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분류 전체보기 | 1824 ARTICLE FOUND

  1. 2023.03.09 20230309 - 어쩌다 하나씩
  2. 2023.03.04 20230304 - 아버지 집에서 아버지 기다리면서 생각
  3. 2023.02.23 20230223 - 어쩌다 하나씩
  4. 2023.02.22 20230222 - 어쩌다 하나씩
  5. 2023.02.22 20230222 - 아버지에서 시작한 집 생각
  6. 2023.02.14 20230214 - 그냥, 아버지 생각
  7. 2023.02.08 20230208 - 수술 날짜 잡은 아버지 생각
  8. 2023.02.04 20230204 - 정월 대보름, 아버지 만나고 엄마 생각.
  9. 2023.01.28 20230128 - 어쩌다 하나씩
  10. 2023.01.28 20230128 - 어쩌다 하나씩
  11. 2023.01.27 20230127 - 이슈가 없는 것에 대한 생각
  12. 2023.01.19 20230119 - 초음파 내시경과 아버지 생각
  13. 2023.01.11 20230111 - 치매인데 위암인 아버지 생각
  14. 2023.01.10 20230110 - 위암과 아버지 생각
  15. 2023.01.06 토성의 고리 - 제발트
  16. 2023.01.04 20230104 - 어쩌다 하나씩 2
  17. 2022.12.28 20221228 - 어쩌다 하나씩
  18. 2022.12.27 20221227 - 제사, 아버지, 엄마 생각
  19. 2022.12.21 20221221 - 어쩌다 하나씩
  20. 2022.12.21 다음에 - 박소란 1
  21. 2022.12.19 20221219 - 넘어져 얼굴이 까진 아버지 생각
  22. 2022.12.12 20221212 - 카타르 월드컵 생각
  23. 2022.12.10 20221210 - 금요일에 아버지 만남 1
  24. 2022.12.06 20221206 - 금요일에 만날 아버지 생각
  25. 2022.11.28 20221128 - 클린트이스트우드 아저씨와 아버지 생각
  26. 2022.11.26 20221126 - 어쩌다 하나씩
  27. 2022.11.25 20221125 - 어쩌다 하나씩
  28. 2022.11.16 20221116 - 동생한테 맡겨버린 아버지 생각
  29. 2022.11.14 20221114 - 코로나 격리 후 생각
  30. 2022.11.03 20221103 - 어쩌다 하나씩

공포

썩은 빗방울이 떨어지고
기차는 출발한다
사람들은 다들 겁에 질려있거나
무언가에 홀려있다
커피를 끝까지 마신다
컵 바닥에 커피 가루가 남았다
드문드문
마음이 삶에 완전히 녹아들지 않았지만
기차는 달린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하고
나 혼자만 조용히 창 밖을 본다
먼 하늘 끝까지 어둡다
빗소리가 한 방울씩 마음을 때리고
마음이 썩어 내린다
아프지 않다
체계도 이유도 없이
사람들은 모두 잠들었다
기차는 멈추지 않고
나는 영원히 깨어있다

AND

아버지 침대 위에 반대로 누워서 쓴다. 아버지 암 수술은 잘 끝났고 2월 28일에 퇴원했다. 의사는 젊은이들보다 회복이 빠르다고 했다고 하고 내가 보기에도 아버지는 건강하다. 당분간 죽을 먹어야 하는데 데이케어센터에서는 토요일 점심밥까지만 아버지를 돌봐줄 수 있어서 내가 올라왔다. 내일 올라올까 싶었지만 한 끼니라도 내가 직접 아버지 보는 게 나을 거 같아서 그냥 오늘 왔다. 전화기 들고 뭐 해라 뭐 하지마라 백 번 말하는 것 보다 가까이서 보는 게 안심이다. 아버지 집에는 엄마가 사 둔 죽, 요플레, 두유와 내가 방금 사온 카스테라와 아버지가 사둔 달걀이 있다. 달걀은 내일 삶아 드리고 오늘은 나머지를 두 번에 나눠서 하나씩 먹고 아버지랑 같이 자는 작전이다.

아버지는 건강하다. 본인도 아픈곳 없다고 하고 그냥 봐도 아픈데 없어 보인다. 잘 됐다. 수면 마취 때문인지 입원 중에는 많이 횡설수설했다는데, 내가 보기에 지금은 수술 전과 비슷하다. 치매의 증상은 나빠지지만 않으면 또는 급격히 나빠지지만 않아도 다행이다.

아버지에게는 두 개의 암보험이 있다. 죽고 나서 보험은 소용 없는데, 수술 후 건강한 상태에서의 보험은 생활에 큰 도움이 된다. 나는 엄마처럼 보험 맹신주의자는 아니다. 현대사회에서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보험료를 타기 위해 일일이 증빙을 하는 수고로움이 싫다.

계속 적고 있지만 아버지는 건강하다. 아버랑 수술 입원 내내 같이 있던 엄마는 녹초가 되서 오산으로 돌아갔다. 인생 모르는 거지만 아버지가 엄마보다 오래 살 것 같다. 나라면 그런 순간이 와도 그뿐이라고 하고 말겠지.

목요일 오후에 아버지 데이케어센터에 데려다 주면서 아버지 약도 다 맡겼다. 앞으로는 내 전화로 약을 먹는 것보다 샌터에서 챙겨 주는 게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이다. 열흘만에 아버지를 본 센터 선생님들이 명교 어르신 오셨다고 엄청 좋아했다. 같이 지내는 정이란 게 이렇게 무서운거다. 좀 있다가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면 나를 보고 반가워 하겠지. 나도 아버지가 나를 반기는 모습을 보면 좋을 거 같다. 부모 자식의 정이란 게 이렇게 무서운거다.

초중고등학교 개학하고 나서 거리에서 몰려 다니는 학생들 무리를 자주 본다. 초딩들은 초딩대로 종종거리는 게 귀엽고 중고딩들도 걔네들대로 어설픈 모습이 보기 좋다. 오래 46살이다. 학생들 몰려 다니는 것만 봐도 기분 좋아지는 나이가 됐다.

아버지, 제가 할 수 있는데까진 챙겨드릴테니까 어쩔 수 없는 건 그냥 두고 일단 건강하자구요.

오즘은 아버지 핑계로 무너지지 말아야지 생각을 많이한다. 세상의 일들이 한 순간에 벌어지니까 갑자기 무너지지 않도록 어두워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된다.

-> 아버지 퇴원한 날 영상통화. 괜찮으니 의사가 퇴원하라 했겠지만 이때도 아버지 몸 상태가 괜찮았음.

AND

종합병원에서

휠체어에 앉은 아이 얼굴이 희고 야위었다
태어나 10년을 살지 못한 얼굴
힙겹게 고개를 젖혀 아빠, 하고 부른다
아이를 내려다 보는 어른의 얼굴도 수척하다
휠체어를 잡은 어른의 손이 떨린다
70년을 넘게 산 아버지 손을 잡고 그들을 지나친다
일을 오래 쉰 아버지 손이 희고 부드럽다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아버지, 하고 부른다
아버지는 아직 내 이름을 잊지 않았다
언젠간 내 얼굴도 잊을 것이다
나보다 어린 아이 아버지와 그 아이보다 어린 내 아버지
두 개의 세월이 무심히 스치고
다들
울고 있지 않은데 울고 있다

AND

아직은 아무일도
어제는
이렇게 먹는게 생에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오징어회랑 소주를 마셨고
오늘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이다
오징어 씨가 말랐다는 소식이 들려도 아직은
세상 어딘가에선 오징어가 잡히고
소주값이 너무 올랐다는 투정을 들어도 아직은
술값 걱정없이 횟집에 가기도 한다
아직은
몸이 크게 아프지 않고
퇴근하면 잘 곳이 있고
먹을 것이 없어서 걱정하지 않고
함께 떠들 사람이 주변에 있고
혼자 있을 땐 책을 읽거나 드라마를 보기도 하고
울적한 날은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인생탓, 세상탓, 사람탓 하며 살아도 
아직은
아무일도
없다
AND

 어제 운동 끝내고 샤워하다가 <집>을 생각했다. 이유도 없이 머리에 뜨거운 물 맞다가 갑자기. 집에 대한 욕망은 단순한 것이다. 주인에게 쫓겨날 걱정없는 내 집을 갖고 싶다. 빚 없이 내 집을 갖고 싶다. 한 번도 내 집을 가져본 적이 없으니 내 집을 갖고 싶다. 변기 수압이 세고, 부엌도 넓고, 거실엔 커다란 텔레비젼이 있고, 퇴근하고 돌아올 때 주차할 곳 없을까봐 걱정할 일 없는 내 집을 갖고 싶다. 이 정도의 보편적인 욕망이 나에게는 있다.

 아버지는 어제 입원했고 오늘 수술이다. 다음주 초 퇴원할 때까지 엄마가 아버지를 돌보기로 했다. 아버지 일로 내가 서울 오갈 때, 왜 엄마가 자꾸 눈물이 난다고 했는지 알 것 같다. 엄마 생각을 하니까 나도 눈물이 난다. 엄마는 나를 대신하고 나는 엄마를 대신한다. 그 대신하는 마음에서 나온 눈물이다. 그 안에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한 움큼 섞여있다. 엄마는 나를 걱정하고 나는 엄마를 걱정한다. 사랑이다. 걱정이 많은 사랑. 아버지랑 엄마는 병실에서 무슨 얘기를 할까? 살아가는 얘기를 나눌 수 없는 사이란 건 슬프다. 아버지에 대한 마음도 사랑일까? 난 아닌데, 엄마 마음은 모르겠다.

 수술은 별 걱정 안한다. 수술 후에는 문제가 있다. 한 달 정도 밥을 아주 천천히 먹어야 한다고 하는데, 아버지는 치매 걸린 이후에 먹는 속도가 매우 빨라졌다. 데이케어센터를 이용하지 않는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에 아버지 밥 먹는 걸 어떻게 컨트롤 하는냐가 문제다. 한 두달 정도라면 나랑 동생이랑 번갈아 가면서 아버지를 만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동생은 동생대로 아버지가 암 수술을 하는데, 본인이 병원에 가지 못하는 일로 마음이 어둡다. 아버지 사업 실패 - 사업이라고 할 수도 없었지만 - 때문에 산산조각 났던 가족이 아버지 치매랑 위암 때문에 대동단결하게 됐네. 씁쓸하다.

 아버지는 스스로를 잘 컨트롤하지 못하는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나에게 인생은 어떤것이다, 라고 한 적이 없다. 아버지에게는 인생이 어떤 것이라는 인식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 스스로는 삶에 자신감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뚜렷한 목표라던가 계획이 없었다. 그저 80년대 중후반을 관통한 경제 호황이라는 시대 분위기에 따라서 막연히 다 잘될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도 아버지와 비슷한 종류의 자신감을 피로 이어 받았다. 그게 너무 싫을때가 있다. 모든 자신감에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나는 그렇지 않을때가 많네. 그래서 아직도 내 집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지도 모른다. 엄마에게도 인생을 관통하는 얘기를 들은 적은 없다. 엄마는 그저 열심히 살라고 했다. - 아, 옛날사람 - 아쉬움을 갖고 이런 얘기를 적지만 밥을 굶거나 맞고 자라지 않은 것만해도 천만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냥 산다. 너로 산다. 사랑으로 산다. 술로 산다. 그냥 사는 걸 포함해서 뭘로든 살기만 하면 되는건가? 그냥 사는 거랑 되는대로 사는 건 많이 다른 느낌이네. 그냥 사는 것에는 의지가 들어있다. 되도록이면 그냥 살자. 아버지 걱정은 퇴원 후로 미루자.

 아버지 입원한 날 <집>에 대해서 생각한 얘기다.

AND

어제 새벽 1시 52분에 아버지한테 전화가 왔다. 마침 자다가 깨서 잠깐 멍하게 있던 중이라 바로 전화를 받았다. 머릿속에서 시간 혼란이 온 아버지는 아무도 없는 그 시간에 1시간 정도 걸리는 산책코스를 돌고 왔다. 아침 7시에 일어나서 내가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는 '네, 안녕하세요.' 하고 전화를 받았다. 데이케어센터에서 차 타러 나오라고 전화한 줄 알았던 거라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새벽에 나한테 전화했던 일을 기억하고 있었고 뭔가가 이상했다고 말했다. 그 얘기를 엊저녁에 통화할 때도 했다. 이 정도만 말똥말똥해도 다행이라 생각한다. 다만 새벽에 시간개념 없이 밖을 돌아다닌 걸 처음이라 살짝 걱정이다. 아버지한테는 사람 없을 때는 어디 돌아다니시지 말라고 했다.

아버지가 체크카드를 사용하면 나한테 알림이 온다. 데이케어센터에 있는 날이 많으니까 알림은 한 달에 많아야 10개 정도 온다. 마트에서 뭘 사거나 머리를 자르거나 김밥을 사먹거나 이런거다. 8000원 이하가 많다. '8000원 이하만 소비하는 삶' 짠하다. 어제는 빵집에서 빵을 샀다는 알림이 왔고 - 센터에서 저녁을 먹었지만 빵이 드시고 싶었나보다 생각함 - 커피가 먹고 싶은데, 커피가 떨어져서 커피 사러 나왔다고 하길래, 아버지는 위암이라 커피 드시면 안된다고 했다. 위암이라 반복해서 얘기해줘도 자꾸 잊는 걸 보면 아버지 머릿속에는 애초부터 본인이 '암'에 걸릴수도 있다는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다. 세상 많은 일들이 그렇듯이 아버지의 지금 상태는 어떤면에선 좋고 어떤면에선 좋지 않다. 햄버거와 찬물의 공통점은 위 아래가 있다는 것이고 다른 많은 것들도 그러하니까.

아버지가 위암 판정 받고 서울 몇 번 왔다갔다 한 이후에 부쩍 우울해졌다. 산불조심 기간이라 주말에 사무실에서 근무를 섰다. 일요일 오후 늦게 친구 N이 어렸을 때 사진을 카톡으로 보냈다. 고등학생이던 나, 20대 초반이던 나를 봤다. 친구들이랑 부석사 갔던 것도 생각나고 고교동창들 이름이랑 별명도 떠올랐다. 뭔가 위로가 됐다.

나는 지금 어떤 추억을 쌓고 있나? 아버지와의 추억을 쌓고 있네. 아버지한테도 추억이 쌓일까? 과거를 기억하는 일이 중요한가? 과거가 아름답게 기억된다면 그것은 그게 다 지나간 일이기 때문이다. 먼저 아버지 만났을 때는 아버지 회사 다닐 때 얘기를 들었다. 사장이 아들한테 회사를 물려줬고 그 사장이 술 먹고 노는 것만 좋아해서 많은 직원들이 몰래몰래 돈을 빼 가고 그러다가 회사가 망했다는 얘기였다. 아버지의 기억은 내가 바로 위에 쓴 문장보다 약간 길 뿐이다. 짧게 요약할 수 있는 기억. 짧게 기억되는 과거. 아버지는 아직 나를 알아보고 내 이름도 안다. 나도 언젠가는 아버지를 짧게 기억할 뿐이다. 그 뿐이다.

AND

복강경. 구멍 2-3개. 가벼운 수술이다. 위 3분의 2를 잘라내고 남은 위에 소장을 끌어올려서 붙인다. 수술은 총 4시간 이상 소요.
남은검사 - 엑스레이 심전도 혈액형 검사 순환기 내과 진료의뢰 - 입원 전에 진행해야 함
2.22. 점심 때 수술하기로 함
20일에 코로나 검사(이대병원에서 진행)
21일 오후 입원
보호자 상주하려면 코로나 검사, 아니면 간병인 구할 것
수술 5-6일 후 퇴원
수술 후 밥을 매우 천천히 먹어야 함
1기로 예상 되지만 수술 후에 1기가 아니라면 항암치료 해야됨.

어제, 아버지 수술해 줄 의사 만나서 들은 얘기다. 나보다 어려보이는 의사가 말을 시원시원하게 해서 듣기 좋았다. 엄마한텐 말로 설명하고 동생이랑 아내한테는 텍스트로 보냈다. 그래도 또 말로 설명해야 된다.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는 아버지보다는 20일부터 누가 어떻게 아버지 일을 진행할지가 더 걱정이다.

어제는 지치고 힘들었다. 데이케어센터, 병원 세 곳, 약국 두 곳, 식당 두 곳 한 번 다녀왔다. 병원 안에서도 여기저기 막 돌았는데, 신경과 선생님이 새해 복 많이 받고 수술 잘 받으시라 한 것과 - 전신마취 후 섬망증상이 나타나도 너무 걱정 말란 얘기도 함 - 가정의학과 선생님이 혈압약 약한 걸로 바꿔주면서 수술 잘 받으시라 한 얘기가 기억에 남는다. 형식적이고 사소할 수도 있는 말이 힘이 될 때가 있다. 예정에 없게 하루 더 서울에 있게되서 울적했다. 모텔 욕조에 목욕물 틀어놓고 담배 피우면서 힘들다. 힘들다. 했다. 스스로에게 하는 힘들단 말 말고 나를 위로해 줄 말이 없다, 는 생각을 했다.

오늘은 7시반에 병원 도착해서 두 시간만에 네 군데를 돌았다. 검사 다 마치고 만난 의사가 심전도도 좋고 청진기로 들어본 소리도 좋으니 수술 잘 받으시라고 했다. 여기까지로 일단 안심이다. 데이케어센터 가서 아버지 수술 일정 설명하고 지금 청량리역 가는 중이다. 오늘은 이동이 많지 않아서 어제보다 덜 힘들지만 힘들다. 심적으로. 아버지랑 함께 있는 건 덩치 큰 어린이랑 함께 있는 것 같다. 엄마는 내가 너무 고생해서 눈물이 난다고 하는데, 지금 내가 하는 일들을 엄마가 하게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엄마한테 같이 살자고 하는 아저씨들이 있었을텐데 엄마는 왜 재혼하지 않았나? 자식들(나랑 동생) 때문이라 생각한다. 부모 자식이란 게 서로 눈물 흘리는 사인가 보가.

서울은 어제 오늘 미세먼지가 심하고 강릉은 몇 달 째 가물다. 아버진 머릿속은 먼지낀 듯 뿌옇고, 엄마도 나도 동생도 마음속이 점점 메말라간다.

소변검사 하는데 오줌 잘 못 받아서 내가 종이컵 받쳐줘야 되는 아버지가 이제 봄이 오나보다, 말했다. 아버지한테도 아직까지는 봄이 온다.

어쩌겠나 살아야지. 여전히 위로받고 웃는 순간이 있으니까.

수요일 오전인데 일주일이 다 간 것 같다. 청량리역 가는 중인데 얼른 집에 가서 쉬고 싶다.

AND

어제 아버지 만났다. 병원가서 검사 결과 들었다. 의사가 수술을 권한다고 했다. 의사말을 따라야지. 6일에 수술해 줄 내과 의사 만나고 7일에는 수술 전 준비 과정으로 심장초음파 검사 하고 신경과 선생님도 만나야 한다. 6일은 동생이 7일은 내가 맡는다. 동생이 있어서 다행이다. 치매 때는 여러가지 자료를 많이 읽어봤지만 위암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암은 그냥 암이니까 도려내면 되니까.

아버지는 요새 좀 말똥말똥한 느낌이다. 통화할 때 나한테 고맙단 얘기도 자주하고 약도 먼저 챙겨 먹은 일이 많다. 실제로 만난 아버지도 말똥말똥한 느낌이었다. 물론 이미 잃은 능력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병원에서 진료지연으로 대기 시간이 좀 있었는데, 아버지가 엄마는 건강하지? 물었다. 젊어서부터 지하실에서 술을 그렇게 마셨는데 건강할리가 있냐고 살짝 부아가 나서 말했다. 작년에 뇌수술도 하지 않았냐고 하자. 웃으면서, 그랬나? 해버리는 아버지를. 나는 사랑하진 않는다.

정월대보름이 가까워서 신월동 시장에 잡곡이랑 나물이 눈에 많이 띄었다. 취나물 다래순 고구마줄기 도라지 봄동 아주까리 같은 것들이 수입 체리와 뒤엉킨 이미지가 머릿속에 남았다. 체리 빛깔이 매혹적이라 그런것 같다. 아직까지는 대보름 풍속이 살아있다. 입춘대길도 그렇고 뭔가 복이 되고 돈이 되고 좋다고 하는 풍습이 오래 살아 남는다. 정월대보름은 언제까지 가려나? 아버지는 내가 케어하면 되는데 내 더위는 누가 사가나?

아버지 데이케어센터에 모셔드리고 국철타고 오산 엄마한테 왔다. 예전에는 수원역 전후로 초록 들판이 보이기 시작하면 이와이 슈운지의 릴릴슈슈의 모든것을 생각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겨울이기도 하고 새 건물도 많이 올라가서 수원역에서 오산역 사이에 그런 들판은 없다.

엄마는 장사할 때 알던 아줌마 아저씨들과의 관계 속에 살고 있다. 그 관계에서 크게 스트레스 받는일은 없는 거 같다. 그러면 됐다. 엄마가 해 준 찰밥 먹었다. 엄마랑 얘기 많이 했다. 내 태몽이 복숭아가 아니라 통장과 도장이란 걸 알았다. 여지껏 왜 복숭아로 알고 있었을까. 이웅평 대위가 남한 상공을 날 때, 마침 짜장면을 시켜놔서 울면서 많이 먹으라고 했단 얘기도 다시 들었다. 언젠가부터 엄마는 장사할 때 원도한도없이 고생했단 얘기를 한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그런 얘기를 하게 된 엄마를. 장사할 때는 힘들단 얘기를 한 번도 하지 않은 엄마를. 정말로 열심히 했다(살았다)는 엄마를. 나는 사랑한다. 해 준 것도 없는데 얘기를 또 하길래 앞으로는 그런 얘기 하지 말라고 했다. 나도 동생도 아버지도 이미 충분히 받았다.

윤석열이가 같이 술 먹고 놀자고 쫓아오는 꿈을 꿨는데, 도망가다가 붙잡히질 않아서 복권을 사진 않았다는 엄마 얘기를 기억해 둔다. 엄마 삶이 여러가지로 뒤엉킨 꿈이라 샹각한다. 엄마, 복권은 제가 살게요.

아버지가 위암 판정을 받고 꽤 지났고 나름대로 빠르게 진행했는데, 아직 수술 날짜도 잡히지 않았다. 이게 세상의 속도고 당장 아버지 숨이 넘어 가는것도 아니니 순서대로 차분하게 진행하자.

AND

밀크커피

밀크커피
사랑을 조금 덜 넣은
그래서 입 안이 짠
한쪽을 누르면 다른쪽이 튀어나오는 풍선같은
사랑,
을, 조금,
덜, 넣은,
사랑은 설탕 설탕은 사탕
얼만큼의 사랑인지
보는 것 만으로는
이름만으로는 모르는

AND

베스트 프렌드

내 친구는 이혼 한다는데 나는 이렇게 몸이 좋아도 되나
그 친구는 돈이 많은데 나는 턱걸이를 10개씩 해도 되나
그 친구는 만나면 항상 술값을 내는데 나는 철봉에 매달려 있어도 되나
그 친구는 대상포진에 걸렸는데 나는 점점 알통이 커져도 되나
그 친구는 아픈 중에도 나를 걱정하는데 나는 친구를 걱정하는 척만하고
아내도 없고 돈도 없고 아픈데도 없는 나는
혼자만 이렇게 건강해도 되나

AND

올 초에 ys형 만났다. 그래봤자 며칠전이다. 내 구글 주소록에 영어로 저장된 넷 중에 한 명이다. 떠돌이 같던 인생에 지금 직장 알려준 고마운 사람이다. 한참 마시던 중에 형은 요새 이슈가 뭐에요? 물었는데, 없다고 했다. 사람들 만나면 요즘 이슈가 뭔지 가끔 묻곤 하는데 없다고 대답하는 사람 처음 봤다. ys형은 집 살 때 진 빚도 다 갚았고 아내랑 같이 벌고 아이도 없으니 이슈가 없다고 했다. 와, 이슈가 없는 사람도 있구나.

내게는 크게 두 가지 이슈가 있다. 아버지랑 집이다. 곧 만 4년을 채우는 전셋집은 집주인에게 연락이 오지 않았고 나도 나갈 마음이 없기 때문에 자동으로 계약이 2년 연장됐다. 2년 후에 이사 가게 되면 전세 보증금 돌려 받을 수 있나? 하는 문제가 남았지만 일단 집 문제는 해결됐다. 치매인데 위암에 걸린 아버지는 아마 돌아가실 때까지 계속 나의 이슈로 남을 거다. 2월 3일에 의사 만나서 검사 결과를 듣고 수술 등 날짜 잡아야 하는데, 벌써부터 걱정된다.

며칠 전에 아내한테 이슈가 뭔지 물었는데 없다고 했다. 없으니까 좋은건가? 혹은 체념인가? 아내는 말 길게 하기 귀찮아서 없다고 했을거다. 나는 나도 걱정, 아버지도 걱정, 엄마도 걱정, 나라도 걱정, 국제 정세도 걱정이다. 체념하는 삶을 사는 것 처럼 말하고 다니지만 걱정이 많으니 진짜 체념은 아닌가? 유명해지고 싶다는 열망을 여전히 갖고 있으니 체념은 아닌 것 같다. 그저 거짓말쟁이인가?

40대 중반 나이에 여전히 마음속에 열망이 꺼지지 않았다는 건 좋은 일인가? 당장 땟거리 걱정이 없으니 드는 배부른 생각인가?
잘 모르겠다.

p.s. 이슈의 반댓말은 체념인 거 같고 체념은 살아있는 모든 것의 반댓말인 것 같다.

AND

8시에 병원 도착해서 수납, 피검사, ct촬영 동의서 작성, 나만 커피 한 잔 마시고 - 아버지 미안해요. - 초음파 내시경 마쳤다. 병원 안에서만 다섯 군데를 돌아다녔네. 아버지 힘들었겠다. 그래서 그런지 검사 마치고 택시에서도 집에 와서도 잔다. 잠든 아버지 몸에 내 몸을 얹어도 아버지는 그저 곤히 잔다. 시장에 죽 파는 곳이 있길래 전복죽 사서 아버지 침대 근처에 두고 나왔다.

ct 찍으러 온 사람들 중에 바퀴달린 병원 침대에 누워서 '아' 소리를 계속 내던 할아버지가 기억에 남았다. 아픈것도 있지만 외로움의 절규 같은 '아'였다. 기력이 없어서 큰 소리로 내지도 못하는 '아'. 우리 아버지도 외로운데. 아버지가 저 사람은 아파서 소리내는 거냐고 해서 그렇다고 했다.

초음파 내시경은 먼저 만났던 담당의사가 직접 진행했다. 사진 찍는 사람은 따로 있는 줄 알았는데, 담당 의사가 진행해서 다행이었고 안심이 됐다. 내일 ct결과도 봐야겠지만 내시경 상으로는 깊게 파고들지 않은 조기암으로 보인다고 한다. 이 얘길 전했더니 엄마랑 동생이 좋아했다. 나도 그들만큼 좋은 건 아니지만 마음이 나쁘지 않다.

내시경 찍을 때까지 한 시간 정도 기다리는 중에 아버지 손을 잡았다. - 둘이 멍하게 있을 땐 손 잡고 있는 편이다 - 따뜻하다, 너도 열이 많아, 묻더니 금방 잠든 아버지가 기억에 남았다.

오늘 아버지는 (당연히) 왜 병원에 왔는지 몰랐고 난 잘못한 거 없어라고 자꾸 말했다. 얼마전에 속이 상한 엄마한테 한 소리 들어서 그런 것 같다. 누구나 다 걸리는 암에 아버지도 걸렸고 나도 아버지가 크게 잘못한 거 없다고 생각한다. 느긋하게 생각하면 아버지 치매도 술 보다는 유전적인 게 강한지도 모른다. - 할아버지 돌아가실 무렵에 횡설수설 하던게 희미하게 떠오른다. - 그렇다면 나도?

아버지, 아버지는 잘못한 거 없어요. 어제 금식 잘 하셨고 오늘 검사 받느라 고생 하셨어요. 좀 있다가 전화 할테니까 그때 죽 먹기로 해요. 내일은 작은 아들이랑 손주들 만나서 좋겠네.

아버지, 잘 하고 있어요.

신길역에서 출발한 1호선이 청량리역 도착하기 전에 글이 끝났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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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에서 강릉가는 19시 22분 기차 기다리면서 쓴다. 귀에 이어폰 안 꽂고 쓰는 거 오랜만이네.

청량리역에 18시 50분에 도착했다. 까치산에서 5호선을 타고 신길과 종로 3가 중 어느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탈지를 고민했다. 퇴근 시간의 혼잡도를 고려해서 5호선에서 자리에 앉은김에 종로 3가까지 앉아서 오는 쪽을 선택했다. 지금의 아버지의 삶에는 스스로 하는 이런  종류의 선택이 없다. 위암이라고 반복해서 얘기해도 그게 뭔지 몰라서 그저 웃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더 편한 부분도 있다. 괜히 심각해 질 필요는 없지.

내시경 사진 상으로는 암덩어리가 두 개 있고 덩어리의 모양만 봐서는 초기 단계는 아닐거란 얘기를 들었다. 두 개의 덩어리 다 위치는 좋다고 했다. 수술하기 좋단 얘기겠지. 암에 걸렸는데 위치는 좋은 모순을 생각해본다. 19, 20일에 초음파 검사랑 CT 찍기로 했다.

엄마는 어제 다 울었는지 오늘은 울지 않았다. 자꾸 나한테 미안해 하길래 그럴 필요도 없고 며칠 뒤 검사도 동생이랑 의논해서 진행할테니 아버지 일에 크게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어제 목욕도 하고 푹 잤다고 생각했는데, 아침에 몸살 기운이 느껴져서 텅빈 아버지 집 아버지 침대에 전기 장판 틀고 누워서 땀을 흘리면서 잤다. - 병원 예약이 오후라 아버지는 아침에 데이케어센터에 감 - 개운해졌다. 전기장판 작동 못 시키는 아버지, 치매인데 위암에 걸린 아버지, 엎친데 덮친 아버지인가?

병원 다녀와서 순댓국 먹었다. 위암이란 걸 얼었으니 짜게 먹을 순 없는 노릇인데, 아버지는 내가 안 본 사이에 다대기도 넣고, 젓가락으로 새우젓을 잔뜩 집었다가 나한테 제지 당하기도 하고 내 눈치를 보면서 짜게 먹었다.

아버지 너무 짜게 드시지 마세요. 검사 잘 받아 보자구요.

-> 땀 흘리고 잔 후에 신월 3동 스타벅스에 갔다. 노트북이랑 공부할 거 없으면 혼자서 스타벅스 오면 안되는 세상에 살고 있나? 잠깐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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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 9시 40분 강릉역에서 쓴다.

 아버지한테 가려고 10시 30분 기차 기다리기 시작했다. 의사 만나서 건강검진 결과 확인하고 데이케어센터 가정통신문 회신해 주는 간단한 일정이다.

 어제 저녁에 아버지랑 통화 마치고 아내가 한 마디 했다. 때때로 내가 아버지를 구박하거나 핀잔을 주는 말씨를 쓴다고 한다. 기분은 안 좋았지만 바로 안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옆에서 지켜보는 아내 말이 맞겠지. 막바로 담배 한 대 피우면서 '아버지한테 부드럽게만 말해야지' 생각했다. 세상 모두가 아버지한테 화내고 막 대해도 나만은 그러면 안된다. 현재 아버지에겐 내가 최고의 의지니까.

 어제 억양이 올라간 이유가 바로 윗 문장인 게 아이러니다. 평소처럼 학교(센터)에 가 계시면 오후에 모시러 간다고 했는데, 아버지는 내 말을 듣지 않고 그럼 학교는 안 가도 되겠네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러니까 어젯밤 아버지 머릿속에는 내일 큰아들 - 요즘 아버지는 내 이름을 잘 말 안(못) 함 - 만난다.로 가득차 있는 것이다. 그저 그 뿐인데, 나는 그게 싫고 부담되고 남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아버지가, 나만 기다리는 아버지가, 엄마에게 계속 부담인 아버지가 얄밉다.

 치매는 세계라는 시스템에서 동떨어지는 일이고 내가 보기에 아버지 인생이 시스템에서 멀어진 건 30년도 넘었으니, 자연인이 되지 않은 아버지가 치매에 걸린 건 당연한지도 모른다. 치매가 치맥같이 가볍고 얼렁뚱땅한 일이면 내 마음도 지금보단 편할텐데.



 아버지랑 헤어지고 신월동 모텔방 욕조에서 쓴다.

 아버지랑 오리로스 먹었다. 감자탕과 오리로스 중에 아버지가 골랐다. 나는 감자탕이 먹고 싶었다. 아버지랑 같이 돼지등뼈를 뜯는 이미지를 떠올려서 그렇다. 아버지는 위암이다. 대학병원 가라고 의사가 써준 소견서에 stomatch cancer라고 적혀있다. 의사가 별의별 병에 다 걸리시네요,라고 쿨하게 말했다. 내가 이 의사 선생님을 좋아한 이유다. 진료실 뒤쪽에는 꽤나 운동을 본격적으로 하는 운동기구가 놓여있었다. 여태까지 이걸 몰랐다니. 무심했다. 병원 입구에서 별일 았으면 큰일이라고 했는대, 진짜 별일이 있었네. 위암이란 걸 알고 나서 오리 로스를 먹었다. 아직은 일상이 유지되도 괜찮으니까. 아버지는 분명 12시에 센터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4시에도 많이 잘 드셨다. 지갑에 돈 갖고 있고 싶다고 해서 은행에 들러서 돈 10만원 찾아드렸다. 아버지 지금 상태론 ATM 이용 못한다. 카드 비번을 몇 십 번 알려줬다. 나는 말하고 아버지는 흘린다. 목동이대병원 금요일로 예약했다가 무리인 것 같아서 내일로 바꿨다. 당일치기 강릉 서울 왕복은 자동차로도 힘들고 기차로도 힘들다. 아버지가 또 나만 기다리는 게 싫어서 내일 또 만날거라고 얘기 안했다. 회사를 포함해서 여기저기 연락을 돌렸다.

 엄마는 머릿속이 까맣다고 했다. 아내에게 엄마가 까맣다는 얘기를 전했더니, 가슴이? 라고 했다. 머릿속이든 가슴이든 까만 건 까만거지. 엄마는 집안에 우않(우환)이 겹친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정정해 줄까 하다가 별일 아니니 걱정 말라고 답장했다. 그리고 엄마는 머릿속이 까매서 자꾸 울었다.

 땀난다. 내일 잘 마치고 집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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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의 고리 - 제발트

2023. 1. 6. 16:02

68p.

 외해에서는 아직 조업이 이루어지지만, 잡힌 것들조차 대개는 어분(魚粉)으로나 쓰일  있다는 사실을 차치하고라도 어획량 자체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매년 수천톤의 수은, 카드뮴, 납과 산더미처럼 많은 비료와 농약이 강을 거쳐 독일의 바다로 흘러든다. 대부분의 중금속과 여타의 독성 물질이 도거뱅크(영국 동북쪽 앞바다의 해역) 얕은 수역에 침전되는데, 여기에 사는 물고기의 3분의 1 이미 이상발육과 기형을 안고 태어난다. 면적이 수십 제곱마일에 이르고 깊이가 삼십 피트에 달하는 해안 가까이에 독성 해초무리가 자주 형성되는데, 바다 동물들은 여기서 뗴로 고통스런 죽음을 맞는다. 희귀한 편에 속하는 몇몇 가자미과 물고기, 붕어, 잉어 등의 암컷은 날이 갈수록 괴상한 돌연변이를 거치면서 수컷 생식기를 가지게 되었는데, 이것들이 치르는 번식과 관련된 의식은 이제 기껏해야 죽음의 무도에 지나지 않는다. 어릴  우리는 생명계가 놀라운 번식능력과 증식능력을 지녔다고 생각하며 자랐지만, 이런 현상들은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당시에 청어가 하급반에서 자주 애용되는 학습대상이던 것은 우연이 아닌데, 청어는 말하자면 자연의 근본적인 절멸 불가능성의 주요 상징이었다. 나는 지금도 50년대에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 () 시각자료도서관에서 대출하여 보여준 단편영화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떨리는 검은 선들이 어른거리던  영화에는 빌헬름스하펜의 어떤 범선이 등장했는데,  배는 화면 위쪽까지 치솟아오른 검은 파도 사이를 운항중이었다. 어부들은 밤에 어망을 펼쳤다가 밤에 다시 건져올리는 듯했다. 모든 일이 황량한 어둠속에서 진행되었다. 밝고 하얀 것은 금세 갑판에 가득 쌓인 물고기의 피부와  위에 뿌려진 소금뿐이었다.  영화에서 검게 번들거리는 방수복을 입은 남자들이 연신 그들은 덮치는 파도 아래에서 영웅적으로 일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청어잡이는 자연의 우위에 맞서 싸우는 인간의 투쟁을 보여주는 전범이었다. 영화가 끝날 무렵 배가 고향 항구를 향해 나아갈 , 저녁 햇살은 파도에 부딪혀 조각나고 이제 잠잠해진 바다 위로  광휘를 흩뿌린다. 깨끗이 씻고 머리를 빗어넘긴 선원 하나가 하모니카를 분다. 선장은 키를 잡고 서서 책임감있는 표정으로  곳을 바라본다. 끝으로 화물을 하역하고, 넓은 실내에서 작업하는 장면이 이어졌는데, 여자들이 청어의 내장을 빼내고 크기에 따라 분류하여 통에 넣고 포장한다. 다음으로 바다의   모르는 방랑자들(나는 최근 1936년에 제작된  영화의 별책을 입수할  있었는데, 여기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 열차의 화물칸에 실려 지상에서의 마지막 운명을 완수하게  곳들로 수송된다. 다른 곳에서, 그러니까 1857 빈에서 출판된 북해의 자연사를 다룬 책에서 나는 청어가 봄과 여름에 상상을 초월하는 수백만 마리의 떼를지어 어두운 심해에서 올라와 해안의 하천과 얕은 바다 밑바닥에 산란하여 알들을 겹겹이 쌓아놓는다는 이야기를 읽는다. 느낌표까지 찍어놓은 문장에 따르면 암컷 청어  마리가 칠만 개의 알을 낳으며,  알들이 모두 아무런 방해 없이 번식한다면 뷔퐁(1707~88, 프랑스의 박물학자) 계산을 따를  오래지 않아 지구의 이십 배에 달하는 부피의 물고기들이 생겨날 것이다. 책에는 청어가 거의 대재앙에 가깝게 과잉공급되는 바람에 청어어업 전체가 파산할 지경에 이르렀던 해들도 연거푸 기록되어 있다. 심지어 바람과 파도로 해안까지 떠밀려 육지에 내던져진 어마어마한 청어떼가 몇 마일에 걸쳐  피트 높이로 해변을 뒤덮은 사건까지 있었다고 한다. 근처 마을의 주민들은 이렇게 쌓인 청어의 극히 일부만 겨우 바구니와 상자에 삽으로 퍼넣어 가지고   있었다. 해변에 남은 청어들은 며칠 안에 썩어 자신의 과잉으로 질식하는 자연의 끔찍한 장면을 연출했다. 반면, 청어들이 평소에 들르던 장소를 피하는 바람에  해안지역 전체가 빈곤에 빠지는 일도 자주 있었다. 청어들이 어떤 길을 따라 바다를 통과하는지는 지금까지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빛과 바람의 상황이 청어가 가는 길을 결정한다거나, 지구의 자기(磁氣) 혹은 계속 변하는 물의 등온선이 이를 결정한다는 가정도 있었지만, 이런 모든 추측은 결국 확실하게 입증될  없었다. 그래서 청어잡이들은 예로부터 전해오는, 부분적으로 전설에 근거하는 지식과 관찰에만 의지할 수밖에 없었는데, 예컨대 규칙적인 쐐기 모양으로 대형을 이루어 움직이는 청어들은 햇살이 특정한 각도로 입사(入射)  맥동하는 빛을 하늘을 향해 반사한다는 것을 관찰했다. 청어가 있다는  하나의 믿을 만한 신호는 수면에 떠다니는, 문질러져 떨어져나온 무수한 비늘인데, 이런 비늘은 낮에는 은도금처럼 반짝거리고 석양이 비칠 때면 눈이나 재처럼 보인다. 일단 청어떼가 확인되고 나면 대개 밤에 잡아들이는데, 앞서 인용한 북해의 자연사 책에 의하면 길이가 이백 피트에 달하고 거의 이십오만 마리의 물고기들을 한꺼번에 잡을  있는 어망이 사용되었다. 거친 페르시아산 비단으로   어망은 경험상 청어들이 밝은 색을 싫어한 탓에 검게 염색되었는데, 어망이 물고기들을 포위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벽처럼 물속에  있을 뿐이었기 때문에, 물고기들은 절망적으로 어망을 뚫고 나가려다가 아가미가 그물코에 걸려 빠져나가지 못하고,  여덟 시간에 걸쳐 어망을 끌어올리고 감는 과정에서 질식하게 된다. 그러므로 청어가 물에서 끌어올려질 때는 이미 대부분 죽어 있다. 그래서 라쎄뻬드와 같은 과거의 자연사학자는 청어가 물에서 벗어나는 순간 일종의 심장마비 혹은 어떤 다른 이유로 순식간에 죽는다고 생각했다. 오래지 않아 자연에 정통한 모든 사람들은 이러한 성질을 청어의 특수한 속성으로 간주하게 되었고,   물에서 나왔는데도 여전히 살아 있는 청어를 보았다는 목격자들의 보고는 오랫동안 특별 관심거리가 되었다. 예컨대 삐에르 싸가르라는 캐나다의 선교사가 뉴펀들랜드 해변에서 오랫동안 파닥거리는  무리의 청어를 보았음이 입증됐고, 슈트랄준트의 노이크란츠라는 사람은(사망 시점에서)  시간   전에 물에서 끌어올린 청어들이 죽을 때까지 계속하여 파닥거리를 것을 관찰했음이 확인되었다. 루앙의 생선시장 감독관이던 노엘  마리니에르도 어느날 두세 시간이나 마른  위에 있었음에도 꿈틀거리는 청어들을 보고,  물고기의 생존능력을 정확하게 살펴볼 생각으로 지느러미를 잘라내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절단한 일이 있었다. 우리의 지식욕에서 비롯된 이런 행동은 지속적으로 대재앙의 위협에 노출된  어종이 겪어야 했던 수난사의 극단적인 사례라고  만하다. 어란(魚卵) 단계에서 해덕이나 학꽁치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살아남은 것들도 바다뱀장어나 움브라, 대구, 나아가 인간까지 포함한 수많은 다른 청어 사냥꾼들의 뱃속을 채운다. 1670 경에 이미 팔십만  이상의 네덜란드 사람들과 프리슬판트 사람들이, 그러니까 전체 인구의 상당한 부분이 오로지 청어잡이에만 매달렸다. 백 , 매년 청어 어획량은 육백억 마리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상상하기도 어려운 이런 막대한 양에도 불구하고 자연사학자들은 인간이 생명의 순확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파괴의 작은 일부에만 책임이 있으며, 독특한 생리학적 조직 덕택에 청어는 고등동물이 죽을  느끼는 몸과 영혼의 두려움과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놓았다. 하지만 실은 우리는 청어의 감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우리가 아는 것이라고는 청어의 골격이 이백 개가 넘는 다양하고 지극히 복잡하게 구성된 연골과 뼈로 이루어져 있다는  뿐이다. 외모에서는  좋은 꼬리지느러미와 폭이 좁은 머리, 약간 돌출된 아래턱, 밝은 은빛 홍채 위에 검은 동공이  있는 커다란 눈이 눈에 띈다. 등은 푸르스름한 녹색을 띈다. 측면과 복부의 비늘은 하나씩 보면 금빛 오렌지색을 띠지만, 전체적으로는 순수한 백색의 금속 광채를 보여준다. 역광을 비추어보면 몸통 뒤쪽은 다른 어디서도 찾아볼  없는 아름다운 암녹색의 빛을 발한다. 그러나 죽은 뒤에는 색깔이 달라진다. 등은 푸르게 변하고, 뺨과 아가미는 피하출혈고 붉어진다. 청어의  하나의 특징은, 사체가 공기에 노출되면 반짝거린다는 것이다. 인광과 비슷하지만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독특한 광력(光力) 죽고   며칠이 지나면 정점에 이르렀다가 부패가 시작되면서 차츰 줄어든다. 오랫동안, 아니 내가 알기로는 오늘날까지도 청어의 사체가 이렇게 반짝거리는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도시에 전면적인 조명을 도입하는 프로젝트들이 도처에서 진행되던 1870년경, 기이하게도 그들의 연구에  맞아떨어지는 이름을 가진  명의 영국 과학자들 헤링턴(청어를 독일어로 '헤링'이라고 부른다) 라이트바운은 죽은 청어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발광물질에서 지속적으로 저절로 재생되는 유기적인 광원(光源) 추출해낼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기이한 자연현상을 연구했다고 한다.  기발한 계획은 실패했지만, 내가 최근 읽은 인공 조명의 역사를 다룬 책에도 기록되어 있듯이  실패는 어둠을 몰아내는 거침없는 발걸음에 별로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 청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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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세상에 슬픈 마음들을 다 그러모아다가
그치지 않는 비를 내릴거야
메마른 땅을 적시고 적시고 적시고
물길을 만들고 강이 되고
그 강이 바다로 흐르고
바다를 넘고 넘고 넘어서
네 마음에 가 닿을거야
그때부터 너는 나를 그리워할거야
세상에서 가장 슬픈 
그 마음은 멈추지 않을거야
나는 헤엄을 쳐서 너에게 갈거야
짜가운 눈물을 건널거야
네 마음의 끝에 가장 먼저 닿을거야
비가 그치고 
세상의 슬픈 마음들은 다시 흩어질거야
우리는 세상이 끝나도 마르지 않는 바다가 될거야​​

AND

기다림

방 안에 억새꽃 피었네
작은 창으로 지는 햇살이 들어오고
억새는 억새니까 반짝이네
겨울로 가기 싫다는 듯 빛이 오래 머물고 가네
주인 없는 방이 억새밭이 되었고
바람을 기다리는 붉은 저녁
나는 거기에 있네

AND

크리스마스 이브가 할아버지 제사였다. 12시 반 정도에 오산 엄마집에 도착했다. 여태까지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는데, 이번에는 제사 준비하면서 사람(아버지)이 아파서 아무것도 모르는데 제사가 다 무슨 소용인가 생각했다, 고 엄마가 말했다. 맞는 말이다. 더구나 법적으로 엄마랑 아버지는 남이다. 그런 미안함이 아버지 동생들에게 있기를 바란다. 아마 있겠지. 없으면 안되지. 아버지는 JJ 작은 아버지가 모시고 왔다. 제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양반이니 당연히 본인이 아버지를 모시고 와야겠지. 동생네는 안 왔다. 막내 작은 아버지 내외까지 총 7명이 제사를 치렀다. 제사를 좋아하는 건 아닌데, 이왕이면 이 정도 소규모가 좋다. 23일 아침에 아버지랑 통화하고 그날 저녁에 통화를 못했는데, 24일에 만난 아버지는 핸드폰을 잃어버렸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 이름으로 알뜰폰 하나 새로 해 드려야지 생각했다. 제사 마치고 저녁 먹고 강릉으로 돌아왔다. 강릉오산 당일치기 왕복 운전은 언제나 힘들다. 25일에는 종일 누워 있었다. 아직은 누워 있는 일로 피로가 풀리는 나이다.

어제 아침에 건강검진 받고 바로 서울로 왔다. 친구 잠깐 만났다. 인생에는 여러가지 경우가 있다. 한 친구는 절반쯤 갚고 남은 빚이 오천이고 한 친구는 숫자 열자리의 ‘나의 자산’을 보여줬는데, 그 둘은 태어난 날이 같다. 내가 엮어준 사이고, 둘이 친해서 다행이다. 그들도 서로를 바라보면서 또 나를 바라보면서 인생에는 여러가지 경우가 있다고 생각할 거다.

오늘 아침에 혹시나 싶어서 아버지한테 전화했는데, 아버지가 전화를 받았다. 와, 아버지 전화기 찾았네. 데이케어 센터에서 오는 차를 타고 내리는 골목이 있는데, 그 골목에 휴대전화를 두고 지난 금요일 아침에 센터에 갔던 것으로 최종 확인했다. 아닐수도 있다. 중요한 건 아버지가 전화기를 찾았다. 해가 세 번 지는 동안 길 바닥에 떨어진 휴대전화를 아무도 들고가지 않았다. 세상에 물건이 흔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딱 봐도 초구형의 스마트 폰을 주워도 어디 팔아먹을 곳도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원래는 오늘 아버지 건강검진을 진행하려고 했는데, 3일동안 아스피린을 드시면 안되다고 해서 토요일로 예약을 미뤘고 올해의 마지막 날 아버지를 만나는 일은 동생에게 미뤘다. 자식이 둘인데, 둘 다 아버지를 포기하지 않았으니 시간나는 놈이 아버지 관련 일을 진행하면 된다. 은행에 가서 자동이체 전 마지막 가스요금을 냈고, 마그네틱이 손상된 통장을 새로 발급 받았고, 몇 번의 에러 끝에 아버지가 통장 비밀번호를 기억해 내는 일이 있었다. 먼저 서울왔을 때, 고생해서 만든 체크카드가 아버지 지갑에 없는 걸 알았고 은행에 간 김에 새로 만들까 하다가 왠지 잃어버리지는 않았을 것 같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 핸드폰을 들여다 보다가 핸드폰 지갑에서 체크카드를 발견했다. 굿. 오늘도 아버지랑은 순댓국을 먹었다. 맛있는 집이 있다는 아버지 손에 한참을 끌려갔고, 아버지는 순댓국을 다대기 국으로 만들어서 먹었는데, 맛있다고 했다. 아버지 먹는 모습을 보면서 예전부터 가졌던 느낌이 확실해졌는데, 아버지는 뭔가를 먹는 일도 어설퍼졌다. 그걸 글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실제로는 빨리 먹지 않는데도 보기에는 급하게 먹는 것 같고 입 주변에 음식을 많이 묻히고 바닥에 많이 흘린다. 밥 먹고 데이케어 센터에 아버지 모셔다 드렸다. 일이 빠르게 잘 진행된 날이다.

강릉에 도착해서 엄마 전화를 받았다. 올해 뇌수술 한 것 때문에 지난주에 mri를 찍었고 오늘은 그 결과 들으러 가는 날이었다. 엄마는 아버지 때문에 신경쓰게 해서 고맙고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그럴 것 없다고 했다. 엄마랑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끊기전에 사랑한다고 말할까 하다가 - 엄마가 살짝 바라는 것 같았지만 엄마도 먼저 사랑한다고 얘기하지 않았다. 이런것도 유전이지. - 몇 번의 타이밍을 놓치고 그냥 끊었다. 내일 전화해서 꼭 사랑한다 해야겠다. 전화를 끊고 오랜만에 만난 엄마 앞에 앉아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엄마가 차려준 밥을 우걱우걱 먹고 싶은 기분이 됐다. 엄마가 뭘 차려주면 맛이 없더도 배가 터지도록 먹게 된다. 차려주는 쪽도 먹는 쪽도 어떤 결핍이 있다. 해준것도 없는데란 말과 수고했단 말을 엄마에게 듣고 싶지 않다. 엄마, 아버지에 대해서는 너무 신경쓰지 마시고 본인 몸 관리 잘 하세요. 저도 엄마 말대로 건강 신경 쓸게요.

오늘 아버지가 나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은 ‘정신 차려야겠다.’ 고 내가 아버지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은 ‘정신은 안 차려도 되는데, 핸드폰이랑 지갑은 어디 두고 잃어버리지 말고 항상 챙기세요’ 다. 아버지는 여전히 날 만나면 좋고 내가 본인 일 때문에 서울에 자주 올라오는 것에 대해서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는데, 그런 마음을 갖고 있는 지금이 아버지의 가장 좋을 때라는 생각이다. 그 생각 때문에 슬퍼지는 건 아니다. 아버지, 설 연휴에 또 만나요. 다음달에 만났을 때도 ‘정신 차려야겠다’고 말해 주세요.

청량리 역 비둘기들은 한결 같이 등빨이 좋았다. 기억해 둔다.

아버지가 데이케어센터(학교)에서 만들었는데, 나보고 가져 가라고 해서 가져왔다. 우리 아버지 잘 하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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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온동물
 
사랑하면 뜨거워지고
싫으면 차가워지는
잠이오면 뜨거워지고
아침이면 차가워지는
그리우면 뜨거워지고
만나면 차가워지는
너는 변온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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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 박소란

2022. 12. 21. 11:44

다음에
                        ㅡ 박소란

그러니까 나는
다음이라는 말과 연애하였지
다음에, 라고 당신이 말 할 때 바로 그 다음이
나를 먹이고 달랬지 택시를 타고
가다 잠시 만난 세상의 저녁
길가 백반집에선 청국장 끓는 냄새가 감노랗게 번져나와
찬 목구멍을 적시고
다음에는 우리 저 집에 들어 함께 밥을 먹자고 함께 밥을 먹고 엉금엉금 푸성귀 돋아나는
들길을 걸어보자고 다음에는 꼭
당신이 말할 때 갓 지은 밥에 청국장 듬쑥한 한술 무연히 다가와 낮고 낮은 밥상을 차렸지
문 앞에 엉거주춤 선, 나를 끌어다 앉혔지
당신은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바삐 멀어지는데
나는 그 자리 그대로 앉아 밥을 뜨고 국을 푸느라
길을 헤매곤 하였지 그럴 때마다
늘 다음이 와서
나를 데리고 갔지 
당신보다 먼저 다음이
기약을 모르는 우리의 다음이
자꾸만 당신에게로 나를 데리고 갔지

AND

 아침에 아버지랑 한참 통화했다. 나한테 뭔가 말할 게 있다는데 그게 뭔지 생각이 안 난다고 해서 그게 뭘까, 생각하면서 계속 말을 걸었다. 아버지는 자고 일어났더니 코피가 났다고 했다. 아스피린 복용 때문에 코피가 쉽게 안 멈출수도 있어서 그렇냐고 물었더니 그건 아니라고 했다. 추운데 괜찮냐고 물었더니 다 괜찮다고 했다. 아버지, 보일러 만지시면 안돼요. 출근하고 얼마 안 있다가 데이케어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어제 넘어졌고 나한테 얘기했다는데 알고 있냐는 내용이었다.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전화를 끊고 핸드폰을 보니 데이케어센터에서 문자가 와 있다. 얼굴이 까진 아버지 사진이 내 전화기로 전송됐다. 어딘지 멍한 아버지 얼굴이 까져서 더 멍해 보이는 아버지. 마음이 터질 것 같았다.

 엄마한텐 아버지 다친 걸 전달 안하려고 했는데, 이번 주말 할아버지 제사 문제로 전화가 먼저 오는 바람에 아버지 넘어진 얘기를 해버렸다. 어디서 왜 넘어졌는지 아는 게 중요하지 않은데, 엄마는 그게 알고 싶다. 어제는 아침에만 약 드셨는지 간단하게 통화했는데, 어제 저녁에도 전화를 해서 아버지가 본인 넘어진 걸 얘기했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없다. 마음은 계속 터질 것 같지만 소용없는 일에는 집착하지 말자. 아버지가 일요일 조기축구 운동 끝나고 밥 먹는 중간에 화장실 다녀오다가 넘어진 걸 알았다. 아마 눈길에 미끄려졌겠지. 다들 술에 취해서 치매 걸린 노인네가 넘어졌거나 말거나 관심도 없고 병원에도 안 데려갔다며 엄마가 화를 냈다. 나는 조기축구 아저씨들 마음도 이해가 간다. 아버지가 일요일마다 운동을 오는 일이 그들을 불편하게 할 수 있다. 마음속으로는 이 노인네 그만 나왔으면 할 것이다. 엄마 말마따나 그게 남이다. 수십년간 함께 운동하고 술을 마신 사이지만 그게 남이다. 난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버지 머릿속에는 사람들이 자기를 무시하지만 올해 회비를 냈으니 끝까지 가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분명히) 그리고 일요일에 혼자 집에 있으면 외롭다.(더욱 분명히) 아버지는 여전히 외롭다.

 아버지, 주말에 할아버지 제사 때 봐요. 그 사이에 또 넘어지진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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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드컵 4강이 결정됐다. 우리나라 경기 말고도 몇 경기를 봤다. 축구는 공 하나 두고 차고 달리는 스포츠다. 예전에 어딘가 적은 적 있는데, 구기종목은 대체로 사람보다 공이 바쁘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 16강 진출하면 좋고 아니면 말곤데, 조별리그 마지막 게임에서 역대급 게임을 했다. 4년전 독일전이 끝나고 대단한 게임이었다, 가 머릿속에 훅 들어 왔는데, 그걸 갱신했다. 대단한 게임이었다. 일본이 철저하게 숏패스 게임 중심인데, 우리나라는 롱볼이 가능한 게 인상적이었고 수준이 많이 올라서 예전같이 '어이없는 실수'는 하지 않게 됐다. 그건 월드컵에 출전한 대부분의 나라가 그렇다.

 일본, 사우디, 호주 - 호주는 엄밀히 아시아 국가는 아니지만 사우디도 엄밀히 말하면 중동 국가니까 - 한국 사람들은 아시아라고 하면 동(남) 아시아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나도 좀 그렇다. - 아시아로 통칭하기로 한다. 이란까지 포함해서 카타르를 제외하고는 멋진 게임을 했다. 일본은 지금 스타일에 좀 더 거친 플레이와  롱볼(독일전 두 번째 골 멋있었음)을 가미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아시아의 젊은이들 화이팅.

 크로아티아 - 유고슬라비아 사람들은 왜 이렇게 운동을 잘하나? 농구를 포함해서 흑인들 중심인 엘리트 스포츠 계에서 미국같은 나라한테 유일하게 비벼볼 수 있는 백인 나라가 아닌가 생각한다. 다득점 팀은 아니지만 많이 먹어야 한 골 먹는 게임을 하는 팀. 이런 팀들이 토너먼트에서 오래 살아 남는다.

 스페인 - 일본보다도 더한 숏패스 축구, 코스타리카한테 7골 넣은 경기를 봤는데, 숏패스 버튼 밖에 없는 축구 게임 보는 줄 알았다. 토너먼트에서 더 올라가기 위해서는 특급 선수(음바페, 네이마르, 메시)  또는 몸빵형 스트라이커(여기에도 음바페는 들어간다.)가 필요했다.

 브라질, 잉글랜드 - 멤버 구성 좋고 공도 깔끔하게 잘 찼지만 두 팀 모두 자기들보다 좀 더 거친 팀들에게 졌다. 영국과 프랑스 게임은 내가 본 이번대회 베스트 게임이었다. 양 팀 선수들의 기술적인 부분은 같다고 보고, 영국은 음바페를 잘 막았지만 좀 더 거친 축구를 구사하는 프랑스가 이겼다. 브라질은 2002 월드컵때 뛰었던 호나우두 이후로 그런 걸출한 스트라이커가 나오지 않고 있다. 항상 전력은 최상위권이지만 결승에도 못 가는 건 토너먼트에서 골을 못 넣기 때문이다. 프랑스처럼 거친 축구를 하는 크로아티아에게 패배. 

 프랑스 - 첫 두 게임을 보고, 이 팀은 질 것 같지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선 마지막 게임에서 튀니지에게 졌지만 16강, 8강에서는 다시 이 팀은 질 것 같지가 않다는 포스를 풍김. 음바페는 혼자는 막을 수가 없음. 본인도 상대가 본인 막을 수 없다는 걸 알고 뜀. 현재 세계에서 공 제일 잘 차는 선수가 음바페가 아닐까 생각이 듬.

 아르헨티나 - 질 것 같지 않은 이미지는 아니지만 지저분하게(네덜란드와 8강전 개싸움) 올라온 팀들이 끝까지 가는 경우가 많고 나는 여전히 메시가 좋다.

 스포츠는 약팀이 강팀을 이기는 경기가 재미있다. 그런데 만화 슬램덩크(대 산왕공고 전)에도 나왔지만 막상 강팀이 약팀에게 진짜로 지는 순간이 오면 많은 사람들이 원래 강했던 팀이 승리하길 바란다. 브라질이 8강에서 탈락한 것에 대해 느끼는 실망감이 - 나만 그런가? 살짝 그런게 있다. - 그런 것이다. 사우디가 아르헨티나를 이겼을 때, 와우! 하면서 환호했지만 아르헨티나가 16강에 못 올라가기를 바라진 않는 마음 같은 거랄까? 독일은 결국 16강에 못 갔지만 그럴만 했다.

 나에게 월드컵 축구는 못 사는 나라가 잘 사는 나라 혼내주는 대회다. 식민지배를 받던 나라가 서구 열강을 축구로라도 때려 잡는 대회다. 축구라는 스포츠는 지저분한 뒷골목에서 맨발로 공 차던 아이가 부잣집에서 태어나서 어렸을 때부터 체계적으로 축구 배운 사람들보다 돈 많이 벌어야되는 종목이다. - 아프리카 이민자 후손들이 프랑스, 독일 축구 국가대표가 되는 일 - 그래서 남미팀이나 동유럽팀이 서유럽팀(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잉글랜드)을 이기는 게임을 보는 일이 즐겁고, 아프리카 팀이 잉글랜드와 (특히)프랑스를 이기는 게임을 보는 일은 더 즐겁다. 질 것 같지 않은 프랑스는 예선에서 튀니지에게 졌고 4강에서 모로코를 만나는데, 모로코에게 지기를 바란다. 

 모로코 경기를 한 경기도 못 봤는데, 준결승은 봐야겠다. 위에 적은 글들을 종합해서 내 희망을 적어보면 모로코랑 아르헨티나가 결승에서 만나서 메시가 한 골 넣고 아르헨티나가 이겼으면 좋겠다. 

 21세기가 4분의 1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국가대항전이 유효하고 흥미로운 세상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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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한마리 집에서 점심 먹고 혈압약 타러 병원, 아버지 안경 두고와서 점심 먹은집 다시 들렀다가 의사 만나고 약국, 신한은행 통장 찍어보고 농협에 신용카드 없애러 갔다가 직원이랑 언성 좀 높이고 처음 카드 발급 받은 농협으로 가서 체크카드 발급 - 여기 직원은 친절했다. - 이동중에 건강보험, 가스요금 자동이체 신청 - 수화기 너머로 본인 확인을 이유로 아들 두 명 이름 말하라고 했는데 뭔 말인지 못 알아들은 아버지가 동생 이름만 말하고 내 이름 말 못함 - , 미납 주민세 계좌이체, 치매안심센터에서 약값지원비 신청, 동사무소 들러서 가족관계증명서 등 발급받고 치매안심센터에 팩스 보냄, 집에 들러서 약통에 약 채우고 데이케어센터 방문.

아버지 많이 힘들었겠다. 나도 많이 힘들었다. 아버지가 내 이름 말 못할 때 언성을 조금 높였지만 아버지한테 화를 낸건 아니다. 의사가 건강검진 받으라고 했는데, 걱정이다. 대장 내시경은 나중에 따로 하더라도 일반 건강검진이라도 받는게 낫겠지. 가능한지 모르겠다.

힘들었으니 놀아도 된다. 청라에서 건쓰짱 만났다. 영일군도 일 마치고 건너와서 잼있게 놀았다. 내일 모레가 건쓰짱 생일인데 생일 기념으로 아내, 어머니랑 양양에 놀러 간다고 한다. 엄마 꼭 안고 잘거라고 해서 45살 아이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직업 때문에 가족들과 떨어져서 사는 고달픔도.

나는 먹고 노는 일로 개운해졌는데, 뭔 일인줄도 모른채 온종일 나 따라다닌 아버지는 뭘로 기분을 풀지? 보고 싶다던 나를 만나서 오랫동안 같이 있었으니 그저 좋았을까?

아버지, 건강검진 작전을 잘 세워 볼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물론 다 잊어서 아무 걱정 없다는 거 잘 알아요. 그리고 통장에 돈 많으니까 드시고 싶은 거 있으면 먹 사드시고요. 물론 돈 많이 안 쓸거라는 것도 통장에 돈이 얼마 있는지 모른다는 것도 잘 알아요.

아버지랑 관련된 걱정을 하나씩 줄이는 게 내 일이다. 아버지가 걱정이 없는 사람이라 다행이다.

짤은 아버지 지갑에 들어있던 아버지 글씨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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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요일에 아버지 만난다. 혈압약 타고, 치매지원센터에 치매약값 지원금도 - 그 동안 미뤄왔음 - 신청할까 한다. 아버지 핸드폰도 좀 들여다보고 카드 쓴 것 포함해서 재정상태도 살짝 들여다봐야 한다. 그러니까 금요일에 서울 가는 거는 일상적인 점검방문 이다. - 아버지 잘 있나 보러 가는거 - 엊그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한테서 보고싶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버지가 뭔가 얘기하다가 갑자기 '좀 보고싶고' 라고 했다. 아버지 나 보고 싶구나, 생각이 들면서 짠했다. 오늘 아침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한테 미안하다고 했다. 7시에 걸려온 아버지 전화를 못 받았는데, 7시 20분에 전화걸어서 아버지가 전화 받자마자 '아버지, 전화 못 받아서 미안해요' 라고 했다. 아버지도 나도 무심결에 한 말이다. 자연스럽게 본능적으로 나온 말. 보고 싶다와 미안하다. 보고 싶다는 말은 거짓말로 하기 어려운 말이다. 보고 싶다 보고 싶다 하니까 엄마 보고 싶네. 미안하다는 말은 기계적으로도 쓸 수 있는 말이다. 가족들끼리는 가짜로 미안하다고 하기 어렵다. 가족주의는 아니고 결국은 거짓없는 사람들이 남는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주말마다 부고 문자가 많이 오는 계절이고 지난주에 K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K  오빠가 내 또래라고 했던 것 같으니까 돌아가신 분은 우리 아버지랑 또래일거라 생각한다. 70대 초반, 요즘 시대에는 아직 정정한 나이, 그렇지만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 육체적으로 대단히 튼튼하던 우리 아버지도 계단을 내려올 때 내가 손을 잡아주면 더 편하게 내려오는 지경이 됐다. 죽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지만 주변의 죽음을 경험한 적이 없어서 - 현재까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죽음이 큰이모 돌아가신 일이다. - K에게는 잘 추스르라는 말 정도 하고 말았다. 누구나 그 앞에 무력한 것이 죽음이고 그렇게 죽음은 공평한 사실이 된다. 죽음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의 반댓말이다. 친구가 로또복권 3등에 당첨된 것도 아버지를 만나러 서울에 가는 일도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지금도 다 죽음의 반댓말이다. 결혼식과 장례식, 부의금과 축의금 같은 말과 항상 주변에 죽음이 따라다니는 사람을 떠올려봤다.  

 동생이 아버지 더 나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그럴거라고 했다. 아버지가 더 나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보고 싶다는 말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며느리 이름은 잊어서 '니 와이프도 보고 싶은데 같이 한 번 안 오냐' 고 하지만 내 이름은 잊지 않아서 지금처럼 '어, 일우야' 하면서 전화 받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노래 하나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노래를 만들었다. 가사에 반백년을 살았단 얘기가 들어갔다. 거의 반백년을 살았지만 아직은 고꾸라지고 싶지 않다.

 아침에 죽은 새를 봤다.

죽은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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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릉시 옥천연립 104호에 영화 ‘그랜 토리노’에 나왔던 클린트이스트우드랑 비슷한 이미지의 아저씨가 산다. 우리집 바로 아래아래 집이다. 2019년 3월에 이사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가 클린트이스트우드 아저씨란 별명을 지었고 아내도 어느정도 공감했다. 마르고 다부진 몸, 앙다문 입술, 거친풍파를 헤쳐온 듯한 강인한 얼굴, 청바지와 티셔츠, 딱딱하게 받아주는 인사, 항상 연립 입구 가장 구석에 비스듬히 세워두는 쌍용에서 나온 오래된 4륜 구동 자동차의 이미지들을 종합해서 지은 별명이다. 이 집에 거의 4년을 살며서 말은 섞은 적은 없고 내가 인사를 하면 아저씨가 인사를 받아주는 정도다. 내 나이가 마흔다섯이니까 아저씨라고 하는거지, 평범하게는 - 딱딱하고 강해 보이지만 남을 헤칠것 같지는 않은 이미지의 - 할아버지다.
  아저씨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는 아들이 둘 정도 있어서 명절 같은 때 타지에서 온 아들 차를 타고 외출을 한다는 것과 차 트렁크에 노가다 장비가 - 기술이 있는 일을 했던 것 같음 - 실려있다는 것 정도다. 올 봄에 우리 연립으로 들어오는 좁은 골목에서 - 차로 갈 수 있는 도로 끝에 옥천 연립이 있고 그 도로 끝에 사람이 둘 정도 지날 수 있는 좁은 길이 있음 - 술에 많이 취한 클린트이스트우드 아저씨가 옛동료로 생각되는 어떤 아저씨랑 어깨동무를 하고 비틀비틀 걸어와서 한 귀퉁이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내 모습은 보지도 못한 채 환한 웃음으로 아저씨 친구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집으로 들어가던 뒷모습이 내 머릿속에 남았다. 지난 여름 어느날 아저씨의 자동차가 사라졌다. 얼마후 나는 아저씨의 자동차랑 비슷한 모양의 검정색 4륜 구동 자동차를 샀고 아저씨가 주차하던 자리는 240만원 짜리 내 자동차가 차지했다.
  갑자기 이 아저씨 얘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엊그제 집에 올라오다가 아저씨 집 앞에 뜨거운 물 부어먹는 칼국수 한 상자와 20kg짜리 쌀이 놓여있는 걸 봤기 때문이다. 서울에 혼자사는 우리 아버지도 동사무소를 통해서 종종 받는 그것이다. 그걸 보자마자 아저씨 어디 아프신가,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아저씨 차 자리가 내 자리가 된 직후에는 종종 얼굴을 봤지만 최근에는 동네 다른주민들과 양지달임을 하러 나온 - 한 연립에 오래 살았고 연배가 비슷해서 그런지 우리집 빼고는 주민들끼리 친하다. - 클린트이스트우드 아저씨를 못 봤다. 약간 걱정이다.

  아저씨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고 아들들이 자주 찾아왔으면 좋겠고 옥천연립 104호가 이 아저씨가 돈 벌어서 산 아저씨 집이었으면 좋겠다.

  클린트이스트우드 아저씨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우리 아버지 주변에도 내가 이 아저씨를 보듯이 아버지를 지켜봐 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그런 건 세상에 없는 일이니까, 역시나 아버지를 강릉으로 모셔와야겠다.

  지난 토요일에 동생이 아버지를 만나서 같이 갈비를 먹었다. 나는 아버지랑 맛있는 거 먹으라고 동생에게 10만원 보냈다. 아버지가 그거라고 하지 않고 갈비 먹었다고 해서 기뻤다. 나는 다음주에 아버지 혈압약 타러 간다. 아내가 너도 갈비 먹어, 라고 했지만 그럴건 없다. 아버지 기억에는 안 남아도 내 기억에 남는 걸 먹어야겠다. 방금 데이케어 센터에서 ‘어르신 집에 모셔다드렸습니다.’ 문자가 왔다. 아버지한테 바로 전화했는데, 전화를 안 받으신다. - 좀 있다가 하면 받을 거다. - 축구를 참 좋아했던 아버지는 지금 월드컵이 뭔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국가대항전 축구를 본다. 나라를 위해선지 나를 위해선지 젊은이들이 정말 사력을 다해서 공을 찬다. 나는 인생에 전력을 다한적이 있나? 월드컵에 나온 선수들이 열심히 뛰는 것이 공을 차는게 본인들 직업이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 뭘까? 전력을 다하면 뭔가가 바뀔 수도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아는 나이인데도 그러지 않게 된다. 예를들면 가끔 노래는 만들지만 기타 연습을 열정적으로 하진 않는다거나 굶으면 체중 감량이 될 것을 알지만 굶지 않는다. 이게 나이 먹음인가? 그렇다고 인생에서 큰 요행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얼마전에 노무사 2차 시험에서 떨어진 10살 어린 친구에게 ㅇㅇ씨는 희망이 있다는 얘기를 진심으로 해줬다. 나이 먹는 일은 슬프다.

  글 쓰는 중에 세르비아랑 카메룬이 3대 3으로 비기는 중이다. 나는 세르비아가 유고에서 분리됐다는 걸 안다. 클린트이스트우드 아저씨는 냉전의 시대를 냉전 이후의 시대보다 오래 살았다. 나는 냉전 이후의 시대를 오래 살았지만 냉전이 뭔지는 안다. 클린트이스트우드 아저씨는 내가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모르고 나도 요즘 젊은이들이 무슨 생각인지 모른다. 그건 애들을 키워도 모른다. - 친구 아이들이 대체로 중학생이다. - 계절 바뀌듯 휙휙 세대가 바뀐다.

  아버지, 오늘 별일 없었죠? 곧 봐요. 마지막 문장 적고 바로 전화할게요. 생일 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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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너는 오지 않는다
네가 사 놓은 두부를 조린다
냉장고에서 며칠을 보냈다
맛있는 양념 냄새가 나는데
너는 오지 않는다
나는 기다리지 않는다
혼자서 한 번 먹고 남은 두부 조림이 쉬어빠져도
너는 오지 않으니
지구는 둥근데 너는 오지 않으니
나는 기다리지 않는다
네가 사 놓은 마늘, 파, 닭가슴살 같은걸 다 먹어 치운다
너는 오지 않는다
쌀이 다 떨어지도록
너는 오지 않는다
나는 기다리지 않는다
먹어도 배가 차지 않으니
쌀을 채우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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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

네가 네가 아니란 걸 안다
다시 어느쪽이 너인지 모르겠다
아니면 난가?
ㅓ와 아 또는 너와 나 사이에 우리가 있다
사랑해란 말을 틀리진 않는다
너무도 선명한 말
그래서 틀릴 수 없는 말
너무가 나무가 되도 그것만큼은 변하면 안되는 말
세상의 많은 일들은 잘 모르지만
딱 그만큼만 너를 사랑할게
너가 나가 되도록
오타가 어타가 되어도
우리란 말이 어긋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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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아버지랑 통화했다. 물론 어제 아침에도 그제 아침에도 통화했다. 내가 코로나 걸린 기간동안에는 약간 멍한 느낌으로 통화했는데, - 코로나란 말을 모르는 아버지가 괜찮냐고 걱정해 줌. - 격리 끝나고 어제부터 출근해서 그런지 어제랑 오늘의 통화느낌은 평상시랑 같았다. 내일은 아버지 병원 가는 날이다. 한 달 전에 추가된 약의 갯수를 늘릴지 의사가 판단할 거다. 아침 9시 40분 예약이라 원래라면 오늘 밤에 내가 서울에 가려고 했다. 산불조심 기간에 산불 담당자가 코로나로 너무 오래 쉰 부담감에 내일이 산불근무라 어제 동생에게 아버지랑 같이 병원에 갈 수 있겠는지 묻고 오늘까지 답을 달라고 했다. 오늘 오전에 본인이 아버지랑 병원 가겠다고 톡을 보내왔다. 다행이다. 내 걱정을 알고 있던 아내도 다행이라고 했다. 같은 자식이라도 더 예쁜 자식이 있으니 부모중에 더 소중한 쪽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핏줄이란게 예쁨과 소중함의 차이가 크지 않다. 나도 동생도 각자 몫이 있다. 동생이 아버지를 오랜만에 만난다. 동생보면 아버지가 많이 좋아할 거라 생각한다. - 둘이 원래 친함 - 동생에게 '아버지 잘 살펴라 울지 말고' 라고 톡 보냈다. 동생한테 '왜 울어? 그 정도셔' 답장이 와서 아차했다. 우리 아버지 그 정도는 아니다. '울지 말고'는 아버지 만나면 울 것 같은 내 마음일 뿐이다. 막상 만나면 안 울겠지만. 마음은 그렇다.

 브라더, 의사랑 얘기 잘 하고, 애들 사진 많이 보여드리고 아버지 잘 살피고, 점심 맛있게 같이 먹고 데이케어센터까지 잘 바래다 드려라. 울지 말고.

 동생은 다음달에 혈압약 타는 진행때도 본인이 아버지에게 가겠다고 했지만 다음달에는 가급적 내가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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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월요일, 지난주 화요일 아침에 코로나 확진 판정 받았다. 그 전 주말에 독감 걸린것 같은 몸살 기운이 있었다. 자가진단 키트에서는 한 줄이 나왔지만 그때부터 코로나였는지도 모른다. 날짜로는 11월 5일부터 11월 14일까지 열흘간 집에 가만히 있었다. 몸 아픈 건 금방 좋아졌는데, 아직도 기분이 안좋다. 내일 출근해야 되서 그런지도 모른다. 아니면 목요일에 아버지 만나러 서울가야 돼서 그런가? 후자가 맞는것 같다 원래는 8일에 서울에 갔다 왔어야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미뤘다. 병원이랑 데이케어센터에 전화하는 일로 꽤 스트레스를 받았다. 계획을 변경하는 일이 큰 스트레스인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그게 심한 타입이다.

자가격리 기간동안 가만히 누워서 짧게는 올 한 해를 길게는 살아온 인생을 돌아봤으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게임, 만화, 유튜브의 무한 반복으로 보냈다. 유튜브는 사람을 수동적으로 만든다는 생각이 강해서 그건 백그라운드에 틀어놓고 게임하고 만화 봤다. 그것도 자기주도적이진 않다. 그저 누워서 똥이나 만들면서 시간을 보냈다. 똥꼬가 찢어질뻔한 똥을 한 번 쌌다. 기억해 둔다.

천만다행으로 아내는 코로나 걸리지 않았다. 같이 걸렸어도 의미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 어떤 종류의 사랑 - 내가 아내에게 코로나를 옮기지 않은 것도 어떤 종류의 사랑이니까 좋다. 결론이 사랑인게 좋다. 열흘 동안 술을 안 마셨다. 굿. 술은 위로처럼 생각되지만 위로가 아니라 망각이다. 아내가 내 유일한 위로다. 담배는 계속 피웠다. 배드. 담배는 조만간 끊으려고 한다. 컵라면 그만 먹고 담배 끊은 돈으로 점심에 식당에서 밥 사 먹을 생각이다. 꽤 건전하다. 성공하면 누구에게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일이다.

남부유럽이랑 중국의 11월이 덥다. 우리나라도 덥다. 어제 비가 내렸는데, 겨울이 오는 비가 아니라 봄이 오는 비가 내리는 기분이었다. 비가 오면 추워지다고 했는데, 오늘도 낮기온은 20도 넘었을 거 같다. 끓는 물에 들어 앉은 개구리가 되어서 솥 바깥은 보지 못하고 죽을날만 기다리며 아웅다웅하고 있다. 전쟁, 정쟁, 코인시장 같은 걸 보면서 - 저녁 뉴스를 빼 먹지 않고 시청하면서 - 하는 생각이다.

세상에 이름이나 의미를 남기긴 틀렸지만 멋진 노래를 만들고 싶다. 작은 희망이 있다. 사랑과 그 작은 희망으로 산다.

자가격리 마지막 날이라 오후에 동네 체육공원 텅빈 농구코트에서 혼자 농구를 했다. 삼점슛을 몇 개 성공시켰다. 태어나서 처음이다. 막 기쁘진 않았다. 열정에 있는 일이 아니라서 그런가보다. 가끔 슛 쏘러 와야겠다.

오전에 아내한테 이번주까지만 출근하고 회사 그만두고 싶다고 했더니 그러라고 했다. 아내가 그만두고 뭐할건데. 물었는데, 그만두고 하고 싶은게 없어서 그만두는 건 관두기로 했다.

아, 출근하기 싫다.

글도 잘 안되고, 다 맘에 안들지만 2022년 11월에 코로나 걸려서 세상에 동참했던 기록으로 이 일기를 남겨둔다.

 

친구가 명함이 있어야겠다는 얘기를 해서 그것도 기록으로 남겨둔다.

 

명함

명함이 있어야겠다
이름이 아니라 소속이 중요한
자동차 접촉사고 같이
사소하지만 신경쓰이는 일이 있을때
화도 내지 않고 긴말도 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무심히 내밀 수 있는
사실 나는 이런 사람은 아니지만
어쩌면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하고 대신 말해주는
법원, 병원, 대기업 소속이 아니더라도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해주는
못나고 나약한 나를 숨겨주는
그런 명함을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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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게는 파도맛

광어는 광어맛
꽃게는 꽃게맛
소주는 소주맛
이별에 취해도
멍게는 파도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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