
물건 시세는 알아야지
그래서 영수증을 본다

셀러브러티
살아서도 팔리고
죽어서도 팔리는
마이클 잭슨 존 레논 체 게바라

혈연
아기들은 다 예쁜 줄 알았더니 조카도 핏줄이라고 다른 아기들보다 더 예쁘네

피곤
오줌에서 캬라멜을 굽는 냄새가 난다

이별
네가 내 곁에 있어도 외로웠는데 네가 없으니 오죽하겠는가


지고 나면 초라하다

여유
두 개의 길 중에 좀 돌아서 늦게 도착하는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것

방황
나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 고유의 특성

울다
울어도 소용없는 일에 울다

잔인한 계절
4월 월급을 받으니 사는 게 지겹다

힘들어
힘들어도 망가지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은 힘들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있다

결혼생활
각자 자기 거래처를 찾아가는 것

한통속
참외랑 오이가 한통속으로 느껴지다

파도
물에 들어가봐야 왜 파도라 불리는지 알 수 있다

후회
술 취해서 여기저기 전화하는 것만 빼면 인생에 후회가 적은 편이다

이름
꽃이 피기 전까지는 누구도 알려고 하지 않는 이름들을 알고 싶다

대형마트
약간은 부담스러운 풍요

음주운전
내가 어느 국도 위에 있는지도 모르게 취하다

못난놈
잘난놈만 보면 욕을 하는 나는 못난놈

실수
기가 막힌 실수 = 어이없는 풀레이

자원고갈
조금씩 마음을 갉아 먹은 사랑이 끝나다

좋다
좋다는 말을 듣는게 좋다

일용직
일 분 일 초를 다투는 사람

열대야
고양이들이 슬로우 모션으로 어슬렁거린다

베프에게
중2때 너를 만난게 내 업보다

두발 자전거
세상의 균형을 알게된 순간
나는 모든 균형을 잃었다

할인과 적립
할인이나 적립카드 없으면 억울해서 편의점에서 과자라도 하나 사 먹겠나
주인이 나한테 잘해주는 단골 술집이나 가야지

불행
명치에 주삿바늘을 꼽고 내 피로 누군가를 살리는 꿈을 꿨는데, 왜 로또복권에 당첨되지 않았나?

마음
마음이 마음같으면 마음이 아니지만 마음이 마음같지가 않네


다가올수록 더 보고 싶었다

가을
날씨가 술안주다

야구에 관한 명언
- 야구란 무엇입니까?
- 친구지, 지면 친구가 슬프고, 이기면 나도 기쁘고 신난다.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친구지.

술에 관한 명언
술 먹고 약속을 하면 안돼

약속에 관한 명언
지키려고 했는데 못 지켰다고 하는 것

열대야
밤 열두시에 물회가 먹고 싶다

식탐
하늘에 흰구름이 소고기 마블링으로 보인다

하나만 먹어
먹기 싫어도 갖다 주면 하나 먹게됨

고생
좋은 날 빼고 다 고생이다

일용직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세계에는 선도 악도 없다

가족주의
아버지 맘대로 하는 거

쓰레기와 사람
태우거나 땅에 묻는다

직장
월급 외의 무언가를 바라는 곳이 아니다

열정
말술도 가슴속에 열정이 있어야 먹는다

영화
점프컷으로 너에게 다가가 너와 입맞추면 영원히 끝나지 않는 롱테이크가 시작된다

어른
파란 신호에 횡단보도를 건널 때도 주위를 살피는 것


풀들도 다 자기 좋은데서 산다


누구와 마셔도 생 전체가 허망해지는 순간이 온다


처음엔 다 수줍다

계절
계절은 항상 다음 계절을 재촉하는데
나는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

반대
반대의 반대말은 관대


내가 먹는 것도 나
안 먹는 것도 나
겨우 하루하루 사는 게 나

배달의 민족
따로 주문한 햄버거 피자 치킨 족발을 같은 사람이 순서대로 배달해 주는 배달의 민족

사기꾼
뭣 때문은 아니라고 하는데 다 뭣 때문인 사람

직장생활
자리에 없는 사람을 씹으며 소주를 삼키고 삶은 고기를 씹는다

담배
안 피우면 허전 피우면 허망

인생
바보같이 된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의 합

이별
불행하지만 않으면 살 수 있다는 당신의 말
나는 당신 때문에 불행하지 않은데
나 때문에 당신이 불행하다면
이별

노력
노력은 왜 경주를 하나

기후 위기
포근한 겨울이 주는 낙관
지구 반대편에는 꺼지지 않는 산불

노화
3일 네 시와 4일 세 시가 헷갈리다


돈이 뭐라고 돈이 생기면 좋다

빨래
아침 여섯시에 꼭 빨래를 하고 싶었는데 온갖 이유들로 빨래를 못했다. 그래서 울고 싶어지는 꿈에서 깼는데, 아침 여섯시길래 빨래를 했다


일찍 피면 일찍 지고 늦게 피면 늦게 진다 헌데 피어보지 못한 것들은 어쩌나


막히면 등을 기대고 쉬어야지

첫사랑
할 말이 많았던 밤이 말없이 지나고
새벽에 조심스레 내뱉은 첫 마디, 잘 잤어요?

이별
SNS 프사에 목을 자르는 것


등을 떠미는 바람에도 아랑곳 않고
어린것들의 여린색이 뚫고 올라오는 계절

이별
SNS에 강아지 사진만 남기고 다 지우는 것

효도
부모님이 기분 좋게 오케이 하는 것

전산오류
내 오른쪽에 앉은 애는 왼쪽을 못 보고 나는 오른쪽을 못본다

주사(酒邪)
담배는 끊을 수 있어도
오줌은 끊을 수가 없다

구멍
네 생각만 파 먹고 살았는데 왜 내 가슴에 구멍이 났나

눈치
눈치보고 살지 않기 위해서 눈치를 보다

달콤한 인생
가을밤 가로등 옆 은행나무 아래서
소주 안주로 사탕을 빨았다

부추꽃
이제 그만 잘라 먹으라고 파랗게 잘렸던 자리마다 하얗게 질린 부추꽃이 피었다

하늘길
빈 하늘이 있기에 구름의 깊이를 알고
구름의 겹을 통해서 하늘길을 본다

이별
얼마나 술을 많이 마셔야 눈물도 술이 되나

시금치 나물
모든 생명은 생명을 먹는다

불의(不意)
산자도 죽은자도 준비되지 않은 죽음 앞에 무방비다

어떤 삶
산 사람은 모두 어떤 삶을 살고 죽은사람은 다 어떤 삶을 살았다

우주가 되는 꿈
내 설사똥을 우주 공간에 둥둥 날려 보내고 싶다

인류
희귀하게 만들어 놓고 희귀종이라고 좋아하는 진짜 희귀종

생일
세상에 안 태어나고 사는 사람도 있나
잔치는 적당히 해라

축구
공은 바쁘지 않다
사람만 바쁠 뿐

봄눈
눈 녹기 시작하고 나서야 어디가 그늘이었는지 안다


예쁘다고 막 건드리면 벌에 쏘이는 수가 있다


반짝반짝 할 땐 철이 없고
철이 들면 깜빡깜빡 한다

발칙한 육하원칙
햇살 시린 겨울 백주대낮에 많은 것이 금지된 공공장소에서 사랑이란 명목으로 너와 지나친 애정표현을 하고 싶다

몽우리
살아야 사랑도 한다

소녀
길가에 들국화도 피어야 향기가 나는데
너는 피지 않아도 향기가 나는구나

참혹
꽃 진 자리 참혹하다
당신 빈 자리 참혹하다

이유
세상에서 당신이 제일 좋은 이유
당신이 내 옆에 있기 때문이다

금연
나이 오십에 꿈에서 담배를 피운것을 후회하고
바닥을 치며 일어나 냉수를 마신다

난독증
너를 오독한 줄 알았더니
나를 오독하였다

하지
짧아질 일만 남은 해의 운명
여름은 시작도 못했는데 생이 저문다


가을도 하루만에 오는데
너는 왜

바다
세상 어딘가엔 하류로 갈수록 좁아지는 강도 있겠지만 내가 당신에게 그러하듯이 결국 모든 강은 바다로 흐른다

코감기
콧물만 먹고도 배가 부르다

만취
술병을 자빠뜨리다가
내가 나자빠졌다

아내
결혼 말고는 뭘 같이 한 적이 없다

비관
사람들이 다들 어떻게 사는지 모르겠다

입관
저승가는 길이 그려진 종이를 덮고
가벼운 짐이 되어 무거운 잠을 시작한다

여름
꽃잎이 탄다
어떤 마음이 끝난다


매일밤 각자의 사정들을 전해듣는다
후회가 반복되도 술이란 생명을 끊을 수가 없다

과거
과거를 아름답게 쓰기 위해선 과거가 아름다워야 한다
모든 과거는 치욕이다

연인
세상에서 달아나려던 내 마음의 뒷덜미를 잡아 돌려 세운 사람

외로워
(씨팔, 바람만 스쳐도 울것 같은) 나만 남겨놓고 다 어딜 갔어

격언
대충 입고 대충 먹고 대충 자도 대중없이 대충 살진 말자


여지껏 뭐했어요
생을 살았습니다

비관
인생이란 게 태어나서 이것 저것 먹다가 죽는 것 밖에 없다

베프
사는 게 재미는 있는데
너랑 만나서 술 먹는 것 만큼 마음 편하진 않아

인간
뒤로 걸어도 앞으로 가는 것이 인간
인간은 뒤로 가지 않는다

꽃침
꽃 위에 침을 뱉다
나의 존재 증명은 너

육식
뼈를 잡고 살을 뜯다

gps
전화기만 있으면 내가 어디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지만 네가 옆에 있어도 내 마음이 어디로 그려지는지는 모른다

아내에게
가끔 당신에게 화를 내고 짜증도 부리지만 당신을 만나지 못한 나는 지금보다는 훨씬 변변찮은 사람이었을 거야

첫사랑
조금 일찍 만난 계절

무궁화
반국가 정서만 없다면 무궁화도 참 예쁜 꽃이다

엄마들
장모님은 내가 당신 딸한테 잘 할 거 같아서 나를 허락한 것 같은데 내 색시를 허락한 우리 엄마 마음을 모르겠다

이슬비와 가랑비
아이고 김서방, 얼른 가라고 가랑비가 오네
아니오 장모님, 더 있으라고 이슬비가 오는데요

인생
허기만 남은 삶에
술 몇 잔 마시다보면
떠날 때가 되는 것


나 없인 아무데도 못 가는 주제에
세수하고 남은 물로 날 씻지 마라
누가 뭐래도 내가 니 발이다

인생
삶 - 이렇게 살다가 죽기는 싫은데, 뭘 해야할지는 모르겠다가 결말이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가 되는 것
죽음 - 언제든 상관 없다고 생각했어도 아직은 이른 것

설날
비에 젖은 겨울 논을 바라보며 늙은 아비가 늙은 아들을 기다린다

아휴
아휴. 씨팔.
어쩌면 이 한 마디만 남기고 모든 생이 끝나지 않나 생각한다.
아휴. 씨팔

AND

 금요일 저녁에 고구미 만나서 산 속에서 오붓하게 돼지고기 두 팩 구워 먹었다. 술은 꽤 먹었지만 과하지 않았고 베프랑 오랜만에 만나서 좋았다. 고구미는 대학에 이어서 농업학교도 내 후배가 됐다. 좋다. 마트에서 장보는 중에 항정살을 집어드는 나를 보면서 기름기에 대한 인간의 본능을 생각했다. 내가 연어랑 참치를 좋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튀김도 뺄 수 없구나. 고구미가 내가 올해 만든 '첫봄'이란 노래를 들어주고 좋다고 했고 한 번 더 불러 달라고 했다. 기분 좋아서 시도 두 개 읽었다. 이런 순간이 내게 힘을 준다.

 고구미는 토요일 아침 다섯 시에 피망 농사 지으러 평창으로 돌아가고 같은 시간에 인천에서 출발한 건쓰짱을 여덟 시에 만났다. 커피 마시고 몇 나디 나누고 점심 먹고 누워 있다가 저녁 일곱시에 프로 축구 봤다. 11,000명이 넘는 관중이 들었다. 빗속에. 건쓰짱은 축구장은 첨이라고 했고 응원에 들뜨는 모습을 보였다. 강원 서포터즈 응원에 들뜨는 정도면 수원 삼성 응원을 보면 기절할 판이다. 강원이 졌지만 경기는 잼있었다. 강원은 올해 폼이 좋은데 상무랑은 두 번 붙어서 두 번 다 졌네. 연패했다고 상대팀이 천적인건 아니다. 스포츠 경기란 그런 것이고 인생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친구들 사는 거 보면 나는 괜찮은 건가 싶기도 하다. 신경정신과에 우울증 약 타러 세 번째 들러서 이 글을 쓰는 중에도 그런 생각에 드네. 아버지 만나고 나면 우울한거랑 - 어제도 아버지 만났다. - 집이 없는 것 - 10억은 부자도 아니지만 10억 부자가 아닌 것 - 회사가기 싫은 것 제외하면 큰 스트레스는 없다. 아이가 없고 빚이 없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는 뭔가가 없기에 생기기도 하지만 뭔가가 없기에 없는 경우가 더 많다. 내 스트레스 요인 중에 허리 통증과 어깨 통증 재발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편인데. 아프지 않다면, 통증이 없었다면..... 생각해 본다. 친구들은 자녀들의 학폭 연루, 아파트 대출금, 피곤한 직장생활, 아내와의 갈등 등의 문제가 있다. 몸 아픈건 우리 나이엔 공통이다.

 우울증의 해결책으로 연애를 제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남현이를 보면 맞는 것 같다. 이 친구는 카톡으로만 대화해봐도 원래보다 더 선량해졌고 예쁜말을 쓰는 사람이 됐다. - 원래도 나쁜 말을 쓰는 놈은 아니다. - 나는 기본적으로 아내랑 잘 지내니까 - 얼굴 본다고 설레는 건 아니지만 내 아내는 귀엽다 - 만일 내가 아내가 아닌 사람과 연애를 하면 우울증의 해결대신 배덕감에 정신병 수준의 희열을 느끼거나 죄책감에 미쳐버리거나 둘 중에 하나일 거라 생각한다.

 약발이 잘 드는지 최근 2주 동안 딱 한 번 울었다. 근데 자다 수시로 깨는 건 여전하다.

 머릿속이 맑게 살고 싶어서 조만간 담배를 끊으려고 한다. 담뱃갑에 그려진 10종류의 담배 경고 문구를 모으는 중인데, 간접흡연 피해 하나 남았다. 근데 그 한 갑이 잘 안 걸리네. 그 담배 한 갑을 마지막으로 금연 하고자 한다. 잘해보자.

AND

20240618 - 일기

그때그때 2024. 6. 18. 17:11

 산림기사 합격했다. 생각보다 기쁘지 않다. 너무 울적해서 뭐라도 해야지, 생각하다가 산림경영 기술 중급 기술자가 많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어디서 들었고, 나랑 같은 직렬 중에 중급 기술자인 형 한 명이 산림청 그만두고 엔지니어링 업체에 들어갔기에 나도 산림기사 갖고 싶었다. 열심히 했는데, 보람이 느껴지진 않는다. 우울증 때문이다. 어쨋든 기사를 땄기에 내 경력으로 중급 경영기술자 받을 수 있는지 알아봐야겠다.
 
 예전에 a형이 대형면허 따고 나서 인생살이가 대형면서 취득하는 것처럼 순조로우면 얼마나 좋아, 라고 했다. 인생살이가 산림기사 따는 정도로만 열심히 해도 순탄하면 얼마나 좋겠나, 나도 생각한다. 복잡무변이란 말이 갑자기 떠오르네.
 
 이런 저런 핑계로 술을 자주 마신다. 적당히 마셔야지 생각한다. 담뱃갑에 그려진 경고 문구가 10종류인데, 9종류의 빈 담뱃갑을 모았다. 10개 다 모으면 끊어야지 결심했다. 지난 금요일에 헌혈하러 갔는데, 최저 혈압이 자꾸만 자꾸만 높게 나와서 결국 헌혈 못했다. 살면서 헌혈 38번 했는데, 50번은 채우고 싶네.
 
 아내랑은 잘 지낸다. 내 우울증과 화를 잘 지켜봐 준다. 항상 고맙다.
 
 아버지는 잘 지내는데, 변비가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누가 본인을 만나고 가도 10분 후면 잊어버리는 아버지, 똥오줌을 지리는 아버지를 통해서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삶을 자꾸 생각하게 되고 결국 우울해진다. 아버지 생각하다가 혼자 울 때가 많았는데, 요즘은 빈도가 많이 줄었다. 약을 먹기 때문인가?
 
 오늘은 술 안 먹는 날이고 아내랑 외식이다. 막국수에 수육 먹을까 하다가 한국 사람은 국밥이기에 국밥 먹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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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이맘때면 생의 절정을 생각한다
지지않는 태양 꺼지지 않는 횃불
축제와 같은 여름 일렁이는 사람들
누군가는 지금이라고 말하는
최고의 순간이 내게도 있었나
혹은 최선의 순간이라도
내일이면 황혼이 시작될테니
언젠가 모든 생이 저물테니
희망 같은 건 태워 버리고
해가 꺼질때까지 비틀거리자
세계와 나의 연결 같은 걸 생각하면서
꺼지지 않는 밤이 올 때까지 
휘청거리자 휘청거리자   

AND



꿈에서 슬픈 노래를 불렀다
우웅 우웅 우웅 우웅
귓전을 때라는 울음 소리
어디서 소 한 마리 죽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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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5 - 개꿈들

그때그때 2024. 6. 15. 08:56

우울증 때문인지 불만 때문인지, 올해 개꿈을 많이 꾼다. 얼마전 바지에 똥묻은 꿈을 꿨을 때 복권이 낙첨이었다. 꿈들 중에 인상적이었던 것만 기록해둔다.

- 회사 사람들 + 학교 사람들하고 야유횐지 장례식장인지에서 술 먹다가 혼자 빠져나와서 학교에 갔다. (로또 꽝)

- 변산에 간 꿈 아이를 마저 안지 못하고 깸. (로또 꽝)

- s 선배가 나오고 아내도 있는 술자리에서 가방을 못찾다가 결국은 찾음.... (로또 꽝)

- 30억 훔쳤다가 나중에 잡히는 꿈. 잡힐 때 아내랑 같이 도주중이었음. (로또 꽝)

- a형이 b형 책상 닦으라고 나한테 시킴. b이 깨끗하게 닦으라고 새 칫솔을 내 줌. (로또 꽝)

- 엄마 동생 나 셋이 있는 집이 전쟁 같은 나면서 무너짐. 쪽창문을 열었다가 괴뢰군과 는 마주침. (로또 꽝)


이 꿈들이 다 이루지 못한 소망과 현실에 대한 불만족 때문인가 싶다.

AND

바닥은 고요하다

바람소리 새소리
흙과 모래와 돌
제비꽃과 클로버 꽃
부러진 나뭇가지와 아기 소나무
이름 모를 풀과 벌레
그루터기 위의 개미들
방금 내려 앉은 함박꽃 잎 
나무 모양으로 갈라진 빛과 그림자
버려진 지 오래된 묵은 담배 꽁초
그보다 더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사람

AND

 22시에 잠들었다가 23시 30분에 한 번 깨서 담배 한 대 피우고 잠들었다가 3시 30분에 다시 일어났다. 어제도 최종적으론 4시 30분에 일어났다. 배가 고픈 건 아닌데, 정체를 알 수 없는 허기가 밀려와서 라면 반 개 - 마침 반 개가 있었음 - 끓여서 밥 말아먹었다. 먹고 나서도 여전히 허전한 감이 있어서 집에 마지막 남은 라면 하나 마저 끓여 먹고 설사가 날 것 같은 가벼운 복통을 느끼면서 키보다 두들기다가 똥 누고 와서 마저 쓴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고 - 조상님들 고맙습니다. - 빨간날인 현충일이 있다.  - 조상님들 한 번 더 고맙습니다. 집에서 달리 할 것도 없기에 아내랑 아버지 만나러 갔다. 아버지 머리가 약간 길었는데, 긴 머리가 좀 더 안정적으로 보인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알아 듣는지 못 알아듣는지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동생이 카톡으로 보내준 동생 아이들 동영상을 같이 보는데, 아버지가 좋아했다. 갑자기 영상통화가 생각나서 - 여태까지 이걸 생각 못한 내가 참 멍청하고 불효자다. - 동생에게 전화했더니 바로 받았다. 상대편에게 아버지 얼굴이 잘 보이도록 내가 전화기를 붙잡고 통화를 시작했다. 아버지가 동생 이름을 말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본인 아들인 건 바로 알았다. 그걸 알아챈 그 순간이 좋았다. 동생이 본인 큰 아이를 불러서 할아버지한테 인사 시켰다. 아버지가 그 아이가 본인 손주인 걸 알았다. 9살 조카가 약간 뻘쭘해 하길래 내가 아버지에게 '호연아' 불러 보세요, 라고 했다.

 - 호연아  - 네
 - 학교다녀?  - 네
 - 공부 잘해라  - 네
 - 나중에 놀러와 맛있는 거 사줄게 - 네

 별 내용도 없는 대화에 눈물이 터졌지만 곧 참았다. 내 반대편에 있던 아내도 울컥했다. 동생한테 아이가 둘인데, 큰 아이는 할머니 집에서 할아버지랑 놀았던 기억 때문에 할아버지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다. 동생은 아이에게 할아버지가 아프다고만 하고 치매라고 말을 안 했다. 9살한테는 치매가 조금 이른가? 아버지는 치매에 걸렸지만 늘 '애들' - 손주들 - 을 언급한다. fucking bloodline. 면회 중간 중간에 너무 좋다고 하면서 머리를 감싸는 아버지 모습을 기억해 둔다. 아버지 저희 오늘 또 만날거에요. 오늘도 손주랑 영상통화 해봐요.
 
 6일부터 강릉 단오제가 시작됐다. 바다 보러 강릉 오는 관광객들은 강릉에 이런 축제가 있네, 규모가 꽤 크네 생각하고 흘려 지나가는 이벤트지만 이 지역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축제다. 단오제 기간 중에는 약간 흥청망청해도 괜찮은 분위기 같은 게 있다. 아버지 만난 기분을 상쇄하려고 낮부터 마셨다. 회사 형하고 한 잔 하고 들어와서 쉬다가 밤에는 친구 만나러 갔다가 친구 아내의 일족들도 함께 만났다. 엿장수가 엿을 사준 사람한테 마이크를 주고 노래를 시키는 이벤트가 있었다. 우리가 감자전 먹던 가게 입구에서 어린 친구가 노래를 불렀는데, 너무 잘 불러서 흥이 올랐다. 그 흥을 주체 못한 친구 아내가 노래하고 싶어해서 엿 사줬다. 친구 아내는 노래를 잘 못 불렀지만 친구가 쪼르르 달려나가서 옆에서 같이 부르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이런 걸 '부창부수'라고 한다. 어제 아내랑 코인 노래방에 갔는데, 아내가 좋아했다. '부창부수'까지는 아니지만 잘 놀았다. 아내가 노래방 가자고하면 -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함 - 따라나서야 겠다고 생각했다. 
 작년까지는 단오라고 하면 약간 들뜨는게 있었는데, 올해는 그런 게 없네. 씨름에도 퍼레이드에도 흥미가 생기질 않는다. 올해가 다 간 것 같은 기분을 1월 둘 째주랑, 2월 초에 이미 느꼈는데, 지금은 시간이 더디게 가는 느낌이다. 삶이 너무 다이나믹 하거나 너무 다이나믹 하지 않아서 그런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아니면 모든 걸 다 아버지 때문이라고 할까?
 
 다섯시가 되가네. 바다로 대표되는 도시에 살아도 찾아가지 않으면 바다를 못 보고 산다. 오늘은 바다 한 번 보고 와야겠다. 지금 출발할까?
 

AND

 토요일에 서울가서 이혼하겠다는 친구랑 술 한 잔 했다. 모텔에 빈방이 없길래 밤 열 두시에 짐을 다 빼서 텅빈 아버지 집에 누웠다. 이불 없이 맨바닥에 잠들어서 그랬는지 약간의 한기를 느끼면서 새벽 4시에 깼다. 집을 나와서 맥도날드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첫 차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4시에 햄버거 세트를 먹는 남자가 인상적이었다. 첫 버스랑 첫 전철을 타고 엄마 집에 갔다. 술이 아직 덜 깼다. 엄마는 운동가려다가 거의 다 왔다는 나를 기다렸고 내 몰골을 보더니 씻고 좀 자라고 했다. 엄마 말을 잘 들어야지, 항상 생각하는 나는 바로 눕고 싶었지만 씻고 누웠다. 10시 30분에 잠에서 깼고 술에서도 깼다. 운동에서 돌아온 엄마가 같이 밥 먹자고 했다. 내가 올 것을 알았기에 김치찌개를 끓여뒀고 돼지고기도 양념에 재워뒀다. 고기를 약불에 볶고 싶었는데, 엄마가 강불에 볶으라 하기에 엄마 말대로 했다. 엄마랑 같이 먹으면 잘 먹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평소보다 더 많이 먹고 맛있게 먹으려고 노력한다. 엄마가 오랜만에 둘이 밥 같이 먹으니 좋다고 해서 나도 좋았다. 오후 다섯시에는 오산 전통시장 구경 갔다가 줄 서서 먹는 집에서 운 좋게 줄 안서고 칼국수 먹었다. 마침 브레이크 타임이 끝난 시간에 아다리가 잘 맞았다. 이런 작은 행운을 엄마는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엄마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국수맛은 평범했지만 엄마가 내 그릇에 면을 덜어준 순간이 좋았고 국물을 맛있게 먹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엄마는 나에게 살을 좀 빼라고 하더니 밤에는 만 원짜리 옛날 통닭을 한 마리 시켜줬다. 그것도 잘 먹어야 엄마가 좋아할 것 같아서 열심히 먹었다. 이 이율배반이 사랑이다. 엄마랑 뭔가를 같이 먹는다는 행위가 이렇게나 귀하고 소중한 것이다.

 엄마랑 아버지 얘기를 하다가 엄마가 내가 처음 듣는 얘기를 해줬다. 아버지가 공부는 잘했는데, 할아버지가 뭘 시키면 제대로 하는 게 없어서 할아버지한테 많이 혼났다고 한다. 나는 할아버지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보부상도 하고 농사도 지었으니 이문에 밝았을 것이고 어느정도 손재주도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에 반해 아버지는 전형적인 문과생 타입이다. 그리고 학창 시절에 막걸리를 한 말씩(10리터겠지? 20리터 아니겠지?) 먹었다는 아버지 친구의 얘기도 전해들었다.

 어제는 평소에 안 먹는 아침을 엄마 앞이라 먹었다. 엄마 차 내가 운전해서 서울에 왔고, 엄마가 운전 차분하게 잘한다고 칭찬해줘서 기분이 좋았다. 엄마랑 올림픽대로를 탄 걸 기억해 둔다. 아버지 집주인과 며느리를 만나서 내가 준비해간 서류 주고 전세보증금 돌려받았다. 돈 3천 돌려받는 일이 이리도 번잡하고 힘들다. 내가 강릉에서 아버지 제적등본, 인감증명, 가족관계증명서, 부동산 거래 위임장을 챙겨갔다. 아버지랑 같이 주민센터가서 서류 떼는 일이 힘들었다. 주민센터 창구 앞 민원인 의자에 앉은 아버지가 똥을 지렸다, 자세하게 쓰고 싶진 않네.
 강릉 도착하자마자 엊그제 갔던 그 주민센터에 가서 아버지 요양원 전입신고 했다. 한숨 덜었다. 그러고 나서는 아버지 통장으로 들어온 전세 보증금 엄마한테 보냈다. 이 일련의 과정들이 준비부터 결과까지 너무 짜증나고 힘들었다. 그래도 끝을 봤다. 현충일에는 또 아버지 만나러 가야지. 아버지가 내 이름을 얘기하지 않은 게 한 달 넘어가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에게 '내가 누구냐' 고 묻지만 나는 아버지에게 내 이름을 묻지 않는다. 아버지에게 나를 증명할 필요가 없어서인가? 생각이 너무 나갔다.

 패닉 노래 중에 '정류장' 이라고 있는데 가사 속의 그대가 '엄마'다. 그댈 안고서 그냥 눈물만 흐르고 자꾸 눈물이 흐르고 이대로 영원히 있을수만 있다면, 하는 그 노래를 요즘 많이 듣고 자주 울컥한다.
 
1박 2일 동안 엄마랑 보낸 시간과 45세에 엄마말 잘 듣는 아이가 된 일이 좋았단 일기다.

AND

칼국수를 먹다

경기도 오산 시장 한복판 사거리 모퉁이
다들 줄 서 기다렸다가 먹는 집에서
엄마랑 칼국수를 먹는다
지역 명물 칼국수를 엄마는 몇 번이나 먹었고
나는 처음이다
엄마는 칼국수가 먹고 싶었고
아들이랑 같이 먹고 싶었다
멸치 육수 굴물에 양이 많은 평범한 칼국수
엄마는 본인 그릇의 면을 내 그릇에 덜어준다
엄마는 그러고 싶었다
나는 엄마 기분 좋으라고 맛있게 먹는다
배가 좀 부르지만 끝까지 다 먹는다
줄을 서서 먹을 맛은 아닌데 왜 줄을 서서 먹는가
생각하면 먹는다
어제는 엄마 생각하다가 울었고
오늘은 기다리던 엄마를 만났는데
칼국수 그릇에 얼굴을 묻고 몰래 울다가
엄마 얼굴 보고 웃는다
엄마 말 잘 듣고 씩씩하게 살아야지
20년 전 결심을 다시 한 번 되뇐다
돌아오는 길 내내 엄마 손을 잡고 걸으며
마음 속에 엄마 엄마, 엄마줄을 세웠다

AND

망종

남녘 들판에 모내기가 한참이다.
이 무렵에 보리 수확을 해 본 적이 있다
날씨가 지금마냥 뒤죽박죽이지 않고
절기를 따라가던 좋은 시절의 일이다
하루종일 낫으로 보리를 베고 보릿단을 탈곡기에 밀어 넣었다
믹걸리에 늦은 저녁을 먹고 바락바락 씻었는데도
자려고 누우면 온몸이 까끌거렸다
사랑하던 사람이 있었고 아이들도 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몸이 까끌거린다
보리 까스라기가 몸 깊은 곳에서 꿈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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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집 전세계약서에 임차인은 아버지고 공동명의인이 엄마다. 둘은 이혼했기 때문에 남이다. 엄마가 아버지 방 빼고 전세보증금 돌려 받으려고 하는데, 집주인이 계약서가 이러하므로 아버지가 직접 오던지 내가 위임장 써서 오던지 해야 진행하겠다고 했다,는 얘기를 엄마한테 들었다. 돈도 아버지랑 엄마한테 반씩 나눠서 준다고 한다. 아버지 전세보증금은 애초에 엄마돈이다. 자기돈 돌려받기가 힘드네. 암튼 그래서 서울간다.
 아버지 집 관련해서 추가로 가스요금 자동이체 해지도 해야하고 요양원으로 전입신고도 해야 한다. 서울에서 강릉 요양원으로 전입신고해도 기초연금은 계속 나오는지도 알아봐야 한다. 계속 신경써야 된다. 답답하네.
 
 회사에선 수의계약이나 공개입찰이냐 문제로 시끄럽다. 우리쪽은 다른 회사는 어떻게 하는지 눈치 봐가면서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설계하고 추진계획 다 세워놓은 사업을 3주째 스톱해두고 있다. 답답하네.
 
 산림기사 시험 결과는  6월 18일에 알 수 있다. 날짜가 정확하니 아버지 문제나 회사 문제보다는 답답함이 덜하지만 아직 20일이나 더 기다려야 된다. 답답하네.
 
 어제 지금 회사 내 첫 번째 사수랑 통화했다. 이 친구 이후론 사수가 없다. 좀 울적하다 했더니 상담도 받고 약 처방도 받아보라며 걱정하는 문자를 보냈다. 진짜 오랜만에 연락했는데 걱정해줘서 고마웠다. 안그래도 월요일에 병원에 다녀왔고 레피졸 처방 받았다.
 
 인생은 결정되지 않은 것들의 연속으로 이루어져있는데, 내가 결정하지 못하거나 - 이런 경우는 별로 없네. - 어떤 이유로 결정되지 않고 있는 것들을 이렇게 견디지 못해서야 살 수가 있겠나. 식욕이 있고 잠도 잘 잔다. 근데 이렇게 우울할 수가 있나?  몇 달째 욕과 술로 산다. 모든 것을 다 그만두고 싶다. 약을 잘 먹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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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댓국을 먹다 2 - 아버지랑 먹다 -

아버지랑 순댓국을 먹는다
국에 들어간 순대는 너무 뜨거운지 아버지가 잘 못 먹는 걸 알기에
고기만 순댓국에 내장 한 접시를 시켰다
아버지 국에 다대기 소금 새우젓 들깨가루 후추를 넣고 밥도 반 공기 말아준다
아버지는 고기 한 점 먹고 국물 한 입 먹고를 반복하고
나는 접시 위에 돼지 내장을 하나씩 하나씩 아버지 뚝배기에 넣는다
아버지 뚝배기 안의 고기가 줄지 않고
아버지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자꾸만 먹는다
아버지가 고기를 먹을 때 숟가락 위 고기에 새우젓의 새우를 한 두 마리씩 얹어준다
나도 이 새우같이 작은 시절이 있었겠지
아버지는 군말없이 먹는다
아니, 맛있다고 하며 먹는다
이런 걸 먹은지가 언젠지 모르겠다고 하며 먹는다
이건 질리지도 않는다고 하며 먹는다
나만이 아버지에게 내가 누군지 묻지 않는다
아버지가 내 이름을 부른 어떤 날에 나는 주루륵 울었지만
오늘 아버지는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아버지의 시계는 멈춘지 오래고
아직 나의 시간은 흐른다
바닷바람을 맞은 아버지가 좋다고 하니
정말 좋은 것이고
아버지가 좋다니 나도 좋지만
구워 줘도 잘 먹지도 못하는 소갈비가 아닌
배 터지게 먹는 순댓국으로 사랑을 다시 정의하는 이 시간이
까맣게 까맣게 타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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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거실에서 커다란 바퀴벌레를 잡았지
집 안에서 신는 슬리퍼로 때려 잡았다
벌레는 나갈 길을 찾고 있었던 것 같았고
신발 밑을 따로 세척하진 않았다
시장 깊숙한 국밥집에서 나는 내장국밥을 아내는 닭국밥을 먹고 돌아온 직후였다
나이 탓을하며 저녁 아홉시에 잠이 들었지
새벽 네시에 꿈에서 깨며 잠도 깼다
뇌수술을 하는 꿈이었지
의사는 나를 안심시키며 
머릿속에 튀어나온 것들을 꾹꾹 눌러담는 수술이고 설명했다
두 개의 수술을 동시에 했는데, 마취에 어려움을 겪었고 나머지 하나의 수술은 꿈 속에서 사라졌다
정신이 들었을 때 의사는 수술이 잘 됐다고 했지
내 앞에는 의사와 간호사 엄마와 동생이 있었다
내 아내는 어디에 있나
나랑 국밥을 함께 먹은 내 아내는 어디에 있나
그러다 잠에서 깼다
새벽 담배를 피우며 꿈과 현실을 생각했지
치매에 걸린 아버지, 투자에 실패한 엄마, 아이 둘을 키우는 동생, 나랑 국밥을 먹고 잠들기 전에 사랑한다고 말해준 아내, 화가 많고 우울증에 걸린 나
다시 깼을 땐 아침이었다
출근을 했고 장모님께 생일 축하 전화를 했다
고맙네, 소리를 듣고 잠깐 기분이 좋았지만
꿈 속에서 사라진 아내를 계속 생각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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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만

올해가 다 간 것 같은데 이번주도 아직 수요일이네
골목길, 담벼락을 넘어온 장미가 반짝거리고
더 푸를수도 없을 것 같은 하늘을 본다
계절은 네 개, 5월은 열 두 달 중에 하나일 뿐인데
왜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 하나?
어제는 네가 막국수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봐서 좋았고
나는 비틀거리도록 마셨다
오늘은 병원에 가려고 휴가를 썼지만 병원은 문을 닫았고
더 흔들리기 싫어서 처음 본 가게에서 혼자 맥주를 마신다
그리하여 더는 소망하는 것이 없이 충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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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봄

취미/자작곡 2024. 5. 13.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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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피를 못 잡고 있다.

 회사 그만두면 안되는데 생각하면서 회사 그만두는 꿈을 반복적으로 꿨다. 그러니까 꿈 속에서도 회사 그만두는 생각을 했다. 꿈 속에서 뭔가 생각한 게 오랜만이다. 지금 회사에 큰 불만이 있는건 아닌데, 출근하기가 너무 싫고 하루하루가 지겹다.

 어제는 아내랑 같이 아버지 얼굴 보고 왔다. 아버지는 요양원에 간 이후로 가장 멍한 상태였다. 말 상대가 없는 것이 아버지가 뭔가를 잊는 증상을 더  빠르게 만들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 이름을 말하진 않았지만 '아들'이라고 했다. 아버지 얼굴 보니 좋았다.

 스트레스 원인 1위가 아버지다. 아버지가 요양원에 가면 좀 괜찮을까 싶었는데 그렇지 않다. 일주일에 한 번 아버지 만나고 돌아나오면 가슴속이 어두워진다. 그게 아버지 탓은 아니다. 스트레스 원인 2위는 기후 파괴로 전세계가 몸살을 앓는 거고 3위는 하루하루 지겨운 직장 생활이다. 아내랑은 잘 지낸다. 지난 주말도 아내가 없었으면 망했을 것 같다. 묻지 않아도 되는데 굳이 발 얹어도 되는지 물어보고 아내가 내 배 위에 본인 발을 얹고 같이 누워있었던 일이 특별히 좋았다. 병원에 빨리 가야하는데 회사일이 좀 바쁘네.

 토요일에는 s누나를 오랜만에 만나서 같이 돌아다니고 점심도 먹었다. 누나랑 서로 이런저런 얘기를 털어놓았다. 그러고나면 조금 후련해지거나 괜찮아지는 마음이 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누나에게 말했다. 누나가 내 집필계획에 대해서 응원해줬다. 고맙습니다. 누나가 처음 먹어보는 꾹저구탕을 맛있게 먹어서 보기에 좋았다. 라디오 프로그램에 정답 보내놓고 누나 만나서 차 타고 이동하는 중에 상품 당첨됐길래 누나한테 가지라고 했다. 전국 방송 라디오에서 상품 당첨되도 그저 그런가 보다 한다. 병원에 빨리 가야된다. 

 로또 복권은 또 꽝이었지만 언젠가 될거라 생각한다. 이런 기본적인 낙관이 있는 인간이고 삶인데 왜 이렇게 우울할까? 월요일 아침부터 울적해서 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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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생일이 음력 3월 25일이란 건 알고 있는데, 깜빡 잊고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못하고 지나갔다. 엄마랑 이틀에 한 번 꼴로 통화하긴 하는데, 생일 축하를 못한 건 내 불찰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오늘 아침에 엄마한테 전화했는데, 엄마가 전화를 안 받았다. 운동중인가? 생각했는데, 나중에 엄마한테 걸려온 전화를 받고서야 '맞다. 엄마 오늘 건강검진 받는다 했는데.' 떠올렸다. 불효자가 된 기분이다.
 
 지난 4일에 엄마랑 JJ 삼촌이 아버지 보러 강릉 왔다갔다. 어린이날 연휴의 첫날, 경기도 오산에서 강릉까지 자동차로 7시간 걸렸다. 엄마가 일찍 도착할 줄 알고 외출 시작 시간을 11시로 잡았기에 아버지랑 나랑 둘이 밥 먹었다. 아버지 서울 떠나던 날 청량리역에서 냉면 같이 먹고 나서 거의 100일만이었다. 생갈비를 먹다가 냉면을 시켰다. 어쩌다보니 또 냉면을 먹었네. - 아버지는 냉면을 포함해서 면을 좋아한다. - 아버지는 젖가락질 조금 하다가 잘 안되니까 숟가락으로 냉면을 먹었다. 숟가락으로 먹는데도 면이랑 국물이 자꾸 테이블 위로 흐른다. 살짝 안타까웠지만 아버지는 맛있게 잘 먹었다. 오늘 기준으로 아버지 요양원 입소한 지 100일이 넘었다. 100일이란 시간이 아버지가 흘린 냉면 국물처럼 흘렀다. 100일이란 시간동안 아버지는 더 많은 일들을 잊었고 좀 더 잘 잊는 사람이 됐다.
 식사 전후로 아버지랑 요양원 바로 근처에 있는 커피숍 주차장에 있는 커다란 벚나무 그늘에 앉아서 볕도 쬐고 이런저런 얘기 했던 걸 기억해 둔다. 아내가 밭에 갔다가 주차장으로 차를 끌고 왔고 텅빈 주차장에서 주차를 어떻게 할까 머뭇거렸고 나는 차도 별로 없으니 주차 신경쓰지 말고 그냥 내리라고 했고 아내가 '아버님' 이라고 했을 때, 아버지가 반가워했던 그 순간이 그림처럼 좋았다.
 엄마랑 JJ 삼촌은 요양원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가 정말 반가워 했다. 엄마도 반가워했고 엄마를 반가워한만큼 삼촌도 반가워했다. JJ 삼촌은 방위 제대하고 바로 서울로 올라와서 우리집에 살기 시작했고 - 첫 직장을 아버지가 잡아 줌 -  내 동생이 결혼한 후에도 아버지랑 둘이 한 집에 살았기에 정말 오래 같은 집에 산 형제다. 그래서인지 거의 모든 이름을 잊은 아버지가 형제들 중에 JJ 삼촌 이름은 먼저 언급하기도 한다. 싫든 좋든 정이다. 
 아버지랑 헤어지고 엄마 삼촌 아내 나 이렇게 넷이서 감자 옹심이 먹고 헤어졌다. 삼촌한테 '네가 고생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날 밤에는 가정의 달에 내가 해야할 일을 다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나 사실은 엄마 생일도 깜빡 잊는 불효자다.
 
 우울감이 계속 깊다. 병원에 약 타러 가려고 하는데, 요즘 회사 일이 바빠서 시간 내기가 쉽지 않다. 생활에 치인다,는 말을 생각한다. 어린이날이 생일인 형에게 생일 다음날  '형 생활에 치여서 생일 축하 연락도 못했네. 축하하고 나이 먹을수록 친구는 적은 게 좋다고 정약용 선생이 말했대.' 라고 했더니 엄지척! 했다는 답장이 왔다. 그 답장이 고마웠다. 이런 사소한 기쁨과 항상 옆에 있어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아내 덕분에 하루하루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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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하

강원도 강릉시 옥천동
느티나무 무료 급식소 앞
나란히 선 느티나무 두 그루가 나날이 울창하다
무료급식을 준비하는 풍경 속
먼저 먹겠다고 치고 받는 술 취한 아저씨들
국통에서 치밀듯 올라오는 뜨거운 김과 장국 냄새
지나가는 자동차들 아랑곳 않고
나무 그늘 아래서 앙상한 얼굴로 밥을 먹는 사람들
정식 명칭은 느티나무 쉼터
쉬기 위해서도 돈이 필요한 세상
지금 한 끼 만큼은 공짜이기에
괴로운 일 다 잊고 줄지어 밥을 먹는 평등이
5월의 느티나무 아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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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엊그제 아버지 보러 다녀왔다.


 서울 가는 아내 강릉역에 내려주고 단골 커피집에서 모닝세트 먹으면서 요양원에 전화했다. '이따 두 시 쯤 갈게요.'
 집에 와서 멍하게 있다가 시간이 두 시 반이 된 걸 알았다. 이렇게 아버지를 잊게 되는구나 점점 불효자가 되는구나, 생각하면서 헐레벌떡 아버지한테 갔다. 아버지에게 가는데 장인어른한테 전화와서 요양원 도착할때까지 통화했다. 하나의 나 두 개의 아버지.

 아버지가 생활하는 4층에서 아버지 만난 게 두 번째다. 아버지 방에 가보니 아버지는 세상 편안한 얼굴로 자고 있었다. '아버지' 하고 작게 불러서 아버지를 깨웠다. 침대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켜 드리고 방 밖으로 나와서 방문 나오자마자 있는 응접실(?)에 자리를 잡았다. 아버지는 횡설수설했고 나는 아버지를 마주보고 앉았다가 옆에 앉았다가 하면서 같이 셀카도 찍고 방금 찍은 사진도 같이 봤다. 아버지는 계속 횡설수설하고 나는 계속 아버지 잘하고 있다고 얘기하는 반복이었다. 그 반복이 지금 나와 아버지의 관계다.
 

  헤어질 시간을 귀신같이 아는 아버지가 이제 가라고 하길래 소파에 앉은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아버지를 안았다. 내가 '아이고 아버지' 하면서 아버지 등을 살짝 두드렸는데 아버지도 내 등을 두드리면서 '어, 어일우' 하고 그날 처음으로 내 이름을 불렀다. '아버지, 내 이름 안 잊어버렸네' 했더니 아버지가 '너는 안 잊어버리지' 했다. 아버지는 내가 아버지를 깨웠을 때 '아이고, 네가 왔구나' 라고 했다. 아마 그때부터 무의식적으로 내 이름을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헤어질때는 덤덤했는데 집에 와서 치킨 시켜서 혼자 맥주 마시다가 많이 울었다.

 서울에서 아버지 만나고 헤어질 때 아버지가 나에게 '수고했다'단 말을 자주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가 좋은 시절이었다. C8. 어제 이 생각을 하면서 또 울었다.

 아내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나랑 아내랑 같이 아버지 보러가면 아버지가 나만 알아보고 자기는 누군지 잘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아버지가 내 이름은 잊어도 좋지만 내가 본인 아이란 걸 오랫동안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버지, 돌아오는 일요일에 또 보러 갈게요. 제 이름 또 불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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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담배를 피우며

아는 형이 프랑스 담배를 줬다
경고 문고는 영언데 담배 이름은 불어다
어떤 언어로 적어도 담배는 독이다
김일성이 피웠다던 담배 던힐을 둔힐이라 불렀던 경상도 출신 친구랑은 30년 째 친하다
20년 전에 빠로스라는 멕시코 담배를 줬던 선배랑은 지금도 가끔 연락하는 사이로 남았다
나도 그들도 여전히 담배를 피우니 연이 이어지는 일로 마음은 충분하다
찻집 입구 옆 탱자나무 가지 아래 벤치에
나에게 담배를 준 찻집 사장님과 나란히 앉아서
프랑스 담배를 피운다
탱자 잎은 푸르고 하늘도 푸르고
누가 피워도 담배 연기는 평등한 흰색이다
사장님과 나는 둘 다 어깨가 아픈데 하나는 목디스크 하나는 오십견이다
나는 회사를 그만두려고 하고 사장님은 찻집을 접으려고 한다
이렇게 평등한 세상이니
어려운 사람들 걱정하거나 떵떵거리는 놈들 부러워하는 일 없이
생에 더 바라는 것도 없으니
혁명처럼 프랑스 담배를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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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을 먹다

아내랑 삼겹살을 먹었지
동네 식당에서
둘이서 삼인분을 시켰지
밥 한 공기는 아내가
소주 한 병은 내가 먹었지
그러니 둘이서 오인분을 먹었지
둘이서 두런두런 먹었지
배를 두드리며 이 골목 저 골목 두런두런 걸었지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두런두런 나누면서
체육 공원 벤치에 앉아서 
여전히 배를 두드리며 공원에 나온 다른 삶들을 보았지
남들은 필생을 살고 우리는 허투루 사는 것 같았지
삼겹살에는 삶도 있고 살다도 있다는 허튼 생각을 했지만
기분이 좋아지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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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우

집 앞 모과나무에 잎이 나지 않았다 꽃도 피지 않있다 올해는
그러니까 죽었다 모과나무는
비를 맞아도 살아나지 않는다 모과나무는
내 몸엔 잎이 나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그렇지만 살았다 나는
비를 맞으면 춥다 나는
모과나무 앞에서 비를 맞는다
모과나무는 죽었고 나는 살았다
비는 죽었고 나는 살았다
모과나무 잘못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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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요양원에 간지 세 달 됐다.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아버지 보러 갔다. 요양원은 1층에 사무실이 있고 3층, 4층을 생활관 및 프로그램실로 쓴다. 아버지는 4층에서 생활한다. 지난 일요일엔 1층에 있는 면회공간이 춥다고 4층에서 아버지 만나라길래 아버지의 공간에 처음 가봤다. 아버지가 위에서 만나는 건 처음이라면서 좋아했다. 아버지는 본인 침대가 여기라며 방 들어가자마자 바로 오른쪽에 있는 침대를 가리켰다. 4인 1실인 아버지 방 티비에는 ebs에서 학생들 가르치는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다.

학교 선배가 요양원 처음 차렸을 때 죽음을 너무 자주 접해서 스트레스가 많다고 했었는데, 아버지 있는 요양원도 40여명 어르신들 중에 우리 아버지처럼 몸을 잘 가누는 입소자는 거의 없는 분위기였다. 아버지 만날때마다 '이 양반 심심하구나' 생각이 드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공간 전체에 삶이 꺼져있는 냄새가 흐르고 있었다.

아버지 요양원에 입소해서 큰 스트레스는 덜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버지 만나고 나면 늘 마음이 가라 앉는 이유가 이 죽음의 냄새에 있었나? 생각한다.

세계 인구는 폭증하고 있고 노인 인구도 폭증하고 있고 과인구는 지구에 해가 될 뿐이니 특정 조건에서 본인이 원하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세상이 올 수도 있겠구나 생각해본다. 아내가 가끔 어떻게 죽지?를 묻기에 이런 생각을 하나보다.

산림 기사 따려고 공부하고 있다. 2015년부터 산에서 일했고 16년에 산림청에 입사했다. 울적한 마음에 자격증 하나 갖고 싶어서 공부 시작했는데, 어렵다. 1차 cbt는 가볍게 붙었는데 2차 필답 준비가 어렵다. 마음가짐의 문제다. 내 삶에 산림기사가 절박하지 않기에 열심히 한다고 하지만 절박하게 외워지지 않는다. 한 번에 합격하고 싶고 산림기사를 따면 산림경영기술자 초급을 바로 받을 수 있으니까 그 마음으로 열심히는 한다. 27일 2차 필답 시험인데 조금 더 전력을 다해보려 한다.

아내랑은 잘 지낸다. 최근에 나랑 살아줘서 고맙단 생각을 많이하게 됐다. 나이 먹어서 그런 것 같은데, 그렇다고 그 마음이 거짓은 아니다.

아는 선생님이 포남동에 7080라이브를 인수했다기에 갔었다. 사장님이 나를 반가워 해주셔서 기분 좋았다. 나중에 주문진에 사는 선장님 한 명이 손님으로 왔는데, 작년에 무슨 축제 노래자랑에서 1등 하셨던 분이라고 했다. 사장님이 나한테 노래 하라고 해서 한 곡 했더니 잘한다고 또 하라고 해서 다섯 곡을 연달아 불렀다. 이 선장님이 내 노래를 듣고 삘 받아서 노래 하시는 중에 가게를 나왔다. 7080 라이브에서 노래 배틀 할 뻔한 인생이라니. 웃음이 나왔다.

조카들보러 구리에 한 번 다녀올까 싶다. 이런 생각 하는게 처음이고 최근이다. 나이 먹어서 그렇다. 동생 아내에겐 미안하지만 엄마가 하지 말라는 거 다 하게 해주는 나쁜 삼촌 노릇 좀 하고 싶다. 애들한테 그렇게 기억되고 싶다.


전반적으로 울적하지만 그래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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