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108 - 오늘

그때그때 2010. 11. 8. 21:57
 콩을 꺾다가 낫에 왼쪽 검지 손가락을 베였다.

콩 줄기를 자른 낫 날이 멈추지 못하고 내 손가락에 닿을 때, 툭, 하고 뭉툭한 소리가 났다. 낫을 잘 안 갈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낫질이 서툴기 때문이기도 하고, 기타 코드를 잡던 버릇 때문에 베인 손가락만 쭉 펴고 낫질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 뒷편에서는 작은 어머니가 콩을 줍고 있었다. 수확이 늦어서 말려 털기도 전에 땅에 떨어진 콩들이 많다. 내년에 콩 씨앗값이 비쌀 것 같다는 작은 아버지의 얘기도 떠올랐고, 아침에 농민 신문에서 본 최근 5년 간의 콩 도매가격 그래프도 떠올랐다. 목장갑을 두겹으로 낀 데다가 날도 제대로 서지 않은 낫이니 괜찮으려니, 라고 생각하고 계속 콩을 꺾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손가락에서 뜨거운 것이 느껴졌다. 목장갑의 붉은 코팅 아래로 피가 떨어져서 콩 잎에 붙었다. 숫가락으로 고무 대야에 콩을 담고 있는, 작은 어머니를 뒤로하고 하우스를 나와 일단 집으로 갔다. 집 바깥에 있는 수돗가에서 장갑을 벗고 손을 씼었다. 장갑에서 피냄새가 났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뜨거운 피냄새가 왠지 정겹게 느껴졌다. 집에 밴드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자 작은 어머니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고 하우스를 나온 내가 스스로 민망했다. 피가 멈추질 않아서 손가락을 쭉쭉 빨면서, 피와 침이 섞인 붉은 액체 덩어리를 땅에 뱉어가며 하우스에 도착했다. 입안에서 피 맛이 돌았다. 냄새에 이어서 맛까지 보고 나니 몸이 들끓는 듯한 기분이었다.  
작은 어머니 집에 밴드가 어디 있어요?
왜? 낫에 베였나?
네.
많이 베였나?
아니오.
작은 어머니가 붕대를 감아줬다. 연고는 집에 없어서 그냥 붕대만 감았다. 
다시 하우스로 돌아가서 콩을 꺾었다.



.....쓰다 보니까 재미있는데?..... '백의 그림자'를 재미있게 읽긴 했나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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