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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12.05.15 20120515 - 여러가지
  5. 2012.05.08 20120508 - 어버이날, 친구들, 영일이 아버지 3
  6. 2012.05.03 20120503 - 볼음도, 두 번째 방문 2
  7. 2012.04.25 20120425 - 볼음도, 첫 방문
  8. 2012.04.23 20120423 - 때
  9. 2012.04.17 20120417 - 봄 1
  10. 2012.04.12 20120412 - 태몽 1
  11. 2012.03.28 20120328 - 냄새
  12. 2012.03.26 20120326 - 친구를 만났다.
  13. 2012.03.18 20120318
  14. 2012.03.08 20120312 2
  15. 2012.02.20 2012022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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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2011.12.03 20111203 -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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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2011.11.26 20111126 - 나무 2
  25. 2011.11.25 바다 2
  26. 2011.11.19 20111119 - 생각정리 2
  27. 2011.11.17 20111117 - 산불조심과 여러가지
  28. 2011.11.08 20111108 - 생각 정리 2
  29. 2011.10.31 20111031 - 속초에서 두 밤 2
  30. 2011.10.22 농부철학자 피에르 라비 2

20120620

그때그때 2012. 6. 20. 00:12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니 생활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부턴 전쟁이다.라고 마음 굳게 먹고 있는 중에 왕좌의 게임 시즌2 9화를 봤다. 시작부터 끝까지 전쟁이다. 전쟁은 정말 미친짓이다. 삶은 전쟁인가? 전쟁처럼 살면 그렇다.

나는 꼽사리다를 듣다가 우석훈이 현금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귀가 번뜩했다. 역시나 현금인가? 현금을 중요하게 생각하면 그렇다. 가장 중요한 건 빚을 지지 않고 사는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렇다.

페이스 타임을 통해서 당신 얼굴을 보면서 순수한 poor 자체인 우리의 현재와 순수한 poor 지체일지도 모를 우리의 미래를 이야기했다. 당신도 웃고 나도 웃었다. 즐거웠다. 앞으로도 우린 그지 섀끼들이야. 라고 하면서 웃을 수 있는 날들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언제나 그렇지만 지후는 예뻐.



제주도에서 다 좋았는데, 비자림도 좋았다. 빛을 향해 달렸더니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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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했네

그때그때 2012. 6. 11. 17:40

어제

사람들이 많이 왔더랬다.

지후 친구들, 내 친구들, 친지들, 관계에 얽힌 사람들.........

관계란 두려운 것.

미래란 불안한 것.

결혼식은 뭐 즐거웠다.

결혼은 이상이 아니라 현실 - 장인어른의 걱정이 담긴 멘트

dk가 음향을 봐뒀다. 땡큐
형진이가 사회를 봐줬다. 땡큐
상태가 사진을 찍어줬다. 땡큐
영일이가 공항까지 태워줬다. 땡큐

사람들이 와줬다. 감사합니다.

많은 빚을 가지고 관계속에 살아간다.

그것이 인간


그리고 지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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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뻐.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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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다 갔네.

 결혼식이 6월 10일이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의미있는 날에 결혼을 하게됐다.

 집안끼리 물건과 돈이 오고가는 불편한 일들은 끝났고, 살림집도 건재하고(강화에 와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지금 집을 얻은 것이다.) 엊그제는 웨딩촬영을 했다. (안경을 벗고 드레스를 입은 지후를 보고 킬빌의 피투성이 결혼식 장면이 자꾸 떠올랐다.)  부모님 돈으로 결혼식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하긴 한데, 결혼 하는 것 자체가 효도고 둘이 잘 살면 그게 또 효도니까 그냥 쿨하게 넘어가려고 한다. 그렇지만 자꾸 불편하긴 하다.

 우편으로 청첩장을 보냈고, 사람들에게 결혼한다는 전화를 돌렸다. 식순을 적어봤고, <씨 없는 수박> 김대중 선배에게 축가를 부탁했다. <빅맨> 쏭이 당일에 음향을 봐주기로 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는만큼 나도 언젠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부디!

 오늘은 '저 결혼해요'라고 연락하지 않은 사람들 몇몇에게 오늘 전화를 했다. 내 휴대전화에서 연락처가 지워진 사람들, 그러니까 한때는 자주 얼굴을 마주하던 사람들이다.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들이 반가웠다. 연락하길 잘했다. '형, 모든걸 다 이루셨군요.' '니가 진정한 위너다' 라는 말을 들었다. 확실히 인류에게는 유머란 것이 있다. 기분이 좋았다. 결혼을 '당신'과 하게되서 다행이고 축복이다. 내가 너무 복을 많이 받고 사나? 생각하기도 한다.

 지금의 상황들이 멀리서 넓게 보면 나쁘지 않은데, 자꾸 사소한 일들에 마음을 쓰게된다. 물론 사소한 일들이 없으면 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 그런 작은 일들을 무시하며 사는 것은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하지만 좀 더 담대한 마음가짐을 갖고 싶다.

 남들도 다 그렇고 그렇게 치이면서 사니까 나도 그렇게 시달리며 사는 것이 당연하지.가 아니라 내 말과 행동들이 온전히 내 것이기 때문에 비뚤어진 입으로 불평을 늘어놓지 않는 하루하루를 원한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당신의 한 마디가 나를 담대하게 만든다.

 그리고 내 삶은 나를 통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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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토요일에 볼음도에 다녀왔다. 벌써 세 번째 방문이다. 차를 가지고 들어갔고 쑥을 뽑아서 실어왔다. 앞에는 벌써라고 썼지만 단지 세 번째 방문일 뿐인데, 뱃길이 익숙하다. 가는 배에서도 오는 배에서도 개운하게 잤다.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섬에 들어가는 배에 사람들이 많았다. 볼음도에서 외포리로 오는 배는 오전 7시와 오후 2시에 있다. 돌아오는 2시 배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다들 섬에서 하룻밤을 자고 돌아오는 것이리라.

 오늘은 고구마를 심었다. 열심히 심었다. 고구마에 대해서 여러가지를 배웠다. 장차 도움이 될 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주머니 다섯 분과 고구마를 심는데, 오후가 되니 내가 가장 빠른 속도로 심고 있었다. 1200평 밭에 물을 주지 않고 심으면 여섯명이 하루면 심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제 비가 온 것이 무척 고마웠다. 그렇지만 내 밭이었으면 물 주면서 심었다. ^^; 고구마를 심을 때는 줄기가 길더라도 땅과 바투 심어야 한다는 것도, 고구마는 박카스 병 크기의 것이 가장 상품성이 있다는 것도, 크키가 큰 고구마는 겨우내 따뜻하게 보관했다가 종자로 사용한다는 것도 알았다.(배웠다)

 오늘은 십장 노릇을 했다. 처음이다. 참과 점심을 챙겼고, 일당은 농협 봉투에 담아서 드렸다. 사람들을 사서 많은 평수의 농사를 짓는 부농도 못할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엊그제 지후 손을 잡으면서 이 손으로는 텃밭만 가꾸면서 살게 해줄게.라고 했더랬다. 손에 물 한방울 안 묻히고 살게 해줄게 만큼이나 거짓부렁이지만 그 멘트가 마음에 든다. 부농의 와이프도 텃밭만 가꾸면서 살지는 않는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모이고 어떤 지역의 삶이 모이고 더 넓은 지역의 삶들이 모여서 지구의 인간 세상을 이룬다. 나는 내가 어떻게 하루를 보냈는지를 인식하지도 못하는 삶을 원한다. 삶 자체를 숙명으로 받아들인다는 인식조차 못하는 그런 상태가 과연 가능할까?

 주인집에서 육회랑 저녁을 얻어먹고 약간 취한 상태에서 오늘을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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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일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내 결혼 후에 돌아가셨으면 했는데, 내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어제도 정시에 퇴근해서 가고 싶었지만 밭일이 조금 늦어져서 밤늦게야 병원에 도착했다. 마음처럼 되는 게 없구나. 결혼날을 잡았기 때문에 절은 하지 않았다. 식구들한테는 초상집에 간 것을 비밀로 했다. 장지에 가서 한 시대(세대)가 끝나는 순간을 지켜봤다. 아침부터 벽제 화장터에는 눈이 퉁퉁 부은 사람들이 검은 옷을 입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형우, 건영이, 용학이도 끝까지 함께했다. 오랜만에 친구들이랑 긴 시간 대화를 나눴다. 굉장히 즐거웠다. 오랜만에 나도 농담들을 쏟아냈다. 위축될 필요가 없다는 것은 그런것이다. 사실 친구들이 아니라도 위축될 필요는 없다. 그런점에서 건영이한테 많이 배운다. 영일이는 무척 피곤했을 텐데도 일산에서 길음까지 나랑 건영이를 태워줬다. Thank You! 우리는 영일이가 졸지 않도록 쉴새없이 떠들어댔다. 음담패설도 많이 나왔다. 즐거웠다.('부인께 무릎꿇고 빌어'랑 '손만 빌려줘'는 마음속에 담아둔다.) 덕분에 힘이 많이 났어. 너희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리고 오늘은 어버이 날이다. 엄마한테 문자를 보냈다. 영일이 아버지 장례에 간 것을 알리기 싫어서 전화는 하지 않았다.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는 내가 엄마를 지켜주겠다. 사랑한다.는 내용이었다.

 답장이 없다. 무슨일이 있는걸까? 내일은 통화하자.

 

5월 8일 7시 30분의 세 친구 - 형우가 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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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쑥밭 무농약 인증 때문에 품관원 직원들과 볼음도에 다녀왔다. 밭 모양이 엉망이라 좀 부끄러웠다. 얼핏 보면 그냥 묵혀두고 있는 밭으로 보인다. ㅡ.ㅡ;

 이번에도 9시 배로 들어갔다가 2시배로 나왔다.

 볼음도에는 식당이 없다. 오늘도 점심을 얻어 먹었다. 감사합니다!

 동네 어르신들이 볼음도의 명물인 '800년 은행나무'를 구경시켜 주셨다. 나한테는 장가가기 전에 나무 한 번 만지고 가라고 농담을 하셨다. '일우는 ~~`'이라고 이름을 불러주셔서 기분이 좋았다.

 여태껏 하얀 민들레만 토종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란 것을 알았다. '조선 민들레'라고 부르셨다. 정감이 가는 이름이다.

 볼음도 뿐 아니라 강화에는 봄이 왔다. 언제 겨울이었냐는 듯이 곳곳이 푸르다. 기분 좋은 일이다. 어딘가 황량했던 집 주변에도 복숭아꽃, 사과꽃, 앵두꽃이 피었다.

 이런 좋은 시절에 또 혼자라서 섭섭한 마음이 있다.

 그렇지만 뭐~~~~ 

 

 <800년 은행나무> 실제로 보면 1,000년 넘게 살았다고 해도 거짓말이 아닐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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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로만 듣던 볼음도에 다녀왔다. 과연 소문대로다. 작은 섬에 논이 엄청 넓다. 잠깐 본 것 뿐이지만 벼농사에 어떤 확실한 체계가 있는 곳임을 느꼈다. 그곳에서의 미래를 떠올려봤다. 모두 내가 할 나름이다.

 9시 배로 들어갔다가 2시 배로 나왔다. 다음에는 하룻밤 자고 와야겠다.

 아침에는 배멀미에 대한 걱정이 있었는데, 돌아올 때는 배에 타자마자 해병대 아저씨들과 함께 덜렁 누웠다. 어제는 날이 더워서 누군가가 선실의 문과 창문을 다 열어뒀다. 누워있는데,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니 기분이 좋았다. 눈을 감았다. 그대로 시간이 멈춰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가끔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틀어놓고 잠든다. 쿨한 마음가짐을 갖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팟캐스트다. 만날 그 얘기가 그 얘기지만 만날 듣는 그 얘기가 만날 쿨해지는데 도움이 된다면 그걸로 족한 것이다.

 

 

짤방은 돌아오는 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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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3 - 때

그때그때 2012. 4. 23. 21:43

 주말엔 비가 왔다. 세차게 왔다. 바람도 많이 불었다. 라디오에선 봄꽃이 지는 것을 아쉬워했다.

 오늘 아침엔 안개가 자욱했다. 백령도엔 안개가 자욱하다는 일기 예보가 흘렀다. 강화도 날씨는 백령도를 기준으로 하면 맞는다. 안개에서 만두 냄새가 났다. 정확하게는 후추를 잔뜩 뿌린 만둣국 냄새가 났다. 일회용 만두가 들어있는 만둣국 냄새가 났다. 모든 만두는 일회용이다. 더 정확하게는 배가 고파서 어쩔 수 없이 고향만두를 넣고 끓인 만둣국에 비린내를 제거하기 위해서 후추를 잔뜩 뿌린 냄새가 났다. 그 냄새가 점심을 먹을 때까지 남아있었다. 이상한 일이다.

 외근을 나갔다. 버스를 탔다. 만둣국 냄새가 내 손에서 나는 것이란 걸 알았다. 2012년 4월 23일 월요일은 내가 손에서 만둣국 냄새를 풍긴 날이 되버렸다.

 버스에 앉아서 만두 냄새를 맡으며 차창 밖을 구경했다. 벚꽃도 매화도 전혀 지지 않았다. 주말동안 정말 바람이 많이 불었는데, 떨어진 잎의 수는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기예보에서 뭐라고 떠들어대도 이쪽은 아직인 것이다.

 냄새랑 벚꽃 때문에 때에 대해서 생각했다.

 

 "아직 (그)때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망자의 변명같은 이 말을 새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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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7 - 봄

그때그때 2012. 4. 17. 21:55

 봄이다. 몸살이 왔다. 쉬고 싶었지만 그러질 못했다. 일요일 새벽에 욕실에서 의식을 잃고 넘어졌다. 눈 바로 위가 찢어졌다. 죽지 않길 다행이다. 몸은 쑤신데, 눈에서는 피가 나니까 짜증이 났다. 사는 게 병신같다.는 당신의 얘기가 떠올랐다. 그날은 땀과 피로 범벅인 채 보냈다. 몸은 아직도 아프다. 아픈 게 길어지니 늙고 병든날들을 생각하게 된다.

 봄이다. 농부들이 논을 갈기 시작했고 밭들은 이미 모양을 갖추었다. 풍경이 초록을 띄기 시작하고 여기저기 꽃들이 피었다. 사무실 옆건물에는 제비가 집을 지었다. 곧 여름이겠지.

 예상은 했지만 농사를 못짓고 있다. 동네에서 농부들을 마주칠 때마다 몸 속의 세포들이 꿈틀거린다. 내 자리가 저곳이어야 하는데,라고 마음이 수근거린다. 수근거림이 혈관을 타고 온 몸을 흐른다.

 일은 큰 범주에서는 숙명이어야 하고(체념이 아니다) 작은 범주에서는 즐겁거나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그러질 못하고 있다.

 

 멍하니 있다가는 버려진 인형이 되기 십상이다.

 버려진 인형은 어떻게 찍어도 불쌍하게 나온다.   

 그는 쓰레기들 틈에 외롭다.

 그렇지만 당신곁의 나는 외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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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2 - 태몽

그때그때 2012. 4. 12. 17:51

 5일 밤에 소세키의 '몽십야'를 다시 읽었다. "이런 꿈을 꾸었다."로 시작하는 꿈 이야기들이다.

 

 6일 밤에 연작꿈을 꿨다.

 

 1. 당신이 나를 떠나서 나는 절망에 빠졌다. 나는 살아갈 힘을 잃고 살아간다.

 2. 당신과 불장난을 했다. 큰 불은 아니고 밭 한 가운데에 불을 놓고 놀았다. 당신은 나를 떠났는데, 나는 당신과 불장난을 했다. 나는 당신의 빈자리에 절망한 채 살아가는 중이다.

 3. 혼자서 대로를 걷다가 하늘을 올려다 봤다. 보름달이 부처님을 닮은 아이의 얼굴을 하고 있다. 아이는 나를 보고 인자한 미소를 짓는다. 나는 여전히 당신의 빈자리에 절망한 채 살아가는 중이다.

 

 1번은 개꿈이고, 2번은 돈꿈이고, 3번은 태몽인데,

 개꿈은 일반적인 불안에서 오는 것 - 불확실한 현재, 다음날 당신 부모님을 만나야 하는 압박감

 불장난은 돈꿈 - 영일군에게 복권 구매 대행을 부탁했지만 꽝이었다. 당신 부모님이 양복을 사주셨고, 돈도 주셨다. 다음에는 지구를 불사르는 꿈을 꾸도록 하자.

 그리고 태몽 - <태몽을 미리>로 검색해 보니 결혼 전에도 아이가 생기기 전에도 태몽을 꿀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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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8 - 냄새

그때그때 2012. 3. 28. 11:41

 희복 촌장님은 50년 생이다. 나는 그분의 젊은날을 알지 못한다. 젊은날 뿐이겠는가 그분의 어제조차 알지 못한다. 112-50=62세인 촌장님은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의 촌장도 아닌데, 촌장님이라고 불린다. 그리고 요즘 세상에 촌장님이라는 것이 있는 동네가 남아 있을까 싶기도 하다. 아무튼 촌장님은 새마을회관 자리에서 혼자 사신다. 새마을 운동이 끝난지가 오랜데 여전히 등기에 새마을회관으로 되어 있는 곳이다. 원룸 형태로 되어있는 그곳은 혼자 살기에는 무척 넓다. 그리고 촌장님은 살림이 적다. 방에서 눈에 띄는 것은 덩그러니 넓은 방의 한가운데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노트북 뿐이다. 설장구를 잘 치신다는 촌장님의 방에서는 가끔 헤비메탈 음악이 새어나온다. 나는 여전히 그분의 어제조차 알지 못한다.

 냄새 이야기를 쓰려고 했는데, 대가리가 길었다.

 어제 촌장님 방에 갔다. 물론 그 전에도 몇 번 갔었다. 어제까지는 모든 용무가 30초 내에 끝났었기 때문에 냄새의 실체를 몰랐다. 그저 그 방에서 풍기는 약간 퀴퀴한 냄새가 나이 먹은 홀애비의 그것이구나.라고 생각하는 정도였다. 어제는 뭔가를 찾느라고 꽤 오랫동안 그 방에 머물렀다.

 방에 있을때는 몰랐는데, 방에서 나오자 그 냄새가 계속 나를 따라다녔다. 기분 나쁜 냄새다. 죽음의 냄새는 아니다. 쓸씀함의 냄새쪽에 가까웠을까? 쓸쓸한 악취다. 잠들때까지도 그 냄새를 생각했다. 냄새를 생각하다니 뭔가 이상한 일이다. 여튼 그 냄새가 내 하루의 중간중간에 계속해서 머물렀다. 그냥 냄새가 계속 났다.고 하는 게 맞겠다.

 사람들은 자기 냄새를 자기집 냄새를 모른다. 집집마다 고유의 냄새가 있다. 내게서는, 내 집에서는 어떤 냄새가 날까? 62살이 된 우리집에서는 어떤 냄새가 날까?

 담배 냄새는 우선적으로 지워야겠다. 끊을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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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영일이랑 형우가 우리집에 다니러 왔다.

 만나면 늘 하는
 사는 얘기, 친구들 얘기, 게임 얘기들이 오고 갔다.
 별것도 없었다. 

 나는 탁 털어놓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얘기하고 친구는 괘념할 것 없다는 듯이 받아들인다.
 그 순간 
 내 기도를 타고 나온 묵직한 무게는 그대로 공기 중에 섞여버린다.

 그리고 오늘

 괘념치 않는 무사한 하루를 보냈다. 

 君! 앞으로도 종종 놀러와. 내 홀대는 하지 않으마.

 짤방은 집 앞에서 한 장 온수리에서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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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18

그때그때 2012. 3. 18. 20:30
 강릉에 다녀왔다. 강릉집에 있던 공유기의 플러그를 뽑았다. 그 순간 한 시절이 끝났고, 한시름 덜었다. 마무리가 썩 매끄럽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우둘투둘한 것도 아니었다.

 내가 집을 비운 사이에 지후는

 문을 열고 집을 나섰다. 냉이가 많은 곳을 알아냈고, 처음으로 빨래를 돌렸고, 음식물쓰레기도 버렸다.

 집에 온 다음에 나는

 마음 편하게 밥을 먹었고, 나무를 쪼갰고, 세탁기를 돌렸고, 공유기를 연결했다.

 강릉에서 챙겨온 짐에 아이폰 박스가 있었는데, 그 안에 담배가 한 갑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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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12

그때그때 2012. 3. 8. 16:20
 강화 생활에 익숙해져간다. 

 3일에는 지후네서 짐이 들어왔다. 지난주에는 재 정리하다가 (정신줄 놓고) 보일러에서 타던 나무를 땔나무 위에 올려놓고 출근하는 바람에 집 다 태워먹을 뻔했다. 동네 사람들이 내가 어디사는지 알아가고, 인사를 받아준다. 주인아저씨네 텃밭과 개장과 하우스가, 버스정류장들이, 동네의 논밭들이, 매일 지나치는 건물들이 점점 낯익다. 이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익숙함과 일상이 된다. 
 
 등기소 직원을 꿈꾼 적 있었다. (공무원 시험을 봐야한다는 사실을 알고 좌절했었다. 도서관 사서도 '전 책을 좋아합니다.'라고 해서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들이 쌓이고 쌓여도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하는 삶을 꿈꾼 적 있었다.

 하지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것처럼 보이는 일상은 모두 타인의 것이다.

 아침에 씻고 나갔다가 집에 와서는 라벨의 '볼레로'를 들으며, 저녁을 먹고 그릇을 부시고 빨래랑 청소를 한다.

 매일 이럴수는 없겠지만 당분간은 이것이 변하지 않는 일상이길 바란다.

 익숙해질 때까지


매일 보는 풍경 중에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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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0

그때그때 2012. 2. 20. 18:59
 늙었나?

 시간이 빨리간다. 무척 빨리간다. 작년인가 싶더니 올해고, 1월인가 싶더니 2월인데, 2월도 스무날이 지났다.

 아침에 일어나보면 붉은 해가 떠오르고 있다. 서쪽 바다에서도 해는 붉게 떠오른다. 좋은 기분이 몸과 마음을 따라 흐른다. 출근하려고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네 사람들과 인사를 한다. 버스정류소 이름은 '이발소'다. '이발소'앞을 지나는 버스는 하루에 다섯 번이다. 좋은 기운이 계속 남아있다. 

 그랬다가는 낮부터 이리저리 흔들린다.

 초심을 생각해본다.

 당신, 농사, 잡곡 꾸러미, 소박한 식탁, 건강한 생활

 흔들리지 말 것.

 과로는 피할 것.

 현재보다는 미래. 

 그래도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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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온수리에서 서울 송정역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눈이 내렸다. 주머니엔 3800원이 있었고, 담배랑 도토루 커피를 샀다. 그리고 내일은 상견례다.

강릉에서 강화로 옮겼고 집을 구했고 직장이 생겼다.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농사도 조금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객관적으로 보면 일이 착착 진행되고 있는게 맞는데, 한동안 계속 침체였다.

불안과 두려움이 내 특유의 낙천과 낙관을 짓누르고 있었다.

체념하는 일요일 혹은 순응하는 혹은 수긍하는 일요일 또는 그런 하루하루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누구에게나 납득할만한 매일매일이 필요하다. 보통이라면 어제와 마찬가지로 열심히 산 오늘이 그 기준일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열심히 살아야겠다. 

퇴근길에 지후랑 메세지를 주고 받았다. 지후도 퇴근길이었다. 떨어져 있는 두 사람이 둘 다 이동중인 상태에서 텍스트를 주고 받는 세상이 미래라고 했더니 지후가 현재다.라고 했다. 현실감을 갖고 열심히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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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를 잘랐다. 언제부턴가 미용실엔 가지 않는다. 미용실은 대체로 말이 많다. 

 이발소는 이발사에게 짧게요.라고 하면 더 이상 대화가 없게 마련이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이발사와 나 사이에는 가위질 소리와 잘린 머리카락이 떨어지는 소리, 기독교 채널의 설교 소리만 가득했다. 이발사는 비누로 머리를 감겨줬고 야쿠르트병 주둥이도 열어줬다. 가게를 나가려는 순간 벽에 걸려있는 현판이 눈에 들어왔다.

 '복되고 창대하게'

 남자 목욕탕만큼이나 온전한 남자들만의 공간

 생면부지의 남에게 내 몸을 온전히 맡겨야 하는 곳

 이발비는 8,000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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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31

그때그때 2011. 12. 31. 17:30
 올해가 넘어가는 시내버스의 운전대를 잡고 있을 운전기사의 마음을 생각해봤다.
그 버스에는 홀로 버스안에서 올해를 넘겨야 하는 승객들도 타고 있을 것이다.

 새해를 맞이하는 시점에 누군가와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은 큰 행복이다. 그 누군가가 당신이기 때문에 행복은 더욱 커진다.

 착하게 산다고 해서 좋은일로만 돌아오는 것은 아니더라도 착하게 살아야겠다.

 p.s  영화 '머니볼'을 봤다. 단장도 감독도 선수들도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프로 스포츠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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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21

그때그때 2011. 12. 21. 20:02
몸도 마음도 지쳤다. 물러설 곳이 없으니 물러설 수도 없다. 하여, 기운 내야지. 생각하고 씻었다. 몸에 물이 닿는다고 마음이 닦이는 것도 아닌데, '영차'가 필요할 때면 습관적으로 몸을 구석구석까지 씻는다. 목욕탕 거울에 비친 내 몸뚱이를 봤다. 몸에 생기가 없다. 맘에 안든다. 어느새 중년이다.

어느새,

나도 모르는 사이에 혹은 나만 모르는 사이에 떠돌이가 되어있다. 나는 붙박이장같은 삶을 원한다.

당신도 울고, 엄마도 울지만 나는 울지 않는다. 주위의 걱정들은 뒤로하고 웃으면서 헤쳐나가자. 모든 순간들이 노래가 될 수 있도록.

뭐라도 쓸랬던게 내년 계획이 되버렸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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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줏대없이 끌려다니고 있다. 지난 금요일에는 춘천에서 있었던 사이버 농업인 행사에 어제랑 오늘은 횡성에서 열린 강원 사이버 농업인 어쩌구저쩌구에 다녀왔다. 내일이랑 모레는 AT센터를 거쳐 양평과 수안보까지 가야하는 행사가 있다. 사람들이 대체로 하는 얘기는 이런 행사에 자꾸 다니는 것이 견문을 넓히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강릉의 젊은 농업 CEO들이 늘 하는 얘기는 이제는 농업도 예전같지 않다. 우리가 힘을 합쳐서 각자의 영역을 맡으면 큰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형님들은 전부 빚을 안고 계신데, 생활의 패턴이나 규모는 대기업의 봉급 생활자들과 비슷해 보인다. (멋진집, 외제차, 씀씀이 등)

 지친다.

 밖에서도 지치지만 집에서도 지친다. 삼촌은 나중에 어떻게 될 지 모르니 일단 후계농을 신청하라고 하신다. 그래서 오늘 센터에 다녀왔다. 나는 신청자격은 갖추었다. 하지만 젖소 구입에는 자금이 나오지 않는다. 삼촌 축사를 이용하겠다고 할 수도 없다. 현재 우리 축사는 작년에 '증축 및 보수'로 사업비를 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토지구입 및 축사 신축으로 후계농을 신청하거나 특정 작목을 새로 정해서 신청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또 집에서는 융자 받을 수 있는 돈은 다 받는 것이 좋고 그 돈으로 땅을 사라고 하신다. 삼촌은 내가 어떤 마음으로 농사를 지으려고 하는지 짐작은 하고 계시지만 나 같은 마음으로는 생활비를 마련할 수 없다고 생각하신다.

 나는 큰일(농사의 사이즈나 소득)도 싫고 땅을 사겠다고 사업비로 빚을 지는 것도 싫다. 나는 종종 남들한테 농부가 되겠다는 것이 직업 선택적인 측면이 있다고 한다. 내가 직업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세상의 기준에서 봐서 그렇다는 것이지, 직업이니까 도시에서 직장 다니는 것처럼 살고 싶다는 뜻이 아니다. 나는 그저 내가 밭이나 논에서 일하고 있을 때가 좋을 뿐이다. 내가 생각하는 농부는 삶의 방식과 관계가 있는 것이지, 고소득과는 관계가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은 작은 삶이다. 작은 땅, 작은 집, 작은 당신, 소박한 밥상이 큰 충만함이 되는 그런 삶이다.

 중요한 시기니까 진짜 고민과 실천을 깊으면서도 조심스럽게 그리고 결단력 있게 해야겠다.

p.s 용환이 아저씨(72세)가 기술센터까지 태워주셨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에 어르신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농사를 지어서는 돈을 버는 것이 아니다. 아끼면서 살고 남는만큼 모으는 것이다."
"바쁘면 돈 쓸 시간도 없다." 

공감한다. 그리고 바쁘고 안 바쁘고를 떠나서 돈이란 건 없으면 안 쓰면 된다. 돈 떨어지면 담배를 끊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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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8 - 산다.

그때그때 2011. 12. 8. 20:11
 나는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매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거기에 덧붙여서 애초에 목표란 것이 구체적이질 않다. 어른들이 인정하는 안정된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 목표에 대해서 많이 하는 얘기는 이렇다.

 '단기간에 이룰 수 있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그것에 맞춰서 장기적인 목표까지 세워야 한다.'
 
 나는 그렇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앞으로도 배우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내게도 목표는 있는데, 예를들면 이렇다.

 - 지후랑 같이 산다
 - 시골에서 농사 지으며 산다
 - 최소 생활비로 산다

 적어 보니 다 산다.로 끝을 맺는다. 산다.로 끝나지 않는 것들도 있다.

 - 육식은 하지 않는다
 - 빚을 지지 않는다
 - 뭐든 쓴다  
 - 많이 읽는다
 - 기타를 열심히 친다

 같은 것들이다. 조금 구체적이긴 한데, 목표라기 보다는 지금도 70% 이상은 실천하고 있는 것들이다.

 그리하여 나는 변화를 원하지 않고 되는대로 두리뭉실하게 사는 것이 목표인 사람이 되는 것인데, 반쯤은 맞는 것 같다고 생각하니 몸에 한기가 돈다.
 
 그렇지만 뭐 어때!

 당신과 함께 재미있게 살면 된다. 물론 최소한 먹고는 살아야겠지.

 문장 끝에 '산다'를 붙이면 다 산다가 되는 것, 그것이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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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3 - 죽음

그때그때 2011. 12. 3. 22:12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침에 전화한 친구는 덤덤한 말투로 '이 세상 떠나셨네'라고 했다. 병원에 가보니 친구 눈이 퉁퉁 부었다. 그 와중에도 돈을 내야 시신을 내 주기 때문에 현금서비스를 받았고 장례식장의 계약서에도 싸인을 했다고 한다. 친구 아버지는 지병이 있으셨다. 예상했던 죽음 앞에서도 사람들은 속수무책이다.

 지후네 공부방 어린이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세 아이와 아내를 남겨놓고 갑작스럽게 이승을 등졌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쉽지 않은 현실이 남은 네 가족의 몫으로 남겨졌다.

 '나는 죽는다는 것에 대한 공포가 없다.' 이런 표현은 말이나 생각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나는 어느날 찾아올 내 어머니의 죽음이, 당신의 죽음이, 나의 죽음이 두렵다.

 어느새 12월이다. 2011년 12월 3일의 전라북도 익산은 따뜻했다.

 대선이 아버지에게도 동민이 아버지에게도 남겨진 사람들에게도 오늘이 따뜻한 날이었으면 하고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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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 김수영

2011. 11. 27. 20:16
 눈     - 김수영 -

 눈이 온 뒤에도 또 내린다

 생각하고 난 뒤에도 또 내린다

 응아 하고 운 뒤에도 또 내릴까

 한꺼번에 생각하고 또 내린다

 한 줄 건너 두 줄 건너 또 내릴까

 폐허에 폐허에 눈이 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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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6 - 나무

그때그때 2011. 11. 26. 21:18
 올해가 다 지나간듯 느껴진 게 벌써 몇달전인데, 아직도 한 달도 넘게 남았다. 시간은 그렇다.
 오늘은 열심히 다녔다. 힘을 다 써버려야 새 힘을 얻기 때문이다. (하이킥에서 내상씨가 미친듯이 달린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어제는 목욕도 하고 발톱도 깎았다. 그것만으로는 조금 부족해서 열심히 걸었다. 성에 덜찬다. 내일은 숲을 헤메든, 계속 걷든 해야겠다.

 

 어제 강릉시내에서 찍은 사진인데, 사람들이 빛을 향해 걸어가기도 하고 빛을 등지도 오기도 한다.
둘 다 맘에 든다. 그리고 둘 다 어딘가 모자란다.

 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이 나무는 천 개의 눈을 가지지 못해서 오직 앞만 바라볼 수 있었다. 뒤에서 온 사람들은 뒷모습만을 보이며,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언덕 너머로 사라졌다. 나무는 자기만 혼자 서 있다는 사실 때문에 공포를 느꼈다. 앞쪽에서 와서 나무를 지나쳐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무는 뒤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자기 뒤에 무엇이 있는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또 나무는 앞쪽에 보이는 언덕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도 궁금했다. 나무는 외로웠고 궁금했고 동시에 두려웠다. 그러다가 나무는 언덕 너머에는 바다가 있을거라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딱 한 번만이라도 언덕 너머의 바다를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 한 소년이 나무에게 다가왔다........

오늘 걸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미쳤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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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그때그때 2011. 11. 25. 14:06



어제 먹은 것들을 다 싸내고 바다에 왔더니 머리가 하늘처럼 텅 비었다.

바닷가에는 갈매기가 무리지어 날고 아빠랑 함께 놀러온 아이는 뒤뚱거리며 뛰어다니고 낚시꾼들은  낚싯대를 던지고 젊은 연인은 방파제 위를 사라질 듯 걷는다.

바다는 혼자와도 좋고 겨울에 와도 좋고 흐린날 와도 좋다.

바다에 오면 바다쪽만 쳐다보게 되는 것처럼 자꾸 당신만 보게 된다.는 얘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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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는 안개비가 뿌리더니 해질녘에는 석양을 받은 구름들이 멀리 산 너머에서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당신의 존재는 내가 그려놓은 삶의 그림에서 절대적이다.
 당신은 아무런 그림도 없이 나만 믿고 이곳에 내려와야 한다.
 일의 진행들이 내 그림대로 되지 않는 것 때문에 많이 민감해졌다.
 어떤날은 날카로운 날을 세우고 다니기도 한다.
 민감해지고 날을 세우는 일들이 없는 삶을 위해서 이곳에서 당신과 함께 하는 것이 필요한데,
 시작도 하기 전에 이런식으로 흔들리면 안된다.
 당신은 아무런 그림도 없이 나만 믿고 이곳에 내려오기로 했다.
 내가 휘청거리면 안된다. 
 ...
 ...
 ...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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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



 지난 월요일부터 산불조심을 다닌다. 최저임금을 받는 농촌의 겨울철 아르바이트다. 작년 가을에 다녔던 코스와 비슷한 코스를 다닌다. 어르신들한테 인사를 할 때마다 작년에 하던 그 사람이냐고 물어보신다. 나는 그분들을 기억해도 그분들은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뭔가 서글픈 일이다.

어제까지 별로 돌아다니지도 않고 차에서 자빠져 있었다. 오늘부터는 열심히 돌아다니기로 결심했고 그렇게 했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주워듣기도 하고 오랜만에 산도 탔고, 나무도 한 차 했다. 길에서 돈 만원을 주웠다. 만원짜리 한 장이 열심히 하기로 한 것에 대한 보너스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돈을 흘린 노인네의 슬픔쪽에 더 가깝다. 깻대를 태우고 있는 아주머니한테 홍시를 하나 얻어 먹었다.

오늘 들은 얘기들 - 여러사람에게 들은 것들은 생각나는대로 나열함

- 성산면사무소 있는 쪽에는 월세도 20만원씩 달라고 하는 것이 시내에 얻는 것보다 더 비싸. 왜 그런지 모르겠어.
- 깻대를 말렸다 갈아서 넣으면 비료로 좋다고 하지만 요즘 누가 귀찮게 그렇게 하나, 옛날에나 그렇게했지.
- 아들이 셋 있는데, 둘째만 대학을 못 나와서 잘 못 살고 있다.
- 사람이 써먹든 안 써먹든 공부를 해야한다.
- 시골에서 이래 농사짓고 살면 흥망이 없다.(흥망이 없는 것에 체념하신 말투였음)
- 둘째 아들이 잔나비띠인데, 아직 장가를 안 가서 걱정이 많다.
- 우리 딸이 서른인데, 시집을 갈 생각을 안 한다. 하긴 나도 서른 여섯에 장가를 갔으니....

작년에 주먹만하던 개들이 일년 만에 말 그대로 개같이 커서 나를 반겨줬다. 나도 무척 반가웠다. 내년에 잡아 먹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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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요일, 월요일, 오늘까지 삼일 동안 부연동에 다녀왔다. 부연동은 골짜기 중의 골짜기다. 서른 가구 정도가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국유림을 임대해서 사업을 하시는 형님이 계신데, 40헥타가 넘는 산을 아픈 몸을 이끌고 일구시자니 너무 힘들다. 당장은 소득이 없더라도 곰취, 표고, 개두릅을 딸 수 있고, 몇 년만 버티면 산마늘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돈으로는 무척 비전이 있는 곳이고 내가 골짜기를 좋아하기도 하다보니 그곳에서 사는 일에 마음이 조금 끌렸다.

 아침에 중고 트럭을 한 대 보러 갔다가 사지 않기로 했다. 그러던 중에 '아차'했다. 차는 한 대 필요하긴 하지만 600만원짜리 트럭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나는 논에서 벼랑 보리를 키우고 싶고, 밭에서는 콩, 감자, 고구마, 옥수수, 호박, 당근, 배추, 시금치, 상추, 오이, 가지, 수수, 기장, 눈개승마를 키우고 싶은 것이지 소득작물(눈개승마는 소득작물임)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돈 앞에 초심이 살짝 흔들렸다. 

 내년에는 집에 농사를 잘 짓자. 일단 일 년을 착실하게 살아봐야 그 다음 계산이 나온다. 조급해하지 말자. 초심을 유지하자. 조바심 내지 않고 초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당신이, 곁에 있어줄 당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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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잤다. 바닷가를 걸었다. 닭강정을 먹었다. 회도 먹었다. 생선구이도 먹었다. 물회도 먹었다. 오징어 순대도 먹었다.

 속초 아바이 마을은 함경도 사람들이 전쟁이 끝나면 빨리 돌아가기 위해서 모래톱에 만든 마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마음 아픈 일이다.

 속초 여행은 즐거웠다.

  

 


p.s 우리팀이 우승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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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은 필요한 것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가지지 않습니다. 나는 그 최소한의 돈을 얻기 위해 아무 일이나 할 준비가 되어 있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실처럼 믿기지 않는 상황들을 보았습니다. 어떤 부부는 얼굴 대하기조차 매우 힘들었습니다. 한 명은 밤에 일하고 다른 한 명은 낮에 일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쉼 없이 뛰어다니는 여자들을, 일하고 장 보고 아이들을 탁아소에 맡겼다가 다시 데리러 가기 위해 뛰어다니는 여자들을 보았습니다. 그 안 어디에 삶이 있는 걸까요? 삶은 인간의 품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건들 위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나는 자주 오아시스를 떠올렸습니다. 그곳이 그리웠습니다. 내가 사막에 남았다고 해서 더 많은 운이 따랐을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습니다. 내가 그곳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들은 가난했습니다. 나 역시 가난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오아시스에 사는 사람들은 회사 안에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처럼 인간성을 상실하지는 않았습니다.


 -> 아이폰 사진 정리하다가 새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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