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와 육회
오래된 절에 가서
그 절보다 오래 살았다는 소나무를 보고
육회에 술을 먹었다
희석식 소주에선 솔향이 났고
날고기에선 대웅전의 오래된 나무 냄새가 났다
나보다 오래된 사랑에는
그럴리 없는 일들이 넘쳐흐르고
어려서 실던 집은 길로 바뀌었다
나보다 오래되지 않은 생활에는
뻔한 일들이 가득하고
그 아득한 뺄셈에,
아침에 본 나무를 생각하며
술만 먹는다
눈물은 잊고
날고기에 낮술만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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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02 20211202 - 어쩌다 하나씩
- 2021.11.30 20211130 - 0.1도 손해 보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한 생각
- 2021.11.20 20211120 - 어쩌다 하나씩
- 2021.11.19 20211119 - 어쩌다 하나씩
- 2021.11.18 20211118 - 2021년 11월 14일 생각
- 2021.11.11 20211111 - 요즘 생각
- 2021.11.10 20211110 - 어쩌다 하나씩
- 2021.10.19 20211019 - 아버지 생각
- 2021.10.18 20211018 - 선배 다녀가고 생각
- 2021.10.13 20211013 - 치과 생각
- 2021.10.10 20211010 - 어쩌다 하나씩
- 2021.10.10 20211010 - 어쩌다 하나씩
- 2021.10.10 20211010 - 어쩌다 하나씩
- 2021.10.08 20211008 - 필수의 반대말 1
- 2021.09.29 20210929 - 9월 끝 생각
- 2021.09.16 20210916 - 명절 즈음 아버지 생각
- 2021.09.05 20210905 - 어쩌다 하나씩
- 2021.09.03 20210903 - 어쩌다 하나씩
- 2021.09.02 20210902 - 어쩌다 하나씩
- 2021.08.22 20210822 - 요즘 한 생각
- 2021.08.15 20210815 - 어쩌다 하나씩
- 2021.08.12 20210812 - 어쩌다 하나씩
- 2021.08.03 20210803 - 홍어 먹고 생각(비관)
- 2021.07.28 20210728 - 어쩌다 하나씩
- 2021.07.19 20210719 -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 생각
- 2021.07.17 20210717 - 어쩌다 하나씩
- 2021.07.12 20210712 - 헌혈 생각
- 2021.07.04 20210704 - 7월 3일 일기
- 2021.07.01 20210701 - 유명해지고 싶다는 말을 아무데서나 하고 다니는 병에 걸린 일기
- 2021.06.24 20210624 - 어쩌다 하나씩
회사에 밥 해주는 선생님이 있는데, 이 선생님은 기간제근로자다. 이 선생님이 해주는 점심을 나를 제외한 직원 포함 15명 정도가 먹는다. 그 수가 많은 때는 20명이 넘기도 한다. 이 누나가 해주는 밥을 먹는 사람들끼리 이해 관계가 있는 일이라 나는 거기 끼기 싫어서 밥을 따로 먹는다. 이해 관계라 했지만 다 지들 편하자고 하는 일이다. 예를들면 우리회사에서 제일 직급이 높은 사람은 스스로 밥 해 먹을 줄 모르는 사람이라 이 누나가 점심 먹고 남은 것을 많이 챙겨 준다. 암튼 이런 관계에서 밥값으로 한 달에 5만원 씩 내고 점심을 잘 챙겨 먹는다.
어제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는데, 기간제 선생님들 - 밥 누나 포함 10명 - 이 12월 10일에 본인들 일이 끝나고 본인들 월차가 3~5일까지 남았으니 12월에는 밥값도 내기 싫고 자기들 도시락 싸가지고 다닐테니 이 누나한테 오늘까지만 밥 해주면 된다고 했다고 했다. 그러면 이 누나는 자기랑 같은 기간제근로자들 때문에 강제로 작업을 종료 당하는 꼴이 된다.
참아볼까 싶었지만 아까 낮에 한 마디 했다. 당신들이 무슨 권리로 당신들과 같은 선에 있는 사람을 무장해제 시켜버리느냐는 맥락이었다. 누군가는 이해했고 누군가는 이 새끼가 갑질한다 생각했다. 잠깐 마주친 눈빛으로도 그걸 알 수 있다.
인구 비례로 따지면 시골 사람들만의 일은 아니겠지만 시골 사람들 특유의 내 손해는 0.1도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싫다. 그런 삶을 살아도 여지껏 잘 살아온 사람들이 싫다. 누가 봐도 빤히 보이는 그런 일들이 싫다.
그걸 알 수 있는 내가 너무 싫다. 오늘의 첫 문단을 쓴 내가 너무 싫다. 자기들 손해는 0.1도 보고 싶지 않은 시골 아저씨들이 싫고 그 무리에 나의 뮤즈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속해 있는 것이 싫다.
그런 마음을 아는 내가 싫고 그런 나를 혐오하는 시기도 있었지만 내가 그들과 똑같이 행동할 것이 아니므로, 지금은 그런 마음을 아는 지금의 내가 좋다. 이것은 또 다른 권력인가?
오늘 퇴근하면 H누나네서 커피 한 잔 먹고 집에 와서 운동하고 잘랬는데, 현실은 회사에서의 어떤 일들로 술 한 잔 먹고 집에와서 바보같이 일기 쓰고 있다.
-> 회사에 출근하면 찍는 풍경.
지겨운 사랑
조금 지겹다는 생각이 들고
지겹다는 것이 사치라는 생각도 지겹다는 생각이 들고
한 번 지겨워지면 도로 물릴 수 없다고
단정짓는 사람이 됐지만
우리 사이 말고는 모든 게 다 끝났다, 고 할 수 있어서
지겹지만 좋은
겨울
봄보다 더한 겨울이다
여름보다 더한 봄도 가능한 일이다
여름보다 더한 여름도 여름이라 불리고
겨울보다 더한 겨울도 겨울이라 불리므로
지금은 겨울이다
봄보다 더한
쉬고 싶어 휴가를 내고
단골집 커피의 첫 모금에서 안도감을 느낀다
아직까진 괜찮다는 뜻이다
휴가도 커피도 없고
봄보다 더하기만한 겨울만 있어도
살아 있다면 그때까진 괜찮다는 뜻이다
봄보다 더한 겨울이다
두 잔 째 커피의 첫 모금은
항상 조금 더 살고 싶어지는 맛이다
동생 둘째 아이 돌이라 지난 주말에 엄마집에 아버지랑 이모들 동생네 식구 다 모여서 밥 한끼 먹었다. 나는 산불근무라 못갔다. 가고 싶었던 건 아니고 아무렇지도 않을 줄 알았는데, 아버지 얼굴을 못 봐서 그런지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일요일 근무서고 8시 퇴근해서 집에 가다가 엄마한테 전화했다. 자다가 받은 목소리, 손님들 다 가고 집을 치웠는데 아직 다 못 치웠고 kbs주말 드라마 틀어 놓고 누워 있다고 했다. 몇 마디 오고 갔는데 기억나는 건 없다. 전화 끊고 나서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구나 느꼈다. 눈물이 났다. 바로 이어서 이버지한테 전화했다. 어린이들 보니 좋았는지, 집에 잘 왔는지, 얘기하고 전화 끊었다. 아버지랑 통화하고 아버지가 나를 걱정하는구나 느꼈다.
사랑과 걱정. 같은말인가.
2021년 11월 14일을 기억하고 싶어서 기록해둔다.
이혼한 친구에게 풀 죽어 있지 말라고 했다. 아직 법적으로 이혼 절차가 끝나진 않았다. 몇 달 전에 이혼한다고 했을 때, 이혼을 독려했었다. - 어차피 이혼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 이번에는 고소장까지 보여주면서 이혼한다기에 ‘순리대로 하라’고 메시지 보내고 가만히 있었다. - 이번엔 진짜구나 싶었다. - 먼저 연락했을 때 어린이를 너무 오래 못 봐서 미칠 것 같다고 했었는데, 오늘 연락에는 지난 주말에 같이 영화도 보고 밥도 먹었다고 한다. 다행이라 생각했다. 모든 관계에서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이 상충하면 서로 얼굴 안 보는 게 답일 것이다.
부모님이 이혼해서 그런지 이혼에 무심한 편이다. - 우리 부모가 내가 나이 먹고 이혼한 탓도 있겠다. - 이혼이 뭐 대순가.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헤어진다고 인연이 끝나는 것은 아니고 그것이 꼭 자식 때문은 아니다. - 자식이 없어서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지도 모른다. -
아버지 노인장기요양보험 신청을 미루고 있다. 신청하고 의사 소견서 받으러 갈 때, 아버지 만나면 된다. 먼저 같이 병원 다녀온 지 거의 한 달이다. 아버지가 어떤 상태인지. 매일 통화하는 걸로는 알 수가 없다. 한 동네 산다고 해도 일정 시간 이상을 함께 보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가장 좋은 건 한 집에 사는 건데,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고 아버지가 고향이나 다름없는 서울 신월동 떠나서 태어난 강릉으로 오는 게 좋은 일인지도 알 수 없다. 이달 안에 장기요양보험 신청까지는 해야겠다.
오늘 아침에 통화했을 때, 아버지는 들떠있었다. 동생 아이 돌잔치 때문에 경기도 오산 엄마 집에 가는 일 때문이다. 명절, 제사, 기타 등등 엄마 집에 가는 날이면 늘 밝은 목소리가. 그때마다 우리 아버지 많이 외롭구나, 생각한다. 많이 외로웠고 지금도 많이 외롭다. 외롭다는 사실은 알까? 나는 아내 앞에서도 막 던지는 외롭다는 말을 아버지가 하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다. 조만간 ‘아버지 안 외로워요?’ 물어봐야겠다.
‘울화가 치미는 사랑’ 은 사랑인가? 사랑인가, 물으면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이다. 울화란 건 시간이 지나면 덜 치미게 되고 사라지는 법이다. 분노의 사랑은 사랑으로 끝나도 사랑이 아니다. 나는 왜 아내에게 울화가 치밀었나? 그걸 꼼꼼하게 생각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나랑 안 놀아줘선데, 별로 화낼 일도 아니다. 바빠서 못 놀아주는 걸 어쩌겠나. 나는 술이나 마셔야지. 울화의 속성은 사라지는 것인데, 사랑의 속성은 뭘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예전에 ‘일자무식 뮤즈’란 시를 썼는데, 나의 뮤즈랑 토요일에 산에서 놀기로 했다. 회사에서 나는 관리자고 이 친구는 기간제근로자(말이 기간제지 일용직)다, 친구니까 난 크게 신경쓰지 않지만 이 친구는 내가 아무 말 안해도 약간 내 눈치를 보게 된다. 친구는 여전히 나에게 어떤 영감을 주고 ‘살아야지’하는 마음을 갖게 만든다. 여름에 이 친구네 집에서 한 번 놀았다. 자기 집에 와서 자고가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때 이 친구는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토요일에 함께할 생각에 친구가 요즘 약간 들떠있는데, 아버지가 들뜬 것과 같은 느낌이다. 동네 사람 5명인 산골짜기 마을에 혼자 사는 44세 독신남의 외로움을 헤아려 볼 뿐이다. 토요일에 ‘KP야 외로워?' 물어봐야겠다. 친구야. 네 얘기로 등단하면 한턱 쏠게.
갑자기 생각나서 혼자 웃고 말았는데, 요즘 많이 하는 말 중에 하나가 '형, 오늘 한잔 하나요?' 다. 회사에서 JK형에게 하루에 한 번씩 묻는다. 나는 한 잔 하고 싶은건가? 자꾸 웃음이 나네.
세상과 반대로 나는 대체로 다 잘 되고 있다.
-> 산엔 겨울이 왔다.
너와 나의 국도
홀수 번호는 남북방향
짝수 번호는 동서방향
35번 국도는 강릉에서 부산
42번 국도는 인천에서 동해
두 국도가 교차하는 사통발달
정선군 임계면 교차로
만나자마자 헤어져야하는 길 위에서
우리는 가로지르다 만났고
느린 걸음으로 헤어졌다
길은 정해져 있음을
둘 다 알고 있었지만
시간을 멈출 순 없으니 늦추고라도 싶었다
각자의 끝에서 돌아오는 길에 다시 만날수도 있으니
끝이 끝이 아니길 바라며
오늘,
너와 나의 교차로에서 잠깐 너를 기다렸다
서울 여행
강릉역 아침 8시, 얼마전 위생 문제가 뉴스에 나온 도넛 체인점에서 커피를 사 먹고 출발. 뚜껑은 빼고 주세요. 뉴스 덕분에 도넛이 덜 팔려서 알바들은 몸은 편하고 마음이 불편해졌을까?
청량리역 1번 출구 계단에서 사람들 지나칠 때마다 연신 고개를 숙이고 구걸하는 사람을 지나칠 때는 나도 옆 사람도 계단을 내려가는 걸음이 빨라지고 그 속도 그대로 계단 끝까지 내려옴.
누가 사 먹는지 모르는 아홉 개 이천 원짜리 호두과자는 지하철 역 가판대에 냄새도 없이 자리잡고 있고 오늘도 사 먹지 못했다. 호주머니에 잔돈이 있었어도 사 먹지 않았을 거란 생각.
끼치산역에서 내려 백구사 언덕 넘어 신월동으로 향하는 고갯길엔 기울어진 언덕에 가지런히 자리잡은 빌라라 부르는 집에서 수평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사람들 사람들.
아버지 아픈 이후로 종종 발발하는 엄마, 아버지, 나 이렇게 세 사람의 점심식사. 어린시절로 돌아간듯 편안하면서도 왠지 어색한 식사. 오늘은 고등어조림과 임연수 구이. 셋 중 어색한 건 나 뿐인가?
혈압약을 타러간 동네 병원의 익숙함. 병원에 들어가자 마자 커피랑 빵 냄새 맡으며 곧바로 2층으로 54×××× 아버지 주민번호를 대고 의사와 잠깐의 대화. 약 3개월치 드릴게요.
치매약을 타러간 대학병원의 익숙함. 환자와 보호자 출입증을 출력하고 - 내가 아버지의 보호자구나 - 예약 종이에 찍힌 바코드를 수납 기계에 갖다대고 긴 복도를 기역자로 돌아 그 끝에 신경과. 담당 의사의 나긋한 말투도 귀에 익는다. 6개월 전 첫 검사랑 큰 차이는 없네요. 약 4개월치 드릴게요.
처음 떼 본 아버지 진단서. 최종진단 병명은 '상세불명의 알츠하이머병에서의 치매'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계속 진단서를 들여다보며 머릿속엔 장기요양등급에 관한 생각. 어떤 드라마를 본다는데 채널도 제목도 주인공도 모르고 줄거리도 설명 못하는 우리 아버지. 계속 혼자 살아도 되는걸까?
아버지 집 나와 시장통에서 만난 엎드려 기는 걸인을 노점상 좌판 반대편으로 비켜 지나쳤다. 얼마나 많은 일들을 무심한듯 지나쳐야 생이 맨 끝으로, 끝으로 향하는 생의 끝으로 향할까.
본인 때문에 자꾸 서울에 오는 내게 미안해 하면서도 날 만나면 좋아하는 아버지, 병원 가기 며칠 전부터 전화기 넘어 목소리가 들떠있는 아버지, 내가 태어났을 때 본인이 몇 살이었는지 내게 묻는 아버지, 40대의 내가 아버지의 그때를 닮아버린 70살의 아버지.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술 취한 아저씨의 전화를 받았다. 일감이 있다는 소개로 전화핬다기에 어디 사시냐 물었더니 안산이라 했다. 아저씨는 술이 많이 취했지만 내게 미안하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먹고 사는 일은 술에 취해서도 짠내가 난다.
- > 아버지 만나고 돌아오는 기차에서는 강박적으로 뭔가를 적는다. 그래도 끝나는 건 없지만 그래야 뭔가는 끝나는 것 같기에 그렇다.
아버지가 나빠지지 않고 있는 건 정말 다행스랍고 좋은 일이다. 이제 문제는 돈이다. 아버지한테는는 엄마에게 생활비를 줘야 한다는 깊은 강박이 있다. 실업급야 수급이 끝나고 아버지 수입은 연금 등 월 75만 원. 기초연금 30만 원 아버지가 쓰고 국민연금 45만 원 엄마가 쓴다. 엄마는 수입 제로인 상태에서 보험료 등으로 월 100만원이 기본으로 나간다.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보면 이게 큰 액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수입 없이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오늘 아버지 검사비랑 약값이 30만원 나왔다. 네 달치 약값이니까 큰 액수는 아니다. 일단 체크카드만 쓰는 내 통장에 돈이 없어서 아버지 신용카드로 계산했다. 이제 아버지 수입이 없으니까 담달 카드결제일 전에 아버지 통장에 돈 채워 놔야지. 가까운 사람이 아프다면 빚을 내서라도 낫게하고 싶은게 인간이고 사랑이다(인지상정). 엄마에겐 어떤, 계획이 있을까?
가난한 사람들에게 아픔은 돈이고 돈은 걱정이다.
-> 이버지한테 주 5회, 아침마다 배달되기 시작한 도시락.
일기 쓰고 잔다고 하니 아내가 ‘이벤트가 있었네’라고 한다. 이벤트가 없어도 일기는 쓸 수 있지만 뭐 아무래도 좋다.
삽당령, 해발 680미터, 정선과 강릉의 경계, 우리 회사 사무실이 있는 곳이다. 올해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 친구 하나는 네 번 다녀갔는데, 올해 안에 한 번 더 올 것 같다. 책길피에 꽂아둔 '영' 누나랑은 해발 1000미터에 위치한 막사에서 라면 끓여 먹었고 다른 방문객들과는 사무실 옆에 유리온실에서 화로에 고기 구워 먹었다.
삽당령에 SJ형이 다녀갔다. 대학교 2년 선배다. 20살에 만났으니 20년 넘게 알고 지냈다. 이 형 얼굴 보기도 전에 다른 선배들이 ‘너 SJ랑 닮았다’고 했고 꼭 그 얘기 때문은 아니지만 학생 때 많이 붙어 다녔다. - 10년 전에 서울 떠난 후론 자주 연락하진 않았지만 내가 무척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어렸을 때는, 그래도 형인데 너무 막 대하는 건 아닌가 생각한 적도 있는데, 이제는 둘다 오십 바라보는 나이고 이 나이에 그럴일도 없으니 그저 좋은 관계다. 한 달 전에 밤 11시에 문득 문자를 보냈다. ‘형, 나 술 안 마셨어’ - 진짜로 안 마심 - 문자 보내고 바로 전화 와서 오랜만에 통화했다. 놀러 한 번 오라고 했더니 진짜 왔다. 좋다. 마지막으로 얼굴 본 게 강화도 살 때니까 거의 칠 팔년만에 얼굴 봤다.
제목에 선배라고 쓰는 바람에 생각 - 선생은 먼저 태어난 사람인데, 선배는 뭐지? 먼저 배를 탄 사람인가? 한자를 찾아보니 어떤 무리(학교, 직장, 업계)에 먼저 있었던 사람으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
금요일 저녁에 고기 먹고, 토요일 아침엔 채종원 투어, 그 후엔 보헤미안 본점에서 하우스 블랜드, 점심은 막국수, 봉봉에 들러서 커피 두 잔씩 마시고 우리 집에도 잠깐 들렀다. - 30개월 넘게 살고 있는 지금 우리집에 들어와 본 사람이 입주청소 해주셨던 분들 포함해서 10명 안 넘음 - 많은 얘기들이 오갔다. 나이 먹었어도 예전이랑 달라진 건 없어서 내가 투정하면 형이 받아주는 식이다. 나의 어떤 토로에 몇 가지 얘기를 해줬고 그게 위로가 됐다.
오래된 사람에 대해서 생각한다. 본인 나이를 반으로 잘라서 그것보다 오래 알았고 여전히 좋은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오래된 사람은 편하다. 부끄러웠던 과거를 함께 했고 기억하는 사이라서 그렇다. 경포 호수에서 오리배를 같이 타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사이랄까? 이번에 선배랑은 오리배를 타지 않았지만 다음번에 오래된 사람을 강릉에서 만나면 오리배를 타야겠다. 친구 NH랑은 재작년에 2인용 자전거를 타고 경포 호수를 한 바퀴 돌았다. 2년 전에 아내랑 오리배를 탔는데, 그게 내 인생 첫 오리배였다. 나는 누구랑 두 번째 오리배를 타게될까? 중요하진 않다.
2011년에 부안에서 이 형이 나를 찍어준 사진이 내 구글 포토에 들어있다. 이번에도 이 형이 나를 많이 찍어줬다. 나를 찍어준 사람은 누가 있지? 생각해보니 세 명이다. 아내, 이 형, 고구미. - 아니다. DS까지 네 명이다. - SNS에 자기 애들 사진 많이 올라오는데, 사랑이다. 누군가를 찍어주는 건 사랑이다. 나도 사람은 좀처럼 찍지 않는데, 아내는 많이 찍는다. 사랑인가? 물으니 사랑이다. 위에 네 사람은 다 내가 찍어줬던 사람들이다. 너 나한테 딱 찍혔어, 이런 의미로 사진을 찍는다는 표현을 쓰나보다.
내가 사진에 담았던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엄마는 몇 번 찍었었고 컷들도 기억이 나는데, 아버지는 찍은 기억이 없다. 내일 만나면 아버지도 기록에 남겨둘까? 억지로 그러고 싶진 않다. 찍는 것이 사랑이라고 했기 때문에 아버지를 이미지로 남기는게 더 어색해져 버렸다. 요즘 아버지랑 통화할 때, 아버지가 나를 빨리 만나고 싶어하는 걸 느낀다. 내 마음은 약간의 부담과 그 정도의 덤덤함 사이에 있다. 아버지랑 나 사이는 사랑인가? 아버지의 의존인가? 나의 책임감인가? 그게 뭐든, 중요한 건 아버지는 아프고 나는 아버지를 그냥 두고 싶지 않다는 거다.
선배 얘기가 아버지 얘기로 끝나버렸다. 중요하진 않다.
선배한테 내 생활 터전을 보여준 일이 좋았다. 나는 관종이 천성이다.
2011년, 부안에서 SJ형이 찍어준 나. 이때 서른 넷인데, 마흔 넷에 보니 많이 어리다.
화이자 2차 백신 맞았다. 8시 반에 병원 도착. 나랑 비슷한 시간에 도착한 사람들도 꽤 있었다. 접수 시작합니다, 말 나오자 마자 접수대에 앉은 덕분에 1등으로 주사 맞았다. 무슨 의미가 있겠나. 현재 시간 17시 가까워지고 있는데, 몸에 열감이 없다. 다행이다. 이건 의미가 있다.
오후엔 치과에 다녀왔다. 2015년에 강릉에 이사와서 그 해였는지 그 다음해였는지 왼쪽 아래 센터 어금니에 신경치료 받고 금을 씌웠다. 오른쪽 아래 센터 어금니에 - 오늘 갔던 병원에선 7번이라고 불렀다. 뭔가 순서가 있겠지. - 떼운 자리가 떨어져서 혀를 갖다대면 구멍을 느낀지 2년 이상 된 것 같은데, 최근에 그 이가 시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임플란트 얘기는 나오지 않았고 - 아직은 임플란트 하고 싶지 않다. - 구멍난 자리를 금으로 메꾼다고 한다. 무식하게 버티지 않고 빠르게 치과에 가길 잘 한 것 같다.
사실 더 아플 때까지 치과에 갈 생각이 없었는데, 요즘 운동하면서 ‘갯마을 차차차’를 보고 있고 - 주인공이 치과 의사임 - 지난주에 삽당령 다녀간 친구가 이 아픈거 묵히지 말고 병원 빨리 가라는 얘기를 했기에 적절한 시기에 잘 다녀왔다. 이런 의미없을 수도 없는 인과관계에 의해서 어떤 행동을 하게 되는 일이 마음에 든다. 낮에 어떤 가수에 대해서 한 참 얘기했는데, 퇴근길 라디오에서 그 가수의 노래가 나올때 세계가 다 연결되어 있는 걸 느낀다. 어떤 연결고리를 찾아가는 것에 재미를 느끼는 편이다.
치과 마취도 오랜만에 했다. 인간의 몸에서 가장 말랑말랑하고 연약한 부위인 잇몸에 주삿바늘을 찔러 넣는다. 순대 허파에 이쑤씨개를 찌르는 것과 비슷한 느낌 아닐까. 내가 치과 의사라면 환자를 압도하는 그 상황에 기분 좋을 것 같다. 다른 의사들도 마찬가지고 면도를 해주는 이발사도 마찬가지다. 의사란 건 누군가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직업이다. - 마음대로 해선 안되지만 - 나는 항상 당하는 쪽이지만 면도도 그렇고 치과 마취도 좋다. 최초에 주삿 바늘이 들어가는 따끔함과 마취약을 주입하는 잠깐의 시간에 짜릿함을 느낀다. 통증을 사랑하는게 아니라 무방비로 누워있는 걸 좋아하는 건지도 모른다. 나는 무방비 상태도 좋아하지만 무방비란 단어 자체에 희열을 느낀다.
오늘 다녀온 치과는 xx치과 강릉점이다. 치과도 체인점인 세상이다. - 마지막까지 체인점이 되지 않을 업종은 무엇일까? 철물점? - 강릉에 치과가 억수로 많지만 JK형이 임플란트 하러 다니는 치과라 선택했다. 환자맞이와 진료, 예약까지 뭔가 시스템화가 잘 된 느낌을 받았다. 시스템은 안락하고 사람들은 그 시스템에 편안함을 느낀다. 나야 겉으론 안그런 척하면서도 알고보면 시스템을 동경하고 그 앞에 나약해지는 타입이지만 얼핏봐서는 전혀 그럴거 같지 않은 JK형이 - 정선군 임계면 50세 독신남 - 주식시장에 대해서도 잘 알고 고도화된 자본주의 시스템을 좋아한다는 건 의외긴 하다. - 대형마트에서 일했던 경험이 어느정도 형에게 영향을 줬다고 생각한다. - 인생살이란 건 곱씹어 생각해 볼 수록 내 마음에서 빗겨나간 일 뿐이다.
황정은 에세이가 나와서 읽고있는데, 제목이 ‘일기’라 나도 일기 써봤다. 황정은을 읽으면 뭐라도 써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책에는 작가의 동거인 얘기가 나온다. 그 동거인에게 약간의 질투를 느꼈다.
-> 사무실 마당 백합나무. 시작하는 가을.
생활
월요일 아침, 출근하기 싫어서 전화를 안 받고 아침밥을 해 먹고 방을 치우고 빨래를 널면 생활이 있나 반찬을 사오고 또 밥을 먹고 맥주도 한 캔 곁들이면 거기엔 생활이 있나 전화를 계속 받지않고 문자도 씹고 모두가 행복한 라디오를 들으며 맥주를 한 캔 더 마시면 그 자리엔 생활이 있나 보고 싶던 사람에게 전화를 해 다른 사람의 안부를 묻고 전화를 끊자마자 울어버리는 이 하루를 무어라 부를까
장마
눅눅한 기타 소리
습기를 먹고 조용히 타들어 가는 담배
방 안에 갇혀 가라 앉는 연기
참새 한 마리 지붕 아래로 비를 피하고
빗물에 마음이 잠긴다
겨울
날 추워지니 자신이 없다
가을이 좋았던 것도 아니고
봄을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찬바람 따라 머릿속이 달그락거린다
초록이 끝난 시절
저무는 계절은 하루 아침에 오고
조금 지겹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간만에 기타줄을 갈았다. 1번줄 반대로 감은 걸 뒤늦게 알아채고 풀어서 다시 감았다. 가지런하고 예쁘게 감긴 4번줄 빼고는 다 성에 안찬다. 16%의 성공. 어찌보면 높은 확률이다. 작은 성공으로 생각하면 긍정이고 철저한 실패로 생각하면 부정이다. 나는 어떤 쪽인가. 성에 안찬다는 것은 부정이다. 나는 부정적인 사람인가. 그렇지 않다. 때때로 부정적이 된다.
지난주에 친구랑 술 먹고 노래방에 갔다. 친구가 나 노래 부르는 걸 찍어줬다. 다음날 그걸 보다가 놀때는 진심으로 노는구나, 생각했다. 다른 일에도 그러면 좋을텐데. 그렇지 않다. 술 취했을 때 쉽게 진심이 된다. 나는 쉬운 사람인가. 그렇진 않다. 술을 자주 먹지만 진심은 가벼운 것이 아니다. 엊그제 사무실 형들하고 술을 마셨다. 늘 그렇듯 짧은 시간 동안 많이 마셨다. 나는 확실히 술로 해소하는 무언가가 있다. 술을 빨리 많이 마실 뿐이지 술 중독은 아니다. 술 취해서 집에 돌아오다가 길에서 잠들지 말아야지 결심한 후로 그러지 않았다. 잘하고 있다.
머릿속에 넓은 길이 끝없이 펼쳐지는 상상을 해본다. 성공, 미래 뭐 그런 이미지다. 이번주에는 오랜만에 복권을 사야겠다. 아내가 복권 왜 사냐고 물으면, '일확천금'이라고 답한다. 돈의 크기에 따라서 길의 넓이와 길이가 달라진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해서 확실하진 않다. 머릿속이 시원하게 트이는 걸 한 번 느껴 보고 싶다. 그게 꼭 돈이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일단 돈만 떠오르네. 그게 나다.
만화 원피스를 아직도 매주 보고 있다. 끝없이 성장하는 소년의 이야기.로는 내 마지막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 5년 안에는 끝나겠지. 30년을 연재하는 작가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 내 안의 소년이 아직 나도 뭔가 할 수 있다고 자꾸만 나를 독촉하기 때문에 이 만화를 끊을 수가 없다. 만화는 현실이 아니다. 인간이 어떤 작품에(게임, 만화, 미술, 영화, 문학... 통칭 예술이라 하자.) 몰두하는 이유는 그것이 현실에서 부재한 것을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다. 나를 예로 들면 끝나지 않는 모험의 이야기라고 하면서 일본식 턴제 rpg 게임을 주기적으로 클리어한다. 파판3는 공략이 필요없을 정도로 많이 했는데도 여전히 재미있다.
기타를 살까? 스위치를 살까? 턴테이블 오디오를 살까? 무선이어폰을 살까? 청소기를 살까?
뭔가를 살까, 싶다가도 생각해보면 그 물건들 없어도 그만이어서 사지 않게 된다. 어제 마트에 가서 쌀과 김치를 샀고, 오늘 아침 출근길에 자동차에 기름을 넣었다. 어디까지가 필수이고 어디까지가 재미인가? 삶은 필수인가 재미인가? 필수의 반대말을 생각해본다.
뭔가 답답해서 적었다.
내일 친구가 딸 아이랑 삽당령에 오기로 했다. 아이가 세 번째 방문이니까 친구는 네 번째 방문이다. 친구가 오는 건 좋지만 친구 아이가 여전히 아프기 때문에 내 마음도 편치않다. 친구는 오죽할까. 친구가 삽당령 산을 좋아해서 다행이다. 나도 친구가 오는 게 위로가 된다. 서로 위로가 되는 셈이다. 마음은 여전히 어둡지만 술 마시고 놀때는 진심이니까 잼있게 놀아야겠다.
매일 보는 전나문데 그저께 아침에 유난히 이쁘게 보이길래 찍어둠.
9월 7일에 코로나 백신 1차 맞았다. 대략 그때부터니까 20일 넘게 기운이 안 좋다. 기운이 안 좋으니까 기분도 안 좋다. 백신 맞기전에 송충이 털 알러지로 고생한 일이 있었다. 그때부터 침체가 시작됐으니 다운된지 한 달이 넘었다. 뭐가 안 좋냐고 묻는다면 명쾌하게 답할 순 없다. 확실한 건 하락흐름이라는 것이다. 그 기간 중에 명절도, 내 생일도 있었는데 왜 그럴까? 해가 짧아지고 있어서인가. 뭔가 맘에 안든다. 아니, 다 맘에 안든다. 나한테도 아버지한테도 사람들한테도 아내한테도 지쳤다. 회사일도 마찬가지다. 사랑하면 다 괜찮지 않은가, 묻는다면 항상 그렇진 않다. 사랑은 모든 것을 포괄하므로 항상 그런 것과 항상 그렇지 않은 것 모두 사랑이다. 사랑은 긍정적이다.
존재 증명에 대해서 생각한다. 누군가가 읽을 것을 생각하며 이 글을 쓰는 것, 노래를 만드는 것, 시를 쓰는 것, 인스타에 사진을 올리는 것, 유튜브를 하는 것처럼 외부에 드러나는 활동이 아니더라도 혼자서 하는 활동을 제외하면 인간으로 산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존재 증명이다. 가장 존재 증명이 아닌일이 혼자 사는 사람이 잠을 자는 행위인 것 같다. 그마저도 나 어제 2시간 뿐이 못잤어, 하고 누군가에게 말하거나 SNS에 올리면 존재 증명이 돼버린다. 존재 증명은 유명해지고 싶다는 마음과 같은 맥락이다.
의뢰를 받고 노래를 하나 만들었는데, 클라이언트가 좋다고 했다. 기분이 막 좋아야 하는데, 막 좋지는 않다. 인스타에 올린 턱걸이 동영상에 댓글이 달린다. 이 역시 기분이 막 좋아야 하는데, 막 좋지는 않다. 만약에 내가, 소망대로 유명해져서 인스타에 사진 올리면 몇 만명이 좋아요 누른다고 기분이 막 좋을 거 같지 않다. 유명해지고 싶다는 마음도 허상이다.
이럴 때 자주 나오는 해답이 너 자신의 삶을 살아라, 류다. 내가 나 자신의 삶을 살고 있지 않나?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이런 의지가 있는 걸 보면 나는 어느정도는 나 자신의 삶을 살고 있다.
오늘 출근길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털복숭이가 되서 산에서 혼자 사는 생각을 했다. 자연인처럼 티비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만 증명하면 되는 존재 증명의 삶. 이런 생각한 게 엄청 오랜만이다.
C8 나아지겠지.
급작스럽게 찾아온 안개 속에 혼자 일찍 찾아온 가을 (삽당령)
우리 회사 별로 안 바쁘다고 떠들고 다닌 죄로 한 달 넘게 매우 바쁘다. 출근해서 사진 몇 장 찍을 여유는 있으니 상관없다. 요즘 아버지 생각을 많이 한다. 먼저 서울 다녀오고 두 달간 얼굴을 못 봤다. 전화 통화는 매일 하지만 두 달이란 시간은 꽤 멀게 느껴진다. 작년 이맘때를 생각하면 상황이 나쁘진 않다.
아버지는 혼자서 약통에 7개의 알약을 채워 넣는다. 계절을 잊지는 않는다. 날짜 개념을 가지려고 한다. - 평일에는 어떤 알람이 울리는지 정확히 아침 7시 20분에 내게 전화를 하는데, 토요일 일요일은 나 쉬는 날이라고 먼저 전화하지 않아서 아침에 내가 먼저 전화한다. - 요 며칠 정해진 시간에 전화가 오지 않았다. 새벽에 일어나서 앞산에 운동을 간다기에 어제 퇴근길에 전화해서 저 일찍 일어나니까 아무 때나 전화해도 된다고 했더니 오늘은 7시 10분에 산에 가려고 한다면서 영상통화로 전화를 하셨다. - 영상통화 하려고 한 게 아닌데 그렇게 된 것이다.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 아버지에게 코로나 재난지원금에 대해서 두 번에 걸쳐서 한참을 설명했고 생년 끝자리 대상 요일이 아닌데도 은행에서 친절하게 ‘그거’ 해줬다고 한다.
걱정되는 점은 약을 잘 먹고 있다는데, 정말 잘 먹고 있는지, 잘 씻고 다니시는 건지, 먹는 것도 걱정하지 말라는데, 엄마가 두 달 전에 해 준 그거가 – 명칭은 앞으로도 떠올리지 못할 것이다. - 아직도 냉장고에 있다는데, 뭐 드시고 사시는지 등이다. 막상 만나보면 <초기치매 독거노인>의 삶을 잘 꾸려가고 있구나, 할 수도 있다.
요즘 피곤하다거나 바쁘다고 하면 아버지가 괜한 걱정을 하시니 그런 말은 안 하려고 한다. 내 목소리에 침울하거나 부정적인 기운이 들어있을 때도 금방 알아채기 때문에 가능하면 밝은 목소리로 통화하려고 한다. 부정(父情)이다. 엄마랑 가끔 통화하면 항상 아내 잘 있는지 물어본다. 장인어른도 아내랑 통화할 때 내 얘기를 묻는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부모가 돌보지 않으면 아이는 죽으니 거기에서 시작된 정의 고리는 끊기 어려운 것이다.
명절에 경기도 오산 엄마 집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23일에는 고용센터에 가야 해서 서울 아버지 집에서 아버지를 만난다.- 23일은 내 생일인데, 아버지가 내 생일을 기억할까? 내가 먼저 얘기할까? 71살 아저씨가 44살 먹은 큰아이 생일이 언제인지 기억하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다. - 다음달 19일에는 병원 두 군데 들러서 약 타고 인지검사를 한다. 추석 한 달 후에는 할머니 제사가 있고 음력 11월 초가 아버지 칠순이다. 아버지 자주 보겠구나, 생각하니 안심이 된다. 사랑인가?
아내에게 사랑이야? 묻거나 사랑이네. 확정하는 말을 많이 하는데, 사랑인지 생각하거나 묻는 순간 사랑이다. 어제는 마루에서 운동 시작할 때 반지 좀 받아달라고 아내에게 건넸다.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주는 모습에서 사랑이네,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짜증을 낸다고 사랑이 없는 건 아니다. 짜증과 화는 같은 말인가? 짜증은 사랑과 같은 말인가? 엄마는 아버지에게 화를 내는가 짜증을 내는가? 답을 아는 질문들로 맺는다.
두부조림을 먹다
일요일 아침
두부 한 모 800그램 1870원
열 네 등분 하고 살짝 구워서
두 줄로 깔고 양념장을 넣고 졸인다
지난주에 당신이 맛있다고 했기에
정확한 수치의 양념장을 만든다
깼다가 다시 잠든 당신 종아리를
열린 문틈으로 바라본다
이 세상 것이 아닌듯 가늘다
혼자 먹는 아점
한모 다 먹으면 돼지라 핀잔 들을까 싶어
윗줄에 있던 일곱 조각, 반모만 먹는다
맛있다
잠에서 깬 당신도 밥을 먹는다
한 조각, 십사분의 일모를 먹고
배 부르다고 한다
맛있다고 한다
체중은 나의 절반
허벅지는 나의 4분의 1
두부는 나의 7분의 1
숫자로 계량되는 당신
.....
넘치는 것은 사랑이다
길에서 자다
내가 아는 어떤 누나는
집 앞까지와서 자는 버릇 때문에 술을 끊었다는데
나는 길에서 잔다
내가 무슨 얘기를 할지 모를 정도로 빨리 취하는 게 좋다
그게 진짜 나니까
그리고 길에서 잔다
자다 깨면 집에 온다
그게 나니까
여름엔 모기 때문에 깨고
겨울엔 추워서 깬다
여름엔 못 깨도 안 죽겠지만
겨울엔 죽는다
아직까진 운이 좋았다
길에서 자주 주무시던 우리 아버지도
지금에 와선 치매가 왔지만 아직까진 운이 좋았다
핏줄끼리 운을 겨룬다
태어난 죄인지
아버지 가는 모습은 보고 싶다
아버지에게 지고 싶진 않다
자꾸 길 위에서 자다 깨지만
길에서 죽고 싶지 않다
곪아죽다
등에 혹이 생겼다
거짓말을 많이하고 살진 않았다
그 혹이 부풀고 곪았다
살을 째고
고름을 짜고
살을 꿰맸다
의사가 비지 좀 보라며 장난을 친다
- 선생님 전 곪아 죽는건가요
- 네, 가만히 놔두면 살에 구멍이 나요
의사가 계속 장난을 친다
찌꺼기만 남은 삶이라도
아프지 않으려고 곪아죽지 않으려고
진통소염제를 먹는다
언젠간 너에게 곪아죽겠다
술이 덜 깬 상태로 새벽에 일어날 때가 있다. 그런날은 오전내내 울고 싶은 감정에 휩싸이곤 한다. 지난주 토요일 새벽에도 그랬다. 온갖 슬픈 노래 다 찾아듣다가 정승환이 선우정아의 '도망가자'를 부르는 클립을 봤다. 노래 듣는 엄마 눈가가 촉촉한데, 엄마가 슬픈 걸 눈치챈 어린 아들이 엄마 왜 울어, 표정으로 울지 말라고 마스크 쓴 채 뽀뽀하는 장면이 나왔다. 엄마 표정이 금방 행복해져서 둘이 꼭 끌어 안았다. 슬픔의 알고리즘을 따라가다 보니 정형돈이 어느 토크 프로그램에서 평생 아팠던 엄마에게 다시 태어나도 자기를 낳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한 클립도 봤다. 나는 우리 엄마에게 정형돈처럼 말할 수도 있고 젊어져서 새로 시작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 좋은길 찾아갔으면 좋겠다고 할 수도 있지만 엄마나 나나 정형돈 쪽이 더 가깝지 않나 싶다. 가족이란 그런것이다. - 20년 전에 그냥 모든게 다 힘들 때 어둠속에서 오랜만에 만난 엄마 손 잡고 누워서 울었던 기억이 났다. -
영화 모가디슈를 봤다. '죽거나...' 보고 류승완 영화 처음인데 죽거나가 90년대 초반 이하늘의 랩이라면 모가디슈는 2020년 창모의 랩 같다 생각했다. 아내한테 말했더니 뭔말인지 알거 같다고 했다. 대충 말해도 뭔말인지 아는것도 사랑의 한 가지다. 영화는 유려하고 군더더기 없다. 무엇보다 아주 나쁜 새끼가 안 나온다. 어렸을 때부터 아주 나쁜놈 나오는 건 싫은데 나이 먹을수록 더하다. 영화는 말이 통하는 동포애(인류애) 같은걸 말하고 있다.
가족애 > 동포애 > 인류애. 이런 수식이다. 가까울수록 사랑도 강하다. 그 반대의 감정도.
영화는 탈레반이 아프칸을 장악한 현실과 많은 부분이 겹친다. 한국 대사가 극적으로 탈출한 뉴스를 봤다. 한국 사람 다 탈출했으니 이제 남의 나라 일이다. 여기서 멈추는게 보통이다. 난민이 된 사람들과 그땅에 남겨진 사람들을 더 걱정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으니 거기까지만 해도 괜찮다. 보편적이다. 인류애 같은거 없어도 된다.
오늘 <아프칸 난민 한국에?> 란 기사를 봤는데, 혐오로 가득한 댓글리스트를 보고 실망과 좌절과 무력감에 빠졌다. 전두환은 아직도 살았는데 다행이 혈액암에 걸렸다고 한다. 혐오병자들 다들 죽을병 걸려서 돌봐주는 이 없이 고통스럽게 죽었으면 좋겠다.
쓰다보니까 또 무력하네.
아버지는 잘 지낸다. 여전히 하루 한 두번 목소리를 듣는다. 작년과 비교해 본다면 많이 명쾌해졌다. 계절을 모를까봐 걱정하진 않아도 될거 같고, 토요일 일요일엔 내가 출근 안 하는 걸 아니까 푹 자라고 일부러 전화 안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요일 개념도 어느 정도 돌아왔다. 그러다 갑자기 다시 많은 걸 잊게되도 상황 맞춰 헤쳐나갈 뿐이다. 머릿속엔 그 정도의 여유가 있지만 현실은 또 모를일이다.
영상 만드는 강의를 하나 듣고 있다. 재미있다. 시도 쓰고 일기도 쓰고 유튜브도 하고 술도 먹는다. 여름은 생각보단 짧았다. 2021년이 이렇게 지나간다.
엄마한테 전화나 해야겠다. 하는 얘기는 늘 '별일 없나 전화했어요.' 다. '어제 잘 주무셨어요?'로 시작하는 아버지와의 통화랑 차이점이 없네. 가족이란 그런것인가?
회사에선 낙엽송 열매 따고 있다. 나무 위에 올라가서 나무 위쪽을 잘라내는 작업을 하면 떨어진 나무를 다시 작업하기 좋게 잘라내고 낙엽송 열매를 자루에 주워 담는다. 나무 위에 올라가는 일이 고역이다. 아보리스트라고 수목등반 기술자격이 있는데, 하루에 두 세 나무만 작업해도 의뢰인에 따라서 일당 30만원 이상을 받기도 한다. 우리 기간제선생님들 중에 나무를 탈 줄 아는 분이 세 명 있는데 그 중에 한 사람, c형만 나무를 타고 있다. c형은 하루에 열 나무 이상 작업한다. 다른 분들은 이제 나이도 먹고 겁이 난다고 한다. 당연하다. 일당이 나무 자르는 사람도 10만원 하늘에서 떨어진 가지 정리하는 사람도 10만원이다. 땅에서 하는 작업도 어려움이 있지만 많이 불합리하다. 기간제 선생님들 모두에게 공평하게 원칙대로 잘해 드려야겠지만 나무 타는 이 형은 혹시라도 섭섭하지 않게 말 한 마디라도 더 신경 쓰고 있다. 지난주에는 외부에서 온 아보리스트 선생님 한 분이 본인 방식대로 천천히 안하고 우리 방식대로 사다리 타고 나무 올라가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졌다. 많이 다치지 않은 건 다행인데 정말 위험한 일이고 큰일날 빤 했다. 어제 출근해서 c형이 작업하는 걸 봤는데, 보는 내 마음이 불안하고 내가 보고 있으면 작업하는데 신경쓰일까 싶어서 금방 사무실로 돌아왔다.
나를 어렵게 생각하는 기간제 선생님들에게 생색내지 말아야지. 요즘 이 생각을 많이한다. 내가 이 선생님들 월급 계산을 하고 이 선생님들이 기간제 근로자란 타이틀을 달고 있는한 우리들 사이는 평평하지 않다. 나도 나 월급주는 회사에 100프로를 다 드러내진 않는다. 이게 인간의 사회다.
-> 튼튼해 보이는 집은 있어도 튼튼한 집은 없다.
돈다
일요일 아침 빨래방에 왔다
혼자 있고 싶어서,
나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또 있었다
이미 건조기를 돌리던 아저씨와 가벼운 눈인사를 한다
기계적으로 카드를 찍고 빨래가 돌아간다
코인빨래방에 동전을 가져오는 사람은 없다
이십년이 넘도록 21세기 타령을 하는
나는 옛날사람
대형 세탁기 안에서 일주일간 몸에 걸쳤던 것들이 돌아가는 일이
일요일보다 더한 안도감을 준다
삘래도 돌고 지구도 돈다
과거를 살아도 살아있으면 다 돈다
그러니 나도 돌고 있다
빨래방 바로 옆에 마트 이름도 하필 하나로마트다
연어를 손질하던 마트 회센터 청년과 눈이 마주쳤다
손님보다 마트 노동자가 더 많은 시간, 오전 여덟시
나도 그들과 하나되어 돌고 있으니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다
외롭지 않으니 혼자 있고 싶다
빨래는 이제 건조기에서 돈다
곧 돌아갈 시간이다
돌고 있다면 혼자도 외롭진 않다
푸딩을 먹다
밤 11시 38분에 푸딩을 먹는다
아내가 자기는 먼저 먹었다고 한다
푸딩은 말랑하고 달다
돈까스나 카레는 유래나 조리법을 알지만
푸딩은 이름만 아는 먹거리다
푸딩은 이름이 예쁘다
푸딩푸징푸딩푸딩
퐁당퐁당퐁당퐁당
아내가 술취한 나에게 준 푸딩은
작은 병에 담겨 있다
아내는 내가 취했는지 알까?
어디서 얻어온 푸딩을 자정이 다 된 시간에
내게 주는 것이 사랑인지 묻는다
사랑이야?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지만
뭘 자꾸 확인하냐며 역정을 내는 아내에게
머릿속으로만 얘기한다
사랑인지 묻는 순간 사랑이다
푸딩은 달고 말캉하다
사랑은 항상 푸딩같진 않지만
사랑인가 생각하는 순간 사랑이다
어제 갑자기 술을 먹게 됐다. 술을 자주 먹고 대체로 즉흥적으로 먹기 때문에 갑자기란 말을 써놓고 지금 이 문장을 적으면서 웃는다. 나한테 술 잘 사주는 친한 형이랑 회사 관사에서 먹었다. 원래는 피자를 한 판 시켜 먹을 생각이었는데, 배달앱을 열어보니 JK형이 좋아해서 몇 번 같이 갔던 홍어집이 첫 페이지에 보이길래 홍어삼합을 주문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홍어 냄새가 나서 배달이 나보다 빨리 도착한 걸 알았다. 엘리베이터의 홍어 냄새와 양손에 두 병씩 든 소주 때문에 11층에 내린 아주머니 앞에서 약간 민망했다. 14층에 도착, JK형은 치킨을 한 마리 시켜놓고 날 기다렸는데, 갑자기 홍어가 와서 놀랐고 좋아하는 안주를 먹게 되서 좋아했다. 치킨은 튀긴 걸 좋아하는 내 안주 홍어는 형 안주. 배려하는 인간관계란 이런 것인가 생각하며 술을 마셨다.
나는 맛있게 먹고 약간 많이 먹는다 = 잘 먹는다. 그리고 먹는 일에 진심이다. 기왕 먹을 것 가성비 따지지 말고 비싸고 좋은 거 먹자, 는게 내 기조다. 작년부터 그렇다. 기후파괴로 세상이 끝장날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비관(90%), 일확천금이 갑자기 생기지 않는한 내집 마련은 어렵다는 비관(10%)에서 나온 결론이다. JK형은 나랑 자주 먹기 때문에 이런 내 생각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세계 멸망에 대한 내 비관에 한결같이 세상이 그렇게 쉽게 망하지 않는다고 답한다. 홍어랑 치킨 조합을 - 사진 찍어둘 걸 - 앞에 두고 형과 대화했다.
- 형, 이렇게 좋은 거 먹는 것도 올해가 끝이란 생각이 들어요.
- 뭔 말이야. 내년에 세상이 망할거 같애?
- 아뇨. 그게 아니라 내년이면 기왕 먹는 거 좋은 거 먹자는 생각이 안 들것 같네요.
- 먹는 일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눈앞에 있는 걸 먹어라.
말을 내뱉을 땐 내년부터 그럴것 같았는데, 말을 내뱉고 나니 바로 실천에 옮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을 실천에 옮기는 건지 기분을 실천에 옮기는 건진 헷갈린다. 집에서 대충 먹고 점심 도시락도 대충 먹기 때문에 술 마실 때나 외식할 때는 잘 먹어야지란 마음이 있는데, 그 마음도 사그라드는 중이다.
애호박 가격이 폭락했다. 역대 3번째로 짧은 장마였다. 이건 우리나라 얘기다.
이란에는 마실물도 없다. 아프리카 최대 도시는 물에 잠기고 있다. 독일과 벨기에에는 역대급 비가 왔다. 중국의 어느 지역에는 1년치 비가 하루만에 내렸다. 터키, 시베리아, 캘리포니아에는 산불이 났고, 캐나다와 미국은 역대급으로 덥고 그래서 캘리포니아 농사는 망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 나라들은 역대 최대기온을 매일 갱신중이다.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이건 다른 나라 얘기다.
아직까지는 기후 파괴를 심각하게 느끼지는 못하는 지역에 사는 것에 감사해야 할까. 올해는 세 번 바닷가에서 수영을 했다. - 지난 6년간 1번 함 – 멀리서 보면 잘 모르지만 바닷물에 들어가서 보면 바다에 떠다니는 쓰레기가 정말 많다. 바다는 거대한 쓰레기통이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입을 벌리고 받아주진 않을 것이다. 이게 내 비관이다. 아이가 없다보니 세상이 좋아져야 한다는 생각도 없고 육아에 집중할 시간에 비관에 집중하고 있다. 아니, 아이가 있었다면 더 비관적이었을 수도 있다. 이게 또 내 비관이다.
국제곡물 가격이나 선물 시장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돈이 있으면 밀이나 옥수수 선물에 투자하고 싶다. 세상이 망햐가는 걸 이용해서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이 미국내 농지를 자꾸 사들이고 있다는 빌게이츠랑 다르지 않다. 지난주에 k 선생님에게 사람 다 똑같다는 말을 들었는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류전체가 다 한통속이다.
jk형이 어제 남은 홍어를 얼릴수도 버릴수도 없어서 아침으로 먹고 왔다고 해서 사무실에서 같이 웃었다.
하루하루가 즐겁지만 무겁다.
여름날 산길을 걷는다. 땡볕아래 힘들다가 나무 그늘이 았어서 잠깐 쉬는데 마침 시원한 바람이 불면 살 것같다. 그늘에서 나가기 싫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목적지에 닿거나 되돌아가지 않으면 누구도 나를 봐주지 않는다.
희망에서 1미리미터만 벗어나도 비관이 있다.
8월 잣나무 채종원
신뢰
사랑과 신뢰는 같은 말입니까
사랑하는데 신뢰하지 않거나
신뢰하는데 사랑하지 않습니다
인생은 또는 세상은
나는 세상에 속해 있습니까?
내 인생은 나의 세상입니까?
붙들 수 없는 말들이
시절을 따라 태어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합니다
내가 사랑이라고 하면 사랑이고
당신이 아니라고 하면 바로 사랑이 아닌 일들
기억의 끝 그 너머 저편에서
나는 자꾸만 사랑인지 묻고
당신은 계속계속 아니라고만 합니다
아버지 약 타는 날이라 서울에 왔다. 강릉역 여덟 시 삼십 분 차, 집에서 역까지 걷는 길에 하늘이 쾌청했다. 지금 강릉으로 휴가 온 사람들 좋겠군. 코로나 시작되고 2년도 안됐는데 전염병과 여름휴가가 공존하는 세상이 됐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러하듯이.
12시에 아버지 집에 도착해서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었다. 엄마는 내가 아버지 보러 오는 날은 꼭 서울에 온다. 아버지를 보러 오는 건지 나를 보러 오는 건지 모르겠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러하듯이 둘 다 조금씩 있는거겠지. 엄마는 오산에서 아버지 먹을 걸 잔뜩 만들어왔다. 너무 끓여서 양파가 다 녹아버린 카레 한 솥, 양념한 고기, 고춧가루가 없어서 청양 고춧가루만 넣고 만들었다는 겉절이 등이다. 겉절이는 맵고 미원맛이 났다. 맛있었다. 막국수 집을 차려도 될거 같다고 했더니, 미원을 안 넣으면 안된다고 하며 웃는다. 나는 이미 오래전에 어려서 세상 제일 맛있다 생각했던 엄마의 김치맛이 미원맛이었단 걸 안 사람이 됐다. 엄마가 아버지에게 올 때 싸오는 음식은 책임감인가 죄책감인가 사랑인가 세상의 많은 일들 중에 하나인가.
이버지랑 병원을 두 군데 옮겨 다니며 많은 얘기를 했다. 역시 나랑 둘이 있을 때는 당신 어렸을 때 얘기를 많이 한다. 할아버지에 대해서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되는 건 흥미롭다. - 일 년에 꼭 두 번 바닷가로 물놀이를 갔고 음식 준비해야 하는 할머니는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라 그 나들이를 그리 좋아하진 않았다. - 치매병원에서 혈압약 타는 병원으로 가려는데 스콜이 쏟아졌다. 카카오 택시를 불렀는데 뒷자석에 탄 아버지가 본인 카드를 내게 건넸다. 이미 선결재된 거라고 설명할 방법이 없을 것 같아서 그냥 받았다. 집에 돌아와서 잠깐 설명해 봤는데, 내 생각대로 아버지는 전혀 이해를 못한다. 치매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냥 옛날 사람인 것이다. 그냥. 그냥. 아버지는 그냥 있는 사람이 됐다. 시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됐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지난달에 아버지랑 엄마가 강릉에 왔었다. 그때 일을 잘 기억하는지 약간은 집요하게 질문을 던졌는데 잘 기억하고 있었다. 오늘 오전에만 둘째 이모가 두 번 다녀갔다는데 어제 다녀갔다고 했고 동생과 엊그제 통화했다는데 열흘은 됐다 했다. 강릉 다녀온 건 큰 이벤트였기 때문에 잘 기억하는 건가? 아버지 머릿속을 알 수 없다. 스콜이 일상화된 세상에서 아버지 머릿속에 낀 단백질도 잠깐 스쳐가는 강한비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진부한 비유다. 진부함도 희망이라면. 택시가 길 건너편으로 오는 바람에 아버지랑 빗속을 뛰었던 일을 기억해 둔다.
집에서 아버지 약(매일 일곱 알)을 매일 약통에 담으면서 이모들과 얘길 나눴다. 병점 사는 셋째 이모를 오랜만에 봐서 많이 반가웠다. - 살을 빼는 걸 보면 의지가 대단하다. 아버지 술 끊은 걸 보니 유전인 것 같아요. 의지는 닮아도 되지만 밤새 술먹는 건 닮으면 안된다. 아버지 앞으로 일은 못할 것 같아요. 무슨 소리냐 하는데까지는 해봐야지 나한테 다 계획이 있다. 이모가 제일 자주 보시니까 이모 의견이 가장 정확한 거 같은데 어떤거 같아요. 예전에 비해서 많이 좋아졌다. 근데 똑같은 말을 반복해도 너무 말을 안듣는다. 움직임이 많이 둔해진 것 같진 않나요. 니 아버지가 원래도 기민한 사람은 아니잖니 - 이모들 용돈 좀 많이 드려야지. 추석 때는 꼭 추진해야겠다. 이건 미안함이나 책임감이 아니라 사랑과 고마움이다. 이모들 없었으면 지금의 나도 엄마도 아버지도 없었다. 돌아가신 큰이모 보고 싶다. 언젠가 엄마 집에 갔다가 막내이모 만나서 얘기할 때 자주 연락은 못하지만 항상 생각하고 있다고 했는데. 이모가 다 안다고 본인도 그렇다고 그러면 된다고 고맙다고 했다. 그 말이 참 고마웠다.
돌아가는 기차에서 쓸랬는데 청량리 오는 지하철에서 다 써버렸네.
추가. 위스키에 취미가 붙은 친구 부탁으로 글을 하나 써줬는데 3등 했다고 연락왔다. 아버지도 괜찮고 이래저래 기분 좋다.
아침 강릉역과 저녁 청량리역
2021년 7월 - 어슬렁 어슬렁
토요일 오후
친구와 술 한잔 마시러 나와서
어슬렁 어슬렁
바닷가 도시에 아직 폭염은 오지 않았고
저녁 바람은 시원하다
지동화기기에서 돈 만원을 찾아서
어슬렁 어슬렁
복권과 담배를 사고
후미진 골목 구석에서
담배를 입에 물고
친구를 기다리며
한량이란 단어를 떠올리고
방금 횡단보도를 건너며 봤던 공모주란 말도 떠올리고
공모주가 뭔지 아는 내가 영 어색하진 않은 시절이고
빌딩 사이라 바람이 더 센가
암튼 시원해서 좋고
친구는 아직이고
사상 최대의 폭염과 홍수에
전염병까지 도는 세상에서
오늘 저녁은 사상 최대로 먹어볼까
그런데 뭘 먹지 생각하고
늦는다는 친구의 연락을 받고
다시
어슬렁 어슬렁
바람은 계속 시원하고
비가 그친 하늘은 푸르고
서서히 줄어드는 낮의 운명은 9월까지 유예됐고
그때까진 다 괜찮을 거 같고
사람들이 다 뭐하고 사나 싶지만
어슬렁 어슬렁
나는 괜찮다
지난 토요일에 헌혈했다. 27번째 헌혈입니다, 헌혈센터 간호사가 친절하게 말해줬다. 고등학생 때 첫 헌혈을 했으니까 틈날 때마다 한 건 아니지만 25년 동안 27번 이라면 어떤 의미로는 틈날 때마다 헌혈을 했다. 헌혈하고 문화상품권이나 영화표 받는 것도 좋지만 내가 헌혈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피를 뽑는다는 행위 자체에서 느끼는 쾌감 때문이다. 이웃사랑, 인류애, 봉사 같은 건 1%정도 될까. 매혈에 대해서 관심(즐거움)을 가진건 '허삼관 매혈기'가 원동력이 됐고 비교적 최근에 읽은 옌렌커의 '딩씨 마을의 꿈'에도 중국사람들의 매혈 얘기가 나온다. 어른들 얘기를 들어보면 우리나라도 가난하던 시절에는 피를 많이 팔았다고 한다. 예전에는 공식적인 헌혈도 현금 오천원을 줬다. 땟거리 떨어졌을 때마다 피를 뽑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스토리는 어딘가 짠한데가 있다. 자기 피를 판 돈으로 다른 생명의 피를 먹고 자기 피를 다시 채우는 (악)순환을 생각한다.
강릉 헌혈센터에는 내가 갈 때마다 사람이 많다. 토요일에만 가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강릉센터의 혈액 공급이 - 표현이 맞나? - 전국에서 상위권인 걸로 봐서 기본적으로 강릉에 헌혈인이 많은 것 같다. 보통은 간호사 5명 정도가 일하는데, 엊그제는 셋이 일하고 있었다. 뭔가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평소보다 북적댔다. 예약한 사람도 많아서 1시간 정도 기다렸다가 헌혈을 하는데, 내 팔에 바늘을 꽂던 간호사가 너무 지쳐보여 한 마디 했다. '너무 힘드시겠는데요, 퇴근하면 독주를 마셔야 될 것 같아요.' 돌아온 대답은 '기절해요'였다.
퇴근후에 기절할 정도로 일에 치이고 열심히인 사람이 있는데, 나는 뭐하고 있지? 생각했다. 정말로 나는 뭐하고 있지?
생각이 채종원에서 같이 일하는 기간제 선생님들에게로 이어졌다.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 내 일의 핵심은 이 선생님들 작업 스케줄 짜고 월급주는 것이다. 12명은 예전에 산불 아저씨들하고 일할 때보다 한참 적은 숫자지만 채종원 특성상 밀접한 관계로 일하기 때문에 이런저런 일들이 많다. 산에서 노가다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치는 분들도 있다. 어떤분은 산재를 진행하고 어떤분은 산재 신청하기 싫다고 병가를 진행한다. 어떤분은 자동차를 도로 한복판에 세워두고 자다가 음주단속에 걸리고 어떤분은 도벽이 있고 어떤분은 생활에 여유가 있고 어떤분은 이 일이 절박하며 어떤분은 내가 좋아하는 내 친구고 어떤분은 불만이 많고 어떤분은 돈 받는 만큼만 일하고 싶고 어떤분은 작업반장이다.
이 작업반장님을 중심으로 76,000원 일당에 풀베기 너무 많이 시킨다는 불만이 터져서 내가 그래도 어느정도는 진도를 나갔으면 좋겠다했고 그 다음날 하루 진도를 나가보더니 그 다음날부터 일 못하겠다고 이틀동안 단체로 안 나오셨다. 지난주의 일이다. 하루 더 안나오시면 해고 및 징계 절차 진행하겠다고 했더니 다음날 다 나오셨다. 하루에 400분 기계 돌리는 숙련된 분들이 일당 20만원 받는다. 150분 돌리는 - 실제는 그보다 덜 돌리지만 - 우리 아저씨들은 지금만큼만 일하면 일당 대비 충분하단 생각일 것이다. 뭐 나도 그 정도면 좋다는 생각이지만 회사에 나만 있는 건 아니고 내가 회사 원탑도 아닌데다가 어쨋든 내가 아저씨들 담당자니까 이번엔 어떤 정치적인 이유로 조금 강하게 했다. 원칙에 어긋난건 아닌데 마음에 걸린다. 일 적게 하고 싶은 사람과 일 시키는 사람의 관계. 어떤 선생님이 나에게 당근과 채찍을 말했는데, 나는 당근도 채찍도 없는 사람이라고 답해줬다. 그리고 당근과 채찍을 말하는 순간 갑을관계를 용인하는 것이라서 그 말이 싫었다. 그런데 실제로 나는 계속 당근이기 때문에 이번에 한 번 강하게 나간 일로 채찍만 있는 담당자가 됐다.
어쩌겠나. 그게 삶인 걸. 내가 아저씨들 한 푼이라도 더 받게 하려고 애쓰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렇게 하는 게 내 직업적 사명감이니까 그렇다.
결국 기간제 선생님들은 본인들 뜻을 관철시키지 못하고 예전보다 불리한 조건에서 일하게 됐다. 그 단체 행동에 참여하기 싫었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지금 당장 일을 그만두더라도 가진 돈으로 죽을 때까지 먹고 살 수 있는 선생님도 있다. 내가 좋아한다는 내 친구는 오늘 퇴근하고 전화해서 본인들 이틀 빠진 거 월차로 처리되는지 결근으로 처리되는지 물었다. 이 질문은 월차로 처리해달란 말이지만 내가 회사 원톱이 아니고 단체 행동에 참여하지 않고 출근한 선생님도 있기 때문에 결근 처리할 수 밖에 없다. 내 친구는 집도 있고 땅도 있지만 형편이 좋은편은 아니다. - 그럼 나는 집도 땅도 없지만 형편이 좋은편인가? - 친구 전화받고 짠했다. 사는 일은 짠내가 난다.
단체 결근 사건의 원인에는 일이 힘든것도 있지만 그보다 깊은 곳에는 누구는 누구랑 친하고 누구랑 누구랑 친해서가 있었다. 사는일이 짠하고 바보같고 지리하다. 꽤 오랫동안 지리하단 말을 생각했다.
다들 출근한 날 오전에 모여서 이야기 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날의 메모에는 바보같다는 말과 다 내 잘못이라는 말이 반씩 뒤엉켜있다.
-> 산에 여름이 왔다.
오전
밤새 악몽에 시달렸다. 같은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연작꿈으로 꾸곤 하는데, 이버지 치매 이후로는 하늘에 떠서 지구를 뱅뱅도는 죽은자들의 열차에서 유일하게 죽은자가 아닌 기관사와 내가 주인공인 꿈을 꾼다. 나와 기관사는 소설 <마의 산>에서 카스트로프와 세템브리니 같은 관계다. 내꿈이니까 내가 주인공인게 당연하겠지. 열차는 어떤 이상적인 공동체 같은 곳인데 내가 아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있다. 어젯밤 꿈에는 유난히 아는 사람들이 많이 나왔다. 오랫동안 연락 안했던 B 선생님이 내 손만보고 일우구나, 해줘서 반가웠다. 친구 한 명은 열차 안에서 죽어라 운동만 했다. 아버지도 중간중간 모습을 보였다. 마지막엔 어떤 상황이 벌어져서 내가 열차에서 뛰어내렸다. 700미터 높이에서 떨어졌는데 - 기차가 내 생각보다 낮은 고도에 있었다 -죽지는 않았고 푹신한 곳에 등부터 떨어진 이후에 욕을 하면서 잠이 깼다. 잠이 깰 무렵에는 꿈인걸 인지했기에 욕을 했던거 같다. 얼마전에 다른꿈을 꿨을때도 욕하면서 잠이 깬적 있는데. 좋지않다. 아내말대로 약을 잘 챙겨 먹어야겠다.
토요일 아침. 아내를 목적지에 태워주고 두 시간 기다리는 동안 처음 생겼을때부터 좋아했던 테라로사 경포호수점에 갔다. 아침부터 사람이 많고 혼자 온 사람은 나 뿐이고 집이 강릉인 사람도 그런거 같았다. 코로나 프로토콜 때문에 관광객들이 대부분인 식당이나 카페도 일단 들어가면 쾌적하게 즐길 수 있다. 테라로사 커피는 항상 맛있다. 좋다. 엄마랑 둘이 여행온 팀이 내가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자리 잡았는데 젊은 사람 쪽의 여린 옷차림과 가는 팔다리가 보기 좋아서 잠깐 쳐다봤다가 눈 한 번 마주쳤다. 이런.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엄마 생각을 했다. 엄마랑 둘이 어디 놀러 가고 싶다거 생각한지 몇 년 됐는데, 아직 한 번을 못갔다. 엄마가 건강할 때, 좋은데 가서 좋은거 먹고 잘 쉬고 싶다. 여기서 좋은건 비싼걸 말하는데 나도 그런 걸 못해봤고 엄마도 그렇다.
어제는 귀찮아도 설거지를 해야지 생각했었는데, 아내가 아이스크림통 뚜겅을 열면 붙어 있는 둥근 비닐을 개수대에 넣어둔 것을 보고 기분이 상해서 관뒀다. 왜 그걸 20리터 쓰레기 봉투에 넣지 않았을까? 나는 왜 그런일로 기분이 상했을까? 빨래비누같은 설거지 비누 말고 남들 쓰는 거품 잘 나는 세제 쓰고 싶다. 세탁 세제도 마찬가지다. 최근엔 날씨를 핑계로 빨래방에서 빨래 하는데, 남들 쓰는 빨래용 세제가 집에 있었으면 그냥 세탁기 돌렸을거다. 집에 비누가 떨어졌는데, 아내가 비누를 안 만들어 오길래 비누 사온다는 말을 어렵게 꺼내서 오이비누를 쓰고 있다. 아내랑 나는 뭔가 갈라진건가? 기분 좋은 날에는 대화라도 몇 마디 하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가 - 친구들은 아내랑 몇 주씩 말을 안 하기도 한다고 한다. - 나를 운전기사로만 생각하는 거 같은 오늘같은 날은 왜 같이 살고 있지, 생각도 한다.
친구 h랑 맘 편한 직장 다니면서 자기 하고 싶은거 한 두가지 하면 제일 좋은 삶인 거 같다는 얘기를 나눴는데, 나는 직장 조건이 좋으니 그렇게 할 수 있다. 아내는 나랑은 달리 본인 하고 싶은건 다 하려는 어려운 길을 가고 있는데 내가 보기엔 끈기도 부족하고 몸도 마음도 따르질 않는다.
흐린 하늘 바라보며 자동차 운전석 제껴 놓고 쓰고 있다. 아내는 열한시 반에는 끝날거라고 했다. 벌써 지났다. 먼저도 그랬다. 미안한지 곧 끝난다고 전화가 왔다. 집에 태워주면 피곤해서 자야한다고 잘 것이다. 집에 도착하기 전에 뭘 먹고 들어가자고 할텐데 먹고 싶은거 말해보라하면 답이 없을 것이고 내가 돈까스나 짬뽕 먹자고하면 그건 싫다고 할 것이다.
담배나 피워야겠다.
아내랑은 밥 안 먹고 무사히 집에 왔고 정답게 얘기도 나눴다. 역시 사랑인가? 사랑인지 아닌지가 중요한가?
되게 오랜만에 좋아했던 글을 찾아 읽었다. 서른둘에 이걸 처음 읽었고 나는 지금 마흔 넷이다. 어차피 언젠가는 죽는거라면
<그 책 마지막 장을 무심코 읽어가다가 다음과 같은 한 구절에 눈이 멈췄다. “나라는 인간이 올해 벌써 42살이 됐습니다…”
나는 들었던 책을 내려놓고 말없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58살이다. 말하자면 그 책은 쓴 지 15~6년이나 된 책이었다. 새삼스럽게도, 마치 진귀한 발견이라도 한 양 그 사실을 깨달았다. 이럴 때 보통 사람들은 어떤 감회를 느끼게 될까? “앞으로 20년은 더 살아야지”라거나 “여든살까지는 살아야지” 하는 식으로 생각할까? 그렇다면 나는 보통 사람들과는 상당히 다르다.
“그때 인생이 끝났더라면 좋았을 텐데…” 이것이 그때 내 마음을 채운 감회였다. 42살이었을 때가 행복의 절정기였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이 전혀 쓸모없었다는 얘기도 아니다. 어차피 언젠가는 죽는 거라면, 설사 그때 인생이 끝났다고 해도 그뿐, 별로 아쉬울 것도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오후
2주전에 아이와 왔던 친구가 또 삽당령에 방문했다. 이번엔 아이 둘이랑 같이 왔다. 친구가 내 직장을 좋아해서 좋다. 고기를 굽고 술을 먹고 아이들도 좋아하는 거 같고 어른들은 신이 났다. 친구는 먼저 왔다간 다음에 아내랑 한 마디도 안 했다고 한다. 얘길 안나눠도 사랑이고 얘기를 나눠도 사랑이다. 서로 욕을 해도 사랑은 사랑이다. 사랑인가 떠올리는 순간 사랑이고 사랑인가 묻는 순간 사랑이다. 사랑없이 뭐가 제대로 돌아가겠나. 너도 나도 특히 나는 사랑받고 싶어서 사랑에 집착하나보다.
오전은 길고 오후는 짧은 일기가 됐다. 혼자인 시간은 느리고 길게 가기 때문이다.
-> 출근하면 매일 찍는 자리. mi8로 찍어봄.
허망한 욕심을 버리고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야지 적었다가 웃는다. 유명해지고 싶은 게 허망한 욕심인지, 하루하루 충실히 사는 건 어떤건지, 유명해지려고 하루하루 충실히 살면 안되는지, 그런 삶에는 나다운 게 없는건지. 글이며 음악이며 지금보다 더 꾸준해야 나답고 충실한건지. 이렇게 쭉 이어지는 물음에 웃고 만다.
부자가 되고 싶은건 아니다. 어쩌면 천재가 되고 싶은가? 나이 마흔 넷에 그건 아닐거 같고, 로또 당첨되서 돈이 많이 생기듯이 갑자기 유명해지고 싶다. 노력도 없이?
산책 중에 매한테 쫓기는 작은새를 봤다. 작은새는 허둥대는데 매는 여유가 있다. 작은새는 숲으로 달아났고 매는 하늘로 치솟았다. 한쪽에는 불행한 결과다. 그게 매 쪽일수도 있지만 의외로 불행한 쪽은 작은새였을지도 모른다. 모른다는 것, 그것이 삶이다.
삶이란 말이 무겁다. 밭침이 두 개인 말들은 다 그렇다. 앎만 예로 든다. 바닥이 튼튼한데 왜 무겁지? 삶을 안다는 건 얼마나 무거운가. 생각을 멈추자. 사랑을 멈추자. 그렇다고 삶을 멈추진 말자.
뉴스에는 오늘도 수 많은 죽음이 나오고, 뉴스에 나오지 못한 죽음은 죽음도 아닌 세상. 어느 시인의 죽음이 떠오르고, 그 사람은 죽어서 더 유명해졌을까? 그 시인은 단지 살고 싶었을 수도 있다.
채워지지 않은 뭔가가 있다. 그것을 갈망한다. 누군들 아니겠는가. 갈망하지 않는 순간 삶은 멈춘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버지는 무엇을 갈망하나. 아내는 친구들은 동료들은 무엇을 갈망하나. 사랑받고 싶다. 더 많이.
-> 참좁쌀풀의 계절이 돌아왔다. 계절은 어김이 없다. 아직까지는.
하지무렵
해는 길고
술은 짧고
사람은 그보다 짧고
사랑은 그보다 더 짧고
가장 짧은 것은 절정을 지나 저물어가는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