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2월 10일, 올해가 다 갔다. 숫자로 계량해도 10분의 1이 지났다.

곧 봄이다. 아직 통계가 나오진 않았겠지만 이번 겨울은 유난히 일교차가 큰 느낌이다. 겨울 가뭄은 일상화 됐다. 올해가 다 갔지만 산불도 그렇고 농사도 그렇고 대선도 그렇고 남은 올해가 걱정이다. 걱정하는 중년이다. 별거 아니다.

1979년 2월 6일은 친구 세 명의 생일이다. 친하니 친구라 하겠지만 세 명 다 친하고 그 중에 둘은 그냥 친한 것 이상의 감정이다. 역학이나 별자리 같은 것으로 내가 태어난 날인 1978년 9월 23일과 79년 2월 6일의 어떤 연관성을 찾을 수 있을까? 가수 나얼이 나랑 같은 날 태어났는데, 나얼 베프 중에도 79년 2월 6일에 태어난 사람이 있지 않을까? 78년 2월 6일에 태어난 학교 선배는 밥 딜런과 본인 생일이 같다는 얘길 종종 했는데, 알만한 사람은 아는 뮤지션이 됐다. 생일은 365개로 분류한 혈액형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걸 단순화하면 별자리가 되겠지. 생일이란 건 살아가는 사소한 재미 중에 하나다.

세 친구로 돌아가서 그네들 생일이면 잊지 않고 간단한 메시지라도 보내주곤 했는데, 올해는 일절 연락하지 않았다. 왠지 연락하고 싶지 않았다. 연락하고 싶지 않아, 생각하면서도 계속 신경은 쓰였다. Y에게는 생일 다음날 전화했다. DS에게는 오늘까지도 연락하지 않았다. MJ는 인스타에 본인 생일 관련된 포스팅을 올렸는데, 그걸 보고도 나는 하트를 누르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왠지란 말로 모든 대답이 이루어지는 세상과 그 세상의 혼돈을 생각한다. 왠지 귀찮았다? 왠지..... 답을 찾는 과정이다.

의미 없는 것에 대한 답을 찾는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중년이 됐다. 그럴듯하지 않다. 15,000일 넘게 어찌어찌 살았고 중년이 됐다. 그럴듯하다. 15,000원이 별거 아닌 듯 15,000일도 별거 아니다. 15,000광년은? 아늑하지만 별거 아니다. 숫자는 그런 것이다. 삶도 그렇고.

다시 세 친구로 돌아가서 Y는 전문 기술직이고 건물주고 재산이 많아서 중산층이라 부르기엔 너무 부자지만 그렇다고 최상위 부자는 아니다. MJ는 전문 기술직이고 20대 때도 이미 본인 명의로 마포구에 아파트가 있었다. 고급 기술자라 먹고 사는데 문제 없다. DS는 고정된 직업이 없고 자유롭게 사는 것 플러스 이런저런 일들로 Y에게는 얼마 안되는 8자리 숫자의 빚이 있고 현재는 빚 갚으면서 친형이 하는 요식업 일 도와주고 있다.

얘네들을 보면서 같은 날 태어나서 다르게 사는 것에 대해서 자주 생각한다. 나얼이랑 나도 다른 삶을 살고 초등학교 때 친구 중에 나랑 생일이 같았던 호철이도 떠오른다.

일찍 자면 꿈을 길게 꾸는 경우가 많은데, 어제 일찍 잤고 연작으로 꾸는 꿈을 꿨다. 나이도 먹었고 직업도 있는데, 졸업을 못해서 <여전히 학교에 다니는 꿈>이다. 꿈에 대학 동창들이 많이 나왔다. 나는 뭣 때문인지 텐션이 100까지 치솟은 채로 친구들에게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여전히 학교에 다니는 꿈>에서 졸업을 위한 마지막 시험을 봐야 하는데 강의실이 어딘지 몰라서 답답해 하다 깨는 경우가 많은데, 어제 꿈은 그 내용은 아니었다.

같은 설정의 꿈, 뭔가 풀리지 않는 일이 있나? 그 답은 나만 알겠지.

생일 축하 연락을 안하면서 자꾸 머릿속에 떠오른 DS에게 이번주가 가기 전에 연락 한 번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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