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버지께 의탁하고 있다. 몸만 의탁하고 있다. 애초에 나란 아이의 마음이란 것은 의탁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혼자 살았으면 더 좋았을 수도 있겠지만 밥을 혼자서 차려 먹지 않아도 되는 것만해도 굉장한 이익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더구나 작은 어머니는 요리 솜씨가 좋으시다. (특히, 김치) 

 시골 생활은 즐겁다.

 강릉 생활이 변산 생활과 다른 두 가지는 씻고 나서 저녁을 먹는다는 거랑, 술을 안 먹는다는 거다. 술을 안 먹어도 생활은 즐겁다. 변산에서도 정말 즐거웠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의탁(依託)이다.

 변산에서는 비용이 들어가는 모든 것을 공통체가 책임져 주기 때문에 그저 일만 열심히 하면 됐다. 스스로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한다면 모든 시간들이 즐거웠던 것이다. 거기다 그곳에는 어린이들이랑 청소년들이 있었다.

 강릉에서는 비용이 들어가는 것을 내가 책임져야 하지만 돈벌이로 산불감시 일을 하고 있고, 의식주는 공동체에 그랬던 것처럼 작은아버지께 의탁함으로써(집과 먹을 것이 있으면 사람이 생활하는데 많은 돈이 들지 않는다.) 그저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식으로 편하게 지내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이것에 대한 대답으로 올해의 문제작 '백의 그림자'에서 한 구절을 찾아서 옮겨 본다.

  빚을 지는 것이 어째서 필연이 되나요?
    빚을 지지 않고 살 수 있나요.
  그런 것 없이 사는 사람도 있잖아요.
    글쎄요, ~ 그런 것 없이 사는 사람이라고 자칭하고 다니는 사람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조금 난폭하게 말하자면, 누구의 배(腹)도 빌리지 않고 어느 날 숲에서 솟아나 공산품이라고는 일절 사용하지 않고 알몸으로 사는 경우가 아니고서야, 자신은 아무래도 빚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뻔뻔한 거라고 나는 생각해요.
  공산품이 나쁜가요?
    그런 이야기가 아니고요, 공산품이란 각종의 물질과 화학약품을 사용해서 대량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라 여러 가지 사정이 생길 수 있잖아요? 강이 더러워진다든지, 대금이 너무 저렴하게 지불되는 노동력이라든지. 하다못해 양말 한 켤레를 싸게 사도, 그 값싼 물건에 대한 빚이 어딘가에서 발생한다는 이야기예요. 
  그렇군요. 

 축사를 확장하는 공사 도중에 땅과 관련된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작은아버지가 심란해하시는데, 구제역이 강원도까지 넘어왔고 이제 대관령만 넘어오면 바로 우리 동네기 때문에 심란함이 더욱 깊어지셨다. 얼마전에 저녁 식사 하시면서 '매일 매일 이렇게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 소원이다'라고 하셨던 분이신데.....(그 자리에서 내 소원은 장가가는 거였다. ㅡ.ㅡ;)

 어제 달 표면을 눈 앞에서 구경하는 꿈을 꿨다. 작은아버지 만큼은 아니겠지만 나 역시 약간은 심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올해도 가고 뭔가 좀 심란해서 적어 봤다. 의탁도 좋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직접 몸으로 부딪치는 쪽이 더 사는 것 같으려나?

 p.s 엊그저께 티비에서 말이 새끼 낳는 장면을 봤는데, 어미가 새끼가 일어나서 걷기 시작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길을 떠나는 장면을 보다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내가 요즘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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