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빵을 먹다

식빵을 먹는다
식탁겸 책상에 앉아서
며칠 전 슈퍼에서 하나 남은 것을 사면서 속으로 럭키를 외쳤다
그때 몇 개 집어 먹고 방치해둔
푸른 곰팡이가 보이진 않지만
부패를 향해 달려가는 식빵을 먹는다
바다 건너편의 전쟁과
육이오 전쟁 때 피난 가던 사람들과
안네프랑크를 생각하며 식빵을 먹는다
유관순은 여전히 누난데
외국 사람이라 그런지 먼저 살다 갔어도 아무도 누나라고 하지 않는 안네 프랑크를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누나라 불러보며
식빵을 먹는다
먹다가 목이 메서 물을 먹는다
커피를 끓여도 되지만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다
내게는 충분하다고 느끼는 이 정도 풍요에 만족하는 편이지만
안네프랑크에게는 쪽방에 숨어살면서 행복했냐고 물을 수 없다

AND

4월

​초록이 짙어서 당신 생각이 납니다
초록에 겨워서 당신 모습을 겹쳐봅니다
몇 해 전 봄날
당신과 빗속에서 바라보던
초록이
그때만큼 짙어서
흐린날 초록이 더 짙다던 당신 얘기가 떠올라서
나무 끝에 새 잎들이 서두르는 춤을 추기에
다시는 봄이 오지 않을때까지
당신을 기다려 보기로 합니다

AND

이러다

이러다 죽는것을 생각한다
차라리 이러다 죽었으면
묘비병을 생각한다
이러다 죽었으면 하다가 이러다 죽었다
1978 ~ 20xx
아무도 이러다를 모르는
이러다
죽고 싶다

AND

터널

터널을 통과하면 새로운 땅이다
터널을 통과하면 다른 사람이다
터널을 통과하면 전쟁이 끝나있다
터널을 지나면 봄이다
어둠을 뜷고
여전히
당신 생각이 나는 봄이다

-> 터널안에 사는 아버지를 생각한다

AND

호두과자

사랑같은 건 다시 생각해보기도 하는데
아무도 호두과자에 대해 쓰지 않는 호두과자를 생각한다
호주는 껍데기가 딱딱한 열매
과일이라 쓰기는 애매해서 열매라 썼지만
그냥 호두라 해버리는
호도랑 헷갈리기도 하는
호두?
호두과자는 호두 열매를 닮았지만
밀가루 반죽이 열에 익어
말랑말랑한
과자는 바스락거러야 과잔데
말랑말랑한 과자
내가 아는 부잣집 아가씨는
인제 내린천 휴게소 호두과자가 맛있다는데
내가 먹기에는 붕어빵이랑 같은 맛
삶은 팥 맛
세상 가장 맛있는 호두과자를 생각하며
신사대로에 사는 옛친구를 떠올려보기도 하는
삶은 물컹한 팥 맛

AND

아버지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다

꼭 갔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한 달에 한 번은 아버지를 만나야 할 거 같고 데이케어센터에서 보낸 가정통신문에 회신도 해야해서 서울 나들이를 했다. 서울가는 기차에서는 비구름이 불러가려는 날씨가 예쁘단 생각을 했다. 고여있는 물에도 생기가 돌았고 농산 준비를 마친 논밭이 선명했다. 어느밭 한 귀퉁이에 어린 나무가 어린 잎을 피웠다. 아직은 나보다 적게 살았지만 나보다 천년을 더 살지도 모르는 나무. 서울에 오니가 비가 그친 날씨가 예쁘지 않았다. 그러니까 날씨가 이뻤던 건 연두 때문이었다. 양평 지나서 아파트가 많이 보이기 시작하니까 순식간에 마음이 삭막해졌지만 청량리 역 앞 화단에 봄이 온 걸 보고 안심했다.

아버지를 만났다. 문자랑 카톡, 통장잔고를 확인했다. 약통에 약을 확인하고 전파사에서 사온 티비 리모콘 세팅하고 변기에 앉으면 눈앞에 보이는 벽에 ‘변기 물 내릴 것’ 써 붙이고 늘 그렇듯 잘 하고 있다고 얘기하고 밥 먹었다. 별다른 옵션이 없어서 또 순댓국 먹었다. 난 보통, 아버지는 특. 먼저 나랑 먹고 또 드신적 있냐고 물으니 그때 먹고 처음이라고 한다. 배부르면 억지로 다 안 드셔도 된다고 했는데, 꽤 많은 양을 천천히 다 드셨다. 아버지는 원래 천천히 드시는 편이다. 최근에 뭐든 조금 급하게 먹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천천히 드시는 모습에 안심했다. 밥 먹으면서 많은 얘기를 했다. 아버지가 데이케어센터에 대해서 꽤 자세히 설명을 했는데, 나는 뭔 말인지 대충 알아들었지만 명사를 하나도 떠올리지 못하니 설명이 잘 안됐다. 뭐든 촉촉할 때가 맛있다는데 아버지랑 먹는 순댓국 안에 고기를 항상 먹먹하다.

아버지가 데이케어센터를 좋아해서 다행이다. 뭔 일 있으면 나한테 알려줄 수 있으면 좋을텐데. 좋을텐데,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구나. 아버지 얼구링 먼저보다 좋아보였다. 그것도 좋은 일이다. 날 만나서 아버지가 많이 좋아했다. 그게 제일 좋은 일이다. 날 만나는 아버지 마음에는 미암함과 좋은이 뒤섞여 있다. 혈연인가. 사랑인가. 조만간 낮에 통화할 때, 오늘먹은 집에서 순댓국 2인분 포장 주문 – 아버지는 포장이란 단어를 떠올리지 못함. 순댓국이란 단어도 – 하도록 유도해 봐야겠다.

1호선 타고 청량이 오는 길에 멀리 남산타워가 보이고 남산 중턱에 벚꽃이 아직 환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왔다. 언제가지 봄이 차자오려나. 일단 올해는 봄이 찾아왔다. 아버지도 괜찮다. 그러니 됐다.

당일치기 서울 왔다갔다 피곤하네.

AND

관계부호

배우자


자녀
며느리
사위
시부
시모
장인
장모
양부
양모
외증손


외증손부
누이

언니

손부
손서
증손
증손부
고손
고손부
오빠
배우자의 자녀
시외조부
조부
조모
시조부
시조모
증조부
증조모
고조부
고조모
장조부
장조모
시외조모
누나
외손
외손부
외조모
계부
계모
생부
생모
계자
생자
기타
처조부
처조모
생시모
생장모
생조모
생시조모
생처조모
처(사실혼)
남편(사실혼)
처외조부
처외조모
친생부
친생모
계장인
계장모
계시부
계시모
그리고

AND

악몽 7

살의로 가득찬 삶을 살지 않는데
시체를 유기하는 꿈을 꿨다
적대감보다 호감이 더 강한 사람들을
차례대로 죽이고
한 구 한 구 캐비넷에 칸칸이 숨겼다
배를 타고 그곳을 떠난 후
꿈 속에서도 잠이 오지 않았다
꿈 속이라 잠이 오지 않았나
언젠간 발견될 공포
범인이 나란 걸
남아있는 사람들은 알고 있다
지나간 사람들을 모두 죽이고
내 이름과 얼굴 속에서
나는 무엇으로 살까

AND

만 원

주머니에 만 원짜리 한 장 넣어갖고 다닌다
급하면 담배도 살 수 있고
내키면 복권도 살 수 있고
속이타면 콜라도 사 마실 수 있는 만 원
카드도 있지만
미리 지불하는 삶은
미래를 구속하므로
카드 쓴다고 당장 감옥에 가는건 아니지만
설령 사랑이라도
구속되긴 싫으니까
담밸 사거나 콜랄 마시거나 일확천금을 노릴때는
만 원짜리 한 장 꺼내 쓰게 된다
짜장면으로 점심 한 끼 떼우든
편의점에서 깡소주를 사 마시든
뭘 해도 낸 맘대로고
잔돈이 남으면 부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좋고
만 원짜리 자본가인 내가 좋아서
가급적 만 원짜리 한 장 갖고 다닌다

AND

길 없음


길은 나아가려고 한다
집은 멈춰있다

아내는 나아가려고 한다
나는 멈춰서있다
한 집에 사는데도

길은 계속 나아가려고 한다
벽을 뚫고 산을 뚫고
앞을 다 무너뜨리고 나아가려고 한다

나는 길이 끊어진 곳에 살고 싶었다
길 없음, 표지가 붙은 도로끝 집
되돌아 가는 길만 있는 곳

길이 나에게 비키라고 한다
나도 자빠뜨릴 기세다

집은 멈춰서있다
이제 나는 돌아가려고 한다

AND

지난 금요일엔 삽당령에 눈이 20센티미터 이상 왔고 - 사무실 바로 앞에 기상청 관측 장비가 있고 사무실 모니터로 그 내용을 볼 수 있다. - 토요일엔 강릉 시내에도 눈이 왔다. 세차게 떨어지는 눈을 뚫고 점점 무거워지는 우산의 무게를 느끼면서 아내랑 강릉역에 도착했고 청량리역 근처도 하늘이 무거웠다. 아내는 기다리던 이승윤 단콘 보러 잠실에 가고 나는 아버지 만나러 신월동에 갔다. 아버지는 최근 두 달 사이에 이 두 개를 뽑고 틀니를 했다.

- 아버지, 치과에서 또 오래요?
- …..
- 아버지, 치과에서 틀니를 어떻게 하래요?
- …..
- 아버지,
- …..
- 잘 하고 있어요.
- 어, 그래.

데이케어센터에서 준 가정통신문(?)에 회신할 사항이 있어서 내용 작성했다. - 아버지, 월요일에 잊지 말고 갖다주세요. - 아버지가 약을 잘 드시고 있는지 남은 약을 확인했다. 약이 모자라거나 남지 않아서 안심했다. - 아버지, 잘 하고 있어요. - 혈압약은 4월초, 치매약은 6월 중순에 받으면 된다. 아버지 핸드폰에 온 문자랑 카톡을 확인했다. 언제부터였을까? 글자를 잊지는 않았지만 아버지는 문자나 카톡을 전혀 확인하지 못한다. 아버지 친구 엄마가 돌아가셨고 통장에 돈이 없어서 지난달 카드요금이 1,040원만 인출됐고, 이달에는 카드 누적사용이 130만원을 넘었다. 지난달에는 치매약값 때문에 이달에는 틀니 때문에 카드 사용량이 많다.

- 아버지, 돈 떨어지면 얘기하세요.
- 알았어.
라고 했지만 아버지 머릿속에 돈에 관한 것은 생활비를 아껴서 살아야한다는 것과 매달 공과금을 빼 먹지 말고 내야한다는 것 두 가지 뿐이다. 두 가지라도 유지하니까 다행이다. 나머지는 내가 챙기면 된다, 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속이 착찹하다.

나이 먹는 건 무너지는 일이다. 정신이 무너지고 이가 무너지고, 그렇게 하나하나 무너지다가 마지막엔 사람이 통째로 무너진다.

아버지랑 같이 저녁 먹을까 하다가 왠지 내키질 않아서 그냥 잠실에 왔다. 몽촌토성역 앞에 버거킹이 있어서 오랜만에 와퍼를 먹었다. 서울이라 그런지 (씨팔) 송파구라 그런지 강릉에서 보다 맛있었다. 버거는 맛있는데, 아버지랑 같이 밥 안 먹은 거 후회했다. 아버지에 대한 마음에 눈 쌓이듯 후회가 쌓인다. 눈녹듯 녹을날이 있겠나? 4월초엔 꼭 순댓국 아닌걸로 같이 먹어야겠다. 꼭.

일요일엔 이승윤 공연을 봤다. 잘 하더라.

스스로 정치적으로 극좌파라고 하면서 3년안에 내 집을 갖고 싶어서 부동산 학원에서 부동산을 배우고 있는 친구를 만났다. 먼저 우리집에 왔을 때, 얼마 안되는 돈을 어디에 투자해야 하나 포트폴리오 짜고 있던 게 기억났다. 봉쇄수녀원과 명리학과 투자 포트폴리오와 부동산 학원과 부모님과 함께 사는 21억 짜리 아파트와 대선에서 3번을 찍는 행위를 생각한다. 언젠간 네가 싫어하는 네 아버지가 네 집을 사줄 것이다.

인생이란 그런것이지, 란 말을 많이 하는데. 체념에 가깝다.

오늘은 3월 21일, 춘분, 사무실 뒤쪽 소각장에 고양이 공간을 마련했는데 주말 사이에 눈밭을 뚫고 고양이가 밥 먹으러 다녀가서 기분 좋았다. 눈이 많이 왔기에 가뭄이 약간은 해소된거 같아서 안심이다. 눈의 낭만보다는 해갈이란 현실이 중요한 40대 중반이다. 기후 파괴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많지만 오늘은 춘분이니까, 봄은 살아야 하니까, 오늘만큼은 부정을 나열하지 않기로 한다. - 이미 위에 해버렸나?

체념하더라도 살아야지.

-> 지난주 금요일 사무실 창고 위쪽, 딱 이 정도의 낭만만 있는 40대 중반이다.

AND

북쪽으로 걷는 사람


동쪽 끝에 바다가 있는 나라에
북쪽으로만 걷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앞은 북쪽 뒤는 남쪽 오른편은 동쪽 왼편은 서쪽
그런 사람이 살았습니다
어딜가도 뒤로 걷는법이 없고
자동차를 타도 앞으로만 가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 아, 바다가 보고 싶다
대체 어떻게 해야 동쪽으로 갈 수 있는거지

북쪽으로 걷는 사람이 말했습니다

- 친구, 이곳을 나가서 계속 걸어보게

함께 커피를 마시던 친구가 말했습니다

- 하지만 북쪽은 다른 나라의 국경인걸

북쪽으로만 걷는 사람이 말했습니다

- 친구, 나를 믿게 난 바다를 보고 왔다네

바다를 보고 온 친구가 말했습니다

북쪽으로 걷는 사람은 걸었습니다
앞으로 앞으로
북으로 북으로
이정표도 없는 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흐린날
솟아오른 수평선을 보았습니다
그 위로 솟아 오르는 고래를 보았습니다

북쪽으로만 걷는 사람은
동쪽에 바다를 끼고
다시 북쪽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AND

부득이


당연한 일에 부득이를 붙여본다
피할 수 있다면 소나기도 피해야 하는데

부득이
장손이라서
병든 아버지를 돌보는 일

혼자 사는 숙모에게 별일 없나 연락하는 일
얼굴 처음보는 조카들을 안아보는 일

아버지 70 생일에 이모들에게 용돈을 드리고
이모들이 그대로 아버지에게 돌려주는 일

변명이 되버리고 마는 일

부득이에 나를 더해본다
부득이 내가 아버지를 돌보고
이모들 용돈을 주고
밥을 지어 먹고

부득이 하는 일이 없어야
인간은 자유로울 수 있고

나는 부득이 오늘을 살았네

변명하기 좋은말 부득이
그런 일들이 뒤섞인 사랑이

부득이

AND

주말에 친구가 다녀갔다. 서울에서 여섯 시에 출발한 친구랑 아침에 만나서 보헤미안 모닝세트 먹고 삽당령으로 올라와서 두 시간 등산 후에 불 피워놓고 술 마셨다. 요즘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떤 생각들을 하는지 유튜브에서는 뭘 보는지, 소소한 얘기들을 나누는 시간이 좋다. 친구란 그런 것이다. 친구가 삽당령을 좋아해서 좋다. - 지난해 초에 처음 왔는데 올해 안에 10회 방문 채울 듯 -

중학교 올라가는 친구 큰아이가 자살충동과 우울증에서는 다소 벗어났고 중학교 때는 본인 모르는 친구들 있는 학교에서 새로 시작할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다. - 살아온 경험치가 적을수록 다 잊고 새로 시작하는 마음을 먹는 조건을 갖추는 일이 더 중요하다. - 토요일에 잘 놀고 일요일 아침부터 친구가 심각한 통화를 하길래 무슨 일인가 물었더니 아이가 친구집에서 돈을 훔쳤다고 하면서 괴로워했다. 나한테 ‘어떻게 하냐’고 자꾸 묻는데, 괴로웠다. 나도 괴로운데 친구는 훨씬 괴롭겠지. 아침밥도 안 먹고 올라간 친구에게 칭찬 자꾸 해주고 부모가 계속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라는 톡을 보냈다. 삶이 너무 팍팍한데 고맙다고 답이 왔다.

친구야, 또 와.

어젯밤에 오늘 출근하기 싫다고 했더니 아내가 안쓰럽게 바라봐줘서 좋았다. 진짜 출근하기 싫은건지 아내의 위로가 받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반반이다. 삶은 계속되고 출근은 해야 한다. 오늘 출근길에는 아내를 터미널까지 태워줬다. 터미널 오거리에서 선거운동 하는 사람들을 보던 아내가 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확보했는데, 잘했으면 윤석열이 국힘대선 후보로 나오지는 않았을 거라고 했다. 뭘 잘했어야 하는거지? 중대재해처벌법? 차별금지법? 검찰개혁? 딱히 뭘 잘했어야 하는지 떠오르질 않는다. - 이번 정부의 코로나 대응과 외교에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 확실한 건 나랑 아내가 속 시원할 일은 한국 사회에 거의 없다는 것이다. 정치에는 정치만의 공학이 있으니 완전히 새로운 판이란 건 없다는 걸 안다. 한 친구가 대선 후보 중에 찍고 싶은 사람이 없다면 투표 안하는 것보다는 무효표를 만드는 것으로 정치적 주장을 하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다는데, 그런 소신이 부질없다 느꼈다.

영화 제목이랑 친구들처럼 아버지가 되지는 못했지만 하루하루 점점 아재가 된다.

아버지가 된 아버지는 치매에 걸렸고 주간보호시설에 몇 번 가보시더니 거기 가면 재미있고 좋다고 하신다. 다행이다. 아무 때고 전화해도 된다고 했더니 아침 5시 반에도 6시에도 6시 반에도 전화한다. 아버지가 나한테 전화하는 걸 잊지 않는 것만으로도 좋다. 아버지에게는 주말에는 내게 전화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는데, 그걸 잊고 나한테 먼저 전화하는 쪽이 안심이 된다.

내일부터 3월이네, 어떻게든 되겠지.

속수무책으로 남의 나라 전쟁을 바라보는 일이 나를 무력하게 만든다.

- > 4월이면 이 근처에서 또 붓꽃이 피겠지.

AND

신생(新生) - 목욕에 대한 생각

목욕을 하거나 세차를 할 때마다
새로 태어난 것 같다
아니, 새로 태어나고 싶다
묵은 껍질, 세상의 떼를 한 겹 벗겨내는 일로
생의 과오들과 어젯밤의 치명적인 실수가 씻겨 내려가고
새 사람이 된 것 같다
아니, 새 사람이 되고 싶다
새로 태어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더라도
다시 한 번 씻는 일로
다 잊고 싶다
아니, 다 잊혀졌으면 좋겠다
세상의 굳은 때를 박박 벗겨내진 않더라도
그저 물이 흘러가는 일로
몸을 씻어내는 것으로
껍질을 닦아내는 것으로
다 지워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모든걸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그랬으면 좋겠다

AND

15일에 아침부터 늦게까지 아버지랑 함께했다. 아버지는 장기요양보험에서 인지지원등급을 받았다. 등급서류를 실수로 버린 줄 알았는데, 옷장 안 깊이 둔 것이었고 그러는 바람에 찾느라 애 먹었다. 치매약은 네 달치를 받아왔고 주간보호시설(데이케어센터) 입소 계약서를 썼다. 입소를 위한 건강검진을 받았고 나와 아버지의 관계를 증명하는 가족관계 증명서를 뗐다. 이리갔가 저리갔다 하는 바람에 많이 지쳤다.

나도 지쳤는데, 아버지도 지쳤을 것이다. 어김없이 함께 순댓국을 먹고 아버지 약통 28칸에 약 일곱 알씩 넣으면서 ‘잘하고 있다’는 얘기를 반복했다. 나는 그 반복이 약간 지겹기도 한데, 아버지는 외로운 삶에 아들과 함께 하루를 보내는 일이 좋다. 병원에 갈 일이 없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아버지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순댓국 말고 다른것들을 아버지랑 함께 먹고 싶다.

2014년 12월, 섬 생활 정리하고 강릉으로 이사오기 전에 아버지 집에 한 달 정도 머물렀었는데, 아버지 생일에 고추잡채 만들어서 아내, 나, 아버지 이렇게 셋이 먹었다. 나는 술 안 먹고 아버지 소주 한 병 따라드렸다. 그날이 아버지 온전하던 시절에 함께 밥 먹은 마지막 날이고 아버지한테 처음이지 마지막으로 술 따라드린 날이고 내가 먹을거 만들어 드린 유일한 날이다. 그때로부터 6년이 넘게 지났다. 허망하다.

아버지는 다음주부터 일주일에 세 번, 한달에 열두번 데이케어센터에 갈 것이고 센터에 가는 날은 우리 아버지 오늘은 뭘 드시나 걱정 안해도 된다. 장기요양보험에서 월 597,600원을 지원받고 본인 부담금 40% 감경대상자로 센터이용에 대한 본인부담율을 9%다. 밥값 10,000원 지원대상이 아니지만 하루에 14,000원 정도로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숫자로 계량되는 세계, 숫자는 질서, 어떤 질서가 있는 세계, 숫자가 주는 편안함이 있다. 지금은 이것만으로도 좋지만 앞으로는 복지시스템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될 것 같다.

15일에 검사받은 건강검진 증명서랑 코로나 음성확인서 원격으로 떼느라 애 먹었다. 나는 수화기 너머로 애먹었지만 당사자인 아버지는 나보다 훨씬 답답했을 것이다. 아버지 수고했어요.

지쳤다와 지겹다와 지루하다
지쳐서 지겹고 지겨우니 지루하다
몸이 지쳤지 아버지한테 지쳤던 건 아니다. 미치도록 지겨운 건 아직 없다. 다행이라 생각하자.

아버지랑 별개로 요즘 전반적으로 지겹고 지루하다. 지루할 틈도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겐 배부른 소린가? 오래 살았다,는 느낌은 아니고 충분히 많이 살았다는 느낌이다.

치매약 받아서 집에 가는 길, 약국 근처에 먼저까진 안 보이던 커피집이 생겨서 아버지랑 2,800원짜리 라떼를 한 잔씩 마시면서 버스 정류장까지 걸었다. 열영합발전소 굴뚝을 보면서 추운날은 연기가 더 하얗다는 얘기를 했다. 나는 잠깐 멈춰서 굴뚝 사진을 찍고 아버지는 그런 나를 기다렸다가 함께 좌측으로 코너를 돌아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 장면이 그림처럼 기억에 남았다. 커피가 맛있었기 때문이라고 하자.

아버지, 잘 하고 있어요.

AND

오늘이 2월 10일, 올해가 다 갔다. 숫자로 계량해도 10분의 1이 지났다.

곧 봄이다. 아직 통계가 나오진 않았겠지만 이번 겨울은 유난히 일교차가 큰 느낌이다. 겨울 가뭄은 일상화 됐다. 올해가 다 갔지만 산불도 그렇고 농사도 그렇고 대선도 그렇고 남은 올해가 걱정이다. 걱정하는 중년이다. 별거 아니다.

1979년 2월 6일은 친구 세 명의 생일이다. 친하니 친구라 하겠지만 세 명 다 친하고 그 중에 둘은 그냥 친한 것 이상의 감정이다. 역학이나 별자리 같은 것으로 내가 태어난 날인 1978년 9월 23일과 79년 2월 6일의 어떤 연관성을 찾을 수 있을까? 가수 나얼이 나랑 같은 날 태어났는데, 나얼 베프 중에도 79년 2월 6일에 태어난 사람이 있지 않을까? 78년 2월 6일에 태어난 학교 선배는 밥 딜런과 본인 생일이 같다는 얘길 종종 했는데, 알만한 사람은 아는 뮤지션이 됐다. 생일은 365개로 분류한 혈액형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걸 단순화하면 별자리가 되겠지. 생일이란 건 살아가는 사소한 재미 중에 하나다.

세 친구로 돌아가서 그네들 생일이면 잊지 않고 간단한 메시지라도 보내주곤 했는데, 올해는 일절 연락하지 않았다. 왠지 연락하고 싶지 않았다. 연락하고 싶지 않아, 생각하면서도 계속 신경은 쓰였다. Y에게는 생일 다음날 전화했다. DS에게는 오늘까지도 연락하지 않았다. MJ는 인스타에 본인 생일 관련된 포스팅을 올렸는데, 그걸 보고도 나는 하트를 누르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왠지란 말로 모든 대답이 이루어지는 세상과 그 세상의 혼돈을 생각한다. 왠지 귀찮았다? 왠지..... 답을 찾는 과정이다.

의미 없는 것에 대한 답을 찾는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중년이 됐다. 그럴듯하지 않다. 15,000일 넘게 어찌어찌 살았고 중년이 됐다. 그럴듯하다. 15,000원이 별거 아닌 듯 15,000일도 별거 아니다. 15,000광년은? 아늑하지만 별거 아니다. 숫자는 그런 것이다. 삶도 그렇고.

다시 세 친구로 돌아가서 Y는 전문 기술직이고 건물주고 재산이 많아서 중산층이라 부르기엔 너무 부자지만 그렇다고 최상위 부자는 아니다. MJ는 전문 기술직이고 20대 때도 이미 본인 명의로 마포구에 아파트가 있었다. 고급 기술자라 먹고 사는데 문제 없다. DS는 고정된 직업이 없고 자유롭게 사는 것 플러스 이런저런 일들로 Y에게는 얼마 안되는 8자리 숫자의 빚이 있고 현재는 빚 갚으면서 친형이 하는 요식업 일 도와주고 있다.

얘네들을 보면서 같은 날 태어나서 다르게 사는 것에 대해서 자주 생각한다. 나얼이랑 나도 다른 삶을 살고 초등학교 때 친구 중에 나랑 생일이 같았던 호철이도 떠오른다.

일찍 자면 꿈을 길게 꾸는 경우가 많은데, 어제 일찍 잤고 연작으로 꾸는 꿈을 꿨다. 나이도 먹었고 직업도 있는데, 졸업을 못해서 <여전히 학교에 다니는 꿈>이다. 꿈에 대학 동창들이 많이 나왔다. 나는 뭣 때문인지 텐션이 100까지 치솟은 채로 친구들에게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여전히 학교에 다니는 꿈>에서 졸업을 위한 마지막 시험을 봐야 하는데 강의실이 어딘지 몰라서 답답해 하다 깨는 경우가 많은데, 어제 꿈은 그 내용은 아니었다.

같은 설정의 꿈, 뭔가 풀리지 않는 일이 있나? 그 답은 나만 알겠지.

생일 축하 연락을 안하면서 자꾸 머릿속에 떠오른 DS에게 이번주가 가기 전에 연락 한 번 해야겠다.


AND

     와, 1월이 다 갔다. 올해가 다 갔다는 느낌이 든다. 예전에는 하지 무렵이면 한 해가 다 갔단 생각이 들었는데, 나이들수록 그 시기가 빨라진다. 작년인가 재작년에는 2월이 시작하자마자 올해가 다 갔다는 느낌이 들었고 올해는 1월 첫 주가 지났을 때, - 사실은 1월 2일에 첫 출근을 했을 때 – 한숨 쉬면서 ‘올해가 다 갔네’ 했다. 나이 먹는 거랑 관계있는 거 같은데, 나이 들면 시간이 빨리 가는지 늦게 가는지 아인슈타인은 시간의 상대성에서 그런 걸 얘기하기도 한 건지. 나는 시간이 빨리 간단 생각을 할 정도로 열심히 않는데.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전체적으로는 우울하다. 아내가 중년 우울증이나며 장난으로 말했는데, 우울증은 아니다. 약간 침체기긴 하다. 원인은 크게 세 가지 정돈데, 비율로 치면 아버지, 내 허리통증, 내년 3월의 – 올해가 다 갔기에 - 이사다.

아버지는 안 좋다. 건강보험공단에서는 요양인정등급을 받았다. 주간보호 – 시설에 가는 것 – 를 받을 수 있다. 아버지는 상태가 어떻고 저떻고 말할 것 없이 그냥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다. 겉으로 멀쩡한 거 같아도 실제론 온전하지가 않다. 설 지나고 서울가서 주간보호 어디로 갈지 등을 정하고 함께 방문도 해보고 해야 한다. 핏줄이 뭔지 이런저런 일처리가 귀찮은 건 아니고, 아버지가 걱정될 뿐이다.

허리 아픈 건 많이 나아졌다. 프롤로 주사 치료를 오늘까지 두 번 받았다. 고농도 포도당 주산데, 의사 얘기로는 힘줄을 재생시켜 준다고 한다. 먼저는 너무 아팠고 오늘은 덜 아팠다. 암튼 효과가 있다. 허리 아파서 운동을 못하니까 약간 스트레스다. 일상이 깨졌다. 운동을 안하는 일상에 아직 적응이 덜 되서 스트레스가 있나, 생각한다. 수영장에서 걷기라도 해야겠다.

이사는. 음......언젠간 내 집을 가질 수 있을까? 의문 속에 산다.

아내가 빌려온 ‘긴긴밤’을 읽었다. 이렇게 쓰면 대상을 받을 수 있다. 심리적 침체 원인 중에 신춘문예 또 탈락한 것도 있구나. ‘긴긴밤’은 슬픈 얘긴데, 울지는 않았다. 아버지도 슬픈 상탠데 아버지 때문에 울지는 않는다. 두 가지 울지 않음이 같은 맥락이다. 이 역시 나이 먹음과 연관지어 본다. 요즘 자꾸 네 시 반에 눈이 떠지는 것도.

59p.
노든은 악몽을 꿀까 봐 무서워서 잠들지 못하는 날은, 밤이 더 길어진다고 말하곤 했다. 이후로도 그들에게는 긴긴밤이 계속되었다.

페이지 미상.
하지만 치쿠가 걱정을 시작하면 윔보가 희망적인 얘기를 해주고, 윔보가 걱정을 시작하면 치쿠가 희망적인 얘기를 해 주었기 때문에 둘은 괜찮을 수 있었다. 알을 품는 하루하루가 치쿠와 윔보에게는 값진 날들이었다.

26p.
노든이 얼굴을 이리저리 더듬어 보았지만 딸은 움직이지 않았다. 노든은 아내에게로 갔다. 아내는 뿔이 깊게 잘려 나간 채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노든은 아내의 코에 자신의 코를 맞댔다. 노든의 코에 피가 묻었다.
밤보다 길고 어두운 암흑이 찾아왔다.

어젯밤에는 술 취해서 ‘중년의 사랑’ 이란 걸 적었는데, 아내랑 나도 윔보와 치쿠처럼 서로 희망적인 얘기를 해주면서 괜찮을 수 있는 사랑을 해야겠다.

세상이 무너져도 사랑으로 산다.

AND

중년의 사랑

나는 늙었습니다
낡은 건 아닙니다
차라리 늙었으니 낡았으면 좋겠습니다
순리대로,
늙어,
좋은 일이 있습니다
내가 먼저 배신하지 않으면
늘 그대로인 일
여전히 당신을 사랑합니다
사랑사랑사랑
지겹지가 않은 일은 세상에 없는데
사랑이 지겨우면
그건 삶이 아니므로
지겹도록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는 늙었고
지겹고도 지겨워서
사랑?
그까짓것
당신을 사랑합니다

AND

     아버지 만나고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어둡다,고 기차에서 적어뒀다. 동지는 지났지만 해 길어지려면 한참이고 오후 7시 22분 기차를 타서 더 그렇다.

     아버지 장기요양보험 때문에 의사 소견서 받으러 다녀왔다. 원래는 1월 4일에 갔어야 하는데, 담당의사 개인 사정으로 일주일 밀렸다. 아버지 치매를 인지한 게 햇수로 3년이고 알츠하이머 진단서 받은 것도 6개월은 넘었는데, 이제 장기요양등급 심사받는 절차를 밟고 있으니 일주일 밀린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일처리를 조금 더 급하고 빠르게 했어야 하나, 생각도 해보지만 너무 늦지만 않으면 크게 달라질 것도 없다.

     3시 45분 예약이었고 3시 30분 정도에 병원에 도착했다. 진료가 끝난 건 4시 50분이었다. 긴 기다림의 시간동안 아버지랑 나는 똑같은 대화를 나누고 나누고 나누고, 병원 안 편의점에서 망고 주스를 사 먹고 똑같은 대화를 또 나누고 나누고 나눴다. 코로나만 봐도 그렇지만 병의 가짓수가 사람 숫자를 따라잡을 수 없어서 세상에는 같은 병에 걸린 사람들이 너무 많다. 한참 끝에 만난 담당 의사의 새해복많이받으세요, 인사가 기계처럼 느껴졌다. 의사를 욕하는 건 아니다. 직업이란 기계적이고 오래 기다린 내 마음이 의사의 진심을 부정적으로 느낀 걸 수도 있다.

     같이 저녁을 먹으면 강릉 돌아오는 시간이 너무 늦기도 하고 일부러 아버지와 저녁밥을 같이 먹고 싶진 않은 내 마음에 끌려서 병원 나와서 아버지랑 헤어졌다. 나는 건강보험공단에 소견서 제출하고 지하철로 청량리 이동, 아버지는 동네에 종점이 있는 버스를 타고 이동이다. 아버지는 당연히 어디서 버스 타야 하고 몇 번 타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 목동이 일방통행이라 익숙하지 않으면 어른들도 어려움 - 아버지 버스타는 곳에 바래다줬다. 길 건너편에서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걷는데, 아버지가 작아보였다. - 차선 네 개 건너에 있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 뒤쪽을 보니 아버지가 타야하는 버스가 보였고 아버지랑 눈이 마주쳤다. ‘아버지 지금 이 차 타시면 돼요’ 소리를 지르고 아버지가 버스에 타서 버스 요금 결재하는 걸 한참 지켜봤다. 아버지의 버스가 20미터도 못 가서 신호에 걸렸고 우리 아버지 어디 앉았나 버스 안을 들여다보다가 아버지랑 눈이 마주쳤다. 서로 반갑게 손을 흔들고 헤어졌다. 30분 후에, 방금 집에 도착했고 오늘 수고했다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가 차비하라고 5만원 주길래 몰래 지갑안에 다시 넣어줄까 하다가 그냥 받았다. 살면서 아버지한테 용돈 받은적이 별로 없는데 - 아버지가 돈이 있었던 적이 별로 없어서 - 아버지의 무의식에는 아들 용돈과 관련된 무언가가 있는지도 모른다. 수고했다는 말을 들을 정도는 아닌데, 아버지도 엄마도 항상 수고했다는 말을 하는 것도 조금 마음에 걸린다.

     아침의 강릉역에서 지난 세기의 99년에 나온 에이치오티4집을 틀어놓고 나보다 어린 게 분명한 사장이 활기차게 영업준비를 하는 토스트 집에서 커피를 한 잔 사 먹었다. 아버지 동네 시장에서는 활짝 핀 배춧잎이 너무 예뻐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아버지는 반복해서 들어도 계속 잊어버리는 사람이 됐고 나도 사진 속의 배춧잎 같은 시기는 지났다. 살면서 어떤 성취감을 느끼지 않는다. 뭔가 쓸쓸하네.

     아버지 만나고 돌아오는 길은 항상 어둡다.



AND

     있지도 않은 문장은 아름답고 노인의 마음을 생각한다. 아침이 되면 머리에 흰 가루가 내려앉아 있습니다. 노인의 마음으로 노인의 길을 걸으면 겨울 바람이 불어오고 손과 발이 얼어붙고. 걷고 걷다보면 어느 결에 허리가 굽어있다. 이 고독이 감옥 같습니다. 말을 나눌 곳이 없어서 종이를 낭비하고 있다. 있지도 않은 문장은 아름답고. 아직 쓰이지 않은 종이는 혼란과 완전한 고독과 반복되는 무질서를 받아들인다. 손가락은 망설인다. 손가락은 서성인다. 노인의 마음으로 말한다는 것. 휘파람을 불 때도 노인의 마음으로. 노래를 부를 때도 노인의 마음으로. 노인은 어쩐지 외롭고. 노인은 언제나 다리가 아프고. 노인은 짐짓 모르는 척 고요히 물러나고. 노인은 노인의 마음으로 가만히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나는 조금씩 죽어가고 있습니다. 노인의 마음은 망설임을 갖고 있고. 노인의 마음은 말하지 않는 잎사귀를 떨어뜨리고. 노인의 마음으로 거리를 걸으면 있지도 않은 문장은 더욱더 아름다워지고. 있지도 않은 문장은 있지도 않은 문장으로 다시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나는 점점 더 붙박이인 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람은 차고. 구름은 자고. 나무는 잎을 만나지 못하고. 비는 다시 하늘로 올라가고. 흰 가루는 점점 더 수북이 쌓입니다. 있지도 않은 문장은 아름답고. 거리로 나서면 다시 돋는 잎사귀 곁으로 노인의 마음이 스쳐 지나간다.

AND

밝은 밤 - 최은영

2021. 12. 29. 15:50

영옥아, 내레 너를 처음 봤을 적부터 더러운 정이 들줄 알고 있었다. 저리 가라면서 너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는데도 너는 강아지마냥 내게 오더구나. 세상이 뒤집히구, 나도 죽을 날이나 기다리며 살고 싶었는데...... 네가 나를 비웃어도 할말이 없어.
내 너를 전쟁통에 만났다. 이제 너를 언제 볼 수 있을까. 내 살아 있을 때 너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영옥아, 영옥아. 이렇게 불러본다. 항상 건강해라. 건강해라, 영옥아.

할마이가

-> 새벽에 읽어서 그런지 울어버렸네. 더러운 정. 소설이 좋았고 걱정하는 마음이 담긴 편지들이 특별히 좋았다고 기억해둔다.

AND

데운밥을 먹다

냉동실
갓 지어 얼렸어도 얼린 밥
얼린밥은 지나간 일
데운밥을 먹다가
당신과 얼린밥을 녹여 먹던 일을 생각하고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전제란지에 들어간 밥알들의 운명같은 것도 생각하다가
당신도 데운밥을 먹을 일을 생각한다
두 사람 두 개의 숟가락 두 개의 데운밥
한솥에서 나왔지만 서로의 온기가 되지 못한 일
한통속이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둘이었던 일
둘이었다가 혼자가 된 일
육인용 밥솥에 가득지어 얼려둔 밥을
하나씩 꺼내 먹는 일
데운밥을 먹다가
지나간 사랑이 되는 일

AND

일기 - 황정은

2021. 12. 25. 12:23

?
천지영이 창을 열었을 때 풍령에 달린 실이 끊어졌다. 라는 문장을 쓰고 좋아서 며칠 온화한 기분으로 살았다. 이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을 잘 마무리해 마감하고 싶다. 올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쓰는 단편이 될 것이다. 1년 전에 쓰겠다고 약속을 해두고 쓸 수 있을까, 망설이며 시간을 보내다가 쓸 수 없다고 말할 타이밍을 놓쳐 쓰고 있다. 웃는 얼굴로 이 소설을 마무리하고 싶고 그런 장면으로 소설을 마무리할 생각에 행복하다.
사랑이 천성이라고 내가 말한 적 있던가?

133면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 너무 정치적이라는 말을 듣곤 한다.
그런데 나는 누가 어떤 이야기를 굳이 ‘너무 정치적’이라고 말하면 그저 그 일에 관심을 두지 않겠다는 말로 받아들인다. 다시 말해 누군가가, 그건 너무 정치적, 이라고 말할 때 나는 그 말을 대개 이런 고백으로 듣는다.

111면
소설을 쓰는 나는 이 모든 사건들 속에서 그들이 왜 그렇게 했는지를 궁금하게 여기고 그들 각자의 노동 조건이나 그가 속한 공동체의 이민사나 가족사, 그날을 전후로 그가 본 것 들은 것 읽은 것 등등을 생각해볼 테지만 이 글을 쓰는 나는 소설을 쓰는 내가 아니니까 이유가 궁금하지 않다. 이유를 생각하는 것으로 이유를 만들어주고 싶지 않아 그저 게으름을 생각할 뿐이다. 혐오라는 태도를 선택한 온갖 형태의 게으름을.

?
대기라는 필터 없이 태양광에 노출된 스타맨의 헬멧이며 로드스터의 핸들이 태양광을 받아 매우 반짝일 때마다 나는 어째선지 인간 종의 수명-필멸성mortality을 생각한다. 할 일이 너무 많아 5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며 산다는 그 차의 차주-일론 머스크도 그걸 자주 생각할 거라고 생각하고는 한다. 심심해서 미국 대통령을 해본 것 같은 도널드 트럼프도 은근히 그걸 자주 생각할 거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 2021년 올해의 책, 올해는 독서량이 많지 않았고, 황정은은 여전히 좋다.

AND

크리스마스다. 밤사이에 눈이 왔다. 3시부터 6시 사이에 집중적으로 눈이 올거라고 한 일기예보가 정확했다. 다섯시 반에 일어났다. 눈은 이미 30센티미터 가까이 쌓였다. 특설령, 성탄제같은 오래된 단어들이 떠오르고 그 단어들이 들어간 시를 떠올렸다. 크리스마스라서 일찍 일어난 건 아니다. 그저 어제 일찍 잤다. 나이 먹음이란 설레임이 사라지는 일인가 생각해본다. 1984년 7살 때 크리스마스가 기억난다. 당시에 태권도장을 빙자한 유치원에 다녔다. - 영어, 수학, 미술까지 가르치는 한국 태권도장의 교육 시스템이 멀리 구미에도 위용을 떨치고 있다는 얘기를 어디서 읽었다. 암튼 그 한국적인 태권도장에 이종사촌 아이랑 두 살 어린 내 동생도 같이 다녔는다. 크리스마스때 산타 복장을 한 선생님이 우리집에 와서 선물을 주고 갔다. 내 건 소리만 나는 광선총이었고 동생 건 광선총보다는 값싼 장난감이었다. 나랑 동갑인 이종사촌 아이는 나랑 같은 걸 받았다. 산타 할아버지가 동화 속 이야기란 걸 안 건 내 또래들이 같은 선물을 받았다는 것을 깨닫기 전이다. 엄마랑 이모가 선물값을 얼마씩 내야 한다는 얘기를 나누는 걸 들었더랬다. 그렇다고 내가 뭐 엄청 조숙한 아이였던 건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남의 얘기 듣는 걸 좋아했다. - 엿듣기와 엿보기, 어른들의 세계란 아이들에게 항상 흥미로우니까 - 나이 먹음이란 설레임이 사라지고 어린시절의 어떤 순간을 머릿속에서 각색해 내는 일인가 생각해본다.

설레임은 기대, 기대는 소망, 암튼 다 크리스마스랑 어울리는 말들이다. 올해 유일하게 기대했던 일이 신문사 신춘문예에 시로 등단해서 상금도 타고 작가 소리도 듣는 거였는데, 실패했다. 상심했지만 세상에 잘 쓰는 사람이 많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정말 등단이 간절했다면 사람들이랑 이런 얘기를 주고 받지도 못할 것이다. 매년 떨어지는 일인데, 올해 유난히 기록에도 남기게 되는 건 허리가 아파서 상심이 더 크게 느껴져서다. 살면서 허리 아파본 일이 없는데, 지난주부터 허리가 아프다. 스쿼트 자세를 바꿨는데, 그게 잘못됐는지 거동이 불편한 지경에 이르렀다. 버티다가 어제 병원에 갔다. 너무 아파서 작년의 아버지처럼 디스크가 터진 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다행히 디스크 쪽은 아니고 근육이 아주 많이 경직돼 있다는 진단이었다. 여자 프로배구 중계를 즐겨본다. 운동선수들은 운동이 직업이니까 시합전후로 과하다 싶을 정도로 몸을 풀어준다. 내 운동에는 그게 없었다. 아픈 건 내 탓이다. 그래도 화가 난다. 허리 아픈건 핑계고 허리 안 아팠으면 등단 실패에 대해서 며칠동안 화를 냈을지도 모른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어제 퇴근길에 요약할 수 없는 삶을 산다는 게 어떤걸까, 막연히 생각해 봤다. 얼마전의 메모에는 ‘나는 곤조는 있지만 신념으로 살진 않는다.’ 고 적었다.

신념이 있다는 건 박근혜 사면에 대해서 너무 화가 나서 며칠동안 잠도 못 자고 청와대 앞에 피켓이라도 들고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박근혜 사면 속보가 뜨자마자 ‘이 아주머니가 몸이 많이 안 좋나? 감옥에서 죽으면 여러가지로 곤란한 일들이 많을테니 사면을 하나’ 생각했다. 피노체트의 아내가 99살까지 살고 죽었다는 소식에 기쁨에 겨운 칠레 시민들이 노래부르고 축제를 벌이는 영상을 봤다. 이순자는 전두환보다도 더 조용히 죽겠지. 나도 누군가에겐 나쁜 놈이지만 확실하게 나쁜놈은 욕하고 보는 솔직한 세상에 살고 싶다.

시베리아 제트 기류가 어쩌구 하는 때문에 중국 대부분 지역에 한파가 몰아닥쳤다는 날씨 뉴스를 보고 오늘부터 우리나라에 온 한파도 그 영향이겠구나 생각했다. 어떤일에 조금만 관심이 있어도 - 기후파괴에 관심이 많음 - 이렇게 연관해서 생각할 수 있다. 세계지도적으로 보면 기후파괴의 피해 측면에서 한국은 중국과 같은 라인에 있다. 인류의 미래에 대해서 긍적적이지 않다. 지금, 최고 풍요의 시대를 살아본 것이 다행인 것 같기도 하다. 예전에 적은 시에는 살아야겠다, 살아야한다, 는 느낌이 많았는데, 요즘은 그런 생각이 잘 안 든다. 그래서 예전만큼 시를 많이 못 쓰나보다. 설레임도 화도 신념도 살아야겠다는 희망도 없다. 그럼 뭐가 남지?

사랑인가?

인류의 미래야 흘러가는대로 흘러갈 것이다. 이 일기를 쓰는 일을 포함해서 뭔가 하고 있다는 건 살아있고 싶다는 뜻이고 바로 그게 사랑이다.

- > 예쁜 걸 많이 보지만 엊그제 상고대는 정말 예뻐서 잘 걷지도 못하는 허리를 부여잡고 회사 근처로 나가서 찍었다. 예쁜 걸 쫓는다는 건 살아있단 증명이다.


AND

사랑


사랑을 시작할 때 시를 써야지
영하 20도 겨울,
정오의 볕보다 반짝이는 말들로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시련이 닥치면 시를 써야지
가장 깊은 바닥에서,
손톱 뒤집히며 긁어올린 말들로
살고 싶다고 살고 싶다고

그리울 땐 시를 써야지
마음의 빈 자리,
구멍이 뚫리는 말들로
보고 싶다고 보고 싶다고

다시 만난 날에는 시를 써야지
끔속에서도 그립고
죽어서도 잊을 수 없는
눈과 귀를 멀게 하는 말들로

사랑하고
살고 싶고
보고 싶었다고
그리고 나는 사라진다고

AND

흐트러진


너는 울었다
그리고 흐트러졌다
세상은 그대로이니
그것은 세상 탓이다
너의 탓이 아니다

너는 울었다
그리고 다시 흐트러졌다
나는 나에게 내가 그대로인지 묻는다
내가 물었으니
그것은 내 탓이다
너의 탓이 아니다

네가 떠나고
나는 울지 않았다
그러나 흐트러졌다
세상은 그대로이니
그것은 내 탓이다
너의 탓은 아니다

나와 너와 세계는
누구의 탓도 아니다

AND

아버지 만나고 강릉 돌아오는 길이다. 오늘도 기차 안에서 글을 끝내야지.

노인장기요양 인정 때문에 건강보험공단 직원이 아버지 집에 방문했다. 몇 가지 묻고 절차 얘기해 주고 돌아갔다. 우리 아버지의 담당자로 지정된 사람. 장기요양인정 신청서를 접수해 줄 사람. 직업 때문에 수시로 치매환자를 만나는 사람. 고된 일이다. 의사소견서 받는 병원 예약이 올해 안에 어려워서 소견서 제출일자를 조금 미뤄 달라고 공단에 전화를 했다. 전화 끊으면서 진심으로 고생 많으십니다, 했는데 상대도 진심으로 선생님이 더 힘드시죠, 해서 위로가 됐다.

지금의 아버지는 가볍게 생각하면 20년 먼저 90살이 된 사람이다. 아버지가 무거운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무겁게 생각하지는 않을란다.

오늘 아버지는 누룽지를 꼬들꼬들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했다. 공단 직원이 말한 세 개의 단어를 방금 따라 읽고도 10초 만에 다 잊었다.

오늘 내가 아버지한테 한 얘기는 아버지 지금 잘하고 있어요. - 항상 가장 많이 하는 말- 요새 잘 못 드시는 거 같애 얼굴을 보니까 좀 야위었어. 많이 주무시는 게 좋아요. 억지로 일찍 일어나실 필요 없어요. 아버지 허리 펴고 천천히 걸으세요. 등이다.

공단 직원이 돌아가고 시장에 가서 아버지랑 순댓국을 먹었다. 왠지 허기가 져서 둘 다 특으로 시켰다. 아버지가 나에게 특별하던 시절을 지나 내가 아버지에게 특별한 사람이 됐다. 아니면 부모 자식 관계는 항상 특별한 것이리라. - 이놈의 가족주의 - 내가 그릇을 비우자 아버지는 그거 처음에 돈 더내고 먹는 그거 먹을 걸 그랬다고 한다. 아버지 지금 먹는게 특이예요. 했다. 그랬어? 그러면서 이버지가 웃었다.

순댓국이 먹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못 먹었다는 뉘앙스의 얘기가 나왔다. 한 달에 편히 쓸 수 있는 돈이 15만원이니 그럴 수 있다. 아버지 드시고 싶은거 있면 사 드시고 돈 떨어지면 얘기하세요, 했다. 아버지는 돈이 없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상태다. 돈이 없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는 건 긍정 요인인가?

노인일자리 신청한다고 해서 그러시라고 했다. 잘 되면 좋은 거다. 수입도 생기고 외로움도 덜할 것이다. 오늘 나를 만나는 일 때문에 들뜬 아버지는 전화기도 챙기지 않고 시장통에서 나를 기다렸다. 집에 갔는데 아버지가 없어서 아버지 찾으러 나갔다가 터덜터덜 집쪽으로 돌아오는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가 아직은 길을 잃어버리진(잊어버리지) 않는 사람이라 다행이다.

1월 4일에 또 만날 거라고 했더니 얼마남지 않았다며 좋아했다. 아버지가.

아버지, 저랑 1월 4일에도 만나고 15일에도 만나고 2월 15일에도 만날거에요. 드시고 싶은거 있으면 사 드시고 돈 떨어지면 저한테 전화하세요.

-> 신월동 이미지. 김포공항 없앤단 얘기가 있던데.

AND

부모는 성소수자 자식에게 자식은 부모에게 다가가는 얘기다. 뉴스나 소설에는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부모가 자식을 해치는 얘기가 많지만 보편적인 부모 자식 관계는 서로 다가가는 관계다. 애정이 있는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다. 통칭 인류애라 하자. 사랑이라 할까?

‘성소수자 부모모임’을 세상에 알리는 영화이기도 하다. 성소수자도 소수고 그 부모도 소수인데, 그 부모 모임에 나오는 부모는 더 소수다.

인간이란 개별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조금만 생각해봐도 누구나 다 소수자다. 권력을 가진 소수냐 아니냐의 차이만 있다. 직업으로 생각해보면 재벌 총수, 판사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은 몇 명 없다. 대통령은 얼마나 외로울까? 내가 대통령이라면 외로워서 우울증 걸릴 것이다. 재벌들은 다 마약에 빠져 있을지도 모른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차별을 모른다. 모든 것이 당연한 세상에서 그들은 가해자다.

나는 어떤 면에서 소수자인가? 영화 보고나서 머릿속에 이 문장을 넣어놓고 생각해 봤다. 나는 한국에서 남자고 장손이고 공사감독관 같은 걸 해야하는 직장에 다니고 운동신경은 별로지만 힘은 세고 고등학교 때는 공부도 곧잘 했다. 이런 기본 조건만으로도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어느정도 권력이 있다. - 남들 상처 주지 않게 조심해야지. - 가난이라는 측면에서 소수자인가? 집은 없지만 월세가 아니라 전세고 강제철거가 발생하는 동네에 살지는 않는다. 어렸을 때는 진짜 가난했지만 - 지금도 부자들 싫어함 - 지금이야 밥은 벌어 먹고 사니까 가난 쪽으로도 소수자는 아닌 것 같다. 적어 놓고 보니 조건이 나쁘지 않다. 혼자 사는 아버지가 치매 환자인 건 소수자 조건에 들어가는 것 같다.

소수자란 건 비율로 따진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얼마나 약자인가를 따지는 것이겠지. 우리 아버지는 정말 소수자고 난 소수자 보호자다.

영화에 차별금지법 얘기도 나온다. 본인이 보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제 무덤 파는 것도 모르고 lgbt 페스티벌 반대 시위를 하고 차별금지법에도 반대한다. 그런 일로 우월감을 느낀다고 생각하니 정말 한심하다. 인터넷 악플도 마찬가지다.

진짜 차별하는 소수의 권력층은 약간의 선동만으로 지들 원하는 걸 다 누리면서 세상을 우습게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울화가 치민다.

쥐뿔도 가진 건 없지만 세상에 지고 싶지 않다. 가진놈, 힘있는 놈들에게 수그리고 싶지 않다.

영화 재밌단 얘기다.

AND

우동을 먹다

우동을 먹는다
이름처럼 둥근 면발
동으로 끝나는 다른 음식은 뭐가 있지?
당장은 오뎅만 떠오르고
우동 국물엔 오뎅이 들어있다
얘네들 이름처럼 동글동글하게 살고싶다
뜨겁지도 않은데
후후 불어가며 우동을 먹는다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닌데
그렇게 되고마는 일은 어디에나 있다
그것이 순리라면
우동 면발 삼키듯 순리대로 살고 싶다
먼길 다녀오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당신과 함께 우동을 먹는다
순리가 의식이 되고 의식이 종교가 되고
내 마지막 종교가 당신이라면
그것이 사랑인가
물어보는 순간 사랑이다(우동이다)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