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기


y=ax
y는 당신
x는 나
a는 내 사랑의 기울기
a값이 뭐든
나는 당신쪽으로만 기운다
많이 기운날도 있고
조금 기운날도 있다
우리 사랑은 평면 위에 끝없이 뻗어나가는 직선
일차 함수 같은 직선의 사랑

AND

오징어 볶음


나는 우리집에서 요리를 제일 잘 하는 사람
간 안 보고 요리해도 다 맛있다
헌데, 점심은 귀찮아서 김치 볶음밥
저녁엔 뭐라도 만들어 먹어야지
종일 일하고 돌아온 당신과
맛있게 먹어야지

먼저 담배 냄새나는 손을 비누로 씻는다
당신이 좋아하는 양파는 많이 넣어야지
당근이 하나 밖에 없네
감자도 넣어야겠다
양념장에 들어갈 마늘도 준비해야지
양파 껍질을 벗기면서
매일 새로운 당신을 생각한다
당근을 자르면서
갈라지지 않는 우리 사랑이 자랑스럽다
양파 당근 감자를 순서대로 볶는다
오징어를 넣기 전에 양념장을 만든다
고추장 고춧가루 간장 마늘 소주 참기름을 뒤섞는다
언젠가 뒤섞인 사랑 때문에
당신과 나 모두 엇나간 적이 있었다
오징어를 넣고 양념장을 넣는다
오징어는 바다 생물
약불에 끓이면 물이 나온다
매일 샘솟는 내 사랑 같다
나는 먹지 않지만
당신이 좋아하는 대파를 넣는다
마지막엔 강불로 졸여서 마무리
요리의 끝이 사랑의 시작
소면을 삶아서 같이 먹을까, 생각하며
당신을 기다린다

친구한테 술 먹자고 전화가 온다

여보, 미안해요
오늘 저녁은 혼자 먹어요

AND

사랑, 그게 다 무엇이냐

사랑, 그게 다 무엇이냐?

일곱살 먹은 아이가 아빠 또 결혼해, 라고 아내에게 묻는 것?
내 애인과 정반대인 사람에게 끌리는 것?
내 팔에 바늘을 찌르는 간호사 언니를 보기 위해 때마다 헌혈하는 것?
나보다 동생일지도 모르는 미장원 아줌마가 나한테 잘해주는 것?
노래방에서 환상의 여인을 만나는 것?
심사숙고 해서 끓인 라면을 이름도 모르는 너와 함께 먹는 것?

나는 짝꿍이 없으면 담배도 못 피우는 사람

오늘은 그저
복상사하기 좋은 날
너와 나 모두가 좋은 날

사랑, 그게 다 무엇이냐?
AND

수녀원을 나오다


모든 것을 버리고
수녀가 되려 했다

수녀원의 모든 십자가에는
죽은 예수가 매달려 있고
나는 날마다 죄인이었다

죄인으로 살고 싶지 않아
수녀원을 나왔다

나는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열정적으로 떠들던 사람
수녀원에서는 폭발하지 않고
반감됐던 분노가 요요현상으로 되돌아 왔다

- 이런 지랄 씹탱구리

나는 멀건 가깝건
되짚어 가는 걸 싫어하는 사람
수녀원을 나와서 사주를 배웠다
사주를 가르쳐 준 사람이
나는 뜨거운 사람이라고 했다

연월일시 천간 지지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나는 불을 갖고 태어난 사람
나는 화를 태워야 사는 사람
나는 남자 운이 없는 사람

모든 일상이 기도였는데
기도가 사주가 되어 돌아왔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지만

나도 세상도 그대로인 게
내 인생이 내 사주를 닮은 게

조금 쓸쓸할 뿐
조금 씁쓸할 뿐
AND

금연


담배를 끊으면
새 사람이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질 않네
나는 줄 게 없으면
미안해서 개도 부르지 못하는 사람인데
왜 모질다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끊었을까
담배는 끊는 게 아니라 평생 참는 거라는데
언제까지 참을 수 있을까
나는 니가 보고 싶어서
자다 깨서도 우는 사람인데

그리움의 연기를 내뱉지 않으면
너를 내 가슴속에만
계속 묻어둘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꿈에서만 보고 싶을 줄 알았는데
그렇질 않네
너는 찻집에서 처음 만난 낯 모르는 사람에게
꽃을 줘서 보내는 사람인데
겨울 지나 봄이 올 때처럼
한꺼번에 나에게 불어온 바람이었는데

이 밤이 다 타도록
빈 재떨이만 쳐다보고 있다
애꿎은 라이타만 만지작거리고 앉았다

AND

버려진 볍씨

여기, 종자로 남겨졌으나
싹을 틔우지 못한 볍씨가 있다
껍데기를 벗고
익혀져 밥이 되지도 못하고
싹을 틔워
대도 잇지 못한 볍씨가 있다
같은 운명의 동료들과 함께
논 가장자리에 버려진
볍씨가 있다
그 볍씨를 지나가던 새가 먹는다
그 새가 살아서 대를 잇는다
그 새를 또 다른 새가 먹는다
또 다른 새가 똥을 눈다
또 다른 새가 대를 잇는다
또 다른 새를 인간이 먹는다
인간이 대를 잇는다
그리고 언젠간 죽는다
똥은 거름이 되고
죽은 것들은 흙이 된다
이렇게,
버려진 볍씨 하나가
세계의 균형과 우주의 질서 안에 있다
내 안에 있다
AND

교차로에서

깨져 버린 약속 같은 날
하늘에선 비가 내리고
나는 교차로에서,
엇갈린 연인들의 운명을
몸을 던진 여인의 흔적을 쫓는다
비가 먼저 그쳤을까
밤이 먼저 찾아왔을까
거리는 정적 속에 붉은 빛을 밝힌다
나는 새로운 약속을 만들고
그것마저도 깨져 버리길 바라며
황급히 교차로를 떠난다
AND

겨울

엄마가 꽁꽁 싸매준대로 입고
자기 몸통만한 가방을 매고
학교에 가는 꼬마들
버스에서 방금 내린 여인의
겹겹을 벗겨 내리면
우주가 기다릴까
AND

바보


씨팔,
어떻게 세상이 이러냐
세상에 더런놈들 다 쳐 죽일 수 있을 정도로 잘 되고 싶다
혼자 잘 될 생각만 하는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라
잠 못드는 새벽에 이런 생각밖에 못하지만
그래도 잘 되고 싶다
나비는 결코 날개를 펴고 꽃 위에 앉지 않는다
고양이가 어딘가를 볼 때는 항상 그곳에 뭔가가 있다
사람이 개랑 놀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인간이 악마다
인간은 멸망해야 한다
멸망해도 밥은 먹고 멸망해야 하는 것이 인간이니
로드킬 당해서 아스팔트 바닥에 찌그러져 눌러붙은
고라니 내장을 뜯어먹는 까마귀처럼
나쁜놈들의 마지막까지 깨끗하게 쪼아 먹고 싶다
독립군도 내가 즐거워야 하는 법인데
나무와 함께 있는 것 말고는 즐거운 일이 없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가슴속에 꾺꾺 눌러담은 것
그것을 더 담을 공간이 없다
차라리,
세상의 모든 고요를 짊어진 깊은 산속에
오두막을 짓고 혼자서 왕이 되버릴까

이런 생각으로 밤을 지새고
빈속에 양치질을 하다가
뭉개져버린 칫솔을 무심결에 알아채는 내가
내 마음이
바보 같다
AND

고구마 밭

새벽에 혼자 고구마 밭을 둘러본다
태양이 안개를 지우지 않은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솔직한 시간이다
멧돼지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와
고라니가 뜯어 먹은 흔적을 본다
그래 너희도 먹고 살아야지
내가 늙어가는 만큼 자라나는 잡초를 본다
그래 너희들도 살아야지
그러니 그냥 둬야지 어쩌겠나
밭에 일하기 싫은 사람
밭 골만 헤아린다는데
밭이웃이 좋아야
한 번 갈 걸 두 번 간다는데
이웃도 없이 외떨어진 밭에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우두커니 섰다
항상 그날이 그날인 사람
그래서 참 좋은 사람이고 싶다
모든 것에 솔직한 지금처럼 살고 싶다
AND

해고통지서

낮부터 술에 취한 아버지의 언성이 높다
아버지는 어제 해고통지서를 받았다
저녁에 비틀거리며 돌아온 동생이 투덜거린다
곧 짤릴 것 같다고 한다
밤이 오고
나는 어둠을 쫓는 고양이 마냥
조용히 집을 나와 강가를 걷는다
달도 뜨지 않은 어둠
하늘도 강물도 죽음처럼 고요하지만
수 많은 해고통지서들은 불을 밝힌 집집마다
유령이 되어 떠돌고 있을 것이다
나는 길을 잃은 고양이에게 헛 발길질을 하고
찢어버린 해고통지서를 강물에 뿌린다
검은 강물이 더 짙은 어둠 속으로 흘러간다
AND

겨울, 오후 네 시

아침까지 마시고
술이 깬 오후
마음속이 명정하다
얼어붙은 호수처럼
텅빈 초등학교 운동장의 빈 그네처럼
폭풍이 지나간 거리처럼 차분히 가라앉는다
세상에 혼자 남겨진듯한 고요
이 고요를 뿌리칠 수가 없다
모질게 당신을 내쳤지만
술은 내칠 수 없다
안경점에 가서 안경을 바로 잡는다
아저씨는 괜찮은데, 라고 하면서도
안경테를 이리저리 만진다
비뚤어진 건 안경이 아니라
지금 내 마음이라는 걸 안다
안경점의 텅빈 어항안에 물레방아만 돌아간다
단골 편의점에 들른다
알바생이 나한테 말도 안 하고 그만뒀다
배신감 속에서도
컵라면 면발이 차곡차곡 뱃속에 쌓인다
집에 가는 길
멀리 하늘 너머로 오늘이 넘어간다
AND

자리


순댓국 집에서 혼자 밥 먹는데
숟가락을 두 개 꺼냈다
자리가 하나 빈다
결혼을 하려고 하니까 네가 없다
네 손에 내 손을 비빌 때 흐르던 정전기가 그립다
내 손이 자리를 잃었다
내 세계에 울려 퍼지던 네 웃음소리가
환청으로만 내 귓가에 맴돈다
아, 이것은 실제 하지 않는 것
네 웃음도 자리를 잃었다
너는 퇴색이란 단어를
눈을 빛내며 말하던 사람
나는 비밀이 많은 사람
너는 모르는 것이 많았던 사람
내가 속내를 털어놓는 건 내 친구지만
내가 사랑하는 건 당신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일부러라도 달아나고 싶었다
문득,
어느샌가,
돌아보니,
그러하였던 것들 중에
네 빈자리가 있다

AND

부음을 듣다

깊은 잠에 빠진 아내의 발이
옆에 누운 내 다리 밑으로 파고 들고
고요한 숨소리가 유난히 선명한 새벽에
무방비 상태의 아내가
나를 가장 사랑하는 안온한 시간에
먼데 있는 사람의 부음을 들었다
잠이 달아나고
시간이 멈추었다
나는 아직 죽음을 모르는구나
진실로 죽고 싶은 적이 없었구나
가장 큰 슬픔을 모르는구나
그 깊이를 모르는구나
마음이 안 좋다는 말을
살면서 처음 마음으로 알았다
살아서 사람이니
살아야 사람이니
살아야 한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헌데 살아야 한다는 한 줄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삶과 죽음이 한통속이란 것이
아무런 위로도 되지 않는다
강단있고 선량한 당신의 눈을 생각하며
살아 있는 우리를 위해서
살아간다고
그래도 살아간다고
당신에게 편지를 써야겠다
AND

겨울


입동 지나니 시간이 안간다
시간이 얼어붙었나
나는 겨울비에 얼어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가만히 밤이 오고
다시 비가 내린다
어제 날짜까지의 컵라면에
어제 해 둔 찬밥을 말아서
콧물을 훌쩍이며 먹는다
파리 한 마리가 라면 위를 난다
이 집에 썩는 것이라곤
내 몸뚱아리와 녀석 몸뚱아리 뿐이다
날 수 있는 몸이 부러워서
그냥 둬도 얼어죽을 녀석을
어차피 썩어갈 녀석을 때려잡는다
어째서일까
파리를 잡아도 밥을 먹어도
멈춘 시간에 허기만 쌓인다
허기진 삶을 먹는 일로만 채웠더니
뱃속에 사막 같은 똥이 들어찼다
수음을 하다가 똥을 싸고
똥을 싸면서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
쏟아내는 일들로 허기가 채워질까
결국, 먹는 일로 허기를 채우려
어제 날짜까지의 컵라면에
어제 끓여둔 물을 붓고
다시 어두운 식탁에 앉는다
어디선가 날아온 파리 한 마리
식탁 위를 날다 라면 위에 앉는다
이번엔 애써 잡지 않는다
나는 어제까지만 살았다

AND

'한국에서 돈 벌려면 학원을 해야 한다.'
언젠가 노량진에서 술 마시다가 친구에게 들은 말이다.

어제 불후의 명곡 지오디 편을 보는데 문득, 에이치오티, 지오디 등으로 대표되는 아이돌 1세대 이후의 우리나라 아이돌은 학원 산업의 결과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돈 된다. 학원 내자.' 이런 느낌이랄까

걸그룹 여자친구의 퍼포먼스를 처음으로 봤는데, 정말 열심히 하더라. 틴탑이란 팀도 마찬가지였다. 직업이니까 당연히 열심히 하는걸까? 나는 농사 지을때를 포함해서 내 직업에 한 번도 최고의 전력을 다한 적이 없다. 글 쓰기는 전력을 다하는 편인데, 아직 직업이 아니라 그런것 같다. 여하튼 그들의 무대가 보기 좋았다. 오프닝 공연을 했던 지오디는 여유와 관록이 느껴졌다. 다 내 또래들인데 벌써 뱃속에 영감님이 들어앉은 느낌이랄까. 아이돌이란 게 평범하게 학교 다니는 사람들보다 일찍 직업 전선에 뛰어들다보니 이런저런 일들도 남들보다 빨리 겪을 것이고 업계 특성상 더러운 꼴도 많이 보다보니 순차적으로 세상을 사는 사람들보다 빨리 늙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하려던 얘기로 돌아가서, 공무원 시험 공부하듯. 노래며 랩, 춤을 배워서 뛰어난 친구들이 데뷔한다. 데뷔라는 1차 경쟁을 통과해도 다른팀보다 유명해지고 살아 남아야 하는 2차 경쟁이 기다리고 있다. 과학고등학교 학생들이 명문대 가려고 경쟁하는 거랑 비슷하다. 다 잘하는 데 남들보다 더 잘해야 한다. 여러 단계를 거치며 우승자를 뽑는 오디션 프로도 이거랑 같은 구조다. 근데 심사위원들이 좋아하는 참가자는 대체로 학원 안 다닌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친구들이다. - 외국에서 온 친구들 - 그런 친구들을 뽑아서 자기네 학원에 데려간다. - 케이팝 스타가 그렇지 - 대학입시로 치자면 수능 만점자 같은 건데, 그런 친구들도 업계에서 이름을 떨친다는 보장이 없다.

엔터테인먼트 사업 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젊은이들에게 너무 한정된 꿈과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경쟁을 강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미디어가 그걸 돕고 주위 사람들은 부추긴다. 슬프고 아픈일이다.

항상 의심하면서 살아야지.

덧붙임,

얼마전에 우연히 소녀시대가 라이온 하트 부르는 걸 봤는데, 깡마른 친구들이 흰 옷을 헐벗은듯 하게 입고 나왔더랬다. 팬들에게 미안하지만 전쟁고아들 보는 거 같았다. - 북두의 권 -

올해 정말 좋게 들은 걸그룹 노래 3곡

1. 여자친구 - 오늘부터 우리는, 노래가 그냥 좋았다.
2. 러블리즈 - 아추, 작년에 에이핑크가 부른 미스터 츄란 노래를 많이 들었는데 그 곡은 약간 평범한 진행으로 좋다는 느낌이라면 이 곡은 뭔가 다르다
3. 레드벨벳 - 덤덤, 테일러 스위프트가 최근에 이런곡들 많이 하는 거 같던데.
AND

나무

나무는 평생 한 자리에서만 사랑한다
나이테 하나씩 늘어갈 수록
그 자리에서 점점 둥글게 커가는 인생
그것이 그대로 삶인 나무
나무가 되지 못하고 흔들리는 내 사랑은
잠시도 가만히 있질 못하여
이리저리 삐뚤빼뚤 튀어 나가려고만 한다
당신에게서 다른 당신에게로
그리고 또 다른 당신에게로
자꾸만 다른 곳을 보려고 한다
하여 이제부터 나는 나무를 사랑하련다
첫사랑의 이름을 붙인
나의 자작나무 은수
너를 부둥켜안고 둥글게만 둥글게만 사랑하련다
그렇게 억겁의 시간이 흐르면
나도 나무가 되련다
AND



사랑이 그 자체로 詩인 것처럼
죽음도 그 자체로 詩다
죽을만큼 사랑한다는 건 시시한 詩
죽어서도 사랑한다는 건 거짓부렁 詩
산자가 죽은자를 사랑하는 건 세상에서 가장 슬픈 詩
사랑의 詩를 팔아서 너에게 따스한 밥을 먹이는 건 안타까운 詩
그런 너의 죽음은 팔아서는 안되는 詩
AND

뜨끈뜨끈해


뜨끈뜨끈해 뜨끈뜨끈해
너를보면
뜨끈뜨끈해 뜨끈뜨끈해
내 마음이
뜨끈뜨끈해 뜨끈뜨끈해
불꽃처럼

말랑말랑해 말랑말랑해
너를보면
말랑말랑해 말랑말랑해
내 마음이
말랑말랑해 말랑말랑해
젤리처럼

끈적끈적해 끈적끈적해
너를보면
끈적끈적해 끈적끈적해
내 마음이
끈적끈적해 끈적끈적해
송진처럼

뜨끈뜨끈해 뜨끈뜨끈해
말랑말랑해 말랑말랑해
끈적끈적해 끈적끈적해

 

song ver


뜨끈뜨끈해
너를보면(1 4)
뜨끈뜨끈해
내 마음이(1 5)
뜨끈뜨끈해
불꽃처럼(1 3)
뜨끈x3 (1 5 4 1)

말랑말랑해
너를보면
말랑말랑해
내 마음이
말랑말랑해
젤리처럼
말랑말랑해x3

끈적끈적해
너를보면
끈적끈적해
내 마음이
끈적끈적해
벌꿀처럼

뜨끈뜨끈해 내 마음이 뜨끈뜨끈해 햇살처럼(1 4 1 5)
말랑말랑해 내 마음이 말랑말랑해 꿈속처럼
끈적끈적해 내 마음이 끈적끈적해 키스처럼

뜨끈뜨끈해 뜨끈뜨끈해(1 4)
다정한 날 봄비처럼 뜨끈뜨끈해(1 5 4 1)
뜨끈뜨끈해 뜨끈뜨끈해(1 4)
너를 보는 내 마음이 뜨끈뜨끈해 

AND

일자무식 뮤즈

너는 수학여행 때도 서울 구경 못한
강원도 촌놈
네가 나에게 많이 하는 말,
내 말이 맞제
내 마음 알제
알제는 알제리의 수도
그르니에와 까뮈의 도시
하지만 너는 까뮈를 모른다
내가 너에게 자꾸 하는 말,
너는 나의 뮤즈
하지만 너는 뮤즈란 말을 모른다
일자무식이 뭔 말인지 알지만
일자무식인 나의 뮤즈
구리스가 없으면 세상이 뻑뻑하게 돌아간다고
실리콘이 없으면 틈이 안 메워져서 세상이 헐겁게 돌아간다고
불이 없으면 겨울에 추워 빠져서 살 수가 없다고
철은 드는 게 아니라 먹는 거라고
이건희 갸는 병원비 걱정이 없다고 하며,
웃기만 하는 나의 뮤즈
사람이 사리분별을 할 줄 알기 때문에 사람이지만
사람은 금전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고
그래서 본인은 분별없이 산다고 하며,
인상을 찡그리기도 하는 나의 뮤즈
AND

모습

어느 아침, 기억을 잃은 어제를 후회하며
인생은 쌓아가거나 쌓여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신을 만나고 당신과 헤어지고
또 당신과 만나고 당신을 사랑하고
헤어지지 않으리라 결심했다가
이내 헤어지고는 괴로워하고
괴로워하는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내가 내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아가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거라 생각했다

오늘 아침, 어제에 대한 또렷한 기억들에 괴로워하며
술잔 앞에 쏟아졌던 당신의 말을 생각한다
인생은 깎아가는 것이라고
삶은 언제나 깎여나갈 뿐
쌓여서 나아가는 인생 따위는 없다고
남아 있는 목숨처럼
지나간 시간만큼 줄어들기만 할 뿐이라고
그러니 괴로워 말고 다시 시작하자고
당신은 말했다

생의 모습은 쌓이지도 깎이지도 않는다
이제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AND

월급날

퇴근길에 비를 맞습니다
자전거 위에 앉은 안경 위로
빗줄기가 식은땀이 되어 흐릅니다
눈앞이 흐립니다
마트 앞에서 전화기를 들여다보며
입금 문자만 기다립니다
오늘도 한 잔 마셔야 잠들 수 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비를 씻습니다
구겨진 허리를 벽에 기대고 술을 마십니다
통증이 사라지고 피로가 가십니다
망각이라는 미궁속으로 점점 빠져들어 갑니다
내일은 월세도 내고
얻어 피운 담배도 갚아야 합니다
내일 같은 것 없어도 좋겠습니다
점점 추워지고 겨울밤은 까맣습니다
당신이 없어도
서럽지는 않습니다
AND

다음주 월요일이 아버지 생신이라 엄마가 이번 일요일에 우리 부부를 오산으로 소환했다. 주말마다 일정이 있어서 피곤하긴 한데, 엄마가 문어 먹고 싶다고 해서 한 마리 사 들고 가기로 결정했다.

어제 영화 '나쁜 나라'를 봤다. 영화적인 완성도보다는 기록으로서의 가치가 더 중요할 수도 있는 법이다. 해도해도 아무것도 되지 않을 때의 절망을 본다. 거리에서 자고 첨탑에 올라가고 머리를 밀고 곡기를 끊어도 법이란 것이 시스템이란 것이 꿈쩍도 하지 않고 되려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만 늘어날 때의 절망을 본다.

지난주에 동료들이랑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놀러 가다 잘못 되서 죽은 걸 국가 세금으로 보상금을 그렇게 많이 주냐, 수학 여행 한 번 잘 보냈다가 대박났다. 처음에 좀 슬프지만 지금쯤은 휘파람 불면서 놀러다닌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얘기를 한 양반이 21살 먹은 아들을 끔찍히 아끼는 양반이라 본인 아이라도 그렇겠냐고 물으니 자긴 그럴 것 같다고 했다. 머리로 들이 받을까 하다 참았는데, 그냥 들이 받을걸 그랬다.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기 보다는 인간의 자질이 부족한 사람이다. 어디서부터 잘못 됐는지 모르지만 아마 아주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할 터이다. 교육이란 게 중요한 이유다. 이 양반이랑 말을 섞을 수가 없다.

우리 엄마는 박근혜를 너무 좋아하는데, 11월 어느날 내가 전화했을 때, 곧 40살이 되는, 박근혜의 박 자도 듣기 싫어하는 나에게 날이 추워졌으니 따뜻한 물로 씻으란 말을 했다. 부모 자식이란 이런 것이다. 세월호는 정치색이나 이념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돈이 문제가 아닌 것이다. 가족의 죽음을 실시간으로 본다는 것을 내가 물에 잠기는 것 같은 기분을 나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나쁜 나라'는 국민 말고는 아무것도 믿을 수 없다는 희망적인 수식어를 붙였지만 보상금이 어쩌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는 정말 나쁜 나라다. 이 나라에서 무엇을 어찌할까.

어제 어머니 두 분이 오셔서 말씀을 하시는데 '국민'이란 단어를 많이 쓰셨다. 마음이 이팠다. 민주주의 국가에 사는 '시민'이 아니라 '국민'이란 단어를 쓰시는 보통 사람들에게 국가도 국민도 절망만을 강요한다.

사람은 사리분별을 할 줄 알아서 사람이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민주주의의 시민이라면 언제까지나 세월호를 기억해야 한다.
AND

스토커 - 인간적인 짝사랑

인간성이 지극하면
비인간적이 된다
너무 인간적이란 말은
비인간적이란 말이다
인간적으로 너무 예뻐
인간적으로 너무 커
인간적으로 너무 괴로워
인간적으로 이러지 말자
인간적으로 인간적으로 더 인간적으로
우리는 인간이지만
너무 인간적이다
인간적으로 너를 너무 사랑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비인간적으로 살고 싶다
너는 이런 나에게
부담스러우니 저리 가라고
이제 그만하라고
인간적으로 너무하다고 한다


AND

무방비

여름에 굴복해 늘어진 채
내 옆에 누운 애인
양 손에 과자를 쥐고 침을 흘리며
유모차에 누워 잠든 아기
초등학교 정문 앞 문방구 뽑기에
넋을 놓은 꼬맹이들
말복 더위 집에 가다 지쳐
그늘진 길가에 앉아 쉬는 할머니
염색을 마치고 머리 감으려고
고개를 젖히고 의자에 누운 아가씨
치과 진료대에 아아, 하고
입 벌리고 누운 아줌마
결혼 전날
때밀이에게 몸을 맞긴 새신랑
만취 상태에서 마늘 냄새 풍기며
졸음운전하는 아저씨
나는 무방비 상태인 것들을 사랑한다
온통 무방비 상태인 이 세상을 사랑한다
하여,
너의 무방비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방비가 된다
이것이 무방비적인 나의 사랑
AND

체 게바라

내년이면 체가 죽은 나이를 산다
별일 없으면 다음달에 우리 나이로 마흔이 된다
빌어먹을 한국 나이
빌어먹을 빠른 생일
나는,
지금까지는 형이었지만
곧 친구가 되는 그처럼
의기롭게 죽지도 못하고
역사에 이름 한 방울 남기지 못하고
의사 면허 같은 것도 하나 없고
훌륭한 일기를 쓰지도 못하고
떠돌이도 되지 못한 채
나이 먹을 수록 점점 구태의연해 지기만 한다
뻔한 말, 뻔한 사랑, 뻔한 돈, 뻔한 이기심
얄팍한 자존심과 더 얄팍한 애국심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오늘을 위해 한 일이 없으니 뭐라도 하자는 심정으로
널 품고 나니 세상이 감옥 같다는 핑계로
술을 고되게 먹는다
세상 살며 무리하는 법이 없는데
술 마실 때만 무리한다
설탕이 빠진 밀크 커피를 뽑아내는 커피 자판기 마냥
뭔가를 놓치고 있다
설탕을 채우던 자판기 아줌마가
젊은 사람이 안됐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커피 설탕 프림이 모두 들어간 밀크 커피를 한 잔 뽑아준다
고맙다고 구태의연한 인사를 날리고
담배를 입에 물어본다
커피와 담배,
이 뻔할 뻔 자같은 뻔뻔함이여
사주가 똑같은 인생도 갈라지는 판이니
내가 그처럼 될 순 없다
이유 없이 사라져도 괜찮은 것이 있다
그게 나는 아니길 바라며
오늘도 내일까지 마셔야겠다
이런 마음을 먹는 내가 부끄럽고
그에게 미안하다
그가 나를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를 아는 것이 내 죄다
그래도 내년에 죽고 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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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내의 마음에 작은 강이 있어
그 강에 아주 작은 물고기 한 마리 살았다
물고기가 바깥 세상을 동경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느날 그이의 마음에 큰 비가 내려
물고기는 마음 밖으로 헤엄쳐 나왔다
곧 비가 그치고 햇살이 쏟아졌지만
물고기는 돌아갈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자신이 따스한 햇볕 아래 말라 죽을 운명임을 알았다
조금 남아있던 물도 모두 말라 버리고
모래땅 위에서 물고기가 마지막 숨을 몰이쉬던 그때,
마음에 아주 작은 강을 가진 한 소녀가 있어
물고기를 발견하곤 가슴에 품었다
물고기가 죽음을 원했는지
강으로 다시 돌아가는것을 원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소녀의 마음이 넘칠 큰 비가 내릴 때까지
소녀와 함께 살게 되었다
사내와 소녀는 헤어진 연인일 수도 있고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작은 물고기가 계속 이렇게 살고 싶은 지는 알 수 없지만
살아 있다면 누군가의 마음 속일 것이다
깊거나 얕거나 넓거나 좁은
마음의 강일 것이다
살아 있다면 누군가의 마음 안에서 꿈틀거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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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4가

가슴 속에 앙금이 쌓이듯
술이 내려오는 날이 있다
나는 끝없이 가라앉는 사람
사과는 땅에 떨어지고
풍선은 하늘로 오른다
큰사과는 제삿상에나 올려야지
풍선은 영어로 블룬 불른 불륜이지
사과는 썩고
풍선은 터진다
나는 썩어 터지는 사람
내 이름까지가 내 주소고
집이 있는데 갈 곳이 없다
나에게 자신이 없다
하여,
그저 을지로 4가에서 내리고 싶었다
1가도 2가도 3가도 아닌
5가도 8가도 아닌
특별한 일 없으면 특별할 일 없는
을지로 4가 한복판에
나무처럼 그냥 우두커니 서 있고 싶었다
지하철역 환승통로 에스칼레이터에
홍수처럼 쏟아지는 사람들과
청계천 다리 위 인파 사이로
회색떼가 묻은 흰 비둘기의 치욕을 본다
오늘 날씨를 오늘 아침에 못 맞추는
일기예보 같은 삶이여
행운인지 불행인지
내게는 아직 가장 작은 액운도 닥치지 않았다
일기예보는 틀려야 맛이지
언젠가는 맞닥뜨릴 불행을 기다려야지
어느덧 술이 머리 끝에 차올랐다
자, 이제 집에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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