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229 - 2008년

그때그때 2008. 12. 29. 10:45
 긍정적인 것들 - 돈을 벌었다. 기타를 배운다.
 부정적인 것들 - 보이지 않는 저 너머

 미래에 대한 불안은 영원한 것이니까 결국 긍정적인 두 가지 측면으로 올해를 정리한다면 그렇게 나쁘지 않았던 한 해다.
 
 그렇지만 부정적인 것들을 '점점 더 보이지 않는 저 너머'로 바꿔보면, 최악의 한 해다. 유이카와 케이의 '점점 멀어지는 당신'을 읽었을 때, 그 내용보다는 제목에 끌렸었다. 사라져 가는 것들은 아름다운 법이니까 그랬다. 점점 멀어져가는 당신을 바라보는 모습을 상상하는 순간 사랑의 미열이 온 몸을 가득 채우는 것 같다. 하지만 사라져 가는 꿈과 희망은 온 몸과 마음을 삐져나올 곳도 없는 불덩이로 가득 채워 폭발하지도 않은채 사람을 절망으로 내몬다.
 
 모두가 희망을 잃어 버린 상황이 차라리 잘됐다.는 마음이나 차라리 다 같이 망해버리면 괜찮다.는 식의 마음은(직장 동료에게 들었다.) 인생 뭐 있어.와 비슷한 마음가짐인데, 이런 생각 옳지 않다. 언제는 안 힘든 시기가 있었냐.는 식의 마음 역시 옳지 않다. 

 나는 많이 공부하고 강해질테다. 지금처럼으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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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굴뚝

사진 2008. 12. 22. 16:05



겨울에는 날이 추워서(과학적 근거가 없네)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가 더 선명한데, 나는 그게 좋다. 여름에는 날이 더워서 연기도 흐물흐물... 흐물흐물한 연기는 그림자도 흐물흐물... 당연히 실체가 없으면 그림자가 없다. 겨울의 연기 같은 마음가짐으로 사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두텁지만 사라져버리는 무엇? 지후도 고구미도 그림자를 좋아한다. 일터에서 왔다갔다 하다가 두 번째 사진 굴뚝의 그림자가 첫 번째 사진 벽에 휘날리는 모습을 바라보면 무척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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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22 - 세밑

그때그때 2008. 12. 22. 11:37
세밑이다. '밑'은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지만(뭔가를 찾을때, 어디어디 밑에를 보라고 하는게 첫번째로 떠오른다.) 막상 써보니 좀 어색하다. 세밑을 맞아 주말에는 내내 집에 있었다. 기타를 못 잡은 것이 좀 아쉬웠고, 오랫동안 붙잡고 있던 '드래곤퀘스트5'를 거의 다 깼다. 주인공을 제외한 동료들의 작전을 최강으로 맞춰놓고 마법없이 힘으로 떼우는 동료들을 중심으로 파티를 구성해서 보스를 잡고 엔딩을 봤다. 내가 컨트롤 하고자 했을때는 모든 동료들을 잃고 실패했었는데, 자동으로 싸우게 하니까 쉽게 보스를 잡았다. 하지만 산다는 것은 자동이 아니고 강한동료도 곁에 없고 힘으로만은 안되는 것임을 잘 안다. 그래서 게임을 하나? 나는 정통 일본식 RPG를 좋아하는데, 귀찮은 마법보다는 몸으로 떼우는게 좋다.

아싸 내일 월급날이다. 

내가 잠들때 하는 오래된 공상들이 있다. 한다기 보다는 반쯤 무의식의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미지들인데, 한 마디로는 강철가시라고 할 수 있다. 보통은 강철 가시들로 둘러쌓인 계곡을 내가 맨손으로 오르고 있다. 어떤 형벌이나 탈출의 상황(시지푸스를 떠올리면 되겠다.)에서 미끄럽고 날카로운 차가운 강철 가시들을 부여잡고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것인데, 아래는 날카로은 가시들이 나를 향해 있고, 나는 아래를 내려다 보고 두려움에 떨며 위를 향해 올라가려 애쓰지만 손은 차갑고 발은 미끄러워서 금방 미끄러지고 만다. 그렇면 나는 가시에 몸을 관통당해야 하는 것인데, 어디까지나 상상의 영역이다 보니 내 허벅지의 안쪽이(항상 다리부터 떨어진다.) 가시를 스치면서 그 찬 기운을 느끼고 이제 곧 몸이 관통당하려는 찰나에 공상이 깬다. 그리고는 잠들때까지 무한반복이다. 비슷하게는 만지면 손가락에 구멍이 나는 날카로운 철조망을 어쩔 수 없이 오르는 상황도 종종 떠오른다.

어제는 조금 달랐는데, 내가 새총의 총알이 되어서 무시무시한 속도로 발사됐다. 속도가 너무 빨라서 내 몸은 저항 때문에 활처럼 휘었고 내가 날아가는 곳은 강철 가시가 촘촘히 박힌 어느 벽이었다. 내 온 몸이 가시에 박혀 문드러지는 상상을 하다가 잠들었다.

그래 나는 그냥 날카로운게 싫은거다.

'행복에 대한 욕망은 고통의 도구들을 방어하기 위해서 가지런해진다'(http://silentsea.pe.kr/269)는 표현을 읽고 마음속으로 형상화 하기 위해서 꽤나 노력했는데, 쉽지 않다. 내가 생각하는 맥락 상으로는 내가 행복해 지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모든 것들을 그냥 유순하게 받아들인다.(고통을 견디면 언젠가는 행복이 찾아올 거라는 기대로) 정도가 되겠다. 그림으로 그려보면 고통의 도구들이 나를 고통으로 몰고가려고 하지만 나는 행복에 대한 욕망이라는 지팡이를 땅에 꽂고 결계를 쳐서 튕겨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고통을 더욱 크게 만들 뿐이다. 단지 결계를 치는 것이 아니라 지팡이로 고통의 도구들을 쳐내야 한다. 궁극의 마법으로 모든 고통을 잠재워주는 누군가가 나타나는 것은 게임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개개인이 뭉치고 안 뭉치고를 떠나서 일단 자신을 괴롭게 하는 것들에 맞서 싸워야 한다. 자동으로 싸워주는 동료는 현실에 없다.

나는 대안 없는 양비론자이며 절대 다수이지만 정작 힘은 쥐뿔도 없는 무당파의 일원이지만 지팡이를 뽑아내고 싶다.

이적 노래 중에 '나아지겠지'란 곡이 있는데, 막연한 기대는 더 이상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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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외할머니 제사였다.

외할머니는 요리 솜씨가 좋았다. 딸들이 다 그 솜씨를 닮았다. 결과적으로는 외손자, 외손녀들이 복 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예전에 어딘가 썼던 것 같은데, '외할머니' 검색에 아무 내용이 없는 것을 보니 이 곳이 아니었던 것 같아서 다시 기억을 살려서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하나 써보려고 한다.

경상북도 영주시에 서천교라는 다리가 있는데, 내가 마지막으로 영주에 갔을 때는 1급 상수원 보호 구역 같은 걸로 선정되어서 물놀이가 금지되어 있었다. 암튼 그 다리 아래 흐르는 개울(개울이라지만 엔간히 넓다.)에서 이모들과 외삼촌들이 어린시절 물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내가 어렸을 때도 그 다리 밑 개울에 많은 사람들이 물놀이를 왔었는데, 나와 내 동생, 둘째 이모 아들 이렇게 셋이서 어느 여름 다리 밑에 놀러갔다. 어디가 아팠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아무튼 내가 급 아파져서 내 동생과 이모 아들만 물놀이를 시작하고 나는 다리 아래 그늘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나만 거기 끼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분 나빠하고 있었는데, 외할머니가 그림처럼 나타나셔서(당시면 60대 초반이셨다.) 나를 토닥이시면서 금방 만드신 호박 부침개를 내 놓으시며 먹여주셨던 것이었다. 나는 금방 기분이 좋아졌고 내 인생에서 가장 맛 있었던 기억이다. 당연히 그때 이후로 호박 부침개를 좋아한다. 또 이모들의 증언으로는 내가 갓난쟁이였을때, 할머니가 올라오셔서 나랑 엄청 많이 놀아주셨다고 한다. 나를 포대기로 업고 신월동의 코스모스 밭을 걸었을 할머니를 생각해 본다. 그때도 하늘에는 비행기가 쌩쌩 날아다녔겠지...엄마가 늙으면서 외할머니의 모습을 많이 닮아간다.

제사로 돌아와서 여러가지 사정상 막내이모의 원룸에서 단촐하게 진행됐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제사에는 항상 마지막에 커피가 올라온다. 외할아버지 제사에는 불을 붙인 담배도 올라온다. 나는 이모들의 그런 마음 씀씀이가 좋다. 제사가 끝나고 이모들이 어차피 우리 이름도 없다면서 족보를 내다 버리자는 의견을 냈다.(내놓으면 종이 줍는 사람이 금방 들고 간다면서...) 외삼촌들에 대한 불만의 표시였다고 생각한다. 

둘째 이모 아들(나랑 동갑임)이 오래(5년쯤?) 놀다가 올해 초에 코스트코에 취직해서 잘 다니고 있는데, 어느 방 없는 가족에 대한 텔레비젼 다큐를 보다가 여자는 어디가서 설거지 해서 150 벌고 남자는 짱개 배달해서 170 벌면 되겠다고 해서 약간 짜증이 났다. 셋째 이모가 돈 그렇게 주는 곳이 없다고 하셔서 잘 마무리 됐다. 가족이 거리를 떠돌도록 뭘 한거냐고 다시 한 번 말해서 또 짜증이 났는데, 그냥 참았다. 떠돌고 싶어서 떠도는 가족이 어디있을까? 애들을 고아원에 맡기면 되는 걸 알아도 그럴수 있겠는가? 노모에게 애를 맡기러 갔다가 아니다 싶어서 도로 데리고 오는 심정은 어떨까? 오죽했으면 취재를 허락했을까? 제법 오랫동안 놀았으면서도 그렇게 현실감각 없는 말을 하는 이종사촌 아이가 멀게 느껴졌다.(중학생때 이후로는 계속 멀게 느끼고 있다만) 왜 정규직을 안 구하고 비정규직을 구하냐고 해서 한 대 치고 싶었는데.. 참았다. 결국 티비의 5인 가족은 32만원에 어느 모텔에서 한달간 살기로 했다. 이모가 열심히 꾸려나간 기사식당 덕분에 신월동에 집이 있을 뿐이고 딸내미는 대학원에도 보냈는데... 그런식으로 얘기할 수 있다니... 많이 잘못됐다. 이러니 진짜 돈 있는 사람들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겠는가.......

집에 돌아와서 백분토론의 마지막 두 발언을 봤다. 김제동이 저는 양비론은 아니구요...라고 했다. 
요즘의 대세는 대안없는 양비론인 것 같다.
대안이 필요한 게 아니라 아예 새로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어디에도 대안이 없는게 아닐까?
그래.. 나는 대안없는 양비론자다. 

마지막 문단을 지울까도 싶지만 일단 내버려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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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절부절 못하고 움찔 거렸던 나, 즐거운 저녁식사
다른상황의 비슷한 실수담, 정겨운 대화들
이어지는 대화들, 솜사탕 같은 당신의 질투
하지만 당신은 진심
그 진심의 무게도 내게는 녹아버리는 솜사탕
서로에게 진심만을 말하는 통속적인 관계
진심의 무게도 솜사탕처럼..... 

언제까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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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 통영(統營) 2

2008. 12. 14. 20:13

 구마산(舊馬山)의 선창에선 좋아하는 사람이 울며 나리는 배에 올라서 오는 물길이 반날
 갓 나는 고당은 가깝기도 하다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전복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선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집집이 아이만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
 황화장사 영감이 일본말을 잘도 하는 곳
 처녀들은 모두 어장주(漁場主)한테 시집을 가고 싶어한다는 곳

 산 너머로 가는 길 돌각담에 갸웃하는 처녀는 금(錦)이라는 이 같고 내가 들은 마산(馬山) 객주(客主)집의 어린 딸은 난(蘭)이라는 이 같고

 난(蘭)이라는 이는 명정(明井)골에 산다든데
 명정(明井)골은 산을 넘어 동백(冬栢)나무 푸르른 감로(甘露)같은 물이 솟는 명정(明井)샘이 있는 마을인데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
 긴 토시 끼고 큰머리 얹고 오불고불 넘엣거리로 가는 여인은 평안도(平安道)서 오신 듯한데 동백(冬栢)꽃 피는 철이 그 언제요

 옛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앉어서 나는 이 저녁 울 듯 울 듯 한산도(閑山島) 바다에 뱃사공이 되어가며
 녕 낮은 집 담 낮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 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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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굳이 이유를 대자면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이었고, 현실적인 이유는 미친듯이 바쁘다가 갑자기 일이 종료되서 약간 한가해지는 바람에 얼이 빠졌기 때문이다. 
 
 지후가 '빌어먹을 주인의식'이라고 말한 '주인 의식'이 나한테는 없다. 뭐든 열심히 하긴 하는데, 주인의식이라기 보다는 내 자신의 심리적인 안정을 위한 측면이 크다. 
 
 노동자 = 노동의 주인, 사용자 = 사업장의 주인... 말을 맞춰서 써보려고 했는데, 밤 새운티가 조금 난다. 노동의 주인들에게 그 노동이 왜 소중한지 개념적으로는 알려줄 수 있겠지만 그 어떤 제도도 실상은 노동자들에게 조금도 신경쓰지 않았다.
 
 정치 = 정치인 vs 노동 = 노동자
 경제 = 경제인 vs 노동 = 노동자 (경제인이라는 말에는 논란이 있겠지만 느낌상...이해할 수 있으니까....)

 90퍼센트의 절대 다수가 2중으로 싸워야 하고(수가 많으니 2중으로 싸워도 좋다.) 결국은 정치인들이 법적으로 경제인들을 돕고 경제인들은 돈으로 정치인들을 도와줘서... 민주주의 정치제도와 자본주의 경제제도의 연합공격에 계속 지고 있다. 

 빌어먹을 틀 자체가 틀렸다고 본다.

 한은이 금리 인하한 것이 우리 경제에 숨통을 터 주었으면 좋겠다고 MBC 뉴스 앵커가 얘기하던데........... 앵커도 노동자라면 그런 방송 하면 안되는거 아닌가? 방송법 새로 고친다던데, RTV 같은 채널을 지금의 공영방송들처럼 만들 생각은 안 하고, 어차피 한통속들이면서 노무현이 만든거..없어져 줘야겠어..라고 한다. 매체 환경이 많이 바뀌어서 그렇다고 한다. 법 만드는 사람들은 아직 법이 제대로 정리 되지 않은 이 시점에 눈엣 가시 같은 바뀐 매체 환경들에게 옛날에 신문/방송 장악하는 것 보다 더 강력한 본때를 보여주고 싶은거 같다.

 정말 하루에도 몇번이고 모든 면에서(내 꼬라지를 포함해서) 이건 아니지 싶다.

 오늘도 정부쪽에 올라가는 대통령이 지시한 사업에 대한 계획안과 관련된 일을 했다.
 이게 맞나 싶다.

 저탄소 녹색성장 한다고 가상세계 기술 개발한다. 쉽게 얘기하면 최종적으로는 정부가 가상세계를 통제하겠다는 얘기다. 더 쉽게 얘기하면 매트릭스다. 진짜 쉽게 생각하면 저탄소 녹색(성장)하려면 IT랑 서비스, 최소 제조업 빼고는 다 땅 나눠 갖고 농사지으면 된다. 사람들이 그러기 싫어한다고? 촛불집회 불법으로 몰고 가듯이 법으로 정하지 왜? 

 잠을 못자서 기분이 사납다.
 저작권 주장하는 아티스트들 짜증난다.

 새로운 형태의 대안웹이 필요하다.(웹이라는 이름을 갖지 않은)

 그리하여 매트릭스가 완성되는구나. 
 그러니까 나는 매트릭스의 초안과 관계된 일을 하고 있구나.
 미쳤다.

 이소선 할머니는 다같이 마음을 모아서 3일만 출근하지 말아보라고도 했고, 정규직 노조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끌어 안아야 한다고 했고, 전태일은 열사가 아니라 그냥 사람을 너무나 좋아했던 자기 아들이라고 했다. 안 뭉쳐도 그냥 다들 행복해야 그게 자유인데... 어렵기만 하다. 징징대고 투정만 부리다가는 뒤돌아선 연인이 다시는 뒤도 돌아보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먼저 뒤를 돌아보거나 그녀 목에 칼이라도 들이대서 내 쪽을 보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한 가지 방법안에 여러가지 방법들이 빙글빙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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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피곤해서 자기가 싫다. 누우면 바로 쓰러지겠지.



우리집은 내가 1살 때부터 신월동이었다. 태어났을때는 영등포구 도림동이었다. 한강 이남이지만 한국에서는 송파, 서초, 강남구만 강남이라고 한다. 지금 사는 집은 사진의 아파트(공사 시작한지 일년이 넘었는데, 아직 짓고 있다. 중간에 업체가 부도가 나서 다른 업체가 들어왔다고 한다.)입장에서 오른쪽에 있는 다세대 주택이다. 얼마전 읽다만 책에 따르면, 다양한 슬럼의 형태중의 하나인 다세대 주택이다.(물론 책에 나왔던 것은 청나라 시대의 대저택에 몇 백명이 우글우글 사는 형태였다만...) 이사 온지 7년쯤 된 것 같은데, 이사오기 전에는 아래쪽 사진의 버스 푯말이 있는 동네에 살았다. 그러니까 우리집은 7년전에 신월 1동에서 신월 3동으로 이사왔다. 김포공항이 근처여서 사진에 보이는 저 하늘로 수시로 비행기가 다닌다. 몇년전 동들을 합치려고 했을 때, 신월 1동 사람들은 신월 3동과 합치기 싫다고 했었다. 3동은 비행기 소리가 더 시끄러워서 집값이 더 싸다는 이유였던가.... 지금 다시 동들을 합치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3동과 5동 양쪽에서 다 서로 합치기 싫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비행기 소음 피해 보상' 이런것 때문에 '성환네 식품'을 운영하다가 'xx 치킨'으로 업종을 바꾼 우리 대머리 통장 아저씨(민방위 훈련 가면 통장아저씨가 도장 찍어주고 한다.)가 늘 바쁘신데, 우리 같은 세입자는 보상이 되더라도 해당사항이 없다. 당연하다고? 이 동네에서 30년 살았는데도 당연한건가?

이름부터 달동네인 신월동은 1동부터 7동까지 있는데, 다 고만고만하다. 그런데도 집값 같이 사소한 걸로 서로 섞이기 싫어한다. 섞이는 건 나도 반대인데, 동사무소가 멀어지면 귀찮은 일이 많기 때문이다. 저 아파트 뒤로 15분만 걸어가면 '안녕히 가십시오 서울특별시'가 나오는 곳이 아닌가...(내가 다닌 중학교에서는 1분 거리, 그곳에서는 비행기가 정말 머리위로 지나가서 자세히 보면 비행기 하부에 용접을 몇 번 했는지도 알 수 있을 정도다.)

내가 우리 동네를 무척 좋게 생각하는 점은 안그래도 싼 집 값이(우리집 꽤 넓은 방 세개 다세대주택인데 전세 보증금이 5500 이다. 이사왔을 때부터 그대로다.) 더 떨어지고 있다는 점일까? 최근에 전봇대들에 1000에 방 세개 월 30 짜리 찌라시가 많이 붙어 있다.(이런 찌라시는 도시가스를 항상 강조한다! 왜?) 지난 일요일에 동생이랑 자판기 커피 빼 먹으러 나왔다가 저 아파트 누가 와서 살까? 내가 물었더니 동생이 우리가 살고 싶다고 했는데, 2억은 하지 않을까 얘기하길래. 내가 지금처럼 피곤하게 일해서 10년 벌어야 되는데... 말도 안되고 8천 정도가 적당하다고 했다. 솔직한 내 생각이 그렇다. 역시 현실적으로 지방으로 가는게 맞겠다. 지난주에 잠깐 본 다큐에서는 인천 남동공단 공구상 아저씨가 손님으로 온 공장 사장님이랑 담배 뻑뻑 피우면서 저 옆에 xx(이름이 정확히 기억 안 나서... 암튼 대기업의 복합 건물을 말하면서) 평당 5000이었다고 신문지 한장 깔고 5천인데, 여기가 서울 한복판도 아니고 누가 장사하냐고 성질을 내셨었다. 현실적으로는 그 아저씨 얘기가 맞다고 생각한다. 

문제의 저 아파트 바로 아래 보이는 건물이 2층 짜린데, 2층이 내가 청춘을 꽤 오랫동안 불살랐던 봉제공장이고(추억이 많다.) 1층이 둘째 이모가 21년째 운영하고 계시는 '호남기사님식당'이다. 나는 우리 동네가 좋다. 그리고 뭔가 새로 짓는 것들에는 짜증밖에 안난다.

아무튼 이제 자야겠다. 내일도 갈길이 멀다. 퇴근이 만날 늦더라도 확실한 주 5일제, 아니면 주 6일제더라도 일주일에 절반 정도는 정시퇴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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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느 장소에서 중국어로 진행되는 설명회 같은 것을 듣고 있었는데, 힐끗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내 옆에서 무언가 열심히 필기를 하고 있는 사람이 군대 시절 고참이었다. 그 고참은 내가 21세때 26~28세였고 결혼을 한 상태에서 군대를 왔던 전남 출신의 고참이었다. 설명회가 끝나고 내가 반갑게 아는 척을 했더니 나를 무척 반가워 했다. 마침 이전의 꿈에서 군대시절 동기 혹은 다른 고참을 만났던 터라 누구도 만났었는데, 요즘 군대에서 알게된 사람들을 자주 본다고 말했다. 그 고참은 열심히 하는 시늉만 하는 거라면서 설명회에서 열심히 필기한 것에 대해서 설명하고 우리는 대수롭지 않게 헤어질뻔 했는데.......


어느 순간 서점으로 자리를 옮긴 우리는 그 고참의 누이를 우연히 만나게 되고 고참은 홀연히 사라져버린다. 나는 돌연 그 누이에게 두근거리는 감정을 느끼는데... 그녀는 이혼해서 혼자 살고 있다는 얘기를 내게 하고, 찻집을 거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여관에 가려고 하는데, 자기 집에 잠깐 들렀다가 같이 나가자고 해서 비탈진 골목길을 올라 바깥의 철계단을 이용해서 2층으로 올라가야 하는 어느 다세대 주택의 안으로 들어갔더니 TV가 켜져 있는 마루에 노인 셋이 죽은듯이 TV를 향해 모로 누워있고 그 노인 셋은 그녀의 큰어버지, 큰어머니, 어머니였다. 그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발로 한 노인의 등쪽을 툭 치면서 자기 방에 들어가고 나는 얼이 빠져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꿈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그 누이가 송혜교였다는 점이다.
평소에 송혜교를 무척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물론 예쁘다고 생각하긴 한다), 요즘 '그사세'를 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아무튼 이상한 꿈이다.

구체적인 꿈은 꽤 오랜만이어서 기억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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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 가서 장률 영화 두 편을 봤다. '중경'과 '이리'다. '이리'를 뭔저 봤는데, 순서상으로는 '중경'이 먼저라고 하는데, 큰 상관은 없다.

예전에 '망종'을 무척 재미있게 봤다. 김치가 담긴 삼륜 자전거를 느릿느릿 끌고 가던 주인공과 같던 영화전체의 분위기가 마지막에 어느 경계를 뚫을 듯 달려가는 주인공의 분위기로 확 옮겨가던 그 느낌을 잊기가 힘들다. 그래서 쉬고 싶었지만 무리해서 영화들을 봤다.

중간에 만들었던 '경계'와 첫 작품 '당시'를 보지 못했는데, '중경'과 '이리'는 '망종'의 큰 틀을 벗어나지는 않는다. 앞공간과 뒷공간에 사람들을 집어넣고 오즈의 샷들을 연상시키는 앵글들을 많이 보여주고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 먼 경치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카메라들이 자주 쓰인다. 주인공이 사는 공간을 서서히 완성시켜 나가는 데 특출한 재능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나는 이런걸 좋아한다. 그리고 영화에서 공간은 중요하다.) 주인공들은 절망의 끝으로 치닫고 성관계는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한다.

'중경' 볼 때, 어머니 묘지가서 하는 대사가 참 인상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영화 팸플릿 앞장에 그 내용이 있어서 여러가지 감정(안도감과 시기심)들이 지나갔다. '아버지는 부끄러운 짓을 하고 나는 점점 더러워져 간다.'는 멘트다.

두 영화 모두 계속되는 삶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망종'과의 차별성이 있는 것 같다.
'이리'에서 엄태웅이 윤진서를 물에 빠뜨렸다가 돌아오는 택시에서 차 소리가 아니라 물 소리가 들리는 장면이 무척 훌륭했다. (택시가 터널을 달리는 샷도 무척 좋았다.) '중경'은 권총을 훔치는 시점인 듯한 호텔방의 공간분리 샷이 되게 독특했다. 앞쪽에 살덩이들이 가득차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특별히 주인공이 고개를 돌리던 마지막장면이 무난한 '이리'의 마지막에 비해서 무척 인상적이었다.

좋은 영화들이고 훌륭한 감독이다.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남자성기가 덜렁거리는 건 좀 보기 안 좋다.

추가로, KBS에서 방영됐던 '망종'에서 장률의 장기라고 할 수 있는 이중 공간과 2인 식탁 샷을 캡쳐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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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시아'가 왔다는 이천 년래의 풍문이 있습니다.
 신이 죽었다는 풍문이 있습니다. 신이 부활했다는 풍문도 있습니다. 코뮤니즘이 세계를 구하리라는 풍문도 있습니다.
 우리는 참 많은  풍문속에 삽니다. 풍문의 지층은 두텁고 무겁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역사라고 부르고 문화라고 부릅니다.
 인생을 풍문듣듯 산다는 건 슬픈 일입니다. 풍문에 만족지 않고 현장을 찾아갈 때 우리는 운명을 만납니다.
 운명을 만나는 자리를 광장이라고 합시다. 광장에 대한 풍문도 구구합니다. 제가 여기 전하는 것은 풍문에 만족지 못하고 현장에 있으려고 한 우리 친구의 얘깁니다.
 아시아적 전제의 의자를 타고 앉아서 민중에겐 서구적 자유의 풍문만 들려줄 뿐 그 자유를 '사는 것'을 허락지 않았던 구정권하에서라면 이런 소재가 아무리 구미에 당기더라도 감히 다루지 못하리라는 걸 생각하면서 빛나는 4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에 사는 작가의  보람을 느낍니다.             -'새벽', 1960년 10월 -

 61년판 서문도 좋다.
 
 인간은 광장에 나서지 않고는 살지 못한다. 표범의 가죽으로 만든 징이 울리는 원시인의 광장으로부터 한 사회에 살면서 끝내 동료인 줄도 모르고 생활하는 현대적 산업 구조의 미궁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공간을 달리하는 수많은 광장이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인간은 밀실로 물러서지 않고는 살지 못하는 동물이다. 혈거인의 동굴로부터 정신병원의 격리실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공간을 달리하는 수많은 밀실이 있다.
 사람들이 자기의 밀실로부터 광장으로 나오는 골목은 저마다 다르다. 광장에 이르는 골목은 무수히 많다. 그곳에 이르는 길에서 거상(巨象)의 자결을 목도한 사람도 있고 민들레 씨앗의 행방을 쫒으면서 온 사람도 있다.
 그가 밟아온 길은 그처럼 갖가지다. 어느 사람의 노정이 더 훌륭한가라느니 하는 소리는 아주 당치 않다. 거상의 자결을 다만 덩치 큰 구경거리로밖에는 느끼지 못한 바보도 있을 것이며 봄들판에 부유하는 민들레 씨앗 속에 영원을 본 사람도 있다.
 어떤 경로로 광장에 이르렀건 그 경로는 문제될 것이 없다. 다만 그 길을 얼마나 열심히 보고 얼마나 열심히 사랑했느냐에 있다.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인간을 이 두 가지 공간의 어느 한쪽에 가두어버릴 때, 그는 살 수 없다. 그럴 때 광장에 폭동의 피가 흐르고 밀실에서 광란의 부르짖음이 새어나온다. 우리는 분수가 터지고 밝은 햇빛 아래 뭇 꽃이 피고 영웅과 신들의 동상으로 치장이 된 광장에서 바다처럼 우람한 합창에 한몫 끼기를 원하며 그와 똑같은 진실로 개인의 일기장과 저녁에 벗어놓은 채 새벽에 잊고 간 애인의 장갑이 얹힌 침대에 걸터 앉아서 광장을 잊어버릴 수 있는 시간을 원한다.
 이명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어떻게 밀실을 버리고 광장으로 나왔는가. 그는 어떻게 광장에서 패하고 밀실로 물러났는가.
 나는 그를 두둔할 생각은 없으며 다만 그가 '열심히 살고 싶어한' 사람이라는 것만은 말할 수 있다. 그가 풍문에 만족하지 않고 늘 현장에 있으려고 한 태도다.
 바로 이 때문에 나는 그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진 것이다.           -1961년 2월 5일 - 

 그렇지만 초판 서문이 더 좋다.
 지후가 아니었으면 '인생을 풍문듣듯 산다는 건 슬픈일입니다.'라는 이 멋진 문장을 다시는 들여다보지 못할 뻔 했구나. '매트릭스'도 있고 'CCTV'영화 번역 건도 있지만 요즘은 풍문을 듣듯 산다기 보다는 풍문이 뭔지도 모른채(혹은 조작된 풍문만을 듣고)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광장으로 뛰쳐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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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읽고 있다. 마르코폴로가 쿠빌라이칸에게 묘사했을 도시들의 이야기다. 읽고 있는 중이지만 무척 좋은 부분이 있어서 통으로 올린다.

제 1 부, 도시와 욕망2
남쪽으로 걸어간 여행자는 사흘째 되는 날 해질 무렵, 한 지점에서 똑같이 뻗어나간 운하들로 촉촉이 젖어 있고 연이 날아다니는 도시 아나스타시아를 만납니다. 저는 이제 이 도시에서 거래를 하면 이문이 남는, 마노, 줄마노, 녹옥수와 다양한 종류의 옥수 같은 상품들을 열거하려 합니다. 잘 마른 벚나무 장작으로 피운 불 위에서 구워 오레가노를 풍성하게 뿌린 황금빛 꿩고기의 맛을 칭찬할 수 있을 겁니다. 정원의 연못에서 목욕을 하는 여인들을 본 것과, 떠도는 소문에 따르면 그 여인들이 지나가는 여행객에게 옷을 벗고 물속에 들어와 자기들을 잡아보라며 유혹한다는 말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말하다 보면, 저는 폐하께 이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말씀드릴 수 없을 것입니다. 아나스타시아에 대한 묘사는 고작해야 폐하께서 억눌러야만 하는 욕망들을 한 번에 하나씩 일깨울 뿐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만약 폐하께서 어느 날 아침 아나스타시아의 심장부에서 눈을 뜬다면 모든 욕망이 동시에 잠에서 깨어 폐하를 에워싸 버릴 것입니다. 폐하께 도시는 모든 욕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완전체이며 폐하는 그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리고 도시가 폐하께서 즐기시지 못한 것을 즐기기 때문에 폐하는 이 욕망을 살리고 그것에 만족하시는 수밖에 없습니다. 때로는 사악하고 때로는 선량하기도 한 그런 힘을 매혹적인 도시 아나스타시아는 가지고 있습니다. 마노, 줄마노, 녹옥수를 세공하는 사람처럼 폐하께서 매일 하루 여덟 시간씩 일을 한다면 욕망에 형태를 부여하는 폐하의 노동은 욕망을 통해 자신의 형태를 취하게 될 것입니다. 폐하는 자신이 아나스타시아 전체를 즐기고 있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사실 폐하는 그 도시의 노예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이탈로 칼비노의 '우주만화'를 정말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나무 위의 남작'도 얼른 읽어야겠다. 옮겨 놓고 다시 읽는데, 머릿속이 빙빙돈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구나.... 동료들에게 글 쓰는건 재주가 아니라는 말을 자주 듣는데.... 글 쓰는 건 훌륭한 재주임에 틀림없다. 부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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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법

그때그때 2008. 11. 15. 14:10

 아껴써야 하는 시기에 저작권 법에 걸려서 벌금 낼까봐 어제 가요 포스팅들을 비공개로 돌렸다가 다시 공개로 돌렸다.

 어떤 형태로든 내가 올린 음악에 대한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고소를 하면(가장 손쉬운 예로는 이런 불경기에 법률 사무소에서 내 블로그의 위반 사례를 찾아서 음반사 대표에게 전화를 한다. "고소 하시고 합의금은 5대5로 나누시죠?" "네!") 꼼짝없이 내가 돈을 내야 한다는 사실을 여러 검색을 통해서 알게 됐다.
 
 네이벙에서 검색해서 2008년 2월 29일 개정된 저작권법을 슬슬 읽어봤는데, 너무 어렵다. 법조문은 원래 어렵게 쓰는 법이다. 그래야 사람들이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니까 그렇다. 

 현행 저작권 법의 논리를 엄정하게 들이대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상상해 봤다. 수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시를 통으로 올리거나 소설을 인용한 블로거에 대해서 고소장을 신청한다. 음악의 경우 작곡가, 작사가, 가수들이 같은 곡에 대해서 고소장을 신청한다. 국내에 돌고 있는 동영상의 98퍼센트 정도가 저작권 위반으로 삭제된다. 순수창작물과 언론사의 동영상만 살아남는다. 블로그에는 일기를 쓰는 것과 자신이 작곡한 곡을 올리고 자기가 찍은 사진, 자기가 그린 그림을 올리는 것만 허용된다. 자기가 본 영화의 장면을 캡쳐해서 올리는 것도 불법이 된다. 
 이를테면 내가 '장기하와 얼굴들' 시디를 샀다. 어떤 곡이 좋아서 립을 해서 티스토리 블로그에 올렸다. 그럴것 같지 않지만 '장기하'씨가 나를 고소하면서 '네가 올린 음악 때문에 사람들이 시디도 사고 멜론에서 개별곡도 사야 되는데, 네 블로그에서 들어버려서 내가 입은 손해가 엄청나거든, 그러니까 물어내!' 라고 한다는 것이다.

 인터넷이란 것이 결국은 극악한 통제를 합법화 하는데 아주 유용한 도구로 전락해 버리는 것이구나.......

 지극히 현실적인 결과로는 어딘가에서 고소가 들어와서 내가 합의금을 내고 지금까지 블로그에 올린 파일들을 다 삭제하고 블로그를 폐쇄하고 마음에 상처를 입는 것이 되겠다.


'저작권법 위반'으로 검색하면 이런 화면이 뜬다. 공부해서 판사도 하셨던 분이, 어렵다는 법 공부를 하셨다는 사람들이 대한민국 5퍼센트라는 사람들이 이러고 있다. 그 틈새를 노리는 법원 제출용 증거를 확보하는 회사도 생겼다. 좋게 얘기하면 '열심히 공부해서 고시를 패스하셨으니 돈을 많이 벌어야겠고, 틈새를 노린 새로운 시장이 창출 되었다.' 정도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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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2 여러가지

그때그때 2008. 11. 12. 21:08

일! 해야 되는데, 이러고 있다. 낮에 논 것도 아닌데, 밤에도 줄창 바쁘다. 집에가면 씻지도 못하고 몸을 누일때가 많다. 이런 나이지만............. 하루에도 몇 번이고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원래 아고라에 잘 안 갔었는데(원래는 '다음'에 잘 안 갔었는데) 촛불 이후로 아고라에 자주 가고 있다. 촛불이 끝나는 지점과 동시에 아고라의 메인이슈가 경제로 돌아섰다. 그러니까 경제 얘기가 주된 이슈가 된지 몇 달이 지났다. 전체적인 진행을 보면 서브프라임으로 시작한 위기가 한국에도 타격을 줄 것이다.가 선두에 섰다가 실제로 서브 프라임이 제대로 터지고 금융제국 미국의 금융권이 아작나기 시작하면서 봐라.. 내가 터진다고 했지않냐는 글들로 이어지면서 얼른 개미들은 손 빼는게 상책이다. 한국은 이제 시작이다라는 얘기들이 덧붙여 지고(물론 현 정부에 대한 욕이란 욕은 다 나오면서..."건설 정권" 무척이나 맞는 말이다.) 주가가 오르고 환율이 조금 안정을 찾는 것 같던 며칠간 잠잠하더니(이 때도 실물 경제 위기 얘기는 나오고 있었다.) 한국의 실물경제 위기에 대한 신문 기사를 읽은 시점과 비슷한 시점에 다시 현재 상황에 대한 애처러운 절규와(사업을 접으시는 자영업자 이야기) 푸념(현실적으로 푸념말고 대책이 없는 것도 사실임) 들이 쏟아지고 있다.
아고라의 글들과 지금의 위기를 다룬 신문기사들을 읽으면서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그리운 엄마, 보고 싶은 엄마, 나를 너무 사랑하는 엄마....
11월 들어 가게에 손님이 뚝 끊겼다고 한다. 지방에는 문 닫는 가게들이 많다던데, 오산도 그렇냐고 물으니 왠만한 식당들 다 문 닫고 있다고 하신다. 어제도 그제도 오늘도 손님 없으면 일찍 문 닫고 푹 쉬고, 가게를 정리하는 것도 생각해 보라고 했다. 어제까지는 그냥 알았다고만 하더니 삼일 연속으로 내가 정리 얘기를 하자 아들이 많이 벌어다 주겠다면, 그것도 생각해 보고 있다고 하신다. 오늘은 두 번 통화했는데, 아침에는 정신 없을 때 통화하는 바람에 뭔가 정리도 제대로 못하고 전화를 끊어서 점심때 다시 걸었다. 예전에는 가끔 그랬는데, 요즘들어 전화를 끊을 때, 엄마가 "아들 사랑해" 라는 말을 하려다가 못 하고 끊는 것을 느낀다. 21살에 나를 낳은 엄마,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나를 안고 머리를 감겨주신 엄마, 군병원에 있는 못난 아들 보러 빚내서 비행기 타고 대구에 내려왔던 엄마, 다른 애들처럼 못해줘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엄마, 혼자 오산에 내려가서 남들 다 욕하는 술장사로 500에 20짜리에서 1000에 7짜리로 2000전세로 동업에서 사장으로 애쓴 엄마, 그 전세금 못 돌려받을까봐 혼자 전입신고도 한 엄마, 새벽에 취한 목소리로 가끔 전화해서 밝은 목소리로 "아들"이라고 불러주는 엄마, 취한 손님 내보내고 가게문 닫기 위해서 5분 있다가 전화하라고 새벽 1시에 전화하는 엄마.... 투정이 많았던 나, 스물 다섯도 넘은 아들이 불안에 못 이겨 엄마 품에 울면 "씩씩하게 살라"고 해주던 엄마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SKT랑 일을 하는 바람에 차장급의 매니저를 알게 됐는데, 업무상 네이트 온에서 괜찮으시냐고 물었더니 SKT 안에 있으면 바깥이야 어떻든 큰 걱정은 없지요라고 했다.
대학원 졸업을 앞둔 직장(?) 동료들은 1600 받고 모 회사에 들어갈 바에는 커피숍 알바를 10시간 하는게 낫겠다고 했다.(형우의 전언으로는 그 모 회사에는 안 들어가는게 낫다고 한다.) 
광호는 자기 회사는 특별히 큰 잘못만 안하면 짤릴 걱정은 없다고 했다.(준 공무원이기 때문에...)
영일이는 안정적인 자리가 있으면 카센타 사장도 포기하겠다고 했고(영일아 그게 제일 안정적이다. 물론 약간의 불확실성은 있어.) 기타 선생님 동현군은 전화 통화에서 다들 힘든 시기니 힘내라고 했더니(동현이는 구직중이다. 알바도 구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정말 순수함이 가득한 목소리로 형도 힘들어요? 라고 물어서 무의식 적으로 아니라고 했다.

문제는 SKT 안에 있어도 언제 잘릴지는 모른다는 점이고 잘리면 밖으로 나와야 된다는 것, 공무원도 큰 잘못 없이 짤릴 수도 있는 세상이라는 점, 비정규직과 알바자리는 항상 넘칠 것 같던 고용시장이었지만 지금은 알바 구하기도 어렵게 됐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또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정말 바닥까지 가면 어떻게 될까? 아까 지후랑 잠깐 얘기했는데, 나는 특유의 잘 살아보세로 다시 불쑥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새로 일어날 때는 아까 지후랑 잠깐 얘기한데로, 괜히 금모으기 같은거 해서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이 많은 사람들 못살게 만들고 바깥에 보이는 경제만 살리겠다는 것을 돕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어느 나라보다도 정정당당하고 모두가 행복한 나라로 다시  일어났으면 좋겠다. 이건 정말 바닥까지 갔을때의 얘기인데, 정부가 쏟아내는 (건설)경기 부양책들을 보면 바닥까지 가는 건 거의 기정사실화 되어 있는 것 같다. 국민의 90 퍼센트 이상이 그날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할 정도는 되야 진짜 바닥이 좀 보이겠다. 쓰면서도 너무 극단적이다.(통제 불능의 사회와 대규모 봉기 같은 것이 막 떠오른다. 광호는 인구가 줄어야 한다고 얘기했었지..... 전쟁이라도 확 났으면 좋겠다고, 진경씨는 전쟁이 나더라도 다 같이 죽을 때, 자기도 같이 죽으면 억울하지 않을 것 같다고 했었고 나는 같은 주제로 폐허가 된 세상이더라도 살아남아서 끝을 보고 싶다고 얘기했었다.)

각설하고 나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나만 열심히 해서 나만 잘 먹고 잘 살고 싶지는 않다. 물론 내가 열심히 한다고 내가 잘 먹고 잘 산다는 보장은 전혀 없는 상황이긴 하지만.....

사실 실물경제라고 부르는 것 조차도 내게는 뚜렷한 실물로 보이지 않는다.
정진규 시인의 시와는 다른 의미로 실물들이 나를 비웃는다. 
지금 같은 시점에 '돌뗏목'의 영화화는 무척 절실하다.
불가능 하겠지만 가급적 내가 꼭 만들어 보고 싶다.

일 해야겠다.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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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집에서 아무 것도 안 하면 술도 먹고 싶지 않지만 뭐든 일을 하면 술이 먹고 싶게 마련이다.
이번주는 좀 한가할 듯 해서 좀 쉬고 싶었는데, 이상하리만치 숨도 못 쉴 만큼 바빴다.
이번주도 이러니 다음주는 어떠하랴 ㅡ.ㅡ

고구미 군이 고향에 내려간 것이 섭섭하다.
동키군은 심리적으로 다운됐는지 연락이 안된다.
오랜만에 연락된 대성군은 부담스럽다.
할 수 없이 부부싸움을 크게 했다는 조군에게 연락했다.
조군, 참치 사줘! 

배 고프다.

수요일에 12시에 집에 도착해서 배가 고팠다. 라면이 먹고 싶었는데, 라면도 없고 밥도 없었다.
냉동실에 물만두가 있길래 잔뜩 끓이고 반 남은 스팸을 후라이팬 대용의 냄비에다 구웠다.
물만두 포장지에 찬물에 식혀 먹으라고 되어 있길래 찬물에 식히려다가
이것저것 많이 들어 있는 설거지 통에 만두를 다량 쏟았다.
5초쯤 망설이다가 배고픈 김에 그냥 먹었다. 망설이지 말고 바로 집을껄....(짧은 시간동안 이걸 꺼내서 다시 끓일까? 생각했다.)
스팸을 간장 삼아 맛있게 먹었다.

뭔가 일이 덜 끝났지만 7시에는 퇴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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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과'

그때그때 2008. 11. 4. 23:46

4년만에 개봉했다고 했건만 2008 청어람 작품으로 찍혀있는 영화다.

예고편에 이선균이 "내가 사라지는 것 같아."라고 말한게 좋아서 그 내막이 알고 싶었는데, 끝까지 보니까 그 내막이 나온다.

'내가 너보다 나를 더 사랑하기 때문에 너한테 맞춰주면서 나를 죽이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는 요지다.

영화의 요지는 '사람 사는 건 역시나 만만치 않다.' 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람이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즐거운 시간들만 보고 살 수는 없다.' 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필름포럼 제일 앞자리에서 봤는데, 자리는 좋았다. 영화는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가까이서 들고서 찍은 샷 보다는 먼데서 차분하게 찍은 샷이 좋다.

오즈 영화를 극장에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극장에서 영화본게 정말 오랜만이다. 혼자라도 좋으니 송도유원지에서 관람차 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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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목요일이고 금방 11월이다.
보통은 이번달에는 어떻게... 같은 계획은 없는 편인데,
통장 잔고를 확인하고 11월 계획을 세웠다.
담배랑 교통비 말고는 돈을 쓰면 안되겠다.
악마성 '빼앗긴 각인'은 얼른 다 깨고 DS를 다시 봉인해야겠다. 사람이 초췌해진다.
기타연습에 매진해야겠다. 아직 연습곡을 못 고르고 있다.
그리고 일은 무조건 열심히 해야지.

단순한 계획이다.

겨울이 오지 않을 것 같았는데, 어느덧 겨울이다.

올 겨울에는 눈이 소복히 쌓인 초등학교 운동장을 제일 먼저 밟는 기쁨을 누리겠다는 생각을 하니 머릿속에 하얗다.
꼭 밟겠다기 보다는 초등학교 정문을 들어서서 하얀 운동장을 지켜보고 싶다는 정도가 맞겠다. 머릿속에 눈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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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23 마초

그때그때 2008. 10. 23. 13:11
라는 얘기를 들었다. 물론 처음 듣는 얘기도 아니고 어떤 자리에서는 공공연히 나도 마초인가 보다라고 얘기한 적도 있으니 그리 충격 받을 일은 아니지만, 그 얘기가 나오게 된 연유가 궁금하다.

어떤 사람을 마초라고 부르는 것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가장 밑바탕에는 가부장제의 무엇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깔려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장남이니까 부모님을 모셔야 하는데..하는 걱정이라던가 하얀거탑의 김명민과 정영숙씨의 관계를 보면서 가슴 아파 한다던가 친구가 한 "그래서 네 동생은 어떻게 할껀데?"란 얘기에 자극을 받는다던가 하는 일이 그런 사례일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힘으로 일관되는 남자들 사이의 관계를 은연중에 즐기고 있는 내 모습이 있을 것인데, 남성 중심의 한국 사회에서 어쨋든 가부장제가 지배하는 가정에서 어려서부터 남자로 살면서 쌓아온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중/고등학교 때, 힘이 없으면 힘 있는 애들에게 당한다던가(진우는 아직도 영일이한테 불만이 남아 있다.) 하는 것이 그런 것인데, 변변치 않은 힘이지만 누구보다는 내가 힘으로 강하니까 친구니까 라는 명목으로 앞에 앉은 사람을 욕한다던가(대 놓고 그러지는 않는데...ㅡ.ㅡ) 벼랑 끝으로 몰고가는 대화를 유도한다던가(자주 있는 일이다... ㅡ.ㅡ;) 하는 내 모습이 그런 것이다.

내가 충격 받았던 것은 겉으로는 안 그런것 같은데, 실제로는 마초다 라는 얘기 때문이었는데... 무척 맞는 말이었기 때문에 충격 받았을까?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 되버렸다.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은 언제까지나 목표일 뿐일까? 

어제는 시나리오를 하나 읽었고 고구미, 승원군과 술을 마셨는데.. 많이 마셨다. 기분 좋았다. 다만 지후에게 미안하다. 두고두고 진심을 다해서 갚아야 할 일이다. 마음을 움켜잡고 조심스럽지만 두터운 발걸음으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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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니에(Jean Grenier)

2008. 10. 19. 03:02

내 생에 단 두명의 작가가 있다면(조금 극단적이긴 한데...) 그르니에와 사라마구이고, 단 한명의 작가가 있다면 언제라도 자신있게 그르니에 라고 하겠다. 위대한 작가들의 죽음에 대한 통찰을 읽을때, 나는 굉장한 희열을 느낀다. 아까 커피숍에서 한참 수다 떨다가 그르니에 얘기가 나온 김에 올려본다.

 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이 낯선 어느 도시에 도착하는 것을 몹시도 원했었다. 나는 겸허하게, 그리고 가난하게 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무엇보다도 <비밀>을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섬'의 케르겔렌 군도 중에서

'섬'은 전체가 다 훌륭하지만 특별히 케르겔렌 군도 편은 사람을 미치게 하는 측면이 있다. 너무 좋아서 전체를 타이핑 한 적도 있었다. 내 불안의 터널에 출구를 어느정도 보여준 명문이다. 민음사 버전은 친구에게 준 관계로 청하 출판사 버전으로 올린다. 확실히 민음사 김화영선생의 번역이 좀 더 매끄럽지만 같은 맥락이다. '케르겔렌 군도'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에세이가 아닐까...

 아침이면 산 피에트로 성당에서 그레고리오 미사가 열리고, 저녁이면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대의 온천장에서 음악회가 열린다. 하루 종일 대괴석들의 황홀한 흰빛을 볼 수 있고, 밤새도록 분수에서 쏟아지는 물소리를 들을 수 있다. 우리는 살아있는 것들과 함께 있을 때 오히려 더 많은 외로움을 느낀다.

 '지중해의 영감' 이탈리아.... 에서 

 태양은 아프리카 산 위로 불쑥 솟아올라 사슴 빛깔로 물들이며 하루 종일 머물러 있다. 사람들은 바닷속에 다리가 잠길 정도록 길게 기지개를 켜는 이 짐승과도 같은 빛깔을 애무하고 싶어할 것이다.

 익명의 인간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나의 일, 나의 직업, 나의 가족, 심지어 나 자신에 대해서조차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를 곧 잊을 수 있을 것이며, 나를 잘 알아볼 수 없을 것이다. 더 이상 맡아야 할 역할도 없고, 더 이상 일부러 꾸며서 해야 할 어떤 태도도 이제는 없다.

 '지중해의 영감' 북아프리카....에서 

 만일 인간이 어떤 가치를 갖는다면, 그것은 그가 풍경보다 훨씬 더 멀리있는 죽음을 늘 자신의 배경처럼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죽음이 없다면 인간은 자기를 깨달을 수 없을 것이다. 언제나 존재하는 자신의 최후에 대한 첨예한 직감만이 오로지 욕망에 한계가 있음을 알려준다.

 '지중해의 영감' 에서

 지중해의 영감도 누군가에게 줘 버렸는데..기록해둔 노트를 오랜만에 꺼내보니 기록해 두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탈리아 편에서 옮긴 부분이 아까 얘기하고 싶었는데, 정확히 기억이 안 났던 그 대목이다.

 예전에 신대성 군과 그르니에 얘기를 했었는데, 대성군은 그르니에가 제 1세계의 돈 걱정 없는 교수이기 때문에 아름답지만 태평해 보이고 마음속은 나약한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것 같다고 했었다. 나도 어느정도는 동의하지만 그르니에의 글의 훌륭함은 나쁘게 볼 수 있는 모든 방향을 다 취해보아도 바뀌지 않는 그런 차원의 것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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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이라는 것

그때그때 2008. 10. 15. 00:49
                                                                                                        by Zdzislaw Beksinski

돈은 눈에 보이는 것이지만(실물 경제의 영역에 있지만) 돈 가지고 장난하는 금융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여러 금융회사들을 파국으로 몰고간다. 거품을 이끌어 낸 투자은행들 다 망해버렸으면 좋겠지만 자본주의와 시장이라는 것이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결국 자본주의의 뿌리는 다 같이 잘 살아 봅시다가 아니라 돈 있는 사람들은 계속 돈을 부풀리게 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눈에 보이는 땅만 사던 시절을 넘어서 주식으로 펀드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소위 잘났다는 소수의 금융업계의 종사자들은 자본의 대열에 몸을 맡겨 보려고 마음 먹은 사람들을 눈에 보이지도 않는 금융이라는 실체로 유혹하고 몸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저 밑바닥에서 오늘도 피땀을 흘린다. 백진스키의 그림에서 양분을 빨아 먹고 있는 쪽은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인 것이다.

주가가 급반등 했고 환율이 안정을 찾았다. 세계의 정상들이 돈을 풀기로 한 덕분이다. 미국에서 시작된 거품의 붕괴가 전세계로 퍼져나가는 것을 막았다는 점에서 그들은 자축하고 있을 것이다. 자축하고 있는 그들은 누구일까? 거품을 거품으로 막은 꼴이 아닐까? 중앙정부의 투자은행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면 위기 없이 안정을 누리게 되는 것은 전 인류의 몇 퍼센트 쯤 될까?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지켜보고 싶었는데... 자본주의가 시작부터 나빴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 다음이 없다.
인류가 쌓아온 지식의 끝이 겨우 이 자본주의였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곪을대로 곪아 터진 그 다음이 보고 싶다.

정말이지 이상할 정도로 주변에 안 힘든 사람이 없다.
원래 사는게 그렇지라는 것은 몹쓸 자조다.
울고 싶을 때는 하얀거탑 마지막회를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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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 노향림

2008. 10. 9. 00:10

    소리     - 노향림 -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내 남자친구는 트럼페터입니다.

 조금씩 폐허가 된 生活이 놓여 있지만
 그쪽 벌판을 잘 보지 않습니다.

 저 溫氣를 서로 부비는 풀잎들에게서
 이 마음 끝까지 뻗은 길을 소리들이 가고 있습니다.

 삭은 內衣를 걸친채 그는
 트럼펫 부는 일이 全部였습니다.

 누구든지 꿈을 선택하고
 꿈으로만 자신을 꾸미는 일.
 숲속의 나무들이 그런 일 속에 잔뜩 묻혀 있습니다.

 그가 부는 트럼펫 소리는 하늘에서
 먼저 가 있던 소리를 만나 어깨를
 감싸고 같이 걷습니다.

 북만드는 나무라도 일찍 찍으러 간
 모양입니다.
 내 남자친구는.

성미정 시로 기억하고 있었다니, 나이 먹는게 서럽다.
기억력 감퇴에는 토비콤이라는 약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기타를 치는 남자친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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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이다. 하지만 믿기지 않는 더위다. 계속 덥기 때문에 흘러간 시간들이 믿기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아사노 이니오의 '이 멋진 세상'과 '소라닌'을 읽었다.
미시마 유키오의 '파도소리'를 읽었다.
이번주 한겨레 21을 읽었다.

소박하게 사는 섬마을에서는 기력(기백)이 있는 가난한 남자가 지역 유지의 딸과 사랑을 이루지만 방황하는 청춘들이 즐비한 도쿄에서는 기백만으로 2DK를 유지하고 살 수가 없다. YTN 노조가 자기들 손으로 지켜낸 회사를 다시 한 번 지키고자 한다는 기사는 울컥했지만 YTN노조는 방황하는 청춘과는 거리가 멀고 나는 지금 방황하는 청춘이다.

기백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어떤 기백이 아니라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순수한 마음 같은 것인데, 억만장자가 아니라면 도시에서 기백을 갖고 사는 것을 불가능 하지 않을까? 무척이나 즐거운 마음을 가진 부랑자는 그런 것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부랑자는 배가본드 배가본드는 미야모토 무사시는 기백이 있는 남자라는 공식도 어느정도 성립한다.
이리하여 다시 헤세의 '크눌프'로 돌아오는 것인데, 청춘의 기백이 사라진 여행의 마지막에 그가 신과 나눈 대화처럼
(그것이 스스로의 깨달음이라고는 말하지 말아주세요.) 누군가가 내 하소연을 들어주고 위안이 되어 준다면 그리고 그 위안이 당신이라면...........

우리는 먼 곳을 향해 있는 가슴속이 닮았지만 나는 끝없이 달아나다 현실로 돌아왔고 당신은 현실에 있으면서도 있지 않은 척 하다가 다시 달아나 버렸다. 

뭐가 됐든 기백으로 정면 승부다. 모든 것이 이명박 때문이라는 것은 언제라도 첫 번째 이유가 될 수 없다.

"남자는 기력이야. 기력만 있으면 그만이야. 이 우타 섬의 남자가 되어서 그게 없으면 못써. 집안과 재산은 둘째 문제야. 그렇지 않은가. 등대장 부인. 신지는 기력을 갖고 있는 남자야."                - '파도소리'의 마지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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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

사진 2008. 9. 25. 21:39



요즘 살짝 우울한데... 회사에서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있는 마네킹 팔이다. 이름은 제니라고 한다. 옆에 사무실에서 붙여준 이름이고 옆 사무실 물건인데, 내가 수족처럼 부리고 있다. 당신만큼은 아니지만 제니가 있어서 여러가지로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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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 - 서른 살

2008. 9. 23. 10:04

 서른 살  - 진은영-

어두운 복도 끝에서 괘종시계 치는 소리
1시와 2시 사이에도
11시와 12시 사이에도
똑같이 한 번만 울리는 것
그것은 뜻하지 않은 환기, 소득 없는 각성
몇 시와 몇 시의 중간 지대를 지나고 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단지 무언가의 절반만큼 네가 왔다는 것

돌아가든 나아가든 모든 것은 너의 결정에 달렷다는 듯
지금부터 저지른 악덕은 죽을 때까지 기억난다


나의 악덕 때문에 이 시를 좋아했는데, 달아날 수도 없는 서른이 되어 이 시를 다시 생각해 보니
뜻하지 않은 환기와 소득 없는 각성 쪽이 와 닿는다. 지나간 나의 악덕들은 죽을때까지 기억나지 않았으면 한다.
이제부터의 악덕은 어쩔 수 없는 것이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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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6 여러가지

그때그때 2008. 9. 16. 21:02
내가 생각해도 웃기는데, 뭔가 전혀 벗어나질 못 하고 있다. 지겨운 반복이다. 분명 같지 않은 날들인데, 같은 생각들...
결국 제자리에서 숨만 헐떡이고 있다.
엄마를 만났고, 동생과 얘기했고, 친구들도 만났다. 지겨운 반복이다. 같은 얘기들 같은 질문들 같은 대답들 같은 생각들...
추석이었다. 막내 삼촌네와 고모네가 다녀갔다. 지겨운 반복이다. 같은 패턴들, 같은 행동들, 같은 생각들...

지겨운 반복이지만 그 반복이 지겨운 것이 아니라 반복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무섭다. 다들 그렇게 산다고들 한다. "인생 뭐 있어."랑 별반 다르지 않은 말이다. 내가 볼 때, 나는 다들처럼 그렇게 살기도 하고 그렇게 살지 않기도 하는것 같은데, 그렇게 사는 점 때문에 지겨운 반복이 계속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오랜만에 출근했더니 마음이 살짝 편안했다. 이 무슨 병이란 말인가....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하고 평화를 위해 나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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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인들은 비장애인들이 보지 못하는 독특한 패턴을 읽는다. 그 패턴의 분석을 통해 회사의 이익에 기여한다. 그 대가로 높은 보수와 쾌적한 근무환경을 보장 받는다. 주인공 루는 일에서 뿐만 아니라 생활 전체를 하나의 패턴으로 이해하는 자폐아다.(40대이기 때문에 자폐인이라고 하는 게 맞나?) 펜싱 모임의 누군가에게 사랑을 느끼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패턴으로 분석하고 보통의 관계들이란 무엇인지를 궁금해한다. 이 소설은 스스로 극복하는 장애와 같은 고리타분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기 보다는 관계에 대한 특별한 성찰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다른 사람들 보다 특별히 '특별한 주인공'의 고립된 상황과 고립된 정신세계에 몰입하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 살인 당할 위험을 이겨내고 담담하게 운전을 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자폐아 주인공이라.... 무척 좋았다.

109 페이지,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은 백 년 전, 오십 년 전 등에 우리가 무엇을 알았는지 설명하는 긴 도입부이다. 나는 부모님이 어렸을 때 들었을 법한 얘기가 아니라, 우리가 지금 무엇을 아는지를 알고 싶다. 아주 먼 옛날, 화성에 운하가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고 한들 무엇이 달라질까?

142페이지, "어둠은 빛이 없는 곳이죠. 빛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곳이요. 어둠이 더 빠를 수도 있어요-항상 먼저 있으니까요."

362페이지, 나 자신이 지금 외상 후 상태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나를 죽이고 싶어하는 사람으로부터 공격을 받았으니, 비록 나는 특별히 스트레스를 받거나 흥분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외상이다. 어쩌면 정상인들은 거의 살해당할 뻔한 몇 시간 뒤에 앉아서 교과서를 읽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러는 쪽이 편안하다. 사실들은 여전히 여기에, 논리적인 순서로 구성되어 사실들을 선명히 드러나게 하려고 애쓴 사람에 의해 씌어 있다. 부모님이 내게, 이 행성에 사는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별들은 희미해지지도 다치지도 않고 계속해서 빛나리라고 말했을 때와 꼭 같다. 나는 내 주위에서는 산산조각난다 하더라도, 어딘가에 규칙이 존재하고 있음이 좋다.

439 페이지, 우리는 언제나 빛 안으로, 다시 밖으로 돌아간다. 우리의 밤과 낮을 만드는 것은 우리의 속도이다. 빛의 속도나 어둠의 속도가 아니다. 그가 나를 다치게 하고 싶어 했던 어두운 공간으로 우리를 이끈 것은 돈의 속도가 아니라 나의 속도였을까? 나를 구한 것은 나의 속도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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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이다. 가을이다. 말 그대로 하루종일 잠시도 쉬지 않고 비가 내리는 9월의 시작이다.

그리고 어제는 영일군이 결혼을 했다. 조금도 긴장한 기색을 보이지 않고 어느 친구의 말처럼 마치 두 번째 결혼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자연스러워 보였다. 삶이 크게 변한다기 보다는 같은 삶에 결혼이라는 이름을 얹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제수씨 쪽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지만 친지라는 개념의 새로운 사람들과 엮여야 한다는 점에서 아직까지 한국에서 결혼은 대체적으로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불편한 것이 사실인 것 같다.

그리고 어제는 수재 형을 몇년만에 길에서 마주쳤다. 굳이 말하자면 동네에 아는 형님인데, 이제 40이 훌쩍 넘으셨을 텐데도 여전히 혼자시고, 신월동에 사시고, 봉제공장 완성쪽에서 일하신다. 여전히 동안이고 웃는 얼굴이시고 자전거와 함께이며, 튼튼한 팔뚝을 자랑하신다. 어쩌면 이 형님이 나의 역할모델일 수도 있는 것인데, 나는 다만 서울이 아니라 작은 동네에서 형님과 비슷한 삶을 살고 싶은 것이다.

항상 웃는 얼굴로 하지만 비밀은 간직한 채,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낮에는 꾸준한 일(가급적 몸을 쓰는)을 하고 운동도 하고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하는 그런 모습을 상상해 본다. 기분이 좋아진다.

알프레드 베스터의 <타이거 타이거>는 정신감응을 통해 특정 좌표에서 특정 좌표로 순간이동 하는 '조운트'라는 것이 거의 모든 인간에게 보편화된 400년 후의 이야기다. 좌표를 알 수 없는 우주의 어느 공간으로 '조운트'를 해버린 남자가 복수의 화신이 되어 불타는 복수를 하는 이야기인데, 2차 세계 대전을 연상시키는 우주 전쟁이 한창인 가운데 인간성을 상실한 두 남녀가 서로 만나게 되는 이야기이다. - 문장을 이렇게 쓰니까 이야기인데, 이야기인 이상한 문장이 되버렸다. ^^- 뭐랄까 비열찬 캐릭터들이 잔뜩 등장하면서 하드보일드 탐정물 같은 느낌도 풍기면서 암튼 모호한 선과 악을 다루는 것 같기도 하면서 묘한 소설이다. 가장 좋았던 건 우주로 '조운트'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된 주인공이 스스로의 의지로 우주 조운트를 했을 때, 공간 뿐 아니라 시간의 경계 마저도 무너지면서 우주 탄생 이전의 어떤 핵심에도 도달해 본다는 점이었다. 물론 시간이 무너저 버렸기 때문에 바로 다시 현재로 돌아와 버린다. ->내가 읽으면서 내 느낌이 취해서 잘못 읽은 것일 수도 있다.

느낌에 취해서 잘못 읽게 만들어 버리는 소설은 좋은 소설인 것 같다. 감정이 메말랐으니 부풀기라도 잘 하는 것일까? 뭔가에 지쳤는데, 해결책이 안 보인다. 지쳐있는 쪽의 반대로 돌아선다고 해서 해결책이 보이는 것이 아닌 것이 사는 것이겠지~~ 사람의 손에 갇힌 바퀴 벌레가 방향을 바꾸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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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4

사진 2008. 8. 24. 22:05

8월이 간다. 이미 낮은 짧고 하늘은 점점 좋아질 것으로 기대해 본다. 지난주에 낙산에서 찍은 사진.. 카메라가 좋으니 빛이 쏟아지는 것이 나름대로 잡혔다. 빛 속으로 날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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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6 - 하늘

사진 2008. 8. 17. 13:12

하늘이 좋으면 어떻게 찍어도 나쁘지 않은 사진이 된다. 어제 홍대에서..
날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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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추가 지났지만 며칠간은 밤에도 더웠다. 보통은 입추가 지나면 아침 저녁으로는 살짝 시원한 바람이 불기도 하건만 시간의 힘만으로 우주의 변화를 이길 수는 없었나 보다.
 중국에서 올림픽을 하는데, 지아장커 영화의 주인공들이 많이 생각난다. 올림픽은 하는데...어디서 뭐하고 살고 있을까? 중국에는 "농민공"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한국의 60년대에 도시로 상경한 사람들과는 느낌이 좀 다르다. 오히려 산업혁명 이후에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 같은 느낌일까? '상계동 올림픽' 이후 20년이 지났지만 중국은 올림픽 한다고 사람들을 내 몰고 한국도 크게 달라진 건 없다.
 다만 베이징에서 어떻게 뭘 관리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올해는 황사 횟수가 적었고, 맑은 하늘이 많았다. 어제의 붉은 저녁 하늘도 보기 좋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약간 한가한 날들도 생기면서 살짝 슬럼프가 찾아왔다. 우려할 정도는 아닌데, 버티면 돈이 생긴다는 생각으로 깊은 수렁에 빠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나는 역시나 한심한 것 같다. 그리고 곧 바빠질테지~~~
 함춘호 아저씨가 라디오에 나와서 슬럼프가 자주 찾아온 다는 얘기를 한 것도 극복에 도움이 됐다. 하지만 대가에게 찾아오는 슬럼프와 즉물인간에게 찾아오는 슬럼프는 느낌이 너무나 다르다.
 암튼 여러가지에 약간 질렸다. 그 강도가 약간이라 다행이다. 내 단순한 계획을 위해서 내가 약간으로 조정하고 있는게 아니라면 좋겠다.
 지난 일요일에 찍은 사진 한 장~~ 비행기 g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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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빤따스띠크' 읽다가 르귄의 '기의 사람들' 이란 단편을 읽었다. 우리가 사는 차원면이 아닌 다른 차원면에 '기'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흡사 새와 같이 생겼다. 그들 중에 작은 확률로 성인이 되면서 날개가 생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곳의 역사에서 그런 사람들은 주술의 희생양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기의 사람들은 다른 차원면에서 온 사람들에게 그들이 특별히 묻지 않는한 날개가 나는 사람들에 대해서 말해주지 않는다. 날개가 돋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뼈가 가벼워 지고 나는 능력을 획득하게 되는데, 언제 날개의 기능이 정지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날지 않고 사는 사람도 있고, 나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다가 추락해서 죽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굳이 말해주지는 않는 정도의 비밀을 간직하는 사람들이란 것이 무척 마음에 들었고, 나도 언제 멈춰 버릴지 모르는 날개를 달고 펄럭펄럭 날아다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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