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습

어느 아침, 기억을 잃은 어제를 후회하며
인생은 쌓아가거나 쌓여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신을 만나고 당신과 헤어지고
또 당신과 만나고 당신을 사랑하고
헤어지지 않으리라 결심했다가
이내 헤어지고는 괴로워하고
괴로워하는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내가 내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아가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거라 생각했다

오늘 아침, 어제에 대한 또렷한 기억들에 괴로워하며
술잔 앞에 쏟아졌던 당신의 말을 생각한다
인생은 깎아가는 것이라고
삶은 언제나 깎여나갈 뿐
쌓여서 나아가는 인생 따위는 없다고
남아 있는 목숨처럼
지나간 시간만큼 줄어들기만 할 뿐이라고
그러니 괴로워 말고 다시 시작하자고
당신은 말했다

생의 모습은 쌓이지도 깎이지도 않는다
이제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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