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한 친구에게 풀 죽어 있지 말라고 했다. 아직 법적으로 이혼 절차가 끝나진 않았다. 몇 달 전에 이혼한다고 했을 때, 이혼을 독려했었다. - 어차피 이혼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 이번에는 고소장까지 보여주면서 이혼한다기에 ‘순리대로 하라’고 메시지 보내고 가만히 있었다. - 이번엔 진짜구나 싶었다. - 먼저 연락했을 때 어린이를 너무 오래 못 봐서 미칠 것 같다고 했었는데, 오늘 연락에는 지난 주말에 같이 영화도 보고 밥도 먹었다고 한다. 다행이라 생각했다. 모든 관계에서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이 상충하면 서로 얼굴 안 보는 게 답일 것이다.

부모님이 이혼해서 그런지 이혼에 무심한 편이다. - 우리 부모가 내가 나이 먹고 이혼한 탓도 있겠다. - 이혼이 뭐 대순가.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헤어진다고 인연이 끝나는 것은 아니고 그것이 꼭 자식 때문은 아니다. - 자식이 없어서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지도 모른다. -

아버지 노인장기요양보험 신청을 미루고 있다. 신청하고 의사 소견서 받으러 갈 때, 아버지 만나면 된다. 먼저 같이 병원 다녀온 지 거의 한 달이다. 아버지가 어떤 상태인지. 매일 통화하는 걸로는 알 수가 없다. 한 동네 산다고 해도 일정 시간 이상을 함께 보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가장 좋은 건 한 집에 사는 건데,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고 아버지가 고향이나 다름없는 서울 신월동 떠나서 태어난 강릉으로 오는 게 좋은 일인지도 알 수 없다. 이달 안에 장기요양보험 신청까지는 해야겠다.

오늘 아침에 통화했을 때, 아버지는 들떠있었다. 동생 아이 돌잔치 때문에 경기도 오산 엄마 집에 가는 일 때문이다. 명절, 제사, 기타 등등 엄마 집에 가는 날이면 늘 밝은 목소리가. 그때마다 우리 아버지 많이 외롭구나, 생각한다. 많이 외로웠고 지금도 많이 외롭다. 외롭다는 사실은 알까? 나는 아내 앞에서도 막 던지는 외롭다는 말을 아버지가 하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다. 조만간 ‘아버지 안 외로워요?’ 물어봐야겠다.

‘울화가 치미는 사랑’ 은 사랑인가? 사랑인가, 물으면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이다. 울화란 건 시간이 지나면 덜 치미게 되고 사라지는 법이다. 분노의 사랑은 사랑으로 끝나도 사랑이 아니다. 나는 왜 아내에게 울화가 치밀었나? 그걸 꼼꼼하게 생각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나랑 안 놀아줘선데, 별로 화낼 일도 아니다. 바빠서 못 놀아주는 걸 어쩌겠나. 나는 술이나 마셔야지. 울화의 속성은 사라지는 것인데, 사랑의 속성은 뭘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예전에 ‘일자무식 뮤즈’란 시를 썼는데, 나의 뮤즈랑 토요일에 산에서 놀기로 했다. 회사에서 나는 관리자고 이 친구는 기간제근로자(말이 기간제지 일용직)다, 친구니까 난 크게 신경쓰지 않지만 이 친구는 내가 아무 말 안해도 약간 내 눈치를 보게 된다. 친구는 여전히 나에게 어떤 영감을 주고 ‘살아야지’하는 마음을 갖게 만든다. 여름에 이 친구네 집에서 한 번 놀았다. 자기 집에 와서 자고가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때 이 친구는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토요일에 함께할 생각에 친구가 요즘 약간 들떠있는데, 아버지가 들뜬 것과 같은 느낌이다. 동네 사람 5명인 산골짜기 마을에 혼자 사는 44세 독신남의 외로움을 헤아려 볼 뿐이다. 토요일에 ‘KP야 외로워?' 물어봐야겠다. 친구야. 네 얘기로 등단하면 한턱 쏠게.

갑자기 생각나서 혼자 웃고 말았는데, 요즘 많이 하는 말 중에 하나가 '형, 오늘 한잔 하나요?' 다. 회사에서 JK형에게 하루에 한 번씩 묻는다. 나는 한 잔 하고 싶은건가? 자꾸 웃음이 나네.

세상과 반대로 나는 대체로 다 잘 되고 있다.

-> 산엔 겨울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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