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2015/12/18 | 3 ARTICLE FOUND

  1. 2015.12.18 20151218 - 어쩌다 하나씩
  2. 2015.12.18 20151218 - 어쩌다 하나씩
  3. 2015.12.18 20151218 - 어쩌다 하나씩

고구마 밭

새벽에 혼자 고구마 밭을 둘러본다
태양이 안개를 지우지 않은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솔직한 시간이다
멧돼지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와
고라니가 뜯어 먹은 흔적을 본다
그래 너희도 먹고 살아야지
내가 늙어가는 만큼 자라나는 잡초를 본다
그래 너희들도 살아야지
그러니 그냥 둬야지 어쩌겠나
밭에 일하기 싫은 사람
밭 골만 헤아린다는데
밭이웃이 좋아야
한 번 갈 걸 두 번 간다는데
이웃도 없이 외떨어진 밭에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우두커니 섰다
항상 그날이 그날인 사람
그래서 참 좋은 사람이고 싶다
모든 것에 솔직한 지금처럼 살고 싶다
AND

해고통지서

낮부터 술에 취한 아버지의 언성이 높다
아버지는 어제 해고통지서를 받았다
저녁에 비틀거리며 돌아온 동생이 투덜거린다
곧 짤릴 것 같다고 한다
밤이 오고
나는 어둠을 쫓는 고양이 마냥
조용히 집을 나와 강가를 걷는다
달도 뜨지 않은 어둠
하늘도 강물도 죽음처럼 고요하지만
수 많은 해고통지서들은 불을 밝힌 집집마다
유령이 되어 떠돌고 있을 것이다
나는 길을 잃은 고양이에게 헛 발길질을 하고
찢어버린 해고통지서를 강물에 뿌린다
검은 강물이 더 짙은 어둠 속으로 흘러간다
AND

겨울, 오후 네 시

아침까지 마시고
술이 깬 오후
마음속이 명정하다
얼어붙은 호수처럼
텅빈 초등학교 운동장의 빈 그네처럼
폭풍이 지나간 거리처럼 차분히 가라앉는다
세상에 혼자 남겨진듯한 고요
이 고요를 뿌리칠 수가 없다
모질게 당신을 내쳤지만
술은 내칠 수 없다
안경점에 가서 안경을 바로 잡는다
아저씨는 괜찮은데, 라고 하면서도
안경테를 이리저리 만진다
비뚤어진 건 안경이 아니라
지금 내 마음이라는 걸 안다
안경점의 텅빈 어항안에 물레방아만 돌아간다
단골 편의점에 들른다
알바생이 나한테 말도 안 하고 그만뒀다
배신감 속에서도
컵라면 면발이 차곡차곡 뱃속에 쌓인다
집에 가는 길
멀리 하늘 너머로 오늘이 넘어간다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