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전까지 우체국 택배 알바를 한다. 한과를 차에 싣고 내리는 단순 업무다. 이틀 나갔다. 알바를 하면서 갓 스무살이 된 친구들을 본다. 열심히 하려고는 하는데, 어딘가 어설프다. 처음엔 다 그런거다. 며칠만 지나면 능숙해지겠지. 나는 처음부터 능숙하다. 경험의 차이다. 다만 나는 어제 왼쪽 무릎에 통증을 느꼈다. 그 애들은 안 그럴텐데.

인간이란 종의 능력치에 대해서 말하려고 알바 얘기를 꺼냈다. 머리엔 눈, 코, 입이 붙어 있고 몸뚱아리엔 두 팔과 다리가 붙어있는 것이 인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시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육체적 능력치에 큰 차이가 없다. 리오넬 메시도 공을 차고 나도 공을 찬다. 드리블을 하고 슛을 한다. 내가 좀 많이 어설프고 쉽게 지칠 뿐이다. fc바르셀로나가 팔레스타인 국가대표 축구팀에게 50대 0으로 이길 수는 없다.(20점은 가능할 것 같음.)

그러니 살아서 뭔가를 하고 있다면 남들과 비교할 필요도 없고 너무 애쓸 것 없다.

삼촌 내외와 고모랑 고모부가 집에 다녀가셨다. 집들이다. 아내가 밀푀유나베를 만들었다. 맛있었다. 어른들은 좁은 집을 구석구석 둘러보셨고 싸고 깨끗하다고 만족하셨다.

당장 알바도 하고 있고 삼월엔 어디 나간다고 하니 삼촌이 덜 걱정하시는 듯 하다. 다행이다. 고모랑 고모부는 걱정보다는 조카 내외가 강릉에 이사 왔다는 자체를 좋아하셨다. (애기 때, 옥수수 먹던 사진 보러 갈게요.) 그것도 다행이다.

어제는 친구랑 술을 먹으면서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다. 세상에는 사람도 많고 말도 많다. 대리비를 아끼려고 외박을 했다. 지후한테 혼났다. 미안, 앞으론 정말 안 그럴게요. 해장으로 아내랑 잿빛의 떡국을 먹었는데, 서로에게 무심한듯 무심하지 않은 중년 부부의 느낌이 났다. 저녁 먹고는 동네 산책을 했다. 우리 동네는 골목길도 예쁘고 오래된 예쁜 집이 많다.

여러가지로 다행이고 기분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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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도 모르고 쓰는 말 4

새누리

새 - bird
누리 - ‘세상’을 예스럽게 이르는 말

새들이 사는 높이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니 자기 눈높이에 없는 것들은 다 하찮게 생각하는가?
날지 못하는 새가 너희들 대장이란다
그러다 아이들이 장난으로 던진 돌팔매에 날개가 부러진다




-> 뜻도 모르고 쓰는 말 시리즈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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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그 일이 돈이 되는지 아닌지가 마지막 결론이고 남에게는 돈이 되는 일에 대해서 잘도 말하는데, 자신은 돈이 안되는 일만 하거나 스스로 만족할만큼 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면 괴롭다. 괴로우니 자꾸 말만 늘어난다. 괴로우니 괴롭다. 이래선 안된다.

올해는 어딘가에 다니겠지만 내년에는 다시 농사를 지을거다. 강화에서는 돈이 안되는 농사를 지었으니 강릉에서는 죽기살기로 돈 되는 농사를 지을거다. 그게 내 직업이니까. 그렇지만 여전히 연간 소득목표는 천만원이다. 내 땅이 없어도 내 집이 없어도 농사 지어서 천만원을 벌면 지금처럼 그리 부족함 없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렇다. 물론 더 벌면 그건 그거대로 좋은일이다.

그릇의 크기를 얘기하고 싶은 것이다. 일년에 천 만원이 소득 목표인 사람에게 사 천만원을 버는 사람이 그렇게 살면 안되고 돈도 못 번다고 해서야 그 말이 씨알이나 먹히겠는가, 하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뭐라고 해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남의 말에 민감한 때도 있는 내 아내에게는 그렇게 말하지 말라. 내가 무척 화를 낼지도 모른다.

들기름이 꽤 많았는데 여기저기 한 병씩 돌리고 나니 딱 우리 둘이 일년 동안 먹을만큼만 남았다. 기분이 좋다. 누군가와 무엇을 나누는 건 이렇게 좋은 일이다. 나는 앞으로도 이렇게 살면 좋겠고 그러기 위해서 애쓸 것이다.

강릉 오고 보름이 지났다.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났다. 결론은 여전하다. 놀 때는 같이 놀고 사이좋게 지내더라도 일은 같이 하지 말자. 나는 혼자 일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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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立場)


공룡이 천 만년 동안 서서히 멸망해 가는 것을 지켜본 지구를 생각한다
지구의 입장을 생각한다
일 만년 동안 흥망인지 멸망인지를 하고 있는 인류를 바라보는 지구를 생각한다
지구의 입장을 생각한다
지구에서 이것저것 꺼내 쓰고 있는 인간의 입장을 생각하고
그것을 내버려 두는 건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모르겠는 지구의 입장을 생각한다

너와 헤어진지 20년이다
내 안에서 아직 멸망하지 않은 너를 생각한다
너의 입장을 생각한다
나의 입장을 생각한다

입장 입장 입장
지구와 인간과 당신의 입장
그리고 나의 입장
오늘따라 입안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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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연


밥을 먹고 옥상에 올라왔다
담배에 불을 붙였다

늘 그랬던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마지막 담배를 태우는 지금을 마음속 깊숙히 담아운다
들이킨 연기들이 마지막 인사를 폐속에 새긴다
그 동안 고마웠다고

눈을 뜨고 밥을 먹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치고
거나하게 취하고 그래서 토하고
누군가에게 얻어맞고
해장술을 먹고
어느 선술집의 처마밑에서 떨어지는 비를 피하고
키스를 하고
네 몸에 내 몸을 찔러 넣고
함께 바다를 바라보고
배가 고프고 마음이 텅 비고
잠을 자고 다시 눈을 뜨기까지

너와 함께한 순간들은
나의 일상은
나의 인생은
이제 어디에 기록될까
어떻게 기억할까
기억조차 거부하는 삶을 살까

오늘 담배를 끊었다



- 열심히 하자는 결심으로 어쩌다 하나씩이라도 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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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에 26일을 적었으니 십 분 안에 끝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길어져서 제목을 27일로 바꿨다.

 

 황정은의 '계속해보겠습니다'를 읽었다. 계속해보겠다는 이야기다.

<오늘 저녁에야말로 나나에게, 그렇게 결심했는데 뜻밖에도 출근길,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묻고 말았다. 아침저녁으로 안개만 고일 뿐 여전히 비 소식은 없는 나날이었다. 하지만 임박했다. 임박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습도가 하루하루 굉장해서, 낮이고 밤이고, 가만히 서 있을 때도 몸이 끈적끈적해졌다. 안개에 관해 말하자면, 온갖 냄새가 그 속에 있었다. 씻기지 못해 자질구레한 냄새를 더해가는 대기의 냄새가 안개에 배어 있었고 밤새 안개에 잠긴 거리에서도 그 냄새가 났다. 이날 아침 출근 길에도 그런 냄새가 남아 있었다. 아침인데 벌써 무더웠다.>

 

 여기를 읽다가 이날 아침, 오늘 아침, 아침 중에 이날 아침을 고른 작가의 마음에 대해서 한참을 생각했다. 이날이 없이 그냥 '아침'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가 그래도 이날 아침이 좋은 것 같다고 생각을 마무리했다. 작가는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별 이유도 없이 멍하니 한참을 생각했다.

 

 

 이사 - 벌판을 나와 벌판을 지나 벌판에 도착했다. 대관령을 넘기 전에 힐끔힐끔 내리던 눈이 고개를 넘자마자 비가 되어 뚜벅뚜벅 차창을 때렸다.

 이렇게 시작해서 좀 더 읽기 좋은 걸 써 보고 싶다.

 

 집 정리가 대충 끝났다. 3월부터는 일을 하게 됐는데, 2월에도 뭔가를 하고 싶다.

 지난 주말에는 예전에 농업교육 함께 받은 형들이랑 놀았다. 교육 받던 시절을 얘기하며 즐거웠다. 국제 시장과 토토가의 흥행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어떤 시절을 함께 추억하는 것이 가장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그 추억에 먹었던 것이 빠지지 않는다. 나이 먹고는 다들 어려서 먹었던 것을 찾는다. 역시나 추억팔이 장사를 해야할까? 

 

 우리집은 주인집 뒤에 따로 조립식으로 지은 세 채의 집 중에 가운데 집이다. 오늘 아침에 우리 왼쪽집에 홀로 사는 아저씨가 우리 오른쪽 집에 아내와 함께 사는 아저씨와 나를 초대해서 이웃들과 인사를 했다. 가난한 이웃이 가난한 나를 초대해서 아침부터 소주를 한 잔 마셨다. 가난이라는 말은 한자어인데, 집이 어렵다는 뜻이 아니고 어렵고도 어렵다는 간난(艱難)을 가난으로 읽는다. 가난 가난 가난 하고 읽기만 해도 울컥함이 밀려드는 예쁜 말이다. 이웃의 아저씨들은 아직 젊으니 뭐든 열심히 하라고 하셨다. 나는 '예'라고 했겠지. 

 오후에는 고모가 하는 수선집에 들렀다. 조카 내외가 강릉에 산다고 하니 괜히 기분이 좋다고 하셨다. 고모가 좋다고 하시니 저도 좋아요. 고모는 많이 늙었다. 고모에게 많이 늙었다고 했더니 고모가 그럼 많이 늙었지라고 했다. 당연한 얘기를 당연하게 하는 것이 쉽지 않다. 늙지도 않고 그대로시네요.같이 입에 발린 말보다는 솔직하게 말하고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고모가 좋다는 얘기다. 

 

 핸드폰으로만 글 올리다가 오랜만에 키보드 두드릴라니까 어색하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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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8 - 이사

그때그때 2015. 1. 18. 17:27
지난 목요일에 이사했다. 오후 네 시가 넘어서 강릉에 도착했다. 짐이 별로 없고 1층에서 1층으로 가는 것이라 이사 아저씨들에게도 우리 부부에게도 그리 어렵지 않은 이사였다. 두고 올까 하다가 가져온 장농이 작은 방에 쏙 들어가줘서 기분이 좋았다. 이것저것 구입하고 정리하고 정리하고 정리해서 대충 짐정리가 끝났다. 다시 한 번 느끼지만 인간은 짐(burden)과 함께 살아간다.

도배랑 장판을 새로한 집이다. 싱크대랑 세면대도 새거다. 전기 공사도 추가로 했다. 우리가 살기에 딱 적합하다. 다만, 문 자체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출입문이 안 잠긴다. - 해결할 수 있을까? - 화장실 문이 안 닫힌다. - 이건 해결 가능하다. - 새로 설치한 전기 콘센트가 먹통이다. - 안 쓰면 그만이다. - 세면대에 물을 받아 쓸 수 없다. - 안 쓰면 그만인데, 날림 공사다. 물 마개를 들었다 내렸다 하는 걸 안 달아놨다. - 샤워기가 새건데 물줄기가 시원찮다. - 이것도 날림 공사다. 내가 새걸로 달았는데도 상태가 그대로일 수도 있으니 당분간은 그냥 두기로 한다.

우리집은 강릉시 홍제동이고 강릉 초등학교 옆이다. 주택가라 조용하다. 아내의 친구 편의점이 집 근처에 있다. 시내 중심가까지 걸어서 15분 거리다. 고속버스 터미널은 걸어서 10분 거리다. 도서관도 걸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한살림 매장이랑 큰 슈퍼가 가까이에 있고 홈플러스 때문에 쇄락한 서부시장도 가까이에 있다.

적어 놓고 보니 출입문이 안 잠기는 것만 빼면 좋은 곳이네.

집 1km 안쪽에 중국집이 20개다. 그 중에 두 곳에서 짜장이랑 탕수육을 먹었는데, 다 별로였다. 이순신에게 12척의 배가 있었다면 우리에겐 아직 18곳의 중국집이 남아있다.

진정한 광랜을 쓰게 됐다. 근데 생각보다 기쁘질 않네. 내 또래로 보이는 kt 설치기사가 자기가 30년 넘게 이 동네에 살았는데 살기 안 좋다고 했다. 이 양반의 인생엔 좋은 일보다 안 좋은일이 더 많았던 모양이다.

어제는 중앙시장에 뜰깨 들고 가서 기름을 짰다. 작년에 깨 농사가 잘 됐다. - 재작년에 너무 안 됐거나. - 기름 적게 나와도 좋으니 반만 볶고 짜 달라고 했는데, 기름이 많이 나와서 방앗간 주인 아저씨가 당황했다. 8킬로 중에 1킬로가 남았다. 깻모를 부으면 좋겠지만 올해는 포기한다. 텅빈 냉장고를 5퍼센트 정도 채웠다. 김치가 없어서 들기름과 달걀로 간장 볶음밥을 해 먹었다. 따봉으로 맛있었다.

볼음도 집이 참 좋았다. 2년 후엔 다시 시골집에 살거다. 그 집에선 지금 이 집이 참 좋았다고 하겠지. 사람들은 항상 지나간 것만 좋아한다. 추억팔이 장사를 할까보다.

강화에서 그랬듯이 강릉에 도착했으니 직업을 구해야 한다. 그리고 퇴근후엔 그대와 원두커피든 뭐든 마시자. - 씨 없는 수박 '유정천리' 가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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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이다. 해가 바뀌자마자 끝나지 않는 모험의 세계(드퀘 8)에 살고 있다. 현실로 돌아와서는 친구들과 술을 먹는다. 새해 계획은 좋았네요.라고 할 수 있어서 좋았던 시간들 속에 사는 것이다.

지난 월요일에 588 종점 멤버들과 술을 먹었다. 장소는 y네 집, 안주는 흐릿하게조차 그려지지 않는 서로의 인생과 아내에 대한 불만이었다. - 지금은 기억이 안 나는데 그날 오전에 아내 때문에 기분이 상했었다. - 며칠만에 기억도 못할 대수롭지 않은 일에 혼자 삐쳐서 대취했다. 다음날 9시에 일어났다가 입만 축이고 다시 잠들었고 16시에 정식으로 깼다. 전날의 동지인 y는 휴가를 썼고, 건쓰짱은 지각을 했다. 불만만큼 취하는 정직한 우리들이다. 아내는 화가 났고 강릉행은 하루 미뤄졌다. 스스로에게 그리고 누구에게도 좋았네요.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러지 말자.

지난 수요일에는 강릉에 집을 구했다. 전세 계약서를 쓰면서 생각했다. '이런 중대한 일에는 안 좋은 일이 생길까 걱정하지 않는 담대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이사는 1월 15일이다. 계약서를 쓰고 이사날짜를 잡고서야 끝나지 않는 현실 모험의 세계로 돌아올 준비가 됐다.는 기분이다.

아내 친구 아이랑 하루 놀았다. 어제는 낮에 그 아이를 다시 한 번 만나고 저녁에는 아내 지인이면서 내 페친인 친구들과 신년회를 했다. 오페라 아리아를 들으면서 이것저것 먹고 마셨다. 어제는 마음속으로도 마음 바깥으로도 좋은날이었다.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며 술을 마시고 취하기는 누구랑 마셔도 마찬가지인데 어제 분위기는 지난 월요일과는 많이 달랐다. 이러나저러나 다 친구들이다.

장인어른, 장모님을 만났다. 딸과 사위에 대한 장모님의 불안과 걱정 그리고 불만이 표면적으로는 많이 사그라든 느낌이다. 운동화를 하나 사주신 것은 고맙게 받았는데, 이사비용을 건내주셔서 깜짝 놀랐다. 그리고 받았다. 이것도 다 아내를 잘 만난 내 복이려니 생각한다. 글 속의 나는 이렇게 긍정적인데 현실의 나도 긍정적이다.

주거니 받거니 사는 것이 인생이지만 아직까지 내 인생은 주는 것보다 받는 게 더 많은 것 같다. 이렇게 빚더미 속에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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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9 - 올해

그때그때 2014. 12. 29. 22:21

 한 줄로 정리하면, 볼음도에서 나왔다.

 두 번의 벼농사와 두 번의 고구마 농사를 지으면서 한 생각을 한 줄로 정리하면, 수입이 없으면 농사일이 아무리 즐겁고 마음이 편해도 결국은 즐겁지 않다.

 

 어울림 학교에서 중학생들과 함께 미디어 수업을 했다. 정말 즐거웠다. 내가 이 친구들을 기억하듯이 이 친구들도 나를 기억해주면 좋겠지만 그건 내 욕심이겠지. 한해에 7만명의 학생이 학교를 그만두는 썪어빠진 교육환경을 생각하면 이 나라의 미래는 없다.고 단언하고 싶을 때도 많지만 그런 중에도 어린 친구들이 건강하게만 자라준다면 이 나라의 미래는 없어도 너희들의 미래는 있다.고 친구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내년에는,

 내가 자본주의 사회에 산다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 살아야겠다. 볼음도에서는 자주 그 사실을 잊고 살 수 있어서 좋았다. 먼저 녹평모임에서 어쩌면 우리같은 사람들이 이미 이러한 세상을 잘못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듣고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늘 하는 일을 철저히 하라.는 얘기를 오늘 만난 선배에게 들었다. '삼시세끼'의 이서진이 꼼꼼하게 그릇을 닦아내듯이 나도 철저하게 일상을 살아야겠다. 

 

 

 지난 주말에 친구 y네 집에서 친구 건쓰짱이랑 술을 마셨다. 술이 많아서 비싼 순서대로 이술저술 먹다보니 건쓰짱이 많이 취했다. 취해서는 전기인간을 찾더니 전기인간 프랑켄슈타인에게 2차를 쏘고 싶다는 본인의 희망을 얘기했다. 친구야, 넌 대체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 거니? 건쓰짱은 중학생 때부터 책방 주인이 꿈이었다. 지금은 건설현장에서 무협지를 읽는다. 우리들은 각자의 아내에 대해서 성토하면서 조금씩 무너져갔다.

 얘들아 내년에도 예전처럼 잘 지내자.

 

 지난주의 어느날에는 DS에게 이런말을 들었다. "지금 대통령이 딱 지금 우리 국민의 수준이다." 이 말을 팟캐스트에서도 많이 듣고 여기저기서 댓글로도 많이 읽었다. 친구에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수긍했지만 지금이 우리 수준이라고 얘기하는 순간 그것이 우리 수준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집에 돌아와서 생각했다. 나는 체념과 방관이 싫다. 내일 DS를 또 만나게 될텐데, 우리의 정치수준에 대해서 다시 얘기해보자.

 

 올해 마지막 일기가 횡설수설이네. 내년에도 횡설수설 살겠구만. 히히히.

 

 

 

 

  

 

AND

 볼음도에서 나온지 한 달도 넘었다. 시간의 속성중에 속절없음이 있다는 것을 오랜만에 다시 생각한다.

 면허증 갱신 했고 일반 건강검진을 받았다. 지난번 건강검진 때보다 체중이 많이 늘었다. 그런데 몸이 무겁다는 느낌이 없다. 그냥 느낌대로만 살아도 괜찮을까? 주변 사람들 중에 결혼하고 체중이 늘어나는 사람들이 많다. 더 이상 이성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 때문에 체형 관리를 하지 않는 것도 체중 증가의 원인이 될 수 있겠다.

 김포, 강화, 일산에 초대를 받고 아내와 함께 다녀왔다.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이 살고 계신 어떤 어른들은 나랑 지후가 자신들이 가지 못한 길을 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를 응원해 주시고 부러워한다는 것을 안다. 양현석이 힐링 캠프에서 자신의 전재산과 빈털털이인 젊음을 바꾸고 싶다고 했는데, 무척 공감한다. 청춘으로 일년을 사는 것과 나머지 여생을 다 바꿔도 좋은 때가 내게도 찾아올 것이다. - 초대와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젊은날을 즐기면서 살도록 하겠습니다.

 집 알아보러 강릉에 두 번 다녀왔다. 촌에 사느냐 시내에 사느냐를 결정해야 하고 전세냐 월세냐, 차를 사느냐 마느냐, 삼촌과 함께 농사냐 그냥 취직이냐 등을 결정해야 하는 마음 심란한 강릉행이었다. 시내에서 자동차 없이 전셋집을 구해서 직장에 다니기로 결정했다. 시골 삼촌이 농사 안 지을거면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다가 내려오라는 얘기와 강릉와서 설렁설렁 살면 본인 뿐 아니라 아버지도 욕 먹는다는 얘기를 하셨다. 그 얘기를 듣고 많이 심란했지만 언제나처럼 마음을 다잡았다. - 삼촌, 저 잘 할게요. 돈은 못 벌겠지만 설렁설렁 살진 않을거에요.

 며칠전에 아버지가 보쌈 사주셔서 아내까지 셋이 맛있게 먹었다. 아버지랑 소주도 한 병씩 마셨다. 둘 다 술을 좋아하지만 이렇게 둘이서 마셔본 건 처음이다. 아버지도 그 사실을 아실까? 아버지는 우리가 농사 지으면서 살기로 한 것에 대해서 잘 생각했다며 응원한다고 하셨다. 부모가 자식의 삶을 응원하는 것은 자식 입장에서 무척 기분 좋은 일이다. 그건 그거고 아버지랑 술잔을 앞에 두고 마주앉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리라.

 친구들을 만났다. 결혼한 친구들을 만나면 아내와의 불화가 주요 주제다. 다들 어떤 의미에서 인생은 어차피 혼자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결혼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아내가 술자리의 주제라는 것만으로도 아내에게 감사해야할 일이 아닐까? 결혼은 원만하게 성립되는 성질의 것인데 그렇다면 이혼은 무얼까.하고 생각해본다. 가정법원의 판사라면 답을 알 것이다.

 엊그제 인제 사는 bk형의 전화를 받았다. 형은 많이 취해 있었다. 형은 내 대답도 듣지 않고 사람이 왜 人자를 쓰는 줄 아느냐, 인삼이 왜 人자를 쓰는 줄 아느냐 , 인삼 뿌리가 왜 일자로 뻗어 있지 않고 갈래갈래 퍼지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인삼이 쓰러지지 밀라고 그런 것이라고 했다. - 형 인삼은 땅에 묻혀 있어서 쓰러질 일이 없습니다. - 그리고는 물건은 넘어지면 일으켜 세우면 되지만 사람은 쓰러지면 못 일어난다고 했다. 뒤이어서 쓰러져 본 사람만이 다시 넘어지지 않는 거라고 했다. - 형, 사람은 쓰러지면 못 일어난다고 방금 말씀하셨습니다만. - 그리고는 형이 많이 힘들다며 연락하고 지내자며 전화를 끊었다.

 bk형이 하고 싶었던 말은 人 자가 작대기 하나가 나머지 하나를 받치는 모양인 것이 서로 기대어 살아야 쓰러지지 않는것이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맥락이 아니었나 싶다. 올해 토마토 값이 안 좋아서 괴롭고 겨울에 쉬지 않고 돈 벌러 객지에 나와 있는 것이 외로워서 전화하신듯 하다. 외로워서 나한테 전화를 하는 형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외로울 때 생각나서 전화를 거는 사람이 또 그 전화를 받는 사람이 친구다.

 나는 일은 혼자 하는 것이 좋고 놀 때 함께 노는 게 좋다. 물론 삶이란 게 나 좋은대로만 되진 않는다.

 공중 화장실에 들어가면 자동으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기도 하는 너무도 풍요로운 이 시대를 사는 것이 대상도 없이 미안하고 불안할 때가 많다. 평생을 내가 갖고 살아갈 마음이다.

 출도 후 한 달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면서 이것저것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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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9 - 새벽

그때그때 2014. 11. 29. 03:55
일찍 마신 술 때문에 일찍 일어났다. 친구 집임을 알고 안도했다. 모두 잠든 고요속에 내 머릿속만 총명하고 빠르게 움직인다. 내 바지 주머니에서 무슨일이 일어나는지 나도 모르고 바지도 모른다. 이대로 침묵의 세상으로 달아날까?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일이 쉽지 않다.

세월호를 생각한다. 참으로 일어난 참혹한 일을 참사라고 한다. 자기 아이가 죽은 일을 참사라고 하면서 언론과 인터뷰를 하는 부모들의 마음을 생각한다. 생각만으로도 몸이 찢기는 듯하다.

'내 자식 소중하면 남의 자식 소중한 것도 알아야지.'
아이들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번졌을 때, 자주 나오는 말이다.

세월호는 남의 자식, 남의 것 소중한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진 이 나라를 너무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지겹다는 말이,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말이 뉴스에서 나오고 박씨는 경제 문제로 골든타임을 언급했다. 그 주둥이를 잘라서 술안주로 구워 먹으리라.

무력하다. 내 몸과 마음도 서서히 침몰하고 있다.

대체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희망이 희망이란 말 속에만 있을 때, 절망은 한 걸음만 내딛어도 온 몸에 와 닿을 때, 세상이 다 죽은듯한 시간에 혼자서 말똥말똥 할 때, 나는 아무것도 노래하고 싶지 않다.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어떤 계기만 기다리는 내가 참으로 병신같다. 빙구, 멍충이, 음식물 쓰레기같은 나를 본다.

허기가 밀려들지만 물만 들이키는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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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워 보이는 길과 어려운 길이 있다. 쉬워 보이는 길을 선택하면 예상했지만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어려운 길을 선택하면 예상했던 어려움과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다. 계획된 인생을 원한다면 후자 쪽를 선택하겠지만 삶이란 계획이 소용 없는 것임을 안다면 양쪽 모두 선택할 수 있다. 그런데 왜 나는 굳이 어려운 길을 선택하려고 하나?

뭐든 내 힘으로 해보고 싶다. 집을 구하고 땅을 얻고 돈벌이를 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일까지, 모든것을 온전히 내 힘으로 해 보고 싶다.

어제 아침에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는데 기분이 안 좋았다. 껍데기부터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닌데 내 힘으로 내가 원하는 삶을 얻을 수 있을까. 내 안의 무언가를 바꾸기 위한 노력도 귀찮을 때가 있는 법이다.

아직은 좀 더 애를 써보고 싶다.


집 구하러 강릉에 왔다. 고향 같은 곳이라 마음이 편하다. 아내도 나랑 같은 기분이면 좋겠는데, 그렇질 않다.

친구 내외랑 술을 마셨다. 내외가 다 친구다. 친구가 시나리오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이제부터 시작이지만 일단은 발을 들였다. 기분이 좋다. 나도 12월 중에는 셋집 계약서에 도장을 찍게 될 거다. 그러고나면 강릉에 발을 들이는 것이다. 그때부터 시작이다.

미래는 어차피 불확실한 것이니 막연한 기대를 갖고 불확실함을 즐기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야구처럼 살아있는 동안의 시간들은 끝없이 이어지는 법이다.

끝 없이 추락하는 앨리베이터도 언젠가는 멈출 것이고 망망대해를 떠돌던 조각배도 계속 노를 젓다보면 어딘가에는 닿을 것이다. 그곳이 침몰한 후에 닿는 바닷속의 끝이라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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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9개월만에 다시 이삿배에 몸을 실었다.

볼음도에서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질 않네. 그저 덤덤하다.

이 배는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가. 기왕이면 미래로 데려다다오.

엊그제 회관에서 할머니들이링 밥 먹었다. 오늘은 이사 나가는 날이라고 할머니들이 국수 끓여주셨다. 니미럴 정들여 놓고 나가는 놈이 나쁜 사람이여.란 얘기를 들었다. 할머니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젊은 사람들 농사 짓는다고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kk할매는 정들면 이별이고 인생 살이가 그런거라며 눈물을 보이셨다. 지후도 눈물을 보였다.

망고는 결국 못 데려갔다. 고양이 가방에 가뒀던 놈을 잠깐 풀어줬더니 나무에 올라갔다. 그걸 본 아내가 마음이 약해졌다. 망고야 네 덕분에 지난 여름부터 쭉 즐거웠단다. 자유와 밥 중에 자유를 택했으니 자유롭게 살아라.

엊그제 저녁에는 동네 형들이랑 통닭을 먹었다. 폐만 끼치고 가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제가 없어도 그렇게 표가 나진 않을거예요. 벼농사에 대해서 많이 배우고 갑니다.

볼음도 시절이 이렇게 간다.

어떤 기간들에 대해서 시절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나이가 들었다.

혼자 강릉에 내려가서 살 때 정주하는 삶을 갈구했었는데, 거처를 자주 옮기다보니 그 마음이 흐릿해졌다. 떠돌이 한평생도 좋지만 네이밍만 나중에 어딘가에 써 먹고 강릉에선 정착을 하자.

지후야, 나만 믿어라. 나도 너만 믿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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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누군가에겐 고맙고
누군가에겐 미안한 일들이 엉켜 있다

세상에는 어쩌면 이리도
고맙고 미안한 일 밖에 없을까

나의 모든 고마움과 미안함이 사라지는 때가
나와 나의 세상이 사라지는 순간일 것이다

그저

나는 당신들이 고맙고
당신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살아간다는 것이
누군가가 고맙고 누군가에겐 미안한 것이라면

나는 그저

당신이 고맙고
당신에게 미안할 뿐이다

 

 처음으로 뭔가 써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이런 걸 썼다. 아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데, 나는 좋다. 볼음도를 떠나려니 여기저기에 고맙고 미안한 일들이 많다.

AND

가을 하늘

 

슬픔이 없는 가을 하늘에서 눈물이 흘렀다
나만이 그 눈물을 보았다
구름 끝에 맺힌 눈물을 쇠기러기 떼가 지우고 갔다

내일이 없는 우리를 위해 오늘도 해가 진다
바다 너머로 태양이 사라지고 나서야
넌 웃음을 보였다

내일이면 사라질 그 웃음속에
오늘도 나는 잠 못 이룬다

절망조차 마음껏 누릴 수 없는 이번 생이
나는 너무도 가엽구나
너무도 가여워서
우는 법 조차 잊었다

네가 사라진 가을 하늘에서 눈물이 흘렀고
오직 나만이 그 눈물을 보았다

AND

 운이 좋아서 농사 첫 해부터 유기농으로 벼농사를 지었다. 운이 좋아 농사 첫 해에 논을 4200평이나 얻었다. 작년에 논 세 자리 중에 1800평짜리 한 자리 농사를 망쳤다. 물달개비가 논을 뒤덮었다. 콤바인을 운전한 이장님께서 그래도 나머지 두 자리에서는 평년만큼 나왔다고 했다. 

 정확하게 조사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정부에서 발행하는 농산물 소득 자료에 의하면 벼농사는 평당 2500원이 남는다. 근데 그게 자기 땅에 자기 기계로 농사 짓는 경우다. 남의 땅에 남의 기계로 농사 지으면 평당 1000원이 남는다.

 작년에는 벼를 전량 수매하지 않고 3분의 1 정도는 직접 팔았다. 택배비 포함해서 4만원에 가까운 비싼 가격이었지만 여기저기서 많이 도와주셨다. 덕분에 평당 1000원 정도는 남았다. 작년도 유기농 쌀 수매가격은 80킬로 한 가마에 235000원이다. 10킬로에 30000만원 정도다. 이게 한살림에 가면 38000원에 팔린다.(40000원으로 올랐을까?)

 인천의 학교 급식에 타지 쌀을 쓰도록 하면서 농협에서는 팔기 어려운 유기농 벼를 아주 소량만 수매한다. 그나마 그것도 가지고 있다가 몇 억씩 손해를 보고 판다. 그 손해를 이자놀이 한 돈으로 메꾼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볼음 2리 친환경 작목반에서 나오는 쌀은 농협이 아니라 강화의 다른 곳에 수매한다. 그런데 이 곳은 수매 대금이 없다. 수매 대금이 없다보니 쌀값 지급이 늦어지고 수매 대금이 없다보니 창고에 쌓여있는 벼를 담보로 농협에 대출을 받는다. 농민들은 해가 지나서 쌀값을 받고 그러다 보니 농협에서 빚을 내서 생활을 하기도 한다.

 정말 거지같은 악순환이다.

 

 올해는 작년에 잘 안됐던 논 한 자리를 줄이고 2400평만 농사 지었다. 물이 적었지만 다행이 수확은 작년만큼은 된다. 그리고 올해는 이사 문제 때문에 수매 대금이 없는 줄 알면서도 내 벼를 작년의 그곳에 수매했다. 

 얼마전에 동네 소방대 회의 때문에 동네 벼농사 짓는 분들이 다 한자리에 모였다.(소방대=벼농사농부=교인=청년회, 볼음도는 대략 이런 느낌이다.) 이런저런 얘기들이 나왔다.

 

 - 농협에서 친환경 벼는 수매량을 정해서 받아준다. - 즉, 나머지는 알아서 팔아야 한다. - 이래서 친환경 농사 짓겠나? 친환경 안 지으면 쌀시장 개방 때문에 나중에는 쌀 팔기 더 어려워질수도 있다. 정부에다 얘기해서 민통선 지역 쌀 전량 수매지역으로 지정해야 한다. 그거 지정하자면 어려운 점이 많다. 올해 풍년인데, 농협에서 다 사주는 것이 아니니 풍년이라고 좋은 것도 아니다. 강화군친환경 농민회 쪽을 통해서 한살림에 나가는 쌀값도 쌀을 팔아보고 내년 3월에 준다더라. 이래서야 농협에다가 파는 것만 못하다. 유기쌀도 한살림에 나가는 가격과 다른 생협에 나가는 가격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유기농사 짓는 사람들끼리도 가격에 대한 조정이 필요하다. 지금 무농약인 논들을 내년에는 다 유기농으로 바꾸면 어떨까? 내년부터는 인증받을 때, 잔류농약 검사 비용을 농민들이 내야한다. 이래서 친환경 하겠나. 기술센터에서 하는 잔류농약 검사로는 친환경 인증을 못 받는다더라. -

 

 나라에서 농업을 버리니 농민들은 삶도 마음도 점점 팍팍해져 간다.

 나만해도 어떻게든 나라도 살아봐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 농민들이 벼농사를 포기하고 여기저기 논이 싼 도지에 나올 때, 그 논을 임대해서 GMO 아닌 벼로 유기 벼농사를 짓고(GMO문제도 언제가 한 번 써야겠다.) 직거래로 판다.

 결국 올해 꼴랑 2400평 농사 지은 쌀값을 언제 받을지 모르게 됐다.

 뭔가 많이 잘못됐다.

 

 낙관(樂觀)과 적당히 대충을 헷갈리면 안된다.

 비관(悲觀)과 철저한 준비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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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30 - 포비

그때그때 2014. 10. 30. 19:59

j형한테 전화가 왔다. "야, 개 끌고와라."

포비를 데리러 집 뒷언덕으로 올라갔다. 같이 놀자고 팔짝팔짝 뛰는 놈을 일단 집 앞으로 데려왔다.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온 지후가 포비를 안고 울었다. 포비는 놀러 가는 줄 알고 신이나서 아내 눈물을 핥았다.

20여분 정도를 걸었다. 포비는 언제나처럼 앞장 서서 나를 끌고갔다. 포비는 산책할 때 늘 그랬던 것처럼 길가 여기저기에 똥오줌을 쌌다. 오랜만의 나들이라 기분이 좋았을까? 포비는 혀를 내밀고 "학학" 웃으면서 뛰었다. 걷는동안 마주친 동네분들이 어디 가냐고 물었다. 개를 데리고 이사갈 수는 없다는 얘기도 하셨다.

j형은 매듭을 만들어 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개가 너무 커서 무서웠을까. j형이 나보고 매듭을 목에 걸라고 했다. 매듭을 목에 걸어줬다. 농협 건물 뒤쪽 언덕으로 가서 나무에 포비를 맸다. 나무에 매달리기 직전까지도 포비는 자신의 운명을 몰랐다. 편안하게 갔다.

시골개로 태어나서 시골개로 갔다. 어려서는 자유로웠지만 동네 닭들을 죽인 후에는 늘 묶여지냈다. 주인을 닮아서 야채를 제외하곤 뭐든 많이 먹었고 사는 동안 고라니도 한 마리 잡았다. '앉아.' 밖에 못 알아들었지만 우리가 주인인 것을 알아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짖어도 우리에게는 짖지 앉았다. 어려서는 정말 귀여워서, 외딴섬에 이사온 우리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작년에 볍씨 넣을 때 우리에게 달려오던 놈의 모습이 머릿속에 계속 리플레이 된다. 개를 처음 키워보는 주인을 만나서 여러가지로 불편했을지도 모르지만 대체로는 잘 지냈다고 생각한다.

오늘, 나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개 포비랑 안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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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8 - 신해철

그때그때 2014. 10. 28. 00:46
가을걷이가 끝났고 주말엔 동생이 결혼을 했다. 일이 있어 시흥시에 다녀왔고 피로에 지쳐서 늦게까지 잤다. 자고 일어나니 겨울이 왔다. 마당 앞에 찬 바람이 날아다니고 벼벤 뜰이 황량하다. 고양이들은 춥다고 내 옷자락에 붙어서 울었다. 이웃집에서 점심으로 만두랑 오뎅을 실컷 얻어 먹고 와서는 또 잤다. 야구를 보다가 가슴이 답답해서 손을 땄다. 아내 손도 땄다. 내 손끝에는 검은 피가 주렁주렁 맺혔다. 속이 편해졌다. 잠시후에 신해철이 죽었다. 아내가 엉엉 울었다. 노래방에만 가면 인형의 기사를 부르던 친구가 생각났다. 나는 고딩때 노래방에만 가면 넥스트의 머니를 불렀었다. 신해철을 무척 좋아하는 친구 하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내는 계속 울었다. '마지막 인사를 할 수가 없어. 그대는 비를 맞은 슬픈 천사처럼 떠나갔네.'를 들었다. 친구에게선 답장이 오지 않았다. 담배를 피우는데 하늘에 별이 많았다. 이제부턴 겨울이야.라는 듯 바람이 차가웠다.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을 먼저 보낸다는 것이 이런 느낌이구나. 달지도 시지도 않은 귤을 먹는 것 같은 밍밍한 슬픔일까.

세상에 나왔다가 가는 일이, 삶이란 것이 이렇게 일상속에 있다. 일상이란 특별한 무엇이 아니라 이렇게 허무하고 허망한 것이다.

낮에 너무 많이 자서 오늘밤은 잠들기 어려울 거 같다.

잘 살다가 가셨습니다. 기억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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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여름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 - 망고, 지후의 종아리, 마루에 들어오는 따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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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마 정리 중이다. 올해는 흉작이다. 흉작인데 택배비는 칠천원이다. 다행인 것은 당초 예상인 서른 상자를 넘어서 마흔 상자는 나올 거 같다는 점이다. 유기농도 좋지만 한 상자에 32,000원 하는 고구마를 누가 사 먹겠나? 우리를 어지간히 좋아하거나 우리를 돕기 위한 마음이 없으면 못 사 먹는다. 그런 의미에서 작년에도 많이 팔아 주시고 올해도 계속해서 우리를 먹여 살려 주시는 j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 아마 이건 못 읽으실테니까 따로 전화를 드려야겠다. - 감사합니다.

 지난주에 친구 내외가 다녀갔다. 아이도 데려와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조개 잡으러 같이 갔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해서 아쉽다. 섬에 왔으니 섬안주랑 술을 먹았으면 좋았는데, 그러질 못했다. 조개를 못 먹으니 망둥이라도 쪄주려고 했는데 일이 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뭐 그래도 어린이가 좋아했던 것 같으니 그걸로 좋다. 이 친구랑은 어렸을 때 뜨거운 뭔가를 나누지 못하고 술만 나누어서 그런지 나이 먹어서도 계속 술만 나눈다. - 어려서 뜨거운 뭔가가 있는 사이들이랑도 요즘 만나면 술만 나눈다. - 죽을 때까지 쭉 술을 나누는 사이는 참 괜찮은 사이인 거 같다.

 새벽에 일어나서 '하루에 하나씩'을 정리했다. 최근에 올린 건 거의 메모 수준이었다. 부끄러운 일이다. 여튼 슈퍼위크를 거쳐 열 두개를 골랐다. 여기서 두 개를 더 정리하고 10개를 만들어서 다섯개씩 두 곳에 보낼 계획이다. 보내는 것까지는 계획대로 할 수 있다. - 그 이후가 더 중요하다. 당선되서 아내랑 맛있는 거 한 번 먹고 한 번 더 먹고 한 번 더 먹고 싶다. - 아내의 평가에 의하면 내가 쓴 글에는 삶의 정수가 없다. 맛는 말이다. 일단 삶에 정수가 없어서 그렇다. 또 죄, 엄마, 이별로 범벅이 된 글들이 많다. 그것도 맞다.

 고친다는 표현이 좀 어색하지만 정신 차리고 고치자.

 다가올 이사를 생각하면 뭔가 훵하고 휑하다.

 불확실한 미래보다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는 법이니까, 그게 생의 가장 큰 즐거움이니까 지금처럼 긍정적으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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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섬을 나가는 뱃표를 사며
일면식도 없던 표파는 여인에게
시어머니 욕을 하던 여인이,
배 위에서 엉엉 울었다
빨간색 렌트카 안에서 울었다
아이를 옆에 읹혀 놓고 울었다
펑펑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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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


고등어의 몸에 날개를 달면 갈매기가 된다
그 유선형의 몸뚱아리는 스즈키 이치로의 송구만큼이나 아름답다
그 매끈한 몸이 바다와 수평을 이루며 날 때
바다는 온전히 그의 것이 된다

갈매기한테 고등어 통조림을 먹이고 싶다

자, 바다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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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어젯밤에는 모처럼 당신 옆에서 잠을 청했네
새벽빛이 내리고 나는 당신곁을 떠나네

당신은 동굴 속의 겨울잠처럼 잠들었네
나는 새우처럼 몸을 웅크린 당신에게 입을 맞추네

내 혀가 당신 입술에 닿을 때
나라는 동굴이 허물어지네

나는 바다를 사랑하고
당신의 몸에서는 메마른 바다냄새가 난다네

우리는 열정도 없이 몸을 섞지만
사랑은 열정도 없이 몸을 섞기도 하는 것이라네

당신의 동굴을 나오며 나는 행복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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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사람들은 나를 지나쳐 간다
저 언덕 너머에는 바다가 있을까
누구도 뒤를 돌아 나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외롭다

사람들은 나를 지나쳐 간다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다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몸을 떤다

저 언덕을 넘어 바다에 가고 싶어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어

그렇지만 나는 나무
천개의 눈을 가졌지만 어디에도 닿을 수 없는

나는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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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어원은 사람
사람의 어원은 사랑

사람은 사랑이고 사랑은 사람이다

사랑사랑해
사람사람해

사람들은 사랑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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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베기


벼 벨 때가 됐다고 기러기떼가 찾아왔다
기러기들은 어째서 공중에서 짝짓기를 하는가
어째서 무리를 지어 나는가

들판의 벼가 금빛 춤을 춘다
스륵스륵 춤사위에 맞춰 사각사각 낫을 놀린다

- 어렸을 때부터 하면 그렇게 되는 거에요?
- 어렸을 땐 안 했어. 너도 한 이십년 하면 이렇게 돼
- 올해 볏값이 많이 싸다는데, 문제 없어요?
- 아, 몰라. 어떻게 되겠지 뭐.

오전 참에 한 잔
점심 먹으며 한 잔
오후 참에 두 잔
저녁 먹으며 또 한 잔 마신다

취기가 돌고
저녁달이 붉게 흔들린다

갠지스 강에서 흰 빨래를 하는 노인이 아니더라도
벼를 베고 술에 취해 잠드는 오늘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망각 속에 잠드는 오늘은
꿈 속에서도 벼 냄새를 맡는 일은
아카시아 향기 속에 모를 내고 새떼들의 군무 아래 벼를 베는 일은
이 벼로 밥을 지어 먹는 일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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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새근새근 내 옆에 잠든 사람
이를 갈며 잠든 사람
여보, 가만히 불러본다
여기보시오 친구여
여보(如寶), 보석 같은 사람, 나랑 같은 사람아
눈뜬 내가 잠든 너를 나지막이 마음속으로 불러본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

여보

AND

믹스커피


눈 뜨자 마자 물도 마시기 전에 한 잔
어제 널 힘들게 했던 일들은 잊어
오늘은 달콤하고 향기로운 날이 될거야

아침엔 출근길 토스트랑 한 잔
점심엔 해장국 집에서 한 잔
저녁엔 소주에 삼겹살 먹고 한 잔

이발소에서 면도 마치고 한 잔
병원에서 차례 기다리며 한 잔
거래처에서 김 부장님과 한 잔

담배 태우며 한 잔
속 쓰려서 한 잔
달콤한 것 먹고 싶을 때 한 잔

커피, 설탕, 프림의 아름다운 조화처럼
그 순간 순간 조화롭게
인생은 이렇게 조화롭게 사는거야
한 잔, 한 잔 마시면서
한 고비, 한 고비 넘는거야

아버지 제삿상에 한 잔
모처럼 만난 어머니와 한 잔
당신이 그리워서 한 잔

기쁨도 슬픔도
보고 싶은 사람마저도
그렇게 커피 한 잔에 지나가는거야

AND

바람


바람이 나를 민다
바람에 밀려 걷는다

휘청거리는 내가 싫어
방향을 바꾼다

세상만물에는 인력(引力)이라는 것이 있어
서로를 끌어당기는 것이 숙명이라는데

바람은 나를 밀어내기만 하고
나는 그런 바람이 야속하다

그리고 나는 당신을 생각한다

우리에게 인력이 머물던 시절에
나는 바람이 되고 싶어 했고
당신은 나무가 되고 싶어 했다

바람은 그 시절의 나처럼 
나를 모질게 밀어낸다

바람, 하고 불러도
바람아, 하고 달래도
바람이여, 라며 애원해도

그것은 대꾸도 없이 나를 때리고
나는 여전히 당신의 원망을 이해할 수 없다

바람이 강하게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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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꽃


사람들에게 잘못한 일들이 쌓이면
고구마 밭에 들른다

부끄러움을 아는 나이가 되고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이 쉽지 않다
어떤날은 너무도 부끄러워서 스스로에게 민낯을 보일 용기조차 없다

새벽에 혼자 들르는 고구마 밭은
모든 것에 솔직한 시간이다

세상에 잘못한 일들이 많아 밭에 들렀다
안개속 고라니 발자국 사이로 고구마 꽃이 피었다

꽃말이 행운인 고구마 꽃이 피었다
100년에 한 번 핀다는 꽃이 100송이 피었다

10000년치의 행운을 어찌할까
모든 잘못을 씻어 달라고 할까
복권을 살까
사업을 시작할까
이웃들에게 나눠줄까
먼곳의 친구들에게 전할까

이런 바보 같은 나를 안아주는 당신에게 전해야겠다
미안하고 미안하고 고맙고 또 고마운 당신에게 전해야겠다

꽃 지기 전에 전해야겠다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