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분류 전체보기 | 1820 ARTICLE FOUND

  1. 2008.02.08 할머니
  2. 2008.02.04 한국에
  3. 2008.01.17 한국 도착! 2
  4. 2008.01.08 ascensor 2
  5. 2008.01.04 발빠라이소
  6. 2007.12.04 타고르의 시가 떠오른 바닷가....
  7. 2007.11.28 Ushuaia 2
  8. 2007.11.17 부에노스아이레스 BsAs 4
  9. 2007.11.03 자 이제 떠나는구나
  10. 2007.11.01 내가 생각하는 것은 - 백석 -
  11. 2007.11.01 어제 마신 술이
  12. 2007.10.27 한국시리즈
  13. 2007.10.18 미셸 우엘벡 - 투쟁 영역의 확장 1
  14. 2007.10.16 이제 날씨는
  15. 2007.10.13 한강 불꽃축제
  16. 2007.10.12 레밍을 만났다.
  17. 2007.10.02 오늘은
  18. 2007.09.23 춘분이다.
  19. 2007.09.18 회사에
  20. 2007.09.17 남현이
  21. 2007.09.13 정리를 조금 해 보자 2
  22. 2007.09.06 아침부터
  23. 2007.09.03 20070903 아침
  24. 2007.08.30 파타고니아 특급열차
  25. 2007.08.28 만원 버스
  26. 2007.08.28 이런~~ 1
  27. 2007.08.27 처서도 지나고
  28. 2007.08.24 20051208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아니 에르노 1
  29. 2007.08.24 한밤중에 -진은영-
  30. 2007.08.24 20051109 벌판이었을 때가 더 좋았는데...

할머니

그때그때 2008. 2. 8. 10:42

보러 시골에 왔다. 근 2년만인데, 그 2년이란 시간동안 병세는 더 악화하여 이젠 나를 아예 못 알아보신다. 어젯밤에 할머니 옆에 누워서 할머니 손을 잡으니 내 손을 꼭 잡으신다. 누군지 알아보지도 못하는 사람의 손이라도 잡고싶은 것이 지금 할머니의 마음일까? 생각들이 스쳐간다.

명절에는 친척들이 모인다. 뉴스에서는 가족과 함께 하는 훈훈한 명절이니 하면서 머릿기사로 내보낸다. 이번 설에는 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내려왔지만 여러사람들에게(특별히 음식 준비 하는사람들에게는 더욱) 명절이란 피곤하기만 한 것이다.

명절 얘기와는 별도로 가족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볼 계기가 있었는데, 어제 집을 떠나는데 엄마가 하는 말이 추우니까 옷을 더 입고 가라는 것이었다. 사실 차안에서는 추울일이 없기 때문에 괜찮다고 살짝 짜증을 냈는데, 엄마가 가족이니까 챙겨주지 누가 챙겨주냐 왜 역정을 내느냐고 한 마디 했다.  역시 사랑으로 엮인다는 건 그런 사소한 걱정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way가 춥다고 자주 챙겨주던 멕시코 무장 해방군 목토시 같은 것? 나는 누군가에게 무엇을 챙겨주었을까? 괜히 쓸쓸하기만 하다.

암튼 이래저래 쉽지만은 않은 시절이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나아가야 할 시간들이다.

AND

한국에

그때그때 2008. 2. 4. 19:07
돌아온지 20일도 안됐건만, 너무나 자연스럽게 30년째 계속 살고 있는 느낌이 든다.
새로운 곳에서 일을 시작한지 일주일 밖에 안됐건만 1년 넘게 일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시간이란게 그렇다. 공간도 마찬가지겠지만 시간은 특별히 더 머릿속의 영향을 받는다.
시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새로운 사람들을 줄줄이 만났고, 고교동창도 불알친구들도 만났다. 다들 잘 살고 있어서 다행이야!
디지털스토리텔링과 3D웹 기술에 관한 꽤 방대한 분량의 텍스트를 읽었다. 그 기간동안 책은 한 권도
못 읽었고(안 읽었을지도) 뭔가 내 마음에 드는 생각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일도 없었다.(어쩌면 이것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일텐데......)

그냥 조금 들떠 있는 것 같다.
새해 복 많이 받고 차분하게 가라 앉히자!
지후를 보면 진정이 될지도... 그래서 당신과 나는...... 적어도 나에게 당신은.... 어쩔수가......
AND

한국 도착!

그때그때 2008. 1. 17. 22:22

 비행기 결항으로 브라질의 한 호텔에서 내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거라고는 한국 운전면허증 한 장만 갖고서 불안한 하룻밤을 보내고 남아공에 도착했더랬다. 대기시간에 꽤 길어서 중간에 배가 고팠지만 한국 아저씨를 돕는데 가진 달러를 다 쓰는 바람에 그냥 버티고 있었다. 게이트의 한 구석 자리에 공항 직원으로 보이는 흑인 아저씨가 한가하게 앉아 있고 그 옆에는 신문들이 놓여 있길래... '혹시 이 신문 네 거니?' 하고 물어볼까 하다가... 그냥 안 물어보고 살짝 가져와서 건너편 자리에서 스도쿠를 풀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배가 아파서 화장실을 찾아서 한참을 걸었는데, 뒤에서 누가 부른다. 신문 옆에 앉아 있던 아저씨다.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길래 자세히 들어보니 '너 내 신문 가지고 가서 읽다가 아예 자리를 옮기려고 하냐고, 너 도둑이라고.. 자기네 보스랑 상담 좀 해봐야겠다고, 체포될지도 모른다'고 웃으면서 얘기한다. 나도 웃으면서 '몰랐다고'했다.(마음속은 약간 울고 있었을까? ㅎㅎ) 암튼 아까의 그 자리로 다시 이동하니 보스라고 불리는 아저씨랑 신문 주인이 자기 시스터라고 부르는 언니가 노가리를 까고 있다. 다시 한 번 상황을 설명하고 미안하다고 했더니... 자기 시스터 배고프다고 뭣 좀 사달란다. 그래서 한국돈 밖에 없다고 설명하니, 살짝 체념한 얼굴로 알았다고 신문 보려면 여기서 보고 가져가지 말라고 한다. 배고픈 언니는 밥 먹으러 가는지 가버리고 뉴페이스의 아저씨가 잠시후에 다시 등장했다. 내가 '너네 무슨일 하니?' 하니까 공항 보안 직원이라고 나 같은 애들 잡아간다고 농을 친다. 그러더니 새로온 아저씨가 자기 목 마르다고 뭣 좀 사달란다.(뭔가 사주는 사람이 많았던가?) 그래서 다시 한 번 돈 없다고 설명 했더니 이번에는 100엔이 달러로 얼마냐고 묻더니 인도돈 500짜리를 여러장 꺼내서 이건 얼마냐고 묻는다. (어딘가에서 겟 했다고 하는데, 설마 훔친 건 아니겠지?) 간디 얼굴이 그려져 있길래 '잘은 모르지만 꽤 될 것 같으니 소중히 간직하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 같이 노가리 까고 놀았다.(맙소사 내가 흑인 세 명이랑 노가리를 까다니..... 그네들이 내 말 잘 못 알아들으면 노트에 단어를 적어 줬다. ^^;) 목 마르다고 했던 아저씨가 남아공 오면 큰일 난다고 '지금은 공항이라서 괜찮은데, 공항을 나가는 순간 돈 다 뺐기고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고 무서운 눈을 하고 흑인 특유의 몸짓으로 칼로 베이는 시늉이랑 공항 바깥쪽 동네를 구체적으로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설명해줬다. 그러니까 나머지 두명이 아니라고 월드컵 때 놀러오란다.(신문에서 82세 할머니가 창문깨고 침입한 사람한테 강간 당해서 병원에 실려간 기사 읽었는데.... -_-;) 암튼, 잘 인사하고 헤어졌다.

 결론은 남아공 공항에서 재미있었다. 덩치 있는 흑인은 약간 무섭다. 요하네스버그가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도시라는 사실을 알았다.

AND

ascensor

그때그때 2008. 1. 8. 02:43

  발빠라이소는 45개의 작은 산 들(몇개는 언덕들...)에 수 많은 집들이 흥성흥성하니 모여있는 도시다. 뭐 동네 예쁜거야 말로 다 못하지만....... 높은 산길을 오르락 내리락 하려면 다리도 아프고 무척 힘들었을 것이기 때문에(물론 지금은   꼭대기까지 차로 갈 수 있게 되어 있고....언덕에 차들이 줄지어서 주차한 모습을 이 언덕 저 언덕에서 볼 수 있다.) 19세기 후반의 궁극의 기술력(?)으로 도드래 세 개를 이용해서 한쪽이 올라가면 한쪽은 내려오는 아쎈쏘르라는 경사진 엘리베이터를 만들었다. 그림으로 보면 쉽겠지만 말로 쉽게 설명하자면 엘리베이터 같은 곳에 사람들이 타면 에스칼레이터 각도로 올라간다.

 아무튼 이 아쏀소르란 것이 발빠라이소에는 15개 정도 있는데, 다 타보려던 당초의 계획은 수리중인 것도 있고 운행 시간이 안 맞은 것도 있어서 무산되었지만..... 10일이나 이 곳에 있다보니 오르락 내리락 할 때 습관적으로 타고 있다. 가격은 한국돈 200원에서 500원 사이...(관광객들 많이 오는 쪽  아센쏘르가 비싸다.) 무공해, 아날로그...... 뭐 이런건 역시나 내 주요 관심 대상이 아니고....... 그 운행의 행태가 재미있다.

 아랫 언덕과 윗 언덕에 각각 사무실이 있고 그 사무실에 각각 한 분씩 일하는 사람이 있다. 그 한 분들이 보통 노인네들이다. 그분들이 하는 일이란 것이 아래쪽 언덕에서는 돈을 받고 회전문을(한국에서 지하철 표 집어넣고 돌아가는 문 모양) 여는 페달을 밟고 승객들이 다 차면 아쎈쏘르의 문(자동문인 곳도 한 곳 있다.) 을 닫고 위쪽 사무실에 신호를 주는 것... 내려온 승객들 문 열어주기 정도고 위쪽에서는 돈을 안 받는 대신 기계 작동과 문 열어주는 일을 한다. 텔레비젼이 있는 곳도 있지만 보통은 라디오 틀어 놓고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앉아 계시다가(노래를 가수 뺨치게 부르는 약간 중년의 언니도 한 번 봤다.) 손님들이 아쎈을 타러 오면 노인의 걸음걸이로 천천히 사무실에서 나와서 돈을 받고 승객들이 다 들어오면 아쎈의 문을 천천히 열어주고 승객들이 다 타면, 좀 더 태울까 아니면 그냥 작동 시킬까를 고민하다가 커다란 스위치를 작동해서 기계를 움직이고 멈추는 일을 하는........ 느리지만 느리지 않은 움직임이 좋다.

 그냥 발빠라이소가 좋다....... 다만 칠레 담배 값은 한국과 유사동일하다.

AND

발빠라이소

그때그때 2008. 1. 4. 00:53

에서 새해를 맞았다. 새해 불꽃놀이 때문에 31일 밤의 숙박비는 엄청난 바가지가 있다. (뭐 이런 경우가.....) 발빠라이소는 참 예쁘다. 결국 남는 건 사진이라는 얘기도 있고(카메라 잃어버렸는데....ㅎㅎ), 결국 남는 건 자연이라는 얘기도 있지만.....(인상적인 하늘들...이라고 적기에는 너무 멋진 걸 많이 봐 버렸나?) 결국 내게 가장 깊이 남는 건 사람인 것 같다. 혼자서 혼자서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사람들 속에서 안심하고 사람이 만든 것들에 감탄하고 산과 바다 모양을 빼고는 모두 사람이 만든 이 도시에서(그렇다면 역시 조화가 중요한가?) 여행을 마무리 짓고 새해의 시작에 맞춘 새로운 마음가짐을(역시 새해에는 계획을 세워야....) 머릿속에 집어 넣는다.

올해는 어떻게든 돈을 많이 벌자. 해마다 한 가지씩 단순한 계획을 세워서 실천하는 것 좋은 것 같다. 2006, 2007년에는 일을 하자 였는데, 일을 하긴 했지만 뭔가 성에 차질 않았다. 올해는 좀 더 바지런하고 눈돌릴 틈 없는 내가 되자.

오늘은 발빠라이소에 구름이 잔뜩 끼었다. 이 동네는 뭔들 어떻든 예쁘다. 의식적으로 길바닥에 담배 꽁초를 버리면서 버려진 꽁초도 예쁘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예쁘다.

10일쯤 후에는 돌아가는 비행기를 탄다. 올해는 정말 모든일이 괜찮을 것 같다. 다  여행덕분이다. 평생 여행 안 할 것 같은 사람도 한 번 쯤 이런 여행 괜찮은 것 같다.

  잘 먹고 잘 살아 보자!   

AND

우수아이아에 대해서 한 가지 더 기억해둔다. 남쪽 끝의 여름해는 질 줄을 모른다. 자정이 가까워져 밤이 찾아와도 저 바다의 끝은 여전히 노랗게 빛나고 있다가 별이 떠오를 틈도 주지 않고 해가 진 편에서 멀지 않은 하늘에서 다시 떠오른다. 천천히 해가 지면서 하늘과 구름이 각각 분홍빛과 푸른빛과 그 중간의 색으로 변하는 광경을 봤다. 사진을 못 올리니 참 아쉽지만 그래도 나는 봤다.

그리고 푼타톰보에 가서 마젤란 펭귄 50만 마리가 산다는 곳을 구경했다. 그곳이야 말로 세상끝의 바닷가였다. 나는 봤다. 타고르의 시를 떠올리면서 

On the seashore of endless worlds children meet.
The infinite sky is motionless overhead and the restless water is boisterous.
On the seashore of endless worlds children meet with shouts and dances.

뭐 이렇게 시작하는 시인데... 아이들을 펭귄으로 바꾸면 되는 그런 멋진 곳이었다. 작년에는 고갱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바다를 보았었는데...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은 늘어가도 나는 그대로다. 어쩌면 내가 기분 나빠하는 이런 점이 좋은 일인지도 모른다.

그대로의 나....

AND

Ushuaia

그때그때 2007. 11. 28. 07:50

우수아이아, the southernmost city in the world
도착했다. 어제. 어제는 일찍 자고 오늘은 일찍 일어나서 동네 구경을 했다. 뭐든 세상끝을 붙이면 되는 동네라서 그만큼 장사해먹기 좋은 동네다. 세상끝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도 무척 많다. 아르헨에 와서 처음으로 한국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일단 차가 엄청 많고, 그 차들 중에 많은 수가 길가에 주차해있다. 써 놓고 보니 한국이랑 비슷한 건 하나 밖에 없구나... 아무튼 이곳은 남극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다. - 가장 가까운 마을은 칠레에 있다고 한다. 바다가 있고 언덕위에 마을이 있다는 점은 여느 항구도시들과 비슷한 모양이지만 대신 그 언덕뒤로는 눈 덮인 산들이 주루룩 펼쳐져있다. 내일은 세상 끝의 기차를 탄다. 면세점과 더불어서 이곳에서 붙이는 세상끝이라는 수식어가 가장 정확하게 쓰인 것을 경험하는구나....

여러가지 면에서  way에게 참 고맙다. 오늘은 덕분에 머리를 돌벽에 세게 부딪쳐서 머리가 짱구가 되버렸다.

파타고니아쪽으로 내려온 다음 부터는 광막한 풍경들을 많이 본다. 하지만 가장 멋진건 바람따라 솜사탕 뽑히듯이 늘어나는 구름과 새처럼 빠르게 달리기하는 구름때들....

AND

 way와의 재회, 말끔히 날아간 불안, 시내 구경, 장시간의 아주 안락한 버스, 빤초라는 사람, 외국에 나와서 혼자 살기, 비오는 날의 이과수 트림처럼 연기와 물줄기를 다시 뱉어내는 악마의 목구멍, 산 이그나시오 미니, 그리고 다시 부에노스........

 일단 가장 좋은 점은 불안은 없다. 가끔 어떻게 살까 하는 오래된 불안이 나를 감싸올때면 way가 제지해 주고 이곳의 하늘이 한 번 더 나를 잡아준다. 그 동안 쌓아온 악덕들을 지울수는 없다는 걸 알고 떠난 것이지만 지울수는 없어도 뒤로 할수는 있을 것 같다. 고구미군과 울진에 가길 정말 잘 했다.

 백조자리에 이어서 10년만에 오리온 자리를 배웠다. 어쨋든 자연으로 살 수는 없다는 건 이미이미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다들 엉겨붙어 살다가 떠나오는 일들을 반복하는 것이겠지!

 모든 것이 닿아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AND

 나를 아는 사람이 한 사람 뿐인 그곳에는 평화가 가득하길

 진심을 시작할 수 있는 바탕이 되어주길

 
AND

  내가 생각하는 것은    -백석-

 밖은 봄철날 따디기의 누굿하니 푹석한 밤이다
 거리에는 사람도 많이 나서 흥성흥성 할 것이다
 어쩐지 이 사람들과 친하니 싸다니고 싶은 밤이다

 그렇것만 나는 하이얀 자리 위에서 마른 팔뚝의
 샛파란 핏대를 바라보며 나는 가난한 아버지를 가진 것과
 내가오래 그려오든 처녀가 시집을 간 것과
 그렇게도 살틀하든 동무가 나를 버린 일을 생각한다

 또 내가 아는 그 몸이 성하고 돈도 있는 사람들이
 즐거이 술을 먹으려 다닐 것과
 내 손에는 신간서(新刊書) 하나도 없는 것과
 그리고 그 '아서라 세상사(世上事)' 라도 들을
 유성기도 없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내 눈가를 내 가슴가를
 뜨겁게 하는 것도 생각한다



'란'이라는 처녀가 그 처녀를 소개해 준 친구에게 시집을 간 일화가 있다고 한다. 백석 시집을 가끔 읽으면 기분이 좋다. 울지는 못하겠고 슬프기는 한데.... 그래서 머릿속의 슬픈 생각들이 자신을 울게 할 것을 생각만하는 마음...
나는 이런 마음이 좋다. 이런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는 백석도 좋다. 흰 바람벽에 글자들이 지나가는 것을 시로 써 준 백석!

 2007년 2월 24일의 노트에서~~
AND

어제 마신 술이

그때그때 2007. 11. 1. 22:14
오후 8시에 깼다. 당초에는 화섭이 사진 좀 보려고 했었는데, 이성준이 카페에서 일 하고 있다고 할 때,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것을 느꼈고, 김동현군을 예상했으나 김대중군이었다. 직업으로 영화를 하는 걸 포기하고 나니 할 게 많다는 얘기를 대중이형에게 듣고 돈이 있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셋이 얘기하고(요즘 동생에게 매일 돈 얘기를 듣는다. 손으로 돈 모양을 만들어서 쫙쫙 땡겨야 한다는 등의....) 사진을 보러 갔으나 어두웠고, 자세히 볼 경황은 없었다. 순대랑 소주가 먹고 싶었는데, 순대집을 못 찾아서 통닭에 소주로 정하고 고구미군이 합류했다. 혼자 있는줄 알았는데, 김승원 군도 같이 있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데다가 뻘건 신발을 보고 새빨갛게 놀랐다. 전맹도 오랜만에 만났다. 그리고는 마셔버렸다.

이성준과 비슷한 시간에 눈을 뜨고, 둘이 거의 동시에 어제 왜 그렇게 마셨을까 라며 한탄을 했다. 말이 많았던 것에 대해서 둘다 후회 하고 있는 것이리라. 재미있게도..................아마도 그냥 불안해서~~ 불안이란 단어는 모든 것의 이유로 쉽고도 적합하다. 이성준의 침대에 누워서 하늘을 봤는데, 묘하게 현실감이 없었다. 낮은 구름들~~ 집으로 오는 버스에서 현실감이 없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니 술이 덜 깬 머릿속도 현실감을 잃고 몽롱한 상태로 빠져들었다. 그 사이로 생각들이, 불안들이 흘러 들어와서 물컹거렸다. 그건 마치 연체동물이 머릿속에서 미끈거리면서 머릿속을 휘젓는 기분. 정말 아주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

어느 즐거운 저녁, 미래는 과거라 불리고, 그때 우리는 돌아서서 자신의 청춘을 본다 -아라공-

어제는 어느 즐거운 저녁이었을까? 자꾸만 돌아서서 청춘을 보는 것 같은 청춘의 내 모습을 본다. 대중이 형은 지금 마음에 20살로 돌아가고 싶다고 마흔이 되면 또 비슷한 기분일 것 같다고 했지만 나는 그냥 지금이 지금대로 좋다. 단지 그것이 내가 편하기 위한 합리화가 아니길........ 그저 살아갈 뿐! 떠나기 전에 내년 계획을 세웠다. 돈을 많이 벌자. 지난 계획들을 보면, 꼭 일을 하자였는데, 일을 해보니 돈을 많이 벌자로 바뀐 것 같다. 모처럼 실행하기 어려운 계획을 세웠구나....... 북한에 가서 라디오 꼭 하고 싶은데....... 라디오 일을 해보지 못했다는 문제도 있지만 스스로의 수양이 부족한 점이 더 마음에 걸린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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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그때그때 2007. 10. 27. 06:14
 4차전 중계 시작 때, 보름달을 예쁘고 커다랗게 그리고 오랫동안 잡아줬다. 점점 작아진 달은 화면의 오른쪽 구석으로 쳐박혀서도 한참동안을 머물렀다. 출근길에 동생이 따라나왔다. 대문 밖으로 나오자 마자 둥그런 달이 집 앞의 노인회관 건물 위로 둥둥 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꽤나 커다란 얼굴을 하고서~~ 요즘 유행하는 10배 이상 광학줌 디카가 있으면 좋겠다고 동생에게 골목을 걸으면서 얘기했더니, TV에서 본 것 처럼 커다랗게 찍을 수 있냐고 묻길래 더 크게도 찍을 수 있다고 했다니 토끼도 보이냐고 해서 둘이 같이 웃었다. 아무튼 꽤 커다란 달이었다. 저녁 10시쯤 사무실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며 하늘을 보니 아까 그렇게 커 보였던 달이 작아져있었다. 새벽 1시에 다시 하늘을 보니 달은 어딘가로 넘어가서 보이질 않고(어느 아파트에 가렸겠지...) 국회쪽에 보이는 북극성(내가 확실히 아는 유일한 별... 서울에선 보통 북극성만 보인다.)을 필두로 제법 많은 별들이 흔히들 생각하는 별의 모양을 하고 하늘에 둥둥 떠 있었다. 별들이 갑자기 지구랑 가까워진걸까? 지구가 마음대로 별들을 끌어들인 밤이 오늘 밤이구나 생각하니 기분이 썩 괜찮았다. 북극성에서 시작해서 고개를 젖히면서 별들을 쓱 봤는데, 백조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way가 10년전에 알려준 백조자리가.... 정확히는 9년 11개월전에 알려준.......... 가끔 11월이면 하늘을 보고 찾아내던 그 백조자리가..............

 꼭 그것 때문은 아니었지만 모처럼 잠들지 않은 밤을 보내면서 내가 뭔가 부정적인 말을 아주 부정적인 얼굴로 비꼬는 듯한 말투로 누군가에게 했을때,(내가 가장 잘 할수 있는 일인것 같다. 하고 많은 일들 중에...) 그 사람이 격정적으로 자기가 생각하는 가치에 대해서 내게 알려주면 나는 그 얘기를 차분하게 잘 들어줄텐데.....하는 생각을 했다.

 추구하는게 없으면 그냥 살 수 있다. 할 얘기가 없으니 영화는 포기한다랑 비슷한 논리로 생각하고 있는 가치가 없으니 가치에 대해서 말할 순 없고 들어만 주고 싶은걸까? 이미 있는 것들이 다 너무나 두렵다. 어제 아침에는 고등학생때 이후 처음으로 윤동주의 시를 읽었다.(그것도 신문에서) 눈물을 글썽이던 나를 누군가 보았다면 날 위로해주었을까? 그저 손을 잡아줘...라던가 옆에 있기만 해줘... 라고 말하는 나는 너무나 안타깝다. 위로도 아닌 위로 생각뿐인 생각. 그러니 나를 사랑해 줘! 거짓으로라도~~

 그저 불면의 낮과 밤에 지쳐서 조금 예민해진 것이어서, 언제나처럼 옆에 있는 당신이 그저 날 그저 편히 잠들 수 있게 해줄 수 있다면 그저 좋겠다. 가만히 있는 가장 강한 사랑....... 아 머릿속이 물끈거린다.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

 어두운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 윤동주 '또 다른 고향'의 처음 -
AND

 어려운 점은 바로 규칙에 따라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치 않다는 데 있다. 결국 당신은 규칙에 따라 살게 된다(이따금, 정확하게, 그것도 지나치리만큼 정확하게 그러면서도 총괄적으로 그렇게 된다). 납세 고지서들은 납입 기한 안에 내야 한다. 청구서들도 제 날짜에 맞춰서 지불해야 한다. 당신은 신분증 없이는 감히 돌아다니지도 못한다(그뿐인가, 신용 카드 전용의 작은 주머니까지 마련해 가지고 다닌다!.....).
 그렇지만 당신은 친구가 없다.

 규칙은 복잡하고 형태도 다양하다. 직장 근무 외에 꼭 필요한 일은 구매 행위와 자동 인출기에서 돈을 빼내는 일이다(그리고 인출기 앞에서는 줄을 서야 한다). 특히 당신 삶의 다양한 측면들을 관리하는 기관들이 요구하는 온갖 규칙들이 있다. 게다가 당신은 병이 날 수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비용이 들고 새로운 수속절차가 필요해진다.
 한편, 자유 시간이 남아 있다. 무엇을 할까? 자유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까? 타인을 위한 봉사 활동에 쓸 것인가? 하지만 타인은 당신에게 조금도 관심이 없다. 음악을 들을까? 그것도 한 방법이지만, 나이가 들어 감에 따라 음악을 들어도 별반 감동을 못 느낀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DIY 제품을 사다가 만드는 취미를 갖는 것도 자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한 방법이 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어떤 것도 점점 더 자주 나타나는 이런 순간들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말하자면 당신의 절대 고독, 우주적 공허감, 당신의 존재가 고통스럽고 결정적인 재앙에 다가가고 있다는 예감이 현실의 고통 속으로 당신을 몰아 넣으려고 몰려오고 있는 순간을.
 그렇지만 당신은 여전히 죽을 생각은 없다. -15page-

 결국 우리 사회에서는 분명히 섹스도 차별화의 또 다른 체계를 보여 준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돈과는 전혀 무관한 문제이다. 그것은 또한 냉혹한 차별 체계인 것이다. 이 두 가지 체계의 효과는 엄밀히 똑같다. 무제한적인 경제 자유주의와 마찬가지로 섹스의 자유주의는 <절대 빈곤> 현상을 낳는다. 어떤 이들은 매일 사랑을 하는데, 어떤 이들은 평생에 대여섯 번뿐이다. 어떤 이들은 열댓 명의 여자들과 사랑을 나누는데, 어떤 이들에게는 여자가 한 명도 없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시장의 법칙>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해고가 금지되어 있는 어떤 경제 체계에서는, 각자 어느 정도 자기 자리를 찾는 데 성공한다. 간통이 금지된 섹스 체계에서, 각자는 어느 정도 자기 침실 파트너를 찾는 데 성공한다. 완전히 자유로운 경제 체계에서, 어떤 이들은 정말로 다양하고 짜릿한 성생활을 즐기지만, 다른 이들은 자위 행위와 외로움 속에 늙어 간다. 자유주의 경제는 투쟁 영역의 확장이다. 그 사회의 모든 연령층, 각계 각층으로의 확장이다. 마찬가지로 자유주의 섹스는 투쟁 영역의 확장이다. 그 사회의 모든 연령층과 각계 각층으로 자신의 투쟁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다. -11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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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날씨는

그때그때 2007. 10. 16. 23:44
완연한 가을을 지나 쌀쌀하기까지 한데, 하늘은 아직도 낮다. 이제 높은 하늘의 가을은 더 이상 없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는 날들의 와중에 오늘 오전에는 경계가 희미한 커다란 구름이 국회의사당 쪽 하늘에 떠 있었다. 그 구름이 점점 경계를 찾기 시작하더니 오후 늦게는 아름다운 경계를 만들었다.(뿌연 서울 하늘때문에 아름다움이 약간 가시긴 했다만) 그러던 중에 밤이 오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청국장을 시켜놓고 늘 하던대로 담배를 하나 물고 거리를 어슬렁 거리고 있었는데, 아파트로 올라가는 계단에 땅에서부터 세번째 칸 구석에 내 주먹 반 만한 태어난지 일주일 쯤 되었을듯한 고양이를 발견했다. 잔뜩 웅크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랑 눈이 마주쳤는데, 경계의 눈빛을 보내길래 가까이 가지 않았다. 어미는 대체 어디에 간걸까? 먹이를 구하러 간걸까? 고양이를 지나쳤다가 담배꽁초를 버리고 다시 돌아오는 길에 다시 계단쪽을 봤다. 저 고양이 아마 곧 죽겠구나 라고 생각하니까 경계가 없는 구름만큼 슬퍼졌다. 경계를 가져보지도 못하고 사라지는구나~~ 아마 내가 근처에서 혼자 살았더라도 데려다가 키우지는 않았겠지만 태어나자마자 어미도 없이 계단 구석에서 눈치를 보는 작은 고양이는 너무 슬프다.

그냥 기억해두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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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불꽃축제

그때그때 2007. 10. 13. 22:27
를 했다. 보러 가진 않았고, 사무실에 앉아서 상상을 했다. 불꽃이 가장 잘 보이는 한강변의 아파트 13층 정도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불꽃의 리듬에 맞춰서 느리고 경쾌한 일가족 살해 사건이 일어나는 장면을 떠올렸다. 물론 소리가 들어가면 안 좋다. 어떤 영화의 오프닝으로 아주 아름다울 것 같다. 올해 미스테리를 너무 많이 읽었나?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문장에서 택배 아저씨와 조수가 나오는 아파트 살해사건을 읽었는데, 그 영향도 조금은 있는 것 같다.

원래는 화요일에 그만둔다는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새로 오신분도 있고 왠지 껄끄럽기도 해서 미루고 미루다가 오늘에서야 했다. 어쩐지 식당에서 떨어진 서브반찬을 더 달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껄끄러움? 약간의 차이라면 식당의 반찬은 안 먹으면 그만이지만 오늘 한 얘기는 미루다가는 여러 사람 힘들고 나도 힘들어 진다는 것?

점심에 코코아 한잔, 커피 한잔을 마셨더니 가슴께가 또 텁텁하다. 앞으로는 카페인 음료와 밀가루 식사 모두 피해야겠다. 과일주스(내가 사랑하는)도 가급적 피해야겠다.

낮에 심심해서 다음주에 나갈 '첫사랑' 테잎을 넣고 미리 보고 있었는데, 다리를 다친 최수종이 목발에 화구들까지 챙겨서 혼자 집에 돌아오다가 넘어져 있는 것을 아버지 역할의 김인문씨가 보고 아들을 업고 집에 돌아오면서 네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난 좋다는 식의 대사를 치고 집에 돌아와서 최수종의 누나에게 네 애를 목욕시켜도 꼭 동생 데리러 갈 시간에 그랬어야 했냐고 네 자식 소중한 건 알고 하나 밖에 없는 동생 소중한 건 모르냐고 막 화를 내는 장면이 나왔는데, 정말 열연이었다. 눈물이 났다. 부모를 잃은 애들은 고아라고 하지만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는 특별한 호칭이 없다. 아마 너무 슬프기 때문에 그런 호칭조차 없으리라~~ 조소혜씨는 정말 잘 쓰는 작가였는데, 안타깝다.(올해 어딘가에서 이 얘기를 정말 많이 한다.)

3주 후면 한국에 없다. 이런 기분 처음이다. way가 없다면 불안하고 즐거운 여행이겠지만 way가 있어서 안정적이고 즐거운 여행일 것이다. 애초에 way가 없다면 떠날 생각을 안했을거다. 그렇다는 건 난 역시 안정을 추구하는 건가? 하면, 또 그런건 아니다! 나는 부조화 속의 조화(불안정 속의 안정)이 좋다. 하지만 군데군데 둘러보면 그런건 꿈에서나 가능한 일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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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밍을 만났다.

그때그때 2007. 10. 12. 16:25
 누굴 만나면 꼭 글을 쓰게된다. 사람들을 자주 만나지 않기 때문에 누굴 만나고 나면 그나마 생각을
좀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참 편한 자리였고, 늦게 나온건 아주 기분이 나빴지만 늦게
나오는 사람들은 앞으로 만나지 않거나 시간약속이 아닌 다른 약속에서 만나면 그만이다.

 세영이 결혼식 참관기를 들었는데, 영화쪽에 일이 없어서 많은 사람들이 놀고 있다는 얘기, 야동 얘기, SF얘기를
했고 존재에 대해서도 잠깐 얘기했다. 레밍이 최근에 클라크를 읽은 것 같아서 나도 클라크를 읽기로 했다. 오늘
도서관에 갔더니 읽지 않으려고 했던 '스페이스 오디세이'만 덩그러니 있어서 그냥 빌려버렸다. 나머지는 차차 읽자. 술 마시는데 레밍 아버님이 전화해서 아버님 하시는 일 관련해서 레밍에게 조언을 구했다. 흠~~ 아무튼 집안에서 역할을 해나가고 있달까... 나이도 있고 일도 안하고 있지만 레밍은 걱정이 안된다. 내 일이 아니라서 걱정안하는 그런게 아니라 결국은 행복하게 살 것 같다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어쨋든 레밍은 영화쪽에 그리고 감독이 되고 싶은 것 같다. 내가 중학생때 영화를 좋아했던건 '택시 드라이버'가 아주 재미있었던 탓도 있겠지만 영화를 하려는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고등학생때도 마찬가지다. 그저 남들이 안하는 일, 약간은 다른 삶 그런걸 원했다. 약간은 다른 삶은 어디에나 있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에 그리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기 때문에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영화쪽 진로를 포기해버렸다. 가끔은 약간의 미련도 머릿속을 멤돌지만 그냥 삶 속에 흔히 있는 미련의 양인걸로 봐서, 결국 지금 나는 잘 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정도의 합리화 내지는 위안은 싫지만 살아가는 자양분이 된다. ㅎㅎ

 같이 일하던 분이 갑자기 그만두는 바람에 6일간 2교대를 했다. 시끄러운 기계음에 취해서 조금씩 자고, 머리는 아프고, 24시간은 길었다. 아파트 경비아저씨들 대단하다. 경비와 수위의 차이는 뭘까? 암튼 대단하다.

 그래도 way가 기분이 좋은 상태이고 내가 전화하라고 메일 썼는데, 바로 보고 적절한 타이밍에 전화해줘서
기뻤다. 살갑지가 않다는 글의 여파일까? 레밍이 알파걸 얘기하면서 베타남 이야기를 했는데, 나야 물론 way만 좋다면 way의 베타남이 되고 싶지만(남한테 기대 사는 건 참 편한일이다. 쉬운 예로 고위 공무원의 아내로 사는 전업주부를 들수 있겠다.) 일단 알파걸은 몸이 완전 튼튼해야 해서 약한 way가 걱정이다. 내가 알파남이 된다면 way가 베타녀가 될 수 있을까? 일단 가정이 성립할 가능성이 아주 희박하다. 결국 어쩔수 없이(역시 우리는 어쩔수가 없나봐..... ㅎㅎ) 잘 어울려서 살 팔자인거다. 결국 베타남은 일인자의 특급 비서와 비슷한 존재일까? 약간은 다른지만 제대로된 베타남과 일인자의 특급비서가 된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인 것은 틀림없다. 땅을 파고 씨를 뿌리고 물을 줘서 작물이 열린다. 내가 지금 사는 것이 내가 원하는 땅을 파고 있는 것이길~~ 원치 않는 땅에 씨를 뿌리고 싶지는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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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때그때 2007. 10. 2. 21:38
 일단 적절한 타이밍에 전화가 와서 참 기뻤다. 좀 더 살가웠다면 더 기뻤겠지만 도대체가 way는 가끔만
살갑다. 정말 오랜만에 어쩌면 2년만일지도 모를만큼 오랜만에 목욕탕엘 갔다. 샴푸랑 때수건, 비누칠용, 수건,
면도기까지 바리바리 챙겨서 길을 나섰다. 밥 먹은지 얼마 되지도 않았었는데, 목욕탕으로 가는 복계도로에서
약간 이물감이라고 해야할지 어지러움이라고 해야할지.... 몽롱함을 느꼈다. 아주 진하게~~ 그건 뭐랄까...
아주 더운날 거리에서 목욕탕 냄새가 나는 거랑은 다른 몽롱함이었다. 탕에 잠깐 들어갔었는데 너무 어지럽고
눕고 싶어서 두개의 탕을 이어주는 경계에 드러누웠다. 딱 한 사람 사이즈의 폭이다. 관이랑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던 중 잠들었다. 몽롱함의 원인은 아무래도 수면부족이었다. 집에 오는 길에는 초코우유를 사 먹고 싶었는데
신제품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1700원 짜리 서울우유에서 나온 목장의 신선함이 어쩌구 하는 요구르트를 사
먹었다. 얼마에요? 물었을 때 1700원이라고 했지만 뭔가 불가항력적으로 2천원을 냈다. 왜였을까? 그때 난
천원짜리 한 장만 들고 있었는데..... 뭐 그렇게 간절히 먹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그리고 오늘은 야구를 두 게임 봤다. 한 게임은 MLB 내셔널리그 와일드카드 결정전... 몇 달 전에 양키즈 홈구장
의 바깥쪽 하늘이 참 멋있다고 생각한 이후에 오랜만에 콜로라도의 멋진 하늘을 봤다. 해발 1600미터, 쿠어스 필드..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 결국 콜로라도가 이겼다. 필라델피아도 그렇고 시즌 막판에 흐름을 타고 올라온 팀이
결국 월드시리즈에 우승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올해 야구를 별로 안 봐서 콜로라도 경기 오늘 처음으로 봤는데,
뭔가 좋은팀이었다. 내년에는 더 잘할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콜로라도가 지는 줄 알고 TV를 잠깐 껐었는데, 나중에 보니 극적으로 또 이겨버렸다. 나머지 한 게임은 일본 프로야구 센트럴리그 자이언츠와 스왈로우즈의
경기.... 이 경기는 마지막 10분 간만 봤는데, 극적으로 요미우리가 이기고 센트럴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도코돔의
관중들은 확실히 쿠어스 필드의 관중들 만큼 열광적이지는 않지만 그저 문화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어째서 사람들은 스포츠에 열광할까? 나도 꽤나 좋아한다. 고구미 군이 예전에 물은적 있었다. 금융이 중심인 세계가 이해가
안 가는 사람으로서 프로 스포츠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그런 요지의 질문이었는데, 운동은 눈에 보이고 몸을 쓰는 일이어서다... 라는 대답을 했었다.
 
 그러니까 뭐랄까 나는 이 체제가 마음에 안 드는게 아니다. 뭐랄까 조금만 더 균형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아니다 나는 이 자본주의가 마음에 안 드는거다. 아니다. 나는 그저 나아지고 있다. 나는 그저 내 마음이 편안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거다. 가슴 깊숙히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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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분이다.

그때그때 2007. 9. 23. 20:35
 음양의 기운이 같은 날, 내가 태어난 날, 내가 좋아하는 날이다. 밤과 낮의 길이가 같기 때문에 음양의 기운이

딱 반씩 지구에 영향을 주는 날이다. 출근길에 비가 한 방울씩(정말 한 방울씩) 떨어졌다. 난 비 맞는 걸 워낙

싫어한다. 자연스럽게 우산을 썼다. 버스에 타서 잠깐 든 생각은 이랬다.

 만약에 3초 마다 한방울씩 떨어지는 비를 한 시간동안 맞는다고 해도 사람이 젖지는 않을 것이다. 젖는다는 건

낙숫물이 바위에 구멍을 뚫는 것과는 아주 다른 차원의 것이니까. 내가 비를 맞는 걸 싫어해서 좀처럼 젖지 않는

사람이 되버린 걸까? 되버렸다면 비 맞는 건 언제부터 싫어했을까? 정말 쓸데없는 생각들이다.

 연휴에 출근하는 건 참 좋다.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원래는 웅성거려야 하는 바깥 사무실이기 때문에

휴일의 출근이 좋은 것이지 애초에 바깥 사무실이란게 존재하지도 않고 늘 혼자만 있어야 한대도 내가 좋아할까?

하는 생각을 해보니. 그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지만 아닌쪽이 더 세다. 어쨋든 나는 젖는 스타일도 아닌데,

원래는 웅성거려야 하는 바깥 사무실이 있는 쪽이 좋다. 지독한 모순이다. 아니 이건 모순도 아니고 자기기만도

아니다. 나는 보호가 안 되는 사람인걸까? 그것도 꼭 그렇지는 않은데... 그래서 삶은 흘러하고 존재들은

너풀거린다. 사방팔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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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그때그때 2007. 9. 18. 10:33
 내가 들어오고 얼마 안 지나서 대대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바뀌었다. 지금은 송출실에
같이 있는 사람들 빼 놓고 싹 바뀐 상태다.(어째 이런일이...) 그러면서 국장님이 두 분 들어오셨는데, 특집예능국장님이신 이국장님이 나를 좋게 봐 주신다. 사실 별로 뭔가 얘기를 나눈적도 없고 송출실 밖에 나갔다가 어쩌다가 마주치면 인사하는 정도인데, 아마 내 인상이나 여러가지가 마음에 드셨던 모양이신지 얼마전 우연히 여럿이 식사하는 자리에(난 혼자 먹고 있었는데...) 너 참 성실하고 인사도 잘하고 그런것 같다고 얘기하셨다. 사람이란 건 언제 어디서나 칭찬에 약하다.(난 그걸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좋은 점을 발견하는 취미가 있는 건지 아니면 그 취미가 먼저여서 사람들이 칭찬에 약하다는 사실을 악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좋은 얘기를 하는 버릇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국장님이 좋다. 국장님이라곤 하지만 특집쇼 프로그램들 연출을 직접 하신다. 대체적인 인상은 평송에는 좋은 분이지만 화나면 엄청 무서우실 것 같고 약간 마르신 몸에 젊어서는 운동 좀 하셨을 것 같다. 나도 처음 국장님을 봤을 때부터 그냥 호감이 있었다.(젊어서 운동 좀 하신 것 같은 몸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이란 건 어떻게든 알아본달까... 아무튼 그런 얘기를 쓰고 싶었다. 꼭 또래나 그런것이 아니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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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현이

그때그때 2007. 9. 17. 20:25

 남현이를 처음 만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 이때의 나는 뭐랄까 세상 물정 참 몰랐고, 여러가지 불만들은 지금보다 훨씬 많았던, 그리고 뭔가 부자연스러운 게 머릿속에 가득 차 있는 그런 고등학생이었다. 그때는 '세상사람들은 모두가 다 친구'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수업시간에 가끔 불평조로 툭툭 내뱉는 앞쪽에 앉아 있는 강남현이란 아이가 좋았다. 정확하진 않지만 대충의 내용은 "네가 맘에 든다. 앞으로 친하게 지내보자." 뭐 이런식으로 얘기를 시작했었다. 아마 학기가 시작하고 한 달쯤 후였을 것 같다.

 그런 남현이를 어제 또 만났다. 아침에 부재중 전화가 왔었길래 오후에 전화했더니, 전화로 회사 그만두고 옮기기로 한 사실을 얘기해 준다.(물론 아무한테도 얘기 안했다는 사실까지 덧 붙여서....) 집에 있으면 아버지가 또 술 잔뜩 드시고 오실 것 같고 직장을 옮긴다는 건 꽤나 심란한 일인 걸 알기에 비도 오는데 소주나 한 잔 먹자고 해서 내가 온수역 쪽으로 갔다.

 구로구의 한쪽 끝에서 부천과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궁동, 온수동 쪽은 참 공기가 맑아서 갈때마다 거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한다. 도무지가 서울 같지는 않은 곳이라서 더 좋은지도 모른다.

 남현이랑 이런저런 얘기하면서 마셨다. 서로의 집안 문제(남현이는 부모님과 가끔 심하게 다툰다고 한다.) 친구들 이야기에서 시작된 결혼 이야기(남현이는 결혼 생각이 별로 없다고 한다. 나랑 좀 비슷한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키워야 하는 일도 두렵다고 한다. 아이가 생기면 자기 부모님이랑은 다르게 모든걸 다 해주고 싶다고 하는 뭐 그런 얘기였다. 그렇게 해줄수 없기 때문에 아이 낳기 싫다고 했다.)

 나는 혹시나 아이가 생긴다면 자연스러운 사람으로 자라나도록 해주고 싶다. 남현이도 그런 자유방임적인 것을 생각해 보았지만 자기 마음속에 뿌리 깊히 박혀있는 부모가 잘 해주는 것이 좋다는 생각때문에 그렇게는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예전에 영일이가 자기 아이는 뭐 하고 싶다는 것 있으면 다 하게끔 하면서 키우고 싶다고 강력하게 얘기한 적 있었는데, 아직 결혼도 안한 녀석들이 벌써 아이는 자신의 전철을 밟게 하지 않으려는 생각들로 가득하다.(거 참 묘한일이다.) 아이가 막 생긴 윤서는 어떻게 아이를 키우고 싶은지 나중에 물어봐야지.

 남현이랑 헤어지고 집에 왔는데 잠이 안 왔다. 9월 근무일정이 조금 변칙적인 탓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그냥 여러가지 생각들이 몰려왔다. 나는 떠났다가 돌아오면 다시 모든것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물론 여러가지 생각들은 하고 있지만...) 나는 집도 없고 집에 돈도 없고(빚은 없어 참 다행이다).... 모든게 way랑 비교가 된다. 그런 way가 여행에서 불안해 하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마음 편하게 지냈으면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래서 메일도 썼는데, 약간 예상은 했지만 화가난 답 메일을 받아서 마음이 불편했다. 그렇지만 화를 삭이고 썼다는 점에서 나를 생각하는 마음을 느꼈다.

 마르코라는 에콰도르 남자가 계속 신경쓰인다.. 에효.. 여기까지만 하자......!!

 덕분에 모처럼 오후에 일어났더니 밤에 출근했음에도 정신이 말똥말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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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까지 항공권 결제, 비바라틴 예약은 취소할 것

정리 할 건 이것 뿐이구나.. 곧 추석 연휴다. 연휴지만 그대로 12시간 씩 3교대로 근무한다.

다른 두 사람의 일정 때문에 공평한 근무를 위해서 내가 희생한 꼴이 되버렸다. 추석 당일

오전에 내가 근무한다. 뭐 그건 나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차례 지낼때 꼭 내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 그런데 지금 달력을 확인하니 그날 아버지도 근무다. 아버지랑 아들이

시간만 죽이는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

 제대하고 쭉 외국에 나가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여행을 가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그때그때 현실적인 이유들로 못 가게 되었을 때, 내가 무슨 연막 작전처럼 외국행을 쓰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이번엔 진짜 가는거다. 나를 막을 현실적인 이유도 없다.

way가 막 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확실히 그런 마음보다는 그저 다른 공기를 조금 쐬고

싶을 뿐, 모두가 새로 시작하는 도시에 관한 얘기를 어디서 읽었는데, 어느 도시였더라...

독일의 어느 도시였던 것 같다. 스스로 지은 죄가 많다고 생각하진 않는데, 왜 자꾸만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곳을 원하는 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어서 비행기에 몸을

싣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집에 샴푸가 모자라서 샴푸에다가 인삼 비누를 섞어서 머리를 감았다. 예쁜 샴푸 모델들이

머리를 찰랑찰랑 흔들면서 인삼 샴푸 광고를 하면 참 섹스 어필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인삼 샴푸가 나오지 않는 건 역시나 사람들이 인삼 냄새를 싫어해서 일까? 인삼 향기가

나는 전지현이나 김아중의 머릿결...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은단향도 좋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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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그때그때 2007. 9. 6. 23:20
괜히 가슴이 먹먹한 날이었다. 일단 요즘은 육체적으로 뭔가 먹으면 가슴에 턱 걸려있다.

퇴근을 하고 집에 오는 길에 운동을 핑계로 또 취하신 아버지를 보고 다시 가슴이 막혔다.

저녁 먹은 것 때문일 수도 있었겠다.

TV를 채널을 돌리는데 오체투지를 하는 장면이 나오길래 멈췄다. 수요기획인가? 생각했는데,

오늘은 목요일이다. 아, 특집이로구나... 6달 동안 오체투지로 라쌰에 도착하고 도착해서는

10만배를 하고 각자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나왔다. 누구는 라마가 되기 위해 사원으로 가고

누구는 돈을 벌기 위해 동충하초를 캐러 가고 나이 드신 두 분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끝없이 이어지는 오체투지 장면을 보고 있으니 가슴이 더 먹먹해졌다. 지을 죄도 없는

삶을 살 것 같은 사람들이 죄를 씼겠다고 온 몸과 마음을 다해 오체투지를 한다.

한 노인의 인터뷰에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태어난 순간 죽음을 준비하고 죽을 것

을 알기에 준비를 해야하고 새로운 삶을 준비한다.....

동생이 물었다. 형도 가보고 싶지? 내가 가서 살고 싶다고 대답하자.. 동생은 약간은 경멸이
 
섞인 눈빛을 보낸다. 그러지 마라 동생아!

눈물이 머리 끝까지 차올랐지만 결국 울지는 않았다. 울고 싶을 때는 '하얀 거탑' 마지막회를

보는 쪽이 빠르지~~

나의 죄 나의 불안 모든 것들을 씼어내고 진정 깊은 잠을 잘 수 있을까?

두렵고 막막하고 혼란스러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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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03 아침

사진 2007. 9. 3.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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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교의 양쪽 - 파노라마~
 가로등 - 맘에 든다. 뻗뻗한 게~~
 당신을 찍고 싶은데~~~~~~~~ 곧?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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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고니아 특급열차

2007. 8. 30. 22:46
 세풀베다는 '소외'를 재미있게 읽어서 좋다고 생각하는 작가다. 이 책까지 읽고나니

장편들을 좀 찾아서 읽고 싶어졌다.

 '돌아오는 길의 노트' 중에

 그런데 <콜로노> 호를 묶어 두었던 밧줄이 풀렸지만 선박의 출입문이 닫히지 않는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승무원들이 하얀 침대 시트처럼 창백한 노인과 옥신각신 실랑이를 벌이는 중이다.
 노인은 자신이 누울 관을 가져가길 고집하고, 승무원들은 액운이 따라 붙는다고 거절하는 모양이다. 노인은 60킬로그램의 화물은 들고 갈 권리가 있지 않느냐고 주장하는 반면, 승무원들은 그 관을 버리지 않으면 승선을 거부하겠다고 협박한다. 노인은 암에 걸려있지만 아직은 숨을 쉴 권리가 있다고 목청을 높이는데, 선장이 끼어들면서 합의점에 도달한다. 관을 가져가는 것은 허용하지만 여행 중에 죽어서는 안 된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본 것이다. 그 징표로 상호간에 악수가 교환된다. 노인은 관 위에 앉는다.
 


 이런 마음이 남아메리카의 마음일까? 참 좋다. 얼마전 신애랑 얘기할 때 파타고니아 얘기
하다가 <소외>에 파타고니아 얘기 나왔던 것 같아서 엉뚱하게도 <소외>에 나왔던
목이 잘리고 12 걸음을 걸은 선장 이야기를 했는데, 신애는 아마 <파타고니아 특급열차>를 읽었던 거겠지? 괜히미안하군!

 라디오 벤티스케로의 거짓말 경연대회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세상 끝의 라디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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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원 버스

그때그때 2007. 8. 28. 20:49
를 오랜만에 탔다. 엄마한테 휴대전화를 전달해주고 함께 낮잠을 자고(아 꿈 같은 시간

이었다.) 엄마는 일터로 나는 집으로 향했다. 오산에서 가리봉까지 와서 652를 기다렸는데,

바로 차가 왔다. 사람이 만원이길래 안 탔는데, 문제는 20분 후에 온 다음차가 더 만원이었다.

나는 앞 문으로 가장 늦게 탄 사람이 되어서 - 뒷문으로 탄 사람들도 많았기에 - 정류장을

지날때마나 서서히 밀려 들어갔다. 짜증 섞인 사람들의 표정 - 피곤해 보였다. 나도 보통이었

으면 엄청나게 짜증이 났을터인데, 엄마를 보고 왔기 때문인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내 귀를 지나가는 엘리엇 스미스의 음악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만원 버스에서는(지하철도)

왠지 두 팔을 다 이용해서 버스 손잡이나 기둥들을 붙잡게 된다. 그렇게 어느 기둥을 붙잡고

있으면서 내 손 옆의 손에도 나 처럼 손가락 두번째 마디에 털들이 있는지를 손톱들을

내 앞 사람의 광대뼈와 등에 난 털을 보면서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지하철에 앉으면 건너편에 앉은 사람들의 발목과 신발을 유심히 보게 된다. 뜀박질을 잘

할 것 같은 건강하고 가는 발목이 좋다.

사람은 눈높이 만큼 본다. 아니 보이는 만큼만 본다. 나쁘지만 않다면 나쁘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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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그때그때 2007. 8. 28. 10:49
 돈 한 푼이 아쉬운 판에 9월 첫 주까지 쓰려고 했던, 돈 2만원을 아침 퇴근길에

뽑기에 날려 먹었다. 혼미해진 정신을 돈 만원을 찾아 순대국을 사 먹으며 달랬다.

한 푼이 아쉬운 판에 잘했다. 하지만 어쩌리 이미 써버린 걸~~

앞으로도 쭉 애들은 다 봤다. way 보고 싶다. way의 제법 긴 편지를 받았다.

안전한 쪽으로만 다녀서 다행이다. 양키들이랑 섞여있는 쪽이 아무래도 안전하겠지!

우리 만나더라도 안전한 쪽으로만 다니자! 앞으로 아껴쓸께~~

 내가 뽑기를 한 건 정신이 혼미한 탓도 있었지만 TV에서 뽑기왕 할머니를 봤기 때문이기도

하겠지. TV란 건 대체로 해롭다. 할 게 없으면 쉬어도 좋을텐데~~ 끝없이 뭔가를 방송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영화를 하려는지도 모르지만 할 얘기가 없으면 쉬어도 좋은게

또 영화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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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도 지나고

그때그때 2007. 8. 27. 16:34
 이번 주말 부터 9월이다. 처서 이후에는 확실히 아침이랑 밤 공기는 조금 온화해졌다.

겨울에서 봄이 올 때도 온화해지지만 여름에서 가을이 올때도 공기가 온화해진다.

도서관에 자전거 타고 가면서 하늘을 올려다 봤다. (사실 회사 옥상에서 만날 보긴 한다)

구름은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낮게 떠 있지만 하늘 자체의 높이는 꽤 높아졌다.

그렇다면 곧 구름도 높아지고 하늘도 더 높아지는 순간이.... 가을이 곧 온다.


 어딘지 모르게 약간은 흥분한 늦여름이다. 어서 가을이~~ 그리하여 나를 점점 낮아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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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직 경험만 소설로 쓰는 작가! '단순한 열정'을 단순한 열정을 가지고 재미있게 읽었었다.

 단문들을 읽는 것은 즐겁다. 뭐 썩 단문은 아니었는지도...

 그들의 정신 속에 부재하는 질서를 외부에서라도 바로 잡으려는 생각

 하루에도 수차례씩 짐들을 꾸렸다 풀렀다 다시 꾸리시는 할머니가 생각난다.

 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그렇게 하듯이 어머니에게 아무것이나 다 이야기했다.

 내가 이러지 않았던가.... 어쨌거나 할머니가 보고 싶다.

 할머니는 나를 손자로 늘 생각했던 것이리라.. 뱃속이 쓰겁다.

 아침부터....

20070824 이 책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면 더 많이 생각날 것 같다. 그래서 아직 누구에게
주지 않고 가지고 있다. 2005년 여름 할머니랑 같이 놀았을 때가 할머니와 가진 유일한 추억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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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진은영-

2007. 8. 24. 23:00

 고양이는 지붕의 알리바이다
 지나가는 고양이를 움켜쥐고 지붕의 붉은 울음이 솟아났다
 벨벳의 검은 꼬리가
 지붕의 등을 오래오래 어루만졌다
 죽은 장미를 버렸다 항아리의 고인 물을 따라
 붉게 떨리던 시간의 한때가 하수구 속으로 흘러갔다
 장미는 항아리의 알리바이다
 크고 검은 장화속에서 흰 발이 걸어나왔다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한밤중에
 빈 항아리를 힘껏 껴안았다
 내가 부서졌다






-> 붉은 지붕! 붉은 장미 검은 하수구 흰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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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집에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 앞을 지나다가 내가 한 이야기다.

이모도 그렇다고 했다. 학교 다닐 때 벌판이었던 그 동네가 지금은 온통 아파트다.

뭐 내가 사는 동네도 내가 아주 어렸을 때는 온통 벌판이었더랬다. 코스모스 벌판

그런데 지금은 코스모스는 한 송이도 찾아볼 수 없다.


   역전 이발/문태준

 

 때때로 나의 오후는 역전 이발에서 저물어 행복했다

 간판이 지워져 간단히 역전 이발이라고만 남아 있는 곳
 역이 없는데 역전 이발이라고 이발사 혼자 우겨서 부르는 곳

 그 집엘 가면 어머니가 뒤란에서 박 속을 긁어내는 풍경이 생각난다
 마른 모래 같은 손으로 곱사등이 이발사가 내 머리통을 벅벅 긁어주는 곳
 벽에 걸린 춘화를 넘보다 서로 들켜선 헤헤헤 웃는 곳

 역전 이발에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저녁빛이 살고 있고
 말라가면서도 공중에 향기를 밀어넣는 한송이 꽃이 있다

 그의 인생은 수초처럼 흐르는 물 위에 있었느나
 구정물에 담근 듯 흐린 나의 물빛을 맑게 해주는 곱사등이 이발사

 

   옛날 국수 가게/정진규

햇볓 좋은 가을날 한 곡목길에서 옛날 국수 가게를 만
났다 남아 있는 것들은 언제나 정겹다 왜 간판도 없느냐
했더니 빨래널듯 국숫발 하얗게 널어놓은 게 그게 간판
이라고 했다 백합꽃 꽃밭 같다고 했다 주인은 편하게 웃
었다 꽃 피우고 있었다 꽃밭은 공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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