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 2일 아버지랑 같이 있다가 헤어지고 인생 첫서브웨이 샌드위치를 먹은 날, - 짰다. 앞으로 안 먹을 듯 - 청량리역에서 강릉가는 ktx 기다리면서 쓴다.

 어제 아버지가 냉장고 좌측 구석 커피 믹스 상자에 오줌 눈 걸 발견했다. 위쪽을 벗겨놓은 커피 믹스 상자를 요강으로 착각한걸까? 엄마도 같은 자리에서 한 번 목격 했다고 했으니 아버지가 화장실이 아닌 곳에 오줌 눈 게 확인된 것만 두 번째다. 오줌 닦아내고 세제로 장판 닦고 커피믹스 80개 정도를 수돗물에 헹구면서 '아버지, 화 내는 게 아니에요, 오줌을 화장실에 눠야지 여기다 누면 어떡해요.' 계속 떠들었다. 아버지는 본인이 그럴일이 없다면서 바락바락 우기다가 아버지 혼자 사는 집에 아버지가 아니면 누가 그러냐는 내 얘기를 듣고 우기기를 멈췄다. - 나랑 아버지랑 같이 멈췄다고 봐야겠지. - 아버지가 오줌 싼 자리에 식탁을 집어 넣었다. 엎으려 들어가지 않으면 그 자리에 갈수 없으니 앞으로 그 자리엔 오줌 누지 않길 바란다. 내 바람대로 됐으면 좋겠다. 락스+ 페브리즈, 엊저녁부터 창문을 열어뒀음에도 오늘 오후에 아버지 집을 나올 때까지 아버지 집에서는 찌린내가 났다.

 어제 저녁엔 육개장을 먹고 오늘 점심엔 장어를 먹었다. 아버지는 지난주보다 먹는 모습이 더 어설퍼 보였다. 순대국만큼 익숙하지 않아서인가? 아버지는 본인이 뭘 먹는줄도 모르는데, 장어를 먹을 때보다 기본으로 나온 된장국에 밥 말아서 먹는 게 더 편해 보이는데, 장어집에 간 건 아버지랑 같이 먹은 가짓수를 늘리기 위한 내 욕심일 뿐인가, 생각했다. 장어 구워주던 아주머니가 아버지랑 내 대화를 듣고 이버지가 치매인 걸 알았고 나랑 눈 마주쳤을 때 서로 얼굴로만 웃었다. 앞으로 아버지랑은 순대국만 먹기로 한다. 아버지는 치매 걸린 이후로 밥 먹을 때 냅킨을 콧구멍에 자꾸 갖다댄다. 콧물이 흐른다고 느끼기 때문인데, 실제로 콧물이 나진 않는다. 예전엔 그런가보다 했는데 요즘은 그 모습을 보면 속으로 화가 나기도 한다. 내가 화 날 이유가 있나? 아버지가 알츠하이머성 치매란 게 짜증나서?

 지난 수요일에 술 먹고 아버지랑 통화하다가 아버지한테 짜증을 냈다. 아버지도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많이 취했기 때문에 언성 높이며 통화했던 이미지만 남았다. 다음날 통화 시간을 확인해 보니 6분이었다. 내가 만취 했을 때의 애증 시간. 아버지와 나의 거리. 고작 6분. 다음날 아침에 아버지가 어제 본인이 화를 낸 것 같다고 하길래. 그런 일 없고 다 괜찮고 잘 하고 있다고 했다. 아버지에게도 본인이 언성을 높인 이미지는 남아 있었나보다. 아버지는 그 통화를 영영 잊었지만 나는 여기에 기록으로 남겨 놓으니 영영 잊지 못할지도 모른다.

 아버지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기 때문에 일요일에도 돌봄 서비스를 하는 데이케어센터를 알아봤는데 좀 더 적극적으로 알아봐야겠다. 요양병원은 아직 너무 이르다. 엄마랑은 계속 얘기 중이고 동생에게도 이런 상황을 전달했다. 근데 어쩌면 요양병원이 이르지 않은건지도 모른다. 이것저것 많이 알아봐야겠다.

 장어 먹고 아버지랑 한참 걸었다. 아버지가 이런저런 얘기를 혼자서 떠들다가 '이렇게 살아 뭐하나 생각이 들지만 살아야지.' 라고 했다. 왜 살아야 되는데요? 물으니 대답을 못하길래. 살았으니까 살아야지요. 했다. 아버지가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게 약간 놀라웠다. 내가 살아야 한다는 글을 많이 쓰는 게 아버지 유전인가? c8 유전자.

 아버지랑 한 동네 사는 아버지 친구가 한 명 있는다. - 아버지한테 잘해주는 정말 고마운 아저씨다. - 아버지가 그 아저씨 얘기를 자꾸 하면서 전화도 안 한다면서 짜증을 냈다. 그러면서 지갑이랑 텔레비젼 리모콘을 번갈아 들면서 여기서 찾으면 된다고 했다. 휴대폰이 어떻게 생긴건지도 모르는 사람이 된 아버지 전화기로 그 아저씨한테 전화했다. 잠깐 통화하더니 친구한테 간다고 해서 나도 아버지 집을 나왔다. 그게 오후 세시다. 아버지 친구도 아버지한테 많이 지쳤을텐데. 그래도 가끔 아보지를 들여다 봐주시니 고맙다.

 우리 아버지는 정신이 나갔고 외롭고 살고 싶다.

 어제 집을 나와서 강릉역 가는 길에 비가 시작됐다. 서울가면 비 안오겠지 싶어서 비 맞고 15분을 빠르게 걸었다. 청량리역에 내렸을 때 비가 오지 않았다. 굿. 아버지는 이런 판단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됐지. 오래전에.

 오늘 아침에 서서울호수공원을 계통없이 돌았다. 공원 사이즈랑 조경을 보면서 돈이 좋구나 서울이 좋구나 같은 걸 생각했다. 미루나무를 잊고 싶지 않아서 바닥에 떨어진 미루나무 잎을 찍었다. 한 친구에게 가을이 무슨색인지 물으니 낙엽색이라 했다. 나도 이미 낙엽의 나이다. 그럼 우리 아버지는 부서진 낙엽인가? 공원을 나와서 스벅에서 라떼를 마셨다. 스벅 회장이 극렬한 시오니스트라는데, 내가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살아야지, 정신에 따라서 그냥 먹었다.

 일요일 아침. 한적한 찻집에서 커피를 마시며 전쟁도 인생도 사랑도 세상 모든 것이 끝이 언제일진 모르지만 끝이 있다는 건 안다는 일에 대해서 생각했다.

미루나무 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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