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기타줄을 갈았다. 1번줄 반대로 감은 걸 뒤늦게 알아채고 풀어서 다시 감았다. 가지런하고 예쁘게 감긴 4번줄 빼고는 다 성에 안찬다. 16%의 성공. 어찌보면 높은 확률이다. 작은 성공으로 생각하면 긍정이고 철저한 실패로 생각하면 부정이다. 나는 어떤 쪽인가. 성에 안찬다는 것은 부정이다. 나는 부정적인 사람인가. 그렇지 않다. 때때로 부정적이 된다.

 지난주에 친구랑 술 먹고 노래방에 갔다. 친구가 나 노래 부르는 걸 찍어줬다. 다음날 그걸 보다가 놀때는 진심으로 노는구나, 생각했다. 다른 일에도 그러면 좋을텐데. 그렇지 않다. 술 취했을 때 쉽게 진심이 된다. 나는 쉬운 사람인가. 그렇진 않다. 술을 자주 먹지만 진심은 가벼운 것이 아니다. 엊그제 사무실 형들하고 술을 마셨다. 늘 그렇듯 짧은 시간 동안 많이 마셨다. 나는 확실히 술로 해소하는 무언가가 있다. 술을 빨리 많이 마실 뿐이지 술 중독은 아니다. 술 취해서 집에 돌아오다가 길에서 잠들지 말아야지 결심한 후로 그러지 않았다. 잘하고 있다.

 머릿속에 넓은 길이 끝없이 펼쳐지는 상상을 해본다. 성공, 미래 뭐 그런 이미지다. 이번주에는 오랜만에 복권을 사야겠다. 아내가 복권 왜 사냐고 물으면, '일확천금'이라고 답한다. 돈의 크기에 따라서 길의 넓이와 길이가 달라진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해서 확실하진 않다. 머릿속이 시원하게 트이는 걸 한 번 느껴 보고 싶다. 그게 꼭 돈이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일단 돈만 떠오르네. 그게 나다.

 만화 원피스를 아직도 매주 보고 있다. 끝없이 성장하는 소년의 이야기.로는 내 마지막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 5년 안에는 끝나겠지. 30년을 연재하는 작가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 내 안의 소년이 아직 나도 뭔가 할 수 있다고 자꾸만 나를 독촉하기 때문에 이 만화를 끊을 수가 없다. 만화는 현실이 아니다. 인간이 어떤 작품에(게임, 만화, 미술, 영화, 문학... 통칭 예술이라 하자.) 몰두하는 이유는 그것이 현실에서 부재한 것을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다. 나를 예로 들면 끝나지 않는 모험의 이야기라고 하면서 일본식 턴제 rpg 게임을 주기적으로 클리어한다. 파판3는 공략이 필요없을 정도로 많이 했는데도 여전히 재미있다.

 기타를 살까? 스위치를 살까? 턴테이블 오디오를 살까? 무선이어폰을 살까? 청소기를 살까?

 뭔가를 살까, 싶다가도 생각해보면 그 물건들 없어도 그만이어서 사지 않게 된다. 어제 마트에 가서 쌀과 김치를 샀고, 오늘 아침 출근길에 자동차에 기름을 넣었다. 어디까지가 필수이고 어디까지가 재미인가? 삶은 필수인가 재미인가? 필수의 반대말을 생각해본다.

 뭔가 답답해서 적었다.

 내일 친구가 딸 아이랑 삽당령에 오기로 했다. 아이가 세 번째 방문이니까 친구는 네 번째 방문이다. 친구가 오는 건 좋지만 친구 아이가 여전히 아프기 때문에 내 마음도 편치않다. 친구는 오죽할까. 친구가 삽당령 산을 좋아해서 다행이다. 나도 친구가 오는 게 위로가 된다. 서로 위로가 되는 셈이다. 마음은 여전히 어둡지만 술 마시고 놀때는 진심이니까 잼있게 놀아야겠다.

매일 보는 전나문데 그저께 아침에 유난히 이쁘게 보이길래 찍어둠.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