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쓰고 잔다고 하니 아내가 ‘이벤트가 있었네’라고 한다. 이벤트가 없어도 일기는 쓸 수 있지만 뭐 아무래도 좋다.

삽당령, 해발 680미터, 정선과 강릉의 경계, 우리 회사 사무실이 있는 곳이다. 올해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 친구 하나는 네 번 다녀갔는데, 올해 안에 한 번 더 올 것 같다. 책길피에 꽂아둔 '영' 누나랑은 해발 1000미터에 위치한 막사에서 라면 끓여 먹었고 다른 방문객들과는 사무실 옆에 유리온실에서 화로에 고기 구워 먹었다.

삽당령에 SJ형이 다녀갔다. 대학교 2년 선배다. 20살에 만났으니 20년 넘게 알고 지냈다. 이 형 얼굴 보기도 전에 다른 선배들이 ‘너 SJ랑 닮았다’고 했고 꼭 그 얘기 때문은 아니지만 학생 때 많이 붙어 다녔다. - 10년 전에 서울 떠난 후론 자주 연락하진 않았지만 내가 무척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어렸을 때는, 그래도 형인데 너무 막 대하는 건 아닌가 생각한 적도 있는데, 이제는 둘다 오십 바라보는 나이고 이 나이에 그럴일도 없으니 그저 좋은 관계다. 한 달 전에 밤 11시에 문득 문자를 보냈다. ‘형, 나 술 안 마셨어’ - 진짜로 안 마심 - 문자 보내고 바로 전화 와서 오랜만에 통화했다. 놀러 한 번 오라고 했더니 진짜 왔다. 좋다. 마지막으로 얼굴 본 게 강화도 살 때니까 거의 칠 팔년만에 얼굴 봤다.

제목에 선배라고 쓰는 바람에 생각 - 선생은 먼저 태어난 사람인데, 선배는 뭐지? 먼저 배를 탄 사람인가? 한자를 찾아보니 어떤 무리(학교, 직장, 업계)에 먼저 있었던 사람으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

금요일 저녁에 고기 먹고, 토요일 아침엔 채종원 투어, 그 후엔 보헤미안 본점에서 하우스 블랜드, 점심은 막국수, 봉봉에 들러서 커피 두 잔씩 마시고 우리 집에도 잠깐 들렀다. - 30개월 넘게 살고 있는 지금 우리집에 들어와 본 사람이 입주청소 해주셨던 분들 포함해서 10명 안 넘음 - 많은 얘기들이 오갔다. 나이 먹었어도 예전이랑 달라진 건 없어서 내가 투정하면 형이 받아주는 식이다. 나의 어떤 토로에 몇 가지 얘기를 해줬고 그게 위로가 됐다.

오래된 사람에 대해서 생각한다. 본인 나이를 반으로 잘라서 그것보다 오래 알았고 여전히 좋은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오래된 사람은 편하다. 부끄러웠던 과거를 함께 했고 기억하는 사이라서 그렇다. 경포 호수에서 오리배를 같이 타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사이랄까? 이번에 선배랑은 오리배를 타지 않았지만 다음번에 오래된 사람을 강릉에서 만나면 오리배를 타야겠다. 친구 NH랑은 재작년에 2인용 자전거를 타고 경포 호수를 한 바퀴 돌았다. 2년 전에 아내랑 오리배를 탔는데, 그게 내 인생 첫 오리배였다. 나는 누구랑 두 번째 오리배를 타게될까? 중요하진 않다.

2011년에 부안에서 이 형이 나를 찍어준 사진이 내 구글 포토에 들어있다. 이번에도 이 형이 나를 많이 찍어줬다. 나를 찍어준 사람은 누가 있지? 생각해보니 세 명이다. 아내, 이 형, 고구미. - 아니다. DS까지 네 명이다. - SNS에 자기 애들 사진 많이 올라오는데, 사랑이다. 누군가를 찍어주는 건 사랑이다. 나도 사람은 좀처럼 찍지 않는데, 아내는 많이 찍는다. 사랑인가? 물으니 사랑이다. 위에 네 사람은 다 내가 찍어줬던 사람들이다. 너 나한테 딱 찍혔어, 이런 의미로 사진을 찍는다는 표현을 쓰나보다.

내가 사진에 담았던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엄마는 몇 번 찍었었고 컷들도 기억이 나는데, 아버지는 찍은 기억이 없다. 내일 만나면 아버지도 기록에 남겨둘까? 억지로 그러고 싶진 않다. 찍는 것이 사랑이라고 했기 때문에 아버지를 이미지로 남기는게 더 어색해져 버렸다. 요즘 아버지랑 통화할 때, 아버지가 나를 빨리 만나고 싶어하는 걸 느낀다. 내 마음은 약간의 부담과 그 정도의 덤덤함 사이에 있다. 아버지랑 나 사이는 사랑인가? 아버지의 의존인가? 나의 책임감인가? 그게 뭐든, 중요한 건 아버지는 아프고 나는 아버지를 그냥 두고 싶지 않다는 거다.

선배 얘기가 아버지 얘기로 끝나버렸다. 중요하진 않다.

선배한테 내 생활 터전을 보여준 일이 좋았다. 나는 관종이 천성이다.

2011년, 부안에서 SJ형이 찍어준 나. 이때 서른 넷인데, 마흔 넷에 보니 많이 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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