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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3.22 검은물, 멕시코 담배 2
- 2011.03.17 20110317 - 아이폰, 빚, 미래, 그리고 2
- 2011.03.16 20110316 - 35486, 순달이 4
- 2011.03.12 20110312 - 외롭다
- 2011.02.27 20110227 6
- 2011.02.21 20110221 - 봄바람이 살랑살랑, 순영이
- 2011.02.20 20110220 - 순규, 순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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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2.12 20110212 - 강릉 대설, 송아지 2
- 2011.02.12 20110212 - 눈사람, 대설
- 2011.02.03 20110203 - 민족 대이동 그리고...
- 2011.01.31 20110131 - 젖소, 구제역 치료법
- 2011.01.27 20110127 - 구제역, 안전하고 비밀스럽게 소고기 먹는 법 5
- 2011.01.19 20110119 - 소 3
- 2011.01.15 20110115 - 병원 6
- 2011.01.11 20100111 - 세계가 다르다. 6
- 2011.01.09 20110109 - 담배 5
- 2011.01.06 20110106 - 세계의 확장(?)
- 2011.01.04 20110104 - 괜찮을리가 없잖아. 2
- 2010.12.31 20101231
- 2010.12.22 20101222 - 의탁(依託) 2
- 2010.12.18 On the Seashore - Rabindranath Tagore 2
- 2010.12.16 20101216 - 점심을 얻어 먹고 떡으로 갚았더니 커피로 되받았다. 2
- 2010.12.13 20101213 - 어명정 2
- 2010.12.07 20101207 - 안양천 2
- 2010.12.04 20101204 - 라면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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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11.23 길상사 4
- 2010.11.19 20101119 - 숲 1
- 2010.11.08 20101108 - 오늘 4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내 동생께서는 빚더미 위에서 살고 있다. 당연히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누군가(엄마)에게 미안해하지도 (스스로에게)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 또는 그렇기 때문에 - 내 명의로 되어있는 서울집의 인터넷 요금을 자꾸 밀려서 나한테 독촉 문자가 오게 한다. 한 번만 더 문자 오면 얘기 안하고 해지해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페이스타임으로 조군이랑 통화를 했다. 화질이 선명하다. 또 레티나 디스플레이는 확실히 아이팟 터치 2세대의 디스플레이와는 다르다. 확실히 이것은 미래다. 미래라는 것은 상상했던 상상하지 않았던 찾아온다. 나는 SF소설을 무척 좋아하지만 친구랑 화상통화를 하는 미래를 상상해 본 적은 없다. 나는 아이폰도 샀고 여전히 최신형의 각종 device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더 이상의 미래는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다가오는 미래를 피할 수는 없다.
술이 취해서 썼던 지난번 글을 보니까 적나라한 게 있어서 좀 부끄러웠다. '이 세계는 파국으로 가고 있다'느니 하는 문장이 마음에 걸린다. 변산에서 H형이랑 자주 했던 얘기다. 그렇지만 우리 둘 다 미래 앞에 잘 살고 있다.
내가 농부가 되기로 한 건 이 세상이 끝나는 순간이 왔을 때, 내 직업이 농부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다. 어디가서 이 얘기를 할만한 곳이 없어서 자꾸 잊게 된다.
오늘 작은아버지와 했던 문답 두 가지
(농협 이사 선거 때문에 사람들이 돈을 많이 쓴다는 얘기와 서로 다투고 있다는 얘기들을 한 후에)
나중에 조합장 나갈 생각있나?
저는 정치 무용론자라서
(오전에는 상토도 옮겼고 하우스에서 고추 작업하느라고 꽤나 몸이 힘들었다.)
농촌이 만만치 않지?
아직은 현실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어요. 현실이 되면 힘들어 질까요?
늦었네, 자야겠다. ㅋㅋ
순달이, 태어난 지 일주일도 안됐기 때문에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도 가만히 있을 뿐이다.
순달이, 기운차게 움직이질 않는다. 젖도 빠는둥 마는둥 한다. 걱정이다. 내가 관찰하지 않을때만 활발하게 노는지도 모른다.
개나리 꽃망울일까? 엊그제 찍었다. 강릉에는 봄이 왔다.
작은아버지 내외가 울릉도로 여행을 가셨다. 2박 3일이지만 아침에 가셨다가 밤 늦게 오시는 일정이기 때문에 내게는 혼자서 있을 수 있는 온전한 3일이 생겼다.
시골에서 혼자 산다는 건 어떤걸까?
목요일 새벽에 송아지가 태어났다. 오전 내내 송아지를 관찰했다. 젖을 물지 않길래 젖병에 젖을 짜서 먹이려고 했는데, 젖이 나오질 않는다. 흠.... 어미에게 문제가 있는걸까? 잠시후에 송아지는 세차게 어미 젖을 빨기 시작했다. 이번 송아지 이름은 순달이가 좋겠다. 현재 외양간에 살고 있는 네 마리 송아지들 중에 가장 예쁘게 생겼다. 송아지가 어미 젖도 빨았으니 크게 할 일이 없다. 마트에 가서 담배와 맥주를 샀다. 첫 번째 페트를 비우고 나서 오른손 손톱을 잘랐다. 반만 잘랐다. 예쁘게 길러서 기타에서 멋진 소리가 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두 번째 페트를 비우고 나서 손톱을 마저 잘랐다. 굳은살도 잘라냈다. 지금 이렇게 잘 지내고 있는데, 뭐가 그렇게 새로 시작하고 싶었던 걸까?
금요일 아침, 어제 자른 손톱 때문에 후회가 밀려왔다. 굳은살을 너무 많이 잘라내서 손끝이 아리다. 그래도 기타소리는 정직하니 다행이다. 오후에 친구가 왔다. 어머니가 담근 복분자주를 들고 왔다. 혼자서 신나게 마셨다. 신나게 마신만큼 신나게 떠들었다. 취해서 떠든일에 대해서 후회할 나이는 이미 지났다. 그런 기분이 나를 더욱 떠들게 만들었다. 친구는 나랑은 달라서 농사는 부업으로 글쓰는 일을 주업으로 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 어차피 이 세계는 파국으로 가고 있으니 뭐든 나쁘지 않겠다.
토요일, 2시 가까워 잠들었는데, 7시에 깼다. 술이 덜 깼지만 차를 끌고 외양간에 올라갔다. 소들은 내가 없으면 굶어 죽고 나는 소들이 없으면 외로워 죽는다. 이거야말로 완벽한 관계다. 한우 한 마리가 새끼를 낳을 것 같은 기미를 보여서서 순달이랑 순달이 엄마(9240)이 있는 칸으로 옮겨줬다. 송아지들한테는 이름을 지어주지만 어미소는 번호로 부른다. 마치 SF영화(블레이드 러너)에서 안드로이드들을 부르는 것 같다. 밤사이 일본에는 지진이 났다. -'도쿄 매그니튜드' 같은 작품이 괜히 나오는 건 아니다.- 7번 국도를 타고 신나게 달려서 친구를 주문진에 내려줬다.
내가 강릉에 내려온 다음에 많은 친구들이 '한 번 놀러갈께'라고 했지만 실제로 놀러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변산에서도 그랬다. 친구들이란 것은 '우리 언제 밥 한 번 먹자' 또는 '언제 술 한 잔 해야지'랑 같은 맥락으로 '놀러 한 번 갈께'라는 말을 쏟아낼 뿐이다. 놀러 온다는 말을 실천에 옮겨준 친구가 무척이나 고맙다.
35486은 꼬리를 동그랗게 말고서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면서 힘을 줬다 뺐다를 반복했다. 그렇지만 새끼를 낳지는 않았다. 한참을 관찰했다. 새끼를 낳더라도 밤 늦게나 내일 새벽에 낳을 것 같다. 소들 저녁밥을 주고, 집으로 내려와서 김치 부침개를 만들었다. 건강을 위해서 올리브유를 사용했다. 어제 다 해치우지 못한 복분자주를 먹었다. 일본에서는 대지진이 발생했는데, 대한민국 강릉에 사는 나는 김치 부침개를 안주로 복분자주를 먹는다. 이건 필리핀 산 바나나 한 송이를 1,500원에 파는 것 만큼이나 weird한 상황이다. 우리의 삶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다른 나라의 소식을 굳이 뉴스에 내보낼 필요가 있는걸까?
허망함이 허무하게 밀려든다.
외롭다.
나는
외롭다.
강릉오는 버스에서 한 시간, 어젯밤에 열 시간, 오늘 오전에 세 시간을 잤다. 서울독(毒)을 씻어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을까?
오후에 눈을 뜨니 아침에 내리던 비가 눈으로 변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바닥에 닿은 눈이 녹는 속도가 눈이 내리는 속도를 이기지 못해서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눈이 치울만큼 쌓였을 때, 마당으로 나갔다. 며칠만에 잡아보는 눈삽과 손수레가 낯설지 않다. 열심히 치웠지만 눈은 내가 치우는 속도보다도 빠르게 쌓여 갔다.
치운 눈은 손수레에 담아서 집 앞을 흐르는 도랑에 버렸다.
아뿔싸,
물이 검다. 평소에는 몰랐는데, 물이 검다.
검은 물 위에 흰 눈덩이들을 쏟아 부었다. 눈이 검게 물들었다.
이번 생(生)은 틀린걸까, 하는 터무니 없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독(毒)과 검은물 때문이다. 대설 때문이다.
눈은 쌓이지만 2월은 저물었다.
살랑살랑 소 아침 여물 주고, 살랑살랑 고추 모종에 물 주고, 살랑살랑 트럭을 몰고 구정면에 가서 등겨 실어오고, 살랑거리면서 소 저녁 여물 줬다.
지난 한파에 자동수도가 고장나서 말통에 물 받아 나르느라 신체단련이 많이 됐는데, 오늘 드디어 동파된 곳을 찾아내서 수도를 고쳤다. 무척 기쁘다. 소들은 덩치만큼 물도 많이 먹기 때문에 아침저녁으로 20마리가 넘는 소한테 물을 날라주는 일은 끝없이 흘러 내리는 모래로 산을 쌓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힘들었더랬다. 휴우~~
밤에는 모처럼 시내 나들이 갔다. 옥상이 무방비로 뚫려있는 건물을 발견해서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곤 시내 커피숍에 혼자 앉아서 마음에 드는 글을 썼다. - 이게 제일 마음에 든다.
순영이 - 귀빠진 날,
아까 낮에 보니까 송아지 세 마리가 사이좋게 폴짝폴짝 뛰어다니고 있었다.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광경이다.
오늘 찍은 사진이다. 생후 6일 째를 맞은 숫송아지다. 이름은 '순돌이'다. 완전 귀엽다. 흡사 사슴 새끼 같기도 하다. 송아지들도 소들처럼 끊이없이 몸을 움찔거리기 때문에 똑딱이로 찍기는 쉽지 않는데, 몇십 장을 찍은 끝에 한 장 건졌다.
어제도 송아지 한 마리가 태어났다. 소들 중에 한 마리가 아침 사료를 잘 안 먹길래 작은아버지께 말씀드렸더니 새끼 낳으려고 하나보다고 하시면서 격리조치했다. 점심먹고 우사(牛舍)에 갔더니 암송아지가 태어나 있었다. 새끼 몸에 사료를 뿌려서 지 새끼를 외면하고 있는 어미소를 유혹했다. 어미가 핥아줘야 털이 금방 마른다고 한다. 송아지가 스스로 일어설때까지 기다렸다가 젖을 물렸다. 어미소가 젖멍울때문에 아파서 그런지 계속 발길질을 했다. 그래서 작은아버지랑 나는 앞다리랑 뒷다리를 한쪽씩 묶는 극단적이 방법을 선택했다. 어미는 많이 아팠는지 묶인 뒷다리로 연신 발길질을 했다.
오늘 오후에 가서 계속 관찰했는데, 젖멍울이 많이 풀렸는지 어미가 어제처럼 새차게 젖을 찾는 새끼를 뿌리치지 않았다. 사료를 먹은 다음에는 새끼를 막 핥아줬다. 감동적이다. 어제 나온 녀석 이름은 '순규'로 정했다. 젖을 실컷 먹은 순규는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완전 귀엽다. 올해 나오는 송아지들은 順 자 돌림으로 이름을 지어줘야겠다.
오후에 소가 새끼를 낳았다. 송아지가 나오는 장면을 처음 봤다. 작은아버지랑 함께 송아지 다리를 붙잡고 어미소 뱃속에 있는 녀석을 힘껏 잡아당겨 꺼냈다. 소도 송아지도 사람도 힘든 시간이 지나고 송아지가 쑥 하고 빠져나왔다. 작은아버지는 갓 태어난 따끈한 송아지를 울타리에 걸쳐 놓고 깨끗하게 닦아주셨다. 나는 새 생명의 뜨거운 열기를 두 손으로 느끼면서 녀석을 붙잡고 있었다.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은 감촉이었다. 작은아버지는 양수 때문에 막혔을지도 모르는 송아지의 콧구멍에 입을 대고 빨아들이고 뱉어내기를 몇 번이고 반복하셨다. 저녁에는 송아지한테 젖을 물리기 위해서 젖병을 빨게 했다. 젖을 빨고 이틀만 지나면 펄쩍펄쩍 뛰어다닌다고 한다. 뛰어다니기 시작하면 사진도 찍어주고 친하게 지내야겠다.
짤방은 멀리서 송아지를 지켜보고 계시는 작은아버지, 고개를 앞으로 숙이고 계셨더라면 이 사진이 올해의 베스트 샷이 될 뻔했는데, 아쉽다. 손에 들고 계신 것은 눈삽인데 눈 치우는 용도 보다는 다른 용도로 활용할 때가 많다.
오후에 소 밥주러 올라갔다가 2호랑 3호를 만들었다. 왼쪽에 눈깔을 두 개 박아 놓은 녀석이 2호다.
그리곤 밤 사이에 미친듯이 눈이 왔고 눈사람들은 봉우리가 되었다.
어제 한군이 놀러와서 시내에 나갔다가 자고 들어왔다. 눈 때문에 차가 다니질 못했다. 한군을 집에 데리고 왔다. 우리 동네에는 사진만큼 눈이왔다.
외양간에서 작업중이신 작은아버지, 당분간은 이 사진이 올해의 베스트 샷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번 설 연휴에 3100만명이 귀성길에 오른다고 한다. 해외로 놀러가는 사람들은 58만명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인구가 5000만명이니까 어림잡아 60%의 사람들이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 이동하는 것이다. 귀성길에 오른 3100만명의 사람들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만만치 않은 숫자일거다. 여기까지 생각했다가 몇 해 전에 봤던 광경이 떠올랐다.
명절 연휴의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화장실에 간 애인을 기다리는 공원 매점 앞, 파라솔 아래에 두 사람이 컵라면을 먹고 있다. 엄마로 보이는 중년 여인은 국물이 있는 것을 마주 앉은 어린이는 짜장(자장)을 앞에 두고 있다. 테이블에는 김밥도 두 줄 놓여있고, 여자는 이미 한 캔의 맥주를 비우고 두 캔째를 시작했다. 아들로 보이는 어린이는 한 올 한 올 면발을 집어 먹는데, 여자는 보란듯이 김밥을 라면 국물에 찍어서 아귀아귀 씹어 먹고는 맥주를 들이킨다. 두 사람은 한 마디 말도 섞지 않는다.
담배 한 대가 타들어 가는 동안 특별할지도 모를 그들의 사연을 생각하다가 애인과 함께 그들을 뒤로했더랬다.
설 쇠러 서울에 올라왔다. 엄마 얼굴을 보니까 참 좋다.
백석의 시가 떠올랐다.
두보(杜甫)나 이백(李白)같이 -백석-
오늘은 정월 보름이다
대보름 명절인데
나는 멀리 고향을 나서 남의 나라 쓸쓸한 객고에 있는 신세로다
옛날 두보나 이백 같은 이 나라의 시인도
먼 타관에 나서 이 날을 맞은 일이 있었을 것이다.
오늘 고향의 내 집에 있는다면
새 옷을 입고 새 신도 신고 떡과 고기로 억병 먹고
일가친척들과 서로 모여 즐거이 웃음으로 지날 것이였만
나는 오늘 때 묻은 입든 옷에 마른 물고기 한 토막으로
혼자 외로이 앉어 이것저것 쓸쓸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옛날 그 두보나 이백 같은 이 나라의 시인도
이날 이렇게 마른 물고기 한 토막으로 외로히 쓸쓸한 생각을 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제 어느 먼 외진 거리에 한 고향 사람의 조고마한 가업집이 있는 것을 생각하고 이 집에 가서 그 맛스러운 떡국이라도 한 그릇 사먹으리라 한다
우리네 조상들이 먼먼 옛날로부터 대대로 이날엔 으례히 그러하며 오듯이
먼 타관에 난 그 두보(杜甫)나 이백(李白) 같은 이 나라의 시인도 이 날은 그 어느 한 고향 사람의 주막이나 반관(飯館)을 찾어가서
그 조상들이 대대로 하던 본대로 원소(元宵)라는 떡을 입에 대며
스스로 마음을 느꾸어 위안하지 않았을 것인가
그러면서 이 마음이 맑은 옛 시인들은
먼 훗날 그들의 먼 훗자손들도
그들의 본을 따서 이 날에는 원소를 먹을 것을
외로히 타관에 나서도 이 원소를 먹을 것을 생각하며
그들이 아득하니 슬펏을 듯이
나도 떡국을 놓고 아득하니 슬플 것이로다
아, 이 정월(正月) 대보름 명절인데
거리에는 오독독이 탕탕 터지고 호궁(胡弓)소리 뺄뺼 높아서
내 쓸쓸한 마음엔 자꾸 이 나라의 옛 시인들이 그들의 쓸쓸한 마음들이 생각난다
내 쓸쓸한 마음은 아마 두보(杜甫)나 이백(李白) 같은 사람들의 마음인지도 모를 것이다
아무려나 이것은 옛투의 쓸쓸한 마음이다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소는 발굽이 두 개다. 구제역은 발굽이 두 개인 동물한테만 생긴다.
예전에 강릉에서는 구제역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소가 있으면 소 혀에 왕소금을 박박 문대거나 발굽사이에 생긴 수포(물집)를 인두로 지졌다고 한다. 그래놓고 소가 살아남으면 좋고 죽으면 죽는대로 잡아 먹어서 좋았던 것이다. 그리고 구제역은 치사율이 높지 않다.
어른들께 들은 이야기라 기억해 둔다.
사진에 찍힌 젖소는 이름이 '얼룩이'다. 물론 젖소들은 다 얼룩얼룩하다. 얘는 낯을 많이 가려서 사료를 먹다가도 사람이 다가가면 사료통에서 고개를 뺀다. 그리고 다른 소들한테 힘에서 많이 밀리는지 자기 몫을 잘 못 챙겨 먹었었다. 같은 칸에 있는 소 다섯 마리 중에서 가장 먼저 새끼를 낳을 소인데 다른 애들에 비해서 너무 말랐다. 그래서 요즘에 특별관리하에 두고 엄청나게 많이 먹이고 있다. 그랬더니 약간 살이 붙는 것 같다.
사진은 약간 사나워보이게 나왔는데, 실제로는 엄청 순하게 생겼다.
가운데 있는 소가 '먹쇠'다. 먹쇠는 얼룩이랑 같은 칸에서 살고 있는데, 사료 먹을 때,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고 우악스럽게 처먹는다. - 나머지 소들은 대체로 고개를 쳐박고 먹는다. - 작은아버지가 가끔 "이 새끼 또 고개를 쳐들고 처먹네."라고 하시면서 사료 먹고 있는 놈 이마를 툭툭 때리신다. 그래서 가끔은 나도 따라한다.
구제역 때문에 난리다.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 동네 누나랑 같이 그 누나 친척집이 있는 해남에 놀러 갔었더랬다. 동네를 산책하고 있었는데, 풀 뜯어 먹으라고 산비탈에 매어 놓은 소 한 마리가 절뚝거리고 있었다. 앞다리가 부러졌다고 했다. 동네 사람들끼리 쑥덕거리더니 아저씨 하나가 대형망치(일명 오함마)를 갖고 와서는 소 정수리를 정통으로 때려버렸다. 소는 그 한 방에 무너져내렸다. 그날 저녁에 소고기 미역국을 먹었다. 소 주인이 동네 사람들에게 고기를 조금씩 나눠줬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 같다. 그때 먹은 미역국이 지금도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물론 소를 죽이는 모습이 더 생생하게 남아있다.
지금은 소가 태어나면 등록을 해서 끝까지 이력을 추적하는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20년 전처럼 동네에서 잡은 소고기를 먹지 못한다. 강릉만 해도 도축장이 없어서 강릉에서 키운 소가 대관령을 넘어 가서 고기가 되고 다시 고개를 넘어서 마트에 안착하는 시스템이다. 약간은 비효율적인 것 같기도 하다.
아무리 소고기의 등급을 나누고 확실하게 이력추적을 한다고 해도 유통과정에서 벌어지는 속임수에는 당할 수가 없다. 장사치들을 욕하자는 게 아니라 안전하고 비밀스럽게 소고기를 먹는 법에 대해서 쓰려고 한다.
소가 태어난다. 1. 관계 당국에 신고를 하지 않는다. 2. 유전자 변형 옥수수가 포함된 사료를 사서 먹이지 않고 방목하며 풀만 먹여서 잘 키운다. 3. 소가 먹을만큼 크면 소를 잡아서 가죽과 고기와 내장을 분리한다. 4. 맛있게 먹고 소가죽으로는 수제화를 만들든지 외투를 만들든지 한다.
간단하게 4가지 단계인데, 쉽지만은 않다. 먼저 관계 당국에 신고 안했다가 걸리면 낭패다. 그리고 지금은 공장식으로 소를 키우기 때문에 신고 하지 않고 들키지 않는게 정말 어렵다. 다음으로 방목해서 먹이려면 무농약의 초원지대를 찾아야 하는데, 한 마리만 키워 먹으려는 입장에서 그런데를 찾기가 어렵다. 소는 물도 많이 먹으니까 개울가에 매야 하는데, 좋은 자리를 찾는 일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소는 누가 잡아주나? 물론 뒷돈을 주고 마장동의 기술자를 불러서 잡을 수 있을 것 같긴하다.
비밀리에 개인 목장을 운영할 수 있을 정도로 돈이 넘쳐나는 사람들은 안전하고 비밀스럽게 소고기를 먹을 수 있다. 이건희는 그런 소고기만 먹지 않을까?
결론은 구제역이 빨리 없어져야 그나마 여태까지 먹던 가격으로 돼지고기랑 소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보다 중요한 건 축산에 생계가 걸린 사람들이 한숨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며칠전 '여섯시 내고향'에 소 2마리를 70마리로 불렸다가 한 번에 묻어버린 아저씨가 나왔는데, 그 아저씨는 하루에 한 번씩 운다고 했다. 작은아버지에게 물었더니 소를 한 마리도 안 팔고 계속 불렸으면 10년 쯤 걸렸을거라고 하신다. 그 아저씨는 덜 먹고 안 쓰며 버틴 10년을 땅 속에 묻어버렸다.
농약 먹고 자살하는 사건들이 괜히 있는 건 아니다.
차를 세우고 우사 안으로 들어가면 소들이 일제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릴때가 있다. 소들이 나를 보고 '이 새끼가 사료 주러 왔나.' 싶어서 그런것같다. 작은아버지가 가끔 새벽 네 시에 아침밥을 주러 가실 때가 있는데, 그럴때면 소들이 '이 새끼가 미쳤나.' 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소들한테는 나도 작은아버지도 다 <이 새끼>일 뿐이다.
똥 치운지 얼마 안됐는데, 다시 똥들이 쌓여간다.
소 두마리가 짚을 빼 먹고 있는데, 한 마리가 뒤에서 슬금슬금 기어간다. 왜 그럴까?
작은 아버지가 팔꿈치 통증을 호소하신다. 하지만 병원에 가질 않으신다. 어제는 많이 아프셨는지 전기톱 시동을 잘 못 거시길래 내가 대신 걸어드리길 수 차례였다. 본인의 의견은 6개월 전 쯤에 일하다가 파이프에 맞았는데, 그때부터 아팠던 것이고 뼛 조각이 떨어져 나갔거나 금이 간 것 같다는 것이다.
오늘은 날도 춥고, 작은 아버지 팔도 쉴 겸 오전에는 일을 안했다. 이 참에 병원에 다녀오시는 게 어떻겠냐고 해도 작은 아버지는 한사코 가기 싫다고 하신다. 그 이유는 한 번 가면 계속 오라고 할 것이 분명하고 그것이 귀찮기 때문이란다. 사진이라도 찍어보시면 좋을텐데.... 견딜만하기 때문에 병원에 안 가시는 걸까? 작은 아버지는 20년 이상을 안고 살아 오던 탈장도 겨우 몇 해 전에야 수술로 해결하셨다.
조군이야 일을 안하면 당장에 많은 문제가 생기는 상황이니까 마음 놓고 쉴 수 없는 처지라지만 작은 아버지는 구제역으로 수정일도 못 다니시고, 집에 나무도 많이 해 놨고, 겨울에 특별히 일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마음껏 몸을 관리할 수 있는 상황이신데, 병원에 안 가신다.
작은 어머니는 무릎과 허리 수술을 하셨는데, 그 때문에 무거운 걸 잘 못드신다. 그리고 작은 어머니는 몸이 안 좋으면 바로 한의원이나 병원에 가신다. 두 번이나 몸이 크게 아프셨기 때문에 아프면 안 좋다는 걸 몸으로 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엄마는 술장사를 시작한 다음부터 몸이 자주 아픈데, 버티면 낫겠지, 하고 버티고 버티다가 대상포진이라는 극단적인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했던 때 이후에는 조금만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간다.
우리 아버지 같은 경우도 있다. 아버지는 술을 많이 드시는데, 그것에 대한 반발로 운동도 열심히 하신다. 그러던 것이 어느날은 술 때문인지 운동때문인지 무릎을 다치셔서 절뚝거리면서 걷게 되셨다. 식구들은 술도 그만 드시고 운동도 하지 말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술을 먹고 그것에 대한 반발로 운동도 열심히 하고 - 주로 운동 가서 술 드신다. - 물리치료도 받지만, 그래서야 무릎이 좋아질리가 없다. 얼마전 할아버지 제사때 보니까 걸음걸이가 불편해 보였다.
나는 어떤가 하면 감기에 걸렸다고 병원에 가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스스로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면 빠른 시간안에 병원에 가는 편인 것 같다. 일례로 작년에 새끼 손가락이 구부러졌을 때, 바로 병원으로 직행했었다.
어딘가 아픈 사람이 병원에 가고 가지 않고는 스스로의 판단이다. 스스로 생각했을 때, 심각하다고 생각하면, 병원비가 없지 않은 다음에야 누구나 병원을 찾을 것이다. 문제는 판단의 기준인데, 작은 아버지같은 판단기준은 조금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조군의 경우도 위험한데, 가게를 지켜야 하는 사정이란 것도 중요하지만 무리해서 일하다가 정말로 심각하게 아픈 상황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몸이 건강해야 불법으로 장기매매도 할 수 있다.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
가난하면 아플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조군이야 여유있는 편이니까 조금 쉬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세계가 다르면 이해까지는 할 수 있어도 함께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부모님이 작년에 이혼을 하셨는데, 두 분 모두 덤덤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두 사람의 세계가 달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의 미국행과 어머니의 오산행을 합치면 두 사람은 이미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각자의 세계에서 살아왔던 것이다. 여기서 세계란 취미나 취향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살아가는 공간만을 말한다.
나는 이미 강릉이라는 세상에 있다. 서울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내가 서울로 가던가 그 사람이 강릉에 오지 않고는 우리 둘의 세계는 다르기만 할 뿐이다. 두 사람이 정말로 사랑하고 결혼도 하고 싶은데, 피치못할 사정 때문에 서로의 공간을 양보할 수 없다면, 그들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해결책은 주말부부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떨어져 사는 부부들이 함께 살 때처럼 두터운 애정으로 둘러쌓여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주일에 5일을 다른 세계에 있다가 고작 이틀을 함께 하는 것으로 두 사람이 같은 세계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취미는 달라도 취향이 같으면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에 앞서서 공간이 같아야 한다. 자신의 세계를 포기하고 한국 농촌으로 시집오는 외국인 처녀들의 결의는 참말로 대단하다. 그 결의의 바탕이 된 것이 사랑이 아니라도 상관 없는 것 같다. 그녀들은 자신의 세계를 바꾸기로 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반에 혈혈단신으로 미국으로 이민왔던 유럽의 젊은 여성과 한국 농촌으로 시집오는 외국인 처녀는 같은 선상에 있는 것이다.
'당신과 나는 세계가 다르다.'
어쩔 수 없지만 슬픈일이다.
그르니에가 담배에 대해서 썼던 글에 보면 담배의 가장 훌륭한 효과가 어떤 특정한 순간들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과 관계 있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 다음 대목에서는 그렇기 때문에 담배를 끊기 위해서는 담배 대신 다른 것으로 그 순간들을 기억할 수 있으면 된다고 했던 것 같다. 예를들어, 염주를 굴리는 것 - 바닷가에 가서 담배를 입에 무는 대신 염주를 굴리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쉽게 이해가 간다.- 이 훌륭하게 담배를 대체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담배를 끊고 싶지가 않다. 나한테 담배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이라면 기타인데, 기타는 일단 부피가 커서 항상 가지고 다니기는 어려운데다가 담배를 입에 물고 기타를 치는 것이 담배를 피우는 대신 기타를 치고 있는 모습보다는 훨씬 그럴듯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흡연율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는 것은 종국에 가서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아주 희소한 사람이 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된다. 모두들 담배를 끊기 위해서 노력하는 시대에 흡연이야 말로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the last one이 될 가능성이 높은 분야라는 것이다. 예전에는 나랑 정서적으로 너무도 다른 누군가가 담배를 피우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와 내가 같은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 기분 나빠서 담배를 끊어버리고 싶은 기분도 들었었는데, 낮아지는 흡연율은 그런 기분이 들 상황들을 줄여줄 것이 분명하다.
담배 끊기 싫다는 얘기를 너무 길게 해버렸다.
보통,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 흘러간다고 하는데, 이것에 대한 가장 그럴듯하면서도 보편적인 대답은 이러하다.
- 어렸을 때는 모든 것이 새로움의 연속이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신기한 일들로 가득차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새로운 일들이 사라지기 시작하면 대부분의 일들이 반복의 영역에 속하게 되면서 훅~ 하는 순간 시간이 지나가 버리게 되는 것이다. -
가장 그럴듯하다고는 했지만, 정곡을 찌르는 질문도 가능하다. 새로운 일들이 많을 수록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거 아닌가요?
세계의 확장에 대해서 쓰고 싶었는데, 시간 얘기로 시작해 버렸다. 이래선 안된다.
어제가 할아버지 제사라 친척들이 주르륵 모였다. 막내 삼촌 큰 딸이 올해 중학교에 들어간다. 공부를 아주 잘 한다고 한다. 나랑 대화가 잘 통하는 편이다.
- 오빠, 오빠는 직업이 뭐야?
농부.
왜?
오빠가 살아보니까 몸을 쓰는 일이 정직한 것 같고 그 중에서 농부가 오빠랑 잘 맞는 것 같아.
.................
이를테면 네가 공부를 잘 해서 변호사가 됐어. 변호사는 법정에서 사람들은 변호해주는 일을 하잖아. 그런데 그 일은 몸을 쓰는 일이 아니고 말과 글을 가지고 하는 것이잖아. 변호사라고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변호인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거짓말도 조금 해야하고 양심에 걸리는 일을 해야 할 때도 있지 않을까? 오빠가 이런저런 일을 해 보니까 그런게 너무 싫더라고.
........ 오빠는 되게 자유롭게 사는 것 같아, 나도 오빠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어.
요즘에는 자유롭게 사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ㅎㅈ이도 자유롭게 살 수 있을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
대화의 마지막은 영문법이 계속 어려우면 내가 심혈을 기울여서 도와주겠다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대화를 할 수 있는 사촌동생이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각설하고, 유아기에 집채만하게 느껴지던 동물원의 호랑이가 어른이 되서 다시 보면 작아 보이는 것처럼,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진학을 하면서 세계가 확장된다. 진학 과정에 따라 점점 더 먼 곳에서 살던 사람들이 친구 또는 동료가 되는 것이다. 나중에는 외국인 친구들과 외계인 친구들도 생기는 것으로 세계의 확장이라는 것이 끝나는 것 같다.
이런식으로 세계가 확장되는 과정에서 겪는 사건과 갈등들을 사람들은 좋아한다.
그러니까 해외여행을 열심히 다니면 세계는 계속 확장되고, 여행을 통해서 얻는 새로운 경험들이 세월의 속도를 줄여준다는 결론이 나온다.
외계인을 만날때까지는 계속해서 확장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이 글은 고구미의 일년기에 대한 대답이고, 내가 먼저 썼던 글에 대한 변명이다.
친척동생이 확장된 세계에서 즐겁게 지냈으면 좋겠다.
고구미를 만났다. 늘 하던 얘기, 늘 하던 질문, 늘 비슷한 대답, 항상 마시는 술, 이유도 없이 마시는 술, -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데, 이유가 있어야 할까? 밥을 먹는 이유가 살기 위해서, 배가 고파서라고들 하지만 사실 사람들은 별 이유없이 밥을 먹는다. - 늘 그랬던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끊어지는 기억, 애써 재구성 할 필요도 없는 어제, 습관적으로 눌렀던 것으로 보이는 단축번호 99번, 당신의 자리를 차지한 내 아버지
새해들어 눈이 두 번 왔다. 첫 번째 눈은 거칠고 두꺼웠는데, 어제 내린 눈은 엄마가 잠든 아기에게 덮어주는 이불처럼 포근하고 고왔다.
오늘, 시작한지 나흘만에 소똥을 다 치웠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는 어렸을 때부터 단 한 번도 소똥이 더럽다고 생각했던 적이 없다.
생활이 익숙해질 무렵- 삶이 지겨워질 무렵 -이면 지겹지도 않게 떠오르는 당신 생각, 지겹지도 않은 지겨움의 반복
그래도 올해는 작년보다는 재미있게 살아야겠다.
어제는 모처럼 필름이 끊기도록 술을 마셨는데, 낮에 눈을 떴을 때 '사는 게 뭐 이래!' 하는 거지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가 금방 괜찮아졌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재미있게 살아야겠다.
혼자 살았으면 더 좋았을 수도 있겠지만 밥을 혼자서 차려 먹지 않아도 되는 것만해도 굉장한 이익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더구나 작은 어머니는 요리 솜씨가 좋으시다. (특히, 김치)
시골 생활은 즐겁다.
강릉 생활이 변산 생활과 다른 두 가지는 씻고 나서 저녁을 먹는다는 거랑, 술을 안 먹는다는 거다. 술을 안 먹어도 생활은 즐겁다. 변산에서도 정말 즐거웠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의탁(依託)이다.
변산에서는 비용이 들어가는 모든 것을 공통체가 책임져 주기 때문에 그저 일만 열심히 하면 됐다. 스스로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한다면 모든 시간들이 즐거웠던 것이다. 거기다 그곳에는 어린이들이랑 청소년들이 있었다.
강릉에서는 비용이 들어가는 것을 내가 책임져야 하지만 돈벌이로 산불감시 일을 하고 있고, 의식주는 공동체에 그랬던 것처럼 작은아버지께 의탁함으로써(집과 먹을 것이 있으면 사람이 생활하는데 많은 돈이 들지 않는다.) 그저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식으로 편하게 지내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이것에 대한 대답으로 올해의 문제작 '백의 그림자'에서 한 구절을 찾아서 옮겨 본다.
빚을 지는 것이 어째서 필연이 되나요?
빚을 지지 않고 살 수 있나요.
그런 것 없이 사는 사람도 있잖아요.
글쎄요, ~ 그런 것 없이 사는 사람이라고 자칭하고 다니는 사람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조금 난폭하게 말하자면, 누구의 배(腹)도 빌리지 않고 어느 날 숲에서 솟아나 공산품이라고는 일절 사용하지 않고 알몸으로 사는 경우가 아니고서야, 자신은 아무래도 빚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뻔뻔한 거라고 나는 생각해요.
공산품이 나쁜가요?
그런 이야기가 아니고요, 공산품이란 각종의 물질과 화학약품을 사용해서 대량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라 여러 가지 사정이 생길 수 있잖아요? 강이 더러워진다든지, 대금이 너무 저렴하게 지불되는 노동력이라든지. 하다못해 양말 한 켤레를 싸게 사도, 그 값싼 물건에 대한 빚이 어딘가에서 발생한다는 이야기예요.
그렇군요.
축사를 확장하는 공사 도중에 땅과 관련된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작은아버지가 심란해하시는데, 구제역이 강원도까지 넘어왔고 이제 대관령만 넘어오면 바로 우리 동네기 때문에 심란함이 더욱 깊어지셨다. 얼마전에 저녁 식사 하시면서 '매일 매일 이렇게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 소원이다'라고 하셨던 분이신데.....(그 자리에서 내 소원은 장가가는 거였다. ㅡ.ㅡ;)
어제 달 표면을 눈 앞에서 구경하는 꿈을 꿨다. 작은아버지 만큼은 아니겠지만 나 역시 약간은 심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올해도 가고 뭔가 좀 심란해서 적어 봤다. 의탁도 좋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직접 몸으로 부딪치는 쪽이 더 사는 것 같으려나?
p.s 엊그저께 티비에서 말이 새끼 낳는 장면을 봤는데, 어미가 새끼가 일어나서 걷기 시작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길을 떠나는 장면을 보다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내가 요즘 이렇다.
On the seashore of endless worlds children meet.
The infinite sky is motionless overhead and the restless water is boisterous. On the seashore of endless worlds the children meet with shouts and dances.
They build their houses with sand, and they play with empty shells. With withered leaves they weave their boats and smilingly float them on the vast deep. Children have their play on the seashore of worlds.
They know not how to swim, they know not how to cast nets. Pearl-fishers dive for pearls, merchants sail in their ships, while children gather pebbles and scatter them again. They seek not for hidden treasures, they know not how to cast nets.
The sea surges up with laughter, and pale gleams the smile of the sea-beach. Death-dealing waves sing meaningless ballads to the children, even like a mother while rocking her baby's cradle. The sea plays with children, and pale gleams the smile of the sea-beach.
On the seashore of endless worlds children meet. Tempest roams in the pathless sky, ships are wrecked in the trackless water, death is abroad and children play. On the seashore of endless worlds is the great meeting of children.
타고르의 시들 중에 유독 이 작품을 오래 기억하고 있다. 예전에는 민음사 버전을 읽었었는데, 새로 산 열린책들 버전의 번역은 영 느낌이 살지 않는다. 여튼 멋진시다. 'On the seashore at the end of the world'로 시작했으면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강릉에 와서 아직 바다엘 못 갔다. 크리스마스 전에 한 번 다녀와야겠다. 어느 바다에 가야 saeshore of endless worlds의 느낌이 날까나.....
산불감시 한답시고 길가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나를 불렀다.
형님인 줄 알고 나를 불렀다고 했다.
커피 한 잔 하고 가라고 하시길래 그러겠다고 한 것이 점심까지 얻어먹었다.
장국을 새로 끓여서 밥을 차려주셨다.
같이 먹는구나, 생각했는데 아주머니는 이미 식사를 하셨다고 했다.
부러 차려주신 것이 죄송스러워 퍼주시대로 계속 먹었다.
찬이 없어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시길래
쩝쩝거리면서 더 맛있게 먹었다.
밥을 다 먹고 커피도 얻어 먹었다.
집에서 가래떡을 뽑았다.
아주머니 드리려고 챙겨갔다.
오전에 갈까 오후에 갈까 고민하다가 오후 늦게 아주머니 집에 들렀다.
반갑게 맞아주시고는 또 밥을 먹고 가라고 하시길래 이번에는 거절했다.
그랬더니 밖이 추우니 커피라도 한 잔 먹고 가라고 하셨다.
커피를 홀짝거리고 있는데, 아주머니는 양말이라도 하나 줘야겠다면서 농을 뒤지셨다.
내가 양말을 받으면 다음에 또 다른걸 가져다 드릴 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그러면 주면 안되겠다고 하시면서 웃으셨다.
- 한 골짜기에 사는 삼 형제가 있었는데, 막내 동생이 가장 먼저 죽었다. 밥을 차려주신 아주머니는 그 막내 동생의 부인이다.
- 아주머니랑 많은 얘기를 했는데, 둘째 아들이 장가를 안 가려고 해서 큰일이라고 하시면서 덧붙여 했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외국사람이랑 결혼하는 것도 괜찮다. 내 살아보니, 한국사람도 나쁜놈은 맹 나쁘고 외국사람도 좋은 사람은 좋다." "사람 인연이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오지 않겠다는 사람을 억지로 불러들여서는 안된다."
당연한 얘기도 누구한테 듣느냐에 따라서 깊게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산불조심 끝날 때까지라도 자주 찾아뵈야겠다.
어명정은 유서깊은 곳은 아니고 여기 소나무를 잘라다가 광화문 복원에 사용한 기념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부질 없는 짓이라고 생각하지만 오르는 길이 좋았으니 그냥 넘어가자.
올 여름에 자전거 타고 안양에 가다가 중간에 멈춰서 찍은 사진인데, 무척 마음에 든다. 장소는 오목교에서 안양역까지 가는 자전거길의 중간 정도 지점인 것 같다. 연말을 맞아 비공개글 정리하다가 get!
오늘 건강보험공단에 가서 무상거주 신청서를 작성하고 보험료 할인 받았다. 그래도 한 달에 팔천 얼마 내야한다.
그리고 국민연금관리공단에 가서 국민연금 납부예외 신청했다.
그래서 홀가분하다. - 최근에 어느 아주머니에게 '농사 짓고 살면 뱃속이 편안하다.' 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런 느낌이다. -
라면을 끓이시던 작은 어머니가 묻는다.
"뿔은 거 좋아 하나?"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먹으면서 엄마 생각이 났다.
언젠가 엄마가 말하길 새우탕 큰사발을 퉁퉁 불려서 먹으면 숙취해소에 좋은 것 같아서 종종 먹곤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다음부터 라면을 먹을 때, 퉁퉁 불려서 먹는다.
내 대신 많이 운 면발이 퉁퉁 불었다고 생각하면서 맛있게 먹는다.
엄마가 술을 많이 마신 덕분에 나는 설렁설렁한 직장인이 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근면한 시골 사람이 되겠다는 꿈도 키울 수 있었다.
항상 고맙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몇 있는데, 엄마는 영원히 첫 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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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랑 북한 중에 어느쪽이 먼저 망할까?
해 처먹는 것도 정도가 있다.
다음날 9시 뉴스에서는 폭격에 대한 특집 뉴스가 끝나자마자 아시안게임 양궁에서 금메달을 딴 고등학생의 소식을 내보냈다.
나는 너무나 대비되는 그들의 부모가 떠올랐다.
한 쪽은 군대 보낸 자식 때문에 가슴에 구멍이 났고
또 한 쪽은 군면제를 받은 자식 때문에 가슴이 뻥 둟린 기분일 것이다.
그리고 금메달 딴 추신수와 4강전 패배로 군면제가 날아가버린 박주영의 돈벌이 예상을 다루었던 인터넷 뉴스들이 떠올랐다.
역시나 군대는 없어져야 한다.
꿈 같은 얘기지만 전 지구적으로 작은 마을 공동체들을 활성화하는 것이 군대를 없애는 좋은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김정일은 정치적인 이유로 남풍을 일으켜, 천 여명의 주민들이 살던 마을 공동체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들이 많은데, 김정일은 전두환이랑 동급인 것 같다.
행정안전부에서는 마을 복구에 필요한 돈의 일부분을 지원해 주겠다고 한다.
나라에서 하는 일이란 것이 이렇다.
공포심에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도시의 빈민이 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사망한 사람들과 섬을 떠난 주민들은 우리의 부모이며 형제이며 자식들이지만 푸른지붕 지하의 벙커에서 안보라는 이름을 들먹이는 당신들의 가족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이 고향을 버리게 해서는 안된다.
고향의 냄새를 그리워하게 해서는 안된다.
고향은 엄마가 해주는 집밥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
답답해서 적어본다.
올 가을에 한 번 다녀왔다. 조용하고 좋은 절이다. 길상사는 성북동 팔자대문 집들 - 개인적으로는 '궁전'이라고 부른다.- 사이에 둘러쌓여 있어서 그런지 무척이나 평화로운 분위기가 돈다.
콩 줄기를 자른 낫 날이 멈추지 못하고 내 손가락에 닿을 때, 툭, 하고 뭉툭한 소리가 났다. 낫을 잘 안 갈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낫질이 서툴기 때문이기도 하고, 기타 코드를 잡던 버릇 때문에 베인 손가락만 쭉 펴고 낫질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 뒷편에서는 작은 어머니가 콩을 줍고 있었다. 수확이 늦어서 말려 털기도 전에 땅에 떨어진 콩들이 많다. 내년에 콩 씨앗값이 비쌀 것 같다는 작은 아버지의 얘기도 떠올랐고, 아침에 농민 신문에서 본 최근 5년 간의 콩 도매가격 그래프도 떠올랐다. 목장갑을 두겹으로 낀 데다가 날도 제대로 서지 않은 낫이니 괜찮으려니, 라고 생각하고 계속 콩을 꺾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손가락에서 뜨거운 것이 느껴졌다. 목장갑의 붉은 코팅 아래로 피가 떨어져서 콩 잎에 붙었다. 숫가락으로 고무 대야에 콩을 담고 있는, 작은 어머니를 뒤로하고 하우스를 나와 일단 집으로 갔다. 집 바깥에 있는 수돗가에서 장갑을 벗고 손을 씼었다. 장갑에서 피냄새가 났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뜨거운 피냄새가 왠지 정겹게 느껴졌다. 집에 밴드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자 작은 어머니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고 하우스를 나온 내가 스스로 민망했다. 피가 멈추질 않아서 손가락을 쭉쭉 빨면서, 피와 침이 섞인 붉은 액체 덩어리를 땅에 뱉어가며 하우스에 도착했다. 입안에서 피 맛이 돌았다. 냄새에 이어서 맛까지 보고 나니 몸이 들끓는 듯한 기분이었다.
작은 어머니 집에 밴드가 어디 있어요?
왜? 낫에 베였나?
네.
많이 베였나?
아니오.
작은 어머니가 붕대를 감아줬다. 연고는 집에 없어서 그냥 붕대만 감았다.
다시 하우스로 돌아가서 콩을 꺾었다.
.....쓰다 보니까 재미있는데?..... '백의 그림자'를 재미있게 읽긴 했나보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