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후 할머니 화장터다. 할머니가 화장중이라는 모니터의 설명을 보면서 그 후손들이 소고기 국밥을 먹는다. 열세 개의 화장터에서 열세 구의 시체가 타고 유족들은 서울역 대합실 같은 장소에서 고인의 뼈를 기다린다. 몇 번 화장이 끝났습니다.란 기계음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온다. 죽음은 이렇게 시장의 물건처럼 흔한데, 오늘 이곳에서 본 어느 여고생의 영정사진과 그 친구들은 내 마음을 울린다. - 나는 삐뚤개 안경을 쓴 채 웃고있는 소녀의 부모를 생각했다. - 죽음은 이렇듯 귀하기도 하다.

큰이모 돌아가셨던 때가 생각난다. 벌써 오년도 지난 일이다. 큰이모는 많은 조카들 중에 유독 나를 좋아했던 것 같다. 또 많은 동생들 중에 우리 엄마를 가장 좋아했다. 자식 중에도 더 예쁜 녀석이 있고 엄마랑 아빠중에 더 좋아하는 쪽이 분명히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요즘말로 케미가 좋았달까? 그랬던 큰이모였는데도 이모가 죽기전에 마지막으로 만났던 순간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게 미안하다. 큰이모 발인날의 하늘은 적도의 바다처럼 푸르렀다. 큰 이모의 인생이 암흑처럼 어두웠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나의 큰이모가 그날의 하늘처럼 기분좋은 곳에 계시길 바라본다.

이런 자연스런 의미부여 속에 제사라는 풍습도 생긴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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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볼음도에 온지 365일째 되는 날이다. 그런데 지후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지금 고속버스 기다리고 있다. 섬생활 2년째를 여는 기념 밥을 장례식 장에서 먹게 됐다. 집에 있었으면 고구마 스물 두개 쪄 먹을랬더랬다.

우리 할머니는 치매가 온지 십년이 됐고 지금은 요양원을 나와서 강릉 삼촌집에 계시다. 지후 할머니도 치매인데, 오늘 돌아가셨다. 치매는 정말 무섭다. 초기에 발견해서 주뱐에서 많이 도와주면 증상의 진행을 멈추거나 늦출수도 있다는데, 우리 할머니는 그러질 못했다. 치매는 고통이다. 에니 아르노의 작품은 그것을 감각적으로 묘사했는데, 결국은 (감각적인) 고통이다. 어차피 고통이니까 감수성 넘치는 쪽이 더 좋을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지후는 병에 걸리면 곡기를 끊고 죽겠다고 한다. 묘비명은 밝은 목소리로 "안녕? 얘들아!"로 정했다. 지후는 길가의 나무나 돌, 개나 고양이 물고기에게 항상 밝게 인사하기 때문이다. 나도 병에 걸리면 곡기를 끊고 그냥 죽어야겠다. 병원은 죽어가는 사람의 생명줄만 연장시키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편하게 죽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달까? 내 묘비명은 차분한 말투로 "얘들아 안녕."으로 정했다. 지금 막 정했다.

어제 영일군이랑 술 마시다가 생각했다.

누군가 내 얼굴을 봤을 때, 저 사람 참 평온해 보이는구나. 생각하는 얼굴을 갖고 싶다. 그러려면 근심 걱정 없이 살아야 하는데, 아무일도 하지 않아서 걱정 없는 것이 아니라 시골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그런 얼굴을 원한다. 물론 지금만 해도 몇년 전 보다 많이 좋은 얼굴을 하고 있다.

올해는 백합 조개를 많이 잡을거다. 같이 잡게 놀러들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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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망고 15

사진 2014. 2. 9. 23:25

이망고님이 드디어 우리 텐트에 등정하셨다. 나랑은 반대로 하루하루성장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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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농, 살림을 디자인하다'를 오늘은 '유기농을 누가 망치는가'를 읽었다. 해는 길어졌지만 겨울은 길고 할일도 시간도 많은데, 아침에 일어나면 밖에 나가긴 싫으니 그동안 지후가 사둔 책들을 읽는다.

유기농이라 ......

유기농업은 무엇일까? 두 책 모두 소비자가 원하는 균일한 품질의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서 애쓰는 것이 아니라 지구와 생명을 사랑하는 농부가 가진 삶의 태도와 실천을 포함하는 총체적인 개념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를들어 낮에는 외국제 유기농 자재를 논밭에 잔뜩 투입하고 저녁에는 에어컨 빵빵 틀어놓고 수입 체리 먹다가 잠드는 농부는 유기농업을 하는 농부가 아니다. - 물론 생산물에는 유기농 인증을 받겠지만 -

그런면에서 나랑 지후는 꽤 잘하고 있다. - 물론 갈길은 멀고 멀고 멀다. - 원자력에 반대하는 의미로 전기도 무척 아껴쓰는 편이고 모든 논과밭을 유기농에 가깝게 일구었으며, - 작년에 고구마밭에는 독일제 화학비료를 넣었다. 논에 넣는 유박도 원재료가 외국제라 앞으로 어떻게 할지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 나는 옛날식 화장실에 똥오줌을 모으고 - 지후도 그러기로 함 - 올해는 빗물이용, 태양열 조리기 제작 등의 계획을 세웠다.

지금보다 생활에 들어가는 비용을 더 줄여야 - 전기를 자체적으로 얻는다거나 나무를 때는 난방을 도입하고 조리도 가스를 사용하지 않고 해야겠지. 근데 이와중에 아이폰 5s는 갖고 싶고 - 바깥 세계에 영향을 받지 않고 내가 원하는 자급하는 옛날식 농부의 삶을 살 수 있겠다. 나는 유명한 유기농부들처럼 책을 쓰는 것도 아니고 볼음도에는 아무런 일자리도 없지만 우리섬에는 백합조개가 있으니 조개 팔아서 시간을 벌 수 있다. 몸을 쓰는 일로 몸을 써서 생활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우리섬 참 좋다.

그런데 나는 왜 유기농을 추구하는가? 농사가 체질에 맞아서 농부가 되기로 한것처럼 유기농도 그냥 그게 좋고 옳다고 생각해서 원한다. 거창한 철학이 있어도 좋고 언젠간 그런 게 생길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지금대로 좋고 만족하니 좋다.

ebs에서 했던 '우리는 왜 대학에 가는가'를 몇 편 보다보니 뭔가 쓰고 싶어져서 끄적거려 본다. 생활의 규모를 줄이고 농사를 짓는 것이 체질에 맞는 대학생들이 많아져서 그네들도 다 농사 짓고 살면 좋겠다. 몇몇이라도 그런 결정을 하려면 우선 많은 사람들이 그런 삶을 경험 해봐야 하는데, - 일단 해봐야 자기 적성을 아니까 - 가장 좋은 방법은 방학 때 변산공동체 같은 곳에 머물렀던 학생들에게 학점을 (많이) 주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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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29 - 명절 1

그때그때 2014. 1. 29. 22:31
어제 광양에 왔다. 장인어른, 장모님은 평소에 서울에 계셔서 자주 뵙는다. 그렇지만 결혼하고 명절에 한 번도 광양에 오질 않아서 이번 설에는 꼭 내려오고 싶었다. 도착하자마자 저녁을 먹었다. 올해는 소식을 하겠다고 장모님께 말씀드렸다. 그런건 집에 가서 하라고 하셔서, 예 하고 대답하고는 차려주신 걸 다 먹었다. 밥 먹고는 과일을 먹었다. - 밥만 먹으면 끝일 거라고 생각해서 밥을 배불리 먹었더랬다. - 곧이어 하드를 먹었다. 곧이어 맥주 얘기를 하셔서 안 먹겠다고 했다. 장모님이 먹겠다는 걸로 들으셨는지 술과 안주를 내오셔서 또 먹었다. 가족의 증명은 과식인데, 잘 먹는 것이야 말로 함께 살지 않는 가족들이 자신들의 유대를 확인하는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 함께 고생하는 건 모두가 싫어하지만 최고로 확실한 방법 - 오늘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잘 먹었다.

내일 신월동으로 간다. 우리집에선 우리집대로 잘 먹겠지.

장모님, 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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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20 - 달리기를 하는 꿈을 꿨다. 나는 달리기는 단거리건 장거리건 잼병이다. 그런데 꿈에서는 지치지도 않고 잘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하늘에서 폭탄이 떨어지고 전쟁이 났다. 개꿈이다. 인생은 장거리 레이스니까 올해는 너무 초조해하지 말아야지.

인생의 첫 번째 피시앤칩스를 먹었다. 영국에서 많이 먹어봤다는 아내는 제주도에서 먹는다는 점에 감격했다. 흰살 생선이면 오케이라니까 올봄에 숭어 잡으면 한 번 튀겨 먹어야겠다. 볼음도에서 손님이 거의 없는 작은 식당을 하면 어떨까? 메뉴는 온리 피시앤칩스다.

해안도로를 달렸다. 제주도는 정말 바다도 예쁘고 넓은 섬이다. 그래도 우리섬이 더 좋아. 이유는 제주에는 논이 없어서 농촌이란 느낌이 없다. 그리고 너무 넓어서 자동차가 없이 살기가 힘들다. 반면에 우리 동네는 섬 끝집인 우리집에서 오십분만 걸으면 반대편 끝인 선창에 닿는다. 이유가 궁색하네. 그냥 우리 동네가 더 좋다.

순호형네 인사드리러 갔더랬다. 실상은 누나(형수) 보러 갔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올해부터 귤이랑 쌀이랑 교환해 먹어요.

목욕탕에서 내 몸뚱이를 봤다. 구리다. 성찰하는 삶의 구체적 실천에 소식도 포함해야겠다. - 금연, 소식, 비폭력 대화 - 몸이 무거워서야 가벼운 삶을 살 수 없다. 가볍고 가뿐하게.

20140121 - 지후 생일이다. 오탄죠비오 오메데또 했더니 아리가또오 한다. 그리고 오늘은 포비랑 망고 보는 날이다. 얼른 보고 싶다. 포비는 이제부터 주인말 듣는 훈련에 돌입한다. 일주일 정도 나와 있어보니 우리동네가 참 좋은 동네란 생각이 들었다. 주민들은 개발과 발전을 원한다. 죄송하지만 나는 이대로가 좋다. 이제 곧 2월이다. 작년보다 모든면에서 나아지려면 슬슬 몸을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하면 그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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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17 - 준희형을 만났다. 변산에 있을 때 룸메이트다. 저녁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형은 고향인 제주로 왔지만 모아 놓은 돈이 없고 땅을 구하는 일도 쉽지가 않다고 했다. 그래서 가구일을 일년했고 지금은 농업 관련일을 하기 위해서 귤 선과장에서 일한다고 했다. 우리가 가끔 불평하는 우리 섬과 집과 땅이 누군가는 간절히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r형도 제주에서 농사 지으려고 한다고 하고 사람들이 어딘가에서 이런저런 조건들에 적응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게 참 신기하다.

20140118 - 휴식일이다. 제주시로 왔다. 제주시에서 가장 좋은 모텔에서 자려고 했지만 검색에 걸리는 게 없어서 그냥 터미널 근처의 모텔에 들어왔다. 큰 테레비가 있고 뜨거운 물이 잘 나오니 안심이다. 주말인데도 방값이 사만원이다. 제주도는 이런점이 - 금요일 오후에도 사만원짜리 모텔방이 있음 - 좋다.

복권을 샀다. 제주에 와서 두 번 같은 꿈을 꿨기 때문이다. 산에서 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버섯을 만지는 꿈이었다. 복권은 낙첨이지만 r형이랑 통화했다. 변산에 있을 때 동무다. 얼굴이 보고 싶었는데 때가 안 맞아서 형은 고향인 충청도에 올라가 있었다. 다만 본인집에 문 열려 있으니 마음껏 써도 된다고 했다. 버섯꿈은 그것 때문이었나보다. 역시 돈보다는 사람이다.

준희형과도 r형과도 한 동네에서 주렁주렁 모여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것이다.

20140119 - 망고는 걱정이 없는데, 포비가 보고 싶다. 많이. 완이형한테 연락해서 포비 좀 보살펴 달라고 했다. 형, 고맙습니다.

아내 친구를 만났다. 폐쇄 수녀원에서 청원자로 생활하고 있는데, 마침 시기가 딱 맞아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친구는 기도를 하면서 자기 안의 어둠을 찾는다고 했다. 나는 올해 비폭력 대화를 공부하려고 한다. 끊임없는 자기성찰이 없다면 자본주의의 굴레를 피해가기 어렵겠다는 생각이다.

내일은 아내의 생일 전날을 맞아 양도 많고 맛있는 걸 먹을 생각이다. 이 풍요의 유혹을 어찌 없앨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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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15 - 제주도에 왔다. 비행기가 착륙하는데 왼쪽 눈썹 안쪽 혈관이 끊어질 듯 아팠다. 조금만 더 아팠으면 소리질렀을거다. 혈관이 기압차를 견디지 못한거겠지?

집을 떠나 먼 곳의 땅을 밟아도 설레질 않는다. 외국어가 들리지 않아서 그런가? 아니, 외국에 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공항버스를 타고 서귀포까지 오니 순호형이 마중 나오셨다. 지난 연말에 얼굴 한 번 본 것이 전부인 문창과 89학번 선배다. 내가 알고 있던 이 형에 대한 정보는 제주도에서 혼자 집을 짓고 사신다는 것. 내 생각은 자연스럽게 혼자 사는 제주 농부로 이어졌고 신월동 집에서 햄깡통이랑 꽁치 통조림을 챙겼다. 그런데 왠걸 아이가 둘 있는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계셨다. 형수가 형한테 밖에 나가서 홀아비 행세 하고 다니냐며 농담을 던졌다. 일우야 정신 차리자.

20140116 - 강정에 다녀왔다. 바다로 이어지는 강정천 바로 옆에 해군기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어쩌자는 것인가? 미사에 참석하고 공사장 입구에서 율동을 따라하다 보니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이 점심 먹고 돌아오는 시간이 됐다. 그분들에게는 생활이 달려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공사를 정당화 할 수는 없다. 해군기지 공사를 강행하는 입장에 공사 현장 노동자들의 생활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런데 누구도 위하지 않는 공사를 왜 하는거지? 사람보다 중요한 뭔가가 있나보다. 그게 뭔지 궁금하다.

저녁에는 대중이 형을 만났다. 함께 공연할 뮤지션들이랑 합석해서 마시고 놀았다. 김마스타의 라이브를 봤다. 완전 좋았다. 나랑 동갑내기인 게스트하우스 사장님 uk의 아웃사이더도 좋았다. 김마스타는 이문세의 '해바라기'를 세 번 불렀는데, 세 번 다 좋았다. 저녁에 놀때는 강정을 잊었더랬다. 하루에 한 번씩 공사중단을 기원해야지.

강정의 상황을 보면서 시스템과 국가 권력 앞에 무력한 인간이란 존재의 존재 의미가 무엇일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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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14 - 위태

그때그때 2014. 1. 14. 19:34
서울 왔다. 서울에 오면 위태롭다는 생각이 든다. 언덕에 줄지워 세워진 차들도, 에스컬레이터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도, 끝없이 이어진 건물들의 향연도 다 위태롭다. 실제로 위태로운 건 내 삶일텐데 저들을 보면서 억지로 위태롭다고 위안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내일은 제주도에 간다. 어떤 모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모험은 위태로운 법이다. 모험과 야구의 공통점 = 끝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니다. 요기 베라의 이 명언은 모든 존재들을 관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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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창하는 압도적인 질량을 가진 "사랑이라는 감정"을 짊어지고.... 우뭇가사리처럼 입에서 나온 말이 소위 "사랑의 말"인 것이다!!

농사 끝나고 만화책을 꽤 읽었는데, '와카마츠씨는 내 아내'가 그 중 최고다. '하렘 + 타임슬립'인가? 찌질이 주인공이 타임슬립을 할 때마다 미래가 바뀌면서 학교의 퀸카들이 번갈아 가며 주인공의 아내가 된다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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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블로그랑 페이스북을 링크를 공유하는 것 없이 연동하는 방법을 찾는데, rss graffiti란 걸 찾았다. 근데 사흘전부터 계속 안된다. 나도 이제 늙었나보다. 이런것도 한 번에 처리 못하다니. 계속 시도해 보다가 티스토리랑은 어떤가 싶어서 테스트로 글을 올린다.

 

 오늘 새벽까지 드퀘8을 했다. 거룡과의 전투가 여섯 번 남았지만 총 플레이타임 110시간에서 그만두기로 했다. 어쨋든 엔딩은 봤다. 드퀘는 전형적인 일본식 RPG다. mmorpg랑은 여러가지 차이가 있겠지만 게임 내적으로 가장 중요한 차이는 한정된 세계이고 외적인 차이는 혼자 한다는 점이다. 요즘은 GTA같은 완전 오픈월드 게임들이 인기가 있지만 일본식 알피지는 그 나름대로 한정된 세계안에서 숨겨진 요소들을 찾는 재미가 있다. 엔딩 후에도 "모험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라고 할 수 있는 요소가 있는 것이다. 다만 더 강한 적이 나타나지 않는 상황에서 숨겨진 요소들은 수집욕 강한 인간들에게나 먹혀든다. - 몬스터 도감을 완성하고 모든 스킬을 익히고 캐릭터 레벨을 99까지 만든다던가 하는 것 -

 패미콤 시절에 시작된 일본식 rpg는 슈패 시절에 정점을 찍는데, 게임 좀 했다는 우리 세대들은 다 알거다. 개인적으로는 슈패시절의 rpg붐과 일본 사람들의 어떤 특성이 결합해서 오타쿠와 히키코모리가 탄생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당시 일본어도 모르고 변변한 공략집도 없던 우리들은 일단 초반부터 레벨업에 몰두하고 마을에 들어가면 무조건 모든 npc에게 말을 걸고 npc의 질문에 '하이'하고 대답하고는 다음 던전으로 향했다. - 가끔은 '이이에'하고 대답해야 할 때도 있었다. - 그러다가 게임이 막힐 때는 게임잡지에 나온 공략을 찾기도 했다. 

 

 동료들을 모으고 주인공은 성장해 간다.는 인간의 rpg본능을 생각해 보건데 - 나만의 욕망인지도 모른다. rpg본능을 반영한 만화로는 원피스, 블리치, 나루토와 최근작은 7개의 대죄 - 바깥 세상에서 인정받는 일은 어려운 것이지만 게임 안에서 내 캐릭터가 마음껏 레벨을 올리는 것은 약간의 근성과 시간투자만으로 가능하기 때문에 지금도 rpg장르가 사랑받는 것 같다.

 

 와우, 휴대폰으로 ps2로 나왔던 게임을 하는 세상이 왔다. IT기술만 보면 미래에 사는 것이 맞는데, 삶이 허전한 것은 왜인가? 미래란게 원래 그런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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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05 - 음

그때그때 2014. 1. 5. 11:30
14년이다. 여전히 삶에 대한 긍정과 부정이 하루에도 몇 번씩 오락가락 한다.

아침에 포비 줄 엉킨 것 풀어주다가 포비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내가 알고 있던 그 얼굴이 아니다. 이 녀석은 어려서부터 나랑 함께했는데 어째서 내 머릿속에 있는 모습이 아닌걸까? 동네 닭을 잡아 먹어서? 아니다. 내가 내 마음대로 보기 때문이다. 인간의 눈을 믿을 수 없다.

엄마를 떠올려봤다. 엄마 얼굴이 가물가물하다. 얼굴이 가물가물해도 나는 엄마를 알아본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또는 눈이 외피만 보는 것은 아니다. 내가 보는 것에 오감과 내가 품고 있는 감정까지 더해져서 엄마를 본다.

지금 내 옆에 앉아 있는 아내를 본다. 물끄러미 본다. 귓밥이 보인다. 나는 내 아내의 실물을 보고 있는걸까?

세상에 정확한 것이란 없는듯하다. 정확한 것이 없으니 정답도 없다. 헌데 다들 정답이 없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자기가 정답이라고만 한다.

올해가 모든것을 내 맘대로만 바라보지 않는 원년이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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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망고 14

사진 2014. 1. 1. 13:51
망고야 해피뉴이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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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9 - 2013년

그때그때 2013. 12. 29. 11:44

섬으로 이사왔다. - 1년을 살았다. 환경에도 사람들한테도 적응하는 기간이었다. 주변에 고마운분들 천지다. 모두들 감사합니다. 어느정도 적응했다. 그렇다고 적응한대로만 살면 안된다. 시스템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치하는 삶을 살자.

농사를 지었다. - 농사일은 즐겁다. 소득과 판매 문제가 현실로 다가왔다. 내년에는 논도 밭도 좀 더 체계적으로 관리하자.

포비랑 망고 - 개랑 고양이의 성장을 지켜봤다. 성장을 보는 일은 즐겁다. 우리도 동물식구들을 좋아하고 동물식구들도 우리를 좋아한다. 이놈들 때문에 밖에 오래 나가 있을 수가 없다. 그래도 너희들이 좋다. 내년에는 포비가 새끼를 낳겠구나. 벌써부터 귀엽다.

바다 - 고기도 잡고 조개도 캐고 먹기도 많이 먹었다. 숭어, 광어, 도다리, 밴댕이, 낙지, 병어, 꽃게, 갯가재, 망둥이, 농어. 히히. 내년에는 생선회 써는 기술을 익혀서 아는 사람들 놀러오면 내가 회 썰어줘야지.

작목반 - 비전이 필요하다.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 내가 이 팀을 매니지먼트할 수 있을까? 형들이랑 내가 이름뿐이 아닌 자치하는 작목반을 만들 수 있을까? 우선 쌀 포장지 만들어야 하는데. 모이기가 쉽지 않네. 법륜 스님의 얘기 - ㅇㅇ해야 되는데. 라고 하는것은 하기 싫다는 뜻이다.

항상 그렇듯이 새해 계획은 좀 더 바지런하게다. 이십년 정도 지나면 바지런하게가 느긋하게로 바뀔까? 새해에는 느긋하면서 바지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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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5 - 풍요

그때그때 2013. 12. 25. 15:31
어제 서울 왔다. 엊그제가 장인어른 생일이었다. 미국식 레스토랑에서 장인어른에게 밥을 얻어 먹었다. 잘 먹었습니다.

밥 잘 얻어 먹고 풍요에 대해서 생각한다.

섬 밖으로 나오면 내가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풍요가 넘친다. 먹는 얘기로 시작했으니 먹는 걸로만 써본다. 결혼식에서 먹는 뷔페, 영일이가 사준 중국요리, 엄마가 사주는 소고기, 동생이 사주는 피자까지 그 양만 풍성한 것이 아니라 종류도 다양하다. 마을 회관에서도 매일 점심상에 돼지고기가 올라온다. 아무튼 필요 이상으로 잘 먹고 산다.

문득 나는 가난한 상차림과 그런 삶을 좋아하는데 추구하지는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은 가난하지만 밖에 한 번씩 나와서 잠깐 풍요를 누리는 선택을 마다하지 않는다.

나는 풍요를 선택할 수 있는 지금의 상황을 즐기고 있을 뿐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나란 놈이 참 별로다.

친구 s는 몇년전부터 채식을 한다. 이유야 잘 모르겠지만 그 친구는 그것으로 먹는 것의 풍요로부터 탈출했다. 나도 조금씩 고기 섭취를 줄여야겠다. 너무 나 편하고 마음가는대로만 살았다는 반성을 해본다. 때는 세밑이다.

오늘은 아내 지인의 결혼식에 왔다. 지하층에 차려진 뷔페 먹으러 가기전에 쓴다. 오늘도 잘 먹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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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월동에 왔다가 이발소에 들렀다. 몇 년 전에 한 번 머리를 잘랐을 뿐인 곳인데 이상하게 발길이 창대 이용원으로 향했다. 예전에 써둔 것 때문이겠지. 이발비는 변함없이 8000원이었다.



창대이용원


머리를 자른다
생면부지의 이발사에게 내 몸을 맡긴다

어떻게 자를까요
이대로요

윙윙윙
싹둑싹둑싹둑

귀 뒤로 고추 잠자리 날개 잘리는 소리가 들리고
라디오에선 어느 목사가 죄악에 대해 말한다

그렇게

이발사도 나도
말이 없다

머리를 감기고
이발사가 요구르트를 건낸다

수고했어요
감사합니다

창대이용원
복되고 창대하게

온전한 남자들만의 공간
이발비는 8,000원

AND

다니엘이 놀러 오면서 마이쮸를 사왔고 망고가 마이쮸 한 알을 미친듯이 갖고 놀았고 나는 그 마이쮸를 뺐어 먹다가 오래전에 씌운 금니가 빠졌다.

그래서 치과에 다녀왔다. 화곡동에는 내가 어른 무릎만할 때부터 다닌 단골 치과가 있다. 나이 먹으면서 치과에 가는 횟수가 줄어들긴 했지만 선생님은 내 어린시절부터 피아노 모서리에 부딪쳐서 앞니 세 개가 날아갔던 십년전 내 모습까지를 다 보셨다. 어릴적에 내 동생은 입안을 들여다보던 거울을 깨물어서 깨뜨리기도 했더랬다. 화곡 1동 김정식 치과다.

김정식 선생님이 좋은 이유는 비용이 많이 둘어가는 임플란트나 금니를 권하지 않고 가능하면 치료를 해 준다는 것이다. 그래선지 90년대 초반까지는 치과 문 열기 한 시간 전부터 기다려야 오후 첫 번째 손님으로 예약할 수 있을 정도로 호황이었다. 지금은 예전보다 동네에 치과도 많이 생겼고 임플란트 할 비용 정도는 많이들 갖고 있기 때문인지 기다리는 일 없이 바로 치료가 가능하다.

나는 세월이 무상하다고 느끼는데, 선생님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덤덤하시다. 조선일보랑 월간 조선 보는 것도 여전하시고. ㅋ

선생님은 입을 벌리고 누운 나에게 엄마의 안부와 - 내 이빨이 외가 유전이라 엄마도 충치가 많다. - 내 직업, 결혼 여부 등을 물으시더니 기왕 농사 짓는 거니까 특수한 걸 하는 게 좋겠다. 섬에 들어가서 사는 아내가 참 대단하다는 얘기를 하셨다.

선생님, 말씀 감사합니다. 어려서부터 제 이 치료해 주신것도 감사합니다. 저는 행복할테니 선생님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셔요. 다음번에 이 아플때도 선생님한테 치료 받고 싶어요.

AND

지난 여름에 들었던 말이다. 아직까지도 기억에 선명한 걸 보니 좋은 말이다.

js형 - 약속은 지키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m아저씨 - 아니 이 사람아 지키지 않으려는 게 어떻게 약속인가! 약속은 지키려고 했는데 못지켰다고 하는 게 약속이네.

약속은 지키려고 했는데 못 지켰다고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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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10 - 이치

하나씩 2013. 12. 10. 22:51
나이서른 여섯에 마이쭈를 씹다가 이십년 전에 해 넣은 금니가 빠졌다. 예전에 이 아팠을 때 써둔 것


이齒


이가 아프다
온몸에 열불이 난다

이는 치(齒)다

둘을 붙이니 이빨이 아니라 이치가 된다

나는 세상사는 이치를 알고 싶어
바가바드기타를 읽고 있는데

이가 아파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인도의 성인도 이가 아플 때는 아프다는 생각만 했을까

아픈 이에 금을 씌우면 반짝이는 이치를 깨달을 수도 있겠지
어떤 사람들의 은빛의 이치로 세상을 살고
또 어떤 사람들은 반짝이지는 않아도 태어난 그대로의 이치로 살겠지

세상사는 이치를 얼른 깨닫고 싶어
내 온몸이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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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망고 13

사진 2013. 12. 10. 16:52

picture by daniel

많이 컸다. 내 아내가 내 옆에서 그렇게 하듯이 망고도 무방비로 자고 있다. 가족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AND

논 토지 사용료 때문에 내가 속상해지는 꿈을 꿨다 꿈에서 속상하면 기분이 더럽다. 꿈은 현실과 반대이기도 하지만 마음속 불안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좀 더 고민해 봐야겠지만 오늘 꿈을 핑계로 내년 벼농사는 2400평으로 줄이는 것도 괜찮겠다. -올해 4200평 - 이게 올해 벼수확을 마치고 맨 먼저 했던 생각이다. 결국 내 맘대로 하고 싶은게로구나.

어제는 전주 청년 시장에서 아내 친구를 만났다. 그이는 보드게임방을 운영하는데, 자기 몸에맞는 옷을 입은것 같았다. 직업이니까 가게안에 있는 모든 게임을 다 할 줄 안다고 했다. 나랑 아내에게 도블이란 게임의 규칙을 설명해 줬는데, 설명이 야바위꾼의 그것처럼 물흐르듯 이어졌다. 아내가 부러워했다.

어제는 나는 난로다.라고 하는 행사를 구경했다.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 에너지 분야에 관심을 갖고서 이런저런 것들을 만들어 낸다. 아내가 부러워했다. 부러운 일이긴 하지만 나는 난로의 소비자는 되고 싶어도 생산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

내 재주는 뭘까? 내 직업은 농업일까?

내 직업은 농업이니까 농업에 대해서 좀 더 전문적으로 연구를 해야할까. 생각했다가 너무 세상의 프레임에 갇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냥 내 삶이 있을 뿐이다. 농업은 직업이라기 보다는 삶의 주요한 부분이다. 생활로서의 농사보다 삶으로서의 농사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아직 꿈이 덜깼나?

창문을 열면 현대옥 간판이 보이는 전주의 한 모텔에서 아침부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아내는 빵과 커피로 아침을 떼우자고 했지만 그래도 모처럼 전라돈데, 내 맘대로 아침 먹고 가야겠다.

어디선가 들려올 불행한 소식을 기다리는 바보 같은 일은 관두고 오늘은 간만에 복권을 사야겠다.

결국 다 내 맘대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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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아는 형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이 형과는 여지껏 두 번 만나서 술 두 번 마신 게 전부다. 그러니까 그냥 아는 사이 정도인데, 이상하게 닮고 싶고 신뢰가 가고 마음이 쓰이는 사람이다. 이 형을 아는 다른 분들도 다 이 형을 좋아한다. 그런데 아직 결혼을 안했다. 인품과 결혼은 아무 관계가 없구나.

형, 정리 다 하시고 쉬러 한 번 들어 오셔요. 얼음 깨고 낚시해요.


엄마 생각이 났다. 예전에 엄마 생각 하면서 썼던 것


엄마랑 나랑


가을 햇살에 벼가 익는다
모락모락 무럭무럭 소리 내며 익는다
누렇게 누렇게 노래하며 익는다

저 벼가 다 익으면
흰 쌀밥을 먹겠지

모락모락 김이 나는
흰 쌀밥을 먹겠지

후후 불어가며
흰 쌀밥을 먹겠지

날 버린 당신도 서울 가신 아버지도 잊고
엄마랑 나랑 둘이서만 먹겠지

고봉으로 먹겠지
둘이서만 먹겠지

울면서 울면서
둘이서만 먹겠지
AND

20131130 - 장모님

그때그때 2013. 11. 30. 20:46

 대학로 장모님 댁에 들렀다. 장인 어른은 결혼식 때문에 광양에 내려가셨다. 아내랑 셋이 점심을 먹었다. 장모님은 내가 아끼는 겨울 주력 잠바인 소방대 잠바의 빛바램이 맘에 들지 않으셨던지 밥 먹자 마자 옷가게로 가서 겨울 잠바를 사주셨다.

 장모님은 결혼식 전에도 한 번, 결혼하고 나서도 한 번 옷을 거나하게 사주셨더랬다. 장모님의 쇼핑 스타일은 거침이 없다. 점원에게 궁금한 내용을 바로바로 물어보고 본인 생각에 사위랑 딸에게 어울릴 것 같은 옷을 입어보게 하고 우리가 이건 별론데요.라는 표현을 하지 않으면 구입 확정이다.

 장인 어른이 돈을 버는 동안은 옷 많이 사줄테니 부담 갖지 말고 입으라고 하셨다. 당신이 사 준 겨울 모자를 동네 사람들이 부러워 한다고 했더니 무척 좋아하셨다. 낙도에 시집간 딸과 그 딸을 데려간 농사 짓는 사위가 맘에 들지 않으시겠지만 오랜만에 본 우리를 무척 반가워 하셨다. 광양에는 아는 아줌마들도 많고 손주도 있는데, 장인어른 직장 때문에 서울에서 두 분이 사시니, 주로 혼자 계시는 어머님은 많이 외롭겠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찡해졌다.

 

 장모님이 오늘 하신 얘기들 중에 기억나는 것들만 정리해본다.

 - 고구마 한 상자씩 여기저기 돌려봐야 받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다. 받는 사람 마음은 주는 사람 마음 같지 않다. 그러니 팔 수 있으면 다 팔아라.

 - 술을 본인이 알아서 줄여야지. 부담스러운 자리라고 해서 주는대로 받아 먹으면 안된다.

 - 헬쓰클럽 트레이너들은 그게 직업이니까 그렇게 역삼각형 몸을 만드는 것이겠지만 현실 세계에 있는 사람을 보는 것 같지 않고 비정상으로 느껴진다.

 - 광장 시장에 있는 유명하다는 육횟집에 갔더니 백반에 밥을 반공기 밖에 안 줘서 기분이 상했지만 육회를 따로 시켰기 때문에 그냥 먹었다.

 - (장모님은 손재주가 좋으셔서 뜨개질도 잘 하시고 매듭으로 뭔가를 만드는 일도 좋아하신다.) 누가 뭐 만들어 달라고 하면 지들한테 만들라고 하지 안 만들어 줘.

 

 어머님 아버님 생신 때, 두 분이 미역국 끓여 먹으면 끝이니 무리해서 오지 말라고 하셨지만 꼭 갈게요. 그리고 술도 줄이고 담배는 꼭 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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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이대리 형님이 당근 좀 갖다 달라고 해서 오후에 갖다드렸다. 우리집 당근 중에 제일 큰 걸로 겆다 드렸다. 이대리 형님은 좋아하시면서 이거 무공해에요? 하고 물었다. 나는 아무것도 안친 거에요. 라고 했다.

대화가 오고 가는 중에는 몰랐는데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무공해란 말이 우습다.

오늘 우리집 콩을 골라준 동네 할머니들도 우리 콩을 보고 무공해란 말을 하신다.

기본적으로 현대 농업이 공해라는 걸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약을 치라고 하시는 이대리 아저씨랑 동네 할머니들은 공해 농업의 추종자일까?

그렇진 않다.

그저 시스템의 희생양일 뿐이다. 그렇다면 나랑 지후는? 그저 시그템의 희생양일 뿐이다.

생각한대로 살지 않으면 조건에 맞춰 살게된다. 시스템의 희생양이면서 희생양이 아닌 것.
가마는 가마인데 가마가 아닌 것.

내일은 백의 그림자를 다시 읽으면서 펑펑 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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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6 - 20131126

그때그때 2013. 11. 26. 21:43

 어제 늦게까지 만화 보다가 잤다. 늦게 일어났다. 집도 날려버릴 것 같던 바람이 잔잔해졌다. 10시에 밥을 먹고 11시부터 메주콩을 고르기 시작했다. 메주콩 고르기 전에 강릉 작은 어머니에게 메세지가 온 것을 발견했다. 노트북 사고 싶다고 하셔서 하나 골라드렸다. 카톡으로 대화했는데, 요양원에 계시던 할머니를 집에 모셨다고 했다.

 할머니를 삼촌집에 모셨다는 뜻은 건강이 악화돼서 요양원에서 더 이상 할머니를 보살필 수 없다는 뜻이다. 현재 할머니는 호스를 꽂고 그 호스를 통해서 식사를 하신다고 한다. 치매가 오고나서 지금까지 할머니의 삶을 인간의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이 나이 먹고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이 보살펴 주는 이 하나 없는 상황인데, 현대 의학은 그 시간을 더 연장하기만 한다. 예전에는 공동체가 노인을 책임졌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는 말도 100% 맞는 건 아니다. 예전에는 일찍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공동체가 책임질 노인의 수가 적었다. 그렇다면 죽어가는 사람도 본인의 의사는 묻지도 않고 주사 한 방으로 살리는 현대 의학이 문제로구나.

 

 메주콩을 다 고르고 나니 안심이다. 이제 올해 농사 갈무리는 서리태만 남았다.

 

 오후 네 시에 아내가 회관으로 불려갔다. 12월 1일부터 회관에서 점심 해 먹기로 했는데, 급작스럽게 일정이 당겨져서 오늘 저녁부터 회관에서 먹었다. 내일부터 이 긴 겨울이 끝날때까지 마을에 남아있는 사람들 모두가 마을 회관에서 점심을 먹는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다 합쳐도 24명 정도다. 아직까지 옛 공동체적 생활 방식이 남아 있는 거라고 봐야할까? 뭐가 됐든 밥 하는 사람들은 힘들다. 밥 먹고 잠깐 앉아 있는데, 동네 할머니들이 내일 우리 서리태 골라주신다고 아침 일찍 가져오라고 하셨다. - 오, 감사합니다. - 아직까지 옛 공동체적 생활 방식이 남아 있는 거라고 봐야겠지?

 

 저녁 먹고 나서는 킹킹 엄니네 가서 노닥거렸다.

 

 뭔가 바람직한 하루를 보낸 거 같다. 이게 다 메주콩을 마무리 했기 때문이다. 어제랑 그제는 많이 답답했더랬다. 역시 나는 일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인간은 생각만으론 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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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망고 12 - 발

사진 2013. 11. 24. 20:51


망고는 다 예쁜데, 발이 특히 예쁘다. 이불 뒤집어 쓰고 잘도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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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0 - 업

그때그때 2013. 11. 20. 09:39

 먼저 모든것의 대가성에 대해서 썼다.

 

 엊그제 동네 아저씨들이랑 술 먹다가가 대가에 대한 얘기를 던졌다.

 m아저씨가 답한다.

 그런건 대가로 생각하기 보다는 업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대가의 짊을 짊어졌다고 생각하고 어딘가에는 베풀고 지나간다는 마음으로 살면된다. 그것이 은혜와 업의 차이점이다. - 마지막은 여전히 이해가 잘 안됨 - 

 얘기를 듣다가 머리가 띵~ 하고 울렸다.

 좋은 얘기를 들을때는 아~ 하고 깨닫지만 생활로 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나도 아저씨처럼 60이 넘어가면 모든것을 업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업은 한자로 業인데, 이 글자에 뫼산자를 얹은 글자도 업이다. 嶪

 결국 나는 무거운 산을 업으로 짊어지고 살아간다.

 

 멍하게 있다보니 11월이 다 지났다. 그때그때 쌓이는 대가나 은혜, 업 등은 나중에 실컷 생각하고 할일들부터 얼른얼른 마무리 하자.

AND

20131117 - 대가

그때그때 2013. 11. 17. 20:17
모든일에는 대가가 있다. 아내가 교회에서 성가대 피아노 반주를 하면 이것저것 먹을 것이 생긴다. 덕분에 가난한 우리가 과일을 먹을 수 있다. 내가 후임자를 나가면 형들이 한 사람 몫의 생선을 챙겨주신다. 덕분에 우리가 생선을 먹을 수 있다. 어제는 광어랑 저푸리(숭어 새끼)를 숯불에 구워 먹는 호사를 누렸다. 지난주에는 동네를 다니며 이집, 저집의 김장 일손을 도왔다. 집집마다 우리한테 김치를 챙겨주셔서 김치가 많이 생겼다. 올초에 이사올 때, c 이장님이 차를 빌려줬다. 그래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작목반 모내기를 돕고 형들은 우리 모를 심어줬다. 가족끼리도 무조건적인 호의는 부담스러운 법인데, 객지에서 낯선 사람들을 상대하는 경우에는 그 부담이 더 크다. - 물론 동생이 피자를 시켜주는 일이나 영일이한테 술 한 잔 얻어 먹는 일은 그리 부담스럽지 않다. -

이런 얘기를 쓰는 이유는 요즘 모든것의 대가성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던 차에 오늘 목사님이 추수감사절 설교로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살라고 했기 때문이다. 올해 bri 블로그에 가장 많이 쓴 말이 감사합니다.이다. 그만큼 고마운 일들이 많았고 앞으로도 많을 것이다. 다만 그 고마운 일들에 대해서 어떤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나의 강박이 나를 힘들게 한다. 도시 사람에 시골에 와서 가장 적응하기 어려운 것이 이런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더 많이 베풀 수 없기 때문에 끝없는 부채감에 시달린다. 과연 내가 우리 동네에 도움이 되는 어떤일을 하고 있는가? 누구네 집에서 어떤 도움을 받았는데, 나도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가? 나는 작목반 형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는가?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하면 괴로워지기 시작한다. 이게 모두 내가 가난하기 때문인가? 결국은 수입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진다.

며칠 있으면 아내는 회관에 점심하러 가야한다. 또 교회에서 피아노를 치게 될 수도 있다. 나는 성가대에서 노래를 할 지도 모른다.


겨울이다. 춥다. 피곤하다.

아까 y이장님이 제주도에서 온 귤 주고 가셨다. 감사합니다.
AND


그물에 걸린 꽃게를 배 위에 쏟아냈다. 집게발을 가위로 잘라냈다. 뭐라도 잡아 보려는 놈들에게 손가락을 물렸다. 아프다. 뭐라도 잡아 보려는 마음은 나나 게들이나 한 가지다. 누군가는 나 때문에 아프다.

배 뒷편에 구멍이 있다. 물결따라 흔들리며 똥을 눴다. 퐁퐁퐁, 바다 위로 똥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요즘 카오스 상태다. 나와 내 삶에 대한 의심이 끊이질 않는다. 이런때야말로 눈 앞에 일에 충실해야 하는데, 그러고 싶지 않아서 배를 탔다. 흔들리는 배 위에 흔들리는 나를 얹으니 마음이 잔잔해진다. 결 따라 살아야지. 헌데, 그게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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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망고 11

사진 2013. 11. 7. 20:04


이 녀석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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