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오후 네 시

아침까지 마시고
술이 깬 오후
마음속이 명정하다
얼어붙은 호수처럼
텅빈 초등학교 운동장의 빈 그네처럼
폭풍이 지나간 거리처럼 차분히 가라앉는다
세상에 혼자 남겨진듯한 고요
이 고요를 뿌리칠 수가 없다
모질게 당신을 내쳤지만
술은 내칠 수 없다
안경점에 가서 안경을 바로 잡는다
아저씨는 괜찮은데, 라고 하면서도
안경테를 이리저리 만진다
비뚤어진 건 안경이 아니라
지금 내 마음이라는 걸 안다
안경점의 텅빈 어항안에 물레방아만 돌아간다
단골 편의점에 들른다
알바생이 나한테 말도 안 하고 그만뒀다
배신감 속에서도
컵라면 면발이 차곡차곡 뱃속에 쌓인다
집에 가는 길
멀리 하늘 너머로 오늘이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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