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 연휴에 3100만명이 귀성길에 오른다고 한다. 해외로 놀러가는 사람들은 58만명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인구가 5000만명이니까 어림잡아 60%의 사람들이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 이동하는 것이다. 귀성길에 오른 3100만명의 사람들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만만치 않은 숫자일거다. 여기까지 생각했다가 몇 해 전에 봤던 광경이 떠올랐다.

 명절 연휴의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화장실에 간 애인을 기다리는 공원 매점 앞, 파라솔 아래에 두 사람이 컵라면을 먹고 있다. 엄마로 보이는 중년 여인은 국물이 있는 것을 마주 앉은 어린이는 짜장(자장)을 앞에 두고 있다. 테이블에는 김밥도 두 줄 놓여있고, 여자는 이미 한 캔의 맥주를 비우고 두 캔째를 시작했다. 아들로 보이는 어린이는 한 올 한 올 면발을 집어 먹는데, 여자는 보란듯이 김밥을 라면 국물에 찍어서 아귀아귀 씹어 먹고는 맥주를 들이킨다. 두 사람은 한 마디 말도 섞지 않는다.

 담배 한 대가 타들어 가는 동안 특별할지도 모를 그들의 사연을 생각하다가 애인과 함께 그들을 뒤로했더랬다.

 설 쇠러 서울에 올라왔다. 엄마 얼굴을 보니까 참 좋다. 

 
 백석의 시가 떠올랐다.


 두보(杜甫)나 이백(李白)같이    -백석-

오늘은 정월 보름이다
대보름 명절인데
나는 멀리 고향을 나서 남의 나라 쓸쓸한 객고에 있는 신세로다
옛날 두보나 이백 같은 이 나라의 시인도
먼 타관에 나서 이 날을 맞은 일이 있었을 것이다.
오늘 고향의 내 집에 있는다면
새 옷을 입고 새 신도 신고 떡과 고기로 억병 먹고
일가친척들과 서로 모여 즐거이 웃음으로 지날 것이였만
나는 오늘 때 묻은 입든 옷에 마른 물고기 한 토막으로
혼자 외로이 앉어 이것저것 쓸쓸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옛날 그 두보나 이백 같은 이 나라의 시인도
이날 이렇게 마른 물고기 한 토막으로 외로히 쓸쓸한 생각을 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제 어느 먼 외진 거리에 한 고향 사람의 조고마한 가업집이 있는 것을 생각하고 이 집에 가서 그 맛스러운 떡국이라도 한 그릇 사먹으리라 한다
우리네 조상들이 먼먼 옛날로부터 대대로 이날엔 으례히 그러하며 오듯이
먼 타관에 난 그 두보(杜甫)나 이백(李白) 같은 이 나라의 시인도 이 날은 그 어느 한 고향 사람의 주막이나 반관(飯館)을 찾어가서
그 조상들이 대대로 하던 본대로 원소(元宵)라는 떡을 입에 대며
스스로 마음을 느꾸어 위안하지 않았을 것인가
그러면서 이 마음이 맑은 옛 시인들은
먼 훗날 그들의 먼 훗자손들도
그들의 본을 따서 이 날에는 원소를 먹을 것을
외로히 타관에 나서도 이 원소를 먹을 것을 생각하며
그들이 아득하니 슬펏을 듯이
나도 떡국을 놓고 아득하니 슬플 것이로다
아, 이 정월(正月) 대보름 명절인데
거리에는 오독독이 탕탕 터지고 호궁(胡弓)소리 뺄뺼 높아서
내 쓸쓸한 마음엔 자꾸 이 나라의 옛 시인들이 그들의 쓸쓸한 마음들이 생각난다
내 쓸쓸한 마음은 아마 두보(杜甫)나 이백(李白) 같은 사람들의 마음인지도 모를 것이다
아무려나 이것은 옛투의 쓸쓸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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