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친구가 다녀갔다. 서울에서 여섯 시에 출발한 친구랑 아침에 만나서 보헤미안 모닝세트 먹고 삽당령으로 올라와서 두 시간 등산 후에 불 피워놓고 술 마셨다. 요즘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떤 생각들을 하는지 유튜브에서는 뭘 보는지, 소소한 얘기들을 나누는 시간이 좋다. 친구란 그런 것이다. 친구가 삽당령을 좋아해서 좋다. - 지난해 초에 처음 왔는데 올해 안에 10회 방문 채울 듯 -

중학교 올라가는 친구 큰아이가 자살충동과 우울증에서는 다소 벗어났고 중학교 때는 본인 모르는 친구들 있는 학교에서 새로 시작할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다. - 살아온 경험치가 적을수록 다 잊고 새로 시작하는 마음을 먹는 조건을 갖추는 일이 더 중요하다. - 토요일에 잘 놀고 일요일 아침부터 친구가 심각한 통화를 하길래 무슨 일인가 물었더니 아이가 친구집에서 돈을 훔쳤다고 하면서 괴로워했다. 나한테 ‘어떻게 하냐’고 자꾸 묻는데, 괴로웠다. 나도 괴로운데 친구는 훨씬 괴롭겠지. 아침밥도 안 먹고 올라간 친구에게 칭찬 자꾸 해주고 부모가 계속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라는 톡을 보냈다. 삶이 너무 팍팍한데 고맙다고 답이 왔다.

친구야, 또 와.

어젯밤에 오늘 출근하기 싫다고 했더니 아내가 안쓰럽게 바라봐줘서 좋았다. 진짜 출근하기 싫은건지 아내의 위로가 받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반반이다. 삶은 계속되고 출근은 해야 한다. 오늘 출근길에는 아내를 터미널까지 태워줬다. 터미널 오거리에서 선거운동 하는 사람들을 보던 아내가 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확보했는데, 잘했으면 윤석열이 국힘대선 후보로 나오지는 않았을 거라고 했다. 뭘 잘했어야 하는거지? 중대재해처벌법? 차별금지법? 검찰개혁? 딱히 뭘 잘했어야 하는지 떠오르질 않는다. - 이번 정부의 코로나 대응과 외교에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 확실한 건 나랑 아내가 속 시원할 일은 한국 사회에 거의 없다는 것이다. 정치에는 정치만의 공학이 있으니 완전히 새로운 판이란 건 없다는 걸 안다. 한 친구가 대선 후보 중에 찍고 싶은 사람이 없다면 투표 안하는 것보다는 무효표를 만드는 것으로 정치적 주장을 하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다는데, 그런 소신이 부질없다 느꼈다.

영화 제목이랑 친구들처럼 아버지가 되지는 못했지만 하루하루 점점 아재가 된다.

아버지가 된 아버지는 치매에 걸렸고 주간보호시설에 몇 번 가보시더니 거기 가면 재미있고 좋다고 하신다. 다행이다. 아무 때고 전화해도 된다고 했더니 아침 5시 반에도 6시에도 6시 반에도 전화한다. 아버지가 나한테 전화하는 걸 잊지 않는 것만으로도 좋다. 아버지에게는 주말에는 내게 전화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는데, 그걸 잊고 나한테 먼저 전화하는 쪽이 안심이 된다.

내일부터 3월이네, 어떻게든 되겠지.

속수무책으로 남의 나라 전쟁을 바라보는 일이 나를 무력하게 만든다.

- > 4월이면 이 근처에서 또 붓꽃이 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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