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현이

그때그때 2007. 9. 17. 20:25

 남현이를 처음 만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 이때의 나는 뭐랄까 세상 물정 참 몰랐고, 여러가지 불만들은 지금보다 훨씬 많았던, 그리고 뭔가 부자연스러운 게 머릿속에 가득 차 있는 그런 고등학생이었다. 그때는 '세상사람들은 모두가 다 친구'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수업시간에 가끔 불평조로 툭툭 내뱉는 앞쪽에 앉아 있는 강남현이란 아이가 좋았다. 정확하진 않지만 대충의 내용은 "네가 맘에 든다. 앞으로 친하게 지내보자." 뭐 이런식으로 얘기를 시작했었다. 아마 학기가 시작하고 한 달쯤 후였을 것 같다.

 그런 남현이를 어제 또 만났다. 아침에 부재중 전화가 왔었길래 오후에 전화했더니, 전화로 회사 그만두고 옮기기로 한 사실을 얘기해 준다.(물론 아무한테도 얘기 안했다는 사실까지 덧 붙여서....) 집에 있으면 아버지가 또 술 잔뜩 드시고 오실 것 같고 직장을 옮긴다는 건 꽤나 심란한 일인 걸 알기에 비도 오는데 소주나 한 잔 먹자고 해서 내가 온수역 쪽으로 갔다.

 구로구의 한쪽 끝에서 부천과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궁동, 온수동 쪽은 참 공기가 맑아서 갈때마다 거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한다. 도무지가 서울 같지는 않은 곳이라서 더 좋은지도 모른다.

 남현이랑 이런저런 얘기하면서 마셨다. 서로의 집안 문제(남현이는 부모님과 가끔 심하게 다툰다고 한다.) 친구들 이야기에서 시작된 결혼 이야기(남현이는 결혼 생각이 별로 없다고 한다. 나랑 좀 비슷한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키워야 하는 일도 두렵다고 한다. 아이가 생기면 자기 부모님이랑은 다르게 모든걸 다 해주고 싶다고 하는 뭐 그런 얘기였다. 그렇게 해줄수 없기 때문에 아이 낳기 싫다고 했다.)

 나는 혹시나 아이가 생긴다면 자연스러운 사람으로 자라나도록 해주고 싶다. 남현이도 그런 자유방임적인 것을 생각해 보았지만 자기 마음속에 뿌리 깊히 박혀있는 부모가 잘 해주는 것이 좋다는 생각때문에 그렇게는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예전에 영일이가 자기 아이는 뭐 하고 싶다는 것 있으면 다 하게끔 하면서 키우고 싶다고 강력하게 얘기한 적 있었는데, 아직 결혼도 안한 녀석들이 벌써 아이는 자신의 전철을 밟게 하지 않으려는 생각들로 가득하다.(거 참 묘한일이다.) 아이가 막 생긴 윤서는 어떻게 아이를 키우고 싶은지 나중에 물어봐야지.

 남현이랑 헤어지고 집에 왔는데 잠이 안 왔다. 9월 근무일정이 조금 변칙적인 탓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그냥 여러가지 생각들이 몰려왔다. 나는 떠났다가 돌아오면 다시 모든것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물론 여러가지 생각들은 하고 있지만...) 나는 집도 없고 집에 돈도 없고(빚은 없어 참 다행이다).... 모든게 way랑 비교가 된다. 그런 way가 여행에서 불안해 하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마음 편하게 지냈으면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래서 메일도 썼는데, 약간 예상은 했지만 화가난 답 메일을 받아서 마음이 불편했다. 그렇지만 화를 삭이고 썼다는 점에서 나를 생각하는 마음을 느꼈다.

 마르코라는 에콰도르 남자가 계속 신경쓰인다.. 에효.. 여기까지만 하자......!!

 덕분에 모처럼 오후에 일어났더니 밤에 출근했음에도 정신이 말똥말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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