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오늘은 눈이 올 거라고 생각한다
저녁 나절이면 무릎만큼 쌓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네가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오늘은 너를 기다리지 않을거라고 생각한다
모자 위로 쌓인 눈을 털어내고 텅빈 집에 들어서면
내 마음에 네 생각만 쌓일 것을 생각한다
이렇게 온종일 너만 생각한다
권태기
이유도 없이 네가 너무 예뻐서
비정상이란 소릴 들었는데
요즘은 이유도 없이 당신이 밉다
당신 목소리만 들어도 화가 난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내 속을 박박 갈아 먹는다
네 말이 입을 벌려 나를 잡아 먹는다
네 얼굴을 보는 일이 나를 겁박한다
밥도 설거지도 청소도 빨래도 다 귀찮다
세상을 잘못 살았을까
너를 사랑하지 않게 된 걸까
분을 못 견디고
당신 앞에서 독을 내뿜고
남들 앞에서 당신에게 면박을 준다
이런 못난 나를 보고도
괜히 큰소리치지 말라고 웃어넘기는 아내가 예쁘다
오늘밤에
우리 좀 더 적극적으로 잘래요?
그리움
내 그리움의 가로와 세로를 곱하면
9만 제곱미터, 삼만평짜리 들판이 된다
거기에 당신을 가두고
내 그리움의 높이만큼 벽을 쌓는다
내 사랑에 갇혀 꼼짝달싹 못할 당신을 바랐으나
당신은 지붕이 없는 내 울타리의 빈틈으로
자꾸만 삐져나오고
내 그리움으로 하늘까지는 가릴 수 없음이
내 안에 있지 않은 당신이
나는 서럽다
이 운명인지 필연인지 모를 일에
사랑인지 집착인지 모를 일에
손끝이 뭉게지도록
쉬지 않고 돌담만 쌓아 올리고 있다
날아갈까
돌아가신 할머니 방에는
잡동사니가 쌓이고
내 방에는 버리지 못한 책이며
옷가지들만 쌓인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내 방을 퇴적암 같다고 놀리고
더는 새로울 것이 없는 방에서
오래된 친구와 술을 마신다
술병이 쌓이고
빈 그릇이 쌓이고
추억이 쌓인다
멈추지 않는 시간까지도
모두 쌓이는데
10년을 쌓아온 사랑만은
날개도 달지 않고 날아갔다
나에게만은 대담했던 너
내 안의 작은새여
잘했다고 떠들어 봐야
결국은 나를 겹겹이 감싸주던
널 찾고 있다
네 외로움을 모르고 너를 만났다
미안함은 계속 쌓여가고
무거워진 나는
어떻게 너에게 날아갈까
해장침을 맞아가면서도 마신다
사랑
보일러 한 번 안 돌리고
소한 추위를 맞아도
온수매트 위에
납작 엎드려서
서로 깍지를 끼고 자도
자고 일어난 아침이면
수족냉증이라
이 세상 사람 것 같지 않던
네 차가운 손과 발에
온기가 도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