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312 - 외롭다

그때그때 2011. 3. 12. 18:00

 작은아버지 내외가 울릉도로 여행을 가셨다. 2박 3일이지만 아침에 가셨다가 밤 늦게 오시는 일정이기 때문에 내게는 혼자서 있을 수 있는 온전한 3일이 생겼다. 

 시골에서 혼자 산다는 건 어떤걸까?

 목요일 새벽에 송아지가 태어났다. 오전 내내 송아지를 관찰했다. 젖을 물지 않길래 젖병에 젖을 짜서 먹이려고 했는데, 젖이 나오질 않는다. 흠.... 어미에게 문제가 있는걸까? 잠시후에 송아지는 세차게 어미 젖을 빨기 시작했다. 이번 송아지 이름은 순달이가 좋겠다. 현재 외양간에 살고 있는 네 마리 송아지들 중에 가장 예쁘게 생겼다. 송아지가 어미 젖도 빨았으니 크게 할 일이 없다. 마트에 가서 담배와 맥주를 샀다. 첫 번째 페트를 비우고 나서 오른손 손톱을 잘랐다. 반만 잘랐다. 예쁘게 길러서 기타에서 멋진 소리가 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두 번째 페트를 비우고 나서 손톱을 마저 잘랐다. 굳은살도 잘라냈다. 지금 이렇게 잘 지내고 있는데, 뭐가 그렇게 새로 시작하고 싶었던 걸까?

 금요일 아침, 어제 자른 손톱 때문에 후회가 밀려왔다. 굳은살을 너무 많이 잘라내서 손끝이 아리다. 그래도 기타소리는 정직하니 다행이다. 오후에 친구가 왔다. 어머니가 담근 복분자주를 들고 왔다. 혼자서 신나게 마셨다. 신나게 마신만큼 신나게 떠들었다. 취해서 떠든일에 대해서 후회할 나이는 이미 지났다. 그런 기분이 나를 더욱 떠들게 만들었다. 친구는 나랑은 달라서 농사는 부업으로 글쓰는 일을 주업으로 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 어차피 이 세계는 파국으로 가고 있으니 뭐든 나쁘지 않겠다.

 토요일, 2시 가까워 잠들었는데, 7시에 깼다. 술이 덜 깼지만 차를 끌고 외양간에 올라갔다. 소들은 내가 없으면 굶어 죽고 나는 소들이 없으면 외로워 죽는다. 이거야말로 완벽한 관계다. 한우 한 마리가 새끼를 낳을 것 같은 기미를 보여서서 순달이랑 순달이 엄마(9240)이 있는 칸으로 옮겨줬다. 송아지들한테는 이름을 지어주지만 어미소는 번호로 부른다. 마치 SF영화(블레이드 러너)에서 안드로이드들을 부르는 것 같다. 밤사이 일본에는 지진이 났다. -'도쿄 매그니튜드' 같은 작품이 괜히 나오는 건 아니다.- 7번 국도를 타고 신나게 달려서 친구를 주문진에 내려줬다.
 내가 강릉에 내려온 다음에 많은 친구들이 '한 번 놀러갈께'라고 했지만 실제로 놀러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변산에서도 그랬다. 친구들이란 것은 '우리 언제 밥 한 번 먹자' 또는 '언제 술 한 잔 해야지'랑 같은 맥락으로 '놀러 한 번 갈께'라는 말을 쏟아낼 뿐이다. 놀러 온다는 말을 실천에 옮겨준 친구가 무척이나 고맙다.

 35486은 꼬리를 동그랗게 말고서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면서 힘을 줬다 뺐다를 반복했다. 그렇지만 새끼를 낳지는 않았다. 한참을 관찰했다. 새끼를 낳더라도 밤 늦게나 내일 새벽에 낳을 것 같다. 소들 저녁밥을 주고, 집으로 내려와서 김치 부침개를 만들었다. 건강을 위해서 올리브유를 사용했다. 어제 다 해치우지 못한 복분자주를 먹었다. 일본에서는 대지진이 발생했는데, 대한민국 강릉에 사는 나는 김치 부침개를 안주로 복분자주를 먹는다. 이건 필리핀 산 바나나 한 송이를 1,500원에 파는 것 만큼이나 weird한 상황이다. 우리의 삶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다른 나라의 소식을 굳이 뉴스에 내보낼 필요가 있는걸까?

 허망함이 허무하게 밀려든다.

 외롭다.

 나는

 외롭다.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