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결항으로 브라질의 한 호텔에서 내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거라고는 한국 운전면허증 한 장만 갖고서 불안한 하룻밤을 보내고 남아공에 도착했더랬다. 대기시간에 꽤 길어서 중간에 배가 고팠지만 한국 아저씨를 돕는데 가진 달러를 다 쓰는 바람에 그냥 버티고 있었다. 게이트의 한 구석 자리에 공항 직원으로 보이는 흑인 아저씨가 한가하게 앉아 있고 그 옆에는 신문들이 놓여 있길래... '혹시 이 신문 네 거니?' 하고 물어볼까 하다가... 그냥 안 물어보고 살짝 가져와서 건너편 자리에서 스도쿠를 풀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배가 아파서 화장실을 찾아서 한참을 걸었는데, 뒤에서 누가 부른다. 신문 옆에 앉아 있던 아저씨다.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길래 자세히 들어보니 '너 내 신문 가지고 가서 읽다가 아예 자리를 옮기려고 하냐고, 너 도둑이라고.. 자기네 보스랑 상담 좀 해봐야겠다고, 체포될지도 모른다'고 웃으면서 얘기한다. 나도 웃으면서 '몰랐다고'했다.(마음속은 약간 울고 있었을까? ㅎㅎ) 암튼 아까의 그 자리로 다시 이동하니 보스라고 불리는 아저씨랑 신문 주인이 자기 시스터라고 부르는 언니가 노가리를 까고 있다. 다시 한 번 상황을 설명하고 미안하다고 했더니... 자기 시스터 배고프다고 뭣 좀 사달란다. 그래서 한국돈 밖에 없다고 설명하니, 살짝 체념한 얼굴로 알았다고 신문 보려면 여기서 보고 가져가지 말라고 한다. 배고픈 언니는 밥 먹으러 가는지 가버리고 뉴페이스의 아저씨가 잠시후에 다시 등장했다. 내가 '너네 무슨일 하니?' 하니까 공항 보안 직원이라고 나 같은 애들 잡아간다고 농을 친다. 그러더니 새로온 아저씨가 자기 목 마르다고 뭣 좀 사달란다.(뭔가 사주는 사람이 많았던가?) 그래서 다시 한 번 돈 없다고 설명 했더니 이번에는 100엔이 달러로 얼마냐고 묻더니 인도돈 500짜리를 여러장 꺼내서 이건 얼마냐고 묻는다. (어딘가에서 겟 했다고 하는데, 설마 훔친 건 아니겠지?) 간디 얼굴이 그려져 있길래 '잘은 모르지만 꽤 될 것 같으니 소중히 간직하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 같이 노가리 까고 놀았다.(맙소사 내가 흑인 세 명이랑 노가리를 까다니..... 그네들이 내 말 잘 못 알아들으면 노트에 단어를 적어 줬다. ^^;) 목 마르다고 했던 아저씨가 남아공 오면 큰일 난다고 '지금은 공항이라서 괜찮은데, 공항을 나가는 순간 돈 다 뺐기고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고 무서운 눈을 하고 흑인 특유의 몸짓으로 칼로 베이는 시늉이랑 공항 바깥쪽 동네를 구체적으로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설명해줬다. 그러니까 나머지 두명이 아니라고 월드컵 때 놀러오란다.(신문에서 82세 할머니가 창문깨고 침입한 사람한테 강간 당해서 병원에 실려간 기사 읽었는데.... -_-;) 암튼, 잘 인사하고 헤어졌다.
결론은 남아공 공항에서 재미있었다. 덩치 있는 흑인은 약간 무섭다. 요하네스버그가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도시라는 사실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