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에 삼십 시간동안 1m 가까운 눈이 내렸다. 어제는 눈사람도 만들고 재미있게 놀았었는데, 오늘은 눈 치우느라고 힘들었다. 강릉에 와서 처음으로 허기를 느꼈다. 이번 눈에 비닐을 새로 씌우려고 했던 하우스 두 동 중에 한 동이 무너졌다. 외양간 지붕도 조금 내려 앉았다. 몸도 지치고 눈 피해도 입었지만 눈이 가득 쌓인 동네는 한없이 포근하기만 했다. 어제 쏟아지는 눈을 바라보며 소똥을 치운일도 즐거웠고, 놀러온 친구와 차가 다니지 못하는 대로를 함께 걸었던 일, 눈을 헤치며 길을 내서 집에 도착한 일도 즐거웠다. 작은아버지랑 작은어머니의 생활에는 눈이 온 것에 대한 낭만이 없는데, 내 생활에는 낭만이 있다. 생활에는 낭만이라는 것이 있어야한다. 하지만 이번같은 눈이 두 번 정도 더 온다면 내 생활에도 낭만이 없어질 것 같긴 하다.

 오후에 소가 새끼를 낳았다. 송아지가 나오는 장면을 처음 봤다. 작은아버지랑 함께 송아지 다리를 붙잡고 어미소 뱃속에 있는 녀석을 힘껏 잡아당겨 꺼냈다. 소도 송아지도 사람도 힘든 시간이 지나고 송아지가 쑥 하고 빠져나왔다. 작은아버지는 갓 태어난 따끈한 송아지를 울타리에 걸쳐 놓고 깨끗하게 닦아주셨다. 나는 새 생명의 뜨거운 열기를 두 손으로 느끼면서 녀석을 붙잡고 있었다.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은 감촉이었다. 작은아버지는 양수 때문에 막혔을지도 모르는 송아지의 콧구멍에 입을 대고 빨아들이고 뱉어내기를 몇 번이고 반복하셨다. 저녁에는 송아지한테 젖을 물리기 위해서 젖병을 빨게 했다. 젖을 빨고 이틀만 지나면 펄쩍펄쩍 뛰어다닌다고 한다. 뛰어다니기 시작하면 사진도 찍어주고 친하게 지내야겠다. 

 짤방은 멀리서 송아지를 지켜보고 계시는 작은아버지, 고개를 앞으로 숙이고 계셨더라면 이 사진이 올해의 베스트 샷이 될 뻔했는데, 아쉽다. 손에 들고 계신 것은 눈삽인데 눈 치우는 용도 보다는 다른 용도로 활용할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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