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바뀐 라디오 디제이가 청명이라 그런지 어제 서울 날씨가 맑았다는 바보같은 멘트를 날렸고,
시간은 여전히 멈춘듯 계속된다.

제목이 비장한데, 지금 다니는 회사를 9일까지만 다니기로 했기 때문에 새로운 결의를 다지는 의미에서 지나간 직장들을 돌아본다. 알바 경력도 여러가지가 있지만 모두 제외한다.

EBS 다큐멘터리 파견 조연출 - 방송 제작 시스템의 전반적인 것을 알게 됐다는 점, 미크로네시아를 구경했다는 점은 좋았지만 당시에는 아직 수면위로 떠오르지 않았던 파견직에 대한 문제점을 정확하게 알게 됐고 기본적으로는 같은 일을 하고 알고 보면 일을 더 하기도 하는데, 정규직들과 많은 차이가 나는 월급을 받는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복지TV 주조정실 - 방송 송출의 전반적인 것을 알게 됐다는 점, 많은 자유시간을 바탕으로 책을 많이 읽었다는 점은 좋았지만 월급 100만원 받는 정규직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장애인 단체간에도 이권다툼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계속 해도 좋았겠지만 박봉에 책만 많이 읽으면 장땡이 아닌 것이 인생이기 때문에 그만두고 남미로 떠났다.

대학 교수 비서 - 월급을 많이 받았다는 점, 대학원 사회를 알게 됐다는 점, 생전에 못 먹어볼 것들을 많이 먹어봤다는 점은 좋았지만 10시에 출근해서 11시에 퇴근하는게 싫었고 상류사회의 볼품없는 이면이 나를 진저리치게 만들었다. 그냥 간단히 말하자면 그 세계와 그 세계의 사람들이 나랑 너무 안 맞았다.

현 직장 - 프로토라는 새로운 세계를 알았다는 점, 칼퇴근을 했다는 점은 좋았지만 이렇게 사람들간의 의사소통이 안되는 직장도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알았고 사업은 아무나하면 안된다는 것도 확실하게 알았다. 괜히 망할때까지 남아서 내 청춘을 소비하는 것이 싫어 그만두기로 했다.

어딜가든 좋은 점이 있지만 그냥 어떤 세계를 알게된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하지?

이곳에서 뼈를 묻겠다는 굳은 결의가 없기 때문에 싫어지기 시작하면 어디든 그만두는 걸까?


손가락 부상의 완치와 퇴사와 이별과 봄이 함께 하는 2010년의 4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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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 지나갔다.

토요일 저녁에는 남현이, 광호를 만났다.
1차에서 각 2병씩을 빠른 속도로 비웠다.
각자들이 갖고 있는 답답함만큼 술이 줄어드는 속도도 빨랐다.

2차를 갔다. 몇 잔 마시다 잠들었다. 친구들이 자리를 끝낼 때, 나를 깨웠다.
제대로 정신줄을 놓았다.
남현이 친구가 잠깐 다녀갔다는데, 나는 자느라 전혀 몰랐다.

빠르게 마신만큼 빠르게 깰수도 있는가?
잠에서 깨어나니 정신이 맑았다.
택시에서 내려 집으로 왔다.
다시 취기가 돌아 마루에서 잠들었다.

일요일 아침, 첫 담배를 태우러 옥상으로 올라갔다.
날이 따뜻하다. 봄이다.
그래 곧 청명이다. 청명이 지나면 금방 곡우다.

담배를 끈다. 왼쪽 검지 손가락으로 타고 있는 담배를 털어 목을 잘라낸다.
떨어진 담뱃불 앞에 쭈그려 앉았다. 무의식적으로
어느 순간 내가 꺼지기 직전의 담뱃불 위를 손바닥으로 휘젓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저물어 가는 연기들이 내 손짓에 따라 방향을 바꾼다.

사는 게 우습다.

당신은 싱크대 앞에 주저 앉아 같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사는 게 우습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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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2 - 창덕궁

사진 2010. 3. 22. 16:10
이렇게 살면 안된다고 다짐하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형 하고 싶은거 해"라는 고구미 말이 맞는데, 그게 너무 어렵다.
그래도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어제 두 달만에 잠깐 파란 하늘을 봤는데, 오늘은 또 눈이 내린다. 3월에만 세 번째 눈이 내린다. 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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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들이 그냥저냥 흘러간다.고 시작하려고 했는데, 정말로 시간들이 그렇게 흘러가는 바람에 쓰는 시기가 늦어졌다. 결국은 시간들이 그냥저냥 흘러간다.로 시작했다.

 요즘 하이킥이 다시 재미있다. 식모는 준혁학생이 자기를 좋아하는 걸 알았다고 해서 학생을 놀래키고 학생은 식모가 삼촌을 좋아하는 걸 알았다고 해서 식모를 놀래킨다. 화요일 방송에서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백허그까지가 모두에게 좋은 때인 것 같다. 고백하고 나서 어색하게 앉아서 서로를 놀래키면서부터 두 사람은 사랑도 아니고 뭣도 아닌게 된다. 준혁학생은 받아 들여지지 않는 외사랑은 고백할 때 절정을 찍고 끝난다는 것을 이제 알았을 거다. 

 식모 신세경은 외사랑의 길었던 겨울을 끝내고 빨간 목도리보다 따뜻한 봄을 아버지와 함께 보내게 될까? 이민 가려고 하는 곳이 타이티라서 놀랐다. 신애가 그림에 재주가 있으니까 나중에 고갱처럼 되서 나타날지도 모르겠다.

 지금 거의 한달이 넘어가도록 파란 하늘을 못 본것 같다. 남국에 가면 파란하늘을 볼 수 있을텐데.....

 여자 야구 국가대표 상비군인 사무실 동료는 점심 먹으면서 나 보고 원양어선을 타도 일 잘할 것 같다고 한다.

 타이티는 섬이라서 갑자기 오늘 점심때 들은 얘기가 생각났다.


 회사일은 짜증이 나기 시작했지만 아직까지는 괜찮다. 칩거를 하더라도 먹고 살면서 칩거를 해야하니까 때를 기다린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게 어떤 때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여러가지를 쓰려고 했는데, 결국은 하이킥 얘기가 되버렸다.

 그리고 말장난 하나

 evolution(진화)에 R(ed)를 붙이면 혁명이 된다. 그러니까 혁명은 왼쪽으로 가는 것이다.
 직장 동료 한 명이 돈에 목숨을 거는데, 본인도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알면서 푸념을 한다. 나는 그에게 그러면 안된다고 충고를 해주지만 사실은 나도 그 세계에 있으니 이를 어찌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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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민씨에게

 나는 춤꾼이거나 가수거나 아니면 유능한 세션맨이 되어야 옳았다. 가끔 휘파람을 불며 여기저기 배회할 때 나는 그런 생각을 한참 동안 하곤 한다. 춤이나 음악은 말에서부터 도덕에서부터 얼마나 자유롭고 즐거운가.
 한번은 전기기타를 배워보겠다고 사설 강습소를 다녀본 적도 있다. 알지 못할 조갈증 때문에 그만두고 말았지만.
 타오르는 것. 어떤 충만함으로 타오르며 그 속에서 파르라한 자기 존재의 떨림을 감지한다는 것, 그게 시보다는 춤이나 음악 속에서 훨씬 용이하리라는 생각에는 아직도 변함이 없다.
 나는 나의 삶이 음악같아지기를 매일 꿈꾼다. 음악이 가지 못할 곳은 없다. 문맹자의 가슴속에서까지 음악은 쉽게 웅덩이를 파놓는다.
시는 내가 음악까지, 춤까지, 타오름까지 타고 가야할 아름다운 뗏목이다.
뗏목이 아름답다?그래 그게 인생일테니까.

-> 장석남의 첫 시집 뒷 표지에 적힌 글입니다. 알지 못할 조갈증이 우리들 모두에게 어떤 답이 될 수 있다면 좋겠네요.


 고구미에게

2차를 가기 위해 장소를 물색했던 것은 기억나지만 그 장소가 어디였는지는 기억나질 않아.
2차에서 소주를 마신 것은 기억나지만 어떤 얘기들을 했었는지는 기억나질 않아.
택시에서 내릴 때, 돈을 찾다가 뒷 주머니에 2만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요금을 냈지만
그 돈의 출처는 너희들이었다고 추측만 하고 있을 뿐 기억나질 않아.
뒷 주머니에서 돈을 찾던 당시에는 출처가 너희들이었다는 걸 확실하게 기억했는데,
이제 와서는 그때 그 기억을 했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어.
하지만 막걸리를 마셨던 1차는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어.
앞으로는 2차는 안 가는게 좋을 것 같아.

그리고 조만간 한 잔 살께~
1차를 아주 맛있는 걸 먹고 헤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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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4 - ......

그때그때 2010. 3. 14. 12:02
한 청년이 한 줄기의 빛도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방 구석에서 웅크리고 앉아 울고 있다.
청년은 못 견디겠다는 듯 계속해서 눈물을 쏟아낸다.

마침내 청년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연다.
빛이 쏟아지고 태양은 청년의 머리 위에 떠 있다.
그의 앞에는 초원이 펼쳐져 있고
청년의 눈은 햇살 아래 반짝인다.

청년은 그제서야 자신이 모든 기억을 잃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렇게 시작하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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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0 - 첫눈

그때그때 2010. 3. 10. 12:39
오늘 아침까지 내린 눈은 첫눈일까? 마지막 눈일까?
내 마음의 기준으로는 경칩이 지나 봄에 내리는 눈이니까 첫눈이다.

개구리들은 날이 따뜻해지면 겨울잠에서 깨서 알을 막 낳다가 추워서 알이 얼어 죽으면
다시 또 막 낳는다고 한다.

나는 개구리도 아니고 의욕도 없지만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내 마음속에서 큰 눈은 길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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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연/이병률

2010. 3. 9. 10:23

절연   - 이병률 -

어딘가를 향하는 내 눈을 믿지 마오
흘기는 눈이더라도 마음 아파 마오
나는 앞을 보지 못하므로 뒤를 볼 수도 없으니
당신도 전생엔 그러하였으므로
내 눈은 폭포만 보나니

믿고 의지하는 것이 소리이긴 하나
손끝으로 글자를 알기는 하나
점이어서 비참하다는 것
묶지 않은 채로 꿰맨 것이 마음이려니
잘못 얼어 밉게 녹는 것이 마음이려니

눈 감아도 보이고 눈을 감지 않아도 보이는 것은
한 번 보았기 때문
심장에 담았기 때문
눈에 서리가 내려도 시리지 않으며
송곳으로 찔러도 들어가지 않는 것은
볼 걸 다 보아 눈을 어디다 묻었다는 것

지독히 전생을 사랑한 이들이
다음 생에 앞을 못 본다 믿으니
그렇게라도 영혼을 씻어야 다음 생은 괜찮아진다 믿나니

많이 오해함으로써 아름다우니

딱하다 안타깝다 마오
한 식경쯤이라도 눈을 뜨고 봐야 삶은 그저 진할 뿐
그저 나는 나대로 살 터 당신은 당신대로 잘살기를
내 눈이 허락하는 반경 내에서 연(緣)은 단지 그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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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8 - 해변

사진 2010. 2. 28. 21:23



강릉에 다녀왔다. 날이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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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4 - 꿈

그때그때 2010. 2. 24. 11:09

바깥은 봄바람이 살랑거린다. 
오랜만에 따뜻한 바람을 맞았더니 기분이 좋다.
하지만 황사 하늘이 며칠 째 계속되고 있다.

봄바람이 일렁이니 새로운 기운이 충만하다는 라디오 DJ의 멘트를 듣다가 잠들었다.

어젯밤 꿈 속에서 나는 어느 문파의 고수로 등장했다.
문파 내부의 갈등 때문에 누명을 쓴 나는 동료와 함께 미친듯이 사람을 베어나갔다.
내 칼을 맞은 사람들은 봄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처럼 쓰러져갔다.

언젠가는 어느 건물 안에 숨어있는 군인들을 차례대로 살해하는 꿈을 꾸었더랬다.

길몽이다.

봄바람 때문이다. 

꿈 속에서도 나는 관습적이다.

AND

날짜를 쓰고 보니 2010년이다.
미래를 살고 있다는 느낌이다.
나는 미래를 현실로 살고 있는 것 같다.

20세기 초반에 중년을 살았던 사람들도 1910년에 미래를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을까?

오늘 아침 출근길에 조군 가게 앞을 지나서 늘 그렇듯이 무단횡단을 했다. 늘 그렇듯이 차는 단 한 마리도 없었다.
젊은 경찰 하나가 쓱 웃으면서 다가오더니 무단횡단 했다고 원래는 20,000원 짜린데, 오늘은 특별히 xxx만 한다고 하면서
내 신분증을 확인하고 전화번호도 적어갔다. 마침 담배사러 슈퍼 가던 조군이 길 건너편에서 나를 보고 씩 웃길래 나 늦었어 좀 태워줘.라고 해서 조군이 까치산역까지 차로 태워줬다. -> 나중에 우리집으로 과태료 딱지만 날아오지 않는다면, 월요일 아침에 있을법한 훈훈한 얘기다.

아버지가 작년에 법원에서 날아온 지급명령을 지난 토요일에 보여주셨다. xx신용정보회사.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채권추심회사에서 아버지한테 자꾸 연락이 오는 이유가 있었구나. 지난주에 문자로 우리집에 와서 강제집행하겠다는 내용이 와서 아버지께서 걱정돼서 보여주셨나보다. 하지만 우리집 전세 계약자는 우리 엄마인걸.... 민사니까 형사랑은 별개겠지만 구치소까지 갔다온 양반한테 너무 심한것 같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법원에서 명령서가 날아왔으니 신경써서 자세히 알아볼 일이다.

미래를 현실로 살고 있어서 그런가 어쩐지 2010년이 시작하고는 현실 감각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는다.
꿈과 라디오 소리가 섞이고 눈만 뜬 채 사무실에 앉아 있고 밤에는 다시 꿈과 라디오 소리가 섞이고 주말에는 눈만 뜬 채 TV앞에 앉아 있고의 반복이다.

다행히 지난 토요일에는 지후랑 세비체를 먹었다. 세비체의 시큼한 맛도 먹을 때 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는 다시 현실감각이 사라진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눈만 뜬 채 시간들이 사라졌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백신스키의 작품이다. 형이 동생이 흡수한 엄마의 양분을 눈빛으로 흡수하는 것이로구나.란 상상이 가능하다. 엄마랑 동생이 모두 위험하다. 눈만 뜨고 있는 삶으로 생각의 방향을 돌려보면 흡수되고 있는 쪽이 나다. 그렇다면 흡수하는 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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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는 새해 결심을 두 번 할 수 있는 좋은 나라다. 나 같은 경우 새해을 맞아 세운 다짐이나 계획들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을때, 음력설이 올 때까지 멋대로 흘러가도록 내버려 둬도 괜찮다는 마음속의 유예를 갖는다. 
 
 애초에는 내가 흐르는 물이라고 생각하고 흘러가는 대로 두려고 했다. 그런데 지금 내 물줄기는 무엇엔가 막혀서 단단하게 멈춰있다. 물은 고이면 썩고 물길을 바꾸면 화를 입는다는 것이 조상들이 남긴 지혜다. 두 얘기를 합쳐보면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물줄기가 고여 있다고 물길을 바꾸면 안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잘 산다는 건 물이 고였을 때, 물길을 바꾸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흐름을 타게 하는 것과 같은게 아닐까? 
 재미있게 산다는 건 물이 고였을 때, 썩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희열을 느끼는 것.이면 안되고 고인 곳의 주변을 정리해서 물이 흐를 수 있도록 해주는 순간들을 즐기는 마음과 같다.

 라디오에서 두 번 하는 새해 결심에 대한 멘트를 듣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
   
 휘청거리지 말고 잘 하자. 

 내일은 우수, 오늘 밤에 큰 눈이 내린다는 예보, 길조다.
AND

오늘 왼쪽 새끼손가락을 감싸고 있던 깁스를 풀었다.
정말 답답했는데, 다행이다. 다음주부터는 다시 기타를 손에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사건의 개요는 이러하다.

지난 연말 흥청망청 취하고 싶은 마음에 크리스마스 전에 술을 많이 마셨다. 마음이 조금 괴롭기도 했다.
크리스마스 이브를 앞두고 동대문에서 새벽까지 고구미랑 양꼬치를 먹었다. 많이 마셨지만 정신줄을 놓지는 않았다.
택시 타고 대학로로 가서 자고 있는 지후 등에다 대고 이러이러해 섭섭하다고 하면서 징징거렸다. - 푸념을 내 뱉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왼쪽 새끼손가락 마지막 마디가 굽어 있었다. 통증은 없었다. 병원에선 인대가 끊어졌다고 했다.

원인을 분석해봤다.

1. 술에 취해서 어딘가에 쓸렸다. -> 인대가 끊길 정도로 쓸렸으면 술에 취했어도 그 순간을 기억했어야 한다. 그리고 난 그날 많이 취하지 않았다.

2. 기타 연습을 너무 열심히 하며 안쓰던 근육을 많이 썼다. -> 신빙성은 있지만 기타 연습하다 인대 끊어진 케이스를 찾기 어렵다. 식구들은 그럴듯 하다고 생각했지만 직장 동료들은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한다며 놀렸다.

3. 지후한테 징징대서 벌 받았다. -> 전혀 과학적인 근거는 없지만 대단히 그럴듯하다. 가장 납득할만한 이유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못되게(못나게) 굴면 안된다.


지난주에는 내내 기분이 별로였다. 몸도 기분을 따라갔다.
주말까지 저조한 상태가 이어졌다.
조군과 DS가 동반 생일이었는데, 축하전화를 하지 않았다.
지후가 보고 싶었는데, 그냥 집에 있었다.
주말 내내 TV만 보고 누워있다가 어제 자기 직전에 판타스티크에 실린 레이먼드 챈들러의 단편(빗속의 살인마)을 읽었다.
소설 '빅 슬립'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는데, 하워드 혹스의 영화 '빅 슬립'은 잘 기억하고 있다.
내용적으로 볼 때, 아마도 '빗속의 살인마'를 확장해서 쓴 소설이 '빅 슬립'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활자를 읽으니 생기가 돌았다.


미래에 대한 불안만큼 불안한 것도 없고, 불확실한 미래만큼 불확실한 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불확실하고 불안한 미래가 있다는 것 때문에 삶은 즐겁다.
이번주에는 힘 좀 내야겠다.

AND

 상민씨가 속물 근성에 대해서 댓글 달아서 생각난 게 있다.

 고구미가 올해부터는 울주에서 살게 됐는데, 집을 구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내가 반사적으로 한 얘기가 이렇다.
 "그럼 네가 너네 학교 여선생님이 혼자 살고 있는 아파트에 방을 하나 얻는거야. 그리고 너는 그분과 사이좋게 지내다가 내가 너희 집에 놀러가면 셋이서 질펀나게 마시는 거야." 고구미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그거냐고 하면서 꾸지람을 내렸고 나는 이상하게 머릿속에 바로 스쳐간 생각이 그렇네.라고 했다.

 이 정도는 되야 속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예쁜 여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소녀시대 멤버들 중에 서현을 제일 좋아하는데, 그 이유가 별것도 아닌 그가 팀에서 가장 나어리기 때문이다.
 출근길에 자주 마주치는 교복 치마를 입고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는 중학생 소녀를 보고 흐뭇해 한다던지
 오늘 아침에 지나친 민다리에 교복 치마 걸친 여고생(오늘 날씨 추웠다.)을 머릿속에 새겨 둔다던지

 하는 정도는 되야 속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상민씨는 속물이 아니다.
 지후한테 고구미랑 했던 얘기 들려줬다가 괜히 쿠사리만 먹었다.
 적어놓고 보니 나는 교복치마를 좋아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AND

 1월이 끝났다.

 동생이 차를 샀다. 회사 업무 때문이다. 영일군이 여러가지로 힘 써줘서 동생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영일군이 후방 감지기 달아준다고 해서 놀러갔다.
 동생이 술 먹고 뻗어 있어서 내가 갔다.
 내 차도 아닌데, 왜 내가 가야되는 건지. 화도 났지만(차를 집으로 끌고 온 것도 나였다. ㅡ.ㅡ)
 그 놈도 그 놈 나름대로는 사정이 있는거라고 생각한다.

 주중에 D군을 만났다. 아기도 있는데, 직장을 그만두고 직업학원을 막 수료했다.
 나이가 있어서 취업이 쉽지는 않은 것 같다. 애아빠의 사정을 자세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어제는 남현이가 직장 그만뒀다고 해서 급 놀라서 만나러 갔는데,
 쉬는 기간 없이 새직장으로 옮기는 거라고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직장을 옮긴 사정에 대해서 들으며 한 잔 했다.
 네 번째 직장인가? 나도 알바 빼면 이번이 네 번째 직장인데... 그래서 친구인가?

 오늘은 식당 이모를 만났는데 아들내미, 딸내미가 이모가 계속 내주던 자기들 보험료를 내지 않고 자기들은 자기들이 알아서 할테니 이모가 돈이 필요하면 해약해라고 한다며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 이모 차라리 보험 다 해지하시고 이모 통장에 넣어두세요.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러지는 못했다. 사촌들도 그들 나름대로는 사정이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지후는 수화기 너머로 왜 (밥을 먹고) (살아야 되는건지) 모르겠다고 한다. -> 나한테만 하는 푸념은 괜찮지만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면 안된다.

                                                             <담배 꼬나물고 일하는 조(영일)군>

조군한테 술 한잔 사야겠다. 고맙다.

인간 세상은 캐릭터들의 집합체이고 사람들은 각자의 사정들 속에 산다.

AND

20100122 - 겨울 굴뚝

사진 2010. 1. 22. 16:13


 나는 겨울 굴뚝을 좋아한다. 차가운 날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흰색 연기가 무척이나 매혹적라 그렇다.
 하늘이 파란날 버스타고 가다가 '안양천 입구'에서 내리면 연기랑 하늘이랑 굴뚝이 어우러진 풍경을 실컷 구경할 수 있다. 
 두 번째 사진은 오산역에서....
AND

20100119 - 고양이

사진 2010. 1. 19. 17:47

지난 일요일에 해방촌 빈집에 놀러갔었다. 고양이가 세 마리 있어서 여러가지로 찍어봤다. 건진게 이거 하나라니 한심하다.

됐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고양이 한 마리랑 함께 사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양이에게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대고, 캔에 든 고양이 먹이를 그릇에 담아주고... 뭐 이런 것들이다.

로버트 알트만이 만든 레이먼드 챈들러 원작의 'The Long Goodbye'에는 탐정 필립 말로우가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다.(원작에 고양이 따위는 없었다.) 나는 탐정은 별로고 적지만 꾸준한 수입이 있는 한량이면 좋겠다.

<영화에서 필립 말로우 역을 맡았던 간지남 엘리엇 굴드>

고양이는 길을 건너다가 자기쪽을 향해 오는 자동차가 보이면 거대한 고양이가 쫓아오는 걸로 착각하고 길 건너기를 포기하고 방향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한다고 한다. 그러다가 치여 죽는다고 한다. 뭔가 신기한 동물이다. 고양이 버스에 쫓기는 고양이를 생각해 본다.
AND

20100114 - 수맥

그때그때 2010. 1. 14. 10:03
 집안에 수맥이 흐르면 그 집에 사는 예민한 사람들은 가위에 눌리고 자면서도 항상 깨어 있는 것 같은 기분이며,
 쾡한 얼굴로 거리를 활보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대학로 마로니에 빌라 20x호에는 사람을 깊은 잠에 빠뜨리는 수맥이 흐르는 것 같다.
 어제도 10시간이 넘게 잤다. 내게 흔치 않은 일이 그곳에서는 일어난다.

 신월동 현대빌라 50x호에도 수맥이 흐르는 것 같다.
 꿈을 꾸고 있는 동안에는 꿈 속에서 헤메다가 잠깐 꿈이 느슨해지면,
 자기 전에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지껄이는 소리들이 꿈과 섞인다.
 멋진 체험이라면 멋진 체험인데,
 자는 동안 미키마우스의 로얄티 금액, 최초로 미키마우스 만화연재가 시작된 연도, 중요한 결정은 오전에 하는 것이 좋다.
 따위의 정보가 머릿속에 들어오는게 썩 기분 좋은일은 아니다.
 더구나 꿈과 현실의 느슨한 경계속에서 5시에 생방송으로 라디오를 진행하는 나랑 동갑인 남자 아나운서가
 (이 사실도 꿈과 현실의 경계 속에서 알게됐다.) 나랑은 참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정리까지 하고 있다.

 2층과 5층에 수맥이 흐를리 없으니,
 집에서 못 자는 잠을 -당신이 주는 따스함과 안정에 취해서- 대학로에서 보충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오늘부터는 라디오를 끄고 자야겠다.
AND

20100111 - 북극곰

그때그때 2010. 1. 11. 14:55
코드부호같은 날이다. 2가 하나, 1이 네 개, 0이 세 개다. 

어제는 북극곰이 나오는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그대로 잠들었다.
북극곰이 바다코끼리를 잡아 먹고 얼음위를 뒹굴면서 흰 털에 묻은 피를 씼어내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흰색 덩어리가 뒤뚱거리면서 뛰는 모습과 앞발로 얼음 속에 묻힌 바다코끼리 고기를 파내는 모습은 예뻤고,
100미터 밖에 헤엄칠 수 없기 때문에 물에 빠져 죽기도 한다는 얘기는 안타까웠다.
그렇지만 북극곰은 코카콜라 광고에 나오는 것처럼 귀여운 동물이 아니다.

나는 침대 위에서 주말을 보냈고,
지후는 일이 많고,
동생은 차를 사는 일 때문에 걱정이 많고,
어머니는 여러가지 생각 때문에 잠 못들고,
아버지는 쉬는 날이면 만취한다.

이런날들은 계속되고

나는 더 이상 사랑을 속삭이지 않는다.

단지 침대가 내 주말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 먹어버려서 기분이 별로인 것일 뿐인지도 몰라. 

나는 무작정 되는대로 살려고 했던 결심을 바꾼다. -> 적당히 되는대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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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8 - 경계

사진 2010. 1. 8. 12:14
집 앞에서

고드름이 달린 등불, 얼어붙은 파이프, 빛과 밤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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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작품이다.
매일 티비에서 볼 수 있고 주말에는 몰아서 재방송으로도 볼 수 있는 "지붕 뚫고 하이킥"에는 저작권 법이 적용되도 세계적인 명감독의 초기 단편에는 저작권 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키아로스타미가 이란 사람이라 그런지도 몰라.

두 소년이 나란히 서 있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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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요랑 영씨를 만났다. 겨울이라 일도 없고 머리 식힐겸 서울 나들이를 왔다. 

역시나 큰 눈은 길조다.

잘 곳은 있냐고 했더니? 영씨는 계획 없이 와서 아무데서나 지하철 역에서 자도 되고. 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집으로 고고!
족발 시켜서 같이 먹으려고 했는데, 폭설로 영업을 안 하는 바람에 김치 볶음밥 만들어 먹었다.
이런 저런 얘기도 하고 기타도 치고 하던 중에
내가 영씨에게 부러 연락 안했다는 얘기를 했다.
영씨는 연락이 올때가 됐는데, 왜 연락이 안 오나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오랜만에 애요의 기타 반주에 맞춰서 노래를 불렀더니 기분이 좋다.
애요가 브로콜리 너마저의 '유자차'를 좋아했다.

이 차를 다 마시면 봄날으로 간다. 봄날로 가는게 아니라 봄날으로 가기 때문에 좋은 노래다.

과거는 시간으로만 지나가고 다가올 봄날은 시공간을 합쳐서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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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편/천양희

2010. 1. 4. 11:55
  성당의 종소리 끝없이 울려 퍼진다
  저 소리 뒤편에는
  무수한 기도문이 박혀 있을 것이다

  백화점 마네킹 앞모습이 화려하다
  저 모습 뒤편에는
  무수한 시침이 꽂혀 있을 것이다

  뒤편이 없다면 생의 곡선도 없을 것이다



굉장히 좋아하는 시인데, 포스팅을 안했길래 올린다.
나이 먹을 수록 기억을 바탕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경향이 강해지는 것 같다.
유덕화는 여전히 젊어 보이지만 '열혈남아'는 20년도 넘은 영화가 되버렸다.
나는 적어도 20년을 넘게 살았다.
생이 직선으로 간다는 건 어떤건지 생각해 본다.
너무 뒤만 보지는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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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인 새해 첫날이다.
눈이 옴팡지게 내린다.
캐나다에 눈 내리듯이 내린다.
도로가 마비되거나 말거나 내 기분은 좋다.

자동차를 실은 배가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 되고
중국이 작년 4월부터 탈북자들의 출국을 허용하지 않고
예멘에서는 전쟁이 날 것 같지만(7시에 일어나서 뉴스에서 본 내용들)

어쩌면 이 큰 눈이 대재앙의 시작일지도 모르지만(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중국의 인공강우 실험 여파라고 생각하고 있음)

눈은 길조니까 올해는 좋은 날들만 이어질 것 같다.

HAPPY NEW YEAR!!

<사무실 앞 서소문 아파트도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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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역을 향해 오고 있는 용산행 급행열차 -> 사진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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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30 - 병원

그때그때 2009. 12. 30. 15:17
엄마가 오늘 오전 간단한 수술을 받았다.

덕분에 여러가지 체험을 했다.
하나는 수술 동의서에 싸인 하는거고 또 하나는 수술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수술환자 보호자 대기실에 전화벨이 울리고 나를 찾더니 떼어낸 부분을 보여 준다고 잠깐 들어오라고 한다.
부리나케 수술실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남북관계로 따지면 비무장지대와 같은 역할을 하는 수술실과 보호자 대기실의 중간지점이 있다. 집도의가 금속 접시를 들고 북측에서 유유히 걸어 나온다. 의사는 접시 위에는 놓여 있는 엄마의 일부분이었던 것들을 집게로 집어서 보여주며 이런저런 설명을 해준다. 나는 차분하게 그 얘기를 듣는다. 남쪽 교섭단은 힘이 없다.

잠시 후에 엄마가 나오고 병실로 옮겨진다. 간단한 수술이었다고 하지만 무기력하게 수술을 당한 엄마의 모습을 보니
눈물이 왈칵 솓는다. 차마 엄마한테 눈물을 보일 수는 없는 것이다.
 
많이 안 좋은게 아니라서 다행이다.

어제랑 오늘 아침에 엄마랑 여러가지 얘기를 하다가 풍요와 편리를 추구하는 엄마와 지금의 편리와 풍요는 거부하고 싶어하는 나 사이의 격차를 발견했다.
지금이 풍요와 편리의 시대가 아니라면 나도 풍요와 편리를 추구했을 것 같다.는 점에서 그 격차는 격차가 아닌 것이다.

p.s 병원은 돈도 많이 벌면서 입원실에 티비랑 휴게실에 있는 컴퓨터 같은 건 왜 돈을 내고 쓰도록 하는 걸까?

p.s 어젯밤 병원에서 보니 의사들도 간호사들도 모두 곤죽이더라. 취업문제가 심각한데, 의사랑 간호사 숫자를 늘리면 되는거 아니야?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하나? -> 해답은 단순한 생각 속에 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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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시점에서 2009년은 현재에 있으면서 이미 지나가 있다.
그런 2009년을 되돌아보면서 지나간 날들을 후회하고 아직 끝나지 않은 나머지 날들에 대한 희망을 품는 것은 의미 있거나 부질 없는 일이기도 하다.

22, 23일 양일에 걸쳐서 신나게 마시다가 갑작스럽게 머릿속에 지나간 - 정확하게는 고구미에게 내년 계획을 얘기하다가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게 된다면 강릉에서 구하고 싶다고 얘기하면서 든 - 생각이 그냥 되는대로 살자는 거다.

헤세의 "크눌프"에는 신이 투정하는 크눌프에게 정주하지 못하고 방랑했던 삶에 대해 그 즐거움을 일깨워주는 대목이 나온다.

고인물은 썪는다. 인간세계에 고이지 않고 살 수는 없다. 영원한 방랑자도 잠시 한 곳에 정주하는 순간 썪는다. 육체는 고여있더라도 정신은 부유하고 있다면 괜찮을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그 불일치를 스스로 견뎌야 하는 것은 아주 큰 문제다. 결국 스스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면 편안함에 이를 수 있겠지만 나는 부처가 아니다.

나는 되는대로 사는 것으로 깨달음의 세계에 조금 다가가 보고 싶다.
되는대로 사는 것은 막 사는 것과는 다르다.

어제 후배 하나를 만났는데, 미래를 생각하고 있지만 지금의 직장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했다.
결국은 처해있는 현실에 맞춰서 되는대로 살다보면 삶이라는 우주가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물론, 내 우주에서 남을 해하는 것은 피하고 싶다.

되는대로 사는 것은 막 사는 것과 같기도 하다.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내 의지 밖에 있기 때문에 삶은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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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3 - 나

사진 2009. 12. 23. 12:14
남을 사진 속에 담으려면 그 사람과 두터운 친분이 있어야 한다.
photo by 고구미

쭈그리고 앉는 습관은 버리기가 어렵다. 언제든 치고 올라갈 수 있는 안정된 자세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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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3 - 연남동 송가

사진 2009. 12. 23. 12:03
연남동에 송가라는 중국식 주점이 있다. 송가 건너편에는 백열등을 밝혀 놓은 철물점이 있다.

철물점 왼쪽에는 기름집이 있고, 오른쪽에는 비슷한 포스를 풍기는 떡집이 있다.


길 건너편을 생각하면서 돼지막창 튀김을 안주로 삼으면 술맛이 더 좋다. 돼지 막창에 파를 쑤셔넣고 기름에 튀긴다음 예쁘게 썰어서 춘장에 찍어 먹는다. 캬야~~

어제 계획했던대로 이말 저말 내뱉으면서 실컷 마셔서 기분이 좋았다.
좋은 기분에 발목을 삐끗했다.
아침에 이성준 선배가 호랑이 기름을 줘서 발목에 호랑이 기름을 발랐다.
지금 내 발목에서는 호랑이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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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한 전에 큰 추위가 있었고 대설에는 눈이 내리지 않았어도 동지에는 낮이 짧다.

어제 오후 네시에 사무실 밖에 잠깐 나갔는데, 길 건너 건물 창문들에 비친 하늘이 붉었다.

라디오에서는 낯 모르는 사람들의 훈훈한 사연들이 쏟아지고(젠장!) 나는 그 때문에 잠이 오질 않는다.

그냥 연말이라 마음이 들떴을 뿐이다. 잠은 무거운 휴식과 같아서 들떠있을 때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그 뿐이다.

동지는 어둠이 빛에게 자리를 양보하기 시작하는 날이다.

오늘만 지나면 모든것이 빛의 자리를 찾아갈 거라고 

어두웠던 기억들이 앞을 볼 수 있는 힘을 줄 거라고 다짐해 본다.

오늘은 적당히 일 하고 실컷 마셔야겠다. 내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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