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주 월요일이 아버지 생신이라 엄마가 이번 일요일에 우리 부부를 오산으로 소환했다. 주말마다 일정이 있어서 피곤하긴 한데, 엄마가 문어 먹고 싶다고 해서 한 마리 사 들고 가기로 결정했다.

어제 영화 '나쁜 나라'를 봤다. 영화적인 완성도보다는 기록으로서의 가치가 더 중요할 수도 있는 법이다. 해도해도 아무것도 되지 않을 때의 절망을 본다. 거리에서 자고 첨탑에 올라가고 머리를 밀고 곡기를 끊어도 법이란 것이 시스템이란 것이 꿈쩍도 하지 않고 되려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만 늘어날 때의 절망을 본다.

지난주에 동료들이랑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놀러 가다 잘못 되서 죽은 걸 국가 세금으로 보상금을 그렇게 많이 주냐, 수학 여행 한 번 잘 보냈다가 대박났다. 처음에 좀 슬프지만 지금쯤은 휘파람 불면서 놀러다닌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얘기를 한 양반이 21살 먹은 아들을 끔찍히 아끼는 양반이라 본인 아이라도 그렇겠냐고 물으니 자긴 그럴 것 같다고 했다. 머리로 들이 받을까 하다 참았는데, 그냥 들이 받을걸 그랬다.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기 보다는 인간의 자질이 부족한 사람이다. 어디서부터 잘못 됐는지 모르지만 아마 아주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할 터이다. 교육이란 게 중요한 이유다. 이 양반이랑 말을 섞을 수가 없다.

우리 엄마는 박근혜를 너무 좋아하는데, 11월 어느날 내가 전화했을 때, 곧 40살이 되는, 박근혜의 박 자도 듣기 싫어하는 나에게 날이 추워졌으니 따뜻한 물로 씻으란 말을 했다. 부모 자식이란 이런 것이다. 세월호는 정치색이나 이념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돈이 문제가 아닌 것이다. 가족의 죽음을 실시간으로 본다는 것을 내가 물에 잠기는 것 같은 기분을 나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나쁜 나라'는 국민 말고는 아무것도 믿을 수 없다는 희망적인 수식어를 붙였지만 보상금이 어쩌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는 정말 나쁜 나라다. 이 나라에서 무엇을 어찌할까.

어제 어머니 두 분이 오셔서 말씀을 하시는데 '국민'이란 단어를 많이 쓰셨다. 마음이 이팠다. 민주주의 국가에 사는 '시민'이 아니라 '국민'이란 단어를 쓰시는 보통 사람들에게 국가도 국민도 절망만을 강요한다.

사람은 사리분별을 할 줄 알아서 사람이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민주주의의 시민이라면 언제까지나 세월호를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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