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

내년이면 체가 죽은 나이를 산다
별일 없으면 다음달에 우리 나이로 마흔이 된다
빌어먹을 한국 나이
빌어먹을 빠른 생일
나는,
지금까지는 형이었지만
곧 친구가 되는 그처럼
의기롭게 죽지도 못하고
역사에 이름 한 방울 남기지 못하고
의사 면허 같은 것도 하나 없고
훌륭한 일기를 쓰지도 못하고
떠돌이도 되지 못한 채
나이 먹을 수록 점점 구태의연해 지기만 한다
뻔한 말, 뻔한 사랑, 뻔한 돈, 뻔한 이기심
얄팍한 자존심과 더 얄팍한 애국심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오늘을 위해 한 일이 없으니 뭐라도 하자는 심정으로
널 품고 나니 세상이 감옥 같다는 핑계로
술을 고되게 먹는다
세상 살며 무리하는 법이 없는데
술 마실 때만 무리한다
설탕이 빠진 밀크 커피를 뽑아내는 커피 자판기 마냥
뭔가를 놓치고 있다
설탕을 채우던 자판기 아줌마가
젊은 사람이 안됐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커피 설탕 프림이 모두 들어간 밀크 커피를 한 잔 뽑아준다
고맙다고 구태의연한 인사를 날리고
담배를 입에 물어본다
커피와 담배,
이 뻔할 뻔 자같은 뻔뻔함이여
사주가 똑같은 인생도 갈라지는 판이니
내가 그처럼 될 순 없다
이유 없이 사라져도 괜찮은 것이 있다
그게 나는 아니길 바라며
오늘도 내일까지 마셔야겠다
이런 마음을 먹는 내가 부끄럽고
그에게 미안하다
그가 나를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를 아는 것이 내 죄다
그래도 내년에 죽고 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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