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613 - 오봉산

사진 2011. 6. 13. 22:26
 저녁 먹고 같이 교육 받는 형님 한 분과 오봉산에 올랐다. 오늘 오른 코스는 춘천과 화천의 경계인 배후령 정상에서 오르는 코스였다. 산에 오르는 사람은 우리 둘 뿐이었다. 두 시간 나들이 코스로 딱 좋았다. 물론 이 형님은 산악인이고 나도 쉬는 걸 별로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성구형! Thank You, 이번주는 술 먹고 자빠지지 말자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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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을 오르다보면 오른쪽으로는 소양호가 보이고 왼쪽으로는 화천군이 보인다. 그리고 오늘 석양이 장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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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대로는 아니지만 원래보다 더 좋은 원래로 돌아온 기분이다.

당신 때문에 뭐든 다 괜찮다.

둘 다 성장했고 이제 두려움은 없다.

이것은 <믿음>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기 때문에 잘 해나갈 것이다. 아주 천천히, 드러나지 않는 움직임으로 온전한 우리가 될 것이다.

역시 태어나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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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6주차

그때그때 2011. 6. 10. 13:10
어지럽고 휘청거렸다.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그 바람에 엉망이 됐다.
맘에 안 든다. 많이.

많이 마셨고 많이 울었고 많이 못 잤고 많이 맘에 안 든다.

스스로가 맘에 안 드는 게 참 오랜만이라서 적응이 안된다.

다 거쳐가야할 것들이다. 지나간 것들은 지나간대로 다가올 것들은 다가오는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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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할머니는 치매에 걸렸다. 10년 정도 됐다. 우리 할머니는 요양원에 계신다. 5년 정도 됐다.
 우리 할머니는 귀가 잘 안들린다. 10년 정도 됐다. 우리 할머니는 눈이 멀었다. 올해부터 그렇다.

 작은 고모 말마따나 우리 할머니는 슬프게 됐다.

 지난 주말은 할머니 생신이라고 친척들이 강릉집에 다녀갔다.

 할머니는 뇌경색의 합병으로 눈이 멀었기 때문에 지금은 거동조차 불편하다. 친척들이 오면 작은 어머니는 요양원에 가서 할머니를 모셔온다. 누군가 할머니를 업거나 들어야하기 때문에 작은아버지나 내가 함께 요양원에 가야한다.  

 눈이 보이던 시절의 할머니는 나를 알아보지는 못해도 내 손을 잡고 "누구요? 손이 참 곱소~."같은 말들을 들려주곤 했는데, 이제 그것도 추억이 되버렸다.

 점심 때 닭백숙을 먹었다. 할머니를 달랑 들어서 차에 태우고 조금 긴 시간을 이동했다. 작은어머니가 할머니에게 밥을 떠 먹여줬다. 안 드시겠다고 해도 한 숟가락만 더 드시라고 하면서 계속 먹여준다. 내 생각에 할머니는 뭔가를 많이 드실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시동생들이 보는데서 할머니에게 밥을 줘야하는 작은어머니는 그렇게 생각하실 수 없다. 막내 삼촌네 식구들은 점심값을 계산하고는 다른 모임이 있다고 가버렸다.

 이럴거면 힘들어하는 할머니를 요양원에서 모셔올 필요가 없다. 그냥 가서 얼굴 잠깐 보는 것과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저녁에 할머니를 요양원에 모셔드리려고 다시 번쩍 안고 차에 태웠다. 할머니가 힘들어했다. 나는 미안했다. 할머니 미안해요.라고 했다. 작은 삼촌이 뭐가 미안하냐고 물었다. 나는 막내 삼촌도 작은 삼촌도 야속했다.

 작은아버지랑 작은어머니는 친척들이 온다고 하면 당연히 할머니를 모셔와야 한다고 생각하시지만(특히 작은어머니는 더 책임감을 느끼는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착한 사람이 아니다. 

 할머니는 슬프게 됐고, 삼촌들은 야속하고, 나는 할머니한테 미안하다.

 할머니 치매가 초기였을 때, 강릉에 머물면서 할머니랑 술래잡기 하던 시절이 그립다. 

-> 어지러운 6월 둘째 주, 기분 환기용 포스팅, 기분 환기용으로 이런글을 쓰고 있다. 역시나 나는 그렇게 착한 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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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에 왔다. 엄마는 여전했다. 일단 내가 장가를 가야 시골에 내려오겠다고 한다. 아마 남들처럼 돈이 많이 드는 결혼식을 생각하고 그 뒷바라지를 해주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얘기인듯 싶다. 그리고 살아보면 돈이 많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빼먹지 않았다. 어마마마, 네에 알겠습니다. ㅎ

엄마 자전거로 오산천변을 돌았다. 강가를 달리니 기분이 좋았다. 계획적으로 심어 놓은 꽃밭도 나쁘진 않았다.

저녁으로는 순댓국을 먹었다. 엄마랑 함께 먹는 순댓국은 언제나 특별하다.

열한시 넘어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살짝 취한 목소리로 잠깐 가게에 들르라고 했다. 엄마는 이 손님 저 손님에게 우리 큰 아들이라며 나를 소개했다. 오산에서 잘 때마다 있는 일이라 이런 상황에 이미 익숙하다. 손님들이랑 같이 마시고 매상 좀 올려줄까.생각했다가 술 안 먹는 주간이라는 결심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관뒀다. 잘 한 것 같다.

엄마를 기다리다가 쓰기 시작했는데 방금 엄마가 도착했다. 제법 취했다. 지난 십년동안 오늘보다 많이 취했던 날들도 무수했을 것이다. 이래서야 몸이 성할수가 없다.

엄마가 내 말 좀 들었으면 좋겠다. 엄마는 식구들 다 버리고 혼자 살길 찾으라는 내 제안을 고맙게만 생각하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아, 엄마

짤방은 천변에서 찍은 관상용 양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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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04 - 20110603

그때그때 2011. 6. 4. 11:14
 영씨를 만났다. 결혼하려고 한다고 했다. 잘 됐다고 생각했다. 외로움이 자기계발에 정말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도 했다. 맞다고 생각했다. 그가 차려준 밥을 먹고 잠깐 노래 부르고 놀았다. 이런 시간들이 나를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

 부천역에 도착해서 영씨를 기다리는 동안 남부 시장에 놀러갔다. 시장 하나가 강릉에 있는 시장들 다 합쳐 놓은 것 보다 컸다. 사람들이 많이 살기 때문이다. 부천역과 이어진 이마트 때문에 시장 상권이 많이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마트에서는 천 오백원짜리 잔치국수를 먹을 수 없지만 남부시장에서는 먹을 수 있다. 그것도 최근에 오백원을 올린 가격이 그렇다. 이마트에서는 짙붉게 양념된 돼지 껍데기랑 닭발을 먹을 수 없지만 남부시장에서는 가능하다. 

 시장에서 '사상 최고의 금값, 지금이 파실 때 입니다.'라고 써 붙여 놓고 장사하시는 분을 봤다. 그 분은 왜 금이 가장 비쌀 때 사고 싶어하는 걸까?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장사는 재미있다. 그 분을 욕하자는 게 아니라 그저 시장의 풍경 중에 그런 게 있었다는 얘기다.

 시장을 한 바퀴 돌고 나니 여섯시였다. 남부광장 앞이 일당일을 마치신 아저씨들로 흥성거렸다. "한 잔 하고 가야지!" "내가 한 잔 살께!" 와 같은 말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일당 노동자들의 삶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러했을 것이다.

 밤에는 조군이랑 놀았다. 조군은 여전히 스트레스가 심하다. 걱정이 된다. 내가 걱정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그래도 걱정이 된다. 조군이 매주 구입한다는 복권이 언젠가 꼭 당첨되면 좋겠다. 나는 그가 정말로 다 털어버리는지, 아니면 복권 당첨 후에도 계속 스트레스 속에서 사는지를 지켜보고 싶다. 후자쪽이라면 어떻게든 내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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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폰으로 사진을 찍으면 심하게 반짝 거릴때가 있다. 고구미 말대로 쨍한게 좋을 때가 많다. 그리고 ISO80을 지원한다는 점이 맘에 든다. - 교육원 앞에서

 
 오늘부터 6월이다. 살짝 정체기가 오는 것 같다. 정도가 '살짝'이니 큰 문제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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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01 - 논, 나비

사진 2011. 6. 1. 11:03

 

 모내기가 끝난 논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 춘천시 신북읍 유포리, 베스트 샷 중에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길바닥에 죽어 있던 나비(swallowtail butterfly?) - 로모 어플로 살짝 만짐


 새해구나 싶더니 6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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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모내기를 했다.

염불보다는 잿밥이라고 못밥이 정말 맛있었다. 강릉에서는 전통적으로 못밥으로 팥밥에 미역국을 먹는다고 한다. 강릉은 상가집에 고깃국이 아니라 미역국이 나오는 곳이니 그럴법하다. 그런데 왜 팥밥일까? 여튼 나는 팥밥을 정말 좋아한다. 몸도 힘들겠다 아침부터 팥밥을 끝없이 먹었다. 다섯시에 일을 시작해서 집에 들어오니 여덟시 반이었다. 허기가 몰려들어서 팥밥을 꾸역꾸역 입 안에 때려 넣었다. - 아침에 설사했다. - 내년부터는 기계를 빌려서 잘 못 심더라도 내가 심어야겠다.

집에 와서 들은 첫 소식이 순달이가 죽었다는 것이었다. 피똥을 쌌고 주사약을 이틀간 맞았지만 결국 죽었다고 한다. 그렇게 순달이는 번호표만 남겨놓고 가버렸다. 우리 우사는 엉망이다. 농번기라 관리가 잘 안되는 측면이 있겠지만 이럴거면 소를 키우면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순달이는 죽었는데 나는 못밥으로 소고기 미역국을 먹었다. 앞으로 고기 섭취를 더 줄여야겠다.

사람들은 기계가 모를 심으니 모내기가 크게 힘들지 않을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강철같은 작은아버지가 저녁식사를 마치시자마자 씻지도 않고 바로 주무셨다. 나는 말랑말랑한 인간이라 느즈막히 잠들었다. 나도 현재 무척 피곤하고, 피로가 폭풍처럼 밀려들어 오는 중이다. 그렇지만 일년내내 이렇게 일하는 것이 아니니 가끔은 몸이 버티기 힘들 정도로 일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서 빨리 내 농사를 짓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집에서 일꾼마냥 일하는 게 아니라 모든것이 내 영향력 아래 있는 상황을 꿈꾼다. 그게 농사다.

우리논이든 남의 논이든 모가 심어진 논을 보고 있으면 여러 감정들이 얽히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논일은 늘 재미있다.

좋아한다고 평소 먹던 양의 배로 먹으면 탈이난다. 오늘 아침에도 팥밥 먹었다. 약간 쉰내가 났지만 맛있었다. 탈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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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주부터 2주간 과수 실습이다. 사과나무에 매달려서 '적과'(摘果)를 했다. -열매를 솎았다.-
 일본에서 만든 것 같은 한자어로 된 농업 용어들이 너무도 많다. 어제만 해도 왜화(矮化), 기지현상(忌地現象) 같은 용어들을 배웠다. 

 사다리를 타고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아직 어린 열매들을 거침없이 잘라냈다. 작업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면서 하는 것이 좋다. 위에서 보면 아래서 보지 못했던 열매들이 보인다. 가끔은 간혹 남아 있는 사과꽃도 눈에 띈다. 예쁘다.고 잠깐 생각하고는 이내 무심하게 제거한다.

 사과나무에 대한 이론들은 저녁마다 꼼꼼하게 정리했다. 잊고 있었던 공부라는 것에 대한 감각이 살아나는 것 같다. 

 수요일에는 데이트를 했다. 잊고 있었던 감각이 살아나는 듯 했다. 
 오른손 끝에서 시작해서 머리를 거쳐 왼손 끝으로, 감각들이 흘러내렸다.
 
 
 내일은 드디어 모내기다.

 술은 적당히 먹자.

 
 그 꽃 - 고은 -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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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1 15:30

그때그때 2011. 5. 21. 15:16

 요즘 시도 때도 없이 운다. 그래도 일 할때는 안 운다.

 어제 강릉 오는 버스에서 신문을 읽다가 울었다. 기사 내용은 5.18때, 서울의 시위대가 뿔뿔이 흩어졌던 얘기였다.

 어젯밤에는 춘천에서 배운 것 복습 및 앞으로의 결의를 다지느라 울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옥수수를 심었다. 이제 당분간 옥수수 모종은 없다. 비는 약하게와 강하게를 반복하며 내렸다. 약할 때는 심고 강할 때는 차에서 앉아 있다보니 딸랑 네 판 심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어젯밤 꿈에 애요가 비대해진 몸을 이끌고 나와서 나를 안고 울었더랬다. 차에 앉아 있다가 애요네 집에 전화를 했다. 수다를 떨었다. 나처럼 덩어리 좋고 말을 사분사분하게 하는 청년이 손님으로 왔다가 공동체에 들어 앉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 그리고 애요한테 핸드폰이 생겼다는 걸 알았다. 전화를 끊자마자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울면서 테스트 문자를 보냈다.

- 문자 갔어? 종종 통화하자. 사실 형은 요즘 좀 자주 울어.
- 응 문자 잘 갔네. 근데 왜 울어? 
- 몰라 시도 때도 없이 우네. 네 문자 보니까 또 운다. ㅎㅎ
- 무슨일 있구나 형
(왈칵)
- 아냐아냐 외로워서 그런 것 같어
- 으그

 점심을 먹었다. 혼자 먹었다.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가시질 않아서 정말 많이 먹었다. 밥을 다 먹고 담배를 태우고 노래를 듣다가 울었다. 안되겠어서 다시 밭으로 갔다. 비가 펄펄 쏟아져서 잠깐 차에 들어와 앉았는데, 다시 눈가가 촉촉해져 왔다. 그때 똥이 마렵기 시작했다. 비를 맞으며 밭가에 똥을 누고 근처에 보이는 개망초를 꺽어서 뒤를 닦았다. 개망초 줄기를 두 개 겹치고 잎들로 잘 감싸서 닦으니 예전에 호박잎으로 닦았을 때 보다 여러가지 면에서 괜찮았다.

 이제 눈물은 멈췄다.

 외롭다고 많이 먹으면 병에 걸린다. 고등학생 친구의 문자를 받고 울면서 위로받는 일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고 자꾸 우는 건 좀 거시기하다. 오늘 비를 제법 맞았으니 몸살이라도 나서 땀을 쭉 빼고나면 남은 5월은 울지 않고 보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 몸이 라고 내 맘대로 되진 않는다. 우는 것만 봐도 명백히 알 수 있다.

 
-> 눈물은 똥으로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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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주에는 술을 두 번 마셨다. 한 번은 많이 마셨고, 한 번은 적당히 마셨다.

 많이 마신날은 내 이름이 새겨진 컵이 깨졌던 날이고, 적당히 마셨던 날은 외로움에 허기가 심했던 날이다. 자꾸 뱃속이 허전하고 뭔가 먹고 싶은데, 그게 뭔질 모르겠어서 그냥 술로 땜질(빵)했다.

 이번주에는 안보 교육 같은 게 없어서 교육 내용은 충실했다. 실전 경험도 있고 이론적으로도 공부 많이 한 양반(Ph.D)들이 땅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농사 지으라는 얘기들 들려줄 때는 심적으로 다져진다. 반면에 농사 안 지어본 양반들이 규모의 농사, 새로운 마케팅 기법을 이야기 할 때는 그냥 조용히 자거나 다른일을 한다. 

 낮에 강릉에 도착해서 안목엘 갔다. 제비 두 마리가 어느 가정집 지붕 위에 사이좋게 앉아 있었다. 제비를 본 게 참 오랜만이다. 기분이 좋았다. 우리 동네 논에는 오리 두 마리가 사는데, 항상 함께 날아다닌다. 그것도 기분 좋은 일이다. 또 우리 동네 논에는 비둘기 떼가 사는데, 전부 39마리고 항상 같이 다닌다. 그리고 우리 동네에는 매가 한 마리 사는데, 항상 혼자다.

 사람은 매가 사는 동네에서 사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매가 아니다. 안목항에서 혼자 서 있는 등대도 봤다. 뭔가 다 맞아 떨어지는 게 심상치 않다.

 켁

 다음주는 약간 더 즐겁게~~ 그나저나 모내기가 너무 늦는다. 집에 와서 보니 모가 자랄만큼 자랐다.

춘천에서 새벽에 산책 나갔다가 - 아이폰
강릉항에 홀로 선 등대
흐린날 해질녘 남대천변 - 오랜만에 천변을 걸으니 기분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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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6

그때그때 2011. 5. 16. 09:52

 어제는 서울가서 고구미랑 마셨다. 중간에 기억이 끊어졌다. 확실히 술이 약해졌다. 기억과 망각을 동시에 일으키는 '술'의 특성을 생각해 볼 때, 술이 약해져도 약해진대로 좋다. 뭐랄까... 결정적이지 않은 상태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지점과 같은 맥락이다.

 다섯시 반에 일어나서 춘천행 버스를 탔다. 차창 밖으로 황사와 봄안개가 가득하고 청바지에는 자욱한 김칫국물 자국, 이어폰에서는 엘리엇 스미스가 부른 because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당신(들) 생각. 당신이 당신인지 당신이 아닌지, 아니면 다른 당신인지, 그렇다면 당신은 누군지........ 고추를 심으며 묻었던 당신(들)이 계속 머리를 때렸다.

 교육원으로 걸어 올라오는 길에 거울이 있어서 내 모습을 봤다. 얼굴이 좋다. 활짝 핀 얼굴은 아니지만 몸 전체에서 은은하게 자신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기분이 좋았다. 머릿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술기운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곤 옛날 생각이 났다. 고구미랑 '정영음'얘기를 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어제 안성의 '광신극장'이 없어졌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역시나 많은 것은(또는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술에 떡이 되도록 취해서 했던 고백과 응답, 그리고 여관, 손에 묻은 치킨 기름이 아주 예쁘게 느껴졌던 일, 좌석표가 없는 극장 제일 앞자리에 앉아서 '식스 센스'를 봤던 일, 수원에서의 데이트, 이마를 스치고 지나간 바람 같았던 이별, 아침 7시에 강의실 앞에서 우연히 만나 함께 담배 피우며 묻던 '잘 지내?'란 말.

 음................................

 고구미, Thank You(언제나 그렇듯이 ^^; 항상 고맙게 ~^^;) 내가 예전에 줬던 티셔츠가 돌아왔네~(이런 사소한 것들이 감동적이야. ^^;) 

 몸은 깼는데, 머릿속에는 아직 술기운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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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3 - 논일

그때그때 2011. 5. 13. 21:30
 어제랑 오늘은 논일을 했다. 어제는 작은아버지가 논삶기에 앞서서 1차로 논을 갈아 엎었다. 나는 삽으로 논둑 정리 좀 하다가 한 다래기(두락=마지기, 강릉에서는 다래기라고 부른다. 한 다래기가 꼭 200평은 아니다.)를 시험삼아 갈아 엎어봤다. 역시나 트랙터는 너무 힘이 세서 재미가 없다.

 오늘 아침 먹으면서 작은아버지가 '원래 성격이 그렇게 느긋하냐'고 물으셨다. 어제 시험삼아 한 다래기만 갈아 엎은 게 맘에 안드셨던 모양이다. 마지막에는 '일을 틀리게 하더라도 빨리빨리 해야지'라는 말까지 들었다. 살면서 일 느리단 얘기 처음 들어봐서 살짝 충격 받았다. 고무신 신고 설렁설렁 다닌다고 일하는 속도도 느린건 아닌데.... ㅡ.ㅡ;

 아침 먹고 논을 갈기 시작했다. 트랙터 바가지로 논둑도 까고, 높은데 있는 흙을 낮은 자리로 옮기면서 열심히 했다. 세 시간 동안 두 다래기 밖에 못 했다. 그렇지만 여섯 다래기 밖에 안 남았고 남은 논들 중에는 논둑을 깔 곳이 없으니 오후에는 다 끝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점심 챙겨 먹고 논에 가려는데, 논 옆에 물길을 정비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결국 오후에는 계속 삽질했다. 중간에 힘들어서 소 여물주면서 잠깐 쉬었다. 7시쯤 다 끝냈다. 삽질하는 중간에 지나가던 동네 분들과 몇 마디씩 나눴다.

 "오전에는 논 삶더니, 저 논 자네가 삶았나? 처음 삶아보는데 잘 삶네. 앞으로 많이 배워서 남의 집 일도 해주고 해야지." 등의 얘기를 들었다. 칭찬 받았다. 기분 좋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고무신 신고 설렁설렁 다닌다고 일하는 속도가 느린 건 아니다. 어제는 비도 오고 내가 트랙터를 좀 싫어하는 측면도 있고 해서 일부러 한 다래기만 갈았던 거였다. 
 
 각설하고, 논일은 재미있다.

 변산에서 논에 김 매던 생각이 난다. H는 김 매다 말고 뒤 돌아서서 논에 오줌을 갈겼고, - 이게 다 거름이 된다는 말을 남겼다. - 어느날에는 다들 지쳐서 오후 참 먹고 벌렁 드러 누워서 뭉개다가 다들 취하도록 막걸리를 먹었더랬다.  

 그때 일은 그냥 생각만 하고 나는 지금의 나에게 충실한 게 중요하다. 그때는 일만 생각하면 됐다면 지금은 생활을 생각해야 된다. 아직까지는 잘 하고 있는 것 같고 앞으로는 점점 더 좋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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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운데 노란 건 거미, 역시나 봄은 노랑색
 고추 심고, 허리 피러 할아버지 산소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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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비닐 다 씌우고, 오늘부터 고추를 심기 시작했다. 15*7짜리 포트 23개를 심었다. 그 중에 내가 14개를 심었다. 대충 1500주(개, 포기? - 포기가 맞는 표현인 것 같음.) 정도다. 온종일 쪼그리고 앉아 일했더니 허벅지가 땡긴다. 쭈그리는 걸 힘들어하던 영재 생각이 나서 간만에 통화했는데, 마음이 풍성하다. - 쉽게 말해서 울컥울컥하다. - 

 영재한테는 계속 존대말을 하는데, 내가 '영재 씨'하고 부를 때, <백의 그림자>의 '무재 씨'를 부르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좋다. 그가 '형'하고 나를 부를 때, 나는 '은교 씨'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대화할 때는 존대하고 글로 쓸 때는 그냥 이름 적어버리는 관계는 참 좋은 것 같다. ^^ - 서울가면 꼭 연락할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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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도 파이팅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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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고추 심을 밭에 갔다. 전체 700평 중에 4분의 1 정도에 여전히 비닐이 덮여 있었다. 나는 거름 피고 작은어버지는 로타리를 쳤다. 비닐 위에 소똥을 펼치는 기분이 얼마나 더러운지 안해 본 사람은 모른다. 한참 일하는데 검은 나비(호랑가시나무) 한 마리가 내 주위를 멤돌았다. - 상민 씨 땡큐. 우리나라 대부분의 밭이 그렇다는 얘기는 역시나 위안이 안되네요.-  비닐이랑 같은 색이다. 다음 생에는 무지갯빛 몸을 달고 태어나렴.

 오후, 작은아버지는 비닐위에 로타리를 쳤고, 나는 관리기로 두둑 잡았다. 관리기 로타리에 검정 비닐이 걸려서 막 돌아갔다. 내 마음은 검고 어지럽다.

 작은아버지의 생각 - 고추는 자랄만큼 자랐는데, 토요일에 비는 온다고 하고, 내일까지 무조건 비닐을 씌워야겠다. 

 내 생각 - 토요일에 비가 많이 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일요일에 비만 오지 않으면, 일요일에도 밭에서 일 할 수 있다. 비닐은 그때까지 씌우고 월요일, 화요일에 비가 온다고 하니 그때 심으면 고추 심고 물 안줘도 되니까 일하기는 더 좋다. 천천히 일하면 좋겠다.

 결국 내일 쎄가 빠지도록 비닐 씌우게 생겼다. 사람도 한 명 불렀다고 하신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는데....... 비닐밭에 로타리 치는 것도 막지 못하는 내가 무슨 힘이 있겠나. 그냥 푸념이다. 이래놓고 나중에 비닐밭에 고추가 열리면 그 고추 따 먹겠지.... 에효~~ 

 기왕 이렇게 된거 토요일에 비나 실컷 왔으면 좋겠다. 바다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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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일부터 고추밭 손질 중이다. 올해는 700평을 심을 예정이다. 고추모는 잘 자라고 있다. 농사 잘 짓는 사람들은 한 번만 옮겨 심는다는데, 우리는 두 번 옮겨 심는다.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그래도 내년부터는 한 번만 옮겨 심는 방향으로 가야겠다.

 4월 마지막 주말에 고추밭에 소똥 거름을 냈다. 헉! 밭에 비닐이 덮여있었다. 작년에 다른 사람이 옥수수 심었던 밭이어서 작은아버지도 비닐이 안 걷힌 걸 그때 아셨다. 그런데, 비닐을 걷지 않고 계속 거름을 냈다. 나는 속으로 '이건 농사가 아닌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춘천에 가서도 고추밭 때문에 기분이 쭉 별로였다. 일주일만에 컴백했는데, 고추밭은 그대로였다. 월요일에는 석회비료랑 맞춤비료를 뿌렸다. 기계는 자꾸 멈추고 - 결국 마지막에는 손으로 뿌렸다. 성에 차더라. ^^; - 비닐 때문에 계속 마음은 어두웠다. 그날 저녁을 먹으면서 넌지시 물었다. "비닐은...?" "걷어야겠지?"란 대답이 돌아왔다. 비닐 위에다 로타리 그냥 치겠다고 하셨으면 의절을 심각하게 고려할 뻔 했다. 

 어제랑 오늘에 걸쳐서 비닐을 걷었다. 풀들이 쑥쑥 자라는 시기인데다가 사람들이 하도 밟고 다녀서 비닐 제거가 쉽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오늘 오후 6시 30분 경에 비닐 제거를 마쳤다.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아졌다. 그렇지만 허리는 끊어질 듯 아프다.

 작년에는 모든 작물이 다 망한 가운데, 고추도 흉작이었지만 올해는 고추 대풍을 기대해 본다. 


 저녁 때 기타를 깔짝거리고 있는데, 둘째 이모한테 전화가 왔다. 개두릅이랑 곰취를 채취해서 보내라고 하셨다. 일단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동네에는 곰취가 많이 없고, 개두릅은 우리걸 다 먹은 관계로 남의 것을 몰래 훔쳐야 하는 상황이다. 결정적으로 내가 너무 힘들어서 사진 찍을 짬도 못 내고 있다. 시골에 있다고 뭐든지 그냥 펑펑 나는 건 아니다. 오늘도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 30분까지 한 시간 정도만 쉬고 계속 일했다.(밥 먹는 시간 포함 ㅡ.ㅡ) 작은아버지랑 작은어머니는 사람들이 좋아서 그런지 뭔가 부탁을 받으면, 남한테 사서라도 꼭 보내주려고 하시는데, 나는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니다. 

 이모 죄송해요~~~ 춘천 가면 시간 많으니까 아침으로 산에 다니면서 좀 뜯어 볼께요.
 엄마, 쑥 뿌리도 제가 춘천 갈 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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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3 - 봄

사진 2011. 5. 3. 20:39

 애기똥풀꽃 - 반짝반짝

 1주일만에 집에 왔더니 보릿대가 올라왔고, 사방에 애기똥풀꽃이 반짝거린다.
 봄은 노랑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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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8 - 풍경

그때그때 2011. 4. 28. 21:41

 올 봄에 봤던 풍경들 중에 가장 아름다웠던 장면은 동네에서 노인 한 분이 경운기로 논을 가는 모습이었다.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는데, 아저씨는 풍경화 속의 노인이 되서 일을 하고 계셨다. 

 나는 언제쯤 풍경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가끔 생각해본다. 경운기 아저씨, 나물을 캐는 아낙네들을 나는 먼 발치에서 감상하고 있을 뿐이지 않은가? 결국 나는 내 삶을 쫓지 못하고 내가 바라보는 풍경들만을 추상화하고 있는 게 아닐까? 물론, 나도 뭔가 할 때는 무척 몰두하는 편이긴 하다. 그런 나를 외부에서 바라보면 나도 하나의 풍경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걸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괜한 걱정이다.

 오늘은 동료 교육생들이랑 축구를 했다. 나는 축구를 싫어하지만 가끔은 숨이 턱을 넘어오도록 달리고 나면 속이 후련해 질 때가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고무신 발로 한 골 넣었다. 

 정진규의 시르 귄의 문장이 모두 같은 맥락에 있으니 풍경에 대한 내 고민은 꽤나 오래됐고 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요즘 변산에 있을 때, 생각이 많이 난다. 그때가 아마도 내가 스스로 풍경이 되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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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시 신북읍 유포리에 위치한 교육기관 -미래 농업 교육원- 에서 6개월짜리 농업 교육을 받고 있다. 제 1의 목표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농사와 돈벌이를 구체화시키는 것이고 제2의 목표는 농기계 정비 자격증을 따는 거다. - 이건 집에 무척 도움이 될 것 같다. 외로운 게 문제지만 그걸 제외하면 잘 지내고 있다. 특히, 농사 좀 지어봤다는 젊은 청년들의 얘기를 듣는 일이 무척 즐겁다.


 

 교육 기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춘천 국유림관리소가 위치해 있다. 노란색은 뱀꽃이고 오른쪽은 은사시 나무인데, 왼쪽 나무는 뭔지 모르겠다. 국유림관리소에서 버스를 내려서 교육기관까지 30분 동안 걸어야하는데, 동네 풍경이 많이 예쁘다.

 


김훈의 책을 사게 만들었던 문제의 벚꽃 - 교육기관 교정에서

 

 배꽃 - 교육원 주위가 온통 과수원이다. 오늘 하늘이 무척 좋았다. 그리고 나는 배꽃을 좋아한다. 나중에 주인 몰래 복숭아, 사과, 배를 따 먹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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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기별 - 김훈

2011. 4. 22. 23:04
 두 사람의 운명이여.
 그 사이에 핀 벚꽃이런가.

 바쇼의 하이쿠다. 이걸 읽고 '바다의 기별'의 서문이 읽고 싶어졌다. 미친듯이 인터넷을 검색했지만 누구도 올려놓질 않았다. 결국 오늘 강릉에 도착하자마자 서점에 가서 구입했다. 마침 30% 할인 중이었다. 우리 인생은 '마침'이라는 부사가 어울리는 이런식의 우연들로 이루어져 있다.

 바다의 기별의 서문은 시장에서 닭발 천 원어치를 사는 아이, 어두운 학교 운동장에서 혼자 노는 아이가 등장하고 강가에서 자전거를 타는 아이로 이어진다. 내가 읽고 싶었던 건 자전거를 타는 아이 부분이다.


 바쇼의 작품을 읽었을 때는 그렇게나 읽고 싶었는데, 읽자마자 눈물이 쏟아질 것처럼 외로웠는데, 
 
 타이밍을 놓쳐서인지 막상 읽을때는 덤덤했다. 이제 막 이별한 연인이 비를 맞아 떨어진 벚꽃잎들을 사이에 두고, 등을 돌리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는 바람에 괜히 책만 한 권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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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에서의 일주일이 지났다. 좋은 예감이 든다.
 진정성을 갖고 농사를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가진 것이 없으니 더욱 그래야 한다.
 정말 오랜만에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기타를 배우길 정말 잘했다. 그렇지만 외롭다. 에효


 나는 지금 교차로에 서있다. 크로스로드란 영화에는 악마와 계약한 로버트 존슨에 대한 일화가 나온다.
 가난해도 내 성에 차게 사는 일은 악마의 유혹을 뿌리치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외롭다고 울지마라.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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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에서 - 김수영

2011. 4. 16. 00:52
 저이는 나보다 여유가 있다
 저이는 나보다도 가난하게 보이는데
 저이는 우리집을 찾아와서 산보를 청한다
 강가에 가서 돌아갈 차비만 남겨놓고 술을 사준다
 아니 돌아갈 차비까지 다 마셨나 보다
 식구가 나보다도 일곱 식구나 더 많다는데
 일요일이면 빼지 않고 강으로 투망을 하러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반드시 4킬로가량을 걷는다고 한다

 죽은 고기처럼 혈색 없는 나를 보고
 얼마전에는 애 업은 여자하고 오입을 했다고 한다
 초저녁에 두 번 새벽에 한 번
 그러니 아직도 늙지 않지 않았느냐고 한다
 그래도 추탕을 먹으면서 나보다도 더 땀을 흘리더라만
 신문지로 얼굴을 씻으면서 나보고도
 산보를 하라고 자꾸 권한다

 그는 나보다도 가난해 보이는데
 남방셔츠 밑에는 바지에 혁대도 매지 않았는데
 그는 나보다도 가난해 보이고
 그는 나보다도 짐이 무거워 보이는데
 그는 나보다도 훨씬 늙었는데
 그는 나보다도 눈이 들어갔는데
 그는 나보다도 여유가 있고
 그는 나에게 공포를 준다

 이런 사람을 보면 세상사람들이 다 그처럼 살고 있는 것 같다
 나같이 사는 것은 나밖에 없는 것 같다
 나는 이렇게도 가련한 놈 어느 사이에
 자꾸자꾸 소심해져만 간다
 동요도 없이 반성도 없이
 자꾸자꾸 소인이 돼간다
 속돼간다 속돼간다
 끝없이 끝없이 동요도 없이

                                                                        -196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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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6 - 여유

그때그때 2011. 4. 16. 00:38
 친구가 다녀갔다. 

 친구는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많이 가졌다. 강한 힘과 명석한 두뇌는 타고나는 측면도 있으니까 젖혀두기로 하더라도 그는 아내와 아이, 집과 차를 가졌다. 그에겐 없지만 내게 있는 것은 '여유'일까? 친구는 내게서 여유를 빌리기 위해 먼 길을 왔다.고 하고 싶지만 사실은 그냥 내 얼굴도 보고 머리도 식히러 왔다.

 우리는 담배 연기로 방을 자욱하게 만들고 술을 마시며 얘기를 나눴다. 사실 내가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여유를 좀 가져." 뿐이었지만 외로운 나는 친구를 붙잡고 쉴 새 없이 떠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바다에 갔다. 경포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아서 안목으로 갔다. 우리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커피를 마셨다. 안목항에는 무척이나 여유로워 보이는 낚시꾼들이 있었고, 해변을 걷는 연인이 있었다.

 친구가 온 덕분에 나는 아침밥도 거르고 실컷 잤다. 산불조심과 함께 시작된 보름간의 피로가 싹 풀렸다. 몸이 오랜만에 제 기능을 찾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여유를 찾아서 나를 찾아온 친구는 그것을 찾았을까?


 들러줘서 고맙고, 항상 고맙게 생각해.

 

 
 짤방은 일복이 터진 관계로 우리집에 오자마자 펑크난 타이어 갈고 있는 내 친구! 내가 운전대 붙잡고 있었는데, 하마터면 같이 저승길로 갈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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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6 - 순돌이

사진 2011. 4. 16. 00:20

012

 

 태어난 지 두달만에 나보다 힘이 세졌다. ㅡ.ㅡ
 아프지 말고 쑥쑥 자라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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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랑에 빠진 차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면사무소에서 철수하라는 문자를 받고 잽싸게 집에 돌아왔다. 내가 운전하던 차는 식구들이 꼬마차라고 부르는 '라보'. 왼쪽으로는 도랑이 흐르고 오른편에 창고로 쓰는 하우스를 지나 두엄자리 왼쪽에 있는 낮은 비탈에 차를 세웠다. 비탈이라고는 하지만 30cm정도 높이고 비탈을 오르면 평지인 곳이다. 꼬마차가 들어가기에 딱 좋은 장소인 것이다. 모든 것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2단 기어에 차를 세우고 기어를 중립에 놓은 뒤 차가 살짝 뒤로 밀리는 느낌을 받고 내일 아침에 바로 후진으로 나가야 되니까 기어를 후진으로 옮겼다. '얼른 자야지' 생각하고 빠른 속도로 차에서 튀어 나왔다. 도랑을 건너 집에 들어가다가 잠깐 뒤를 봤는데, 차가 도랑으로 후진하고 있었다. '쿵'하더니 뒷바퀴 두 개가 다 도랑에 처박혔다. 도랑 바닥에서 지상까지의 높이는 1m 30cm 정도다. 꼬마차는 앞바퀴 두 개만 지상에 달랑 내밀고서는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30분 만에 출동한 레카차는 10분 만에 차를 꺼내더니 3만원을 받고 유유히 사라졌다.

 사라지는 레카차를 보면서 작은아버지, 작은어머니께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고 "물의를 일으켜서 죄송합니다." 라고 했다. - 이 대사를 정말 오랜만에 했다. - 두 분은 웃으셨다.

 사진을 찍어두고 싶었는데, 물의를 일으킨 입장에서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아쉽다.

 며칠 전에는 낮에 바쁘게 일하다가 산불 출근 시간에 늦었었다. 급한 마음에 꼬마차를 후진으로 빼다가 오른쪽 뒷바퀴를 도랑에 걸친 적 있었다. 이 정도는 '물의'라고 부르기 어렵다. 


 급한 마음

 작은아버지는 일할 때, 마음이 급하시다. 농사를 오래 지으셨으니 일이 익숙할만큼 익숙한데다가 농사일을 빨리 마쳐야 저녁 때, 본업인 수정일을 빨리 마치고 집에 오실 수 있기 때문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나는 일이 익숙하지 않은데다가 누가 재촉하면 일하는 속도가 느려지는 스타일이다. 나는 가만히 혼자서 내버려두면 차분하고 빠르게 일을 처리하곤 한다. 엄마를 닮아서 정말 다행이다. 하지만 농사일이 많이 익숙해지면 내게도 급한 마음이 생길거라고 생각한다. 일을 빨리하면 많이 놀 수 있으니까 그렇다. ^^


 쓰레기, 농부

 오늘은 옥수수 심을 밭에 소똥 거름 내고, 밑거름 뿌리고, 로타리 치고 두둑 잡고 비닐도 조금 씌웠다. 그래 우리집은 화학비료, 농약, 비닐을 모두 사용해서 농사를 짓는다. 감자밭에는 살충제를 뿌렸는데, 이번에는 뿌리지 않았다. 무농약 인증 때문인 것 같다. 우리 동네 논 두렁, 밭 두렁에는 비닐, 빈 농약 병, 음료수 캔 등 각종 쓰레기가 즐비하다. 나는 쓰레기를 잘 치우는 농부가 되고 싶다. 아까 점심 먹으러 집에 오다가 빈 맥주 캔이 보이길래 낫에 찍어서 집에 가져왔더랬다. 작은아버지가 "그런 건 뭐하러 주워오나!"라고 하셔서 "쓰레기를 잘 치워야죠."라고 했다.
 농부는 직업을 부르는 말이다. 나는 내가 선택한 직업이 무척 마음에 든다. 요즘 이런 생각을 했다. 자기 먹을거리는 무농약, 무비닐로 깨끗하게 키우고, 남에게 파는 것은 약 팍팍쳐서 키우는 사람은 농부가 아니다. 그이의 직업은 비즈니스맨이다. 반면에 농약 많이 묻혀서 키운 농산물을 암시렁않게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농부다. 나는 농부후보생이다. ㅎㅎㅎ
 

 농기계

 우리집에 기름을 먹는 농기계로는 경운기, 트랙터, 두발관리기(외발관리기와 구분), 비료살포기가 있다. 나는 이것들의 작동원리는 대충 다 알고 있고, 필요에 따라서 기계를 사용해서 하는 일도 곧잘 한다. 그런데, 성격 때문인지 내가 다루는 것들을 자세히 알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히곤 한다. 하지만 자동차 운전은 너무 일상적인 것이어서 자동차의 작동원리에 대해서 잘 알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뭔가 이상한 마음가짐이네. 자세히 알고 싶다는 것이 작동원리를 알고 싶다는 것이 아니구나. 피곤해서 쓰다보니 이상하게 되버렸다. 그냥 각종 농기계들을 자동차 운전하는 정도로는 일상적으로 다루고 싶다. 열망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든다. 하지만 이런 마음을 열망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짤방은 동네에서 찍은 사진, 소나무가 삐딱하게 서 있는데, 삐딱해도 살아있다는 점이 무척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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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0 - 매화, 동네

사진 2011. 4. 10. 00:41

012


 
 요즘 진짜 피곤하다. 이제 잠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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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9 - 경포대

사진 2011. 4. 9. 17:49
 오랜만에 바다엘 갔다. 파도의 포말이 주는 포만감에 기분이 좋아졌다.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 중에 수평 맞은 것

FX 36으로 찍은 사진 중에 수평 맞은 것

경포에는 항상 사람이 있어서 좋다. 나는 사람이 많은 것을 싫어하는데, 경포대는 언제나 사람이 있기 때문에 좋아한다. ㅡ.ㅡ 

  수평선을 수평 맞춰 찍는 일은 정말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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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6 - 피로

그때그때 2011. 4. 6. 00:44
 산불감시를 마치고 왔더니 식목일이 물러가고 찬밥 먹는날이 왔다. 강릉 사람들은 유난히 한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니 자고 일어나면 할아버지 산소에 한 번 들러야겠다. 그러고 보니 강릉에 내려와서 아직 할아버지 산소엘 한 번도 안 들렀다. 웁스!

 4월들어 무척 피곤하다. <농사일 + 산불감시 = 기타랑 놀 시간 없음> 때문인데, 그래도 오늘로 감자는 다 심었다. 다음은 옥수수겠지...

 강릉에서는 비탈밭을 배알밭(베알밭)이라고 부르는데, 배알밭을 갈고 - 로타리 친다고 하는데, 왜 그렇게 부르는 지는 영원히 알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 두둑 만들고, 비닐 씌우고, 심느라고 힘들었다. 밤에는 추위에 떨면서 박정희랑 박근혜 얘기 듣느라고 힘들었다. 어제는 독재를 옹호하는 얘기와 노조를 다 없애치워야 한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그래도 이제 요령이 생겨서 하루에 삼십 분 정도만 그런 얘기를 듣는데 할애하고 있다.

 여튼, 요즘 무척 피곤하다.

 박카스랑 봉지커피로 나를 유지하는 것은 한계가 왔다. 그렇지만 오늘도 비타500 두 병이랑 봉지커피 다섯 잔을 마셨다.

 어제 이 시간에 자려고 누웠다. 너무 힘들어서 양말을 신고 자기로 결정했다. 그랬다가는 이내, 그래도 양말은 벗고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른 쪽 양말을 벗었다. 아침에 일어났다. 왼쪽 발에 양말이 신겨져 있었다. 어이가 없어서 혼자서 웃었다. 아무리 피곤해도 즐겁게 느껴진다면 나쁘진 않다. 

 아무리 바쁘고 피곤해도 경포호에 벚꽃은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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